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는 핑계로 지난주에 깜박 잊고 넘어간 게 있다. '작가와 문학 사이'를 옮겨오지 않은 것. 짐작대로 경향신문의 이 연재는 심진경, 신형철 두 평론가가 번갈아가며 연재하고 있다(시와 소설로 분담한 것인지?). 지난주에 다루어진 작가, 아니 시인은 재작년 한국시단의 '뉴히어로' 황병승 시인이다. '미래파' 논란의 중심에 있던 이 시인에 대해서 젊은 비평가가 차분하게 그 의의를 짚어주고 있다.

경향신문(07. 01. 27) [작가와 문학사이](4) 황병승-본능에 충실한 ‘언어 모험가’

역사적인 시집들이 있다. 한 시대의 기념비 같은 책들이다. 이를테면 이성복과 황지우의 첫 시집은 1980년대 초반 한국 사회의 양심이 쓴 혈서다. 철조망 같은 시집들이었다. 다가가 부딪치면 살갗을 뚫고 들어왔다. 독서가 곧 출혈이었다. 장정일과 기형도의 시집은 80년대 후반 한국 사회의 진단서다. 전자는 삐딱한 독학자의 눈으로 한국 사회의 ‘쓸쓸한 퇴폐’를 포착했고, 후자는 우울한 기자의 눈으로 ‘무서운 슬픔’을 보고했다. 90년대는? 풍요로웠지만 고요했다. 2000년대가 시작되고도 한동안은 그랬다.

그 무렵 황병승의 ‘여장남자 시코쿠’(2005)가 나왔다. 괴물 신인의 괴팍한 등장이었다. 불온한 붉은 빛깔의 시집은 단숨에 기념비가 되었다. 매력적인 정체불명의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들, 이해되기 이전에 먼저 빨아들이는 수사들, 비문(非文)의 근처에서 아슬아슬하게 씌어지는 문장들, 격렬한 분노와 황량한 슬픔이 뒤엉켜 있는 정서들이 시의 막장에서 쏟아져 나왔다. 몇몇 동료들이 그와 더불어 각개약진했다. ‘2000년대 시’ ‘미래파’ ‘뉴웨이브’ 등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기념비 주위에 화환들이 쌓여갔다.

1970년생이니까 문태준과 동갑이다. 공통점은 그것뿐이다. 문이 유토피아의 순간적 현현(顯現)을 도모하는 서정의 사도라면, 황은 언어의 모험과 정체성의 실험이 같은 것이라고 믿는 전위의 척탄병이다. 전자가 내실을 보살핀다면 후자는 외연을 넓힌다. 이것은 모든 시사(詩史)를 관류하는 두 개의 근원적 기질이다. ‘시’의 이름으로 ‘시 아닌 것’들을 솎아내는 야금술의 길이 있고, ‘시 아닌 것’들을 긁어모아 ‘시’가 될 때까지 밀고 나가는 연금술의 길이 있다. 문과 황은 당대 한국 시의 남북극에 있는 전진기지다. 둘 사이의 거리가 곧 최근 한국 시의 넓이다.

“메리제인./우리는 요코하마에 가본 적이 없지/누구보다 요코하마를 잘 알기 때문에//메리제인./가슴은 어딨니//우리는 뱃속에서부터 블루스를 배웠고/누구보다 빨리 블루스를 익혔지/요코하마의 거지들처럼.//(중략)//우리는 어느 해보다 자주 웃었고/누구보다 불행에 관한 한 열성적이었다고//메리제인. 말했지//빨고 만지고 핥아도/우리를 기억하는 건 우리겠니?//슬픔이 지나간 얼굴로/다른 사람들 다른 산책로//메리제인. 요코하마.” (‘메리제인 요코하마’)

인용한 시가 황병승의 본령은 아니지만 비교적 온건한 입구쯤은 된다. 태생적이라고 해야 할 비주류 의식을 여기서 본다. “뱃속에서부터” 블루스를 배웠다질 않는가. ‘그들 안의 블루’가 그것을 연주한다. 끼리끼리 모여 “빨고 만지고 핥아”가며 견딘다. “우리를 기억하는 건 우리”뿐이라서, 그들이 “다른 사람들” 즉 ‘타자’라서 그렇다. 그러니 그의 시에 출몰하는 이국의 인명과 지명은 모국어에 대한 불경이 아니다. 노동계급에 조국이 없듯, 그들에게는 국적이 없다. 내 나라의 ‘꼰대’들이 아니라 ‘요코하마의 거지들’이 그들의 동포다.

그런 이들이 세계 각지에서 모여들어 “슬픔이 지나간 얼굴로” 말문을 연다. “나의 또 다른 진짜는 항문이에요”라고 고백하는 게이가 있다. 입술을 뜯어버리고 얼굴을 갈아버릴 테니 제발 사랑해 달라고 그가 말할 때 우리는 어쩐지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시코쿠’라는 크로스드레서는 “그대여 나에게도 자궁이 있다 그게 잘못인가”라고 냉소하고, 어느 트랜스젠더는 “눈을 씻고 봐도 죄인이 없으니 나라도 표적이 될래요”라고 쓸쓸히 자조한다. 이들은 실로 한국 시가 처음 경험하는 주체들이다.

