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산책을 나섰다. 골목을 벗어나 작은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폐타이어를 재활용한 고무가 깔린 놀이터를 밟으며, 발암물질을 비롯한 온갖 화학물질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아이들이 염려스럽기도 하지만, 그보다 흙을 한번 밟아볼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집과 학교 그리고 학원을 오가면서, 골목길과 큰길 어디에서도 흙을 밟아볼 기회는 없다. 아이들이 만나는 나무는 매연에 찌든 가로수가 유일하고, 아이들이 만나는 동물은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길고양이들과 산책 나온 강아지들뿐이다. 주말에 어디 도시 외곽으로 나가야 비로소 자연을 만나고, 다양한 생명을 만날 수 있다. 그렇지만 일주일에 한번 뿐인 그 기회조차 매번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바쁘고 피곤한 직장인으로서 휴일에는 방콕하고 싶은 맘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딴 생각을 한참동안 하다가 아이들을 불러 손을 잡고 집으로 향하면서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고층 빌딩은 없지만 단층 주택들이 하나둘 허물어지고 4~5층 빌라로 다시 지어지면서 점점 시야에서 하늘이 가려지고 있었다. 문득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가 무척 낯설게 느껴지면서, 점점 자연으로부터 멀어지는 이 삶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어느 행사에서 한 여성이 이렇게 인사말을 시작했다. “영화 워리를 보면 생명이 없는 지구에” 여기까지 얘기하고 잠시 말을 끊은 그 분은 대부분 사람들이 무슨 영화인지 알아듣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다시 한 번 더 덧붙인다. “제가 발음이 좀 안 좋습니다. 월! 이! 를 보면 쓰레기 밖에 남지 않은 지구에서 월-이가 작은 새싹 하나를 발견하여 지켜내는 모험을 그리고 있습니다.” 라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처음에 ‘워리’라고 듣고 무슨 개가 나오는 영화인가 생각했던 나는 월! 이! 라고 강조해서 발음하는 것을 듣고 나서야 아이들과 함께 본 그 애니메이션을 떠올렸다. 쓰레기를 치우는 로봇 월-이가 탐색로봇 이브(월-이는 ‘이바’라고 발음한다)를 만나 함께 작은 새싹을 지켜내고, 지구를 떠나 오랜 세월을 거대한 우주선에서 생활해 온(그래서 걸음도 걷지 못하게 퇴화되어 버린) 인류가 다시 지구로 돌아오도록 하는 모험을 한다는 내용의 영화였다.

 

 

 

 

 

 

 

 

 

 

 

 

 

 

 

 

 

 

그리고 최근에 또 다른 애니메이션을 하나 보았다. 흙이라곤 단 한 줌도 없는 도시. 나무는 모두 플라스틱이고, 배터리를 넣으면 다양한 색깔의 조명을 보여주며, 심지어 노래방 기능까지 갖고 있다. (마치 요즘 생수통을 배달하는 것처럼)집집마다 산소통(생수통과 똑같이 생겼다.)이 배달되고, 산소를 파는 회사 사장은 돈방석 위에 앉아 있다. 그런 도시에 살고 있는 주인공 남자 아이는 이웃집 누나를 좋아하는데, 그 누나는 ‘살아있는 나무’를 보고 싶어 하고, 나무를 선물하는 사람이 있다면 결혼할거라고 말한다. 주인공이 엄마에게 ‘살아있는 나무’를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자 엄마가 답하길 “그런 지저분하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걸 뭐하려고 찾니?” 라고 말한다. 바로 [로렉스]라는 영화 속 얘기다.

