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눈은 네 목처럼 희다.

시몬, 눈은 네 무릎처럼 희다.

 

시몬, 네 손은 눈처럼 차다.

시몬, 네 가슴은 눈처럼 차다.

 

눈은 불의 키스에 녹지만

네 가슴은 이별의 키스에만 녹는다.

 

눈은 소나무 가지 위에서 슬프지만

네 이마는 밤빛 머리카락 밑에서 슬프다.

 

시몬, 네 동생 눈은 정원에 잠들어 있다.

시몬, 네 눈은 내 눈 그리고 내 사랑.

 

(레미 드 구르몽 ‘눈’, 고종석 『히스토리아』에 인용)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세계의 명시를 모은 작은 시집을 보면 애잔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구르몽의 시 ‘낙엽’을 발견할 수 있다. 잔잔한 구름과 붉은 낙엽 그리고 그 밑에 고독한 분위기에 감돈 가을 나그네가 자연스럽게 떠올려진다. 구르몽의 어조는 행이 거듭될수록 애상이 짙어지며, 마지막에 이르러 스산한 기운이 뼛속까지 스민다. 쓸쓸하고도 짧게 흘러가는 고독감은 곧바로 ‘시몬, 눈은 네 목처럼 희다’로 시작하는 겨울에 관한 시에서도 이어진다. 화자는 시몬을 간절히 불러보지만 그 분위기는 차갑고 더욱 슬프다.

 

과연 두 편의 시에 언급되는 ‘시몬’은 과연 누굴까. 지금도 미지의 여인이 시인과 어떤 관계인지 무척 궁금하다. 이 시를 처음 읽는 사람은 시인이 짝사랑했던 여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구르몽은 ‘시몬의 시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구르몽은 금욕을 멀리하고 은둔 생활을 했다. “금욕은 성적 일탈 가운데 가장 기묘한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그러나 구르몽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는 달리 완벽한 금욕주의자는 아니다. 그가 쓴 시 두 편은 애송되고 있지만, 여전히 시인의 삶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구르몽의 생애를 소개한 글을 알 수 있는 책은 고종석의 『히스토리아』(마음산책, 2003/절판)와 동아일보 이기우 기자의 『매혹과 환멸의 20세기 인물 이야기』(황금가지, 2006), 단 두 권뿐이다. 두 권 다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한 칼럼을 모은 책이라서 구르몽을 자세히 알기에는 만족스럽지 않다. 고종석과 이기우의 칼럼은 국내에서 단편적으로 많이 알려진 구르몽을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구르몽은 시뿐만 아니라 소설도 남겼는데 국내에 소개된 것은 『색 색 색』(문지사, 1993년)이라는 참으로 요상한 제목이 붙여진 작품만이 유일하다. 이 소설은 1908년에 발표되었고, 원제는 『Couleurs, Contes Nouveaux Suivi de Choses Anciennes』이다. 14편의 독립된 이야기와 1편의 산문시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의 다채로운 모습을 주제로 하고 있다. 순수한 목가적 사랑에서부터 쾌락을 강조하는 사랑까지 각기 다른 연인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독신인 그가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쾌락을 철저히 거부하는 금욕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색 색 색』은 구르몽의 작품 세계와 생애를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한다. 여기서 우리가 몰랐던 구르몽의 또 다른 모습을 알 수 있다. 구르몽은 시인 아폴리네르와 플뢰레라는 소설가와 함께 뤽상부르 공원을 산책하다가 갑자기 자기만 혼자 걸어가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혼자 공원을 걷고 싶었던 것일까. 아폴리네르는 구르몽이 어디에 가는지 몰래 뒤를 밟았다. 구르몽은 철책에 서 있더니 거기에 자신의 친필이 있는 종이 한 장을 붙였다. 그러자 종이가 붙인 철책 쪽으로 여인들이 다가왔다. 그러자 여인들은 종이에 적힌 글과 그 글을 쓴 주인을 바라봤다. 갑자기 여인들은 시인의 모습을 보자마자 기겁하여 그냥 떠나고 말았다. 아폴리네르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구르몽을 피했던 여인에게 다가와 물었다. 시인이 쓴 종이에 자신과 성관계를 맺는 조건으로 100프랑으로 내건 조건이 있었는지 말이다. 여인은 공원을 지나가는 남자들을 유혹하는 창녀였고, 못 생긴 시인의 얼굴을 보고 100프랑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무시하고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창녀는 시인에게 성적 욕구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구르몽 입장에서는 무척 자존심 상할 법한 일이다.

 

구르몽은 “금욕은 성적 일탈 가운데 가장 기묘한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겉보기와는 달리 쾌락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그가 실천하는 금욕적 삶은 자신을 스스로 단련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묘한 성적 일탈일 뿐이다. 결핵의 일종인 낭창에 걸려 추한 얼굴을 가진 바람에 외출도 하지 않은 채 독신으로 살아야 했던 시인에게 쾌락을 스스로 거부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운명이다.

