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

 

 

학창시절부터 나는 공부가 싫어서 안 했기 때문에 성적이 나쁠 뿐이지, 공부를 한다면 잘 할수 있다고 생각했고, 분명히 머리는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금방 들은 숫자나 단어를 잊어버릴 정도로 머리가 나쁘다. 게다가 해가 갈수록 사람 이름과 책 이름과 어떤 특정한 단어 등을 떠올리지 못한다. 결국, 머리가 좋다는 것은 그냥 착각일 뿐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국어 선생님은 곧잘 글짓기 숙제를 내주셨는데, 되돌아온 공책에는 늘 좋은 평이 많았다. 어느 날 선생님은 내 글 중 하나를 교내 백일장에 올렸고, 비록 상을 받진 못했지만, 최종 수상작을 고르는 후보로는 올랐다고 들었다.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글을 잘 쓰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수없이 적어온 글들은 늘 엉망이었고, 가끔, 아주 가끔 조금 괜찮다 싶은 글을 적었을 때에도,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야 했는데, 그냥 멈춰 서버린 느낌. 게다가 요즘은 글 잘 쓰는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책하게 되는 순간들이 많다. 난 왜 이렇게 재밌는 글을 못 쓰는 걸까?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감동적인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그래, 처음부터 난 글쓰기에 재능 따위 없었던 것이다. 그건 그저 오랜 착각이었을 뿐이다.

 

 

 

나는 학창시절을 통틀어 단 한 번도 반장을 해보지 못했다. 성적이 그만큼 따라주지도 못했지만, 그때는 숫기가 별로 없었다. 처음 학년대표라는 직책으로 뽑혔을 때, 아이들이 나를 선택한 이유는 가장 술을 잘 마시고, 가장 활발하게 놀았기 때문이었다. 앞에 나서서 말을 잘했기 때문은 분명 아니었다. 그런데 자꾸 하다 보면 잘하진 못하더라도, 익숙해지기는 했다. 학비를 벌기 위해 학원 강사 경험을 쌓았던 것도 도움이 되어, 제법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하게 되었다. 덕분에 발표 수업을 하면 늘 여자 후배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서로 같은 조가 되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와 곤란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말을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과 특정한 주제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내가 가진 생각을 잘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좀 더 쉽게 설명하고, 좀 더 자세하게 부연하고, 이런저런 예시를 들어봐도 자꾸만 같은 말이 돌아온다. 이런! 난 정말 표현력이 부족한 사람이었구나. 내가 이렇게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었구나! 라고 새삼 깨닫는다. 역시 오랜 착각이었을 뿐이다.

 

 

 

남들은 숨도 안 쉬고 공부한다는 고3 때, 나는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책도 꺼내지 않고 엎드려 자곤 했다. 배고프면 도시락을 까먹고 또 잠을 잤고, 잠이 깨면 창 밖을 보면서 공상에 빠졌다. 정규 수업이 끝나면 보충수업과 야간 자율학습이 시작되는데, 그럼 몰래 뒷문으로 학교를 빠져나갔다. 소위 문제아라 불리는 친구들을 만나 버스종점 근처 커피숍을 향했다. 근처 여자상업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알바하던 곳이다. 커피는 써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사이다나 콜라 따위의 음료수 하나 시켜놓고 여자아이들과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떠드는 사이에 자주 담배를 피웠고, 그 아이들이 알바였기 때문에 몇 차례 음료수를 리필받았다. 서너 시간 떠들고 나면 적당히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갈 무렵이다. 슬슬 교실로 돌아가서 선생님께 눈도장 찍어주고 다시 나와서, 이번엔 알바가 끝난 그 여자아이들과 술집이나 노래방으로 향했다. 그때 같이 놀던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난 제법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비록 얼굴은 그리 잘 생기지 못했지만, 나름의 어떤 느낌과 말발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때부터 난 여성들에게 제법 인기 있는 편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그 호감이 천차만별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분명 첫 만남에서 대부분의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순 있지만, 그리고 어쩌다 그런 호감이 발전해서 연애감정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극히 드문 일이었고, 그런 정도만으로는 인기 있다고 착각에 빠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이 모든 착각에도 불구하고 가끔 그 착각이 실제인 양 다시 착각에 빠지는 경우도 생기니, 나라는 인간은 정말 구제불능이 아닌가! 하루 또 하루 어떤 착각에 빠져서 살아가게 될까? 그 착각에서 벗어나 현실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그 비참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차라리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워도 착각에 빠져 사는 것이 조금 행복한 것은 아닐까 싶다.

 

 

 

※ 이 책을 읽고 쓴 글이 아닙니다.

