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자로 사는 법
게리 콕스 지음, 지여울 옮김 / 황소걸음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한 달쯤 전 일이다. 혼자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는데, 뒤이어 들어온 젊은 남자 둘이 내 옆 탁자에 앉았다. 둘이 계속 대화를 주고받는데, 바로 옆이다 보니 듣고 싶지 않아도 자꾸만 들렸다. 밥 먹기에 집중해보기도 하고, 딴생각을 열심히 해보기도 했는데, 그들의 대화는 자꾸만 내 공상을 비집고 들어왔다. 음악을 하는 친구들 같았다. 한쪽은 20대 중후반, 한쪽은 20대 초반 같았다. 나이 차가 별로 안나 보이는데, 어린 쪽이 다른 쪽을 굉장히 깍듯하게 대했다. 좀 더 나이 많은 쪽이 이런저런 경험담과 조언을 들려주는 듯했다.

 

 

 

그러다 한 문장이 내 마음을 파고들어 왔다. "단 한 번의 후회도 하지 않을 자신 있어?" 아직 대학을 다니고 있는 친구가 공부보다는 음악을 선택하려 한다고 말했을 때, 선배로 보이는 친구가 했던 말이다. 그 친구는 후배가 이 어렵고, 배고픈 길을 선택한 것이 안타까운 것일까? 아니면 그만큼 확실한 각오를 하고 시작하길 바라는 것일까? 표현은 달랐지만, 가끔 후배 활동가들과 상담을 하게 되면 나도 그런 말을 자주 했다. "진정으로 네가 원하는 것이 뭔지 고민하고, 네 의지가 확고하다면 그 길로 가라!" 그리고 내 경험담을 들려주곤 했다.

 

 

 

군대를 다녀와 복학생이 된 후, 선후배들의 요청에도 나는 학생회 활동을 중단했다. 운동권 집단 내부의 권력싸움, 패거리 문화 등이 지긋지긋했다. 그러자 갑자기 시간이 많아졌다. 늘 선후배들과 어울려 다녔는데, 이제 혼자 있는 때가 많아졌다. 읽고 싶었던 책들도 찾아 읽고, 공부도 많이 해야지 결의를 다졌다. 전부터 관심을 두고 있던 '실존주의' 철학에 대해서도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나는 철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어려운 철학책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지만, 유독 실존주의 철학에 대해서만은 잘 알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냥 존재 그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당시에 내가 생각한 실존주의는 그런 것이었다. 사르트르의 [구토]에서 강에 집어 던지려고 집어든 돌멩이 하나가 자신의 존재를 주장한 것처럼, 자연의 모든 구성원은 그것이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모두 거기에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인공물로 채워가는 행위가 너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환경운동을 시작했고, 졸업 후에는 자연스럽게 활동가가 되었다.

 

 

 

과연 나는 단 한 번의 후회도 없었을까? 한때 내게 상담을 요청하곤 했던 후배 활동가들은 과연 이런저런 갈등과 고민들 속에서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을까? 가족의 반대와 경제적인 어려움, 단체나 조직 내에서의 갈등, 진행하고 있는 일에 대한 두려움과 막막함, 개인이나 단체의 전망에 대한 생각들 등등 수많은 고민거리가 쉴 새 없이 던져졌다.

 

 

 

결국, 나는 직업활동가를 그만두고 직장인이 되는 선택을 했지만, 활동가의 삶을 살았던 것에 대해서는 단 한 번의 후회도 없었던 것 같다. 다만 활동했던 단체에 대해서는 후회와 아쉬움이 있었다. 내가 활동가를 그만둔 것도 사실 결혼이나 육아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 등의 개인적인 사정이 아닌 단체 활동에서 전망을 찾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이야기가 좀 많이 옆으로 새버렸는데, 저 위에서 "단 한 번의 후회도 하지 않을 자신 있어?" 라는 질문이 내 마음을 파고들었을 무렵 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실존주의 철학 안내서이자 진정한 의미의 자기 계발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기존의 딱딱한 철학책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저자의 발랄하면서도 당돌한 어투는(이 책은 저자가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읽힌다.) 철학이라는 학문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쉽게 읽을 수 있다.

 

 

 

실존주의라는 조금은 무겁고, 조금은 어려운 주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하겠다. 기존 철학책들처럼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들을 또 다른 어려운 단어들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의 예를 들어가면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물론 아무리 쉬운 설명이라 해도, 그 설명을 제대로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생각과 고민이 필요하긴 하다. 어쨌거나 이 책 덕분에 오랜만에 실존주의에 대한 내 오랜 관심과 열정을 다시 한번 쏟아부을 수 있었다.

 

 

 

이 책을 거의 다 읽었을 무렵, 대학 후배가 서울로 찾아왔다. 오랜만의 만남이었지만 우린 그닥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다.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후배는 여러 어려운 상황으로 복잡한 심경이었다. 나 역시 몇 가지 어려운 상황과 고민으로 맘이 편치 않았다. 헤어질 때 후배 녀석이 말했다. "뭐,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소. 힘내이소!" 애써 웃음을 보이며 말하는 녀석에게 나도 비슷한 말을 돌려줬다.