 

구르몽이 여성들과 교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편지. 그는 1915년 죽기 한 달 전까지 나탈리 크리포드 버니라는 이름의 여자에게 꽤 많은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구르몽과 나탈 리가 만나기 시작한 때는 1910년. 이때 나탈리는 33세의 작가 지망생이었고, 구르몽은 화려한 시기가 완전히 지나가버린 52세였다. 두 사람의 집은 서로 가까워서 구르몽은 많은 문학가와 예술가들을 초청하는 모임에 나탈리도 초대했다. 비록 못 생기고 성적 매력이 없지만, 구르몽은 동료 작가들로부터 훌륭한 문인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아마도 구르몽은 자신의 명예를 기회 삼아 나탈리와 좀 더 가까이 지내고 싶었을 것이다. 외모가 아닌 능력으로 승부를 건 것이다. 구르몽은 나탈리가 직접 쓴 시를 자신이 운영하는 문학잡지에 실리게 할 정도로 그녀를 위한 일이라면 모든 것을 다했고, 완전히 그녀만 바라보는 사랑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구르몽은 그녀를 ‘아마조네스’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시인의 사랑을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나탈리는 자유분방한 성격의 레즈비언이었다. 편지를 계속 주고받았으나 구르몽은 나탈리를 자신이 소유할 수 있는 여인으로 만들지 못했다. 그녀의 매력에 끌려 다니기만 하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구르몽이 세상을 떠난 뒤에, 그녀에게 보낸 편지글이 책으로 공개되었다. 책 제목은 ‘아마조네스에게 보낸 편지’였다. 구르몽과 나탈리가 남긴 상당한 분량의 편지글은 한 권의 철학책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수준 높은 관념적 주제 혹은 철학적 주제를 다루고 있다. 나탈리는 1972년,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파리에 있는 나탈리의 묘지에 ‘구르몽의 아마조네스’라고 언급된 묘비명이 남아 있다.

 

과연 미지의 여인 시몬은 시인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인 나탈리인 것일까. 아쉽지만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희박하다. 왜냐하면 ‘낙엽’과 ‘눈’이 나탈리를 만나기 전에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독에 몸부림치던 시인이 사랑이 너무나도 그리워서 상상 속의 뮤즈를 문장을 통해서 만들었을 수도 있다.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만든 여인 조각상에 사랑에 빠져 비너스에게 소원을 빌어 조각상을 갈라테이아라는 여인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구르몽은 시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시몬을 그리워하고 그녀를 간절히 부름으로써 진짜 사랑이 실현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런데 뛰어난 감수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추한 외모에 모든 연인들의 사랑을 이루어지도록 도와준다는 비너스마저 외면해버리고 말았다. 시에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그녀를 향해 부르는 시인의 공허한 독백이 너무나도 슬프게 느껴진다. 시몬아,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을사랑하는현맘 2015-01-07 0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학교 시절 친구가 건네준 편지에 늘 저 싯구가 적혀 있었어요. 그 친구는 4계절 내내 저 싯구를 쓰던 참 철학적인 친구였죠. 구르몽 시인의 이런 이야기를 알고 있었을까요? ㅎㅎ
그의 삶이 참 안쓰럽긴 한데 그런 고통과 어려움이 없었다면 깊이 있는 시들도 나오지 않았을거란 생각도 드네요. 삶이란 참...^^

cyrus 2015-01-07 11:05   좋아요 0 | URL
좋은 시가 있는 편지라니 무척 낭만적입니다. ^^
 
안도현의 발견 - 작고 나직한 기억되지 못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안도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안도현의 발견』을 구입하거나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싶은 분이라면 꼭 이 책이 몇 쇄인지 먼저 확인하시길 당부한다. 내가 읽은 책은 작년 11월 5일에 나온 초판 2쇄다. 그런데 2쇄로 나온 책중에 글 제목을 잘못 인쇄되었거나 아예 제목 자체가 없는 글이 수록된 파본이 있을 수 있다.

 

 

 

 

 

 

130쪽은 순교한 천주교인 요한 유중철과 루갈다 이순이 남매 이야기를 소개한 ‘동정부부’라는 글이 시작된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이 글의 제목이 ‘과일군’으로 인쇄되었다. 그렇다면 글 제목인 ‘동정부부’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152쪽에 ‘과일군’이 시작되는 페이지에 ‘동정부부’가 인쇄되었다. 글 제목이 서로 뒤바뀌었다.

 

 

 

 

 

 

잘못된 인쇄는 이것뿐만 아니다. 다음 글이 이어질수록 엉뚱한 글 제목이 나온다. 132쪽에 시작되는 글의 제목은 ‘토끼비리’이다. 그런데 150쪽에 나오는 글의 제목인 ‘시비’로 소개되어 있다. 다음 페이지인 133쪽을 보게 된다면 책을 만드는 과정에 편집이 제대로 되었는지 의심이 든다. ‘보리밝기’라는 글의 제목이 찍혀 있다. 

 

 

 

 

 

 

 

134쪽에 나오는 글의 제목은 ‘내성천’이다. 그런데 제목이 사라졌다. 이것 말고도 제목 없이 인쇄된 글이 있다. 책의 2장(‘기억의 발견’)에 수록된 글 제목 대부분 잘못 인쇄되었다. 바로 잡아야 할 페이지가 꽤 많다.

 

초판이라면 이런 실수를 용납할 수 있다. 그런데 2쇄에서 이런 인쇄 실수가 나온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출판사측이 초판의 인쇄 오류를 알지 못한 채 2쇄를 찍었다는 것이다. 알라딘에 등록된 『안도현의 발견』 서평들 하나하나 읽어보면 인쇄 오류에 대한 내용을 언급한 서평이 없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인쇄 오류를 발견했으면서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그냥 넘어갈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읽은 책이 수많은 2쇄 중에 하필 잘못 만들어진 소수의 파본일 수도 있다. 

