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는 2012년의 대선이 (덧붙이자면, 모두의 예상을 엎고 박근혜가 문재인을 이겼다. 박정희 대 노무현이었으며 경제성장에 대한 대중적 갈망의 승리였다.) 소환되어 나도 같이 멘붕한 2024년. 아점 읽기.

분명 사는 것은 그때보다 더 각박해졌는데, 당시 멘붕한 사람들의 누구도 자신들의 욕망에 깔린 무의식까지 파내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실은 진즉에 투항한 것일지도 모르겠으며, 자신을 바꾸지 않기로 한 균형점을 찾은 것일지도 모르겠으며, 그러니까. 사실은. 살만하다는 것. 살만하지 않음을 연기하고 있다는 것. 나도 한번 잘 살아보자라는. 나는 아주 비뚤어져 버렸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

텍스트의 아래 ‘피해자의 오만’이라는 정희진의 워딩을 넣어보자.

“(301) 피해자에게도 자원이 있다. 유일한 자원, 도덕적 우월감이다. 그러나 이 자원은 피해자가 됨으로써 자동으로 얻어진 것이기 때문에 *피해자의 성장 불가능성*, 즉 진짜 피해이기도 하다. 피해자의 성찰은 가해자의 회개, 사회적 처벌만큼이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이 우월감은 특정 사건에서 단지 가해자가 아니기에 부여된 피해자 정체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본질적으로 윤리적인 사람은 없다.”

가해자들의 피해의식과 싸우는 일 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어느덧 피해자를 자처하는 듯한 이들의 지독히도 성장하지 않음을 마주하는 것이다. “(175)과연 그 메시아는 목숨을 걸만했을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무력함이 진해질수록 환상은 커지게 마련이니까. 목숨을 거는 사람의 절박함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단 한번도 없었다.

책을 아직 다 읽지 않았으나, 나는 이렇게 잠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메시아는 사라지지 않는다. 정치 지도자로 연예인으로 비트코인으로 로또로 주식으로. 꿈 기대 환멸 꿈 기대 환멸. 우리는 믿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준거 그대로의 준거자체. 믿기로 약속한 것이 언어이며 언어가 바로 인간의 조건이니까. 무엇을 믿을래. 꿈 기대 환멸 꿈 기대 환멸. 그걸 부단히 바꿔가면서 우린 늙어갈 것이고 아프고 병들어갈 것이며 죽을 것이다. 죽음 이후는 내가 논하고 싶은 영역이 아니다. (불가지론) 나는 그래서 늙고 아프고 병드는 것이 내가 나를 미워하는 이유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그 해결을 돈(각자도생)이 아닌 돌봄의 윤리…로 찾아야 한다는 쪽에 배팅을 걸어볼 생각이다. 그것은 능력주의와는 별개이며 젠더에 대한 진지한 공부 없이는 하나 마나 한 헛소리라는 것도.

사실 나는 이 책을 애도하기 위해 읽는 중이었다.
그런데 읽을수록 애도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겠다. 이미 하던 것들에 근사한 이름을 붙여주는 것. 뭐 그 정도.

#애도의애도를위하여
#밀양각본집
#피해자의오만과숭고한실패
#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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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한국의 포스트 담론(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 구조주의,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포스트 식민주의)이 주로 미국으로부터 수입되어 오면서 애당초의 푸랑쓰 담론의 맥락이 탈각돼버린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말하고 계시는 데… 어쨌든 내가 막 페미니즘 읽으면서 계속 으잉? 주체가 죽으면 그만입니까? 언제는 나보고 주체가 되람서. 난 주체(서울사람ㅋㅋ)이기 싫었는데. 징징. 이놈의 주체. 주체… 투덜투덜에 한줄기 빛처럼. 주체의 자율성의 조건으로서의 타율성이라는 문장을 만나버림. 네에- 이거였음 ㅋㅋㅋㅋ (이미지)

할튼 글의 요지는 ‘주체의 죽음’을 그렇게 훑어내듯 간편하게 이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며 ㅋㅋㅋㅋㅋ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모듈화에 능한 일본인의 책과 (아마도 대체로 페미니즘이었으므로 페미원산지) 미국 특유의 기능/실용주의적(?) 관점으로 한번 걸러진 글들로나마 포스트 담론 퉁쳐 이해하고자 한 신자유주의적ㅋㅋㅋㅋㅋ (드라마 10분 몰아보기처럼 잘 다듬어진 입문서로만 읽고 싶은)독서인 아닌가? 지난 나의 읽기 과정을 고려해 봤을 때ㅋㅋㅋ 조금 뜨끔합니다만… 실은 제가 주체가 되지도 못했는데 죽기가 아깝긴 했었거든요…….ㅋㅋㅋㅋ 뭐 나 정도의 읽기는 반지성주의 중에서도 반(半)지성으로 쳐주면 안될까요? 누구한테 물어보냐.ㅋㅋ

