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의 '18.0'을 훑어보다가 주목하게 된 키워드는 '개중'과 '대중 지성'이다(이 두 단어가 한때 유행했던 '다중'을 밀어젖히는 것인가?). 각각 두 가지 기사에서 키워드로 쓰이고 있는데,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최근의 출판 트렌드를 읽기 위한 키워드로 '개중'을 들고 나오고, 고명섭 기자는 '수유=너머'의 '대중 지성 프로젝트'를 소개하면서 '엘리트 지성'의 상대어로 '대중지성'을 자리매김하고 있다. 과문한 탓인지 '개중'이란 말은 생경한데, 한기호 소장의 칼럼에서 처음 보았다(번역어인가?). 여하튼 어감상(아마 이 어감도 고려됐을 터인데) 약간 불편한 느낌을 주는 '개중'과 다른 한편으로 모순형용처럼 느껴지는 '대중지성'이 최근의 출판계와 인문학 동네를 특징지어줄 수 있는 키워드들이라는 건, 키워드들일 수 있다는 건 알아볼 수 있겠다. 관련기사들을 옮겨놓는다.  

한겨레(07. 01. 26) [한기호의출판전망대] 실리 추구 나서는 ‘개중’들

지난해 3월 나는 이 칼럼에서 문화시장의 변화로 ‘87’이 지고 ‘97’이 뜬다고 한 적이 있다. 87은 민주화의 원초적 체험인 6월 항쟁을 말하고 97은 세계화의 원초적 체험인 외환 위기를 말한다. 그렇다면 올해 2007년 출판시장은 우리에게 어떤 체험을 안겨다줄까? 나는 감히 ‘개중화’의 원초적 체험이라고 말하고 싶다.

‘개중’이란 개인과 대중을 합한 말이다. 대중은 세중(細衆)의 단계를 거쳐 이제 개중이 되었다. 작년에 <타임>에서 ‘개중’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을 정도다. 개중, 그들은 혼자이고 원룸에 살면서 휴대전화나 메신저로 타인과 대화를 나누며 블로그를 통해 자신을 발신하는 등 철저하게 ‘1인용’으로 생활하지만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지혜가 필요할 때는 대중에게 손을 내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군중(crowd)과 아웃소싱을 합한 ‘크라우드소싱’이라는 신조어는 그래서 등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미 기업이나 개인이 어려운 과제에 직면할 경우 그 해답을 인터넷을 통해 대중에게 묻는 일이 잦다. 물론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디지털 기술과 웹 2.0이라는 기구이다. 출판에서의 시민저널리즘은 크라우드소싱의 개념을 바탕으로 등장한 것이다.

지난해에 ‘나만의 행복’을 갈구했던 개중은 올해 ‘현명한 삶’을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현명이란 철학자들이 갖는 지혜를 뜻하는 게 아니다. 영악스럽다고 할 정도로 일과 개인생활에서 실리를 추구하는 삶을 말한다. 2006년, 한때 책과 ‘거리’를 두던 20대 여성이 책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들의 손에 쥐어진 책은 문학작품이나 인문사회과학서적이 아니라 자기계발서였다. 이 분야에서 가장 많이 팔린 <마시멜로 이야기>나 <배려> 같은 책은 어린이용으로도 따로 출간되고 있으니, 20대가 대학의 교문을 나서기도 전에 ‘처세’의 기술부터 배우는 것을 탓할 수도 없다.

그들은 올해 나만의 ‘스타일’에서 한 단계 진전한 ‘뷰티블 에이징’(beautiful aging)을 더욱 열렬하게 추구할 것으로 예상되며, 실행의 방향을 세밀하게 제시하는 미용, 패션, 여행, 건강, 문화 등의 책을 많이 찾을 것으로 보인다. 젊은 여성들이 즐겨 읽는 문학을 우리는 ‘칙릿’이라 부른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헬렌 필딩 지음, 문학사상사 펴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렌 와이스버거 지음, 문학동네 펴냄), <달콤한 나의 도시>(정이현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등은 이 땅에서도 통한 대표적인 칙릿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편집자다. 특히 <악마를 프라다를 입는다>에 등장하는 패션지의 편집장은 자본주의의 신기루로 묘사되기도 한다. 하긴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잘 나가는’ 편집자가 등장하는 예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우연일까? 결코 아닐 것이다. 이야기의 중심에 서는 인물이 ‘잘 나가는’ 학자나 저널리스트에서 편집자로 바뀌는 이유는 분명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이유를 인간이 지녀야 할 최고의 미덕으로 편집자적 안목을 꼽기 시작했다는 것에서 찾고 싶다. 과거에는 정보의 원천 생산자나 전달자가 세상을 주도했지만 정보의 소유권마저 개중에게 넘어간 지금은 그 위력이 크게 떨어졌다. 편집자는, 거미집처럼 얽혀있으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정보를 자기만의 이야기로 꿰어서 다시 대중용으로 포장해내는 기술에서만큼은 거의 최고의 수준이다. 그래서 편집 능력을 갖춘 자여야만 새로운 시대를 주도할 수 있게 됐다. 그 능력이 바로 개중의 속성이라는 것도 여러분은 이미 눈치 챘을 것이다.(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한겨레(07. 01. 26) 죽은 지식인의 사회 ‘대중 지성’ 깨어나다