 

한 글자가 잘못 인쇄된 책은 사소한 편집의 실수로 넘어갈 수 있다. 이것만 가지고 파본이라고 우기면서 새 책으로 바꿔달라고 강요하는 것도 우습다. 그런데 40여 쪽에 달하는 분량의 인쇄가 잘못되었으면 책을 산 독자 입장에서는 황당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물론 아량이 넓은 독자라면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편집자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인쇄 실수를 출판사가 발견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베스트셀러라고 해도 좋은 책이라 할 수 없다. 특히 도서정가제 실행 이후로 출판사는 독자들이 실망하지 않는 품질의 책을 만들어야 한다. 돈 주고 파본을 산 독자 입장에서는 불쾌하다. 파본을 바꾸고 싶지 않더라도 독자는 출판사에 책의 잘못된 점을 알려야 한다. 아니면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를 위해 서평으로 문제 사항을 언급해줘야 한다. 독자 서평은 유명 블로거가 쓴 것이 아니라면 많은 사람이 잘 안 읽는다. 일부 출판사 관계자들은 독자 서평이 아무리 많은 책이라도 판매 부수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름 모르는 독자는 당신의 평범한 서평을 한 번이라도 읽을 수 있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양물감 2015-01-07 0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읽지 않은 책이라 알 수 없지만,
안도현이라는 작가와, 한겨레출판이라는 출판사를 생각하면 의외네요.

cyrus 2015-01-07 11:11   좋아요 0 | URL
서점에 파는 책들을 확인해보려고 합니다. 2쇄 오류를 이미 확인하고 다음 쇄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단발머리 2015-01-07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보다 일이 크네요. 실수라고 하기에도요.
안도현님과 한겨레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 상황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네요.
어쩌면 아예 모를 수도 있지 않을까요? @@

cyrus 2015-01-07 11:12   좋아요 0 | URL
일단 서점에 파는 책의 상태를 확인하고 인쇄 오류가 그대로 남아있다면 한겨레출판사 페이스북에 직접 이 사실을 알리려고 해요.

소민 2015-01-13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2쇄를 구입하여 읽던 중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큰 오류라니요. 알리는 방법이 없을까요? 책 내용은 너무 좋은데 안타까워요.

cyrus 2015-01-13 19:07   좋아요 0 | URL
제가 교보문고에 파는 책을 확인해보니 벌써 3쇄가 나왔더군요. 출판사가 2쇄 파본을 미리 확인해서 바로 3쇄를 냈을거라고 생각됩니다.

소민 2015-01-15 2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 알려주신 덕에 알라딘 1대1 문의를 쉽게 할 수 있었습니다. cyrus 님의 리뷰 오류와 같다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즉각 3쇄본으로 바꿔줬습니다. 오류본 그냥 가지고 있어야 하나, 했는데 오늘 새책이 왔습니다. 감사드려요.^^

cyrus 2015-01-16 11:58   좋아요 0 | URL
잘 됐군요. 사실 이 정도 오류가 많으면 파본으로 봐야해요. 제가 새책을 받은듯한 기분이 듭니다. ^^

종이배 2015-01-27 0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 책도 그렇습니다.ㅜ
엊그제 출판사에 문의해 놓았는데 답이 없군요.
출판사가 아니라 알라딘에 문의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생기네요.
사실 이건 알라딘 잘못이 아니라 출판사 잘못일 텐데 말이지요...
솔직히 이것은 `전량 리콜` 수준이어서 출판사 홈피 공지사항에 올려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출판사 측에서 먼저 내놓은 답이 없는 것 같아
한겨레출판에 대한 신뢰감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책은 정말 말할 수 없이 참 좋은데, 실수에 대응하는 출판사의 태도가 참 아쉽네요...

cyrus 2015-01-27 21:24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인쇄 오류 문제가 심각한데요. 출판사가 아무런 공식 사과문이나 해명도 없다니 실망스럽습니다. 출판사의 안이한 태도가 좋은 저자와 책의 명예까지도 떨어뜨리네요. 이런 출판사는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신뢰받을 수 없습니다. 종이배님도 파본을 새책으로 교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알라딘에 문의해보셨으면 합니다.

종이배 2015-01-30 21:0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여기에 글을 올리고 난 뒤, 고민하다가 출판사에 항의성 메일을 드렸더랬습니다.
그 뒤에 곧바로 출판사에서 새로 찍은 도서를 보내주고
파본 도서의 폐기 또는 반품에 관한 사과문과 안내를 받았답니다.
뒤늦게라도 출판사에서 제대로 처리하려고 노력하신 것 같아 다행스러웠습니다.
평소에 신뢰하지 않았던 출판사였다면 그냥 그러려니 했겠지만,
신뢰하고 싶은 출판사였기에 이런 지적도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감사합니다.
내 것만 잘못 되었나,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cyrus님이 올려주신 글 덕분에 저도 용기를 낼 수 있었거든요. 감사합니다.^^
 
이명현의 별 헤는 밤
이명현 지음 / 동아시아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밤하늘의 별빛을 바라본다는 것은, 어쩌면 말이 필요 없는 동심이다. 별을 보면 멋지다는 환성과 함께 사람들은 저마다 아름다움을 느끼고, 착하고 선한 생각을 하게 된다. 시골집 마당 평상에 누워서 밤하늘을 쳐다보면 무수히 많은 별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그 때 별은 우리의 꿈이었으며 ‘저 별은 너의 별, 저 별은 나의 별’ 하며 별을 세어 보았던 사람들은 과연 그 별을 다 셀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유난히 바람이 부는 날이면 더욱 별이 반짝였던 그 시절에 별을 보며 동심의 세계에서 꿈과 희망을 그리곤 했다. 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은 인간에게 신비의 대상이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는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고 가다 도랑에 빠졌다.