 

 

 

실존주의는 삶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지독할 정도로 솔직한 철학이다. 이 책의 핵심은 바로 이 말인 듯하다. 실존주의자는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허무주의자이기도 하지만, 반면에 자신의 삶의 가치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반허무주의자이기도 하다. 나 역시 실존주의자로서 어렵고 힘든 상황에 헛된 희망을 품지 않는다. 그래서 더 힘들어하고 또 괴로워하지만, 나 자신과 내가 처한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 상황을 헤쳐나가리라 생각한다. 힘든 시기에 좋은 책 한 권을 만난 것이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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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8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8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8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8 1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12-11-28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궁금합니다. 과연 식사는 제대로 하셨을지요. 식사중이셨으니까요.

감은빛 2012-11-28 19:01   좋아요 0 | URL
아, 시간이 좀 지나서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좀 불편하게 먹었던 것 같아요.

제 식사를 염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비로그인 2012-11-28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점점 느끼게 되는거지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감은빛 2012-11-28 19:02   좋아요 0 | URL
그렇죠!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노력하는 태도를 갖는 것만으로도 제법 이룰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구요.

2012-11-29 0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9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2-11-29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회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싶어져요...
그 말을 했던 사람에게요. ^^

당연히 후회하고 반성하고 발전하고, 후회하지 않는 삶은 모험이 없는 삶인거 같고.
실존주의.... 현재를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 네 저도 실존주의자인지라.

감은빛 2012-11-29 12:43   좋아요 0 | URL
음, 글쎄요.
후회라는 단어에 대한 체감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후회하지 않을 만큼의 결의를 갖고 시작해야 된다고 받아들였어요.
나중에 결국 후회할 날이 있을지라도 시작할 때만큼은,
그런 일은 없을거야 라는 각오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달여우님도 실존주의자였군요.
언제 한 잔 기울이면서 실존주의에 대해 논해볼까요? ^^

마태우스 2012-12-03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회 얘기를 하시니 제 얘기가 하고 싶어지네요. 저는 기생충학을 택할 때 별다른 고민없이 선택을 했어요. 임상을 택한 친구들에 비하면 그리 넉넉한 삶을 살지 못할 거였지만, 그래도 기생충이 좋았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네요 벌써... 그간 한번도 후회를 안했다면 거짓말 같지만, 진짜로 전 후회를 안했지요. 친구들보다 금전적으론 넉넉치 못하지만 그만큼 시간을 여유롭게 쓸 수 있어서 좋아요. 그리고 그 넉넉치 못하단 것도 우리 사회 기준으로 보면 상위에 있을 것 같아서 후회를 안한 측면도 있지요. 음악과 비교하기엔 적절치 않았네요 그러고보니깐.

감은빛 2012-12-04 11:25   좋아요 0 | URL
네, 마태우스님께서는 정말 후회 안하셨을 것 같아요.
음악, 미술, 체육 이런 쪽은 이 나라에서 정말 먹고 살기 힘들죠.
글쟁이도 그 못지않게 배고픈 쪽이구요.
저는 그보다 더 배고픈 사회운동 쪽에 있었구요. -_-;;

그치만 그런 비교보다는 각자의 인생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한 선택.
그 얘길 하고 싶었던 것이니
마태우스님의 말씀이 적절치 않은 것은 아니예요.
저는 마태우스님 이야기를 알게되어 좋네요! ^^

마태우스 2012-12-04 12:14   좋아요 0 | URL
직업활동가 정말 힘들죠. 일은 많고, 모든 게 돈으로 환산되는 요즘같은 시대에 그 바쁨이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다보면 중간에 회의도 들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꾸준히 일하시는 분들은 정말 대단하신 거죠. 많은 걸 생각하게 되는 글이네요

페크pek0501 2012-12-04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언제부터인가 헛된 희망을 품지 않게 돼 버렸는데, 그게 좋은 일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어요.
삶이란 그저 그런 시시한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일상을 반복하다가 죽는 거죠.ㅋㅋ
그냥 인간이 삶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산다, 라고 생각해요.

"나 자신과 내가 처한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 상황을 헤쳐나가리라 생각한다."
- 이 말이 꽂히는군요. 요즘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실감하는
일이 있었거든요. ^^

저, 첫 방문이어요!!!!!!!!

페크pek0501 2012-12-04 16:59   좋아요 0 | URL
아니, 첫 방문이 아니라 첫 댓글이어요.ㅋ

감은빛 2012-12-05 13:5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첫 댓글 영광으로 생각하고 기억해두겠습니다! ^^

'삶의 의미'에 대해 어려서부터 고민을 많이 했어요.
여전히 그 고민은 계속되고 있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삶은 그냥 반복되는 일상일 뿐이죠.
그것만 알게 되어도 큰 깨달음이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 페크님께서는 깨달음을 얻은 분이신 듯 해요! ^^
 

몇 살 때였는지는 모르지만 어릴 때 손자병법에 나오는 '배수의 진'에 대해 읽었다. 그 후 '배수의 진'은 내 생활태도 중 하나로 굳어졌다. 예전 글(http://blog.aladin.co.kr/idolovepink/4433998)에서도 짧게 쓴 적이 있었지만, 어려서부터 나는 중요한 일을 미루고 미루다가 막상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야 시작하곤 했다. 특히 시험공부를 그렇게 했는데, 친구들에게는 늘 '배수의 진'을 들먹이며, 그래서 오히려 성적이 더 좋다고 떠벌리곤 했다. 뒤는 강이고, 앞과 좌우는 모두 적으로 둘러싸인, 더는 도망갈 곳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가진 최대한의 잠재력을 모두 끌어낸다는 것이 어린 마음에는 멋져 보였다. 그리고 평소 공부를 게을리하는 것도 정당화할 수 있었다.