포스트 담론에서 (특히 프랑스) 포스트 구조주의가 가지는 특징.을 눈여겨보는 중에 만난 책. #애도의애도를위하여

매우 재미지다. (😞중증임)
잠깐 야전 홀딩하고 얘 먼저 찍고 가야겠다. 주체에서 주체화(들)로. 우리의 연장통 푸코가 등장합니다. (이미지 참고)

“(65) 요컨대 주체가 자율적 존재자로서 존재하기 위해서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주체 생산의 조건과 메커니즘을 해명하는 것, 따라서 주체의 자율성의 조건으로서 타율성을 설명하는 것이 (포스트) 구조주의의 근본적인 철학적 과제였다고 할 수 있다. ”
“(66) 신자유주의와 관련해서도 예속화-주체화라는 문제 설정은 신자유주의를 경제정책이나 금융자본의 이데올로기로 파악하는 관점을 넘어 새로운 종류의 주체 생산이라는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이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이나 대안을 모색하는 데서 매우 중요한 이론적 기반이 될 수 있다.”

신자유주의라는 (얘는 사상이 아니라고 엊그제 희진 샘이 말씀하시었다 ㅋㅋㅋ) 통치 시스템에 걸맞은 인재로서 부단히 주체화된 신자유주의 페미로서…(신자유주의 덕분에 긱 노동이나마 가능해져 개인의 위치를 부여받은 탈여성이 되어버린고로 독서시공간 확보한 1인가구)… 이렇게는 통치당하지 않는 저항을 한번 살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가장 먼저 해볼 수 있는 일들 : 권력, 권위 있는 말은 잘 못 알아먹는 척하기. 실은 농땡이 치면서 열심히 고생하는 척해서 사회 전체의 생산력을 떨어뜨리기. 그리고 이딴(?)거 적어서 내일 일하러 가는 사람들 근로의욕에 초 치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는 눈치껏 대충 살아야 합니다.

요컨대 주체가 자율적 존재자로서 존재하기 위해서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주체 생산의 조건과 메커니즘을 해명하는 것, 따라서 주체의 자율성의 조건으로서 타율성을 설명하는 것이 (포스트) 구조주의의 근본적인 철학적 과제였다고 할 수 있다. - P65

신자유주의와 관련해서도 예속화-주체화라는 문제 설정은 신자유주의를 경제정책이나 금융자본의 이데올로기로 파악하는 관점을 넘어 새로운 종류의 주체 생산이라는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이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이나 대안을 모색하는 데서 매우 중요한 이론적 기반이 될 수 있다. - P66

따라서 두 번째 중요한 효과는 이러한 상호 무력화로 인해 포스트 담론의 이론적·실천적 지향에 대한 맹목이 일반화되었고, 포스트 담론은 이데올로기로서의 포스트주의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마르크스주의와 새로운 이론들 사이의갈등 관계에 대한 정확한 인식 역시 장애를 겪게 되었고, 포스트 담론이 제기하는 새로운 이론적·실천적 과제들에 대한 모색에도 지장을 초래했다. 포스트 담론이 대결했어야할 과제는 앞서 언급한 대로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몰락이라는 현실 앞에서 새로운 종류의 갈등과 적대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문제였으며, 또한 포스트 담론을 통해 역사적 마르크주의 (및 좀더 넓게는 근대성 일반)의 한계들을 성찰하고 넘어설 수 있는가라는 문제였지만, 국내에서 이러한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루어지는 경우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 P51

그 대신 포스트 담론은 주로 애도와 청산의 알리바이로 기능했으며, 이로부터 다양한 종류의 ‘이행‘시도가 산출되었다. 가령 거대서사에서 작은 이야기로, 계급 내지 민중에서 소수자로, 보편성에서 차이로, 민족에서 탈민족으로, 이성에서 감성으로, 정치에서 문화로의 이행등과 같은 이행의 논의들이 그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문제는 대립의 두 항 사이의 관계가 배타적인 대립이나 선형적인 이행의 관점에서 파악된다는 점이다. 곧 거대 서사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은 곧바로 거대서사의 폐기와 작은 이야기들의 특권화를 낳게되고, 노동자계급 중심 정치의 한계에 대한 지적은 자유주의 정치의 전면적 수용으로 나타나며, (중략) 이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강요된 청산으로 이어졌으며, 그와 결부된 계급론의 문제나 정치경제학 비판의 문제 설정의 소멸을 낳게되었다. - P52