다만 제목이 같아서 가져왔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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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1-11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면 착각도 한 때인가봐요, 감은빛님.
저는 (풋- 하고 한 번 웃고) 대학에만 들어가면 남자애들한테 인기 폭발일거라고 혼자 생각했거든요. 이건 착각이라기 보다는 엉뚱한 상상쪽이었죠. 여튼 그랬는데, 맙소사, 여대에 들어갔지 뭡니까. 네?! 그리고 여대를 졸업한 후에는 내가 여대를 다녀서 그렇지, 남녀공학 다녔으면 공부도 열심히 했을거라고 또 혼자 생각해요.

글쓰기도 그래요. 한 때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을 만큼, 그리고 쓸수 있다고 생각했을 만큼 제가 글을 잘 쓰는줄 알았었어요. 고등학생때까지요. 정말 딱 고등학생때까지만 그 생각을 했네요. 세상에 나와보니, 아니 알라딘을 알고 보니 여긴 제가 감히 글을 쓸만한 곳이 아니더라구요. 처음 알라딘에 들어와서 쭈볏거리며 글을 쓰지 못했던 생각이 나네요. 너무 쟁쟁한 분들이 많아서 제 글이 부끄럽더라고요. 대체 내가 그때는 왜 그런 착각에 빠졌을까, 싶어요. 앞으로 또 어떤 착각에 빠지게 될지는 모르지만, 요즘엔 그런 생각을 해요. 아, 나는 남들보다 잘하는게 아무것도 없는 그런 사람이구나, 하고요. 그렇다고 뭐 딱히 슬프거나 하진 않구요.

음, 웃기게 시작했다가 이야기가 비극으로 끝을 맺네요. 하핫.

감은빛 2013-01-11 20:11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저는 지금도 늘 착각 속에 빠져서 사는 걸요.
영광이네요. 다락방님과 두 가지 측면에서 겹쳤다니.
매일 고민이 됩니다.
자신감을 갖기 위해 착각인 줄 알면서도 그냥 빠져 있어야 하나?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빠져나와야 하나?

다락방님은 소설 정말 잘 쓰실 것 같아요.
저는 요즘은 통 못 쓰지만,
언젠가 아이들을 다 키우고나면
혼자 골방에 쳐박혀 맘껏 써보고 싶어요.

맥거핀 2013-01-12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글을 읽다보니 어떤 풍경이 떠오릅니다. 마치 오래된 영화를 보듯이요. 왠지 글을 읽다보니 글을 잘 쓴다는 게 뭘까, 생각하게 됩니다.

감은빛 2013-01-23 13:17   좋아요 0 | URL
답이 한참 늦었네요.
어떤 풍경이 떠오르셨을까요?
제 이야기가 맥거핀님께 어떤 추억을 불러일으켰을지 궁금하네요.

순오기 2013-01-12 0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은 착각이다!
첵에서 봤는가 선생님한테 들었는가 가물거리지만
지금까지 살아보니까 '착각' 없이 사는 인생은 '살맛'이 안 나더라고요.^^
착각인 줄 알지만 그 착각을 즐기며 사는 게 좋아요~

감은빛 2013-01-23 13:18   좋아요 0 | URL
그렇죠?
착각인 줄 알면서도 그냥 그걸 즐기며 사는 거.
그게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저도 하고 있습니다. ^^

M의서재 2013-01-13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은빛 님, 글 재밌게 읽었어요. 저도 사실 인기가 많다는 착각과 글을 잘 쓴다는 착각에 빠져 살다가 비참함에 나가 떨어지는 게 한두번이 아니였거든요. 게다가 지금도 그렇다는 것.ㅠ.ㅠ 그래도 착각에 빠져사는 것이 조금은 행복하다는 것에 한 표요~^^;;

감은빛 2013-01-23 13:20   좋아요 0 | URL
역시 불량주부님께서도 저와 비슷한 착각을 하시는 군요.
글 읽으면서 왠지 저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착각에 빠져 사는 것이 그래도 행복하겠죠.
착각을 벗어나는 순간 말씀하신 것처럼 비참해지니까요.

페크pek0501 2013-01-18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태균 저, <가끔은 제정신>이란 책을 읽었는데 우리는 늘 착각 속에 산다고 해요.
가끔만 제정신이라는 거죠. 저도 착각을 하며 산다고 느끼는 게 있는데, 나중에
착각인 줄 알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착각인 줄 알면서 착각을 할 때도 있어요.
그래야 맘이 편하다는 생각으로요.
착각이 없다면 어떻게 살 수 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
착각한 티만 내지 않으면 나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ㅋㅋ

감은빛 2013-01-23 13:2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늘 착각에 빠져 살다가 가끔만 제정신이군요.
그러고보니 저도 늘 제정신이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네, 말씀하신 것처럼
착각한 티를 안내면서 살아야 할텐데,
그게 쉽지 않은 것 같아서 문제인 듯 합니다.

