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에 부산 인디고유스북페어에서 '문학은 자유다'를 주제로 강연을 가졌는데, 그 강연과 질의응답이 정리돼 '인디고잉' 가을호에 실렸다. 일부 내용을 옮겨놓는다(약간 수정했다). 인디고잉은 부산의 인디고서원에서 발행하는 계간지로 청소년들이 직접 만드는 인문교양지이다.  



인디고잉(18년 가을호) 세계와 문학과 나


(...)

세계문학을 통해 문학의 책임과 관련해서 조금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세계문학'이라는 말에는 저작권자가 있습니다. 이 말을 처음 한 사람은 1827년의 괴테입니다. 통상 세계문학이라고 하면 세계 각국 문학의 총합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의 세계문학은 괴테 이전에도 있었어요. 괴테가 이야기한 세계문학은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개념적으로 달라요. 괴테가 󰡒세계문학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라는 말을 씁니다. , 존재하던 문학이 아닙니다. 이건 앞으로 도래할 문학이고 요청된 문학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는 괴테가 자세하게, 충분하게 얘기하진 않았어요. 이건 이제 화두로 던져진 거고 그다음에 거기에 대해서 살을 붙이고 하는 일은 후대 몫으로 남겼습니다.

괴테가 말한 세계문학이란 말의 의미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세계문학이 세계 각지의 문학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고 한다면 다시 정의되어야 하는데, 가장 먼저 '세계'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논리론적으로 나 그다음에 우리 가족, 그다음에 지역, 국가 이런 식으로 확장되어 갑니다우리가 알고 있는 게 그런 차원으로 가닿은 개별 국민문학입니다한국문학미국문. 일본문학, 프랑스문학 등이죠. 세계문학은 여기 없어요. 국가는 있지만 세계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은, 아직 우리의 관심이나 시야가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경험하고 있지만 기후변화 때문에 전 세계가 폭염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그런 문제는 개별적인 국민 국가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황사, 미세먼지 같은 것도 다 마찬가지죠. 전 지구적 문제입니다. 전 지구적 차원에 있는 세계적 문제들이 있어요. 그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우리의 시야가 확장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필요한데, 이게 세계인이 되어야 해요. 한국인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있고 세계인, 혹은 세계시민으로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국민문학과 세계문학

국민문학을 가지고 세계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가에 대해서, 저는 좀 회의적입니다. 그걸 다루려면 다른 문학이 있어야 해요. 중간 단계에 있는 것도 있습니다. 국제문학(International Literature)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많이 쓰이는 개념은 아닌데 저는 많이 안 쓰이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국민문학(National Literature)이라는 말은 많이 쓰는 데 그것보다 시야를 더 확장해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문제들이 글로벌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준해서 인문학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문학이라는 것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같은 대작을 대표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나폴레옹이 이끄는 연합군인 프랑스 군대 대략 육십만 정도가 러시아에 쳐들어왔었고 거기에 러시아인들이 맞서 싸우는 그런 내용입니다. 톨스토이는 그 전쟁을 상당히 자세하게 묘사하였습니다. 작품 속에서 러시아인들이 프랑스와는 다른, 독자적인 정체성을 깨닫고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작품을 국민문학이라고 부릅니다. 러시아국민문학입니다. 그런 작품을 읽음으로써 자신이 러시아인이라는 걸 확인하게 됩니다. 한국국민문학은 춘향전같은 작품이 있겠지요.

이 작품들이 그 자체로 세계문학이 될 수 있는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국민문학이 올바른 세계문학이라 공표하기는 어렵습니다. 조금 다른 층위이고, 뭔가 다른 요건이 더 충족되어. 근데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수준이 다릅니다. 전작인 톰 소여의 모험에서 어떤 도약이 있어요. 톰 소여의 모험에서는 두 소년의 우정을 다루고 있어요. 그런데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는 두 사람의 인류애를 그리죠. 주인공인 헉핀은 모험을 하던 중 흑인 노예인 ''을 만나 친구가 됩니다. 그런데 나이로 보면 부자(父子)관계에요. 만약 짐이란 흑인이 백인이었다고 한다면 부자관계 비슷하게 됐을 거예요. 그런데 흑인이었기 때문에 그런 격 없이, 동등한 관계로서 동료가 됩니다. 우정이 쌓이게 되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짐이 도망간 노예였다는 겁니다. 소설의 배경 당시는 노예 해방 이전입니다. 도망 노예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소유물이에요. 헉핀은 그 주인에게 짐의 행방을 알려줘야 해요. 알려주지 않으면 범죄행위고 헉핀이 양심의 가책을 느껴요. 짐의 주인인 백인 아줌마를 잘 알기 때문에, 심지어 그 아줌마가 자기한테 잘해줬기 때문에 짐의 소재를 알려주지 않는 것은 죄를 짓는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헉핀이 굉장한 고민에 빠집니다. 짐과의 우정을 지킬 것인가 법을 따를 것인가 굉장히 고심하다가 마지막에 결단을 내리게 돼요. "그래 좋다, 지옥에 가겠다." 

