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르는 숲 - 미국 애팔래치아 산길 2,100마일에서 만난 우정과 대자연, 최신개정판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마치 비를 흠뻑 맞은 것처럼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젖은 머리칼이 자꾸 이마에 달라붙었다. 코로 흡입하는 산소로는 도저히 터질듯한 허파를 채우지 못해 입으로 가쁜 숨을 쉬어야 했다. 한발 한발 오르는 발걸음이 무거웠고,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이 비명을 질러댔다. 무거운 배낭은 어깨를 짓눌렀다. 눈으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기 위해 손등을 가져가는 동작조차 힘겨웠다. 무엇보다 목이 타들어 갔다. 물은 다른 일행의 배낭에 들어있었다. 내 배낭엔 쌀과 참치캔 등 식사거리만 잔뜩 들어있었다. 설마 다른 일행들과 떨어지리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물을 딱 한 방울만 마셔도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철퍼덕 바닥에 쓰러져버리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다잡고 한발씩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을 읽다가 오래된 옛 기억이 떠올랐다. 그와 그의 친구 카츠가 무거운 배낭을 메고 숲과 언덕을 걸어가는 모습이 마치 그날의 내 모습처럼 느껴졌다. 대학 1학년 때, 설악산이었다. 어려서부터 산동네에서 자랐고, 산을 자주 오르내렸기에 산행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행과 떨어져 혼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고, 곧 페이스를 잃어버려 거의 탈진 직전의 상황까지 갔다. 초반에 카츠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조소를 보내며 읽다가, 곧 그때의 내 모습을 떠올리고는 부끄러워졌다. 또 산행을 이어가면서 다양한 상황들이 등장할 때마다 다른 기억들도 떠올랐다. 영하의 날씨와 폭설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읽을 때는 군대에서 겪었던 한겨울 혹한기 훈련이 생각났고, 며칠씩 비를 맞아가며 걷는 모습을 읽을 때는 여름 유격훈련이 생각나기도 했다.

 

빌 브라이슨과 카츠가 시도했던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험난한 산길을 3천 360킬로미터를 걷는 것이다. 역자 후기에 의하면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백두대간을 종주한다면 대략 1천 400킬로미터 가량 될 거라고 한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의 절반도 안 되는 거리다. 그리고 책 마지막에 빌 브라이슨 스스로 걸었다고 밝힌 거리와 거의 비슷하다.(그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1천 392킬로미터 걸었고, 그건 전체 길이의 39.5%밖에 안 된다고 한다.)

 

비록 도중에 차를 얻어타거나, 택시를 타고 일부 구간을 건너뛰기도 했고, 바쁜 일 때문에 몇 달을 집으로 돌아와 지내기도 했고, 결국 종착지인 캐터딘을 밟지 못했지만, 그들은 온 힘을 다해 걸었다. 그것은 분명 그들의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을 것이다.

 

친하게 지냈던 후배는 대학 졸업을 1년 앞두고 학교를 그만두는 중요한 결단을 내렸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지금껏 막대한 등록금과 시간을 바친 학교를 떠났다. 그 결단을 내리기 전에 부산에서 강원도 양구(자신이 군 생활을 했던)까지 걸었다. 당시에 나는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후배는 더위에 시달리고, 비를 맞으며 약 한 달을 걸었다. 돌아와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학교를 정리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빌 브라이슨과 카츠와 그들이 만난 수많은 종주객들과 양구를 행해 걸었던 후배가 부러워졌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 제주 올레를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 걷는 길이 유행되는 현상도 이해가 되었다. 사람은 걷다보면 절로 복잡한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고 또 새로운 결심을 굳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6개월이나 애팔래치아를 걸을 수는 없겠지만, 가깝게 갈 수 있는 산과 숲을 자주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추천한 책이었다. 단순히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었던 경험만을 담아낸 책은 아니다. 빌 브라이슨의 다른 책을 읽었다면 아마도 잘 알 것이다. 특유의 위트와 유머 그리고 방대한 지식과 성찰이 엮인 훌륭한 작품이다. 그와 카츠의 좌충우돌 여행기도 재미있지만, 국가 정책이나 자본주의 문명 자체를 시니컬하게 비판하는 대목들도 흥미롭다. 가끔 등장하는 마치 신문기사 같은 느낌의 구체적인 사건사례나 역사적 지식들도 이 책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감초 역할을 해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숲과 자연을 존중하는 그의 철학적 태도와 사색들이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여러 지식과 그를 관통하는 위대한 사색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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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2-18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걷다보면 절로 복잡한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고 또 새로운 결심을 굳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 맞아요. 저는 아주 춥거나 비 많이 오는 날을 빼면 거의 하루 한 시간을 걷는 날이 많은데, 생각 정리에 정말 도움이 많이 되어요. 스트레스 해소에도 좋다고 의사가 말하던데요, 그건 걸으면서 심각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어서래요. 걷는 건 한가롭게 머리를 식히는 행위라고 하네요. 산책의 효용이 되겠죠. 걸으면서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해요.
걷는 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찾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2005년부터 걷는 취미를 가진 자로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

감은빛 2013-03-06 15:44   좋아요 0 | URL
답이 엄청나게 늦었네요! 죄송!

걷는 취미를 갖고 계시다니, 좋네요!
저도 평소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 두세 개 거리는 걸어다녀요.
좀 빨리 걸으면, 그리 시간차이가 나지도 않더라구요.

걷다보면 자꾸 글감이 떠오르는데,
빨리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자판 두드리고픈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막상 돌아와서 앉으면 또 멍하니 빈 화면을 보고 있기도 합니다.

순오기 2013-02-19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바쁘지 않으면 한 시간 정도의 거리는 걸어갑니다.
생각도 정리하고 운동도 하는 일석이조의 시간이죠.
이 책 우리 도서관에서도 구입해야겠어요.
3월부터 11명의 숲해설가들이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매달 1회의 숲해설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생태관련 도서를 더 장만하려는데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두 공주님들은 어린이집 잘 다니고 있지요? 많이 컷겠네요.^^

감은빛 2013-03-06 15:56   좋아요 0 | URL
답이 늦어 죄송합니다!
순오기님도 많이 걸으시네요.
생태관련 도서를 저도 많이 읽으려하는데,
시간도 부족하고 게으리기도 하고 생각만큼 잘 안되네요.

큰아이는 초등 2학년이구요.
작은아이는 어린이집 잘 다니고 있어요.
기억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바다맛 기행 - 바다에서 건져 올린 맛의 문화사 바다맛 기행 1
김준 지음 / 자연과생태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사람은 원하지 않아도 여러 가지 배경을 바탕으로 정체성을 가진다. 제일 크게는 성별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고, 성씨에 따라서(전주 이씨나 경주 김씨 등)도 다른 정체성을 갖게 된다. 이 사회에서는 부모의 경제력과 학업성적 그리고 직업 등이 아마 정체성을 결정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리고 고향과 현재 사는 지역에 따라 갖게 되는 정체성도 인간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나는 서른이 되기 전까지는 ‘부산싸나이’였지만, 지금은 그저 평범한 서울남성이다. 말투도 바뀌었고, 성격도 많이 바뀌었다. 가끔 고향 친구나 가족과 전화할 때는 예전의 그 억센 말투가 다시 나오곤 하지만, 평소에는 부산 사투리를 쓸 일이 없다. 빠르고 거친 말투가 차분하고 느려지니까 성격도 확실히 바뀌었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인간관계를 맺게 되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내가 처음 서울에 왔을 때, 가장 자주 들었던 얘기는 ‘해산물’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말이다. “부산에서 왔으면 회 좋아하겠네. 다음에 회 먹으러 같이 가자고. 내가 한 잔 살 테니.” 한때 내 직속상관이었던 분은 본인의 부산출신 친구 얘기를 몇 번이나 하면서, 그 친구가 그렇게 해산물을 그리워했다고 과장해서 말하곤 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들이 일부러 데리고 가준 횟집이 나는 영 별로였다. 요즘은 새벽에 잡은 해산물이 곧바로 서울로 온다지만, 그래도 바닷가에서 먹는 거랑 서울 시내에서 먹는 거랑은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건 아무리 말로 설명해줘도 직접 먹어보지 않고는 알기 어렵다. 확실히 맛은 그저 혀로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읽고 느낀 것이 바로 그런 점이다. 그냥 그저 먹는 것과 잘 알고 먹는 것은 다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동안 단순히 술안주로 먹어왔던 수많은 해산물들이 다르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겨울에 즐겨 먹었던 굴이었건만, 실은 그때가 가장 맛있는 때였다는 사실은 몰랐다. 사람들이 ‘가을 전어’라고 말할 때에도 그저 맛있게 먹었을 뿐, 왜 가을에 맛있을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뿐인가 올겨울 과메기를 맛있게 많이 먹었건만, 왜 구룡포 과메기가 유명한지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 외에도 이 책을 통해 다양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밴댕이가 사실은 반지라는 이름의 생선이라는 것. 오징어가 기후변화 때문에 동해를 떠나 남해안으로 내려왔다는 사실. 잡초로 여겨지던 함초(퉁퉁마디)가 사실은 부작용이 없는 명약이었다는 것. 김 양식장에서 김값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라 웬수로 여겨졌던 매생이가 요즘은 청정무공해 음식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 등 처음 알게 된 다양한 이야기들이 지적 호기심을 마구 자극했다.