소개해주신 책은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고맙습니다! ^^
 
사람인 까닭에 - 21년차 인권활동가 12년차 식당 노동자 불혹을 넘긴 은숙씨를 선동한 그이들의 낮은 외침
류은숙 지음 / 낮은산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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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참 어리석은 순간이었지만, 가끔 그럴 때가 있었다. 누군가 칭찬해주거나, 추켜세워주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거리고, 뭔가 된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 말이다. 수년간 이런저런 사회운동 판에서 변두리를 맴돌다 보니, 그럭저럭 이 판이 돌아가는 모양새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서당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것을. 그게 무슨 자랑이라고 가끔 떠들어 대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꼭 누군가의 칭찬을 듣게 되고(그이의 칭찬이 진심이었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한 대꾸였던 상관없이), 나는 꼭 우쭐한 기분을 느끼며 더욱 말이 많아지곤 했다. 잘난 것 하나 없는 놈이 맨날 잘난 척한다는 말은 나를 보면 꼭 들어맞는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말로만 잘난 척하는 나와는 달리, 실제 현장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오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간사 혹은 활동가 영어로는 Activist 라고 부르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흔히 말하듯 87년 체제 이후 형식적인 민주화를 이루어 냈다는 이유로, 많은 사회운동의 역량이 그전까지는 그리 신경 쓰지 않았던 부문 운동으로 흩어진 결과일까? 최근 우리 사회에는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 활동가라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반갑고 또 고마운 일이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듯, 어느 분야나 보편적으로 가진 어려움과 장벽이 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아주 어렵고 힘든 분야도 또 있게 마련이다. 운동 판에서 보자면 철거투쟁 활동가들과 장애인운동 활동가들이 가장 어렵고 힘든 분야에 있다고 아마 대부분 동의할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인권운동 활동가들은 이 두 영역을 모두 포괄한 활동을 한다(물론 인권운동은 이 둘보다 훨씬 더 넓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소금꽃나무]를 읽기가 두려웠다고 한다. 그 뒤에 서술되는 구체적인 이유를 읽기 전에 나는 벌써 고개가 끄덕여졌다. 같은 이유로 나는 이 책을 읽는 것이 두려웠다(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어느 현장에서 마주쳤던 저자의 이름만으로도 반갑게 읽고 싶기도 했다.). 비록 많이 부족했지만, 한때 활동가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던 처지라 저자의 활동 영역과 그 치열한 활동에 대해 모를 수는 없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다른 운동영역들 중에서 인권이란 영역에 대해 가장 어렵다고 느꼈던 것은 단순히 그 운동이 물리적으로 힘이 더 들고, 경제적으로 더 어렵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크게 관심을 두지 못하고 살아왔다. 어떤 하나의 사안에 대해 접했을 때,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에 잘 감정이입하지 못하고, 그저 머리로만 판단하는 편이다. 그래서 늘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하는 인권 활동이라는 영역이 어렵게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책에서 일본 인권교육가 아와노 신조오 씨의 프로그램에 대해 읽고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종이에 ‘자기 인생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 귀하게 여기는 사람을 10명만 적으라.’고 했단다. 저자는 ‘열 명? 그까짓 거!’라고 생각했으나, 막상 가족들 외에는 쉽게 이름을 적을 수 없었다고 했다. 나 역시 가족들을 빼고 나면 써넣을 이름을 쉽게 떠올리기 어려울 것 같다. 물론 친구들과 현재 자주 만나는 이들 몇몇을 떠올릴 수 있겠으나,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과연 이들이 다른 사람에 비해 더 소중하고 귀중한가?’ 라는 질문에 쉽게 답을 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그들에게도 내가 소중하거나 귀한 사람일 거라는 확신은 더더욱 할 수 없다. 해당 프로그램에서는 여기서 더 충격적인 질문들이 던져지지만, 나는 도저히 거기까지 진도를 나갈 수 없는 부족한 존재이므로 소개하지는 않겠다.

 

저자 류은숙은 인권이 ‘개인의 발굴’이라고 했다. 어려운 질문에 대한 좋은 답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은 것을 계기로 삼아, 이제부터라도 나라는 개인과 내 주변의 여러 개인들을 발굴해내는 일을 해봐야겠다. 비록 모자라고 더디겠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보련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연대의 방법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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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 무대 위의 문학 1
하타사와 세이고.구도 치나쓰 지음, 추지나 옮김 / 다른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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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조용한 아이였다. 목소리도 작았고, 늘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어서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그래서였을까? 친구가 별로 없었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는 혼자 책상에 앉아 학급문고를 열심히 읽었다. 당시 남자아이들은 운동장에 나가 뛰어놀지 않는 내가 참 이상하다 여겼던 듯하다. 지금도 기억나는 편지가 하나 있다. 아마 초등학교 4학년 혹은 5학년 때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반에서 가장 활달하고, 싸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아이가 보낸 편지였다. 아니 편지라기보단 쪽지에 더 가까웠다. 겨울방학에 들어가기 직전 마지막으로 반 아이들과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내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받은 쪽지였을 것이다. 거기에는 이런 말들이 삐뚤빼뚤 적혀있었다. “너는 왜 피구를 같이 하지 않니? 너를 처음 봤을 때 피구를 잘 할 거 같았는데” 정확한 표현은 아니겠지만, 대략 저런 얘기였다.