“요즘 아카데미에서는 엉뚱한 열정이 불타오르고 있다. 앎에 대한 의지 속에서 삶의 형태가 바뀌는 게 아니라 돈에 대한 의지 속에서 앎의 형태가 바뀌고 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대표 고병권)의 공부 모임 ‘2007 대중지성 프로젝트’는 이런 선언으로 시작하고 있다. 열정의 불길에 휩싸인 대학은 이들의 선언을 빌리면, 지식의 죽음, 지식인의 죽음을 재촉하고 있다(*사실 지식/지식인의 종언은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의 한 지류이기도 하다. 새삼 문제되는 건 아니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악극 <신들의 황혼>에서 주인공 지크프리트가 화염에 휩싸여 세계와 함께 무너지듯이, 돈에 대한 열정의 불길 속에서 지식인은 대학과 함께 소멸하고 있다는 것이다. 계몽의 주체, 진보의 전위였던 지식인이 붕괴한 자리는 그러나, 단순한 폐허가 아니다. 그 황량한 땅에서 새로운 주체, 새로운 지성이 태어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믿음이다. 다름 아닌 ‘대중 지성’이다.

대중 지성이란 지식을 독점하던 특권적인 소수의 지성에 대한 대항 개념이다. 선생이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주입하는 전통적 아카데미즘 바깥에서 대중이 스스로 지식을 생산하고 유통하고 공유하는 것을 가리킨다. 대중이 지식인화하고 지식인이 대중으로서 나서는 것, 그리하여 대중의 집합적 지혜 속에서 창조적 지성이 솟구치는 것, 대중 지성은 그 새로운 현상을 지시하는 말이다.

대중 지성이 가장 날렵하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곳은 인터넷 공간이다. 인터넷은 익명의 개인들이 특정한 주제 아래 모여 지식을 만들어내고 퍼뜨리고 재생산하는 대중 지성의 현장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사태를 보자. 자유무역협정을 기획하고 추진하고 협상하는 주체인 정부 관료들은 지난 몇 년 동안 협상의 주요 내용 공개를 거부했다. 기밀이 알려지면 국익이 침해당한다는 것이 이들이 내세운 방어 논리였다. 한 나라의 명운이 걸린 중대한 국가적 의제가 소수 관료들의 밀실에 맡겨진 채,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국외자로 밀려난 꼴이었다.

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 인터넷이었다. 서로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카페’를 만들고 문제를 제기했다. 협상의 진행 상황을 알려주는 정보를 찾아내고 그것을 분석하고 거기에 새로운 전문 지식이 더해져 믿을 만한 자료가 탄생했다. 그리고 그 자료들이 팸플릿으로, 자료집으로, 선언문으로 가공돼 시민들에게 전달됐다. 비밀에 싸여 있던 자유무역협상이 서서히 실체를 드러냈다. 이제 정부 관료들은 미국과 협상하기 전에 시민과 협상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고병권 대표는 “이런 사태 전개야말로 대중 지성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대중 지성은 대중의 집합적 지성이지만 지식인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지성보다 더 전문적이고 더 풍부하며 더 심층적인 지식을 산출한다”고 그는 말한다.

