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손의 소설(로맨스) <일곱박공의 집>(1851)을 읽고서 책장에서 빼낸 책은 멜빌의 <피에르 혹은 모호함>(1852)이다. <피에르>는 멜빌의 일곱번째 소설로 <모비딕>(1851)에 바로 이어지는 작품인데 이전작들과는 달리 해양소설이 아니라 가정소설이다. 일종의 업종변경을 시도한 작품인데 그 이행의 맥락을 <일곱박공의 집>을 읽고서야 그려볼 수 있었다. <일곱박공의 집>이 바로 호손의 가정소설이고 <모비딕>을 호손에게 헌정하기까지 한 멜빌이 그 영향하에 쓴 소설이 <피에르>였던 것. 그러니까 독자도 <모비딕>에서 <피에르>로 바로 건너갈 수 없고 <일곱박공의 집>을 경유해야 한다.

그런데 <주홍글자>(1850)에 뒤이어 발표된 작품으로 <주홍글자>의 음울한 결말과는 다르게 의도적인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일곱박공의 집>과는 달리(이러한 결말을 통해서 작중인물들뿐 아니라 작가 호손 자신도 청교도 조상들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피에르>는 호손 작품의 특징이기도 한 ‘모호함‘을 견지한다(더 철저하게 호손을 계승한다?!).

˝경험에 입각한 해양 이야기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고딕 소설과 로맨스의 관습에 대한 재해석 위에 프로이트를 앞서 간 개인의 심리 분석이 더해진 <피에르, 혹은 모호함>은 당시 독자들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어머니, 배다른 누이, 이상적인 여인, 연적과의 전통적인 관계 설정을 모두 흐트러트리고, 이들 관계에 비이상적인 친밀감과 성적 긴장감을 부여하여 모든 것을 소용돌이 안으로 끌어들이는 ‘피에르’의 광풍은 그의 운명이 그 자신에게 그러했듯이 손에 잡히지 않는 모호함이었다.˝

모호한 가정소설이란 점에서 떠올리게 되는 건 도스토예프스키의 <미성년>(1875)이다. <피에르>를 언제 강의에서 다룰지 모르겠지만(그 사이에 멜빌의 장편이 두어 편 더 나오길 기대한다) 두 작품에 대한 비교도 흥미로운 과제다. 서로를 읽었을 가능성은 희박한 두 작가이지만(희소하긴 하지만 멜빌과 도스토예프스키를 다룬 연구서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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