 

암튼 나는 그닥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편이었다. 그런 상태를 요새 말로 하면 ‘왕따’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내가 처음 ‘왕따’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올린 건 어릴 때 내 모습이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맘이 별로 없었다. 그러니까 달리 말하면 친구들이 나를 ‘따’시킨 것이 아니라, 내가 다른 친구들 모두를 ‘따’시켰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오히려 친구들이 말을 시키거나 귀찮게 해서 책 읽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아까웠다.

 

그러니까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당하는 것 자체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나이 때 나름의 괴로움과 고민이 있겠지만, 그런 과정은 그냥 성장통이라고 여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단계가 단순한 따돌림만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폭력이 동반된 괴롭힘으로 이어진다면 그건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나를 폭력의 길로 이끈 것도 그런 과정들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어려서부터 조용한 아이였지만, 누가 나를 건드리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키도 작고 덩치도 작았지만, 깡다구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편이었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는 주위에서 소문난 깡패학교였다. 일부 덩치 큰 아이들이 매일 키 작은 아이들에게 푼돈을 뺐거나, 도시락 반찬을 뺏어 먹거나, 학용품을 빼앗았다.

 

중학교 1학년 때 1년 동안 나는 반에서 가장 싸움을 많이 한 아이가 되어 있었는데, 도시락 반찬을 뺐거나, 누군가 툭 건드리거나, 욕하거나 놀리는 것을 참지 못하고 그때그때마다 맞대응을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런 녀석들도 내 성질을 알게 되어 더는 건드리지 않았는데, 학년이 바뀌면 또 새로운 녀석들이 또 나타나서 같은 과정을 되풀이해야 했다. 그래서 중학교 3년 내내 나는 반에서 가장 싸움을 많이 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나마 3학년 때는 싸움의 횟수가 확실히 줄긴 했는데, 1ㆍ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이 안 건드렸던 것도 있었고, 나의 일화를 소문내줬기 때문이기도 했고, 초기에 태권도부에 속한 한 놈을 박살 내버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 우리 학교 태권도부는 전국대회에서 늘 상위권에 오르는 나름 실력 있는 운동부였다.) 아, 그리고 늘 작았던 키가 중2 때 확 크면서 신체적인 조건이 좋아졌던 것도 이유일 수 있겠다.

 

나는 이렇게 폭력에 맞서 폭력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학창시절은 보냈지만, 내 주위 키가 작았던 아이들 중에는 상습적으로 돈을 뺏기고, 온갖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도 분명히 있었다. 이때는 아직 왕따나 빵셔틀 따위의 말도 없었고, 그런 개념도 없었는데, 일상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은 분명히 있었다. 그 아이들은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뎠을까? 작은 놀림과 푼돈을 뺏기는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었겠다 싶다가도, 나처럼 예민하지만, 나처럼 폭력으로 맞서지 못하는 아이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 시절을 버티기가 참 어려웠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학교 폭력 중에는 교사들이 휘두르는 폭력도 비중이 높았다. 몇몇 교사들은 깡패가 알면 친구 먹자고 할 정도로 폭력적이었다. 남자교사들뿐만 아니라 여자교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한 여자교사는 양손으로 동시에 학생들의 뺨을 사정없이 빠르게 때리는 체벌을 매일 했는데, 그것을 아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또 나이 많은 한 여교사는 남학생의 생식기를 쥐고 손톱으로 힘껏 누르는 체벌을 주기도 했다. 남자 교사들이 각목이나 야구배트를 휘두르는 것은 거의 매일 볼 수 있는 아주 일상적인 일이었다. 학교 자체가 거의 변태와 깡패들의 소굴이었다. 그런 교사들을 견디는 것도 사실 매우 힘든 일이었다.

 

왕따와 아이들의 자살과 학교 폭력과 교실 붕괴에 대한 소식들을 들으면 양가감정이 든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교육환경과 현실을 겪게 해서 미안하고 같이 아프다가도, 내 학창시절과 비교해가면서 그 정도도 이겨내지 못하나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다. 뭐 어쨌거나 아프다. 우리 아이들이 곧 자라서 같은 일을 겪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더욱 아프고 답답하다.

