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귀가하여 내일 강의할 책을 찾느라 30분 넘게 시간을 허비했다(결국 찾기는 했다). 매일 강의한 작품에 대해서 한마디씩 적어놓으려고 한 것도 날짜를 넘기게 되었다. 엊저녁에는 일본 다이쇼기의 대표 작가로 ‘소설의 신‘으로도 불리는 시가 나오야(1883-1971)의 대표작 <암야행로>(1937)를 읽었다.

작가의 유일 장편으로 1937년에 완결되었다고는 하나 완성까지 25년의 세월이 걸렸다는, 집필과정과 성립사가 복잡한 작품이다. 초고는 191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작가의 나이로는 29세 때부터 54세까지다. 필생의 작품인 것. 게다가 발표본과는 현저하게 다른 초고가 있어서 작품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참고자료만 보고 판단하건대, 초고의 과격한 사상이 발표본에서 상당 부분 거세되고 순치된 게 아닌가 한다. 결과적으로는 남은 건 쇼와기의 얌전한 교양소설이다.

1883년생 작가로 시가의 생년은 카프카와 같다. 부유한 부르주아 집안 출생인데 17살에 기독교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의 영향을 받고 1901년에 구리광산의 환경오염 문제를 두고 아버지와 의견 충돌을 빚는다. 부자간의 격렬한 대립은 1917년에 가서야 화해로 막을 내린다. 대략 16년간의 대립이었는데 이 대립이 시가 나오야 인생의 결정적 사건이고 그의 문학에서도 핵심 주제가 된다(1917년작 ‘화해‘가 번역되지 않아 아쉽다).

하지만 <암야행로>에서 부자갈등은 핵심에서 조금 비껴나 있다. 갈등뿐 아니라 화해가 이미 주제로 넘어와 있어서다. 이 화해가 문제적인 것은 집안에 대한 비판은 물론 초고에 나타나 있는 국가권력 비판이란 주제도 집어삼키기 때문. 카프카 문학에 견주자면 시가 나오야는 부자간의 갈등을 일반화하여 법(정)과의 대결로 형상화한 <소송>의 단계에 이르지 못한다. 그 점이 일본 국민문학의 대표작일지언정 세계문학에는 미달하게끔 한다는 게 나의 판단이다.

일본문학 내부에서 비교대상을 찾자면 <암야행로>는 나쓰메 소세키의 <그후>(1909)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후>에서 부자갈등은 화해가 아닌 파국으로 치닫기 때문인데, 교양소설에서의 화해는 정치적으로 보수적인(불순한?) 함의를 갖는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시가 나오야가 다 책임질 일은 아니지만 일본근대문학은 군국주의의 광기와 폭주를 제어하는 데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암야행로> 초고의 반국가주의 사상이 구두선에 그치고 만 점이 한번 더 유감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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