그는 마이너리티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마이너리티가 그의 시에서 말한다. 이것이 그의 괴력이다. 세 군데 이상의 학교를 다녔고 세 장르의 예술을 넘나들고 있는 이 시인은 시를 ‘혼자 할 수 있는 최고의 놀이’라고 정의한 적이 있다. 즐겁고 슬픈, 이상한 놀이다. 그의 시에서 ‘즐거운 놀이’만을 본다면 그것은 절반밖에 못 본 것이 아니라 전부를 못 본 것이다. 어서들 오시라, 이곳은 한국시의 신개지(新開地)다.(신형철|문학평론가)

07. 01. 30.

P.S. 해설만으로 감이 안 오시는 분들을 위해 두 편의 시를 옮겨놓는다. "그는 마이너리티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마이너리티가 그의 시에서 말한다."라는 평론가의 말을 비틀어서 말하자면, 그의 시들은 그가 쓰는 게 아니라 그의 '똑똑한 오리들'이 쓰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검은 바지의 밤 

호주머니를 잃어서 오늘밤은 모두 슬프다
광장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모두 서른 두 개
나는 나의 아름다운 두 귀를 어디에 두었나
유리병 속에 갇힌 말벌의 리듬으로 입맞추던 시간들을.
오른 손이 왼쪽 겨드랑이를 긁는다 애정도 없이
계단 속에 갇힌 시체는 모두 서른 두 구
나는 나의 뾰족한 두 눈을 어디에 두었나
호수를 들어올리던 뿔의 날들이여.
새엄마가 죽어서 오늘밤은 모두 슬프다
밤의 늙은 여왕은 부드러움을 잃고
호위하던 별들의 목이 떨어진다
검은 바지의 밤이다
폭언이 광장의 나무들을 흔들고
퉤퉤퉤 분수가 검붉은 피를 뱉어내는데
나는 나의 질긴 자궁을 어디에 두었나
광장의 시체들을 깨우며
새엄마를 낳던 시끄러운 밤이여.
꼭 맞는 호주머니를 잃어서
오늘밤은 모두 슬프다

주치의 h 

1
떠나기 전, 집 담장을 도끼로 두 번 찍었다
그건 좋은 뜻도 나쁜 뜻도 아니었다

h는 수첩 가득 나의 잘못들을 옮겨 적었고
내가 고통 속에 있을 때면 그는 수첩을 열어 천천히 음미하듯 읽어 주었다

나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커다란 입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깊이 더 깊이

아버지와 어머니 사랑하는 누이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며 더 크고 많은 입을 원하기라도 하듯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귀에 이마에 온통 입을 달고서
입이 하나 뿐인 나는 그만 부끄럽고 창피해서 차라리 입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2
입 밖으로 걸어나오면, 아버지는 입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로 조용한 사람이었고 어머니와 누이 역시 그러했지만,
나는 입의 나라에 한번씩 다녀올 때마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침묵의 식탁을 향해
‘제발 그 입 좀 닥쳐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집을 떠나기 전 담장을 도끼로 두 번 찍었지만
정말이지 그건 좋은 뜻도 나쁜 뜻도 아니었다

버려진 고무인형 같은 모습의 첫 번째 여자친구는 늘 내 주위를 맴돌았는데
그때도(도끼질 할 때도) 그 애는 멀찌감치 서서 버려진 고무인형의 입술로 내게 말했었다

“네가 기르는 오리들의 농담 수준이 겨우 이 정도였니?”

해가 녹아서 똑 똑 정수리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h는 그 애의 오물거리는 입술을 또박또박 수첩에 받아 적었고
첫 번째 여자친구는 떠났다 세수하고 새 옷 입고 아마도 똑똑한 오리들을 기르는 녀석과 함께였겠지

3
나는 집을 떠나 h와 단둘이 지내고 있다 그는 요즘도 나를 입의 나라로 안내한다
전보다 더 많은 입을 달고 웃고 먹고 소리치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랑하는 누이가 둘러앉은 식탁으로
어쩌면 나는 평생 그곳을 들락날락 감았다떴다, 해야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더는 담장을 도끼로 내려찍거나 하지 않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4
이제부터는 연애에 관한 이야기뿐이다
악수하고 돌아서고 악수하고 돌아서는,
슬프지도 즐겁지도 않은 밴조 연주 같은... 다른 이야기는 없다 스물 아홉,
이 시점에서부터는 말이다 부작용의 시간인 것이다

그러나 같이 늙어 가는 나의 의사선생님은 여전히 똑같은 질문으로 나를 맞아주신다
“이보게 황 형. 자네가 기르는 오리들 말인데, 물장구 치는 수준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낡고 더러운 수첩을 뒤적거리며 말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ommer 2007-01-31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는 '역할극'의 달인이 아닐까 생각이 들더군요. 난장이/시인을 초과하는/압도하는 기계/인형들의 반란같은...

로쟈 2007-02-01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uture님/ 라캉-지젝 말고 미래파도 읽으시는군요.^^

sommer 2007-02-01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장남자'라는 일종의 가면이 끌려서 읽은 거죠, 미래파는 나중에 따라 온 구실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