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낫으따이(강남스타일)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이 대단하긴 대단한가보다. 우리나이로 세살, 아직 세돌이 채 안된 우리 둘째녀석이 토요일에 나를 보고 "아빠 당낫으따이"라고 했다. 내가 "아빠 강남스타일이야?" 그랬더니, 녀석이 좋아하면서 계속 "아빠 당낫으따이"를 반복했다. 우리가 거실에서 이러고 노는 동안 작은 방에 있던 아내는 그 소릴 듣더니 아이에게 아빤 절대 강남스타일이 아니라고 알려주고 싶어했는데, 마땅한 말이 생각나지 않았는지 그냥 어이없어하고 말았다. 나도 그닥 강남스타일(정작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따위는 되고 싶지 않다.

 

 

예 다랑지(예 다람쥐)

 

큰 녀석이 늘 "알겠습니다람쥐!"라고 말하는 걸 보고 그러는건지, 아님 어린이집에서 그렇게 말하는 아이들이 또 있는건지 모르지만, 요즘 작은 녀석에게 뭔가를 말하면 늘 "예 다랑지"라고 대답한다. 우리 집은 티비가 없어서 그런 프로그램을 늘 보여주는 것도 아닌데,(가끔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보여줄 때도 있지만) 이렇게 따라하는 걸 볼 줄은 몰랐다. 티비가 있는 집 아이들은 더 많은 유행어를 따라할까?

 

 

보-삐뻐(보고싶어)

 

요즘 우리집 꼬마 여우 두 마리는 주중에 엄마 여우와 아빠 늑대 모두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거의 없다. 엄마 여우도 여러가지 일들로 바쁘고, 아빠 늑대는 하는 일 없이 늘 바쁘다. 5일 중에 이틀은 아빠와 지내고, 나머지 삼일은 엄마와 지낸다. 주말엔 왠만하면 함께 있으려고 하는데, 행사가 많다보니, 하나씩 데리고 다니기도 하고, 둘 중 하나가 집을 비우기도 한다. 최근에는 엄마 여우가 토, 일 계속 오전에 나갔다가 점심 때 조금 지나서 돌아오곤 하는데, 아빠 늑대는 그때 대부분 전날 마신 술 때문에 비몽사몽이다. 억지로 깨서 밥만 차려주고 다시 잠드는 날이 많다.

 

아빠 늑대랑만 지내는 시간이면 두 꼬마 여우 모두 엄마 여우를 애타게 찾는 일이 종종 있다. 특히 작은 녀석은 입을 삐쭉거리다가 이내 울음을 터트리며 "엄마 보-삐뻐!"를 서럽게 외친다. 큰 녀석은 아침에 학교가는 길에 종종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울곤 했는데, 며칠 전부터 아내가 큰 녀석을 데려다주고 내가 작은 녀석을 데려다 주는 걸로 서로 역할을 바꿨다. 하루 이틀 겪는 일도 아니고 일주일에 이틀 이상 늘 겪는 일인데 아침, 저녁마다 엄마를 찾는 녀석들이 조금 야속하기도 하다.

 

※ 월요일에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외근과 급한 일들 덕분에 목요일에야 글을 완성한다. 애초에는 뭔가 더 추가할 이야기가 있었던 듯 한데, 이젠 기억나지 않는다. 최근 간간히 들춰보는 책 한 권 소개하고 마무리해야겠다.

 

 

 

 

 

 

 

 

 

 

 

 

 

 

 

며칠 전부터 간간히 들춰보고 있는 책. '놀이밥 사촌', '어린이 놀이 운동가'란 직함이 무척 낯설다. 중간쯤 들어가있는 '사주지 마시라'는 제목의 시도 인상적이고, 좀 더 뒤로가면 나오는 '내 사랑 말짜'라는 만화도 재밌다! 밖에서 제대로 뛰어놀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꼼꼼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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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12-09-28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람쥐는 개그콘서트의 꺽기도에 나오는 유행어에요. 우리 애들이 유일하게 밤 10시 이후에 자도 되는 날이 일요일, 개그콘서트 때문이죠. 옆지기부터 애들까지 개콘 중독자입니다. ㅎㅎ