 

 

 

 

 

 

 

 

 

 

 

 

 

 

 

 

 

[로렉스]와 [월-이]의 세계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지구에 인간을 제외한 생명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가로, 세로, 높이가 대략 1m쯤 되어 보이는 정육면체로 압축된 쓰레기 덩어리들이 웬만한 고층빌딩 보다 더 높이 쌓여있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월-이]의 지구는 충격적이다. 살아있는 생명이라곤 바퀴벌레처럼 생긴 벌레 하나 밖에 없는 지구. 움직이는 것은 쓰레기를 압축해서 쌓고 있는 로봇 월-이 뿐이다. 물론 [로렉스]에서는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인간 외에 살아있는 생명체라고는 없는 인공물 속에서 살고 있지만 한 여자 아이를 제외하고는 자연에 대한 결핍을 느끼지 못한다. 아마도 [로렉스]의 세계에서 한 100여년 후쯤의 미래가 [월-이]의 세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모든 인공물들은 자연적으로 분해되지 못하고 그대로 쓰레기로 남는다. 인공물 밖에 없는 세계는 곧 모든 물건들이 쓰레기가 된다는 얘기. 거대한 쓰레기 처리장이 되어버린 지구는 로렉스의 세계로서는 필연적인 결과가 아닐까. 그리고 더 무서운 건, 지금 이 상태로 간다면 저 낯설어 보이는 [로렉스]의 세계가 바로 얼마 후의 우리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이미 앞에서도 말했지만, 지금 우리 아이들은 일상에서 자연을 접하지 못하고 자란다. 머지않은 미래의 아이들이 ‘살아있는 나무’가 뭔지 모르는 그런 시대가 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이 두 영화의 또 다른 공통점은 바로 ‘새싹’을 지켜내어 생명이 돌아온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두 영화 모두 이야기의 중반 이후는 바로 작고 여린 ‘새싹’을 지켜내기 위한 모험으로 그려진다. 생명 혹은 자연을 상징하는 이 작은 새싹은 황량하고 삭막한 그래서 생명이 살 수 없는 별이 되어버린 지구가 다시 크고 작은 생명체로 가득 찬 초록별이 되리라는 희망을 뜻한다. 이미 생명이 다 사라져버린 땅에서 또다시 생명을 키우기는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은 사막화가 진행되는 땅에 나무를 심으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들로 짐작해볼 수 있다. 그래도 희망을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니, 작은 씨앗 하나에, 작은 새싹 하나에 매달려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잃어버리기 전에 지켜내는 것.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진리를 지금 인류는 모르는 듯하다.

 

 

[로렉스]를 다 보고나서 큰 아이는 인형놀이를 하다가 나쁜 어른들로부터 ‘새싹(씨앗)’을 지키는 상황을 연출했다. 역시 아이들은 쉽게 그런 이야기를 흡수한다. 나는 아이가 놀고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면서 나 역시 그 나쁜 어른들 중의 하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아이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을까? 작은 생명도 소중하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줘야 할까? 아니 그보다 나는 먼저 아이들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아이들을 불러서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아빠가 자랄 때는 매일 동네 뒷산에 가서 놀다오곤 했어. 키 큰 나무가 많은 숲이 우거지고, 그 속에 다람쥐와 청서가 살았어. 아름다운 목소리를 뽐내는 이름 모를 새들이 그 숲에 살았어. 그리고 골짜기를 따라 작은 개울이 흘렀고, 쪼그만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가재와 개구리와 미꾸라지가 살았지. 아빠는 숲 속을 뛰어다니고, 골짜기에서 물장난을 치고, 가재와 미꾸라지를 잡고 놀았단다. 그런데 너희는 하루 종일 학교에서 학원으로, 학원에서 또 다른 학원으로 옮겨 다니고,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속에서만 살고 있구나. 아빠가 미안하구나! 이렇게 생명이라곤 없는 죽은 도시에서 살게 해서 미안해!”

 

 

해마다 새로운 도로가 뚫리고,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고, 새로운 마트가 생기고, 사람들은 자꾸만 회색 도시를 넓혀가고 있다. 자연은 점점 더 줄어들고, 사람들은 자꾸만 도시로 모여든다. 아버지 세대와 우리 세대가 겪어 온 급격한 변화들을 생각하면 아이들이 겪을 변화는 또 얼마나 클 것인지 쉽게 예측되지 않는다. 혹 정말 얼마 남지 않은 것은 아닐까? 무섭다! [로렉스]의 세계와 [월-이]의 세계가 현실이 되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남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 뱀발 하나

 지난 달 모 매체에 실었던 글이다.

※ 뱀발 둘

 이 글에 대한 편집장님의 평은 "글이 정교하지 못하다!"였다.

