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흑인 페미니즘 사상》(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09)을 다 읽었습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한 주 모임을 빠진 적이 있지만, 독서 진도를 따라가는 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흑페미》 마지막 모임 공식 후기를 썼습니다. 인스타그램에 공개되는 글이라서 최대한 짧게 썼습니다. 책에 벗어난 내용을 언급할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오프더레코드(off-the-record)’로 어제 우리 멤버들끼리 주고받은 대화가 흥미진진했습니다.

 

10, 11장을 읽으면서 느꼈던 제 생각은 공식 후기에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따로 글로 쓸 예정입니다.

 

 

 

 

 

 

 

 

대구퀴어문화축제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어제 《흑인 페미니즘 사상》 마지막 모임이 있었습니다. 5월 14일에 처음 시작하여 6월 25일까지 6주 동안 이어진(5월 마지막 주 월요일은 모임 쉬는 날이었습니다), 참으로 길고 긴 모임이었어요. 어제 모임에는 10장(「초국가적 맥락에서 본 미국 흑인 페미니즘」), 11장(「흑인 페미니즘 인식론」), 12장(「힘 기르기의 정치를 향하여」)을 톺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초국가적’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발생하는 어떠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오늘날 여성 문제는 어느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인 문제입니다. 전 지구적인 여성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여러 억압이 서로 맞물려 작동하는 사회조직 전체에 대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미국 흑인 페미니즘젠더, 인종, 계급, 섹슈얼리티가 중첩된 억압 형태‘지배 매트릭스(matrix of domination)라고 표현합니다. 미국 흑인 페미니즘은 계급, 인종, 성소수자 차별을 양산한 지배 매트릭스를 극복하기 위한 연대를 모색합니다. 미국 흑인 페미니스트 바버라 스미스(Barbara Smith)급진주의(radicalism)를 이렇게 정의했어요.

 

 

“내가 보기에 진정으로 급진적인 것은, 서로 다른 사람과 연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또한, 인종과 성, 계급, 성 정체성을 모두 동시에 거론하는 것이야말로 급진적이다. 이제까지는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388쪽)

 

 

혜○ 님은 이 문장이 좋았다고 했습니다. 요즘 흔히 떠올리는 급진적 페미니즘은 과격한 전략을 구사하는 페미나치(Feminazi)로 오해받습니다. 페미니즘을 비하하는 거 보면 정말 속상해요. 급진적 페미니즘은 과격한 페미니즘이 아닙니다. 기존의 여성 담론을 보다 급진적으로 발전시키는(또는 개선하는) 페미니즘입니다. 미국 흑인 페미니즘의 급진성은 각국의 흑인여성이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치밀하게 고민하고 연대하는 것입니다. 차별과 배제는 불평등과 혐오 문화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연대의식을 훼손할 수 있습니다. 레드스타킹 멤버들은 이구동성으로 여성 문제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이 다를지라도 대화와 소통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식에 대한 전반적인 이론‘인식론’이라고 합니다. 어떤 지식을 동원하여 현실을 분석하고 이해하려면 인식론이 필요합니다. 페미니즘 인식론은 젠더 이분법에 반문하고, 기존의 남성 중심적 시선과 다른 방식으로 사회를 해석하는 것입니다. 흑인 페미니즘 인식론은 이성애 백인 남성 지식인 중심 사회가 배제하고 왜곡했던 흑인여성의 경험을 드러내 그것을 하나의 지식으로 재현합니다. 지식은 세상을 이해하는 유용한 도구지만 한편으로는 편견을 만듭니다. 지식인들의 오류가 거기서 생겨요. 자신의 지식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려 들고 그것이 굳어지면 도그마(dogma)에 빠지게 됩니다. 페미니스트도 도그마를 피할 수 없습니다. 레드스타킹 멤버들은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는 듯한 페미니스트들 간의 갈등 양상이 확산하는 것을 우려했습니다. 대화와 소통의 기본은 경청이죠. 은○ 님은 경청보다 더 중요한 게 서로 간의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레드스타킹은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완독하는 데 성공했지만, 여전히 궁금한 것이 많았습니다. 또, 책은 우리에게 한층 더 깊이 생각할 거리를 안겨 줬습니다. 흑인 페미니즘 인식론 중 하나가 ‘개인적 책임의 윤리’입니다. 어떤 문제에 분명한 입장을 밝혔으면, 그것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합니다. ‘개인적 책임의 윤리’에 대한 내용이 어렵다고 느낀 분들이 많았습니다. ‘개인적 책임의 윤리’ 문제는 우리에게 좀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진지하게 고민을 해 봐야 할 부분입니다. 책의 주요 내용을 갈무리하는 12장은 다음 주 영화 모임에 이어서 톺아보기로 했습니다.

 

 

 

 

 

 

 

 

 

 

 

 

 

 

 

 

 

 

6주 동안 어렵고 두꺼운 ‘갈색 벽돌 책’을 완독한 멤버들 모두 축하합니다. ‘검정색 벽돌 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게일 루빈(Gayle Rubin)《일탈》(현실문화, 2015)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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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6-29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독서 모임은 으샤으샤가 잘되는 모임인가 보다.
모든 사람이 완독하기 쉽지 않은데. 훌륭하다.
책걸이 했겠군.
그런데 네 손은 어떤 거냐?

암튼 수고했어.^^

cyrus 2018-07-01 13:56   좋아요 0 | URL
페미니즘 독서 모임이 작년부터 시작했고, 원년 멤버들이 지금도 활동하고 있어요. 그래서 서로 마음이 잘 맞고, 단합이 잘 돼요. ^^

제 손은 사진 오른쪽 중앙에 있어요. 내일 책거리 겸 영화를 보는 날이에요.

stella.K 2018-07-01 14:28   좋아요 0 | URL
저 근육손...?
어쩐지 그럴 것 같더라니...ㅋㅋ

cyrus 2018-07-02 12:02   좋아요 0 | URL
제 손을 실제로 보면 길쭉해요. 마른 체형이라서 손도 말랐습니다.. ㅋㅋㅋ

북프리쿠키 2018-06-30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이러스님이 이렇게 후기를 잘 써주셔서 그 모임은 든든하겠는걸요^^

cyrus 2018-07-01 13:58   좋아요 1 | URL
저보다 후기를 열심히 쓰고, 잘 쓰는 분들이 많아요. 독서모임 후기 쓸 때가 제일 힘들어요.. ^^;;
 

 

 

 

대구광역시의 브랜드 슬로건은 컬러풀 대구(Colorful Daegu)입니다.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도시 이미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현재의 대구는 레드 아일랜드(red island)입니다. 대구가 보수 정당의 텃밭이 된 이후로 매력 없는 지역이 됐습니다. 지역의 정치색이 다양하면 좋을 텐데 대구는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정치색이 강합니다.