 

 

대학 때는 심지어 시험기간에조차 공부를 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집회 가느라 수업도 자주 빠졌으면서, 시험기간에는 또 술집이 한가롭고 조용해서 술 마시기 딱 좋다고 남들 도서관에 있을 때 나는 술집에 있었다. 그러면서 시험은 평소 실력으로 치는 거라고, 시험 치기 1시간 전에 딱 핵심내용만 훑어볼 거라고 큰소리를 치곤 했다.

 

 

 

공부뿐만이 아니다. 일하면서도 기획안이나 보고서를 제출해야 할 때에도 미리 쓰지 않고, 늘 마감까지 미뤄뒀다가 막판에 집중해서 처리하곤 했다. 원고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이건 인쇄물로 남는 거라서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많고, 늘 보내놓고 나면 아쉬워하는 처지라서, 원고만큼은 '배수의 진' 전법을 쓰고 싶지 않은데, 달마다 마감일이 닥쳐서야 원고를 쓰기 시작하니,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한번 굳어진 습관을 고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어제 원고 마감을 두 개나 해야 했다. 하나는 어제까지였고, 또 하나는 벌써 마감이 지난 원고였다. 둘 다 대략 주제와 소재를 정해두긴 했지만 단 한 줄도 쓰지 못한 상태였다. 그 전날 저녁에 고민을 많이 했다. 약속을 취소하고 글을 쓸 것인가. 약속된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서 밤 새 글을 쓸 것인가. 그런데 결국 둘 다 이뤄지지 못했다. 약속을 갔다가 갑자기 다른 술자리로 이동했고, 거기서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돌아왔다. 도저히 글을 쓸 상태가 아니어서 그냥 잠들어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어제는 마음이 엄청 급했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글을 써야 했다. 점심 먹은 후에 짬을 내어 하나를 완성하고, 퇴근 전에 시간을 내어 다른 하나를 완성했다. 두 글 모두 한 번 더 살펴보고 싶은 욕심은 있었으나, 시간은 없었다. 그냥 마음을 비우고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무척 힘들었다. 어쨌거나 해냈다는 성취감과 조금 더 잘 쓸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동시에 찾아왔다. 다음 달에는 꼭 미리 써놓고, 충분히 다시 살펴보고 보내야지 마음먹었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다.

 

※ 주말엔 따뜻한 아랫목에 배깔고 엎드려 하루종일 읽고 싶었던 소설책들 쌓아놓고 읽었으면 좋겠다!(그러나 집안 일들도 해야하고, 애들과도 놀아줘야하고, 나가야 할 일정도 있고......)

 

 

 

 

 요건 다락방님을 비롯한 몇몇 알라디너들의 글을 읽고 구매했는데, 아직 펼쳐보지도 못했다. 과연 언제 읽을 수 있을까?

 

 

 

 

 

 

 

 

 

 

 

 

 이것도 재밌다고 소문난 책이었는데,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언제 읽을까?

 

 

 

 

 

 

 

 

흐 집에가서 책장을  살펴보면 읽고 싶어서 사모은, 그러나 아직 첫 장을 펼치지도 못한 소설들이 잔뜩 있을텐데, 겁이 나서 살펴볼 엄두가 안난다. 하나씩 천천히 읽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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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2-11-23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배수'의 진 보다 더 독하게 정신 차려야 한다는 '백수'의 진이 있더군요. 제 주변에는 이제 지쳐서 배수의 진은 커녕 아무런 진세도 안 펼치는 구직자도 있지만요.

감은빛 2012-11-23 17:37   좋아요 0 | URL
'백수의 진'이라!
그거 정말 비장함이 느껴지는 단어군요! ^^
저는 가끔 백수가 부럽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러면 안되겠지요. -_-;;

다락방 2012-11-23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이번 주말에는 작정하고 책을 좀 읽어야지 너무 안읽은 책들이 쌓여서 안되겠어요. 그런데 집에서 읽으면 전 자꾸 잠이 와요. 스르륵~

감은빛 2012-11-23 17:38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저는 안 읽은 책이 정말정말 많답니다!
이젠 책 사놓고 한 두달 구석에 쳐박아 놓아도 죄책감도 별로 안듭니다. ㅠ.ㅠ

다락방 2012-11-23 17:39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저는 몇 년 된것도 많아요. ㅠㅠ
결국 못읽고 팔아먹은 책도 많답니다. ㅠㅠ

기억의집 2012-11-23 19:5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저도요^^

감은빛 2012-11-26 13:24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기억의집님.
저도 당연히 몇 년 지난 책들도 많습니다!
안 읽은 책들이 자꾸만 쌓이니까요.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책들을 다시 펼치기가 어렵더라구요.
이젠 책장 정리가 두려워진답니다.

기억의집 2012-11-23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고 하시는 글들이 있으신가봐요. 감은빛님 서재엔 좋은 글이 많아 고민 그닥 하지 않으실 것 같은데~

감은빛님~ 이상하게 애들이 크면 시간이 남아 더 읽을 줄 알았는데, 진짜 못 읽어요. 애들이 어려도 같이 있어줘야하지만 커서도 같이 있어주어야 해서 애들이랑 거실에 같이 앉아 이야기 저 이야기 하다보면, 하루가 금방 가요. 저는 애들이 크면 지 방에서 안 나온다 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더라구요. 그리고 애들이 성장할수록 밥 달란 말을 너무 자주 해서 전 거의 주방에서 밥 하다 시간 다 보내는 것 같아요. 흐흐.