대중 지성은 분명히 새로운 현상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아무런 지적 계보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말은 아니다. 대중 지성의 연원은 카를 마르크스에게로까지 올라간다.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대공장의 기계화 현상을 ‘일반 지성’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기계가 발전할수록 생산은 점점 더 사회적 협업 형식이 되고, 점점 더 생산자의 집합적 지성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 마르크스가 일반 지성이라는 말로 이야기하려는 것의 요지였다. 1970년대 말 이탈리아의 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는 마르크스의 일반 지성에서 힌트를 얻어 ‘대중 지성’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네그리는 그의 지적 협업자인 마이클 하트와 2004년에 함께 쓴 <다중>이라는 저서에서 이 대중 지성을 ‘스웜 인텔리전스(swarm intelligence)라는 말로 더욱 구체화했다. 메뚜기떼나 개미떼에게서 볼 수 있듯이 개별적으로는 무력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들이 무리를 지어 활동하면 무시무시한 힘을 드러내듯이, 인간도 정보혁명이라는 새로운 국면에서 집합적 지혜를 통해 놀라운 창조성을 보여준다고 진단한 것이다. 대중 지성이란 이렇게, 흩어져서는 특별한 지적 성과를 낼 수 없지만 모이면 거대한 창조적 활력을 일으켜 세우는 현상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다만 이때의 ‘모임’은 한 공간에 꽉 들어찬 집회의 형식이라기보다는 개별적 존재들이 거미줄처럼 연결된 네트워크 형태라고 보아야 한다. 인간의 지성 자체가 두뇌 속 수많은 신경들의 연결(링크)을 통해 작동한다. 신경 하나하나는 아무런 지성도 없지만 그것이 일시에 연결될 때 지성의 공간이 형성되는 것이다. 두뇌야말로 집합적 지성 혹은 대중 지성의 표본이다.

조정환 갈무리 출판사 주간은 네트워크로 작동하는 대중 지성의 한 모습으로 ‘플래시 몹’을 거론한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인터넷상에서 의기투합해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에 모여 반전·평화 구호를 외치며 퍼포먼스를 벌이는 것, 이것이 대중 지성의 발현이다. 인터넷에 기반한 운동의 대부분은 이 대중 지성의 작품이다.” 특정한 지도부가 없다는 것, 다시 말해 운동의 꼭대기, 전위를 따로 두지 않는다는 것도 대중 지성의 한 양상인데, 플래시 몹에서 그런 지성의 작동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대중 지성 프로젝트’는 대중 지성의 가능성을 의식적으로 실험하고 실천하는 공부 모임이다. 1년을 4학기로 나눠 44주 동안 계속되는 이 프로젝트는 현재 30명 정도가 공부에 참여하고 있다. 철학, 동양고전강독, 문화·예술 세 강좌로 이루어진 이 커리큘럼은 이름만 보면 여는 대학 강의와 달라 보이지 않지만, 참여하는 사람이나 공부하는 방식에서 기존의 대학 강의와 뚜렷이 구분된다. 여기서는 공부에 뜻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대학생도 있고 회사원도 있고 제대병도 있다. 강의의 방식도 대학 아카데미즘과 차이가 있다. 선생에게서 학생에게로 지식이 일방통행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과 학생이 같이 공부하고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동양고전 강의에서는 <논어> 암송을 하고 있는데, 암송이라는 옛 방식을 따온 것도 이유가 있다. “지식이라는 게 단순이 머리로 들어가기만 해서는 안 되고 그것을 외움으로써 신체에 각인하고 삶에 녹아들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지식이 생체의 리듬을 타는 것 생체가 지식의 리듬을 타는 것이 진정한 지식 습득이라는 생각이다. 공부에 참가한 사람들은 매달 마지막 주에 한달 동안 공부한 것을 글로 쓴다. “글로 표현하지 않은 지식은 지식이 아니며,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아는 것이 아니다. 표현과 내용이 하나로 합쳐질 때 비로소 지식이 된다.”

이런 독특한 방식의 공부를 통해 이들이 실현하고 실천하려는 것이 말하자면 대중 지성이다. 신체에 녹아들고 글로든 말로든 표현되고 그리고 그것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돼 집합적 지성으로 힘을 발휘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인 셈이다. ‘대중 위에 군림하는 엘리트’라는 전통적 지식인의 정체성 대신에 ‘대중인 채로 지식인이고 지식인인 채로 대중인’ 새로운 대중 지식인의 정체성을 이들은 모색하고 있다. 대중 지성은 지식의 새로운 존재 형식이자 지식인의 새로운 삶의 양식이다.(고명섭 기자)

07. 01. 26.

 

P.S. 네그리의 비유를 빌면, 메뚜기떼 혹은 개미떼의 '지성'이 대중지성이겠다. 나의 관심은 대중이 지성을 체득할 때 그는 무엇으로 여전히 대중인가, 이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고전적인 정의에 따르면, "대중은 개념상 사회를 통치할 수 없음은 물론 자신의 실존도 조율할 수 없고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대중의 반역>). 물론 '고전적인' 정의에 따를 때 그렇다는 얘기이다(고로, 우리에겐 '대중'에 대한 다른 정의가 필요하다). 개인이면서 대중인 개중처럼 '양서류'로 우리는 점점 진화해가고 있는 것인지. 한편, 출판에서도 이 '양서류'적 양태는 이미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블룩'을 다루고 있는 지난 가을의 한 기사를 옮겨놓는다.