알튀세르나 푸코(또는 들뢰즈 가타리)가 해명하려고 했던 문제는, 근대철학의 기본 원리이자 마르크스주의 정치의 핵심 전제이기도 한 자율적 주체가 사실은 이데올로기나 규율권력에 의해 예속적으로 생산된 주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들에게 예속적 주체 생산의 문제는 항상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들이나 규율권력의 메커니즘 같은 구조적이고도 제도적인 실천의 차원과 결부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예속적인 주체화 양식과 구별되는 새로운 주체화 양식의 길이 어떤 것인지 해명하기 위해서는 국가장치들이나 권력의 메커니즘을 어떻게 개조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 역으로 생산양식이나 국가의 변혁이라는 과제는 새로운 주체화 양식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문제를 해명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사고될 수 없다. 내가 볼 때 포스트 담론의 핵심적인 문제제기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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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4-05-17 1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왕 나도 있는 책인데 왠지 평생 안 읽을 것 같다…밑줄을 책 색깔이랑 깔맞춰서 되게 이쁘게(?)치시네요? 은은…

공쟝쟝 2024-05-18 12:59   좋아요 1 | URL
반님 사회학 교육학 전공이랬던가요? ㅋㅋㅋ 사회학자들 멋지다!!! 저는 플래그 및 밑줄 전공입니다! ㅋㅋ

반유행열반인 2024-05-18 14:35   좋아요 1 | URL
나 사회교육(비슷한 듯 다른 ㅋㅋㅋ사회학도 교육학도 오롯하진 않고 사회학 경제학 법학 문화인류학 정치학 교육학 철학 다 썪어 놓은 그래서 거시기 혀…)이요 ㅋㅋㅋ사회학만 했으면 밥도 못 먹고 살았겠지요… 이과 전공 하고 싶다…ㅋㅋㅋㅋㅋ 플래그 및 밑줄 맛집이네 여기 저는 그 과목은 낙제요 ㅋㅋㅋㅋ

단발머리 2024-05-17 15: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눈치껏 대충 살다‘가 제 전공인데 말이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문장이 마지막 문장이 되기에는 너무 빡쎈!!! 페이퍼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이 재미있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05-18 13:02   좋아요 1 | URL
출처 : 단발머리 꽝꽝 박고 싶지만 진심을 다해 눈치껏 대충살자는 푸코의 권력관에 기반한 후기 철학을 공쟝쟝너낌으로 해석한 것이니ㅋㅋㅋㅋ 공부를 통해 얻어낸 평갱 개미여떤 제게 일종의 인생태도의 전회로 읽어주면 감사…😉 친구는 닮게 마련!!
 


자주 가던 동네 마트는 기어코 망했다. 포도알 스티커처럼 차곡차곡 모아둔 내 포인트 적립금을 가지고 토꼈다. 그래서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에 갔다. 행사 상품 세일 가격 세척된 토마토 한 알을 2500원에 사 먹을 깜냥이 나는 아직 안 된다. 아침마다 당근을 갈아 마신다. 지난겨울부터니까 루틴이라면 루틴이다. 이날은 세척되지도 않은 흙당근이 하나에 천 원이었다. 나에겐 토마토를 기르거나 당근을 재배할 능력이 없으시다. 근대화 문명화된 8282 한국은 내게서 그런 능력을 앗아갔다. 


그래서 편한 건 있었다. 분명 편했다. 하지만 편하고 싶어서 인생을 사는 건 아니다. 종종 자매들과 양육 중독이라고 놀리는 엄마 딸인 나는 농작물 재배를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은 모른다. 그런데 이대로 토마토가 55,000원 당근이 10,000원이 된다면?



