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정신문화의 중심지로 일컬어지는 바이마르가 어제의 방문지였다. 과거형으로 썼지만 이 글을 적고 있는 곳이 아직 바이마르의 호텔이다. 튀링엔 주(주도는 에어푸르트)의 중심도시 바이마르는 여느 독일 도시들처럼 규모가 크지 않다. 인구가 6만 8천 가량으로 7만이 되지 않으며 그제 방문한 베츨라보다 조금 큰 정도다(헤세의 고향 칼브의 세 배 정도군).

어제 아침 프랑크푸르트를 출발하여 바이마르에 도착한 때는 점심 무렵. 버스에서 하차하여 도심 쪽으로 걸어들어가 헤르더 광장의 한 식당에서 역시 맥주와 함께 점심을 먹고(현지식으로 식사를 할 때는 매 끼니 맥주를 곁들이고 있다. 독일이니까) 목적지로 향했다. 바이마르의 핵심 방문지는 국립극장에 세워져 있는 유명한 동상의 두 주인공 괴테와 실러의 집을 각각 방문하는 것이다.

바이마르 고전주의 시대를 만든 두 거장의 우정과 협력은 1794년에서 1805년까지 10여 년에 걸친다. <빌헬름 텔>(1804)의 완성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실러가 이듬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괴테는 크게 슬퍼하며 자신의 반쪽을 잃었다고 적었다. 그만큼 실러가 괴테에게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다. 미완성 상태에 있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와 <파우스트> 등의 작품을 완성하도록 독려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은 친구이자 조력자가 바로 실러였다. 물론 일찌감치 실러의 재능과 역량을 인정하여 바이마르로 초대한 사람이 괴테이고.

1775년 바이마르로 이주하여 1832년 생을 마치므로 괴테는 프랑크푸르트 사람으로 태어나서 바이마르 사람으로 죽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바이마르의 괴테하우스는 괴테가 1782년에 얻은 집으로 궁전은 물론 아니지만 비교적 큰 저택이다. 괴테가 사용한 물건과 수집한 예술품, 광물 등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고 괴테가 가꾼 정원의 모습도 가늠해볼 수 있다. 오디오 해설을 이용할 수 있어서인지 따로 안내문들이 붙어 있지는 않았다. 다행히 기념품숍에서 영어판 안내서를 구할 수가 있었는데 나중에 다시 올 기회가 생긴다면 찬찬히 읽어볼 참이다.

비르템베르크 주 출신의 실러는 <도적떼>(1781)의 공연 성공 이후 극작가의 길을 걷고자 했지만 영주 카를 오이겐의 반대에 부딛치자 슈투트가르트를 떠나 도피 생활을 하게 된다. 1789년에 예나대학의 비정규 교수가 되지만 수강생이 적어 강의가 폐강되고는 해서 어려운 시절을 보낸다. 그럼에도 1799년 이후 <발렌슈타인> 3부작을 필두로 하여 <마리아 스튜아르트>(<메리 스튜어트>)<오를레앙의 처녀><메시나의 신부> 등 일련의 대표작을 써내며 이 여정의 대미가 <빌헬름 텔>이다. 바이마르의 실러하우스는 그가 1802년에 예나에 이주하여 생을 마친 곳이다.

괴테하우스와는 달리 실러하우스는 리모델링된 외관을 갖고 있었고 내부도 전시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실러의 생애와 대표작을 차례대로 따라가보게끔 구성돼 있었고 임종한 실러의 모습을 담은 스케치가 마지막 방에 걸려 있었다. 실러하우스에서의 짧은 강의는 주로 괴테와 실러의 협업이 갖는 문학사적 의의와 <빌헬름 텔>의 주제 등에 할애했다. 실러하우스를 나오면서는 방문기념으로 로로로시리즈의 문고본 전기 <실러>를 구입했다(괴테하우스에서는 <괴테>를 구입했으니 공평하게).

괴테하우스와 실러하우스를 차례로 방문한 일행은 바이마르극장 앞 광장에 세워진 괴테와 실러의 동상을 찾아 단체사진을 찍고 잠시 자유시간을 가졌다. 그러고는바이마르의 마지막 일정으로 괴테가 관장으로도 일했던 도서관으로 향했다. 유서 깊은 이 도서관의 정식이름은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이다. 바이마르의 군주 카를 아우구스트의 기미상이 서 있는 민주광장 왼편 건물이었는데 입장 시간이 지나서 도서관 내부를 둘러보지는 못했다(안내 책자만 구입했다). 안나 아말리아와 아우구스트는 모자지간이다. 바이마르 공국을 독일 문화의 중심지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는 모자다.

도서관에서 호텔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다가 막간에 푸슈킨의 흉상을 우연히 발견하고 놀랐다. 러시아 국민문학의 아버지 동상이 왜 바이마르에 있는지는 검색해봐야 알겠지만 짐작에는 독일과 러시아가 동상을 서로 교환한 게 아닌가 싶다. 괴테의 동상이 러시아 어딘가에 세워지는 조건으로 말이다(괴테는 생년이 푸슈킨보다 정확히 50년 앞선다). 이런저런 서프라이즈도 여행의 즐거움이라고 해야겠다...

PS. 찾아보니 바이마르의 푸슈킨 동상은 1949년 푸슈킨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졌다. 흉상의 외모는 실제와 좀 다른데 ‘독일화된 푸슈킨‘을 보여준다는 평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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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10-22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하나의 서프라이즈~
푸슈킨은 서울에도 있고 독일에도 있고
열일중.ㅎ

로쟈 2018-10-26 23:37   좋아요 0 | URL
네, 서프라이즈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