 

안타까운 사실들도 많았다. 드넓었던 갯벌을 게판으로 만들었던 칠게가 무분별한 개발과 어민들의 과욕 때문에 사라져버렸고, 그래서 철새들도 발길을 끊었다는 것. 과메기의 원조였던 청어가 더는 잡히지 않아 이젠 꽁치로 과메기를 만든다는 사실. 그 흔했던 명태를 더 이상 구경하기 어려워 현상금까지 걸렸다는 사실 등을 읽으며 언젠가 우리가 즐겨 먹었던 음식들을 다시는 구경하기 어려운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책에 의하면 전어도 몇 해째 어획량이 감소하고 있다고 했다. 흑산도 홍어도 남획으로 어장이 사라졌다가 간신히 회복되는 중이라고 했다. 과메기는 다행히 비슷한 맛이 나는 꽁치로 대체되었지만, 이제 청어 과메기는 더는 맛보기 어렵다.

 

이 책에는 다양한 해산물들에 대한 지식도 들어있지만, 그들에 대한 역사적 기록들도 들어있다. 이게 또 무척 흥미롭다. 과연 우리 조상은 언제부터 이들을 먹었던 건지. 당시에는 어떻게 먹었던 건지 하는 것들 말이다. 가장 많이 인용되는 책이 바로 정약전의 [자산어보]다. 정약용의 형으로 유배지인 흑산도에서 어부들에게서 듣고 배운 것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덕분에 지금 우리가 해산물의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에도 서울 사람들이 전어를 많이 먹었다는 사실이 흥미롭고, 전복이나 밴댕이를 임금에게 진상하기 위해 따로 관리를 파견하여 관청을 두었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단순히 바다생물과 음식에 관한 이야기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 이야기가 들어있다는 점이 무척 반갑고 좋다.

 

바다맛 기행은 단순히 맛집을 소개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소개하는 여행 책이 아니다. 생물에 대한 지식과 역사와 문화를 다루고 있다. 다 읽고 보니 ‘바다에서 건져 올린 맛의 문화사’라는 부제를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저자가 말한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으로 해산물을 찾아 먹어봐야겠다. 여름에는 양반들만 먹었다는 민어복달임을 꼭 먹어보고 싶고 또 송도에서 된장빵으로 병어도 먹어보고 싶다. 칼로 썰지 않은 전복을 그대로 베어 먹으면 진짜 더 맛있는지도 궁금하다. 아! 생각만 해도 자꾸 입에 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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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3-02-16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감은빛님 리류를 읽으니 절로 침이 입에 괴네요.저도 이책 읽어봐야 될것 같아요^^

감은빛 2013-02-18 12:33   좋아요 0 | URL
그렇죠? 생각만해도 자꾸만 침이 흘러요. ^^
한번 읽어보세요. 재밌어요.

2013-02-18 0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8 1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또 야근을 했다. 작년 연말부터 새로 맡은 업무가 영 손에 익지 않아 자꾸만 일이 밀리고 쌓인다. 계속해오던 고유 업무들과 새로 시작하는 업무들이 머릿속에서 뒤엉켜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아도 될 일이라 생각되는데, 막상 해보면 시간이 엄청 걸린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름 똑똑하고 유능하다고 잘난척하면서 살았는데, 이거 완전 낭패감이 든다.

 

 

 

12시가 넘기 전에는 그래도 지하철 막차는 타야지 생각했는데, 12시를 딱 넘기는 순간부터 지하철은 포기했다. 이틀 연속 새벽까지(물론 전날엔 일을 한 건 아니었지만) 버티며 잠을 못 잔 탓에 이미 뇌는 그 한계에 달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잠을 못 잔 시간에 비하면 생각보다 몸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택시를 탈 것인가, 사무실 차량을 이용할 것인가 고민을 했다. 솔직히 택시비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멀쩡히 놀고 있는 차가 있는데, 택시비를 쓰는 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오는 줄은 몰랐다. 물론 눈이 올 거라는 소릴 들은 기억은 났다. 새벽 1시 건물을 막 나섰을 때에는 눈이 거의 내리지 않았고, 거리에도 쌓이지는 않았다. 쌓일 눈은 아니라고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새벽임에도 일부 구간은 정체 상태였다. 피곤했고, 어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좀 답답했다. 우리 차였으면 훨씬 과감하게 운전했을 텐데, 자주 몰던 차가 아니라 조심스러웠다. 게다가 눈이 계속 흩뿌렸고, 밤이라 시야가 좁아서 더 조심스러웠다.

 

 

 

집 근처에 도착하니 도로 사정이 갑자기 훨씬 나빠졌다. 바닥에 눈이 쌓이기 시작했고 언덕을 올라가는 입구에는 이미 접촉사고가 난 차량 두 대와 경찰차 한 대가 길 한쪽을 막고 있었다. 조심스레 그들을 지나 언덕을 향해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사고 현장을 지나는 순간 갑자기 두뇌가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오르막길엔 눈이 쌓였을 것이다. 하지만 차가 못 오를 정도로 많이 쌓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오를 수는 있을 것이다. 조심해서 잘 오르면 될 것이다. 오르막길을 단숨에 오르지 않으면 위험할 수도 있겠다. 짧은 순간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났다.

 

 

 

언덕을 오르는 순간부터 바퀴가 미끄러지며 날카로운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차는 언덕을 올랐다. 이대로 멈추지 않고 쭉 올라가야 한다. 여기서 멈추는 순간 끝장이다! 가속패달을 밟는 발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다고 너무 속도가 올라가면 제어가 어려우니 적당히 힘 조절을 해야 했다. 언덕길의 중반 즈음부터 바퀴가 제멋대로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바퀴는 맹렬히 헛돌았고, 그때마다 나는 빠르게 핸들을 좌우로 돌려댔으나, 차는 내 의지와는 달리 자꾸만 남의 집 담벼락을 향해 다가갔다.

 

 

 

짧은 순간 마치 영화에서 폭풍을 만난 조타수가 배의 키를 빠르게 좌, 우로 끝까지 감았다가 풀었다가를 반복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핸들을 좌, 우로 빠르게 끝까지 감았다가 풀기를 반복하는 내 모습이 딱 그랬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무의식중에 이마를 닦아낸 손등엔 흥건하게 땀이 묻어났다. 그냥 차를 버리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저 위가 집인데, 이 짧은 거리가 그렇게 멀게 느껴질 수 없었다. 앞도 잘 안 보이는 좁은 차 안에 갇힌 내 모습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강하게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차를 갖고 오지 말걸. 그냥 이번에도 택시를 탈 걸. 젠장!

 

 

 

차는 조금씩 미끄러지다 나아가다가 다시 반대 방향으로 미끄러지기를 반복했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고 오르막을 올랐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드디어 내가 사는 빌라 지하 주차장 입구까지 올라왔는데, 이런! 누군가 입구를 차로 막아놓았다. 누구 짓인지는 뻔하다. 위층 아주머니는 운전이 매우 서투른 편인데 자주 차를 몰고 나가셨다. 좁은 지하 주차장에 여러 대의 차가 들어가 있으므로 바짝 붙여서 주차를 해줘야 나머지 차량이 드나들 수 있는데, 자꾸만 앞을 널널하게 비워두고 입구를 막아 놓곤 했다. 게다가 이중, 삼중 주차를 해놓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대 놓은 차량은 모두 열쇠를 공유하고, 나가는 사람이 알아서 막고 있는 차를 빼고 나가야 하는데, 이 아주머니는 본인 차도 여기저기 막 긁고 다니는 편이라 남의 차를 절대 몰지 못한다. 평소에도 이 분 때문에 불편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결국, 이 난국에 이 아주머니가 또 크게 한 건 해주시는구나.

 

 

 

짧은 순간 판단했다. 여기서 멈추면 곤란하니, 일단 조금 더 올라가서 오르막길 끝에 평평한 골목으로 차를 올려놓고 다시 주차 공간을 찾아야 했다. 비탈길을 다 올라와서 차를 세우고, 비상등을 켜놓고, 차 문도 닫지 않은 채 뛰어 내려갔다. 자세히 살펴보니 차가 간신히 들어갈 것처럼 보였다. 올라오는 방향에서라면 좀 더 쉽게 들어갈 테고, 내려가는 방향에선 좀 어렵겠지만 그래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차를 돌려 내려오기 전에, 지하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입구 내리막의 눈을 먼저 치웠다. 이 좁은 곳에서 차가 미끄러진다면 손쓸 틈도 없이 벽에 부딪힐 것 같았다. 차고 구석에 놓인 빗자루로 열심히 눈을 쓸었다. 생각보다 힘들었다. 쓸다가 차가 올라온 바퀴 자국을 보니 지그재그로 위태롭게 올라왔음이 느껴졌다. 불안해서 차가 내려올 바퀴 위치를 따라 골목길의 눈도 치웠다. 한참 걸렸다. 다시 온몸은 땀에 젖었다.