이제 막 독일군이 공습한 전쟁 중의 프랑스를 다루는 소설 <우리 슬픔의 거울>을 쾌활하게 완독하고 후련~했었다. (다음 장이 궁금해서 끊지를 못했다.) 소설 속에서는 (당연히) 다리가 불편하면 즉시 총이 겨눠지고. 피난민들이 된 부모들은 아이들을 놓고 사라진다. (물론 의도치 않게 잃어버린 것일지도 모르지만ㅋㅋㅋ) 


아마 대열의 후미에서 뒤처질 나는 즉시 총살 당하거나, 혹시라도 여주인공처럼 공습 중에 아가들을 느닷없이 떠맡게 된다면 (심약하여) 바로 내치지는 못한 채. 이를 어째 동동 발 구르다 같이 굶어 죽을 것 같다. 가스레인지 없는 곳에서 죽을 끓일 능력이 내게는 없으니까. 자급의 무능력, 생활의 무능력, 삶의 무능력. 배워야 할 게 많다. 가장 먼저는 눈치껏 남의 말을 절대 안 듣는 법을 배워야 하겠고(혹시 시간 여행을 하거나 불상사가 생기어 신변이 전쟁에 처할 경우, 가스실 안 가거나 총살 안 당하는 방법입니다. 제가 독서를 통해 알아낸 결론이니! 꿀팁! 저장!).


다리가 불편한 내가 망해버린 마트와 당근을 통해서 체감하는 물가 상승은 전쟁을 떠올릴 정도의 압박감이지만. 아무래도 사람들은 다 살만한 것 같으니, 이건 나의 망상일지도 모른다. 최악을 자동으로 떠올리는 불안 장애 일종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언제나처럼 불안을 느끼지 않기 위해 읽었다. 술 대신 책으로 현실을 도피했다. 그렇게 읽다 보니 또 읽는 동족(!)을 만났다.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이번에 새 옷 입혀서 나온 모양이다. 대형 서점에서 눈이 가서 뒤적대다가 그대로 집으로 가져와서 끝까지 읽어버림.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매혹적인 썰을 푸는 것? 나는 그것을 필력이라고 부른다ㅋ 음. 필력에 대한 이야기는 아끼도록 하자. 


자, 이 읽기 덕후가 *고작* 자기가 맘 편히 신나게 읽기 위해, 다른 읽기 덕후(계보학)들의 읽음을 노정하여 읽고, 쓰기를 인류 최후의 생존방식으로 격상시킨 마지막 클라이맥스만 보자. (나는 이런 결론에 다다르기까지의 사유 과정에 독서라는 행위로 참여하기를 권하지만, 어차피 사람들이 안 읽을 걸 안다. 나만 좋을 일.) 


(213) 다시 한층 더 깊이 파고들어 봅시다. 세 가지가 있습니다. 법전을 비롯한 규범에 관련된 것으로서의 ‘정보’. 정보는 아니지만 정보와 결부된 형태로 권력 안에 포함되는 ‘폭력’. 그리고 아무래도 거기서 잔여로서 석출되는 사랑과 동경의 절대적 대상으로서의 ‘주권=국가’. 우리는 여기까지 생각해왔으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정보와 폭력과 주권의 삼각형으로 구성되는 ‘세계’. 제도적인 것의 세계는 유럽의 한 버전version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지요. 따라서 ‘혁명’이란 정보도 폭력도 주권 탈취도 아닙니다. 그것은 혁명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습니다. 그것은 중세 해석자 혁명(교황 혁명)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니까요.”


“(216) 읽는다는 것은 고쳐 읽는 것입니다. 즉 고쳐 쓰는 것, 쓰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기묘한 사태가 떠오릅니다. (…) 책을 제대로 읽는다는 것은 읽고 있는 자신과 세계가 동시에 믿을 수 없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쓴다는 것에 대해서도 ‘신앙’은 사라집니다. 그 한 행을 믿지 않는다면 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쓰는 것’은 지우고 고쳐 쓴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것을 지우고 고쳐 쓸 수 있다는 것은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신과 불신의 이분법은 다 같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거기에 무한한 회색의 투쟁 공간이 출현합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습니다. “최후에는 고독한 전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그것은 쓰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가 혁명의 장소입니다. 혁명의 시간입니다. 이 시공은 끝나지 않습니다. 정의상, 끝날 수 없는 것입니다.”


“(217) 당신은 무엇을 믿고 있는가, 정말 ‘진심으로’ 믿고 있는가, 하는 물음 자체가 완전히 유럽적인 것이라는 겁니다.”


“(226) 읽어버렸다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된다면,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줄 알고 있다니요. 알고 있는 게 아닙니다. 사실은 모르고 있으니까 그렇게 살 수 없는 겁니다. 책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이, 그 읽을 수 없음을 읽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해도 소용 없습니다.


“(251)문학이 살아남고, 예술이 살아남고, 혁명이 살아남는 것이 인류가 살아남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외에는 없습니다. 왜 쓸까요? 왜 계속 쓰는 걸까요? 계속 쓸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달리 할 일이라도 있습니까?