 

옛날에는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별을 세기도 하고, 그 많은 별 중에는 자신의 이름을 붙이는 별 하나쯤은 고를 수 있었다. 누구나 별을 가져도 충분할 정도로 별이 많았다. 그러나 어느 사이에 하늘의 별은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이제 대도시에서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수가 줄었다. 옛날에 그 많던 별이 지금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다. 밤에는 별이 빛난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공해로 찌든 도시에서는 별이 안 보인다고 하지만 지금도 우리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다.

 

과학자들은 1백37억 년 전쯤 빅뱅이 있었다고 말한다. 빅뱅으로 시간과 공간이 생겨났고, 수소와 헬륨이 만들어졌다. 이후 무수한 별이 등장해 현재의 우주에 이르렀다. 우주에는 1천억 개가 넘는 은하가 있다. 1초에 30만㎞의 광속으로 1백억 년을 달려야 도달하는 은하도 있다. 이처럼 우주는 상상하기 힘든 무한대의 공간이다. 지구는 그야말로 우주의 아주 작고 아름다운 자갈인 셈이다. 우리는 별을 만든 먼지 덕분에 형성된 ‘생각하는 별 먼지’다.

 

이렇게 우주 앞에 서면 생각하는 별 먼지들은 참으로 보잘것없다. 그런데 아주 오래된 고향의 흔적이 남아있을 밤하늘을 바라보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천문학자 이명현 씨의 표현을 빌리면 밤하늘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문화유산이다. 아버지의 아버지로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만나는 인류의 조상까지 늘 별과 함께했다.

 

별의 수명은 인간의 일생과 비슷하다. 별도 태어나고 죽는 일생이 있고, 사람과 똑같이 모진 생애를 산다. 별은 우주 먼지와 수소 가스가 밀집해 수축하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계속 밀도가 높아지면서 핵융합이 시작되면 본격적인 별의 일생이 시작된다. 이 원시별이 완전한 별이 되기 전 수만 년 동안 스스로 수축하면서 내부 물질을 분출하는 단계를 거친다. 별 내부의 수소와 헬륨을 거의 다 태우고 나면 내부의 엄청난 에너지에 의해 별은 점점 부풀어 오른다. 별의 크기가 커지면서 표면 온도도 내려가 푸른색의 젊은 별들이 붉은색의 늙은 별(적색거성)로 변해간다. 거대한 성운 속에서 태어난 아기별이 자신을 태우면서 성장해가고 더는 태울 것이 없어지면 여러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생명을 다한 나뭇잎이 떨어져 땅속에 묻히면 새로 돋아나는 씨앗의 좋은 거름이 되는 것처럼 수명을 다한 별이 폭발하면서 내놓은 가스와 먼지 잔해는 새로운 별과 지구와 같은 행성을 만드는 재료가 된다.

 

하늘에 반짝거리는 저 별도 영원히 빛나지만은 않다. 당대 최고의 스타(star)도 전성기 동안 크게 반짝거리다가 한순간에 사라질 때가 있듯이 별도 밤을 비추지 않은 때가 온다. 비록 별은 영원하지 않지만, 그것이 우주 한가운데에 사라지면서 흩뿌려진 별 먼지는 또 새로운 별을 만들어 낸다. 생명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고, 다시 지구의 탄생을 살펴보면 우리의 고향은 먼 옛날 태양계 근처에서 폭발해 생을 마감한 어느 별의 중심이 아닐까 한다. 우리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손녀의 손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모두의 고향은 별의 중심인 것이다. 옛날부터 인간이 별을 보며, 별에 대해 막연한 동경을 가진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머나먼 우주 속 고향을 그리워하는 아스트랄한 향수. 내 묘비명을 이렇게 정했다. 칸트의 묘비명을 살짝 바꿨다. 내 머리 위엔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마음엔 별 먼지.

 

 


댓글(4)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피북 2015-01-05 2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별에 관해 새로운 사항을 알게되었어요. 폭발한다는 사실과 가스와 잔해가 새로운 행성을 만든다는 이야기 참 신기하네요^^ 그리고 벌써 묘비명을 생각하시는 모습 참 멋지시네요^^ 그러고보니 별을 올려다본지가 참 오래된거 같아요. 별이 그리워지는 밤이네요^^

cyrus 2015-01-06 13:31   좋아요 0 | URL
사람이 죽으면 그의 영혼이 별이 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정말 인간과 별은 깊고도 오묘한 관련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stella.K 2015-01-06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잖아도 칼 세이건 살롱에 이명현 박사가
한 달 동안 진행한다는데 네 생각나더라.
아무래도 사는 곳이 지방이라 좀 어렵겠지?
난 장소가 집에서 가깝긴 한데 러시아워 시간 때라
그게 그거란 생각이 든다. 과학을 아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근데 이 책은 좀 재밌을 것 같네.^^

cyrus 2015-01-06 19:31   좋아요 0 | URL
별과 우주에 관한 에세이집에 가까워요. 어렵지 않아요. 좋은 시를 인용한 글도 있어요. ^^
 