 

 

 

이제 차를 돌려서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눈을 치워둬서 이번엔 크게 미끄러지진 않았다.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판단을 잘못했음을 깨달았다. 내려오는 방향에선 도무지 각도가 안 나왔다. 몇 차례 굉음을 내면서 왔다갔다를 반복했는데, 상황이 점점 더 나빠졌다. 차가 큰 각도로 거꾸로 뒤집어져서 후진 기어를 넣어도 앞으로 미끄러졌다. 입구 한쪽을 막고 있는 그 차에 부딪히기 직전 간신히 멈추고선 왼발로 브레이크를 밟은 상태에서 서서히 떼면서, 오른발로 가속패달을 밟았다. 차를 한참 뒤로 빼놓고, 막고 있는 차를 먼저 움직이기로 했다. 아!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한 상황이었으면 이 짓을 먼저 해놓고, 차를 끌고 왔을 텐데. 그 차의 열쇠를 찾아 최대한 벽과 앞차에 가깝게 다시 주차를 해줬다. 이제 입구에 한결 여유가 생겼다. 그새 다시 쌓인 눈을 빗자루로 쓸고, 아까 왔다 갔다 하는 과정에서 유난히 바퀴가 헛돌았던 지점들을 찾아서 얼어붙은 눈을 치웠다.

 

 

 

이번에도 입구에서 두어 번 왔다갔다 하긴 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차를 지하 주차장에 넣을 수 있었다. 머리칼과 겉옷은 눈에 젖었고, 속옷은 땀에 흠뻑 젖었다. 주차장을 빠져나오며 보니, 내일 아침에 다시 차를 끌고 출근할 일도 걱정이었다. 지금 눈을 좀 치워두면 그래도 낫겠지. 다시 빗자루를 들고 나와 집에서 내려가는 방향의 눈을 좀 치웠다. 이미 힘을 많이 쓴 상황이라 팔에 힘이 잘 안 들어갔다. 대충 쓸다 말고 도저히 더 못하겠다 싶어 포기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시계를 보니 3시가 넘었다. 대략 1시간 반을 눈을 쓸고, 차를 주차하는데 허비했다. 택시를 타고 왔으면 2시 전에 잠들었을 텐데. 샤워를 하고 누웠는데, 오히려 잠이 오지 않았다. 방금 치른 일들이 마치 먼 옛날 일이거나, 꿈속의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아침에 나와보니 골목길 눈은 차가 다닐 수 있을 만큼은 치워져 있었다. 지하 주차장에서 골목길로 나오는 그 짧은 구간의 눈만 대강 치우고 무사히 빠져나왔다. 간밤에 그 피곤한 상태에서, 그 고생을 한 걸 다시 떠올리니 끔찍했다. 다시 하라고 한다면 절대로 못할 일이었다.

 

 

※ 본문과 관계없는 책 이야기

 

 

 친구에게 책선물을 받았다.

 앞부분을 조금 읽고 있는데, 역시 고미숙 선생님이다.

 천천히 즐기면서 읽고 싶은데,

 막 속도가 붙어서 금방 끝내버릴까봐 걱정이다.

 

 

 

 

 

 

 

 지난 달에 받았는데, 아직 읽지 못했다.

 솔직히 여기에 담긴 절절한 사연들에 몰입하게 될까 봐

 겁나서 조금 망설여진다.

 그래도 꼭 읽고 소개해야 할 책이라 생각한다.

 잊혀진 아니 친일파와 미군정에 의해 의도적으로 삭제된

 반쪽 역사를 다시 되찾아야,

 이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책들이 더 많이 출간되고,

 더 많이 읽혀야 한다.

 

 

 

 패스트푸드와 슬로푸드에 이어 새로운 개념이 나왔다.

 음식문맹자와 음식시민.

 따지고보면 그렇다.

 몸에 나쁜 음식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건 음식이나 재료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인간이 그렇게 만들것이 문제이다.

 인간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게 제대로 된 용어로 보인다.

 자, 당신은 음식문맹자인가? 음식시민인가? 

 

 

 

※ 읽고 싶은 책은 점점 늘어나고, 지금도 보관함과 장바구니에는 새로운 책들이 쌓여간다. 어디 독서휴직이나 독서휴가 같은 건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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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3-02-06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오랜만이예요. 늘 글은 잘 읽고 있답니다~
항상 극적인 삶(!)을 사시는 것 같아요. 때로는 고단하지만, 그래도 성실히 열심히 사시는 것 같아 응원하고 싶네요^^
저도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면 차 끌고 다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예요.
최근에 스노우타이어 대신 타이어에 뿌리는 스프레이 하나를 샀어요. 그거 뿌리니까 눈길에서도 2시간 정도는 괜찮더라구요. 미리 장만해 놓으셨다가 사용해 보시는 것도 괜찮으실 것 같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더욱 건강하세요^^

감은빛 2013-02-08 12:4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현맘님.
저는 최근엔 찾아뵙지 못했는데, 이제 가볼게요. ^^
극적인 삶이라! 조금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주변 친구들도 가끔 그런 말을 하더라구요.

스프레이가 있군요!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스노우타이어는 비싸고, 눈 안내릴때 쓰기에는 아깝죠.
타이어 닳는 속도가 또 장난이 아니니까요.

설 연휴 고생하시겠죠?
힘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조선인 2013-02-07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읽기만 해도 진땀이 나네요.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감은빛 2013-02-08 12:47   좋아요 0 | URL
네, 그땐 차 안에서 정말 후회를 많이 했어요.
긴 글 읽고,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조선인님.

Shining 2013-02-07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집중력으로 리액션을 발휘해가며 읽었습니다. 혹시 다치신건가, 아니야 다치셨으면 이 글을 못 쓰고 계실거야.. 하면서ㅠ 큰 일이 없었다니 다행이에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은빛 2013-02-08 12:49   좋아요 0 | URL
염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당시엔 1초에 한번씩 담벼락에 차가 들이받는 상상을 했습니다.
무사히 차를 주차해놓고 집에 들어가기 전에,
차가 올라온 궤적을 보면서,
미친 짓을 했구나 싶었어요!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샤이닝님.

북극곰 2013-02-07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정말 식은 땀이 삐질.
계속 이렇게 피곤해서 어쩌십니까요?

고미숙 님의 저 책도 좋군요~
'동의보감'이 있던 터라 살짝 망설였는데 또 훅 끌리네요~!


감은빛 2013-02-08 12:55   좋아요 0 | URL
북극곰님, 염려 말씀 고맙습니다!
근데 이 글 쓴 날도 역시 야근했어요. 새벽 3시까지.
그리고 어제는 11시쯤 기절하듯이 쓰러져 잤습니다.
내일 아침엔 좀 게으름 피우며 늦잠 자고 싶네요.

고미숙 쌤 말로는 자신의 사주팔자에 숫자 3이 있어서,
책도 3권 세트로 낸다고 하네요.
열하일기도 3종세트,
동의보감도 3종세트,
달인시리즈도 3종세트를 냈다구요.
이 책 읽어보시면 [동의보감]과는 또 다른 맛이 있습니다. ^^

아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꿈꾸는섬 2013-02-08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ㅜㅜ정말 아찔한 이야기였어요. 고생많으셨네요. 정말 다행스럽구요.

감은빛 2013-02-08 12:57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 님, 고맙습니다!
모두들 염려해주신 덕분에 아무 일 없이 무사했던 것 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새벽형 인간

 

오늘 하루는 그냥 푹 퍼질러 자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한 아침이었다. 알람이 머리 옆에서 울리는데, 어디 멀리서 울리는 음악 소리처럼 느껴졌다. 피곤했다. 눈을 떴으나 눈꺼풀의 무게를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고 다시 감겨버렸다. 눈을 뜨지 못한 채 간신히 더듬더듬 휴대폰을 찾아 알람을 멈췄다.