감은빛 2012-11-26 13:27   좋아요 0 | URL
감사하게도 부족하기 짝이 없는 제 글을 받아주는 곳이 두 곳 있어서요.
감사한 마음으로 잘 써야지 하면서도
늘 마감때가 되면 급하게 쓴 형편없는 글을 보내게 되네요.

기억의집님, 애들과 거실에서 대화를 나누시다니!
제가 상상하는 이상적인 모습인데요!
아이들 다 키우고 나면 혼자 골방에서 책읽고 글쓰고 싶은데,
그게 언제쯤이나 가능한 일일지 모르겠네요.

루쉰P 2012-11-24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배수의 진, 백수의 진 등 흥미진진한 전략이군여 ㅋ 저도 백수의 진을 치고 정관정요를 읽은 적이 있었지요 ㅋ 저도 감은빛님처럼 막판에 몰아치는 습관이 있어요 책은 무지하게 쌓여 있구여 ㅋ 너무 고민하지 마세요 뭔가 전우애를 느끼는 페이퍼 였습니다 ㅋ

감은빛 2012-11-26 13:30   좋아요 0 | URL
루쉰님의 독서는 정말 대단해요!
그래서 그렇게 긴 글이 막힘없이 술술 나오는 거겠죠?

우리 교주님께서 전우애를 느끼셨다니,
열심히 성지순례를 했던 일개 평신도는 감격스럽나이다! ^^
 

최근 상태가 많이 안좋다. 동시다발적으로 문제가 속출하고 있는데, 전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터에서도, 집에서도 그리고 다양한 활동공간들에서도. 이렇게 어려운 일들이 한꺼번에 몰린 적이 있었나를 생각해보면, 그런 적은 절대 없었던 것 같은데.

 

어려운 일 하나를 풀어내는데에도 끙끙거려야 할 판에, 몇 가지 문제가 동시에 겹쳐서 오니까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아예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것이 방법일까? 그래서 최근 정신 나간 놈처럼 살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나름 잘난 놈이라고, 고개 빳빳하게 쳐들고 잘난 척 하면서 살아왔는데, 한순간 나 자신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놈인지를 처절하게 깨닫게 된다.

 

어제 밤 아이들을 재우고, 설겆이를 하면서 생각했다. 이건 어쩌면 악몽일지도 모른다. 잠에서 깨어나면 잊혀질 그런 악몽이었으면 좋겠다. 다시 나는 예전처럼 목에 힘주고 잘난 척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으로 설겆이를 마치고 잠들었다.

 

아침에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밀어올리고, 딱딱한 목과 어깨 근육을 주무르면서 나비는 결코 장자가 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구나. 당연한 생각을 이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깨닫는다.

 

 

**********

 

기다리던 책이 나왔다. 책 정보에 나와있지는 않지만, 이 책 뒷부분에 있는 우리나라 사례들은 내가 쓴 글이다. 존경하는 선배님께 부탁받았기 때문에 잘 쓰려고 했지만, 자료도 부족했고, 시간도 부족했고, 경험도 부족했다. 그래도 지금 읽어보니, 좀 더 시간을 갖고, 더 자료를 찾고, 더 글을 다듬었다해도 이거보다 더 잘쓰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이건 아마도 나의 역량이 이정도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 하다. 여러모로 나의 모자람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맨 뒤에 포함된 내 글은 많이 부족하지만, 이 책은 정말 값진 책이다. "말은 그만! 이제 나무를 심자!"라는 이 아이들의 직접행동은 말만 번지르르한 나 같은 인간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다! 아이들에게 권하기에도 좋고, 어른들이 읽어도 여러모로 느끼는 바가 많다.

 

지구를 구하는 길은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는 일은 어쩌면 의외로 단순하고 간단한 곳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고민과 토론과 논의 보다는 묵묵히 행하는 간단한 행위 하나가 답일 수도 있겠다 싶다.

 

 

 

 

 

 

 

 

 

 

 

 

 

 

 

 

※ 좀 전에 출판사로부터 실수로 내 이름이 빠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1쇄가 모두 판매되면 2쇄를 찍을 때 이름을 추가하겠다는 말씀도 하셨다.

음, 아마도 이 글을 읽으신 걸까?

이름이 빠진 건 별로 상관없는데, 책이 어서!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

이 책이 많이 알려지는만큼, 지구를 생각하는 사람들도 더 많아질테니.

(2012-11-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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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11-15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또 여러 문제가 겹칠 때면 한 가지가 실마리가 보이면 나머지도 실마리가 보이는 경우가 많더군요(물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만요.) 가장 쉬운 문제부터 풀어라,는 수능문제 풀 때만 쓰는 말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힘내시고 문제들이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네요.^^

감은빛 2012-11-15 15:22   좋아요 0 | URL
맥거핀님, 따뜻한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지금 저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뭐가 가장 쉬운 문제인지 판단조차 어렵네요.
세상 돌아가는 문제, 이 사회의 문제점과 지구 환경 문제에 대해서는
뭐가 가장 중요하고 또 뭐가 가장 쉬운 문제인지 잘 알 수 있을 듯한데,
정작 제게 닥쳐온 문제들에 대해서는 판단이 되지 않네요.
그저 눈 앞에 닥친 문제들을 고민하고 속을 썩이기만 할 뿐이예요.