동아일보(06. 09. 27) 'Blook’ 블로그를 뛰쳐나와 세상의 책이 된다

회사원 박성빈(27) 씨는 지난해 10월부터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블로그를 만든 뒤 취미로 배운 사진을 틈틈이 올리기 시작했다. 실연의 아픔을 달래려 떠났던 2001년 유럽여행 등을 기록한 그의 사진은 로맨틱한 분위기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고, 포털사이트 초기화면에 6번이나 올랐다. 방문자가 하루 수천 명 단위로 늘어난 그의 블로그의 내용은 이번 주 ‘그리우면 떠나라'란 책으로 나왔다. 박 씨의 책을 펴낸 랜덤하우스코리아 도정원 씨는 “프로 작가 못지않은 콘텐츠를 생산해 내는 ‘천연 블로거'가 요즘 떠오르는 새로운 작가군”이라며 “주제가 뚜렷한 ‘천연 블로거'를 찾다가 박 씨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1인 매체인 블로그(blog)를 책(book)으로 만든 ‘블룩(Blook)'이 쏟아지고 있다. 블룩은 거의 매주 1권 이상 서점에 나오고 실용서 시장의 베스트셀러 상위 순위에서도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특히 요리책 분야는 블룩이 휩쓰는 추세다. 현재 요리책 분야 부동의 베스트셀러 1위인 ‘2000원으로 밥상 차리기'를 비롯해 ‘베비로즈의 요리 비책' ‘꼬마마녀의 별난 빵집' ‘야옹 양의 두근두근 연애요리' 등은 모두 블룩형 요리책. 블룩의 원조 격인 ‘2000원으로 밥상차리기'는 ‘독신남이 직접 해 본 쉬운 요리'를 표방하고 2003년 출간돼 지금까지 56만 부가량 팔렸다.

그간 블룩은 요리책, 인테리어 등 매뉴얼형 실용서가 대세였지만 최근엔 미술 경제 에세이 영어교육 쪽으로도 외연이 확대되고 있다.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으로 유명한 박경철 씨의 경제에세이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 미술 에세이인 ‘그림 읽어주는 손가락' ‘꿈을 꾸다가 베아트리체를 만나다', 장사 체험담을 간추린 ‘머리핀 장사에 돈 있다', 괴담집 ‘잠들 수 없는 밤의 기묘한 이야기', 20대 여성의 고단한 삶을 기록한 ‘라오넬라 새벽 두시에 중독되다' 등이 그런 책들이다. 산여고 영어교사 하명옥 씨의 홈페이지를 토대로 태어난 책 ‘영어일기 표현사전'과 ‘영어일기 영작패턴'처럼 양질의 콘텐츠는 블룩 시리즈로 선보이고 있다.

블룩은 개인이 매체이자 브랜드가 되는 1인 전문가 시대의 한 상징이다. ‘일하면서 책쓰기'의 저자이자 자기계발 전문가인 전미옥 CMI연구소 대표는 “책의 생산과 소비도 블로그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시대가 왔다”며 “직장인에게도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공격적 글쓰기로서 블로그와 이를 통한 책쓰기를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고 프로를 능가하는 아마추어들이 활동하는 곳이 인터넷 공간이다. 따라서 블로그 글쓰기의 장점은 진입 장벽이 없다는 것이 꼽힌다. 또 출판사에는 독자의 반응이 확인된 콘텐츠를 확보하고 참신한 저자를 ‘싼값'에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블룩이 뜨자 미국에서는 한 출판사가 픽션, 논픽션, 코믹 분야에서 우수 블룩을 시상하는 ‘루루블루커 상'을 만들기도 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일본 출판계에서도 인터넷 콘텐츠를 책으로 만든 ‘넷셀러'란 말이 쓰인다”면서 “블룩은 대중적이지만 유동성 정보라는 한계 때문에 일관된 세계관과 깊이를 바탕으로 한 교양서를 배출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김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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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mer 2007-01-26 17:51   좋아요 0 | URL
네그리의 '귀환'에서처럼, 대중을 괴물로 볼 수 있다면, 그것의 실체는 오락 프로그램에서 티비의 하단에 시청자의 감정을 대변하듯 '순간 나타났다 사라지는 글귀'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개중과 대중지성에 실제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보다도 '누군가' 대신 그러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겠지요. 개중에는, 걔중에는, 말이야...누군가...

로쟈 2007-01-26 17:55   좋아요 0 | URL
suture님도 한 유머 하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