감은빛 2012-10-15 13:30   좋아요 0 | URL
댓글이 많이 늦었습니다. 죄송!
네,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유행어들을 아이들이(가끔 어른들도) 많이 따라하는 듯 해요.
집에 티비가 없는 저도 가끔 인터넷 검색해서 찾아보기도 했어요.(궁금하더라구요.) ^^

비로그인 2012-10-19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집 둘째아이도 곧 세돌인데 '아빤 단나따이'라고 하길래 한참을 웃었어요. 집에선 텔레비전을 틀지도 않는데 아이들이 이렇게 따라하게 되는 것을 보면 신기해요.^^

감은빛 2012-10-22 15:06   좋아요 0 | URL
아, 아른님 둘째도 똑같군요!
역시 아이들은 다 비슷비슷하네요.
정말 신기해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 제주도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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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여행하던 아는 만큼만 보이고, 딱 그만큼만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아마 대학에 다닐 때였다. 사실 그 전까지는 제대로 여행이란 걸 해본 적도 없었으니, 그런 당연한 사실을 알 수도 없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역사에 관심은 많았지만, 제대로 공부해 본 적도 없었고 배경지식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돌아다니길 좋아하기도 했고, 내 발로 여기저기 한 번씩 밟아보고 싶단 생각에 훌쩍 떠나서 보름씩 한 달씩 떠돌아다니곤 했다. 다니면서 아쉬웠던 건 내가 돌아다녔던 고장들에 대해 잘 몰랐던 탓에 새로운 군이나 시에 들어서면 어디를 가서 무엇을 봐야 할지를 몰랐다는 것이다. 기차나 버스에서 내리면 이 고장에 가봐야 할 곳이 엄청 많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막상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가보면 별로 볼 게 없었다.

 

그래도 역사에 관심은 많았던 탓에 한번 가본 문화유산에 대해서는 꼬박꼬박 찾아보고 내 나름의 방식으로 그 곳을 기억 속에 담아두었다.(물론 지금은 다 잊어버렸다.) 이건 나중에 친구들이나 동료들 혹은 좋아하는 여성과 그 곳에 가게 되면, 내 특기 중 하나인 잘난 척하기에 아주 유용하게 쓰이곤 하는데, 특히 진주성은 여자 친구가 바뀔 때마다 놀러가서 나의 지적 허영심을 맘껏 펼쳐보이곤 했다.

 

제주를 처음 간 건 신혼여행 때였다. 이 책에는 유홍준 선생께서 결혼할 당시에는 상위 20%의 부유층만 제주로 신혼여행을 가는 호사를 누렸다고 했지만, 내가 결혼할 당시에는 이미 대학 졸업여행이나 고등학교 수학여행도 제주로 올 정도였고, 대다수의 신혼부부는 해외로 떠나고 있을 때였다. 이틀간 유명한 곳들만 돌아보는 관광버스를 탔는데, 대부분 연세가 있으신 어르신들이셨고, 간혹 동성끼리 온 젊은 분들도 있었지만, 신혼부부는 우리뿐이었다. 그땐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가이드가 보여주는 곳만 따라다니고, 들려주는 말만 주워섬길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본 제주의 자연에 푹 빠지고 말았다. 소위 말하는 유명한 포인트들만 돌았음에도 말이다.(물론 그 중의 3분의 1은 매우 가고 싶지 않은 곳들이었다.)

 