 

 

 

 

 

지난주 토요일(623)10회 대구퀴어문화축제가 동성로 일대에서 펼쳐졌습니다. 축제 슬로건은 퀴어풀 대구(Queerful Daegu)입니다. ‘컬러풀 대구에서 따온 것으로 다양성을 상징합니다. 퀴어 축제는 인간으로서 자긍심을 가진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축제입니다. 퀴어 축제는 성소수자만의 축제가 아닙니다. 게이도, 레즈비언도, 트랜스젠더도, 무성애자도, 그리고 이성애자도 함께 어울려 춤추고 노래 부르며 놀 수 있는 축제입니다. 이런 게 바로 진짜 컬러풀 대구입니다.

 

저는 올해 처음으로 퀴어 축제에 참가했습니다. 저 혼자 간 게 아니라 레드스타킹 멤버들과 함께 갔습니다.

 

오후 1시부터 부스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부스에 가면 퀴어 관련 굿즈를 구입할 수 있고, 퀴어 문화에 관한 정보를 담은 자료를 접할 수 있습니다. 부스 행사에는 타 지역 퀴어문화축제 진행위원회(서울, 전주, 부산, 제주), 대구 지역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경북대학교, 영남대학교, 대구대학교, 계명대학교), 국가인권위원회, 주한미국대사관, 구글(Google),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50여 개의 단체가 참여했습니다. 구글은 퀴어 축제를 후원하는 대표적인 기업입니다. 구글은 작년부터 AI 알고리즘을 이용해 인종 차별 발언 · 성소수자 혐오표현을 검색 결과에서 안 보이게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퀴어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자긍심의 퍼레이드입니다.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이 동성로 일대를 행진하는 행사입니다. 그런데 동성애와 퀴어 축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퍼레이드 행사를 막는 바람에 4, 50분 정도 지연되었습니다. 다행히 축제 참가자들과 동성애 반대 단체 회원들과의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당초 예정된 경로를 벗어났지만, 경찰의 보호를 받으면서 긴 행렬이 이어졌고, 대구시청을 지나게 됐습니다. 대구시청 앞에 장애인협약 요구를 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던 장애인단체 회원들을 만났습니다.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축제 참가자들을 열렬히 환영했고, 성소수자에 대해 지지 의사를 밝혔습니다.

 

자긍심의 퍼레이드가 종료되고,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중앙무대에서 애프터 파티가 열렸습니다. 참가자들이 클럽 음악에 맞춰 춤추고 노래 부르는 행사입니다. 저는 클럽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제대로 즐기지 못했지만, 확실히 퀴어 축제가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축제라는 걸 느끼게 됐습니다.

 

대다수 사람은 동성애는 에이즈(AIDS, 후천성 면역 결핍증)의 원인이라고 여깁니다. 이러한 생각은 동성애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이며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합니다. 여전히 우리나라에는 보수 기독교인, 보수 시민단체가 주장한 시대착오적인 동성애 반대론이 사실인 것처럼 알려졌습니다. 이들은 퀴어 축제가 음란한 축제라고 주장하면서 반대합니다.

 

퀴어 축제 반대 세력은 야한 옷을 입은 변태성욕자들이 성소수자를 위한 축제라는 명목으로 성적 욕구를 발산한다고 주장합니다. 선정적이고 퇴폐적인 퀴어 축제가 청소년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까 봐 걱정합니다. 모두 다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그리고 퀴어 축제는 음란한 축제가 아닙니다. 가슴과 성기가 보일 정도로 야한 옷을 입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탱크탑, 짧은 치마를 입은 축제 참가자들이 있었지만, 야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성적 행위를 암시하는 행동을 하면서 불쾌감을 유발하는 사람들도 없었어요.

 

동성애 반대 단체들은 남자며느리 NO, 여자사위 NO’, ‘동성애 독재 반대’, ‘돌아와 줘, 기다릴게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과 셔츠를 입고 축제 진행을 방해했습니다. 그들은 참가자들이 행진할 때마다 계속 줄줄이 따라와 피켓 시위를 하였습니다. 무례하게도 평화의 소녀상받침대 위에 올라가서 동성애 반대 피켓을 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몰상식한 추태를 만천하에 공개하고 싶어서 사진을 찍으려 했는데, 눈치챘는지 금세 달아나 버렸습니다.

 

우리나라에 하비 밀크(Harvey Milk) 같은 성소수자 정치인들이 한 명도 나오지 않은 마당에 동성애 독재 반대를 외치다니 이건 너무 비약이 심합니다. 동성애 결혼 합법화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모든 동성애자가 결혼한답니까? 동성애자를 결혼을 해야 하는 이성애자인 것처럼 분류하는 생각은 동성애자에 대한 무지를 보여주는 인식입니다. 이성에게 끌림을 느끼는 동성애자가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과연 그들이 무조건 이성애자나 동성애자를 만나 결혼하면서 살아갈까요? 우리나라에 동성애 결혼 합법화가 이루어져도 비혼을 결심하는 동성애자가 있을 거고요, 결혼해도 육아를 선호하지 않는 동성애자도 있을 거예요. ‘남자며느리 NO, 여자사위 NO’ 문구는 동성애자의 삶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의미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 2017)

 

 

동성애 반대 세력은 동성애를 성적 지향의 하나로 보지 않고, ‘질병으로 규정합니다. 그러면서 동성애자가 치료를 받으면 이성애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미 70년대부터 동성애는 질병이 아닌 거로 판명 났습니다. 국제질병원인분류인 DSM-5ICD-10와 세계정신의학회의 성명서는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고, 치료받을 필요가 없으며 동성애자를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의학적 법적 상식에 기반을 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동성애 전환치료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미국 근본주의 보수 기독교 집단에서조차 극단적인 주장으로 취급되고 있다. 그 예로 2013년 미국의 탈동성애 운동단체인 엑소더스 인터내셔널(Exodus International; 동성애 전환치료 시행)이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과오에 대해 사과하는 글을 발표하고, 공식적으로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그러니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제발 동성애자에게 전환치료를 절대로 권하지 마세요. 그들이 전환치료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그것도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일입니다.

