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에 나온 역사서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건 <탐史>(푸른역사, 2007)이다. 공식 출간일자는 2월 9일로 돼 있지만 책은 그보다 조금 일찍 나온 듯하다. 제목인 '탐史'는 '역사를 탐하다' 내지는 '역사를 탐구하다'란 뜻으로 지은 듯한데, 유치찬란이다.

제목으로 책을 골랐다면 전혀 주의를 두지 않았을 터인데, 역사가들의 고백과 대담이라는 게 눈길을 끈다. 원저를 보니 'The New History: Confessions and Conversations'(2002)로 멀쩡한 제목이 붙어 있는데, 왜 '새로운 역사학'이란 제목을 붙이지 않았을까? 요즘 다소 남용되는 듯한 '새로운 역사학'이 너무 식상해서? 그렇다고 '탐史'라 붙일 것까지야...

그런 불만을 제쳐놓으면 책은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현대 역사학의 거장 9인의 고백과 대화'란 스타일 말이다. 분량도 600쪽이 넘으니 흡족하다, 라고 적었다가 원서의 쪽수를 확인해보니 고작 256쪽이다. 아무리 불가피하다고는 해도 607쪽으로 두 배가 훨씬 넘게 불어날 수밖에 없었을까? 독서의 편의성을 '너무' 고려한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니 별로 흡족하지 않다.

여하튼 소개에 따르면, "20세기 후반의 이른바 '새로운 역사학'을 선도한 역사가 9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역사학계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책"이다. 거기에 "그들의 출신, 유년 시절, 역사학을 하게 된 동기, 지적 영향을 준 책 등 배경적 측면에서부터 저작의 의도, 내용상의 의문과 모순, 다른 문화에 대한 반응, 학문의 기본 방향 등 학문 전반을 보는 관점과 태도에 이르기까지 모두 담았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프랑스 역사학자들의 문집 <나는 왜 역사가가 되었나>(에코리브르, 2001)와 겹쳐 읽는 것도 흥미롭겠다.

 

 

 

 

'새로운 역사학' 혹은 '신역사학'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의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짐작으론 미시사, 지성사, 문화사, 탈신민주의 등을 트렌드로 하는 포스트모던 역사학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싶다. 이때 '포스트모던'의 상대가 되는 것은 E. H. 카로 대표되는 '모던' 역사학이다. 말하자면, '굿바이. E. H. 카'가 이들의 구호인 듯싶다. 그리고 그런 관점의 역사라면 국내에서도 적잖은 연구논저들이 출간돼 있다. <탐史>의 역자가 엮은 <미시사란 무엇인가>(푸른역사, 2000)를 필두로 하여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푸른역사, 2000), <포스트모더니즘과 역사학>(푸른역사, 2002),  <포스트모던 시대의 역사란 무엇인가>(휴머니스트, 2006) 등이 그 예들이다. <탐史>에서 다루어지는 역사학자들의 작업 역시 이러한 맥락 속에서 자리매김될 수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그럼, 그 9인의 역사학자들은 누구누구인가? 알라딘의 소개를 번역/소개된 책들과 함께 나열해본다.

1 잭 구디(Jack Goody): 전세계적으로 영향력있는 일류학자로, 영국 켐브리지대학교 세인트존스대학의 펠로이다. 저서로는 <아프리카의 기술 전통 및 국가>, <야성의 순치>,  <생산과 재생산>, <유럽의 가족과 결혼 발달> 등이 있으며 편저로 <정통사회의 교육>이 있다.

 

 

 

 

2 에이사 브릭스(Asa Briggs): 영국의 역사학자로 빅토리아 시대 전문가이다. 국내에는 아직 소개돼 있지 않다.

3 내털리 제이먼 데이비스(Natalie Zemon Davis): 1959년 미시건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6세기 프랑스사를 연구하는 역사가이며, 사회사, 문화사, 여성사 및 인류학적 역사학을 주도하여 널리 알려진 학자이다. 2004년 현재 프린스대학교 역사학 석좌교수(Henry Charles Lea Professor of History)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책으로 <마르탱 게르의 귀향>,<근대 초기 프랑스의 사회와 문화 (Society and Culture in Early Modern France)>, <변두리의 여성들, 17세기 세 명의 삶(Women On the Margins, Three Seventeenth Century Lives) 등이 있다. 