“(271) 그것은―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좀 더 말해볼까요? 베케트나 첼란이나 헨리 밀러나 조이스나 버지니아 울프나…… 발레리가 없었다면 저는 여기에 없을 겁니다. 니체나 *푸코*나 르장드르나 들뢰즈나 라캉이 있어주어 다행입니다. 그들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저는 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을 겁니다. 무엇을 쓰면 좋을지 몰랐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좋을지 몰랐을 겁니다.” 


하하. 최초의 혁명을 그저 성경을 *읽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 그리하여 지금의 세계가 만들어져 버렸다는 사람. 하지만 달리할 것이 없으니 또 *읽어버리자*라고 하는 사람에게. 이런 내가. 설득되지 않을 수 있을까. (근대화되는 것이 너무 벅차서 도태된 김에 에라 모르겠다 읽어버린 나는 이이의 주장에 기꺼이 동의하고 싶었다.)  


<4월 보름 동안 다리 부러진 김에 완독한 책들. >


읽고 쓰는 혁명까지는 (아이쿠 수줍다) 아니더라도 여기 이런 종족이 아직 살아(고)있어요! 라고 알리기 위해, 이거라도 라는 마음으로 오전에는 부단히 밀린 #백자평 을 적었다. 


참, 잘난척 하는 것을 깜빡할 뻔 했다. 사사키의 책 거의 마지막 269페이지의 편집자 필리프 아리에스의 형안이 빛나는 언젠가는 세상의 빛을 봤을 테지만 당시의 프랑스 편집자들은 무시한 그 책은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가 아니라 <광기의 역사>다. 2쇄 찍을 때는 수정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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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5-02 1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달리 할 일이라도 있습니까? ㅋㅋㅋㅋㅋ 저 이 문장은 기억 안 나네요.

저는 기독교인이라, 이 책 읽으면서 사사키가 깊이 있게 연구(?)하는 루터 이야기가 너무 마음에 와닿았고요. 프로테스탄트 역사에서 루터가 사실 많이 영웅시되고 그러긴 하거든요. 근데, 이 책 읽으면서 약간 더 반하게 되는... 아, 읽는다는 게 이렇게 놀라운 일이야? 이렇게 혁명적인 일이야? 그런 생각 많이 했었고요. 그리고 ㅋㅋㅋㅋㅋㅋ(말많음 오늘 ㅋㅋㅋㅋㅋㅋ) 그게 가능했던 환경, 그러니깐 라틴어-독어 번역의 그 순간들이 되게 감동적이더라구요. 저한테는 그랬어요.

<우리 슬픔의 겨울>은 난중에 저도 일독 해봐야겠어요.
마지막에 잘난 척, 짱 멋있네요! 출판사에서 이 리뷰 꼭 봐야하는데 말이지요! 아니면 내가 전화할까요? 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05-02 19:30   좋아요 1 | URL
아놔 진짜 웃겨서 접속함!! 선생님 노안…걱정됩니다. <우리 슬픔의 거.울>입니다.

사사키 종교철학이고ㅋㅋㅋ 쟝쟝한정 빅데이터에 의하면 지구상 찐똑똑이들은 종교학과에서 나오며, 칸트는 철학의 탈을 쓴 신학을 했…고 푸코는 칸트를 죽이려고 애를쓰다 인간을 죽여버렸으며… 푸코 읽는 니체빠 사사키는 정확히 제가 가진 질문. 인간 내면의 발명과 프로태스탄티즘을 지 방식대로 정리해버렸기에. 전 흡입해서 읽었고 (역시 푸코처돌이) 중간에 레비나스 느껴져서 짜증났지만 수긍함. 내면은 유럽의 발명 맞습니다. 그건 내가 경험해서 안다. (그리하여 뽀스뜨모당걸의 모당걸 되기작전은 일단락 되었으며. 이젠 이슬람좌파 푸코와 함께하는 코란읽기로..(구라임))

아무래도 오늘 내일 모레 글피 중에 결국 야전과 영원을 살 것 같아요. 르장드르 냄새나는 이미 다 알고 있는 단발님. 컴윗미?

단발머리 2024-05-02 19:28   좋아요 1 | URL
겨울 아니여? 어머머머멈머머머!