    

 

 

 

 

 

 

 

 

 

 

 

 

 

 

* 홍성수 말이 칼이 될 때(어크로스, 2018)

 

 

외국의 퀴어 축제가 열리면 보수, 진보 이념에 상관없이 퀴어 축제가 열리는 지역의 시장(市長)이 참가해서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연설을 한다고 합니다. 부럽습니다. 이번에 재선에 성공한 권영진 대구시장은 대구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쯤이면 유세 중에 다친 꼬리뼈[*]가 완쾌되었을 것 같은데, 안 나오셔서 유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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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5 17: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26 08:23   좋아요 1 | URL
대구에도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요. 대구퀴어축제가 서울퀴어축제 다음으로 가장 오래됐습니다. 부산, 제주는 작년에 1회 축제가 개최되었어요.

레삭매냐 2018-06-25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 끝의 할리우드 액션 배우 저리가라할
정도의 메소드 연기를 실연해 주신 분이
등장해서 깜딱 놀랐네요...

cyrus 2018-06-26 08:26   좋아요 0 | URL
시장님이 유리몸이라서 대구를 잘 이끌어나갈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_-;;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인상주의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현대미술의 태동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인상. 확실해. 내가 인상을 받았으니 그 안에 틀림없이 인상이 들어 있을 거라 혼잣말을 했지. 그림 참 쉽게 그리네! 벽지 문양을 위한 초벌 드로잉이 차라리 이 바다 풍경보다는 완성도가 더 높을 거야.”

 

 

1874년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에서는 그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작품들을 선보인다. 모네(Monet), 드가(De Gas), 르누아르(Renoir), 세잔(Cezanne) 등 화가들이 기존의 미술계에서 받아주지 않던 자신들의 그림을 전시한 것이다. 그러나 전시는 호응을 얻지 못했다. 모네의 『인상, 해돋이』는 당시에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평론가 루이 르루아(Louis Leroy)는 「인상주의자들의 전시」라는 글을 통해 “벽지 문양 그림이 모네의 그림보다 더 낫다”라고 혹평했다. 그리고는 이 같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인상주의자’라고 싸잡아 비난했다. ‘인상주의’라는 명칭은 바로 이 글에서 비롯됐다.

 

당시에는 그림의 대상을 뚜렷하게 묘사하지 않는 인상주의 화풍에 많은 사람이 낯설어했다. 그동안 그들이 익숙하게 접해 왔던 고전적인 회화와는 전혀 딴판의 그림이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된 고전미술의 목표는 ‘자연의 모방’을 넘어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고전미술에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다는 것은 한때 있었으나 지금은 없는 것, 즉 고대 그리스 · 로마의 고상한 미적 가치를 재현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상주의자들은 원근법, 비례 등의 전통적 관습을 거부하고 색채와 빛을 통하여 찰나의 감각을 표현하려 했다. 고전미술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자연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다. 인상주의 화풍의 가장 큰 특징은 빛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이다. 사진으로 사물을 찍는 것처럼 정지된 풍경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실체를 화폭에 옮기는 기법이다.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인상주의 편》(휴머니스트, 2018)은 인상주의가 싹틀 무렵인 쿠르베(Courbet)사실주의부터 아르누보(Art Nouveau)까지의 전개상을 따라간다. 예술을 몇 마디로 정의하기 불가능한 것처럼 19세기 미술 또한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범주일 것이다. 예컨대 19세기 미술이 파리에서 일어난 인상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동어반복일 뿐이다. 《인상주의 편》은 19세기 미술을 8개 범주로 분류한다. ‘프랑스 사실주의’, ‘프랑스 밖 사실주의’, ‘프랑스 인상주의’, ‘라파엘 전파’, ‘신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상징주의’, ‘아르누보’ 등 8개 범주가 19세기 미술의 중심 사조다. 저자의 표현대로 이 책 한 권으로 19세기 중후반에 유럽에서 일어난 미술운동의 여러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마네(Manet), 모네, 피사로(Pissarro), 시슬레(Sisley), 르누아르, 드가, 쇠라(Seurat), 고흐(Gogh), 고갱(Gauguin), 세잔 등이 활동한 이 시기는 고전미술의 시대를 마감시키고 모더니즘 미술의 시대를 열었다.

 

인상주의의 등장은 서양미술사에 있어 엄청난 사건이다. 고흐, 고갱으로 이어지는 후기 인상주의를 낳았을 뿐 아니라 20세기 초반 다양한 미술 사조의 뿌리가 돼 현대미술의 태동에 영향을 끼쳤다. 입체파, 야수파, 추상파, 표현주의 등으로 분화되는 20세기 미술의 원천이 된 것이다. 저자는 당대 상황의 변화에 대한 세세한 스케치를 놓치지 않는다. 그는 사진술의 발명일본 판화 우키요에의 유입을 과거보다 훨씬 유동적인 19세기 미술에 영향을 끼친 요인으로 꼽는다. 19세기 중반 사진기의 보급은 사진의 특성을 회화에 도입하는 계기가 되어 인상주의로 비롯된 새로운 회화의 흐름을 만들어 냈다. 인상주의자들은 우키요에의 강렬한 색채, 과감한 시점 처리, 현대적인 화면구성에 매료됐다. 모네는 방안을 우키요에로 가득 채울 정도로 열렬한 수집광이었고, 고흐는 우키요에를 모사한 그림을 제작했다. 우키요에가 불러일으킨 열풍은 19세기 말 유럽에서 자포니슴(Japonism)이라고 하는 문화적 경향으로 확산했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시기는 모더니즘 미술의 여명기이자 현대미술의 서막이다. 세계관의 변화는 미술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화가들은 실물 그리기를 포기했고, 실제에 가까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필요했던 원근법과 명암법마저도 과감하게 버렸다. 형태 묘사보다는 빛의 변화에 주목했던 인상주의 화법에서도 탈피해 작가 자신의 감각과 주관에 의존하는 미술작업이 새로운 기류를 형성해 나갔다. 입체파, 야수파, 표현주의 등이 20세기 초의 새로운 미술을 주도해 나갔다. 50여 년 동안 과거 예술과 구별되는 새로운 예술들이 연쇄적으로 탄생했다. 이 시기에 활동한 어떤 화가가 어느 회화 유파에 속한다고 평가하는 것은 미술운동의 연쇄적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게 한다. ‘-파(派)’, ‘-주의(ism)’는 후대 학자들이 편의상 규정해 붙인 이름일 뿐이다. 마네는 인상주의의 선구자로 많이 언급되지만, 실제로 자기 스스로 인상주의자라고 말한 적이 없다. 피카소(Picasso)를 입체파 화가로 알려졌으나 야수파, 표현주의에도 속한다. 고흐 역시 분할주의(점묘로 대상을 표현하는 신인상주의의 기법), 표현주의 등 다양한 경향의 작품을 발표했다. 따라서 《인상주의 편》은 19세기 미술의 성과를 인상주의에만 초점을 맞춰 보려는 협소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사회적 · 문화적 연계 하에 고전미술을 탈피한 새로운 예술 언어들을 살펴보려는 거시적인 관점이 돋보인다.