두 번째 이후 나는 제주 숨겨진 매력에 더욱 푹 빠지고 말았다. 할 수만 있다면 한두 달쯤 제주에 살면서 여기저기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싶다는 바램을 갖게 되었다. 물론 먹고 살기 바쁜 현실에 치여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먼 거리와 비행기 삯에도 불구하고 너댓번씩 가봤으니 많이 가긴 했다. 만약 그 중 한번이라도 이 책을 읽고 갔더라면 훨씬 더 알차고 흥미로운 여행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을 읽고 두 가지 일을 꼭 실천하기로 했다. 첫 번째는 4.3 사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찾아보고 알아볼 것. 이건 벌써부터 늘 생각만 해오던 것인데, 이젠 정말 실천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두 번째는 다음에 제주에 가게 된다면 꼭 오름 들을 더 많이 올라봐야겠다는 생각. 특히 다랑쉬오름은 꼭 올라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재작년 겨울 용눈이오름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다랑쉬오름을 꼭 올라보기로 마음먹었는데, 이 책 덕분에 다시 한 번 더 그 결의를 떠올리게 되었다. 유홍준 선생은 아직 눈 덮인 다랑쉬오름을 올라보지 못했다는데, 나는 그 가장 아름답다는 풍경을 꼭 내 눈으로 보고야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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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을 읽고 있다. 아, 그런데 정말 읽기가 힘들다. 글 자체가 딱딱한 점은 애초에 예상했던 바이므로 괜찮은데, 2장 '연구를 위한 도구'에서부터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각종 사례들을 읽기가 너무 불편하다. 그래 잘 알고 있다. 불편해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불편함을 제대로 알고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가 힘든 것은 어쩔 수 없다. 벌써 며칠째 2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제는 슬쩍 3장 '지금 공장식 농장에서는'으로 건너뛰어 봤는데, 평소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주제여서 그런지 여기도 그리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지금 내 상태와 상황이 책 읽기에 집중할만큼 여유롭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과 같은 이유로 어렵고 힘들게 읽었던 책이 또 있었다. [코끼리는 아프다]라는 책이었는데, 이 책에도 수많은 코끼리들의 피해사례들이 나열되어 있다. 처음에는 코끼리들이 겪은 끔찍한 사건들(엄마를 비롯한 무리의 어른 코끼리들이 모두 사냥당하는)을 겪고 살아남은 코끼리들이 인간과 똑같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통받는 사실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흥미를 갖고 읽었지만, 두꺼운 분량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임상심리학적 사례들을 계속 읽는 것은 너무나도 불편한 일이었다. 어렵게 어렵게 꾸역꾸역 읽어내기는 했으나, 뒤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져서 힘든 책이었다.

 

지금 읽고 있는 [동물 해방]도 거의 비슷한 패턴이다. 머리 속에서는 이렇게 딱딱하고 어렵고 재미없는 책 말고 저기 책장 한 켠에서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재미있고 말랑말랑한 책들을 읽으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자꾸만 그 유혹에 넘어가고 싶은 맘이 든다. 모르겠다. 일단 손에 붙들었을 때, 읽지 못하면 다시 언제 또 들춰보게 될지 기약할 수 없으므로 가능하면 어렵더라도 끝을 보고 싶다.

 

하지만 저기서 한쪽 구석에서 나를 부르고 있는 [서서비행],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등 이번에 주문한 책들로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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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이 맹렬하게 울린다. 눈을 채 뜨지도 못하고 더듬더듬 핸드폰을 찾는다. 화면 아랫쪽의 버튼을 끝까지 밀어야 알람이 멈추는데, 잠결에 자꾸만 손가락이 멈춘다. 잠을 쫓으려 애써보지만 뇌는 자꾸만 더 자라고 명령을 내리는 듯, 핸드폰을 쥐고 잠시 눈을 감았다 떴는데 5분 후에 다음 알람이 울리고 있다. 무거운 머리를 흔들며 간신히 몸을 일으킨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바로 일어서질 못하고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직도 눈이 저절로 감기려 한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면장으로 향했다.

 

일과 시간 내내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급하게 요청되는 사소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정작 계획했던, 그리고 꼭 해야할 일들을 하나도 진행하지 못했다. 맘먹고 일 좀 하려고 하면 또 전화가 와서 뭔가를 작성해서 보내달라고 하고, 뭔가 확인해서 연락달라고 하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퇴근시간이었다. 결국 싫어도 야근을 해야할 상황. 밥 먹을 시간도 아까워서 잠시 건물 1층 편의점에 뛰어가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사왔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놓고, 삼각김밥을 씹으면서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라면을 먹으면서도 여전히 눈으로는 모니터를 향하고 있었다.

 

시간이 저녁에서 밤으로 흐를수록 집중력은 떨어지고, 커피는 벌써 몇 잔째 마시는지 모를 지경이 될 즈음 대략 일도 마무리가 되어갔다. 그런데 헉! 벌써 12시가 넘어서 지하철 막차 시간이 다 되었다. 서둘러 정리를 하고 가방을 챙겨서 나섰다. 간신히 막차에 몸을 싣고 시계를 보니 12시 40여분. 그런데 이 열차는 집에서 한참 못 미치는 역까지 밖에 운행을 안한다. 몇 정거장만 더 가면 집 근처인데, 거기까지만 어떻게 안될까? 안타까워해도 방법은 없다.