맥거핀님의 응원 덕분에 조금은 힘이 납니다!
힘 내보겠습니다! ^^

숲노래 2012-11-15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 보면 '나무심기'란 어른들이 만든 어떤 제도권과 같아요. 예부터 '나무를 심은' 적은 없었으니까요. 언제나 씨앗을 받아 나무를 키웠지, '나무를 심지' 않거든요. 아이들이 나무심기 행동을 한다 할 적에도 '나무를 심는 일'이 무엇인지를 슬기롭게 깨닫도록 돕는 책이기를 빌어요.

감은빛 2012-11-15 15:25   좋아요 0 | URL
이 책의 가치는 거기에 있는 듯 해요.
이 아이들은 어른들이 시켜서 나무를 심지 않거든요.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지요.
어른들이 말로만 떠들고, 싸우는 동안
아이들은 스스로의 깨달음에 의해 직접 행동하는 것.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루쉰P 2012-11-20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감은빛님 글이 책에 실렸군요. ^^ 왕가리 마타이라는 흑인 여성이 생각이 나네요. 아프리카에서 나무를 심으며 대 격투를 벌이던 여성이었는데 요근래에 자서전도 나온 듯 싶더라구요.
이 책에 감은빛님의 글이 실렸다면 안 살 수가 없죠. ㅋㅋ
저는 항상 여러 문제와 싸우고 있어요. '영원의 도읍'에서 주인공이 한 말인데요.
'항상 위기에 싸우고 있는 사람은 더 문제가 발생해도 담담하다.'란 그런 류의 말이었던 것 같아요. 인생은 고뇌나 문제가 없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저도 제 인생관이었는 데 20살 넘어 사회를 나오면 바뀌었어요.
인생은 고뇌나 문제가 있는 게 당연하다고 말이죠. 없는 게 이상하다고 ㅋ 인정하고 들어가니 좀 맘은 편하더라구요. 대신 그런 것들에 휩쓸리지 말자. 마음 먹었는 데 이런 10년 수양 도로아미타불 이라구. 집착어린 사랑에 빠져 완전 맛이 갔네요 -.-
요즘은 출근 전에 거울을 보며 내 마음은 태평양 미사일 수백만 발이 떨어져도 다 받아들이는 태평양이라고 외치며 집을 나서고 있어요. 풉!
암튼 감은빛님의 성지 순례 덕에 리뷰 하나 올렸습니다. ㅎㅎㅎㅎ 역시나 순례객의 발걸음이 무서워요. ㅋ 와 주시고 기다려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

감은빛 2012-11-20 13:20   좋아요 0 | URL
루쉰님,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맹렬히 환영합니다! ^^

이 책 맨 끝에 조금 포함된 건 제가 쓰긴 했지만,
엄밀히 말해서 제 글이라고 보기 어려워요.
자료조사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이 책에 어울리는 말투로 정보를 전달한 것 뿐이예요.

게다가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모자란 글이예요.
책에 제 이름도 안 나와있고 해서,
여기에 밝힐 생각이 없었는데, 책 소개를 하다보니 그냥 말하고 말았네요.

루쉰님 서평 기대됩니다.
지금은 여유가 없고, 이따가 꼭 찾아 읽을 게요! ^^

2012-11-21 0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21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 학교 텃밭 - 초등학교에서 많이 심는 채소 9종과 곡식 3종 가꾸기 철수와영희 그림책 5
노정임 글, 안경자 그림, 노환철 감수, 바람하늘지기 기획 / 철수와영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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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내가 지역의 생협 조합원들과 함께 텃밭을 분양받았다. 아내는 주말마다 나가서 열심히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곤 했다. 나도 아내도 도시에서 나고 자라서 농사라곤 지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아내는 같이 농사짓는 조합원들에게 배워가면서 즐겁게 일을 했다. 아주 가끔 나와 아이들도 함께 텃밭에 따라갔다. 초등학생인 큰 아이는 싹이 올라오는 모습을 신기하게 관찰했고, 조그맣던 싹이 점점 자라나 줄기가 굵어지고,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흐릿한 기억에 나도 그 나이때쯤 강낭콩을 심어서 몇 알을 밥에 넣어 먹었던 기억이 났다. 몇 알 되지도 않는 콩이 들어간 밥을 한술 뜨시며 아버지께서 칭찬해주셨던 말도 뒤이어 떠올랐다. 아이가 직접 농사를 지은 것은 아니지만, 아내의 텃밭을 지켜본 기억은 아마 오래 남을 것이다. 아내가 상추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쌈채소를 따오고, 방울토마토를 따오고, 고추를 따오고, 옥수수를 따올 때마다 아이는 엄마가 농사지은 채소들이 사먹는 채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아이의 학교에는 아직 텃밭이 없는데, 최근 초등학교에서 텃밭을 만들어서 이것저것 키워본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록 작은 텃밭이라 해도 고사리 손으로 농사를 지어본 경험은 아마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책을 펼치자마자 나오는 글에는 학교 텃밭을 통해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고 깨닫게 될지 잘 표현되어 있다. 직접 수확한 싱싱한 제철 채소를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특히 농사를 통해 정직한 노동의 가치를 깨닫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며, 살뜰히 보살핀 만큼 수확을 할 수 있어요.” 라는 저자의 말이 책을 다 읽은 후에도 계속 마음속에 남는다.