 

 

 

 

 

* Trivia

 

1955년 쿠르베는 또 하나의 사실주의 걸작 <화가의 작업실>을 그린다. (49쪽)

 

→ 1855년을 ‘1955년’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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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5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25 15:17   좋아요 1 | URL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2년에 ‘난 알아요‘로 데뷔했을 때 신인 가수를 소개하고 평가받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현한 적이 있어요. 그 때 작사가, 작곡가(하광훈 씨라고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다시‘ 작곡한 사람)들이 서태지의 노래를 가혹하게 평가했어요. 그런데 전영록은 ‘노래를 듣는 대중 의 판단에 맡기겠다‘라면서 서태지의 노래에 낮은 점수를 주지 않았어요. 전영록의 평가가 옳았어요.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면서 우리나라 가요계는 확 달라졌어요. 비평가들의 말이 무조건 맞다고 볼 수 없어요. 대중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
 

 

 

 

완벽히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인 입장이란 환상에 불과하다.

현실에서 우리가 취하는 어떤 입장도 정치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민경, 《페미니스트 선생이 필요해》 63쪽)

 

 

 

 

대구중앙도서관동성로에서 걸어서 충분히 갈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내일모레(23일)에 동성로 일대에서 제10회 대구퀴어축제가 열립니다. 뜻깊은 행사에 맞춰 박차민정 님의 《조선의 퀴어》(현실문화, 2018)를 읽어보고 싶어서 중앙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했습니다. 이때가 5월 중순이었고, 때마침 나온 《지금 여기 페미니즘X민주주의》(교유서가, 2018)도 같이 신청했어요.

 

 

 

 

 

한 달 지나고 나서 신청도서 처리 결과를 확인했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한 권은 취소됐습니다. 그 한 권이 《조선의 퀴어》였습니다. 취소 사유는 이렇습니다. “여러 연령대의 이용자가 이용하는 공공도서관 소장 도서로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어 제외되었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근대의 틈새에 숨은 변태들의 초상’입니다. 혹시 사서가 이 책을 ‘변태들’이 나오는 음란한 도서라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원래 퀴어(queer)‘괴상한’, ‘기묘한’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였고, ‘괴상한 존재’, ‘변태’로 취급받은 동성애자를 멸시하는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조선의 퀴어》는 ‘변태’로 오인된 근대 조선의 퀴어들을 재조명한 책입니다. 박차민정 님은 오래전부터 퀴어 이론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하신 분입니다. 퀴어 페미니스트뿐만 아니라 여성주의 연구가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책이 바로 《조선의 퀴어》입니다.

 

그런데 이 책이 ‘공공도서관 소장 도서’로 적합하지 않다니…‥. 퀴어라는 주제도 페미니즘인데 어째서 《조선의 퀴어》는 공공도서관에 들어갈 수 없었을까요? 아마도 사서는 퀴어를 진짜 ‘변태’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이 책이 청소년의 정서에 해로운 내용이 있을 거로 판단한 것 같습니다. 공공도서관에 ‘페미니스트 사서’ 채용이 시급합니다. 대구중앙도서관 사서가 정말로 ‘퀴어’를 싫어하는지 궁금해서 《페미니즘을 퀴어링!》(봄알람, 2018)을 신청했습니다. 책 제목에 ‘페미니즘’이 들어가 있으니 이번에는 사서가 올바른 결정을 할 거로 믿습니다.

 

 

 

 

 

 

 

 

 

 

 

 

 

 

 

 

 

 

 

 

 

 

 

 

 

 

 

 

 

 

 

 

* 애너매리 야고스 《퀴어 이론 : 입문》 (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12)

* 수잔 스트라이커 《트랜스젠더의 역사》 (이매진, 2016)

* 케이트 본스타인 《젠더 무법자》 (바다출판사, 2015)

* 주디스 핼버스탬 《여성의 남성성》 (이매진, 2015)

 

 

 

과거에는 ‘변태성욕자’, ‘동성애자’를 욕할 때 ‘퀴어’를 사용됐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퀴어는 다양한 성적 정체성, 성 지향성이 있는 ‘성소수자’를 아우르는 단어로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퀴어를 ‘변태’, ‘해롭고 위험한 존재’로 인식하고 비하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퀴어 혐오(트렌스젠더, 게이, 레즈비언 혐오)를 일삼는 사람, 동성애와 퀴어 축제를 반대하는 보수 기독교인, 그리고 ‘TERF(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m)로 알려진 트랜스-배제적 페미니스트가 있습니다.

 

 

 

 

 

 

 

 

 

 

 

 

 

 

 

 

 

* 쉴라 제프리스 《래디컬 페미니즘》 (열다북스, 2018)

 

 

 

트랜스-배제적 페미니즘은 ‘젠더 비평적 페미니즘(Gender-Critical Feminism, GCF) 또는 ‘문화(주의) 페미니즘(Cultural Feminism)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TERF’로 통일하여 쓰겠습니다. TERF에 속하는 쉴라 제프리스제니스 레이먼드는 트랜스젠더 자체를 부정해서 성별 불화를 겪는 사람을 ‘트랜스섹슈얼리즘’이라고 부릅니다. 그녀들은 성전환 수술을 허용하는 의료 정책에 반대합니다.

 

 

 

 

 

 

워마드(WOMAD)는 TERF을 표방하는 여초 성향 커뮤니티입니다[1]. 본인들이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직 생물학적 여성의 권리 신장을 지향합니다. 워마드는 남성은 절대로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워마드는 게이와 트랜스 남성의 여성 혐오에 대항해 ‘미러링’으로 비판합니다만, 문제는 게이와 트랜스 남성을 비꼴 때 쓰는 워마드 용어가 ‘성 소수자 혐오표현’이라는 점입니다.