 

이 이야기는 처음에 연극대본으로 세상에 나왔다. 일본에서 문제작으로 떠올랐던 작품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올 때는 먼저 낭독회를 열었다. 연극 공연으로 올린 것이 아니라 단지 낭독회를 열었을 뿐인데, 많은 관심을 모았다고 들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극본을 소설로 다시 쓰는 작업이 이어졌다. 그래서 탄생한 책이라고 한다. 일련의 과정이 흥미롭다. 그만큼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청소년들의 왕따 문제가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아주 강력한 인상을 심어주는 제목만큼이나 충격적이다! 뒤표지에도 적혀있듯이 설마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질까 싶은 의심이 들다가도, 현실은 이보다 더 충격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미 언론이 시끄럽게 떠들어댔던 몇몇 사례들도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에 힘을 실어주었다.

 

짧은 이야기이고, 등장인물도 몇 안 되고, 장소는 단지 방 하나뿐이다. 그러나 이 작가는 과연 천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흡인력 있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짧은 내용 속에서 이렇게 효과적으로 사람들의 심리를 드러낼 수 있나 싶다. 애초에 소설이 아니라 연극 대본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더욱 사람들의 갈등구조가 더 잘 드러난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이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홀로 괴로워하고 있을 아이들 그리고 아이의 고통과 고민을 덜어주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를 부모들이 한 번쯤 읽어보고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본질적인 고민을 해보면 좋겠다 싶다. 이 책이 어떤 해결책을 내주기 때문에 권하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이 문제는 딱 이거다 선언할 해결책은 없다! 정부와 교육 당국이 제시하는 해결책만 바라보기보다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좀 더 다각적인 고민이 우선 필요하고,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실제로 노력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한 것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원해서 친구를 왕따시키고,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그저 그런 현실에 내몰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실에 내몰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부모들이고, 교사들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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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12-27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었네요. 이 책이 아니라 앞부분의 이야기요 ^^ 제가 소설가라면 한번쯤 주인공으로 써보고 싶은.
이 책도 재미있을까요?

감은빛 2012-12-28 11:56   좋아요 0 | URL
오! 영광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으로 찍어주셨으니, 이제 쓰시기만 하면 되겠네요! ^^
이 책은 흥미롭지만, 솔직히 재밌다고 하기는 어렵네요.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니까요.
이런 일이 절대 생기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수이 2012-12-28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이 가는데요.
분명 저도 문제가 꽤 많았던 청소년기를 보냈건만 어른이 되고보니 무심하네요;;
그때의 어른들처럼, 반성해야겠어요.

감은빛 2012-12-28 13:03   좋아요 0 | URL
정도의 차가 있겠지만,
대부분 사춘기에 조금씩 반항을 하지 않나 싶어요.
하필 그 중요한 시기에 학교에 갇혀서 압박을 받아야 하니 말예요.
이 심각한 문제를 어찌 풀어야 할지 막막하네요.

마녀고양이 2012-12-28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책 주문했는데, 그 전에 이 리뷰를 읽었으면 좋았을 것을.
읽고 싶네요...

감은빛님, 편안한 연말되시고 즐거운 일 듬뿍 생기는 새해 되셔요.

감은빛 2013-01-02 11:36   좋아요 0 | URL
답글이 늦었네요.
어느새 새해가 되었어요.

달여우님, 올해 좋은 일이 가득가득 몰려오기를 바랍니다!

뽀로롱 2013-01-31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도 학창시절에 교우관계 때문에 많은 고민이 있었지요.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학창시절이 좋았고 돌아가고 싶다는 말들을 하지만, 아니요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지금이 좋아요.
동지를 만난 기분입니다.

감은빛 2013-02-04 10:1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뽀로롱님.
동지를 만난 기분이라니, 무척 반가운 말씀이셔요! ^^
먼저 인사 남겨주셨으니, 저도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리랑 2013-03-18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리뷰 잘보았습니다. 저는 학창시절 말도 없으면서 동시에 힘도 없어 일상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중 한명이었습니다.ㅠ 님의 글을 보니 학창시절의 어려웠던 기억이 좀 나네요^^ 하지만 그래도 학창시절 추억할수있는 리뷰인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역시 당시 선생님의 체벌도 심했었는데 저희 학교에도 양손으로 동시에 학생들의 뺨을 사정없이 빠르게 때리는 체벌을 하면서 즐기는 여자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영어선생님이었는데 매일 스무명 이상씩은 1인당 3대 이상씩 맞았던 것 같은데 맞으면서 중간중간 눈떠보면 선생님이 환하게 웃고있어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혹시 감은빛님과 제가 같은 선생님을 만났던것은 아닐지 모르겠네요.

감은빛 2013-03-28 13:5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글 때문에 그리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떠오른 것은 아닌지,
조금은 죄송한 마음이 드네요.
양손으로 뺨을 사정없이 빠르게 때렸던 여 선생님이
아마 수학이거나 생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분명히 영어는 아니었어요.
같은 선생님은 아니니, 그 시절 그런 식의 체벌을 '즐겼던(!)'
여선생님이 한 명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군요.
스트레스를 아이들 뺨에다 풀었던 그 여선생님은 잘 지내시나 모르겠네요.
이젠 많이 늙었겠네요.
 
