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강의자료를 모두 전송한 뒤에 한숨 돌릴 겸 동네카페로 나왔다. 망중한. 이틀 연속으로 늦잠을 잔 덕분에 피로는 많이 가셨다. 이번주에는 지방강의가 연속으로 있어서 강의가 빼곡했던 지난주와는 다른 의미에서 긴 한주가 될 것 같다.

가방에 넣고온 책의 하나는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창비)이다. 이미 여러 차례 강의한 작품이고 이번주 일본근대문학 강의에서도 마지막 작품으로 읽는다. 기억엔 문예출판사판으로 <인간실격>과 <사양>을 처음 강의한 게 10여년 전이다. 그러는 2-3년 전부터 다시금 읽고 있다. 웅진지식하우스판으로도 읽고 창비판으로도 읽고(<인간실격>의 경우에는 민음사판으로도 읽고). 첫인상도 그랬지만 <사양>(1947)은 <인간실격>(1948)과 상반되는 작품이고 내게는 <사양>이 더 좋은 작품으로 여겨진다.

다자이의 주요 작품들이 그렇듯 <사양>과 <인간실격>도 자전적 소설이다. 한데 주인공이 다르다. 애인이었던 오오타 시즈코의 일기를 바탕으로 쓰인 <사양>은 여성 화자 소설로 ‘신생의 의지‘를 주제로 하는 반면에 다자이 자신의 방황을 소재로 한 <인간실격>은 ‘자포자기적 소진‘을 보여준다. 연대기적으로 <인간실격>이 <사양>보다 앞선 시기를 다루지만 집필과 발표는 <사양>이 앞선다. 이 차이는 중요한데 곧바로 다자이의 삶의 행로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인간실격>에서 <사양>으로: 소진의 삶에서 신생의 삶으로
-<사양>에서 <인간실격>으로: 신생의 삶에서 소진의 삶으로

창비판 <사양>에 실린 여러 편의 ‘여성소설‘이 보여주듯 <사양> 역시 다자이 문학세계의 한 축이다. 들뢰즈식 용어를 쓰자면 ‘여성-되기‘의 모색은 다자이 문학의 한 핵심 성격이다. 초기작 <만년>과 <인간실격>만으로 그의 문학을 가름할 수 없는 이유다. 다만 실제 경로로서 <사양>에서 <인간실격>으로의 이행은 신생의 실패, 여성되기의 실패로 읽힌다. 그 결과가 그의 자살이었다. 다자이의 실패는 이번 봄에 다시금 따라가본 프란츠 카프카의 실패와 여러 모로 비교도 됨직한 실패다.

다자이 전집은 도서출판b에서 10권으로 완간되었고(열림원에서 선집이 나와있다) 이번에 <사양>만 양장본 특별판으로 다시 나왔다. 다자이를 아끼는 독자라면 팬심을 발휘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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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4-22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복된 여성과의 동반자살 시도(결국엔 성공한)엔 어떤 의미가 있는건가요?

로쟈 2018-04-22 16:37   좋아요 0 | URL
다자이적인 ‘응석‘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실패했더라도 그의 다른 시도를 저는 평가하고 싶어요.

two0sun 2018-04-22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시다 슈가 말하는 ‘응석‘이요?
다른 시도란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로쟈 2018-04-22 16:52   좋아요 0 | URL
네 기시다 슈. 여성되기의 시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