 

 

 

 

 

 

 

 

 

 

 

 

 

 

 

 

 

 

 

내 정치적 성향은 자유주의에 가깝다. 그런데 나랑 비슷한 정치적 성향이 있는 페친(페이스북 친구)이 진보 성향을 까는 글에 이런 댓글을 남긴 적이 있었다. 노동 한 번 제대로 한 적 없는 귀족 마르크스가 노동자를 옹호하는 사상을 만든 것 자체가 우습다고. 그 말 속에는 현실에 실현 불가능한 공허한 마르크스 사상을 완전히 깔보는 뉘앙스가 느껴졌다. 우리나라 보수는 마르크스 사상을 공부하는 진보를 무시한다. 아니, 그냥 마르크스가 쓴 책을 읽어도 이상하게 바라보는 것이 현실이다. ‘마르크스=북한’, ‘민주주의의 반대는 공산주의’라는 잘못된 인식을 가진 이들도 있을 것이다. 북한은 김정은이고, 민주주의의 반대는 전체주의다.

 

나는 마르크스 사상을 진득하게 공부한 것도 아니고, 합리적인 보수라고 내 입으로 말할 수준은 아니다. 그렇지만 마르크스 사상을 완전히 폐기해야 할 학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자들이 스스로 보지 못하는 맹목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는 마르크스 사상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무조건 하나의 생각 방식으로만 본다고 해서 그대로 100% 완벽하게 일치하고 딱딱 들어맞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기준을 강조하는 생각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면 어리석은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이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면 세상을 달리 보는 생각과 의견이 많아야 한다. 비록 내 생각과 의견과 다르다고 느껴지면 건전한 공론을 통해 개진하면 된다. 자꾸 내 생각과 말이 맞는다고 우기면서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무조건 까고 보는 태도는 무식함을 스스로 드러내는 불통의 자세이다. 이러니 보수가 꼴통 소리 듣지. 물론 진보도 보수를 헐뜯어서 맞짱으로 되갚아주는 것도 좋지 않다. 갈등의 골만 깊어질 뿐이다.

 

상대방의 의견을 비판하려면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그가 믿는 생각이 어떤 건지 제대로 공부하고, 내 비판 의견이 상대방과 같은 진영을 함께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솔직히 마르크스가 공장에 들어간 적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상을 무시하는 발상은 유치하다. 그 페친은 엥겔스의 존재를 몰랐을 것이다. 마르크스 사상을 제대로 공부했다면 저런 발상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다, 알고 있어도 마르크스 사상을 지적하기 위해 또 이런 생각을 하겠지. 공장 사장 엥겔스도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다니 어이가 없군.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왜 노동자를 도우려는 사상을 만들었는지 전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또 노동자의 목소리도 무시한다. 일단 그 사실을 알고 난 뒤에 찬찬히 검증하면서 비판해도 늦지 않다. 만약에 우리나라에 엥겔스 같은 사장이 나오면 귀족노조에 굴복한 어리석은 경영인 또는 종북 좌파로 욕 엄청나게 먹었을 것이다.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내 생각과 다르면 무조건 욕하고 보는 것이 상책이다.

 

다음 글은 『자본론을 읽다』를 쓴 양자오의 칼럼이다. 유유출판사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관리자님께 허락을 받고 블로그에 공유한다.

 

 


마르크스는 평생 공장들에 들어가 노동자가 된 적이 없다. 그러나 이것이 그가 노동자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가 평생의 힘을 다해 노동자를 위해 발언하고 노동자의 천국이라는 역사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마르크스의 좋은 벗 엥겔스는 맨체스터 방직 공장의 사장이었고, 마르크스는 당연히 엥겔스를 통해 공장 제도와 그 제도를 지탱하는 자본주의 작동 논리를 깊이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엥겔스의 협력이 없었더라도 마르크스는 당시 영국 사회에서의 노동자의 대우와 처지를 명백히 인식하는 데 자신이 필요한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청년 마르크스는 일찌감치 자기 사상의 핵심을 찾았으니, 그것이 바로 '소외'이다. 간단히 말하면 소외란 주인과 노예 관계의 역전이다. 혹자는 다소 중립적으로 목적과 수단 관계의 역전이라고도 말한다. 수단이 목적을 대신하고, 심지어 목적을 희생시키는 것으로, 본래 주인에게 복종해야 하는 노예가 거꾸로 주인의 머리를 타고 올라앉아 주인을 부리는 것이다.

 

생산 관계에서 노동자는 노동력의 소유자, 공헌자이지만 그들 자신은 노동의 성과를 누리지 못한다. 이것이 일종의 소외다. 관점을 바꾸어 보면, 노동은 원래 삶에서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한 것인데, 노동이 생활의 전부를 차지해서 노동에 필요한 노동력만을 제공하는 거라면, 노동력 재생산의 일환일 뿐이라면 그 또한 일종의 소외다.