 

종착역에서 우루루 내리는 많은 사람들. 대부분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고 내린 듯, 같은 방향을 향해 걷는다. 그리고 대부분 조금 걷다가 택시를 잡기 위해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이래서는 택시 잡기도 어렵다. 지갑 속엔 택시비도 없기도 하거니와, 오랫동안 모니터만 들여다본 탓에 밤 공기를 마시며 좀 걷고 싶어졌다. 집까지 걷는다면 한 50분쯤 걸리려나.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걷다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최근의 고민들. 바쁜 일정들. 답이 잘 나오지 않는 사람들과의 복잡한 관계들. 생각의 갈피들을 쫓아 이리저리 헤매다보니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내 발은 집 근처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등은 땀에 젖었고, 목 뒷덜미로 땀 방울 하나가 또르르 구르는 것이 느껴진다.

 

새벽 2시 컴퓨터를 켜고 사무실에서 하던 작업을 마무리 한다. 눈꺼풀이 자꾸만 무거워지고 어깨는 자꾸만 처진다. 대충 일을 끝내고 따뜻한 물에 몸을 씻고 나니 새벽 3시. 물을 마시고 잠시 인터넷 검색을 좀 더 하다가 쓰러지듯 누워 잠이 든다.

 

잠시 눈만 감았다가 뜬 것 같은데 또 다시 알람이 맹렬하게 울린다. 제발 오늘이 주말이기를 부질없는 바램은 소용없다. 알람은 평일에만 울리도록 설정되어 있으니 말이다. 조금만 더, 제발 조금만 더 자고 싶다는 요청은 곧이어 떠오른 지각이란 단어 하나에 무참하게 거절당한다. 안떠지는 눈을 억지로 뜨고 피곤한 몸을 일으킨다. 아 왠지 어제와 같은 피곤한 하루가 반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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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9-11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캬라멜 마끼아또 한 잔 사드리고 싶어지네요.

감은빛 2012-09-12 10:04   좋아요 0 | URL
사주세요! ^^
다락방님께서 사주신다면,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마시게 될 것 같아요.

Jeanne_Hebuterne 2012-10-14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우스 클릭을 너무 많이 해서 팔이 저리고, 눈이 감기고 정신이 몽롱해서 시간을 보았더니 새벽 두 시.
그런 날들이었어요, 감은빛 님. 그런 날이었나 봅니다, 감은빛 님.

감은빛 2012-10-15 13:34   좋아요 0 | URL
일이라는게 한번 몰리면 한꺼번에 몰려오고,
없을 때는 또 별로 없더라구요.

쟌님 방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려서부터 동물을 키워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아마 시골에 살았다면 달랐을테지만, 나는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우리 집은 가난했고, 입에 풀칠할 일을 걱정해야 할 집안에 애완동물은 상상할 수 조차 없었을 것이다. 우리 처럼 방 한 칸 얻어 사는 집들이 십여가구 있었던 우리 집(하나의 대문을 사용하는 건물로서의)에도 애완동물을 키우는 집은 전혀 없었다. 또한 좁은 골목마다 수십가구들이 옹기종기 모여살던 동네 전체에서도 동물을 키우는 집을 본 기억은 없다. 그러니 살면서 마주친 (인간 이외의)동물이라고 해봐야 바퀴벌레와 이와 모기, 파리 따위의 곤충들이 대부분이었고, 참새들, 비둘기들 등의 조류들이 가끔 마주치는 존재들이었다. 흔히 우리가 딱 '동물'이라고 떠올리는 포유류 중에서는 아주 가끔 만나는 길고양이들이 전부였고, 개를 길에서 마주친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어른이 될 때까지 만났던 친구들 중에서도 동물을 기르는 친구는 거의 없었다. 그러니 자라면서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과 교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다른 동물과 함께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은 참으로 어색하고 신기한 일이었다. 아마 고등학교 때였다. 한 친구가 집에서 고양이를 두 마리 길렀는데, 교복에 자주 고양이 털이 붙어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그것이 무척 보기 싫었고, 외출할 때마다 늘 고양이 털을 신경써야하는 일이 무척 귀찮게 보여서 더욱 기억난다) 그 집에 놀러갔다가 고양이이가 손등을 할퀴었던 일도 기억난다.