 

 

 

 

 

트랜스 여성도 워마드가 적대하는 대상입니다. 워마드는 트랜스 여성을 ‘남성’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여성 운동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트랜스 여성의 성전환 수술을 비꼬기도 하고, 트랜스젠더를 싸잡아서 ‘젠신병자(트랜스젠더+정신병자)라고 비하합니다. 이 단어에 성별 불화를 겪는 트랜스젠더를 ‘정신장애인’으로 바라보는 비하적인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지만 트랜스젠더는 더 이상 정신장애가 아니며, 이를 질병으로 규정하면 실제로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 및 낙인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 홍성수 《말이 칼이 될 때》 (어크로스, 2018)

* 김승섭, 레인보우 커넥션 프로젝트 외 《오롯한 당신》 (책공장더불어, 2018)

 

 

 

혐오표현은 소수자를 부정하고 차별하거나 배제하려는 언어입니다. 따라서 ‘젠신병자’는 트랜스젠더라는 성소수자를 여성 운동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배제하는 효과를 낳는 혐오표현입니다. 쉴라 제프리스는 트랜스섹슈얼리즘을 ‘인권 침해’로 규정하면 의료적 트랜지션 즉, 성전환 수술 · 호르몬요법 등을 불법화하는 데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그녀의 주장에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성 소수자 차별과 억압이 워낙 강고해서 트랜스젠더에 대한 실태 파악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 국내 의학 전문가들은 트랜스젠더들이 제대로 의료서비스를 받았는지 관심을 주지 않았어요. 의학 교육 과정에서 의료적 트랜지션에 필요한 지식 및 기술에 대한 수련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요. 의료적 트랜지션을 규제하면 부작용이 생길 우려가 있습니다. 트랜스젠더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불법 의료적 트랜지션이 음지에서 성행할 수 있습니다.

 

 

 

 

 

저는 ‘페미니즘’과 ‘퀴어’가 서로 연관이 없는 별개의 단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퀴어/퀴어 이론’을 흠집 내기 위한 수단으로 페미니즘과 퀴어를 따로 구분 지어 사용되는 것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달에 1차 불법촬영 편파 수사 규탄시위가 열렸습니다. 이 시위는 미투 운동이 확산된 이후에도 바뀌지 않는 사회 전반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시위였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시위 참가 조건이 문제 있다고 봅니다. ‘생물학적 여성’ 자체를 인정한다는 건 결국 페미니즘이 꾸준히 비판했던 젠더 이분법의 함정에 빠지게 되는 일입니다. 젠더 이분법의 선택지는 단 두 개입니다. ‘생물학적 남성’과 ‘생물학적 여성’이죠. 젠더 이분법은 성소수자인 ‘제3의 성’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젠더 이분법에 기초한 시위 참가 조건은 트랜스 여성의 참여를 막는 것이고, 트랜스 여성에 대한 차별입니다. 트랜스 여성도 성희롱 · 성폭력(시스젠더에 의한 성폭력과 성소수자 간의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성소수자 사회 안에서도 성폭력을 인지하고 제기할 수 있도록 공론화되어야 하는데 아직 그런 기회가 부족합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동성 간 성소수자 간의 성폭력을 공론화하기 더 어렵게 만듭니다.

 

 

 

 

 

 

 

 

 

 

 

 

 

 

 

 

 

 

 

* 권김현영 엮음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교양인, 2018)

* 이민경, 최현희, 최승범 외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해》 (동녘, 2017)

 

 

 

정희진 님은 성소수자와 이성애자를 구별하는 차별하는 태도가 가부장제의 원리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퀴어는 인간의 성별을 양성으로 고정하려는 가부장제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젠더들이라고 말합니다. 여성 순혈주의는 불가능합니다[2]. 현재의 워마드는 여성 순혈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페미니스트는 이 심각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내부 비판을 하지 못하는 걸까요? 루인 님은 국내에 페미니즘과 퀴어의 상호 관계성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면서 논쟁적 문제에 ‘몸을 사리는’ 페미니스트들의 태도를 지적했습니다[3].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 모두 공부해야 할 것들이 많은 학문입니다. 둘 중 하나를 공부하는 건 벅찬 일이에요. 하지만 공부하지 않은 것을 모른다고 해서 복잡한 논쟁 주제를 자꾸만 피해야 할까요? 내가 관심 있는 학문이 조금씩 뭔가 잘못되고 있는데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어야 할까요? 아무것도 모른다는 이유로 논쟁을 피하려는 태도, ‘나중에’ 생각해보겠다면서 신중한 척하는 태도. 이 모든 행동은 잘못된 현상을 유지하게 해주는 ‘몸 사리는’ 태도입니다. 달리는, 아니 모든 사람이 행복할 때까지 달려야 할 페미니즘에 ‘중립’은 없습니다[4].

 

저는 지난 달 초에 공개적으로 약속했습니다. 싸다구 맞을 각오로 페미니즘을 공부하겠다고요[5]. ‘중립’이라는 이름에 숨어서 페미니즘 내 문제를 소극적으로 지켜봐야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쉽게 결론 내리기 어려운 페미니즘 논쟁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내놓아도 어차피 욕먹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타당한 비판도 받을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1] 워마드 회원 전체가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건 아닙니다. 워마드 일부가 성소수자를 혐오합니다.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 있는 워마드 회원을 실제로 만나봤습니다.

 

[2] 정희진,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215쪽.

 

[3] 루인, 『트랜스젠더 운동, 페미니즘과 동성애 운동과의 관계: 미국과 한국의 경우』, 2012년 3월 1일, ‘Run To 루인’ http://runtoruin.com/1955

 

[4]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하워드 진).

 

[5] [싸다구 맞을 각오로 공부하기] http://blog.aladin.co.kr/haesung/10078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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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18-06-21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 진보운동사 원로 여성운동가들은 독재와 군부에 저항하며, 민주화와 노동운동과 같이 여성운동을 전개했지만, 워마드 등장에서 그분들의 노력이 무너지는 걸 보면서 참 안타까울 뿐입니다.

cyrus 2018-06-22 11:57   좋아요 0 | URL
페미 강연 때 어느 여성주의 연구가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제는 사회주의 여성 페미니스트들의 삶과 업적에 주목해야 한다고요. 워마드 중심의 급진 페미니스트 활동이 크게 부각되고 많이 알려지고 있는 상황이 페미니즘 발전을 고려할 때 바람직하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페미니즘이 워마드의 페미니즘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다른 관점으로 여성 문제에 접근하는 페미니즘이 상당히 많아요. 여러 갈래로 이루어진 페미니즘이 발전하려면 페미니즘 내부 비판과 성찰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페미니즘이나 여성 운동가의 업적도 알려야 합니다.

syo 2018-06-21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퀴어 책을 도서관에 들여놓으시려는 사이러스님의 노력을 비롯해, 전개하신 모든 논지에 대부분 동의합니다. 근데 퀴어 책을 들여놓지 않는 이유에 대한 사이러스님의 추측은 뭔가 좀 귀엽습니다ㅋㅋㅋㅋ 설마 그래서일려구요 ㅋㅋㅋㅋ

도서관이 페미니즘 책도 웃으면서 들여놓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페미니즘 책 신청을 거부하는 일부 도서관에 대한 제보도 있잖아요. 별로 맘에 안들지만 안 들여놓으면 난리치겠지, 하는 마음에 어거지로 들여놓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근데 가뜩이나 페미니즘 책도 맘에 안 드는데, 이제 퀴어놈들까지 설쳐? 근데 퀴어 책은 안 들여놨다고 난리 치는 분위기도 아니고, 퀴어는 여성에 비해 훨씬 더 마이너하니까, 어렵지않게 나가리시키는 건 아닐까요?