 

소외로부터 출발했지만 아직 혁명 수단을 설계하지 않은 청년 마르크스는 매우 낭만적인 꿈을 꾸었다. 모든 사람이 노동하고 노동으로부터 존엄과 대가를 얻으며, 일하지 않는 귀족이 다른 사람을 압도할 수 없는 사회, 그러나 모든 사람의 노동이 생활에서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삶의 대부분의 정신과 정력은 낚시, 음악 감상, 플라톤 읽기에 쓰는 사회. 이러한 노동과 생활 사이에서 건강한 수단과 도구의 궤도로 돌아갈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퇴락했다. 마르크스 또한 유행이 아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이유의 일부는 마르크스 자신의 통찰이 빚은 결과다. 지나치게 불공평한 노동과 자본가의 관계는 노동자로 하여금 위험을 무릅쓰게 하고 폭력과 파괴도 불사하게 하여 몸에 덧씌워진 압제를 벗어나게끔 한다. 자본가 측은 이렇게 하면 잠시는 이윤을 확대할 수 있을지 몰라도 길게 보면 전체 생산 모델이 무너지고 만다. 그리하여 국가, 정부가 적극적으로 중재 역할을 해서 파괴적인 혁명을 피하고자 각가지 제한을 만든다.

 

기본노동시간과 기본임금은 이러한 고려에서 나온 역사적 산물이다. 노동자가 원한다 해도 국가는 매주의 노동시간을 제한하여 그들이 일정 시간 쉬고 삶을 누릴 기회를 주어야 한다. 자본가들이 착취하지 못하도록, 노동자가 긴 시간 노동해도 필요한 생계를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기본임금을 줘서 그들이 쉬면서도 생활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을 갖추게 해야 한다.

 

노동은 수단인가, 목적인가? 노동을 목적으로 삼으면 사는 것이 그저 계속 노동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면 사람들은 크게 탄식할 것이다. 마르크스에게 물어보라!


댓글(4)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피북 2015-01-05 2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 좋은 말씀해주셨어요.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견해로 무조건 잘못이라는 편견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요즘 들어 절실히 느끼기도 해서 깊은 공감을 하게 됩니다. 더불어 이덕무가 했던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 사람의 허물은 항상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데서 더 심해지고, 사람의 재앙은 항상 남을 업신 여기는 데서 생겨난다고요. 그리고 덕분에 양자오저자의 칼럼을 다시 곱씹어 보게 되었어요.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cyrus 2015-01-06 13:34   좋아요 0 | URL
맞아요. 내 의견과 생각을 말하기가 정말 무서운 세상입니다. 특히 온라인은 더 심해요. 요즘 인터넷이나 SNS으로 정치 동향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본 것만 맞다고 생각해요.

하양물감 2015-01-06 06: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치적성향을 가능하면 드러내지 않는 편입니다. 섣부른 표현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싸움으로 번지더라구요.
제대로 표현하기위해선 제대로 알아야겠지요.

cyrus 2015-01-06 13:37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여기에 언급하기가 망설였어요. 나름 두 입장을 공정하게 바라보려고 하는데 저도 좀 더 공부해야겠습니다. ^^
 

 

 

 

 

 

 

 

 

고등학교 다닐 때 대구의 남산동 헌책방에 쭈그려 앉아 몇 시간씩 낡은 책을 뒤적일 때가 있었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현대사를 헌책방에서 배웠고, 하늘처럼 떠받들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왜 문제 많은 독재자인지 알게 되었다. (『안도현의 발견』중에서, 104쪽)

 

 

가끔 책을 읽다가 (헌)책방에 관한 언급이 두 줄이라도 나오면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린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한동안 보지 못했다가 오랜만에 어딘가에서 만날 듯한 예감처럼. 책방에 가서 책을 뒤적거렸을 글쓴이의 행동이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그러면서 나도 직접 책방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하필 대구 남산동이라니. 또 한번 가고 싶군.

 

 

 

 

 

 

이곳도 한때 책방이 많았다. 풍문에 들리자면 1970~80년대에 동인동(대구역 지하차도 부근에 밀집했음)과 더불어 책방 수십 개가 빼곡히 늘어설 정도로 형성되었다고 한다. 인근 학교가 개학하면 학생 손님들이 몰려 찾아오기도 했다. 지금은 대형서점과 온라인 서점 거기에 알라딘 중고서점의 등장으로 사람 냄새 책 냄새가 가득했던 책방의 풍경은 많이 사라져버렸다. ‘헌책방 골목’이라는 지명만 남은 지금, 이름은 이름일 뿐 예전 그때 그 풍경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 책방 안에는 오랜 세월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는 곰팡이 내만 남아 있다. 책방에 잠들어버린 책들은 새 주인이 찾아와 자신을 깨워주기를 기다린다. 

 

이 문장 세 줄을 읽으면서 갑자기 궁금하게 느껴지는 점 하나. 과연 시인이 학창시절 방문했던 남산동 책방은 어떤 곳이었을까? 이런 사소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남산동 헌책방 골목으로 갔다. (라고 써보지만, 사실 책을 사고 싶어서 가는 거다)

 

 

 

 

헌책방 골목은 남문시장 사거리에 내려서 건너가면 나온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제일 먼저 ‘코스모스북’이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6.25 전쟁 때 이곳에서 터를 잡은 오래된 책방이다. 당시 이 일대에 고등학교가 많이 밀집해 있던 터라 서점이 장사하기에 아주 좋은 터였다. 지금 코스모스북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장님은 1980년에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코스모스북 1대 주인장 채해기님이 작고한 뒤인 1985년에 인수하게 된다. 책방 불황에도 불구하고 코스모스북은 전국의 애서가들의 발길이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대구 헌책방 처음으로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온라인 판매를 병행하기 시작한 곳도 코스모스북이다.