 

한때 사귀었던 후배는 개를 정말 좋아했다. 아직 제대로 입맞춤도 해보지 못한 연애 초기에 후배가 어디선가 나타난 개를 보고 반가워하며 쪼르르 달려가서는 쓰다듬고, 안고, 심지어 뽀뽀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 무척 놀랐다. 속으로 나도 아직 느껴보지 못한 입술의 감촉을 웬 X개가 먼저 느끼다니 라고 생각하며 짜증이 나기도 했다. 어쨌거나 나는 그 후배가 참 신기했다. 어쩜 저렇게 개를 좋아할 수 있을까?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요즘은 동물을 기르는 집이 많은 듯 하다. 그리고 개와 고양이 뿐 아니라 햄스터, 고슴도치, 카멜레온, 토끼, 거북이, 사슴벌레 등등 그 종류도 무척 다양해졌다. 길을 걷다 개와 고양이를 한번쯤 안만나는 일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동네에는 길고양이들도 많고, 사람들이 데리고 나온 개들도 많다.

 

아마 녹색당 활동을 하면서 그렇게 된 듯 하지만, 지금 내 주위에도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그 분들은 반려동물들의 엄마나 아빠(혹은 언니, 오빠)가 되어 정말 가족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 문화에 익숙치 않은 나는 역시나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 신기하게 느껴졌다. 거기서부터 출발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들도 인간과 똑같이 소중한 생명체이고,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사실, 지금껏 머리로만 알고 있던 그 사실을 이제 몸으로 알게 되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동물권, 인간의 이기심은 어디까지인가?] 이다. 피터 싱어로부터 시작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한 사회운동인 '동물권 운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동물권 운동의 역사와 현황 그리고 쟁점들을 알기 쉽게 잘 설명하고 있다.

 

특히 마음에 남는 건, 4장 '잔인한 오락' 부분이다. 사냥, 투우, 로데오, 경마, 서커스, 해상공원, 동물원, 애완동물 등의 인간 문화가 동물들에게는 잔인한 오락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그 중 몇몇 부분은 이제껏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이라서 더 맘에 남는다. 

 

또한 6장 '잔혹한 패션' 부분도 역시 인상적이다. '잔인한 오락', '잔혹한 패션' 이 책에서 만난 소제목들이 자꾸만 아프게 와닿는다.

 

 

 

 

 

 

 

 

 

 

 

 

 

 

다음에 읽을 책으로 보관함에 담아둔 책. 1975년 피터 싱어의 문제작 [동물 해방]의 개정판이 마침 최근에 나왔다. 동물권 운동을 이해하는데 있어 고전이라고 부를만한 필독서이다.

 

 

 

 

 

 

 

 

 

 

 

 

 

 

얼마전 이 책을 읽고 뜬금없이 거미를 길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통 같은 것에 가둬놓지 않고 그냥 집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식으로, 반려 동물로서 거미를 길러보는 것. 어떨까? 물론 우리 집 세 여우가 비명을 지르며 반대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지만, 거미는 모기나 파리 등 우리를 귀찮게 하거나 피해를 주는 곤충들을 잡아주고, 인간에게는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다. 게다가 거미줄은 마치 하나의 예술 작품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지만 모든 거미가 다 징그럽고 무섭게 생긴 것은 아니다. 책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주홍거미 같은 녀석은 제법 예쁘장하게 생겼다. 이런 거미가 우리 집 한켠에 거미줄을 치고 함께 살아간다면 나름 재미있을 것 같은데, 역시 아무래도 무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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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2-09-04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부분 사람들 중에는 고양이 발톱에 할퀸 경험 때문에 고양이를 싫어하더라고요. 저는 고양이 자체를 싫어하는건 아닌데 새벽에 짝 찾아 목놓아 우는 고양이 소리가 싫어요, 조용한 새벽에 들으면 너무 무섭거든요 ^^;; 귀여운 고양이도 좋고 애교 부릴 줄 알고 충직한 이미지의 개도 좋습니다. ^^

카스피 2012-09-05 22:00   좋아요 0 | URL
고양이를 길러봐서 아는데 발정기때 새벽에 우는 고양이 울음은 꼭 아기 울음같아서 좀 징그럽지요.그보다 더한 것은 자는데 고양이가 쥔 좋다고 목을 햟는데 고양히 혀가 까칠해서 자다가 흠찟 깨어난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ㅡ.ㅡ

감은빛 2012-09-11 15:54   좋아요 0 | URL
저는 고양이를 싫어하지는 않아요.
익숙하지 않아서 좀 낯설어할 뿐이죠.
귀여운 아기 고양이 사진을 보면 키우고 싶단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아이 둘 키우기에도 정신없는 신세인지라,
여기에 또 어떤 존재를 더 키우기는 어려워요.