그것과 별개로 하나만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사이러스님은 퀴어 이론이 페미니즘의 하위개념이나 부분집합이라고(혹은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거나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계신가요??

cyrus 2018-06-22 12:01   좋아요 0 | URL
syo님의 생각이 그럴 듯합니다. 아마도 사서는 중앙도서관에 페미 책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거예요. 중앙도서관에 <퀴어 이론 : 입문> 있고요, 중앙도서관은 다른 대구 공공도서관들보다 동성애, 레즈비언 관련 책들을 더 많이 갖추고 있어요. 십 년 전에 나온 페미니즘 책들은 서고가 아닌 자료실에 있어요. 중앙도서관은 페미니즘, 퀴어를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가 다량으로 보관되어 있는 곳이에요. 취소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아서 도서관 홈피 게시판에 글을 남기려고 해요. ^^

퀴어 이론이 페미니즘의 ‘하부 개념’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은 원래 ‘하나’였습니다. 왜냐하면, 페미니즘과 퀴어 모두 가부장제 사회가 만들어낸 성차별을 해체하려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의 학문에는 여러 갈래의 길(급진적 페미, 사회주의 페미, 레즈비언 페미, 에코 페미 등)이 있어요. 퀴어 이론도 ‘여러 갈래의 길’ 중에 하나에요. 저는 페미니즘과 퀴어가 처음에는 한 길로 쭉 가다가 어느 순간부터 두 갈래로 나뉘어졌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페미니즘과 퀴어를 가르는 간격이 너무나 많이 커졌어요. 이 간격을 좁힐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터야하는데 그게 바로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이에요. 그런데 TERF는 상호교차성 페미니스트를 ‘쓰까페미’라고 부릅니다. 급진적 페미 관점에서 퀴어 페미 또는 상호교차성 페미를 비판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자신들의 페미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쓰까’라고 놀리고 멸시하는 건 분열과 갈등을 초래하는 일입니다.

syo 2018-06-22 12:49   좋아요 0 | URL
으음, 사이러스님의 말씀이 제 눈에는 퀴어 이론이 페미니즘의 ‘하부 개념‘ 혹은 ‘부분 개념‘ 이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페미니즘의 여러 갈래 중 한 갈래‘ 라는 표현은 그야말로 퀴어 이론이 페미니즘의 지류라는 뜻이지 않겠습니까?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이 가부장제 사회가 만들어 낸 성차별을 해체하려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말씀은 정론이지만,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두 학문이 ‘하나‘ 이거나, 한 학문이 다른 한 학문의 ‘갈래‘의 지위를 가져야 한다는 당위가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저는 원래 두 학문이 같은 학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A는 B이다˝가 참이라고 해서 A와 B가 등가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B는 A이다˝가 붙어야지요. 퀴어 이론이 페미니즘과 ‘하나‘의 학문이려면 ˝퀴어 이론은 페미니즘이고, 동시에 페미니즘은 퀴어 이론이다˝ 라는 말이 합당해야 하는데, 그렇게 느껴지시나요? 이 문장이 마치 ˝천문학은 과학이고, 동시에 과학은 천문학이다.˝ 라는 문장만큼 어색하게 느껴지시지는 않으시는지요. 만약 그렇다면 사이러스님께서는 ‘하나‘라는 표현을 통해 페미니즘이 퀴어 이론을 ‘품고‘ 하나가 된 그림을 그리고 계신건데요.

현재 퀴어 이론이 대부분 페미니즘의 자장 아래 연구되고 있는 현실이나 페미니즘이 퀴어 이론에 제공하는 양분에 대해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구요, 퀴어 이론을 연구하시는 논퀴어 연구자들의 노고를 부정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남성이 아무리 페미니즘을 열심히 연구하고 실천하여도 남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결코 접근할 수 없는 경험, 해서는 안 되는 발언, 페미니즘 학문 안에서 움켜 쥐려고 해서는 안 되는 헤게모니가 있는 것처럼, 퀴어 이론 안의 논퀴어 페미니스트에게도 마찬가지의 제약조건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지점들은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이 함께 어깨를 겯고 앞으로 나가는(실제로는 페미니즘이 퀴어 이론을 부축하고 함께 가는 양상임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구요) 동등한 별개의 학문의 꼴로 귀결될 수 밖에 없도록 하는 근거가 아닐까요.

‘하나‘라는 말씀으로 주장하고 싶으신 윤리적 당위성에는 저도 100퍼센트 동의합니다. 함께 가야죠. 그렇지만 ‘페미니즘‘이라는 깃발 하나만 들고 싸워 나가다 보면 쉬이 간과될 수 있는 그 ‘차이‘가 종국에는, 되돌리려면 어마어마한 비용을 감수해야 할 결정적 틀어짐을 낳을까 우려합니다. ‘인간 해방‘에서 말하는 인간이 백인 부르주아 남성만을 부르는 말이었듯, ‘성 해방‘에서 말하는 성이 논퀴어만을 부르는 말이 되지 않게 하려면, 아직 상대적으로 미약하고 의존적인 학문일 수 있지만, 퀴어 이론의 독자성과 자생성을 끝까지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요? 제 생각입니다.