※ 뱀발 셋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이 글을 쓰면서 스스로의 글에 대해 한계를 많이 느꼈다. 역시 아직 나는 한참 모자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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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두 병

 

 

그 날 저녁엔 정말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하면서 피곤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어서 아이들 밥 먹이고, 씻기고, 재워야지.
그 생각 밖에 없었다.

하나 변수는 큰 아이가 의료생협 소모임에 가고 싶어 한다는 것.
아이에게 시간을 정해주고, 
그때까지 숙제를 끝마치고 저녁을 다 먹지 못하면
모임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약속 받았다.

당연히 아이는 약속시간을 넘겼지만,
워낙 가고 싶어하는 눈치라서 
서둘러 아이들 손을 붙잡고 집을 나섰다.
추울거라고 예상했지만, 예상보다 더 추웠다.
작은 녀석의 바지가 딱 맞는데,
안았더니 바지 아랫단이 자꾸만 올라가서 
맨 종아리가 찬 바람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안그래도 감기 기운이 살짝 있는 녀석인데......
큰 아이에게 날씨가 너무 추운데 그냥 집에 돌아가자고 했더니,
안된다고 가고 싶다고 한다.

작은 녀석의 여벌옷을 챙겨나오긴 했는데,
종아리를 가릴 담요 같은 걸 챙기질 못했다.
할 수 없이 내 잠바 지퍼를 열고 녀석을 잠바 속에 쏙 집어 넣고,
그 상태로 안고 다녔다.
자세가 부자연스러워서 더 힘들고 불편했지만 어쩔수 없었다.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큰 아이가 학교 준비물로 병뚜껑 두 개를 가져가야 한단다.
플라스틱 뚜껑이 아닌, 금속 뚜껑.
아무래도 맥주병 뚜껑을 말하는 것 같은데,
맥주병 뚜껑 두 개를 어디서 구하나?
어디 술집에서 달라고 해볼까?
한 손에 아이를 안고, 한 손에 아이 손을 붙잡고
술집에 가서 병뚜껑을 구걸하는 건 영 내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술 생각이 없었음에도,
집 앞 슈퍼에서 병맥주 두 병을 샀다.
서둘러 아이들을 씻기고, 재운 다음
가볍게 맥주를 마시고 잠들었다.
사실 이렇게 찬바람 부는 때에는 맥주보다
따뜻한 정종이 더 땡기는데......

 

 

 

그래서 결론은?

술 생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찬바람 맞으며 돌아다니다보니  갑자기 정종이 땡겼으나,

아이의 학교 준비물 때문에 결국 맥주 두 병 마시고 잤다는 거.

 

 

정종 한 병

 

 

그리고 그 이틀 뒤,

여전히 바람이 차가웠던 저녁.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놓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마땅한 찬거리가 없었다.

큰 아이에게 동생이랑 놀고 있으라고 해놓고,

집 근처 슈퍼로 뛰어갔다.

 

그냥 간단하게 햄이나 소세지 정도로 밥을 먹일까 어쩔까 고민하다가,

오뎅과 곤약을 발견했다.

순간 머리 속에서 오뎅탕에 따뜻한 정종 한 잔이 떠올랐다.

얼른 장을 봐서 집으로 달려왔다.

 

급하게 오뎅탕을 한 냄비 끓이면서,

아이들부터 먼저 밥을 먹였다.

나도 밥은 후다닥 먼저 해치우고,

정종을 한 주전자 데웠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정종 한 잔을 마시고,

따끈한 오뎅탕 국물을 한 모금 마시니,

뭔가 소원성취 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아이들은 열심히 밥 그릇을 비웠고,

나는 느긋하게 주전자를 비웠다.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면서 나도 기분좋게 잠이 들었다.

 

요즘 여러가지 일들로 머리가 복잡했는데,

이렇게 편안하게 잠들기는 또 오랫만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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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10-23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오늘 아침에 춥다, 춥다를 내뱉고 있었거든요. 출근길도 그랬지만 사무실도 그랬어요. 그런데 따뜻한 정종이라니, 오늘 퇴근길에 당장 마셔줘야 할 것 같아요. 저도 어제 새벽 내내 가위 눌리느라 잠을 못잤는데, 정종 한 잔이면 잠을 푹 잘 수 있을것 같아요. 아, 따뜻한 정종이 꽤 필요해지네요. 지금은 점심시간인데..