 

 

 

 

4 케이쓰 토머스(Keith Thomas): 역시나 국내에 소개돼 있지 않은 듯한 영국의 역사가. 대표작은 <종교와 마술의 몰락>(1970/1991)인 듯하다.  

5 다니엘 로슈(Daniel Roche): 프랑스의 역사가. 국내엔 <지방의 계몽주의>가 번역돼 있다.

 

 

 

 

6 피터 버크(Peter Burke): 1937년 런던 태생으로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했다. 2006년 현재 케임브리지대학 이매뉴얼 칼리지 교수(문화사)로 재직중이다. 주로 역사를 어떻게 이야기할지를 둘러싼 방법론적인 접근과, 르네상스에서 프랑스혁명에 이르는 근대 초기 지식인들의 문화적 동향을 면밀히 파악한 저작들을 집필해 왔다. 지은 책에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와 사회>, <역사학과 사회이론>등이 있다.


 

 

 

 

7 로버트 단턴(Robert Darnton): 1939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필립스 아카데미와 하버드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뉴욕 타임스' 기자를 역임한 뒤, 1965년부터 하버드 대학교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했다. 1968년부터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유럽사 교수로 재직 중이며 지은 책으로 <고양이 대학살>, <책과 혁명>, <앙시앵 레짐 시대의 문학적 지하세계>, <조지 워싱턴의 틀니> 등이 있다.


 

 

 

 

8 카를로 긴즈부르그(Carlo Ginzburg): 193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났다. 1961년 피사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70년부터 1976년까지 볼로냐 대학교 조교수를 했다. 1976년부터 1978년까지는 레체대학교에서, 1978년에서 1988년까지는 볼로냐 대학교에서 정교수로 근대사를 가르쳤다. 1988년부터 미국 UCLA에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연구의 프랭클린 D. 머피 석좌교수로 있다. 2002년부터는 UCLA에서 연구년을 받아 이탈리아 시에나 대학교와 3년 계약을 맺고 근대문화사를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치즈와 구더기>, <니코메디즘>, <신화.상징.실마리>, <밤의 이야기>, <재판관과 역사가>, <어떤 섬도 섬이 아니다> 등이 있다.


 

 

 

 

9 퀜틴 스키너(Quentin Skinner): 1940년 영국 랭가셔의 올덤에서 태어났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1965년부터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정치학과와 역사학과에 재직하고 있으며, 크리스티스 컬리지의 특별 연구원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는 울프슨 문예상을 수상한 <근대 정치 사상의 토대(The Foundations of Modern Political Thought)>, <의미와 컨텍스트>, <철학, 정치 그리고 사회> 등이 있다.

 

 

 

 

저명한 행동주의 심리학자 B. F. 스키너와 성이 같은 퀜틴(켄틴) 스키너는 국내에 <현대사상의 대이동: 거대이론에의 복귀>(강원대출판부, 1989)의 편자로 처음 소개됐다. 이후 강정인 교수 편역의 <마키아벨리>(문학과지성사, 1993)에서도 이 정치사상사학자의 이름을 볼 수 있었다. <마키아벨리>(시공사, 2001)는 그의 저작이며 주저인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1>(한길사, 2004)도 부분적으로 번역됐다. 논문 모음집인 <의미와 콘텍스트>(아르케, 1999)는 그의 정치철학과 정치사상 연구에 대한 평가와 쟁론을 담고 있다(*거기에 보태어 <퀜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주의>(푸른역사, 2007)이 새로 출간됐다).

07. 02. 01 -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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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2007-02-01 22:32   좋아요 0 | URL
오호호. 진행중이지만.. 저 두번째 칸 세 권 책 전부 있고, 읽었어요. 뿌듯뿌듯... ^^;(로쟈님 서재에서 이런 일 처음이라 자랑중.. ㅋㅋㅋ) 근데 역사학 관련 시간 소식도 늘 이 서재에서 들으니 좋기도 하고, 좀 거시기하기도 하고.. ^^ 첫번째 책도 관심이 가네요...

로쟈 2007-02-01 23:51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클리오님의 전공이 역사시군요.^^ 내용은 더 채워넣다가 날려버리는 바람에 좀 지지부진하고 있습니다. 새로 나온 책은 관심도서이지만 제목이 제 취향이 아닌데다가 분량이 좀 부폴려진 게 불만스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