임박한 파국 - 슬라보예 지젝의 특별한 강의
이택광.홍세화.임민욱 지음 / 꾸리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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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예 지젝의 책을 처음 읽었다. 그가 직접 쓴 글을 번역한 책은 아니다. 올해 6월 일주일간 한국을 다녀갔을 때 지젝의 강연과 대담 등을 엮은 책이다. 그래서일까 누군가에게 지젝에 대한 입문서로서 가장 적합하다는 추천을 받고 읽었다. 지젝의 책을 직접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왠지 그의 책은 어려울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확실히 잘 읽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자주 김종철 선생의 말씀들을 떠올렸다. 지젝이 ‘자본주의의 종말’을 말하고, ‘환경의 위기’, ‘지적재산권 문제’, ‘생명공학의 문제’ 등을 여러 번 지적할 때마다 계속 김종철 선생이 생각났다. [녹색평론]을 읽으면서 접하거나, 직접 강연을 통해 들은 김종철 선생의 말씀들도 대개는 비슷한 내용이었다. 일찍부터 “난파 직전의 배에서 내리기를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씀을 하셨고, 그 진단에는 환경의 위기를 비롯한 자본주의의 문제가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지젝과 김종철 선생의 생각이 완벽히 같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 책을 통해 이해한 바로는 매우 비슷한 면들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지젝은 주로 일상생활이나 영화 등을 통해 이데올로기가 우리에게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강조하고 있었다. 이런 면들은 김종철 선생도 종종 지적했던 부분으로 자본주의와 국가주의 등이 우리에게 작동하는 지점들을 짚어주곤 했다. 지젝이 ‘스타벅스’를 강조했다면, 김종철 선생은 ‘학교 교육’을 강조하곤 했다.

 

지젝이 임박한 파국에 맞서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내용은 주로 이데올로기의 작동방식에 대한 것이다. 여러 가지를 설명했지만 그 중에서도 ‘믿지 않지만, 마치 믿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에 대한 부분이 가장 공감이 간다. 예로 든 것이 ‘건물에 13층이 없는 것’이나 ‘산타클로스’ 등이다. 우리나라에도 4층이 없거나, 13층이 없는 건물이 대부분이다. 특히 산타클로스에 대한 부분은 나도 평소에 참 우습다고 여겼던 점이라 특히 공감이 간다. 빨간 옷을 입고, 길고 흰 수염을 붙인 가짜 산타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설정은 과연 어디서 온 것일까? 왜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산타라는 거짓 이미지를 강요할까? 동심을 지켜야한다는 말로 그런 우스운 연출을 정당화하는 현실이 한편의 거대한 코미디 같다. 어차피 아이들은 곧 산타는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는다. 하지만 어른들의 우스꽝스러운 연극에 맞춰 아이도 속아주는 것처럼 연극을 계속한다. 이것이 바로 이데올로기의 작동방식이며, 바로 어제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된 결정적인 이유가 아닐까싶다. 이해할 수도 없고 믿는 것도 아니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따르고 또 행동하는 많은 일들이 바로 이데올로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 하나의 인상적인 부분은 도널드 럼즈펠드 전 미국 국방장관의 말을 빌어 설명한 철학적 명제이다. 약간 표현이 다르지만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나열해보자. 하나, 우리가 (무언가를)알고 있고, 그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있다. 둘, 우리가 모르지만, 그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있다. 셋, 우리가 모르고, 그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도 있다. 이 마지막이 럼즈펠드가 이라크를 침공하기 위한 변명이었다. 그리고 지젝은 여기서 럼즈펠드가 누락시킨 한 가지를 더 지적한다. 바로 네 번째 명제로 우리가 알고 있지만, 그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데올로기의 벽에 갇힌 채, 갇혔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상태가 지젝이 지적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이 책을 추천해준 이에게 감사한다. 덕분에 지젝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앞으로 지젝의 다른 책들을 통해 더 그의 세계를 탐험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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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2-22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데올로기의 벽에 갇힌 채, 갇혔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상태가 지젝이 지적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저는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을 읽고 있는데, 지젝 인터뷰를 실은 거랍니다. 쇼킹한 부분이 있어서 책을 읽는 재미가 있어요. (나중에 페이퍼로 올릴 예정이에요.)