 

 

 

매일 아침마다 느끼는 건데, 나는 단연코 새벽형 인간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온 가족이 다 같이 단칸방에 살 때는 엄마가 그만 자야 한다고 말하면, 누워서 이불을 덮어쓰고 자는 척했으나, 실제로는 모두 다 잠들 때까지 온갖 공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가만히 누워(자는 척하면서) 몇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나중에 방 두 칸짜리 집으로 옮긴 후엔, 나와 여동생이 작은 방에서 지냈다. 그때도 처음엔 불을 끄고 자는 척하다가 동생이 잠들고, 엄마가 큰 방에 들어가시고 나면, 불을 켜고 책을 읽었다. 책을 읽다가 저절로 잠들곤 했다. 조금 더 자라서는 밤에 만화를 그리거나 글을 쓰기도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도 이 습관은 고쳐지지 않았다. 늘 새벽까지 책을 읽거나 뭔가를 끄적거렸다. 대학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새벽까지 깨어있는 일이 너무나도 익숙하기에 늘 가장 늦게까지 남아서 술을 마셨다. 학원 강사 생활을 할 때는 자정 무렵 퇴근해서, 그때부터 아침까지 술을 마셨다. 아침에 잠들고, 점심때쯤 깨서 간단히 밥을 먹고 출근하곤 했다. 책과 끄적이는 일이 술로 바뀌었을 뿐, 나는 늘 새벽까지 뭔가를 붙들고 있었다.

 

 

 

새벽이 되면 뭔가 대단한 걸 쓸 수 있을 것처럼 창작욕이 불타오른다. 어제도 그랬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일어나야지 생각했다. 최근에 너무 피곤한 나머지 아이들을 재우다가 나도 함께 잠든 경우가 많았는데, 오늘은 꼭 일어나서 뭘 좀 해야지. 큰아이가 먼저 잠들고, 한참 후에 작은아이의 숨소리도 고르게 쌔근거리기 시작했다. 슬며시 휴대폰과 안경을 챙겨 일어났다. 작은 방으로 건너와 컴퓨터를 켜고, 끄적이다 멈춘 습작들이 들어있는 폴더를 열었다. 쓰다만 단편소설들이 몇 개 있고, 장편소설의 설정을 끄적여 놓은 것이 두어 개 있었다. 무얼 한번 건드려볼까? 파일 하나를 열었더니, 처음 이 설정을 잡았을 때의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 왜 이런 유치한 설정을 잡았을까? 이걸 어떻게 고치면 좀 더 개연성이 좋아질까? 고민하다가 정보를 찾기 위해 인터넷 서핑을 시작한다. 서핑을 하다보면 원래의 목적은 곧 사라진다. 서서히 눈에 피로가 몰려오고, 조금씩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머리는 아주 천천히 굴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실시간 검색어나 주요 뉴스를 타고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훌쩍 지나있다. 저런! 결국, 오늘도 글을 한 줄도 쓰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했다. 더 버티면 내일 출근이 힘들어진다. 이젠 자야 한다. 조금이라도 눈과 뇌를 쉬어줘야 내일 일을 할 수 있다. 애초에 욕심이 지나친 것이었다. 낮엔 일을 하고, 저녁엔 아이들을 돌보고, 새벽에 글을 쓰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아쉬움과 안타까운 마음을 접으며 폴더를 닫고, 컴퓨터를 끈다.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몸과 마음이 무겁다.

   

 

 

최악의 마감

   

지역 언론에 한 달에 한 번 아이들 이야기로 글을 쓰기로 했다. 작년 연말에 첫 글을 보내고, 1월 마지막 날에(정확하게는 2월 첫 날의 새벽이지만) 두 번째 글을 보냈다. 보고서든 에세이든 마감일을 딱 정해줘야 바로 전날 밤을 새워서 글을 쓰는 편이라 미리 알려달라고 말씀드렸는데, 그냥 월말까지 달라고 표현하셨다. 솔직히 1월 마지막 날이 되도록 잊고 있었다. 퇴근 시간에 문자를 받았는데, 오늘까지 원고를 주기로 했다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월말이라고 했지. 어차피 말일에는 정산업무 등으로 야근을 해야 할 상황이라 빨리 업무를 마무리하고 사무실에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녁을 먹고 나니 집중력이 확 떨어졌고, 업무는 자꾸 늦어졌다. 새벽으로 넘어가서야 어느 정도 업무를 마쳤다 싶었는데, 갑자기 프로그램에 오류가 생겼다. 어라! 이거 왜 이래? 지금 장난하는 거지? 왜 이러는 거야? 내일 아침까지 꼭 마무리해야 하는데, 지금 이러면 어쩌라는 거야? 아침에 출근해서 자정이 지나도록 컴퓨터만 들여다보고 있었으니, 눈이 너무 피곤했고, 머리는 무거웠다. 오류를 해결해야 하는데, 도무지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으려나? 오류 해결을 포기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1월 중순에 대략 어떤 콘셉트의 글을 써야지 생각해둔 것이 있어서, 가볍게 시작했다. 한참을 두드리다가 뭔가 좀 초점이 안 맞는 느낌이어서 다 지우고 다시 두드리기 시작했다. 두드리고 지우고, 두드리고 다듬고, 다시 두드리고 또 지우기를 여러 차례. 한 서너 시간 두드리다 보면, 대충 이 정도면 괜찮겠지 싶은 글이 나오는데, 이번에는 워낙 핀치에 몰린 상황에서 시작해서 그런지 시간이 지나도 글이 더 나아지지 않았다. 읽어보고 또 읽어봐도 뭔가 부족해 보였는데, 도무지 그 부족함을 메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이번 달엔 그냥 보내야지. 더 이상은 쓸 수가 없었다. 잠시 후 다시 오류가 났던 프로그램을 살펴봤다. 이번엔 뜻밖에 간단하게 해결책을 찾았다. 시간은 새벽 3시가 넘었다.

 

 

 

사무실에는 잠잘 공간이 없다. 집에 돌아가서 씻고 발 뻗고 자고 싶었다. 택시비는 대략 1만 5천 원. 사무실 차량을 몰고 갔다가 아침에 가져올까 생각도 해봤는데, 너무 피곤해서 운전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택시를 타기로 마음먹고, 거리로 나섰는데 비교적 외진 곳이라 과연 택시가 올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마구 할퀴었고, 다리와 이빨이 덜덜 떨렸다. 몸은 춥고, 머리는 멍했다. 이러다가 피로와 저체온증으로 나도 모르게 쓰려지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서 차를 몰고 나올까? 한참을 심각하게 고민할 즈음 택시 한 대가 멀리서 다가왔다.

 

 

 

집에 돌아온 시간은 4시가 넘어서였다. 씻고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면서 이제껏 최악의 마감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아쉬움은 있었으나, 더는 손 쓸 방법이 없었다.

 

 

 

 

 

 

 

 

 

 

 

 

 

 

 

 

 

꼭 내고 싶은 책 중에 하나는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었다. 육아휴직을 했을 당시엔 욕심을 좀 내보려고 했으나, 곧 현실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물거품이 되었다. 조금 여유가 생길때마다 블로그에 끄적이곤 했는데, 가벼운 끄적임에 불과했다. 이번 지역 언론에 보내는 글도 한 달에 한번씩인데다 글의 분량도 작고, 통일성 있는 기획으로 이어가기가 어려워 책으로 엮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심은 남아있다. 내가 조금 더 부지런해진다면 언젠가는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딱 내가 쓰고 싶었던 책이 나왔다.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소제목들을 읽어보니, 딱 내가 하고싶었던 그런 얘기들이 실려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무지 재미있을 것 같다. 일단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함께 지를 책을 고민해봐야겠다. 어쩌면 퇴근길에 서점에 들러 먼저 구매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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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5 14: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05 15: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3-02-05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일단 장바구니에 넣었어요. 아이와 노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하는 제부 생각이 나서요. 제가 먼저 읽어보고 제부에게 줘야겠어요.

아직 오후시간이 좀 남아있어요. 커피 한 잔 드세요, 감은빛님.


감은빛 2013-02-05 15:08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커피를 마셔도 머리가 멍해요.
잠 좀 깨고 정신 차리려고 찬 바람을 맞아도,
돌아와서 책상 앞에 앉으면 다시 멍한 상태로 되돌아가네요.

다락방님의 제부님께서는 아이와 노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 아닐거예요.
잘은 모르지만 아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
함께 있는 것이 뭔가 어색하고, 자연스럽지 않은 것일지도 몰라요.

암튼 좋은 책임은 틀림이 없을텐데,
부디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잘잘라 2013-02-05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를 키우는 아이라.. 저는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는데도 이상하게도 무척 공감되는 제목입니다.

감은빛 2013-02-05 15:08   좋아요 0 | URL
[아빠를 키우는 아이]예요.
웬만한 아빠들은 다들 공감할 만한 제목이예요.
저도 딱 제목을 보자마자 고개가 끄덕여졌거든요.