감은빛 2012-10-24 14:06   좋아요 0 | URL
혹시 어제 저녁에 드셨을까요?
다락방님과 함께 정종잔을 부딪히는 영광을 누리고 싶네요! ^^

야클 2012-10-23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뎅국물'에는 '어묵국물'이란 단어에서 느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어요. 아무리 일본말이라고 남들이 뭐라 해도요.

감은빛 2012-10-24 14:07   좋아요 0 | URL
그렇죠! ^^
최근에 알게된 일인데,
이 '오뎅'은 단순히 '어묵'을 뜻하는 일본어가 아니래요.
실제로는 어묵과 여러가지 재료가 들어간 음식 이름이라고 하네요.
 
동물 해방 - 개정완역판
피터 싱어 지음, 김성한 옮김 / 연암서가 / 2012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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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개봉한 유명한 SF 영화 스타워즈 프리퀄의 제목은 [보이지 않는 위험]이었다. 당시 극장에 앉아서 영화가 시작할 때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영화랑은 전혀 관계없이 떠오른 이 엉뚱한 생각은 이후 살아오면서 많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것은 현대 사회에서 위험(그 위험이 크면 클수록)은 잘 보이지 않고,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위험요소 중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문제가 바로 먹거리 문제라고 생각된다. 광우병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겠지만, 이외에도 각종 발암물질과 농약 그리고 유전자 조작 농산물(GMO)과 방사성물질 등이 우리의 식탁을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하루에 3끼씩 먹어야하는 사람들은 그 음식에 무엇이 들었는지 보지 못하고(또한 알지 못하고) 그것을 먹는다.

 

먹거리 문제에 대한 책들을 읽다가 자연스럽게 넘어온 주제는 바로 ‘채식’과 ‘동물권’이었다. 채식에 대해서는 아내를 통해 많은 이야기들을 들어왔으니, 우선 동물권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리고 ‘동물권(혹은 생명권)’ 운동 안에 다시 3개의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물 복지’, ‘동물권’, ‘동물 해방’이 그 경향들이다. 이중 ‘동물 복지’가 셋 중에서 가장 온건한 방식의 운동이며, 마지막의 ‘공물 해방’이 가장 급진적인 운동이다.

 

그 가장 급진적인 운동 흐름과 같은 이름이자, 그 운동의 시작을 연,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 개정완역판이 최근 출간되었다고 하여 찾아 읽었다. 이 책은 1975년에 처음 나와서 2009년 다시 개정판이 나왔다. 국내에는 1999년에 처음 소개되었고, 2009년의 개정판이 이번에 완역출간된 것이다. 역시 동물 해방 운동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책이라, 그 시작부터 흥미로웠다. 피터 싱어는 ‘동물 해방’이란 가치가 1792년에는 ‘여성 해방’이란 가치를 조롱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재밌는 일화를 먼저 소개한다. 현대 여성 해방론의 선구자인 메리 울스턴이 [여성의 권리 옹호]라는 책을 출간하자, 뒤이어 [짐승의 권리 옹호]라는 책이 익명으로 출간되었다는 것이다. 그랬다. 그 시대에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다.” 라는 주장이 마치 짐승(단어부터 동물이 아닌 짐승이다)이 사람과 평등하다는 주장처럼 허무맹랑하다는 것을 조롱하는 뜻으로 책을 출간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익명의 저작이 구체적으로 어떤 논거를 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시점에서 저 제목은 아주 급진적인 운동의 흐름으로 많은 진보운동 진영으로부터 환영받을 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성 차별과 인종 차별에 저항하여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말을 배우고 살았다. 그러나 종차별 즉 동물 차별에 대해서는 배우거나 들은 바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농담이나 조롱의 표현이었을 정도이다. 그리고 일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스스로를 ‘종차별주의자’로 인식할 기회가 전혀 없다. 근래 들어 점점 육식이 많아지고, 도로와 아파트와 골프장 때문에 야생동물들이 살 곳은 점점 줄어들지만, 누구도 인간을 제외한 다른 종들이 인간과 동일하게 자연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떠올리지 않는다.