지옥에 가겠다는 건 뭔가요, 짐을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적인 신앙에 의하면 짐의 편에 선다는 것은 남의 물건을 훔친 것이고 속인 것이니, 지옥에 가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 공동체에서 완전히 배제되고 매장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지옥에 떨어지는, 큰 죄를 짓는 것이지요. 그런데 지옥에 가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대목 때문에 이 작품이 세계문학이 됩니다. 짐과 헉핀의 뗏목은 세계의 축소판입니다. 세계라 하는 것은 나와 타자가 있어야 합니다. ''가 확장되는 게 아닙니다. 나의 확장으로서 가족, 우리로서 국가라는 공식처럼 항상 거기에는 반대편에 대립이 있어야 해요. 그런 외부가 없는 게 세계입니다. 허클베리 핀과 짐이 만났는데 인종적인 타자예요. 신분상의 차이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정을 통해서 하나가 돼요. 그럼 세계가 만들어집니다. 

세계문학은 그런 세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그리고 그런 세계관이 우리에게 부족하죠이게 더 많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문화가 아직 부족하다는 것, 그게 문학의 과제입니다. 문학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해왔지만 그걸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제가 거는 기대는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만일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면 없어져도 됩니다근대문학이 한때 대단한 역할을 했지만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하는 '근대문학의 종언'이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문학에 대해서 더 기대하는 게 없다고 그 종말론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어요하지만 그렇게 끝낼 것이 아니라근대문학이 자기의 한계를 극복해야 합니다세계문학으로 이동하는 것은 그다음입니다세계문학의 징후들은 있어요몇 가지 표본들이 있고 또 시범들도 있습니다다만 그게 더 많아져야 되겠죠그것이 문학의 과제입니다. 

세계시대를 위한 문학

두 가지의 감각이 다 있어야 합니다. 한국인이라는 것, 그리고 한국인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하는 것. 한국인인 것만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국제적인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트럼프처럼 되는 겁니다. 인간의 지적능력은 너무나 많이 발전했습니다. 얼마 전에 태양탐사선도 보낼 만큼이죠. 그런데 인간의 도덕적 능력, 양심이라든가 이런 것들은 지적능력에 걸맞을 정도로 성장해왔는가, 진화해왔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회의적입니다. 세계가 점점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제 초연결 시대라 그러죠, 점점 좁아지고 있어요. 점점 밀착되어있고 그래서 서로 가까워지다 보니까 서로 이제 영향을 너무 많이 주고받아요. 정치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습니다. 심지어는 이제 기후문제까지도 주고받습니다. 근데 그런 현실에 다룰 수 있는 우리의 능력, 혹은 책임감은 그에 상응하지 못합니다.

무엇을 통해서 그 능력을 향상할 수 있을까요? 책이나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인간이란 문화적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생물학적 몸이 진화하는 걸 기다리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신체가 지금 여기까지 오는 데 20만 년 정도 걸렸습니다. 과거의 호모 사피엔스가 지금 우리와 다른 것은 조금 못생겼다는 것 정도입니다. 큰 차이는 없어요. 그러니까 몸의 진화를 통해서 무엇바뀌어야 해요. 책을 통해서, 교육을 통해서 의식을 바꾸는 것. 그게 유일한 선택지가 아닌가, 그런 인가 바뀌기를 기대하기엔 시간이 부족해요. 우리의 의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의 문화가 좀 생각이 듭니다.

우리 시대가 직면한 문제들은 사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이상할 만큼 굉장히 심각합니다. 우리에게 많은 시간이 남아있는가에 대해서 회의적이기도 합니다. 철학자들은 종말의 시대라고 이야기해요. 지구가 이미 끝난 것 아닌가,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설사 그런 비관론이 있다고 한들 여러분에게 권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책임의식,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고민이 바로 세계문학의 도래와 연결이 될 것입니다.

18. 09. 25.

P.S. 이어지는 질의응답은 분량이 길어서 따로 자리를 마련하도록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