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만에 나온 김중식의 두번째 시집 <울지도 못했다>를 5분만에 읽었다(그렇게 읽다가 걸리는 시를 꼼꼼히 읽는다). 그러고는 떠올린 게 ‘웃지도 못했다‘란 제목. 첫 시집 <황금빛 모서리>에서 분명 맘에 들어한 시들이 몇편 있었는데 그 ‘김중식‘을 알아보지 못하겠다. 내가 잘못 봤던 것인지. 차라리 처음 기억만을 남겨두는 게 나았을지도.

먼 곳에도 다른 세상 없는데
새 대가리 일념으로 태평양을 종단하는 도요새
산다는 건 마지막이므로
살자,
살아보자,
다시 태어나지 않으리니.
-‘도요새에 관한 명상‘에서

내가 아는 건
가을 숲 불꽃놀이가 끝나더라도
우리가 할 일은 봄에 꽃을 피우는 것
가장 깊은 상처의 도약
가장 뜨거웠던 입의 밎춤
할례당한 사막 고원에 핀 양귀비처럼

언제 파도가 왔다 갔는지
사막에서 바다냄새가 난다
이루지 못할 약속을 할 때
우리는 다가가면서 멀어질지라도
봄에 할 일은
꽃을 피우는 것
-‘물결무늬 사막‘에서

기억의 착오가 아니라면 김중식은 이런 류보다 더 매력적인 시를, 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젊은 시인이었다. 이제는 젊지 않은 나이에 두번째 시집을 들고서 나타났지만 아쉽게도 내가 기대한 모습은 아니다. 시인의 말로는 ˝첫 시집이 고난받는 삶의 형식이있다면, 이번 시집은 인간의 위엄을 기록하는 영혼의 형식이다.˝ 그의 언어는 위엄보다 고난을 기록할 때 더 빛나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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