 

그러나 저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현실에서 우리가 잘 알기 어렵고, 보이지 않을 뿐이지만, 실제로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인간은 종차별주의자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온갖 종류의 동물실험을 거친 상품들을 소비하고, 동물의 가죽이나 털을 입거나 매고, 동물의 살과 뼈로 배를 불리며, 동물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아 그들을 몰살시키고 있다.

 

이 책은 동물 아니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간 외의 다른 생물들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해주는 고마운 책이지만, 막상 내용을 읽어나가는 일은 괴롭고 힘든 일이었다.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되는 동물 실험 장면들과 공장식 농장에서 가축들이 대량으로 사육되는 현장에 대한 실감나는 묘사들 그리고 그런 묘사들과 함께 실려 있는 사진들 때문에 읽는 내내 불편하고 힘들었다. 공장식 축산 농가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그래도 조금 사전 지식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덜 불편했는데, 동물 실험 부분에서는 정말 읽으면서 욕이 나올 정도로 상식에 어긋난 짓을 저지르는 장면들 때문에 자주 책을 덮고 잠시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요즘은 ‘애완동물’이란 단어보다는 ‘반려동물’이라는 단어가 더 많이 쓰이고, 길을 걷다가 심심찮게 동물병원도 마주치고, 길을 걷다 어렵지 않게 동물들을 마주치는 시대가 되었다. 유명한 아이돌 그룹 출신의 여성가수가 동물권 운동 단체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채식을 하고, 가죽옷을 입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시대이다. 이 책을 통해 지구상에는 인간 외에도 수많은 다른 이웃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모든 종류의 차별에 반대하기 위해 이 책을 꼭 한번 읽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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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높고 맑았다. 바람은 나무를 춤추게 만들었고, 나무는 나뭇잎을 떨어뜨리며 화려한 춤사위를 펼쳤다. 시원한 바람이 좋아서 창문을 열어놓고 달리고 있었는데, 속력이 올라갈수록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이 강해져서 머리카락이 심하게 날렸다. 나중에는 바람이 제법 차갑다고 느껴져서 결국 창문을 모두 올렸다. 바람소리가 사라지자 갑자기 차 안이 조용해졌다. 오직 자동차 엔진 소리만이 울렸다. 그 갑작스런 조용함이 어색해서 라디오를 켰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 중에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나왔다. 볼륨을 확 키우고, 손가락으로 운전대를 두드리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신나게 노래를 부르다가 흥에 겨워 잠시 운전대를 놓았더니 차가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급하게 다시 운전대를 바로 잡으면서도 노래는 계속 불렀다.

 

시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유하 시인은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고 말했는데, 나 역시 바람 부는 날이면 어디론가 떠나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문득 거래처를 향해 가던 차를 확 돌려서 어디 조용한 해변에서 맘껏 바다 바람을 즐기다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물론 그 생각은 그저 생각으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실행에 옮겼다간 거래처와 사장님의 신용을 잃고 짐을 싸야 할지도 모르니. 이렇게 먹고 살기 어려운 시대에 살아가야 하는 처지를 탓하며 얌전히 거래처로 차를 몰았다.

 

하루 종일 바람에 대해 생각했다. 90년대 중반 해운대 모래사장을 걸으며 맞았던 바람. 90년대 후반 강릉 경포대 모래사장을 홀로 걸으면서 맞았던 바람. 여수 돌산공원에서 돌산대교를 내려다보며 맞았던 바람. 2000년대 초반 몽골 테렐지에서 맞았던 바람. 2000년대 중반 홀로 반포대교를 걸으면서 맞았던 바람. 생각해보니 기억에 남는 바람들은 대부분 이맘때쯤이거나 이보다 조금 더 지난 시기였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이맘때의 바람은 유난히 사람 마음을 흔들어 놓는 듯하다. 예전에 종종 그랬듯이 이것저것 재지 않고 그냥 훌쩍 떠나는 것을 언제 한번 해보고 싶다는 불가능에 가까운 바람을 가지며 바람에 대한 생각을 접는다.