만약 처음 사이러스님께 드렸던 질문에 퀴어 이론이 페미니즘의 하위개념이라고 생각한다는 대답을 주셨다면, 저는 아, 그러시구나, 하고 말았을 것 같아요. 그건 그냥 견해차이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길고 구구절절 택도 없는 개인 의견을 피력한 것은, 사이러스님의 대답과, 그 대답 뒤에 이어지는 설명들이 정합적이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포스트를 통해 사이러스님이 말씀하시고 싶었던 말씀에는 하나도 반대하는 게 없는데도, 지엽적인 이야기로 이렇게 스압공격을 가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ㅎㅎㅎ

허허허....

cyrus 2018-06-22 15:30   좋아요 0 | URL
사과하지 않아도 됩니다. syo님의 의견은 올바른 지적입니다. 제 생각이지만, 레드스타킹 멤버들이 질문하고, 소신 있게 의견을 밝히는 syo님을 만나면 엄청 좋아할 것 같습니다. ^^

다시 생각해보니까,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은 하나’라는 주장이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의 ‘연대’를 강조하기에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에 쫓겨 급하게 생각하고 댓글을 쓰다 보니 앞뒤가 맞지 않는 의견이 나와 버렸네요.

페미니즘이 단순하게 ‘여성을 위한 학문’이었다면 퀴어 이론은 ‘페미니즘의 하부 개념’, ‘페미니즘의 부분 개념’으로 볼 수 있어요. 그렇지만 성차별에 고통 받는 존재는 여성만 있는 게 아니라, 남성, 성소수자, 장애인도 포함합니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포함한 가부장제의 억압, 성차별에 억눌려 있던 모든 사회구성원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학문입니다. 남성,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이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듯이 가부장제 사회를 해체하는 방식도 다릅니다. 그래도 저는 여러 갈래로 나뉜 페미니즘이 ‘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동일한 가치와 입장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서 협력하고 연대하면 공통 목표를 달성할 수 있어요. 하지만 공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다른 가치와 입장을 가진 사람들도 연대할 수 있어요. 후자의 연대는 각자 고유의 가치와 입장을 존중하는 전제로 공통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협력과 연대가 이루어지면 어떤 특정한 가치와 입장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위계질서가 없어야 해요. 이 위계질서가 작동되면 연대가 불가능해요.

여러 갈래의 페미니즘이 있는데 딱 한 길만 좋다고 해서 그것만 갈 수 없어요. 이 길도 가고, 저 길도 가보는 거죠. 아니면 두 개로 갈린 길의 간격을 없애는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페미니즘의 연대가 ‘공통 목표(가부장제 사회가 만들어 낸 성차별을 해체)를 달성하기 위해 페미니스트들이 여러 갈래의 길 위를 달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페미니즘과 퀴어는 하나’라는 표현을 썼는데, 제가 봐도 아닌 것 같습니다.. ^^;;

이 답글의 의견이 이해되지 않거나 그래도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말씀해주세요.

syo 2018-06-22 18:20   좋아요 0 | URL
대구에 내려가면 사이러스님 손에 붙들려 얄짤없이 레드스타킹에 참여하게 되는 건가요ㅋㅋㅋㅋㅋ 어쩐지 사이러스님이 syo 너 이놈 내려오기만 해라, 하며 벼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저의 착각인가요 ㅎㅎㅎ

cyrus 2018-06-23 11:25   좋아요 0 | URL
레드스타킹은 해치지 않아요.. ㅎㅎㅎㅎ 이분들과 계속 만나보면 마음이 편해질 거예요. 페미 뽕에 제대로 취합니다.. ^^

2022-06-15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22 12:16   좋아요 0 | URL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워마드가 ‘생물학적 여성’을 지향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처음 알았습니다. 어제 쓴 글에 밝혔듯이 워마드가 TERF를 표방한다고 해서 워마드 전체가 성소수자를 혐오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부’가 성소수자 혐오를 하고 있다면, 또 다른 ‘일부’는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이 있습니다.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 있는 워마드 일부는 ‘젠신병자’, ‘똥꼬충’ 사용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근본 없는 페미니즘>, 꼭 읽어보겠습니다. 어제 글을 쓰고 나서 그 책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저도 ****님을 위해 페미니즘 문헌을 추천합니다. 나영 님이 학술지에 게재한 글입니다. 제목이 <지금 한국에서, TERF와 보수 개신교계의 혐오선동은 어떻게 조우하고 있나>입니다. 레드스타킹 멤버가 공유한 글입니다. 저는 나영 님의 글을 참고해서 워마드를 비판하는 글을 썼습니다.

http://www.academia.edu/36485411/%EC%A7%80%EA%B8%88_%ED%95%9C%EA%B5%AD%EC%97%90%EC%84%9C_TERF%EC%99%80_%EB%B3%B4%EC%88%98_%EA%B0%9C%EC%8B%A0%EA%B5%90%EA%B3%84%EC%9D%98_%ED%98%90%EC%98%A4%EC%84%A0%EB%8F%99%EC%9D%80_%EC%96%B4%EB%96%BB%EA%B2%8C_%EC%A1%B0%EC%9A%B0%ED%95%98_.pdf

2018-06-22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22 14:23   좋아요 0 | URL
링크 화면 중앙에 ‘READ PAPER’라는 작고 희미한 글자가 보이시나요? 화면 아래로 스크롤 내리면 그 글자 바로 밑에 본문이 뜹니다. ****님이 말씀하신 비밀번호가 PDF 다운로드할 때 입력해야 하는 비밀번호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본문 화면이 나오지 않으면 다시 알려주세요. 제가 이 글을 보는 방법을 알아볼게요.

2018-06-22 1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22 15:51   좋아요 1 | URL
트페미 중심으로 전개되는 ‘탈 코르셋 운동’이 강압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하는 여성들이 있어요. 네, 페미니즘도 사람이 만든 학문이라서 무조건 완벽할 수 없고, 비판받을 수 있어요. 페미니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좋아요. 하지만 단순히 문제점이 많다는 이유로 ‘페미니즘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페미니즘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은 동의하기 힘듭니다. 저는 TERF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TERF도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TERF는 비판 받을 만한 페미니즘입니다. 제가 ‘워마드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제 입장을 ‘팔이 안으로 굽는 태도’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워마드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는 발언이 페미니즘을 왜곡하고, 편견을 재생산한다고 생각해요. 반 페미니스트는 워마드와 다른 노선의 페미니즘을 공격할 때도 ‘너희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페미니즘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특히 남성)이 페미니즘을 판별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은 일입니다.

페크pek0501 2018-06-23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리는, 아니 모든 사람이 행복할 때까지 달려야 할 페미니즘에 ‘중립’은 없습니다[4].˝
이 문장을 읽고 이런 글이 생각났어요.
˝언어의 세계에 중립이란 없기 때문이다, 지성의 반대말은 절충, 균형, 원칙... 이런 사고들이다.˝(정희진처럼 읽기, 202쪽.)

cyrus 2018-06-25 12:32   좋아요 0 | URL
첨예한 갈등이 나오는 문제에 한 가지 대답을 선택하는 건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예요. 그러나 계속 피하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요원해질 것이고, 문제에 휘말린 당사자들은 더 괴로울 거예요. 욕을 먹거나 비판을 받더라도 자신의 의사를 밝혀야 합니다. 자신이 말한 입장이 아니면 잘못을 떳떳하게 인정하면 됩니다.