잘잘라 2013-02-05 18:59   좋아요 0 | URL
클릭해서 목차까지 읽어보았더랬는데 제목을 제 맘대로 지어버렸네요. 에혀.. [아빠를 키우는 아이]도 공감이 됩니다. ^^

북극곰 2013-02-06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 보니까 정말 무슨 내용일지 알 것 같네요.
나에 대한 성찰을 끊임없이 하게 만드는 일이네요, 아이를 키운다는 건. :)

아이 둘 재우고 안경과 휴대폰을 챙겨 슬쩍 일어나는 모습이 저랑 똑같아요! ㅋ
아이들 재우다보디 자꾸 같이 잠들어서 요즘엔 새벽 4시에 알람을 맞춰놓는데
추운 겨울 새벽 4시에 일어난다는 일도 만만치 않아요. 실행률이 거의 제로. ㅠㅠ

오늘은 조금 더 여유있는 하루 맞아하시길 바랍니다. :)


감은빛 2013-02-06 16:16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공감가는 제목이죠?
저도 우리 아이들에게 늘 뭔가를 배우곤 합니다.

겨울에는 유난히 새벽에 깨기가 더 힘들어요.
깨더라도 이불 밖으로 나오기가 싫어지구요.
실행률 제로 역시 저와 비슷하세요! ^^

어제도 또 잠을 못 자서, 오늘도 피곤한 하루입니다.
힘드네요! ㅠ.ㅠ

깐따삐야 2013-02-06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달이가 잠들고 밤 11시부터 12시 사이 즈음에 조심조심 스탠드를 켜놓고 읽고 싶은 책도 읽고 메모도 하고 그래요. 아이가 예민해서 차마 다른 방에서 컴퓨터를 켜거나 노트북을 돌릴 생각은 못하구요.ㅠ 감은빛님의 빠듯한 일상 틈틈이 쓰고 싶은 열망이 절절히 느껴지는 페이퍼에요. 좋아요.

감은빛 2013-02-06 16:19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상황을 충분히 공감합니다.
지금은 밤에 잘 자지만, 큰아이가 어렸을 때는 많이 예민했어요.
낮잠을 자다가도 옆에 사람 기척이 없으면 깨고,
밤에도 자주 깨서 울곤 했지요.
다행히 작은아이는 밤에 잘 자는 편이예요.

공감해주시고,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2013-02-06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06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섬 2013-02-06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낮에는 일하고, 저녁엔 아이들 돌보고, 밤(새벽)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쉽지 않죠.ㅜㅜ 전 집에만 있는데도 그 일이 어려운데 말이죠.ㅜㅜ 저는 좀 더 많이 부지런해져야할 것 같아요. 감은빛님 다음번엔 마감전에 원고 넘기시고, 여유부리시면 좋겠어요. 힘드시겠지만요.^^ 추운날 건강조심하세요.^^

감은빛 2013-02-08 13:00   좋아요 0 | URL
제가 욕심이 많은 편인 것 같아요.
감당하지도 못할 일을 자꾸 만드네요.
지금도 해야할 일들이 자꾸만 밀리고 또 쌓이고 있어요.
다음 주엔 또 하나의 원고 마감이 있는데,
과연 여유있게 끝낼 수 있을까요?
불가능해 보입니다. ㅠ.ㅠ
 

 

 

어렸을 때 되고 싶었던 직업 중 하나는 서점 주인이었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수많은 책들이 쌓여있어 사람들 지나가기도 어려운 그런 서점. 온종일 책 읽고, 책 좋아하는 사람들 만나고 대화를 나누면 참 좋겠다 싶었다. 물론 지금은 안다. 서점 주인은 서점 경영과 각종 잡무 때문에 맘 편히 책 읽을 시간 따위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작은 서점은 아무리 운이 좋아도 살아남기 어렵다. 왜곡된 유통구조 때문이다.

 

 

 

도서정가제 때문에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다. 지난 논란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다른 온라인 서점들의 대응이 없는 상황에서 알라딘이 갑자기 반대 서명을 띄우면서 알라딘 서재에서 더욱 논란이 되고 있는 듯하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알라딘은 반대 서명이 아닌 찬반을 묻는 게시판으로 전환했고, 몇몇 출판사들이 알라딘에 출고 정지를 선언했다. 이 복잡한 국면을 바라보는 것이 참 씁쓸하다.

 

 

 

가만히 있으려고 하다가 나도 모르게 몇몇 게시글에 댓글을 남기게 되었다. 대부분 추측으로 이루어진 정보에 대한 보완 설명 개념으로 댓글을 남겼는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어 나도 따로 글을 하나 남긴다.

 

 

 

 

 

내가 보기에 이번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안 발의에 대한 독자들 논란의 핵심은 책값이다. 그래서 책값이 싸다, 비싸다 하는 말들이 자꾸 오가는 듯하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도서정가제(즉 출판문화산업진흥법)는 엄밀히 말해서 정가제가 아니다. 일부 출판인들은 이를 '할인촉진법'이라고 부른다. 이 법은 이름과는 달리 정가판매가 아닌 할인판매를 부추기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 이상한 법 덕분에 온라인 서점은 맘껏 책값을 할인하고, 마일리지를 제공하면서 독자를 모아왔다. 그리고 출판사도 조금 더 많은 책을 팔기 위해 여기에 편승했다. 그리고 할인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반 서점들은 점점 더 설 곳을 잃어갔다. 책이 팔리지 않으니 서점에서 출판사로 대금결제를 해주기가 어렵고, 출판사 입장에서도 책이 팔리지 않는 서점들보다는 책이 더 잘 팔리는 온라인서점으로 집중했다. 시간이 갈수록 온라인서점은 시장 점유율을 높여갔고, 이제 매우 큰 힘을 갖게 되었다.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이 법이 정말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서시장에서 유독 온라인서점에만 매우 유리하게 만들어진 이 법 덕분에 출판사와 독자들은 알면서도 계속 온라인서점의 힘을 키워줬다. 아니 도서의 정가가 뻔히 정해져 있는데, 책을 반값에 파는 것이 정상인가? 그럴 거라면 왜 애초에 정가를 반으로 책정하고, 할인 없이 팔아야 하는 거 아닌가? 앞서 현행 제도를 '할인촉진법'이라 부른다고 했다. 이 법 덕분에 출판사도 독자도 마치 할인을 안 하면 안될 듯한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인 판매를 하지 않는 출판사들도 많다. 아마 시장 점유율로 따지면 상대도 안 되겠지만, 숫자로만 따지면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우리가 책 할인 판매에 익숙해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온라인서점이 처음 생기고 자리를 잡은 것 자체가 오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할인 판매라는 관행이 강하게 굳어져 간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이름과는 달리 할인을 권하는 이상한 법 때문에 불공정하고 기형적인 유통구조가 자리 잡았고, 점차 굳어져 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를 바로 잡는 것이 정상으로 보인다.

 

 

 

내가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가장 강하게 깨달은 것은 작년 여름 [안철수의 생각]이 출간되었을 때였다. 당시 책이 출간되기도 전에 큰 주목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온라인 서점이나 오프라인 서점이나 독자들이 책을 많이 찾았다. 온라인 서점들은 아마 예약 판매를 했을 테고, 출판사로부터 차질없이 물량을 제공받아 팔았지만, 오프라인 서점들은 책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단골들이 책 나오기 전부터 예약해두고, 드나드는 독자들이 책을 찾아도 책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니! 그에 반해 대형서점들과 온라인서점들은 책을 쌓아놓고 팔았다.

 

 

 

당시 SNS를 통해서 황당한 글을 읽었다. 7월 25일 오전에 교보문고 광화문 매장 앞에서는 '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낙하산 인사 규탄 및 출판문화살리기 실천대회'가 열렸다. 여기에 전국 각지의 중소형 서점을 경영하는 사장님들도 올라오셨는데, 집회가 끝나고 교보문고 매장에 들린 사장님들께서 저마다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 쌓여있는 [안철수의 생각]을 바라보았다. 출간된 지 10일째인데, 예약을 받아놓은 책들이 벌써 여러 권인데, 도매상에 아무리 연락을 해도 계속 물량이 없다는 답변밖에 돌아오지 않는데, 여기 교보문고에는 책으로 탑을 쌓아놓았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단골들을 실망하게 만들고, 예약 받아놓은 책들을 취소할 것인가? 서점경영인의 자존심을 버리고, 동료 서점인들의 눈치를 보면서 교보문고에서 책을 사가서, 최소한 예약된 부수만이라도 팔 것인가? 솔직히 매우 황당하면서도 눈물겨운 소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황당한 상황은 바로 불공정한 거래를 규정해놓은 현행 도서정가제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이는 출판사와 서점 간의 거래에 대한 문제이다. 절대 책 가격 자체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개정안이 통과된다고 해도 책값이 더 올라가거나 내려가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책값 산정에서 마케팅 비용의 문제는 엄밀히 말하면 부차적인 부분이다. 독자들은 더는 지금처럼 과도하게 할인된 가격에 책을 사보기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일 텐데,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지금이 비정상이다. 게다가 일부 출판사들은 지금도 할인 판매를 하지 않고 있으니, 모든 책들을 다 할인받았던 것도 아니지 않은가. 소비자로서의 독자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나,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책값이 아닌 서점과 출판사 간의 유통 구조를 바로 잡는 것에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렇게 말하면 '그럼 이번 개정안으로 동네서점들이 살아날 수 있나?'라는 질문을 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번 개정안이 동네서점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힘겹게 꾸려가고 있는 서점들이 적어도 온라인서점과 같은 조건에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불합리한 제도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네서점이 살 수 있느냐 없느냐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출발 선상이 달랐던 것을 뒤늦게라도 같은 위치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처음 알라딘이 내걸었던 '도서정가제 강화'라는 표현이 무척 유감이고, 그 안에 담겨있던 사실 왜곡에도 유감을 표한다. 마치 독자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출판사들의 이기주의 때문에 빼앗기는 상황인 것처럼 몰아갔다. 알라딘의 이러한 왜곡은 무척 치사한 행위이지만 큰 효과를 발휘하여 짧은 시간에 엄청난 서명을 받았다. 이번 개정안의 본질을 흐려 놓는 데 성공한 것이다.