그래서 거미가 우리 집 어느 구석에 함께 살아주면,
때때로 관찰도 하고 서로 사이좋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카스피 2012-09-05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감은빛님과 달리 전 개를 키워 새키도 길러보고(나중에 부모님이 다 남 줘버렸지만..),고양이도 길러보고(요놈들은 결국 가출했지요..),금붕어도 비둘기도 키워봤네요^^
동물권이란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위에서 말씀하신대로 고대부터 동물을 이용한 잔인한 오락을 인간이 많이 즐기긴 했네요.

감은빛 2012-09-11 15:56   좋아요 0 | URL
개와 고양이, 금붕어 까지는 이해했는데, 비둘기도 키우셨군요!
새는 보통 작고 귀여운 종류로 키우지 않나요?
비둘기 하면 왠지 도시에서 흔히 마주치는 닭둘기들이 떠올라서요.

많은 동물들을 키워보신 카스피님께서는 남들보다 더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하실 듯 해요.

양철나무꾼 2012-09-11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동물도 싫고,
곤충은 더,더,더 경기하게 싫어해요.

예전에 울아들 급식겁수위원을 했었는데,
HACCP 인증이 된 급식업체를 갔었어요.
그때 급조된 청결을 유지하는데,
거미줄과 거미가 천장에 매달려 있었어요.
그때 누군가가 '거미는 더러운 거 아녜요. 깨끗함의 지표 곤충이라고 봐야돼여.'해서,
제가 그랬죠.
'아무리 깨끗함의 지표 곤충이라고 해도 그렇죠~,
거미가 잡아먹는 온갖 곤충들도 깨끗한 건 아니잖아여~--;'

감은빛 2012-09-11 16:08   좋아요 0 | URL
제가 만나온 대부분의 여성분들은 양철님과 비슷한 반응이었어요.
우리집 세 여우도 마찬가지랍니다.
아직 어린 작은녀석도 날파리 하나만 보아도 '파이(파리)!'라고 소리를 막 지르곤 해요.

그런데 인간이 아무리 다른 생명체와 분리되어 '깨끗하게' 살고 싶어도,
이 자연 생태계의 구조상 그건 불가능한 듯 해요.
당장 우리 집에는 개미, 바퀴벌레, 거미, 흰개미, 불개미, 모기, 파리, 날파리, 하루살이, 집먼지 진드기, 좀벌레, 집게벌레, 쌀벌레 등등 셀수없이 많은 생명들이 함께 살고 있어요.

우리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그들은 분명히 우리와 함께 살고 있죠.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라는 책에 그런 징그러운 존재들이 잔뜩 들어있죠.
아무 양철님께서는 절대 못 읽을 책 중에 하나일 듯 싶어요. ^^

레나 2013-06-03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내일 당장 도서관가서 책 빌려 읽어봐야 겠네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거미를 좋아해서 키우곤 했었습니다. 매일 나가서 거미잡아서 창문에다 놓고 길렀었거든요ㅎㅎ 엄마는 항상 기겁하곤 했었어요. 지금은 공부하는데 시간이 거의 다 소비되어 관리를 잘 하지 못해 안으로 들여오지는 못하지만 독립하게 되면 다시 길러볼 생각이에요.
혹시 사막쥐라고 저빌 길러볼 생각 없으신가요? 진짜 깨끗하고 온순하고 귀여워요 단점은 번식이 너무너무 빠르다는거;;

아무튼.. 동물권에 관해 흥미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은빛 2013-06-12 10:49   좋아요 0 | URL
창문에다 놓고 기르는 것 아주 좋은 방법이군요.
물론 아내와 아이들이 기겁을 해서 실행하기는 쉽지 않겠지만요.
언젠가 도시에서 벗어나 살게되면
자연스럽게 거미와 다른 곤충들과도 공생하게 되겠지요.

사막쥐라는게 있군요.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