길 위에서 중얼거린 건 기형도였지
중얼거림도 시가 된다는 걸
알았던 거지 아니 중얼거림도
기형도의 입을 거치면서 시가 되었지
그런 걸 중얼거린다고 시가 되려나
나는 다만 길 위에 있을 뿐
중국어방송과 일어방송을 들으며
부산행 기차에 타고 있네
차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눈부셔 하면서
이것이 현재라고 말하는 순간
지나가버리는 현재에 승차해 있네
광명을 지나고 대전을 지나갈 터
그런 것이 언제부턴가 인생의 경유지가 되었다
인생의 기차는 다만 도착을 지연하는 게 목적
그렇게 늦추는 게 예술의 목적이라고 했지
예술은 지각에서 인지까지의 거리를
간격을 늘리는 기술 그렇다고
둔갑술까지는 아니야
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뒤늦게 알아보게 만드는 화장술
인생의 예술은 서울에서 출발하되
부산에 늦게 도착하는 게 목적
그래서 나는 대구에서 내릴 참이지
대구에서 다시 제주로 건너갈 생각이지
서귀포에도 가고 성산포도 둘러볼 참이지
아직은 길 위에 있기 위해서
철로 위에 있는 셈이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사이
광명역 지난다 기형도문학관이 있는 곳
그렇군, 종착역을 지나서도
중얼거리는 게 시라는군
터널을 통과하면서야 나는 알게 되는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wo0sun 2019-01-25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가을 기형도문학관을 가기전
그의 글과 관련서를 읽으면서
가슴 먹먹했던 기억이~

로쟈 2019-01-25 23:54   좋아요 0 | URL
곧 30주기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