 

 

 

다음으로 알라딘에 출고를 정지한 출판사들에 대해 짧게 생각해보자. 오늘 아침 존경하는 선배 출판인의 페이스북에서 관련 글을 읽었다. 출판사는 거래처와의 관계에서 가끔 출고정지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주로 어떤 문제가 계속 반복되고, 더는 말로는 설득이 어렵다고 판단할 때 이루어지는 조치다. 알라딘은 벌써 두 번째로 도서정가제 반대 서명을 조직했다. 나와 그 선배의 기억으론 두 번째인데, 한기호 소장님은 세 번째라고 하신다. 어쨌거나 반복되는 문제에 대해 이제는 말로는 설득이 어렵다고 판단하여, 출고정지를 한 거라고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다른 온라인서점들이 모두 가만히 있는데 혼자 나섰다는 것도 출고 정지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알라딘 서재에서 몇몇 분들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보았다. 동의하진 않지만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내가 주로 구매하는 서점이고, 내가 서재를 만들어 이용하는 서점인데, 여기에 책을 안 준다고 하다니, 독자를 무시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다만 출판사의 입장에서도 분명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출고 정지라면 당장 그만큼의 매출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대부분 규모가 있는 출판사들이었기 때문에 알라딘 정도의 거래처라면 제법 큰 액수의 매출이 나올 것이다. 대의 때문에 실리를 포기하는 일을 웬만한 출판사 사장이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어려운 결정을 출판사에서 내린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출고정지까지 내린 방식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알라딘은 한차례 태도를 바꿔 찬반 공론의 장으로 전환(물론 출판사 내부적으로 출고정지를 발의한 시점에서는 아니었겠지만)했다. 한 번 더 대화를 시도하고, 조금 더 지켜봐 줄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그리고 지금 알라디너들이 분개하듯 독자를 무시한 처사로 보인다는 것을 간과한 것(간과한 것이 아니라 고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추진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도 아쉽다. 혹시 이런 조치를 출판사들이 단체로 압력을 행사하는 방법으로 오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안 그래도 어제 그런 우려 때문인지 인문사회과학 출판인협의회와 한국어린이 출판협의회 그리고 청소년 출판협의회 등의 출판 단체들이 모두 조직적인 출고 조치는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내용으로 입장을 발표했다.

 

 

 

늘 그렇지만 대립하는 입장에서 논쟁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상대방 주장을 잘 이해하기 어렵고 또 내 주장을 쉽게 전달하기 어려울 때 더욱 그렇다. 이번 일로 나는 다른 사람들과 논쟁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나 자신이 알고 있는 부분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논쟁을 하고 싶지 않다는 표현이 다른 분들의 의견을 막겠다는 의도는 아니다. 논쟁이 아닌 토론을 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여기에 관련된 다른 의견이나 질문은 언제든지 환영하니 남겨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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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따삐야 2013-01-25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의 훌륭한 글 덕분에 많이 알고 갑니다. 지금이 비정상이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말씀에 동감합니다.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에 알라딘의 입장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동의할 순 없습니다. 그럼에도 좋은 책, 안목있는 MD, 따듯한 알라디너들이 있기에 이곳이 여전히 좋은 것도 사실입니다. 상생하는 길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감은빛 2013-01-25 16:53   좋아요 0 | URL
저도 알라딘이란 인터넷 공간이 좋습니다.
그리고 알라딘 MD님들도 대부분 좋은 편이라 생각합니다.
서로 상생하는 길을 찾는 것에 100%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이번 개정안이 회사로서 알라딘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유독 알라딘만 이렇게 나선 이유가 궁금합니다.
나중에 밝혀질 때가 있겠지요.

좋은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수적 2013-01-25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찌어찌 타고 넘어 와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른 알라디너 분들과 감은빛 님 모두 좋은 토론을 하셨다고 생각해요. 애정과, 내공이 있는 대화들이었다고 감히 생각되니까요.

감은빛 2013-01-25 16:54   좋아요 0 | URL
네,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고맙습니다!

다락방 2013-01-25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감은빛님.

감은빛 2013-01-25 16:54   좋아요 0 | URL
두서없이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락방님.

맥거핀 2013-01-25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의 사려깊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역시 많은 이야기를 얻고 갑니다. 이번 정가제 관련해서 다만 아쉬운 것은 일반소비자의 입장에서 출판의 구조나 사실에 기초한 주장들을 조금 더 들었으면 좋겠는데 그에 대한 것은 적고 갑자기 찬반만을 묻는 것처럼 느껴진 부분입니다. 결국 책을 대부분 소비하게 되는 것은 일반소비자인 만큼 조금더 정확한 사실 혹은 사실에 기초한 주장들을 들을 수 있는 토론 혹은 공청회, 기타 등등의 기회가 먼저 충분히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감은빛 2013-01-25 16:58   좋아요 0 | URL
일반 독자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토론회나 공청회가 있었습니다.
출판계와 도서 유통 시장은 워낙 후진적인 시스템과
기형적이고 왜곡된 방식으로 얽혀 있어서
누구도 정확한 사실에 기초한 주장을 펴기가 쉽지 않습니다.

개별 출판사마다 상황이 모두 제각각 다릅니다.

한기호 소장님을 비롯한 몇몇 평론가 등 주로 의견을 내는 분의 주장들도
일면으론 맞을 수도 있지만, 다르게보면 전혀 틀린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
가끔 저는 그런 분들 글을 읽으면서 실소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참 재미있는 분야입니다.

맥거핀 2013-01-25 17:31   좋아요 0 | URL
바로 그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라는 사실이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무엇보다도 이것이 동네서점 살리기가 아니라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라는 점에 적극 동감합니다. 대형마트와 동네가게의 문제도 결국은 공정한 경쟁인가가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감은빛 2013-01-25 18:15   좋아요 0 | URL
아마 그 토론회와 공청회를 주최했던 분들은 널리 알리고 싶었겠죠.
솔직히 말해서 저도 그 소식을 늦게 들었고,
직장에 매인 몸이라 가보지도 못했습니다.


맥거핀님께서 동감해주셔도 무척 반갑네요.
제 생각에 본질은 이거 하나입니다.
자꾸 다른 말씀을 하는 것은 전체 출판계를 위해서는 바람직하지만,
이 사안에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하이드 2013-01-25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될수록 가격이 오르는 앤틱 말고, 오래되었는데 가격이 안 내리는 상품이 무엇이 있을까요? 구간 할인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구간인척, 실용수인척 하는 꼼수를 막아야겠지요. 그 부분을 이야기해야해요.

그리고, 모출판사에서 말하듯, 그들도 도매상 통해서 알라딘에 책 들어가는거 다 알고 있습니다. 힘겨루기 내지는 언론플레이로밖에 보이지 않아요.

비로그인 2013-01-25 17:10   좋아요 0 | URL
김영사나 창비 같은 대형 출판사들만 언론 기사에 오르내리지만, 중소형 출판사들도 블로그나 카페를 통해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중 한 곳을 소개하죠. 산지니라는 출판사입니다. http://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anzinibook&logNo=20176740947&categoryNo=0&currentPage=1&sortType=recent&isFromList=true
출판계의 자정을 촉구한다면 독자들도 양서를 고르는 안목을 길러야 하고, 출판사에 일반 기업보다 더 많은 도덕성을 요구한다면 독자들도 상생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쪽에만 일방적으로 요구할 수는 없어요. 양쪽이 함께 가야죠.

감은빛 2013-01-25 17:05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 책은 일반 공산품과는 다른 성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출간된지 1년 6개월이 지났다고 오래되었다고 판단해야 할까요?

가장 중요한 점은 구간 할인이 가능하려면
모든 서점들이 다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서점의 할인은 그들이
교보문고를 중심으로 한 기존의 서점질서를 비집고 들어오기 위해
시행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독자를 위해서 시작한 것도 아니고,
책값이 비싸서 시작한 것도 아니란 얘깁니다.