 

 

 

 

 

코스모스북 건물 뒤로 몇 발자국 걸어가면 또 다른 책방 세 개를 발견할 수 있다. 해바라기 서점과 대도서점 그리고 골목으로 더 들어가면 월계서점이 있다. 손님의 발길이 드문 책방 특성상 평일에도 문을 닫는 경우가 있다. 어제는 해바라기 서점이 문을 열지 않았다. 찬바람이 외투 안으로 파고들어 살이 얼얼하게 느껴지도록 추운데도 대도서점 주인장님은 좁은 문을 활짝 연 상태에서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주인장님 앞에는 끈으로 묶은 책들이 바닥에 쫙 깔려 있다.

 

 

 

 

 

월계서점은 이제 곧 대학에 입학하게 될 자녀(로 추정함)를 둔 중년의 여 주인장님이 운영한다. 목소리가 나긋나긋하고 무척 친절하신 분이다. 코스모스북보다 월계서점을 자주 들리는 데 그 이유가 여 주인장님이 친절한 점도 있지만, 항상 음악이 흐르기 때문이다. 여 주인장님이 선호하는 8090 가요를 들을 수 있다. 나도 8090 가요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이곳에 오면 책과 음악 때문에 눈과 귀가 즐겁고 북 카페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하다.

 

결국, 남산동 헌책방 골목에 남아있는 책방은 총 네 곳. 안도현 시인은 커다란 빌딩이 들어서면서 사라져버린 책방들 그리고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 책방 네 곳 중 아무 데나 들려서 탑처럼 쌓인 책더미 사이를 뒤적거렸을 것이다. 마음 내기는 대로 들릴 수 있는 책방이 남산동에 많았을 것이다. 고작 세 줄로 표현된 시인의 책방 추억이 너무나도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 지금도 입지가 불안한 책방의 현실이 안타깝다. 지금 내가 자주 가는 책장 네 곳도 몇십 년 뒤에 다시 갈 수 없는 추억으로 남으면 안 되는데. 많지 않은 애서가 손님들의 발길을 잊지 못해 사시사철 기다리면서 책방을 열고 있는 네 곳의 책방 주인장님이 무척 고마울 따름이다.

 

 

 

 

 

비록 시인의 책방 흔적을 찾을 수 없었지만, 책방에 두 시간동안 확인한 끝에 아주 귀한 절판본을 발견했다. 토마스 메취와 페터 스쫀디의 『헤겔 미학 입문』(종로서적, 1983)과 에드워드 카의 『러시아 혁명』(나남, 1983)이다.

 

 

 

 

 

 

 

 

 

 

 

 

 

 

 

 

 

 

 

 

 

 

 

 

 

 

 

 

 

 

『헤겔 미학 입문』은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1』(휴머니스트, 2014)에 수록된 ‘정신의 오디세이’ 편 참고문헌이다. ‘정신의 오디세이’ 편은 헤겔의 미학을 요약, 설명하는 글이다. 이 책은 영화 ‘미인’을 연출한 여균동 감독이 서울대 철학과를 재학하고 있을 때 번역했다. 책의 1부는 토머스 메취의 『Hegel und die philosophische Grundlaegunder Kunstsoziolo 』를, 2부는 페터 스쫀디의 『Poetilc und Geschichtphilosophie I』의 일부를 저본으로 삼았다. 1980년대 당시 헤겔 미학 원서를 우리말로 읽기 쉽지 않은 시절이라서 이 책은 헤겔 미학의 호기심에 목마른 독자들의 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오아시스 같은 책이었을 것이다. 의외로 헤겔 미학 개론서가 많이 나오지 않은 사실이 놀랍다. 최근에 나온 헤겔의 『미학 강의』서론을 해설한 『헤겔 미학 개요』(박배형, 서울대학교출판부, 2014)이 헤겔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개론서로 가장 근접한 책이다. 

 

 

 

 

 

 

 

 

 

 

 

 

 

 

 

 

 

에드워드 카의 『러시아 혁명』은 1917년부터 1929년까지 준비한 방대한 저작물 '소비에트 러시아사'를 일반 독자를 위해 1977년에 쓴 개론서이다. '소비에트 러시아사'는 총 4부작으로 '볼셰비키 혁명'(The Bolshevik Revolution, 1917~1923), '공위기간'(Interregnum, 1923~1924), '일국사회주의'(Socialism in One Country, 1924~1926), '계획경제의 기초'(Foundations of a Planned Economy, 1926~1929) 등으로 되어 있다. 레닌에서 스탈린까지 집권하는 시기인 1920년대 러시아의 발전경로를 다루고 있다. 특히 카는 소비에트의 공업화와 계획정치를 다룬 장을 알렉 노브(Alec Nove)의 『소련경제사』(창비, 1998)을 참고했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1997년에 『러시아 혁명』은 새 표지로 다시 나왔지만, 알렉 노브의 책과 함께 절판되었다. 