 

이 책 『우리학교 텃밭』에서는 초등학교에서 많이 심는 채소 9종과 곡식 3종을 가꾸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농사계획표를 짜고, 농기구와 거름을 준비하는 일부터 수확한 작물들을 깨끗하게 씻고 다듬어서 요리하는 방법까지 아주 친절하고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띄엄띄엄 아내의 텃밭을 살펴보곤 했던 나는 이 책을 읽고서야 아내와 아내의 동료들이 어떻게 농사를 지어왔는지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마운 흙’, ‘고마운 비’, ‘고마운 해’ 이런 식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 꼭 필요한 자연 환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고, 자칫 소홀히 생각하기 쉬운 자연의 가치에 대해 깨우쳐 주는 것도 마음에 든다. ‘고마운 풀’에서는 뽑아도 뽑아도 계속 나는 풀들 중에서도 나물로 먹을 수 있는 풀이 있으며, 또한 풀이 있어서 땅이 마르는 것을 막아주고, 땅의 힘을 길러준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고마운 벌레’에서는 식물과 곤충의 공생관계를 알려주고 특히 꽃가루받이를 가장 많이 하는 ‘벌’이 사라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상을 알려준다.

 

가장 마지막에 부록처럼 실린 내용들도 모두 흥미롭다. 올해 농사를 지은 수확물로 다음해에 뿌릴 씨앗을 얻는 방법이 그림으로 알기 쉽게 표현되어 있고, 천연 거름을 만드는 몇 가지 방법들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오줌과 똥으로 거름을 만들어서 사용하기, 빗물을 모아서 사용하기 등 학교에서 조금만 더 신경 쓰면 훨씬 더 텃밭 농사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백 마디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는 말을 이 책을 통해 또 한 번 깨닫는다. 도시에서만 자란 탓에 어렵게만 느껴졌던 텃밭 농사였는데, 책에 실린 그림으로 1년 농사 과정을 쭉 보고나니,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일은 아니구나 싶다. 아이들도 이 책을 본다면 흥미를 갖고 텃밭 농사를 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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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11-15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안에서 꽃그릇 하나 마련해(아무 플라스틱 상자도 다 되니까요)
아무 씨앗 하나만 심어도 돼요.
아무 씨앗을 안 심고 흙만 있어도 돼요.
숲에서 한 봉지 주워 와서
꽃그릇에 담고는 가만히 지켜보면,
햇볕이 잘 들고 빗물을 받을 만한 데에 두고 보면
온갖 풀이 돋아요.

사실, '텃밭'이란 집에 딸란 밭이란 소리인데,
주말농장은 '텃밭'이 아니거든요.
주말농장은 '멀리 찾아가서 일하는 논밭'이니,
집안이나 집앞에 진짜 텃밭을 마련해 보셔요.

감은빛 2012-11-16 11:41   좋아요 0 | URL
예전에는 베란다에 파와 방울토마토 등 몇개 야채를 길렀죠.
올해는 옥상에 스티로폼 상자와 큰 화분을 이용해서
상추와 고추 그리고 방울토마토 등을 길렀구요.

그런데 역시 밭에서 키우는 야채들이 더 잘 자라고, 많이 열리더라구요.
감자나 고구마 같은 것도 심어 먹을 수 있구요.
저희 텃밭은 완전 집 앞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었습니다.
동네 텃밭이었으니까요.
 

 

눈을 뜨면 그때부터 전쟁이 시작된다. 조금이라도 더 달콤한 꿈 속에 머물고 싶어, 이미 깨버린 잠을 다시 청해보지만, 인정사정없이 알람은 맹렬하게 울어댄다. 아이들을 깨우고, 씻기고, 먹이고, 틈틈히 나도 씻고, 아이가 남긴 밥을 먹는다. 시계는 어느새 나서야 할 시간을 가르키는데, 아이는 자꾸만 딴 짓을 한다. 예쁜 분홍색 바지가 싫다고 징징대는 아이에게 파란색 어벙벙한 바지를 간신히 입히고, 두터운 잠바가 싫다고 또 징징대는걸 겨우겨우 달래어 입혀서 나선다.

 

뛰고 또 뛰어서 간신히 출근시간 세이프. 컴퓨터를 켜기도 전에 이런저런 일거리들이 밀려들어온다. 각종 서류들과 메모지들을 살펴보면서 머리속으로 우선순위를 정한다. 순서대로 해야할 일들을 입력하면서 컴퓨터 부팅을 기다린다. 아참, 아무리 바빠도 커피는 한잔 마셔야지. 직장생활을 하기 전에는 소화가 안되어 커피를 마시지도 못했다. 한 잔만 마셔도 하루종일 속이 더부룩하고, 입맛이 없어서 입에 대질 않았는데,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하루에도 서너잔씩 마신다. 거래처를 방문할 때마다 나오는 믹스커피 한 잔. 졸릴때마다 마시는 믹스커피 한 잔. 정말 몇 년 전에 커피를 한 잔도 못 마시던 사람 맞나 싶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보면 어느새 점심시간, 아침을 제대로 먹지 못해 배는 고프지만,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다. 뭐 먹으러 갈까 하고 물어보는 동료에게 글쎄, 입맛도 없는데 아무데나 가자 하고 답한다. 밥을 먹는다기보다는 배를 채우는 행위에 가까운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 곧바로 컴퓨터 앞에 앉는다. 잠시 웹서핑을 하다가 다시 일을 시작한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슬슬 눈치를 봐야 한다. 꼭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사장님과 상사들이 먼저 퇴근을 하고 난 후에 일어서야 할 것 같다. 애들을 데리러가려면 서둘러야 하는데, 오늘따라 사장님 퇴근이 평소보다 늦다. 에라 모르겠다. 더 늦으면 어린이집에 혼자 남아 기다려야 할 작은 녀석에게 미안해진다.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서둘러 발을 놀린다.