출고정지한 모든 출판사는 아니겠지만,
몇몇 출판사에서는 도매상에 온라인서점 출고를 막았다고 합니다.
독자 입장에서 힘겨루기나 언론플레이로 보시는것은 어쩔수 없지만,
실제로 출판사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하이드 2013-01-25 17:34   좋아요 0 | URL
검색하면 산지니 많이 나와요. 알고 있습니다. 김영사, 창비, 마음산책, 돌배게, 산지니 말고 다른 곳들이 궁금해요. 리스트 만들려다 아무리 검색해도 안 나와서 포기.

출판사에 일반 기업보다 더 많은 도덕성을 요구하지 않고, 덜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독자'라는 카테고리에 저도 분명 들어가니, 전 제 밥그릇도 아닌데, 꽤 고민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이지 않나요?

구간 가격을 못내리게 법적으로 정해졌을때, 그게 상관없는 출판사도 있는 반면, 그게 힘든 출판사도 있지요, 분명.

하이드 2013-01-25 17:44   좋아요 0 | URL
할인을 독자를 위해서라고 생각할정도로 멍청하지 않구요.

책을 일반 공산품과 다르게 보는 것.은 또 다른 긴 이야기겠지요. 얘기를 할수록 길어집니다. 신간 밀어내기 꼼수(?)가 있는 현상황에서 스테디셀러가 아닌이상, 1년 6개월은 오래지요. 신간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데, 할인이벤트로 다시 신간과 함께 같은 매대에 올릴 수 있다면, 그건 출판사에게도 독자에게도 좋은 이벤트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산책, 창비, 돌배게에 대해서는 알라딘 서재마을에서 저 포함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아껴줬는데, 배신감 들어 감정적이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 세 출판사에서 알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저 세 출판사중 한 곳에선 알라딘에서 책 사는 알라딘 유저들이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고 있지요. 알라딘에 출고정지 결정할 때, 어떤 기사나 블로그 글이나 다 들여다봐도 알라딘에서 책 사는 독자들에 대한 고민은 없네요.

도매상 통해서 들어가는 것까지 막는/막을 수 있는 출판사가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전화했던 출판사는 아니였습니다. 도매상 통해서 다 받으실 수 있어요. 라고 냉큼 대답하던걸요?

70여개 출판사라는 블로그 글을 봤는데, 그 출판사 목록 좀 다 구하고 싶네요. 서점 연합회까지 다 찾아봤는데, 없네요. 출고정지는 그들 마음이고, 불매는 제 마음이니깐요.


감은빛 2013-01-25 17:59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 제가 드린 말씀의 핵심은
구간 할인이 가능하려면 모두 다 가능해야 한다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어느 출판사나 도매상에 온라인서점 출고를 막을 수 있습니다.
그 출판사들이 만약 출고정지 없이 알라딘에 계속 공급한다면,
매출액 만큼 다음달에 현금으로 송금받습니다.
출고를 정지했기 때문에 도매상을 통해 알라딘에서 판매된다면,
그 매출액은 다음달에 4개월짜리 어음으로 지급받습니다.
도매상에 온라인 출고를 막았다면 아예 매출액이 발생하지 않구요.

출판사마다 비중은 다르겠지만 알라딘은 온라인 거래처 중에서
제법 매출액이 나오는 곳일 겁니다.
그 만큼의 매출을 포기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려도 별로 소용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출판사가 출고정지를 결정할 때, 독자를 고려하지는 않습니다.
해당 거래처와의 관계와 문제가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입니다.

비로그인 2013-01-25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조목조목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판노동자의 한 사람으로서 출판계가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 대중들과 소통하는 것을 소흘히 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언론 보도도 대형 서점과 대형 출판사들 위주로 나가는 것도 씁쓸하고요.
도서정가제 문제에 '독자'가 빠졌다고들 비판하는데, 개인적으로 '출판노동자'도 빠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값이 비싸다고 하면서 종이, 디자인 얘기 하시는 분들 중 '인건비' 문제를 말하는 분은 없더군요. 책이 만들어지는 공정에 대해서, 책 하나가 만들어지는 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과 노력이 들어가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 노동에 대한 대가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의로 도서정가제에 찬성하지만, 그로 인한 이득이 몇몇에게만 돌아가지 않도록 계속 노력해야 합니다.

감은빛 2013-01-25 17:1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저도 출판노동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문제가 본질과는 다른 국면으로 자꾸 빠지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습니다.

출판계가 독자들과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을 해야 할텐데,
그러기에는 개별 출판사들의 여건이 참으로 열악하죠.
출판노동자의 상황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얘기들도 좀 더 공론화된다면 좋겠네요.

긴 글 읽고, 좋은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립간 2013-01-25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요 며칠 사이 도서정가제에 대한 글 추천만 하고 다니게 되네요. 동감합니다.

감은빛 2013-01-25 17:11   좋아요 0 | URL
마립간님, 고맙습니다!

2013-01-25 1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3-01-25 18:1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잘 읽으셨다니, 저도 고맙습니다!

blanca 2013-01-25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정가제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목이 말랐습니다. 글 감사합니다. 책이 가지는 또 사람들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공공재로서의 기대가 이 논란의 촉발된 지점이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에게도 파는 사람도 유통하는 사람도 도덕성, 공정성에 대한 기대가 다른 것들을 만들고 파는 사람보다 더 높다는 것도요. 결국 잘못된 관행은 잡고 최대한 공정성에 가까이 가야 할 텐데요.

감은빛 2013-01-28 10:24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안녕하세요.
저도 업계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도서정가제가 뭔지,
또 책만 유독 정가제를 두고 있는지 이유를 잘 몰랐습니다.
물론 지금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경험상 책이 일반 공산품과는 많이 다르구나 느끼고 있습니다.
블랑카님도 말씀하셨듯이 경쟁은 공정한 룰에서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개정안은 그 첫 걸음에 불과해요.
앞으로 많은 분들의 관심 아래 조금씩 나아지기를 바랍니다.

귀를기울이면 2013-01-25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 글을 보니 조금 빛이 보입니다.^^ 지금까지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도저히 정가제 취지를 이해하기 어려웠거든요. 생존본능이 있는 모든 존재가 그렇듯 알라딘이든 출판사든 자기에게 어느정도 유리하게 각색된 설명을 일반독자들에게 해온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러하든, 여전히 머리를 떠나지 않는 우려(?)가 있습니다.
정가제가 정착되어 (감은빛님 표현처럼)'정상적인 가격'으로 책이 팔리게 된다면
도서판매량도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당연히 줄어들겠지요)
물론 좋은 책을 알아보는 좋은 독자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할인율과 무관하게 책을 구해보겠지만 책도 화폐와 교환되는 재화니만큼 전체 수요는 '반드시' 가격 변화에 반응할 겁니다.
(매출량 감소와 매출액 증가 중 어느게 더 클지 모르겠지만) 파이를 나누는 방법이 바뀌니 어느정도 중소유통업자와 출판사의 생존에 도움이 되기는 하겠죠. 하지만 사회인문 서적의 초판 판매량이 많이 줄었다는 걱정을 하는 글을 종종 봤던 저로서는 과연 이게 다양한 양서가 꾸준히 나오게 할 수 있는 길인가 의문이 들곤 하더군요.

이것 말고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은 더 있는데 일단은 이정도로만 해야겠네요....

감은빛 2013-01-28 10:30   좋아요 0 | URL
현재의 유통구조는 소수의 출판사 그리고 베스트셀러에 유리한 구조입니다.
베스트셀러는 할인을 많이 하거나, 광고를 하면 초기에 쉽게 올라가죠.
도서정가제가 정착이 되면 좀 더 다양한 책들,
특히 인문,사회과학 책들도 좀 더 평등한 기회를 갖게 됩니다.

베스트셀러(문학이나 자기계발)는 조금 시장이 줄어들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래도 책을 사보시는 독자들은 여전할 거라고 예상합니다.
그리고 이번 개정안에는 도서관 납품가에 대한 상한선 조정도 포함됩니다.
전국 도서관에서 제대로 된 가격으로
보다 더 다양한 도서를 구매하는 것도
출판시장에는 큰 도움이 됩니다.

더 궁금하신 부분은 언제든 여쭤보셔도 좋습니다.
제가 아는 내용이라면 성실히 알려드리겠습니다.

건조기후 2013-01-25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잘 읽었습니다. 잠깐잠깐 이런 저런 글을 단편적으로만 접하다보니 더 복잡해지기만 하고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감은빛님 글을 읽으니 어느 정도 정리가 되네요. 내친 김에 관련된 글을 더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이런저런 문제가 많이 얽혀있겠지만 온라인-오프라인이건 대형-소형이건 모든 서점이 신간이건 구간이건 모든 책을 동일한 가격으로 공정하게 판매해야한다는 점만 생각하면 의외로 간단한 거 같네요..