 

 

 

 

 

 

 

 

 

 

 

 

 

 

 

 

 

헤겔 미학과 러시아 혁명. 전공자가 아닌 이상 학교에서 이런 내용을 가르쳐주지 않을 것이며 자세하게 배울 수도 없을 것이다. 평범한 독자들이 시도하기 어려운 주제이다. 특히나 러시아 혁명에 관한 책을 읽으면 요즘 '종북'으로 의심받기 딱 좋다. 1980년대에 카의 『러시아 혁명』은 불온서적으로 취급받았고, 이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옥고를 치른 사람이 32년 만에 무죄가 선고한 것을 보면 아이러니하다. 하긴 대학생 필독도서인 『역사란 무엇인가』도 불온도서로 오명 받은 시절이 있었다. 카의 책이 최근에서야 낡은 냉전 이데올로기가 만들어 낸 편견의 딱지에서 벗어난 건 다행이지만, '마르크스', '레닌'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도 북한으로 떠나라고 감정 섞인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북한의 세습주의를 엄청나게 싫어하고 북한식 사회주의의 환상에서 여전히 헤어 나오지 못한 일부 진보 세력의 태도를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생각이 전혀 다른 입장을 완전히 배격하기 위해 이성적 검증을 배제한 종북 프레임을 내세우는 보수 세력은 소리만 요란한 빈 깡통일 뿐이다.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피북 2015-01-03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제가 늘 꿈꾸던 그림인데 ㅎㅎ 책속에 등장하는 거리를 걸어보고 마치 책속에 있는듯 느껴보는거. 특히나 중고서점들을 거닐며 들려주시는 이야기라 푹~빠져들게 되네요^^ 대구에 이런 헌책방이 있는지 몰랐는데 덕분에 좋은 정보 알았어요!! 네이버 검색창에 대구 헌책방해도 크게 검색되지 않더라구요. 코스모스 서점도 가보고 싶고, 80~90년대의 음악이 흐르는 월계서점도 들러보고 싶네요^^

cyrus 2015-01-04 23:17   좋아요 0 | URL
그렇다고 책방이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에요.. ㅎㅎㅎ 책방 안에 들어서면 곰팡이 냄새를 견뎌야하고, 손에 먼지가 묻습니다. 그리고 요즘 같은 겨울에 건물 안에 있어도 추워요.

대구시청 쪽으로 가는 방향에도 헌책방 몇 군데 있습니다. 저는 알라딘 중고샵에 먼저 들린 다음에 바로 그곳으로 갑니다. ^^

수이 2015-01-03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렇게 가슴이 쓰리지_ 사진 보니까 더_

cyrus 2015-01-04 23:18   좋아요 0 | URL
어떤 사진이요? 책방 건물 사진 말입니까?

수이 2015-01-05 11:59   좋아요 0 | URL
응_ 저기 지나가면서 옛날에 있었던 일 추억하니까_ :)

바람돌이 2015-01-04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헌책방 골목은 이제 어디든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네요. 예전에는 동네마다 하나쯤씩도 다 있었는데 다 어디를 갔는지 없어졌고요.... 대구의 헌책방 골목도 부산의 보수동과 비슷한 분위기네요. 부산 보수동은 요즘 그나마 관광코스 비슷하게 되면서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요.

cyrus 2015-01-04 23:20   좋아요 0 | URL
보수동은 신문이나 TV를 통해 알려져서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오고, 책방조합을 구성해어 보수동 홍보에 참여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대구의 책방 현실은 열악해요.

하양물감 2015-01-04 0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고 그곳으로 가본다는게 쉽지는 않은데 ^^

cyrus 2015-01-04 23:21   좋아요 0 | URL
제가 대구에 거주하고 있어서 버스 타면 10분 만에 갑니다.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5-01-05 0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접 찍으신 사진 올려주시니 너무 좋네요~
전 대구는 차 타고 딱 한 번 쓰윽 지나가 본 경험 밖에 없어요.
가보고 싶긴 한데 별 연고도 없고 또 머네요 ㅎㅎ

헌책방의 곰팡이 냄새와 먼지들...사실 그리 낭만적이진 않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삐까뻔쩍한 대형서점 말고 그런 곳에 가보고 싶단 생각해요.
아날로그로 돌아가고 싶을때 같은 때 말예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올 한 해도 cyrus님의 리뷰 기대할께요^^

cyrus 2015-01-05 19:34   좋아요 0 | URL
손님들의 관심을 끌어들이기 위해 늘 변화를 시도하는 책방 몇 군데 있어요. 현맘님이 서울에 사신다면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라는 곳에 가보면 좋아요. 책방을 운영하시는 분이 최근 책을 펴낸 윤성근님입니다. 실내 분위기가 무척 좋고, 다양한 교양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어요. 대구에도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처럼 비슷하게 운영하는 물레책방이라는 곳도 있어요. 현만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

그린 2016-03-20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대구헌책방 검색하다가 들어오게 되었어요.
가봐야 알겠지만 저 헌책방골목을 가면 옛날교과서도 구할 수 있을까요?
제가 고등학교때 배웠던 역사교과서를 구하고 싶어서;ㅅ;....

댓글 보다보니 대구시청쪽으로 가도 헌책방이 몇군데 있다고 하셨는데 중앙로역에 내려서 그냥 대구시청을 향해 걸어가다 보면 헌책방들이 나올까요? 다 없어져버린건 아니겠죠?ㅠㅠ 처음 가보는데 몇군데라도 있었으면... 헛걸음 하면 너무 슬플거같아요 ㅠㅠ

cyrus 2016-03-21 12:22   좋아요 0 | URL
방문하기 전에 헌책방에 전화로 문의해도 좋습니다. 그런데 헌책방 어딜 가든 교과서가 없을 겁니다. 직접 가게에 방문해서 책방 사장님한테 교과서 있느냐고 물어보면 없다는 답변만 받을 수 있습니다.

대구시청 쪽으로 가다 보면 시청 건물 옆에 헌책방 건물 세 개 나옵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또 다른 헌책방 건물 두 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