반 정도 읽은 책이 네 권인데, 이번 해에 다 끝내고 싶었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내년으로 넘어가게 되었어요. 시간은 빠르게 달려 가는 것만 같습니다. 계획 실천의 발걸음은 느리기만 하고요.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감은빛 2012-12-27 16:01   좋아요 0 | URL
쇼킹한 부분이 뭔지 궁금하네요.
방금 다녀왔는데 아직은 안 올리셨네요.
어서 올려주시와요! ^^
 

내가 나고 자란 도시에서는 눈을 구경하기 어려웠다. 기록적인 폭설 때를 제외하면 눈을 본 기억은 거의 없다. 군대에서 평생 본 눈보다 훨씬 더 많은 눈을 단 몇 시간 만에 치우면서, 정말 고향이 그리웠다. 그리고 철없이 '화이트 크리스마스' 따위를 동경하곤 했던 시절을 후회했다. 눈이란 정말 보는 것만 좋을 뿐, 생활인들에겐 치가 떨리도록 싫은 존재라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서울에 산지 이제 제법 되었건만, 해마다 겨울 추위는 적응되지 않는다. 고향에선 분명 추위에 강한 편이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듣는 이들은 나이 때문이라고, 이제 너도 그런 때가 된 거라고 말들을 하지만, 갓 서울에 올라온 아직 젊었을 당시에도 난 추위에 적응하지 못했다.

 

 

 

2010년 1월 첫 출근날(아마 4일이었던가?)의 폭설을 잊을 수 없다. 당시 우리 집도 경사가 급한 언덕길 위쪽에 있었고, 일터도 역시 비탈길을 한참 올라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게다가 둘 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골목길 안에 있었다. 눈이 한번 내리면 큰길의 눈은 곧 치워지고 또 녹아 없어지지만, 그런 골목길은 금세 빙판길이 되어서 여러 날이 지나도록 얼음이 녹지 않는다. 연탄재를 뿌리고, 흙을 갖다 뿌려도 미끄러운 길을 걸어 오르거나 내려가는 일은 쉽지 않다.

 

 

 

그때 가파른 빙판길을 기어서 오르내리다가(심지어 기어 다녔음에도) 여러 차례 미끄러져 넘어졌다. 허리와 엉덩이에 멍이 들었고, 발목을 다쳐서 한동안 쩔뚝이며 걸어야 했다. 점심시간에 한의원에서 침 맞고, 저주파와 찜질 치료를 받고 나면 막상 밥 먹을 시간이 없어서 쩔뚝쩔뚝 걸으며 김밥을 씹기도 했다. 

 

 

지금 우리 집은 당시보다는 조금 더 언덕 아래쪽으로 이사를 왔지만, 여전히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내려야 한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누군가는 낭만적인 데이트를 떠올리며 행복해하고, 누군가는 소리 없이 눈 내리는 풍경이 멋있다고 감탄하고, 누군가는 술친구를 불러내겠지만, 나는 제일 먼저 걱정부터 하게 된다. 아직 어린 아이들이 빙판길에 넘어질까 봐 겁난다. 아침저녁으로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또 데려오는 그 길이 두렵다.

 

 

 

어제 나는 동네 작은 도서관에서 '글쓰기 강의'를 듣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아내는 갑자기 약속이 하나 생겼다고 했다. 그리고 큰아이는 생협 소모임에 나가고 싶어 했다. 아내가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큰아이를 소모임 장소에 데려다 주면, 거기서 나는 작은아이를 맡아서 글쓰기 강의를 갈 생각이었다. 큰아이가 모임을 하는 동안 나는 작은아이와 강의를 듣다가 시간 맞춰 다시 큰아이를 데리러 올 생각이었다. 7시가 조금 넘어 아내와 만나면 되겠다고 예상했다. 그때까지 나는 일터에서 좀 더 일을 하고 있었다. 

 

 

출발할 때 연락을 주겠다던 아내로부터 연락이 없어서, 나는 7시 반쯤 일터에서 출발했다. 이미 글쓰기 강의는 시작되었을 시간이다. 큰아이의 소모임 장소는 집과 글쓰기 강의가 있는 장소 사이에 거의 중간쯤 되는 위치다. 거기 도착해서 전화했더니, 아내와 아이들은 출발은 했으나, 버스도 안 오고 택시도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8시가 거의 다 된 시간이었다. 집 앞 도로 상황이 어떨지는 뻔히 그려졌다. 평소에도 잘 안 오는 택시가 이런 날 거기까지 들어올 리는 없을 테고, 버스 역시 얼어붙은 도로 사정으로 늦을 게 뻔했다.

 

 

 

결국 아내와 아이들은 8시 반이 넘어서야 버스에서 내렸다고 전화가 왔다. 서둘러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작은아이를 안고, 큰아이 손을 잡은 아내가 조심스럽게 걸어오고 있었다. 작은아이를 넘겨받고 큰아이는 소모임 장소로 보냈다. 아내는 늦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글쓰기 강의는 9시에서 9시 반 사이에 마칠 것이다. 지금 가도 이미 늦었기 때문에 결국 포기했다. 큰아이의 소모임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날 것이다. 나는 아직 저녁도 못 먹었기 때문에 근처 중국 음식점에 들어가 배를 채웠다.