감은빛 2013-01-28 10:32   좋아요 0 | URL
네, 건조기후님.
의외로 간단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독자에게 득이 될 것도, 해가 될 것도 없는 내용이지요.
맨 처음 알라딘이 독자들에게 오해를 조장한 것이 무척 안타깝습니다.
제대로 소개만 했더라도 이렇게까지 오지 않았을텐데요.

숲노래 2013-01-25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 님이 쓰신 글은,
책을 읽고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조금만 생각하고 살펴도
누구나 알아채고 알아낼 수 있는 대목,
아니 기본으로 깨닫고 헤아릴 대목이라고 느껴요.

그러나 현실 사회에서는 이조차
제대로 살피거나 헤아리지 않은 채
도서정가제를 반대하느니 찬성하느니 하면서
편가르기를 하면서 힘싸움 하는 얼거리를 몰아갑니다.

책값도 할인율도 무엇도 하나도 대수롭지 않아요.
대수로운 한 가지는 오직 하나,
'책'이지요.

나는 내가 쓴 책들이 여러 해 지났대서
이 책들을 출판사에서 20% 넘게 에누리해서 판다면
작가인 나 스스로 그 출판사하고는
절필을 합니다. 곧, 내가 책을 낸 출판사는
내 책이 아닌 다른 작가 책이라 하더라도
펴낸 지 여러 해 지났어도 20% 넘는 에누리를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그게 '책'이니까요.

구간할인이라는 핑계로 반값으로 인터넷책방에서 팔기도 하는 책이 있는데
<난 쏘 공> 같은 책을 구간할인으로 파는 일이란 없겠지요.
'책'이니까요.

<몽실 언니> 같은 책을 구간할인 적용시켜서 아이들한테 읽혀야 할까
하고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책다운 책, 책으로 읽을 책, 책을 읽을 우리들 몸가짐,
이 모두를 어떻게 살펴야 하는가를
스스로 느끼며 올바르게 추스를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도서정가제를 놓고 이래저래 여러 단체와 지식인들 말이 많은데,
저는 어느 쪽에도 마음이 안 닿습니다.
모두 '책' 이야기하고는 동떨어진 주의주장만 하는 듯싶더군요.

동네서점이 살아날 수 있으려면,
사람들 삶이 먼저 달라져야 하고,
사람들 스스로 돈벌이에 목을 매다는 나날이 아닌
사랑과 꿈을 찾는 나날이 될 수 있어야 해요.

귀촌이나 귀농을 하는 사람들조차
책을 안 읽거나 못 읽거든요.
도시에서도 바쁜 사람은 시골에서도 바쁘고 말아요.

곧, 시골에서도 느긋한 넋이어야
도시에서도 느긋하게 살아가며
책이든 이웃이든 어깨동무하면서
삶을 빛낼 수 있어요.

정부는 핵발전소 늘리기는 그만둔다 하지만
화력발전소를 끔찍하게 짓는 쪽으로 돌아가요.
그런데, 이 대목을 비판할 수 있는 가슴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아무쪼록, 알라딘서재에서
곁길로 새는 주의주장 아닌,
'책'을 한복판에 놓고,
삶을 일구는 이야기를 빚는 목소리가
차츰 솟아날 수 있기를 빕니다.

감은빛 2013-01-28 10:35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 말씀 고맙습니다.
가끔 구간 20%정도의 할인은 출판사와 상의없이,
온라인서점에서 단독으로 진행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 책이 어느정도 판매가 되고, 매출액 상승효과가 예상될 때이지요.
직거래를 하고 있고, 공급률이 괜찮다는 전제조건도 필요하구요.

모두 바쁜 시대이죠.
좀 더 여유가 생겨야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을까 싶어요.

쿼크 2013-01-27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글 잘 읽었습니다.

(지나가다 투정 한 번 했는데..마음에 걸려 원래 댓글을 수정합니다..)

감은빛 2013-01-28 10:3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쿼크님.
맨 처음에 뭐라고 남겨주셨는지 궁금하네요.
어떤 투정이었는지 몰라도,
그냥 남겨두셨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어요.

또 하실 말씀이 있다면 편하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2013-01-25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28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극곰 2013-01-26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잖아도 다른 분들 댓글에서만 보면서 감은빛님의 따로 쓰는 글을 기다렸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은빛 2013-01-28 10:4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북극곰님.
부족한 글 읽어주시고,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oren 2013-01-28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님께서 무척 알기 쉽게 풀어서(?) 쓰신 글을 올려주셨군요.

이 글 덕분에 많은 분들이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오해를 상당부분 풀었으리라 믿습니다.

어쨌든 감은빛님의 글 내용처럼, '현행법'이 지닌 여러 한계점들을 '최소한이나마' 보완하려는 차원에서 이번에 '도서정가제를 강화하려는 개정안'을 발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은 '책값'이나 '정가 대비 할인폭' 등 소비자이자 독자인 '나'에게 미치는 '당장의 손익'에만 너무 매몰되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특히나 넘쳐나는 '도서정가제 반대의견들'을 보면서요. 한편으로는 알라딘이 여기에 너무 고무(?)될까 걱정되기도 하구요.)

더군다나 이번에 추진중인 '개정안'을 두고 몇몇 분들이 '동네서점 살리기'와 직결시켜 '도서정가제 강화 무용론'을 주장하는 모습들도 더러 있었는데 저는 그 점도 좀처럼 이해하기가 어렵더군요. 이번 '도서정가제 강화' 취지가 마치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고 나날이 경쟁력을 상실해 나가는 동네서점을 살리기 위한 무슨 '특별법'도 아닌데 말이지요. 이번 법 개정 취지를 그렇게 '좁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점을 너무 지나치게 강조하는 글들은 저로서는 읽기가 좀 민망하더군요.

다른 분도 비유했듯이 '도로교통법'이 있어도 그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소위 '약삭빠른 자들'이 최대한으로 불법과 편법을 마음대로 저지르고(버스나 택시등 '도로 사업자'든 자가용 운전자나 승객등 '도로 소비자'든), 그 무질서와 교란으로 인해 여러 '도로 이용자들'이 '불필요한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라면, 그런 공익을 저해하는 부실한 도로교통법은 '공익'을 위해서라도 당연히 강화하는 쪽으로 개정하는 게 맞지 않나요?

어쨌든 이번에 알라딘이 '꼼수'를 둔 덕분에 저도 그 점이 못마땅해서 발끈하고 나섰지만 이번 일 덕분에 정말 '책값'과 '도서 유통'을 둘러싸고 복잡하게 얽혀있는 숱한 이해관계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 점은 '예상외의 소득'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싶은데,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외부로부터의 여러 비판과 거센 도전'에 직면한 알라딘이 이 위기를 쉽게 헤쳐나가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점이에요. 어쩌면 알라딘에 깊은 애정을 지니신 분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서 알라딘을 감싸고 적극 옹호하는 듯한 모양새가 '위기'를 더욱 부채질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마치 자식에 대한 부모의 '과잉보호'가 가끔씩 그 의도와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이어지는 것처럼요.)

늘 '사태'는 엉뚱한 방향으로 자꾸만 번져나가기 마련인데, 애초에 제가 '알라딘의 안위'를 걱정하면서 한편으로는 '공정한 경쟁'과 '상생'을 도모할 수 있는 여러 '생산적 논의들'을 기대했던 게 오히려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감은빛 2013-02-04 10:12   좋아요 0 | URL
답이 많이 늦었습니다. 오렌님.

출판계에서는 이번 사태의 최대 수혜자를 알라딘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 어느 경우보다 압도적으로 언론 노출이 많았고,
이쪽 바닥에서는 매일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출판사들의 출고 정지 소식 이후엔
알라딘 이용자들의 내부 충성도가 엄청 높아졌지요.
알라딘 서재에서도 미루고 있던 책들을
질렀다는 글을 몇 개나 볼 수 있었잖아요.

하지만 오렌님 말씀처럼 이건 단기적인 효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싶어요.
장기적으로는 어떻게 될지 예상하기가 쉽지 않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번 기회에 출판 유통에 대해 좀 더 많은 이들이
자세히 알게 되고, 고민해보게 된 것은 좋은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풀어갈지가 더 중요하겠지요.

오렌님, 말씀 나누게 되어 무척 반갑습니다.

chacona 2018-05-01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그 무렵에 알라딘에 출고정지 하노라면서
출판인의 기개를 드날린 김영사가 생각나는군요,
그런데 그 김영사가 속으로 얼마나 곪아 썩었는지 뉴스에 나오는 소송거리들을 보면서 알게 됐습니다.
간혹 출판인들이 책은 상품이 아닌 문화다. 이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독자를 위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자기면피를 하는데요.
지난 도서정가제 몇년간을 살펴보면서 한마디로 그런말 했던 출판인들 모두 사기꾼이었다는 것 밖에는 생각 못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