 

※ 훌쩍 떠날 때 참고하면 좋을 책들

 

  전국 각지의 특산물들을 모두 모았다. 공예품과 음식과 지방 고유의 생산물들. 부제에 나온대로 팔도 명물 견문록이다.

 

 홀로 떠돌아다니다보면 이 동네엔 뭐가 유명할까? 이 동네에선 뭘 봐야 할까 정보를 몰라서 내 짧은 지식을 탓하는 일이 종종있었는데,(물론 지금은 인터넷이 있어서 금방 찾을 수도 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전국 어디에 뭐가 유명하다는 것 정도는 상식으로 알 수 있으리라.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늘 내 발길이 어디를 향할지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최근에 전체 시리즈의 개정판이 출간되었고, 제주도 편까지 묶어서 세트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욕심은 나지만 예전 책들이 있으니 참아야겠지.

 

 

 

 

 섬은 홀로 훌쩍 떠나기에 참 매력적인 공간이다.

 고립된 공간에서 일정 시간을 보내면서, 섬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것은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일이다.(아직 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김준 선생님의 섬문화 답사기는 훌륭한 참고서가 될 것이다. 전체 8권까지 낼 예정이라고 하는데, 한 권의 분량도 엄청나다. 부지런히 읽어야겠다.

 

 

 

 

 

 검색하다가 발견한 책인데, 무지 재밌을 것 같다.

 이름난 관광지가 아닌 작은 마을로만 떠돌아다니는 일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무척 반가운 책.

 그런데 차례를 보니, 제목처럼 '소읍'만 다닌 것은 아닌듯 하다. 나름 유명한 곳들이 나열되어 있는 듯. 그래도 꼭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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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2-10-20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명관광지는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실망할 때가 많죠. 조용하고 안 알려진 작은 시골마을이 좋은데...고만고만한 산골짜기 맑은 물가에서 조용히 쉬는 게 최고예요.

감은빛 2012-10-22 15:08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런 시골마을에서 한동안 쉴 수 있다면 좋겠어요!
 

어느새 창 밖이 어두워져 있었다. 그리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낮에도 구름 때문에 밝지 않은 날이었다. 시계를 보지 않았다면 밤이 되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몇 시간이나 엎드려 있었을까? 읽던 책을 덮으며 기억을 더듬어보지만, 시계를 본 기억이 없다. 하긴 시간이 뭐가 중요하겠어. 오랜 시간 책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겠지. 몸을 일으켜 담배를 하나 빼어 물고, 성냥갑을 열었다. 성냥 하나를 꺼내려다가 그만 성냥을 쏟아버렸다. 허리를 굽혀 바닥에 흩어진 성냥을 주으려다가 그냥 털썩 앉아버렸다. 성냥 하나를 집어들어 긋는다. 치익. 매캐한 냄새와 함께 불꽃이 일어난다.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당기고 손을 흔들어 불을 끈다. 꺼질듯 다시 살아나는 불꽃을 잠시 살펴보다가 재떨이에 던진다.

 

창가로 다가앉아 창문을 살짝 열었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비가 들이쳤다. 빗소리를 들으며, 바람에 날리는 빗방울을 맞으며 담배 연기를 창 밖으로 내뿜어본다. 펴져나가는 하얀 연기와 빗방울을 바라보면서 손은 또 담배를 입술로 가져온다. 담배를 빨아들이며 담뱃잎이 타들어가는 소리를 듣는다. 맨 처음 담배를 피웠을 때부터 이상하게 이 소리가 좋았다. 담배 연기를 폐 깊숙히 들이마시고 다시 내뱉는다. 곧게 뻗어가던 하얀 연기가 바람을 만나 흩어진다. 필터까지 타 들어온 담배를 재떨이에 떨어뜨리고 벽에 몸을 기대었다.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시계를 본다. 며칠째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으니, 며칠째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혼자말을 하는 것은 너무 처량해 보일 것 같다. 하긴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데, 처량해 보일 수는 없는 거 아닌가. 그냥 혼자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문득 이러다 내가 말하는 법을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화기를 쳐다본다. 며칠째 한번도 울리지 않는 전화. 나는 누구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면서 자꾸 전화기를 쳐다본다.