 

지하철을 내리자마자 계단을 뛰어 오른다. 큰 아이는 학원에서, 작은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다. 1분 1초라도 먼저 가고픈 마음에 숨이 차도록 뛰어간다. 막상 만난 큰 녀석이 엄마를 먼저 찾는다. 엄마는 오늘 약속이라고 말해주면 입을 삐죽거린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듯한 눈치다. 웃는 얼굴로 잘 다녀오셨어요 라는 인사는 못할지라도, 엄마를 찾으며 울먹거리면 숨이 차도록 뛰어온 사람으로서는 화가 나게 마련이다. 이럴때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애써 화를 참고 아이를 달래면 아이는 오히려 더 짜증을 내고 엄마를 찾으며 우는 경우가 많다. 달래면 달랠수록 아이는 더 울고, 짜증은 더 낸다. 아이를 달래기만해서 쉽게 풀어진 경우는 거의 없다. 반대로 화를 내거나, 화를 내지는 않더라도 아이의 태도를 따끔하게 야단치면 아이는 처음에는 더 울거나 혹은 울음을 참으며 억지로 따라오지만, 조금 지나면 금새 태도를 바꾼다. 이후에는 오히려 아이가 먼저 이런저런 이야기를 재잘대며 잘 따라온다.

 

큰 아이를 만난 후엔 이제 작은 아이를 데리러 간다. 작은 녀석은 조금 걷다가 두 팔을 벌려 아나됴! 라고 말한다. 좀 더 걷자고 대답하고 손을 끌면, 이내 발을 질질 끌며 아나됴! 아나됴를 반복한다. 안아서 조금 더 걷다보면 그제서야 엄마를 찾는다. 엄마는 좀 있다가 올거야 라고 답하면 그말을 그대로 따라하면서 끝을 올려서 질문으로 답한다. 응 하고 크게 고개를 끄덕여준다.

 

하나는 안고, 하나는 손을 잡고 집에 들어선다. 아침에 급하게 나선 흔적이 역력하게 남아 있는 집은 말 그대로 엉망이다. 게다가 아이들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장난감과 인형 등을 꺼내 늘어놓는다. 냉장고를 열어봐도 마땅한 반찬거리는 없고, 딱히 먹고 싶은 음식도 없고, 대충 남아 있는 반찬들과 계란과 김으로 아이들 밥을 먹인다. 밥 먹다가 자꾸만 딴 짓하는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해가면서 밥 한 공기를 다 비운다. 아이들이 빨리 밥을 먹어야 상을 치우고 설겆이를 하던가 할텐데, 녀석들은 여전히 밥은 놔두고 장난을 치거나 딴 짓을 하고 있다. 잔소리도 하루 이틀이다. 화를 내고 밥그릇을 뺏고나서야 아이들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밥을 싹싹 긁어 먹는다. 빽 화를 내고 났더니 설겆이 할 마음이 싹 사라졌다. 아이들을 씻기기 전에 잠시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열어본다. 그 동안 큰 아이에게 학교 숙제를 다 끝내라고 일러두고, 작은 녀석은 언니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내 주위에서 놀게 한다.

 

시간이 좀 지나면, 큰 녀석에게 숙제 빨리 끝내라고 잔소리를 시작하고, 작은 녀석을 먼저 씻기기 시작한다. 씻기고, 닦고, 말리고, 바르고, 입히는 동안 또 소리를 몇 번이나 질러야 하는지. 그래도 다 씻은 후의 아이들은 밝고 예쁘다. 두 녀석의 뺨에 뽀뽀를 하고 잠자리에 눕힌다. 녀석들의 장난은 누워서도 계속된다. 어느 정도 까지는 봐주지만, 장난이 길어지면 아침에 일어날 때 힘들어하기 때문에 두 놈을 격리시켜야 한다. 유난히 늦게 자는 작은 녀석을 데리고 나와서 큰 녀석이 먼저 잠들기를 기다린다.

 

한동안 놀아주다보면 작은 녀석도 곧 졸리다고 코 자러 가겠다고 말한다. 작은 녀석까지 간신히 재우고나면 그제서야 나도 씻을 수 있다. 씻고 나와서 잠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가 졸리면 잠자리에 든다. 잠들기 직전, 문득 설겆이를 못한 것이 맘에 걸린다. 나중에 돌아온 애들엄마가 하겠지. 정안되면 내일 아침에 대충 하던가. 그러면서 다른 한 편으로 이게 사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남들이 얘기하는 티비 프로그램이나 영화나 음악 얘기 따윈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다. 친구 녀석은 맨날 나를 무슨 원시인이나 외계인 취급하고,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도 대화에 잘 끼질 못한다. 하고 싶은 일, 보고 싶은 영화, 듣고 싶은 음악은 많은데, 늘 일상에 쫓겨 겨우겨우 살아가는 내 모습이 참 한심하다 싶다. 피곤에 지쳐 겨우 겨우 잠이 드는 내 처지를 안타까워하면서도 어느새 잠이 든다.

