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와 함께 요즘 강의에서 다루는 작가는 미국 작가 이디스 워튼(1862-1937)이다. <순수의 시대>(1920)로 여성작가로는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또 국내에서는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순수의 시대>(1993)로 새삼 이름이 알려진 작가이기도 하다.
다작의 작가이지만 워튼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건 <기쁨의 집>(1905)과 <그 지방의 관습>(1913), <순수의 시대> 등의 장편과 <이선 프롬>(1911) 같은 중편이다. 강의에서는 <그 지방의 관습>만 다루지 못했는데, 학술명저번역으로 출간돼 책값이 너무 비싼 것이 이유다(그런 이유에서 강의에서 읽지 못하는 작품이 여럿 된다. 디킨스의 <작은 도릿>이 대표적이다. 번역본으로는 네 권짜리에 책값이 6만원에 이르니 ‘디킨스의 이 한권‘이라면 모를까 <전쟁과 평화>만큼 중요한 작품인지 물을 수밖에 없다).
워튼을 읽는 맥락은 여러 가지인데, 나는 강의에서 1)100년전 작가로 여성의 결혼 문제를 주로 다룬 제인 오스틴과 워튼, 2)뉴욕 상류사회 출신으로 20년이 넘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친분이 깊었던 작가 헨리 제임스와 워튼, 3)동시대 작가로 미국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그렇지만 발자크의 영향도 두드러진다) 시어도어 드라이저와 워튼, 4)그리고 탁월한 심리묘사의 선구적 작가 스탕달과 워튼 등을 주요한 맥락으로 다룬다. ‘사교계 소설‘이라는 면에서는 톨스토이의 작품들과도 비교할 수 있는데, 쓰인 시기에는 차이가 있지만 <안나 카레니나>나 <순수의 시대> 모두 187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순수의 시대>는 좀더 긴 시간대를 배경으로 갖지만).
대단히 자세한 세부묘사와 섬세한 심리묘사가 강점이라고 생각되는 워튼은 작품 말고도 생애 자체가 전범으로서 의미가 있다. 여성작가로서만이 아니라 여성으로서 주체적인 삶이 어떻게 가능한지 전력으로 모색한 대표적인 사례여서다. 작품뿐 아니라(주요작은 번역돼 있다) 자서전과 평전이 번역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영어로는 몇권의 평전이 나와있고(일부는 절판되었다) 나는 버지니아 울프 평전을 쓰기도 한 허마니오니 리의 평전을 주문해놓은 상태다. 그녀의 자서전은 진작 구입했었는데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