 

흠칫 찬 바람에 몸이 떨리는 것을 느끼고,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는다. 창문을 닫기 직전 골목 맞은편 집의 창문을 슬쩍 쳐다본다. 어제 밤에는 저 창문에 불이 켜져 있었는데, 오늘은 아직 불이 켜지지 않았다. 아니 벌써 불이 켜졌다가 다시 꺼진 건지도 모른다.

 

얇은 겉옷을 걸치고 방안을 서성거려본다. 좁은 방을 몇 바퀴 빙빙 돌면서 전화기를 만지작 거렸다. 전화기를 보다가 시계를 보다가 발은 문득 현관으로 향한다. 현관으로 내려서기 직전 동작을 멈춰 한동안 신발을 노려본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우산은 없다. 그리고 갈 곳도 없다. 마치 춤을 추듯 몸을 빙글 돌렸다. 다시 창가로 돌아와 앉아 창문을 살짝 열어본다. 비탈진 골목길에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저 멀리 노란 등이 하나 켜져 있지만, 창문 아래는 어둡다.

 

문득 누군가 이 창문 아래를 지나가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상상해본다. 여성이었으면 좋겠다. 빨간 우산을 쓰고 긴 머리를 바람에 날리며 비탈길을 걸어내려오는 여성을 머리 속으로 그려본다. 치마를 입고 굽이 높은 구두를 신어서 비탈길을 내려오는 걸음을 불편해 하는 여성. 왼쪽 어깨에 핸드백을 걸고, 왼손으로 우산을 들었다. 오른 손에는 전화기가 들려있고, 검지 손가락만 뻗어서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또각 또각 골목길을 내려온다. 창문 근처까지 내려왔을 때 여성의 전화기에서 벨이 울린다. 여성은 창문 바로 아래에서 전화를 받는다. 빨간 우산만 내려다보이고 여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 우산 아래에서 여성의 목소리만 들린다.

 

"여보세요."

"어, 어딘데?"

"지금 나왔어. 어. 어."

 

건조한 목소리다. 여성은 걸음을 멈춘 상태에서 계속 통화를 한다. 빨간 우산은 창문 바로 아래 멈춰있다.

 

"뭐? 이제와서 그러면 어떡해? 벌써 나왔다고 그랬잖아!"

 

갑자기 여성의 목소리가 날카로와졌다.

 

"됏어! 끊어!"

 

여성은 소리를 지른 후 몸을 홱 돌린다. 우산이 돌아가면서 빗물이 사방으로 튀긴다.

 

"아이씨! 신경질나!"

 

내려올 때와는 달리 빠른 걸음으로 여성은 올라간다. 여성은 저만치 멀어졌다. 신경질적인 걸음으로 계단을 한 두걸음 오르다가 구두 굽이 뚝 부러진다. 여성은 비명을 지르며 발목을 삐끗 했고, "아이씨! 짜증나! 진짜!" 소리를 한번 질렀다.

 

콰르르르릉 갑자기 들린 천둥 소리에 상상속의 여성이 사라져버렸다. 번쩍하는 번개는 못 본 것 같은데. 상상 속에 빠져 있느라 몰랐던 걸까? 벽에 기대어 앉아 발가락으로 담배갑을 끌어온다.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이고는 또 발을 쭉 뻗는다. 이번에는 공책을 발가락으로 끌어왔다. 연필도 끌어오려고 발을 쭈욱 뻗어보는데, 닿을듯 말듯 닿지 않는다. 담배 연기를 깊숙히 들이마시고 상체를 내밀어 연필을 집어온다. 담배를 재떨이에 떨어뜨리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빨간 우산을 쓴 긴 머리의 여성을 떠올리면서 연필을 움직인다. 번쩍! 번개가 치고 뒤이어 천둥이 울린다. 오늘 밤에는 제법 비가 퍼부울 것 같다. 밤비와 함께 보낼 긴 밤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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