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거리, 가로등, 약국
그렇게 시작하는 러시아시가 있어
시는 그렇게 쓰는 건가 싶어
밤, 거리, 가로등, 약국이라고
나도 적어 보지만
약국은 언제 시가 되려는지
여름밤 가로등은 창백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거리엔 차들만 오고간다
눈 오는 밤거리여야 했던가
순서를 바꿔야 했는지도
눈 오는 밤거리에 창백한 가로등 하나
약국으로 가는 길은 아직 멀다
그래 조금 나은 듯싶다
내친 김에 눈보라를 넣어보자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밤거리에
가로등도 불빛을 잃어가고
나는 약국으로 가는 길을 잃었다
그게 아니면
밤, 거리, 가로등, 약국에 대해서
나는 무얼 쓸 수 있을까
나는 약국으로 가야 한다
나는 약국으로 가는 중이다
나는 약국에 갈 수 없는 것일까
약국에서는 왜 시를 팔지 않는가
약국은 왜 시가 되지 않는가
약국이 뭐기에
왜 시비냐고
여기가 약국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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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6-05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먹는 약국인가요?
약국에서 ‘시‘라는 약이라도 팔아야 할듯~ㅎ

로쟈 2018-06-05 17:05   좋아요 0 | URL
약국이란 단어는 시가 잘 안 돼요. 그래서 써본.

하임 2019-02-15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늦게 쓰는 댓글이네요. 이런 저런 글 읽다가 예전에 써본 시 하나 올려봅니다 ^^

한 약방에서

크기는 안방만 할까
꾸운 누룽지의 노르께함이 방 안 가득 비추어
그 어느 곳보다 따뜻하다

사방이 흰 벽으로 가로막힌 곳에서
멀거니 사람을 기다리기보다
노른자 없는 쌍화탕 한 병
이웃들과 기울이는 이 곳이 좋다

등받이도 없는 의자에 앉아
이렇게 아픈 사람만 보니
우리나라가 약국(弱國)이 맞구나

내가 이렇게 아파도
동네에 믿을 구석 하나 있는 게
옆 동네 사는 자식 하나보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