단발머리 2024-05-02 19:29   좋아요 1 | URL
댓글 지금 다 읽었어요….
반사! 🤪🤪🤪🤪🤪

공쟝쟝 2024-05-02 20:28   좋아요 1 | URL
돼써요! 포도밭 그 사나이 만나시고, 내가 너무 멀리갔다 싶으면 불러주세요. 아직 힉스입자 모르니깐. 읽기는 깊이가 아닌 넓이로 승부한다! 계보학의 신개념 광.폭. 단발 ㅋㅋㅋ

단발머리 2024-05-02 20:28   좋아요 1 | URL
깊이는 없다는 말씀인데 인정하게 되는 이내 마음 ㅋㅋㅋㅋㅋ넓게라도 읽어야지 싶은데 누워있는 저질체력 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05-02 20:33   좋아요 1 | URL
그걸 깊게 팠으면 르장드르됐읍미다! 현대인은 바쁘고 유튜브도 봐야하지만 여성의 머릿속엔 내새끼 세끼를 일단 걱정해야하며 오늘치 바닥청소와 다림질이 기다리고, 그와중에 부업도 하셔야 하기 때문에.. 책은 한가한 남자나 저같는 탈여성(🙄)이 읽는 것이랍니다. 훗~!!
누워서 기력 보충하신 뒤에 쫄리면 읽도록 하세요! 저는 갈길이 멉니다!! ㅋㅋㅋㅋ

단발머리 2024-05-02 20:42   좋아요 1 | URL
남자가 될 수 없는 저는 새끼에겐 푸라닭을(중간도사 끝난 수험생) 청소는 내일로 미루고 다림질은 일주일에 한 번 몰아서 합니다. 탈여성이 구미에 당기네요. 🤔
천천히 가세요!

단발머리 2024-05-02 1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을 돌리시오 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05-02 19:27   좋아요 0 | URL
이게 매력이지롱!! 🙄
 
한나 아렌트 평전 - 경험하고, 생각하고, 사랑하라
사만다 로즈 힐 지음, 전혜란 옮김, 김만권 감수 / 혜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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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우정과 ‘하나 안의 둘’을 가르쳐준 한나 아렌트. 사유하지 않음―이 폭력이다. 그가 ‘사유’라 칭한 것은 “경험에서 의미를 추구하는 활동”이다. 20세기를 살아낸 한나는 ‘사유하는 법’을 알려주려 했으며 “누구나 사유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했다. 누구나. 누구나. 처음부터 다시.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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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05-02 12: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요 알라디너인생네권에 ‘터프 이너프‘도 넣고 싶었어요! ㅋㅋㅋ

공쟝쟝 2024-05-02 13:42   좋아요 2 | URL
아.. 제게도 정말 사랑처럼 운명처럼 찾아왔던 *인생 책* 인 것 같아요... 터프 이너프...ㅜㅜ 하지만 절판이다..ㅜㅜ..

단발머리 2024-05-02 19: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유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는 안 가르쳐 주시는 건지.... 그걸 좀 묻고 싶습니다. 저도 이 책 좋아해요!!

공쟝쟝 2024-05-02 20:41   좋아요 2 | URL
저는 이 책으로 에세이를 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참았으며…
아렌트가 가르치는 사유는 당연한 말이지만 아렌트의 저서를 직접 읽어야 배울 수 있겠습니닼ㅋㅋㅋㅋㅋㅋ 이를테면 단발님이 완독하신 <전체주의의 기원>같은 거요… 저는…. 아직 입문서에 머물러 있습니다… 철학책은 한번에 한권만 덤빈다! 허리나간다! ㅋㅋㅋ

단발머리 2024-05-02 20:45   좋아요 1 | URL
완독 아니고 4분의 1 남았어요. 아… 언제 읽지… 😳😳😳
 
자아 - 친숙한 이방인 배반인문학
김석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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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는 스스로를 기만한다. 타인에게 영향을 받는다. 자아는 병적이다. 망상한다. 일관성을 가지려고 한다. 그리고 자아는. 변.한.다. 친숙한 이방인. 재밌는 걔를 죽을 때 까지는 데리고 살아야 한다. 누구라서? 누구라도. “속지 않는 자가 속는다”라고. 그랬지 하고 웃어버리기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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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5-02 19: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아는 변한다.... 가 짱이고, 그 다음은 자아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겠죠. 얇은데 어려울 거 같은 느낌? ㅋㅋㅋㅋㅋㅋ

미미 2024-05-15 2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아는 스스로를 기만한다. 타인에게 영향을 받는다. 자아는 병적이다. 망상한다.-까지만 제 얘기ㅋㅋㅋㅋㅋ
아쉽네요(긁적 긁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