 

 

 

큰아이가 모임을 마치고 나와서 손을 잡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작은아이를 안은 팔이 무겁다. 녀석 그새 또 많이 자란 모양이다. 인도에 쌓였던 눈이 녹다가 얼어붙어서 아주 미끄러운 상태였다. 한쪽 팔에 아이를 안고, 다른 쪽에 아이 손을 붙잡고 조심조심 천천히 걸었다. 간신히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마주 오던 중년의 아주머니가 꽈당 큰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엉덩방아를 아주 크게 찧었다. 옆에 서 있던 한 아저씨가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계속 넘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오늘 아침 큰아이를 학교로 데려가는 골목길도 완전 빙판길이었다. 아이의 손을 꼭 잡고 걸었으나, 아이도 나도 여러 번 미끄러져 균형을 잃었다. 거의 학교에 다 왔을 무렵 결국 아이가 미끄러지며 무릎을 찧었다. 내가 반사적으로 아이를 잡은 손을 끌어올려 넘어지지 않도록 했건만, 이미 아이가 무릎을 찧은 후였다. 우는 녀석을 간신히 달래어 학교로 들여보내고 나서 시계를 보니 평소보다 3배는 더 걸렸다. 저 골목길 얼음이 금방 녹을 일은 없을 테니, 내일부터는 훨씬 더 빨리 집에서 나서야겠다. 이게 다 눈 때문이다! 나는 눈이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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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12-06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0년 첫 출근날 저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정말 상당했죠.

감은빛 2012-12-07 15:32   좋아요 0 | URL
그날 정말 대단했죠!
하필 그날 저는 파주로 외근을 꼭 나가야 할 상황이라 고생을 좀 했어요.
파주는 서울보다 더 많은 눈이 쌓였더라구요. ㅠ.ㅠ

한숨에 2012-12-07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고난의 행군이었군요..저도요..눈이 싫어요...눈이 싫다는 건 나이를 좀 먹은 거라고들 하던데...

감은빛 2012-12-07 15:34   좋아요 0 | URL
아, 저는 군대 있을때부터 눈을 싫어했어요.
보통 이 땅의 남성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나 싶은대요. ^^

oren 2012-12-07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0년 첫 출근하던 날 폭설은 대단했죠. 그 당시 일화 하나가 떠오릅니다.

일산에 사는 제 친구는 주말을 맞아 근무지(영월, 동강시스타)에서 일산으로 올라왔다가, 새해 첫 출근하던 날 새벽 일찍 일산을 나섰는데, 얼마 못가 폭설을 만났고 별의별 '위험한 고비'를 숱하게 넘기고 간신히 저녁 늦게 영월에 닿을 수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그 친구는 지금 바그다드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한국의 눈'을 몹시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ㅎㅎ)

폭설이 내리면 제게 떠오르는 영화가 '투모로우'인데, 그 영화에서 여주인공 애미 로섬이 뉴욕의 도서관에 갇혀 맹추위에 떨면서도 '니체의 책'은 차마 불태울 수 없겠다는 '개념있는 대사'를 내놓던 기억도 떠오르네요. ㅎㅎ

감은빛 2012-12-07 15:40   좋아요 0 | URL
새벽에 출근해서 저녁에 닿으셨군요!
정말 별의별 고비를 숱하게 넘기셨겠어요.
그때 고생한 일화들이 상당히 많죠.
전철 중앙선에서는 역과 역 사이가 상당히 멀잖아요.
하필 딱 중간쯤에서 전철 차량 이상으로 승객들을 전부 내려서,
다들 눈 쌓인 벌판을 헤치며 걸었다는 일화도 있더라구요.

저도 [투모루우]에서 말씀하신 그 장면 기억이 납니다.
아무리 추워도 책을 태울 수는 없죠! 그럼요! ^^

blanca 2012-12-08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이가 참석할 수 있는 생협 소모임도 있군요! 고군분투하시는 감은빛님 정경이 떠올라 안타깝기도 하고 그렇네요. 저는 다행히도 아이 유치원이 바로 집 앞에 있어요. 하지만 저는 저대로 또 미끄러질려다 전신주 잡고 버티고 그랫습니다.^^; 다음에는 글쓰기 강의를 들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은빛 2012-12-13 14:56   좋아요 0 | URL
방송댄스 소모임이라고 TV에 자주 나오는 댄스음악을
틀어놓고 춤추는 소모임이예요.
생협에서 크고작은 행사가 있을때 공연을 하곤 했는데,
우리 큰아이는 초기멤버였고, 벌써 3차례나 공연을 했어요.
어린이가 4명, 어른들이 너댓명 정도 되는 듯 해요.

어젠 글쓰기 강의를 무사히 들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강의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