 

 

 

 

 

 

 

 

 

 

 

 

 

 

 

 

 

 정신분석학이라면 의례 프로이트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한방에도 정신 질환 혹은 심리치료를 다루는 분야가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녹색당에서 만난 한 한의사는 공황장애를 전문으로 다루면서 정신 질환을 치료하는 분이었다. 장애인 무료 진료를 오랫동안 해오고 있고, 장기투쟁 사업장이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투쟁현장에도 달려가서 활동가들에게 무료 진료를 하는 분이었다. 지난 여름 그 분이 강정마을에 다녀온 후 들었다. 그 분 말씀이 이런 정신 질환에 처방하는 약은 오히려 흔한 질병에 쓰는 것보다 약값이 더 비싸다고 한다. 현장 활동가들이 많이 지치고, 일상적인 폭력에 시달리면서 마음의 상처가 깊은데, 제대로 치료하자면 돈도 많이 들고,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강정마을에는 불법으로 해군기지 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활동가들은 그것을 막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연행되곤 한다. 그 곳을 떠나야 치료를 시작할 수 있는데, 떠나지 못하고 계속 상처를 받아야 하는 처지의 활동가들을 생각하며 긴 한숨만 내쉴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지인으로부터 소개 받은 이 책의 저자도 역시 한방으로 정신 질환이나 심리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분이다. 폭식, 소화불량, 편두통, 습관성 음주와 흡연 등 우리 주변에 만연한 다양한 몸의 문제들이 사실은 마음의 문제는 아닐까 생각해왔다.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받는 갖가지 스트레스들이 결국은 몸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병원에서 이런저런 처방을 받아도 결국은 다 임시조치일 뿐이고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는 것이다.

 

요즘 누굴 만나던 '바쁘다'와 '정신없다' 그리고 '재미없다'는 말을 달고 산다. 그만큼 내 마음은 피폐해져서 상처를 받았다는 뜻일 것이다. 이 책을 차근차근 읽으며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쓰다듬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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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2-10-30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많이 바쁘시군요. 저는 시험 끝난지 이제 며칠 밖에 안 지났는데 이상하게 학교 생활이 여유롭지가 않네요, 책 읽고 글 쓰는 시간마저도 점점 줄어들고 있고요. ^^;;

감은빛 2012-11-12 17:46   좋아요 0 | URL
댓글 많이 늦었네요.
저만 그런게 아니라, 요즘 다들 바쁜 것 같아요.
이제 연말이 다가오니 더더욱 그런 듯 해요.
시루스님과 저에게 여유가 생기기를 바래봅니다. ^^

북드라망 2012-10-30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

감은빛 2012-11-12 17:4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이 글을 읽으셨다니!
부끄럽네요.
열심히 읽고 열심히 들여다보려고 노력중입니다.

조선인 2012-10-30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해까지 우리집 풍경이군요. 큰애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작은애가 일곱살 이상이 되면 한숨 돌릴 수 있게 됩니다. 그때까지 힘내세요!!!

감은빛 2012-11-12 17:48   좋아요 0 | URL
늘 희망과 용기를 주시는 조선인님.
그렇지만 거기까지 아직 여러해가 남았단 말이죠.
그리고 저는 하루하루가 참 힘들게 느껴지네요.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blanca 2012-10-31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쁜 하루, 감은빛님의 아이들은 자라서 아버지의 이 성실함과 따뜻함을 추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화이팅!

감은빛 2012-11-12 17:48   좋아요 0 | URL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이들이 기억해준다면 고마운 일이겠지요.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북극곰 2012-11-12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흑, 저의 일상하고 판박입니다. ㅠ.ㅠ
감은빛님 화이팅입니다!!!

감은빛 2012-11-12 17:4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북극곰님.
공감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북극곰님도 힘내시길 바랄게요!

hanicare 2012-11-15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조선인님 페이퍼에 달아놓으신 명료한 댓글을 타고 이 서재에 착륙했는데
바로 이 페이퍼를 읽고는 댁의 남편은 도대체 뭐 하시는데요?하고 답글을 달았다가
남의 가정사에 내가 왠 참견이람 싶어 넘치는 오지랖을 우산 접듯 착 접고는 댓글을 지웠습니다. 그리고 오늘 어떤 분의 피아노 연습 페이퍼에 달린 댓글을 보니 어이쿠 남자분이셨군요.
내 시야에 구멍이 숭숭 났나 도대체 어떻게 읽었길래 이런 황당한 착각을.
우스꽝스런 첫인사가 됐네요.아무튼 새 서재인을 발굴하게 되어 반가와요.
힘들다고 하시지만 행복해보이는데요^^


감은빛 2012-11-15 11:1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하니케어님(이렇게 불러드리는 것이 맞나요?)
먼저 찾아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되어 저도 반갑습니다! ^^

이상하게 제 글을 읽은 분들이 저를 여성으로 단정짓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이 글처럼 육아에 대한 글이 아니라도 그냥 서평도 그렇더라구요.
그런 착각이 처음은 아니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글에는 제가 아빠임을 드러내는 부분들이 여럿 있어요.
긴 글이고, 제 글재주가 워낙 미천하여 잘 이해하지 못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아이들 키우는 일도 그렇고, 세상 사는 일도 그렇고,
힘들고 지치지만 또 어느 순간에는 그게 행복이 아닌가 싶고 그렇더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