마립간 2018-07-05 08: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cyrus 님의 제게 언급한 페이퍼이기에 반복해서 읽고 곰곰이 생각 ... 중입니다.

1) 단편적으로 앞 선 댓글 대화로 페미니즘의 비판을 거부한다면 워마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2) 퀴어 이론이 페미니즘보다 상위 개념이다. (보편성에 비춰.)
3) 정희진처럼 읽기 ; 지성의 반대말은 절충, 균형, 원칙이라면 ... 지성과 비슷한 말은 독선, 불균형, 무원칙일까...
4)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하워드 진) ; 하워드 진의 중립 기준은 무엇일까. 지구? 태양? 우리 은하? 아니면 13차원의 우리 우주 universe?

제가 읽은 책은 <여성의 남성성>뿐이지만, 우리 나라 (또는 알라딘에서 언급되는) 페미니즘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알 수 있죠. 흑백 인종을 갈등으로 남녀불평등을 덮으려는 것은 비겁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남녀불평등(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빌미로 인종 갈등, 퀴어 문제를 덮으려는 것을, 저는 더 비겁하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에는 인종 갈등이 없기에 남녀불평등만 문제로 보는 분도 계시구요.

비로그인 2019-03-11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adical Feminist가 아닌 TERF라는 멸칭을 아무런 설명 없이 사용하시는 데서 악의를 느껴집니다
글쓴 분께서는 워마드와 트랜스젠더리즘에 반대하는 모든 스탠스를 묶어서 혐오라 말씀하고 계시는데 이는 옳지 않습니다. 게이 커뮤니티의 여성혐오와 트랜스젠더리즘의 여성혐오적 측면, 전환수술의 부작용 등에 대해 얘기하는 건 분명히 필요하고 이러한 태도를 혐오로 낙인찍으며 발화를 막는 퀴어커뮤니티의 경향에 대해서도 재고해보시길

cyrus 2019-03-11 22:57   좋아요 0 | URL
TERF에 대한 정의를 설명했는데요. TERF라는 용어와 그 의미를 제가 만들었습니까? 렏펨을 TERF라고 단정적으로 규정하면서 명시한 적이 없습니다. 이 글의 첫 번째 각주에 ‘워마드 회원 전체가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썼습니다. TERF나 워마드를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고 쓴 적도 없고요. 나현 님의 논리대로라면 페미위키의 ‘TERF’ 항목 작성자도 악의적으로 렏펨을 보는 사람이겠네요.

이번에 나온 <미투의 정치학>의 머리말은 정희진 님이 쓰셨어요. 머리말 중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최근 몇 년간 일부 페미니스트(렏펨, 터프.....) 역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주장하고 있다.” (30쪽)

정희진 님이 ‘터프’와 ‘혐오’를 언급하셨는데, 여기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게이 커뮤니티의 여성 혐오도 분명 심각한 문제인 것 맞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렏펨이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미러링으로 성소수자 전체를 혐오하는 방식은 오히려 성소수자 혐오를 재생산하고 확대한다고 생각합니다.
 
세계화의 하인들 - 여성, 이주, 가사노동 여이연이론 17
라셀 살라자르 파레냐스 지음, 문현아 옮김 /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여이연)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필리핀 여성 이주가사노동자들은 세계화의 하인들이다.

 

(라셀 살라자르 파레냐스, 《세계화의 하인들》, 32쪽)

 

 

 

필리핀인을 가사도우미로 불법 고용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명희에 대한 영장이 어제 기각됐다. 법원은 범죄혐의 내용과 수사 진행 경과를 볼 때, 구속 수사할 사유나 필요성, 상당성을 모두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어제 불거진 조재현에 대한 성폭행 의혹 소식에 가려 이명희 구속영장 기각에 대한 관심이 조금 묻힌 감이 있었다. 물론, 이 두 개의 사건 모두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규명해야 하며 특히 페미니스트라면 유심히 살펴보고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합법화하면 부부 맞벌이가 쉬워져, 여성 경력단절이 해결되고 출산율도 높아질 거라는 주장이 나온다.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가사도우미 수요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수요는 늘어나는데 불법으로 막혀 있으면 가격이 음지에서 형성돼 수요자들의 부담만 가중된다. 정부의 규제가 늘 해법이 될 수는 없다. 규제하면 오히려 더 교묘히 법망을 피하거나 음지에서 불법 활동 및 범죄가 독버섯처럼 퍼져나간다. 강남을 비롯해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에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불법 고용이 만연하고 있다. 이자스민 전 국회의원은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는 법이 도입된다면 우리나라 경제에 이득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세계화가 진행됨에 따라 일자리를 찾기 위해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특히 세계화는 난민을 생산하는 기제다. 자본이 확대 재생산되고, 축적되는 것처럼 인적 자원의 이동 또한 막을 수 없다. 난민 또는 이주자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코리안 드림’을 가슴속에 품은 개발도상국 출신의 외국인들은 어떤 직업도 전혀 마다하지 않는다. 자신의 교육 수준에 맞지 않는 더럽고, 힘든 일이지만 고국에 있는 가족만 바라보며 기피 업종에 뛰어든다. 우리나라에서의 이주노동자의 여성 비율은 국제결혼 추세에 따라 증가하고 있다. 이주를 결심하게 된 배경 및 원인은 다르지만, 여성 이주가 증가하는 것은 다른 대륙 국가에서도 발견되는 현상이다. 특히 싱가포르와 대만, 홍콩에는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에서 온 여성들이 가사도우미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여성 이주 가사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을 생각하면 외국인 가사도우미 합법화는 시기상조다. 예나 지금이나 외국인 여성 이주 가사노동자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를 떠받치는 ‘하인’이다. 합법이든 불법이든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는 일은 ‘하인’을 고용하는 것과 같다. 《세계화의 하인들》(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09)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개발도상국으로부터 더 잘사는 선진국으로 ‘여성 가사노동자가 수입’되는 과정을 조명하는 책이다. 이 책을 쓴 저자의 어머니는 미국으로 이주한 필리핀인이다. 저자는 필리핀 이주민들이 많이 사는 이탈리아 로마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필리핀 여성 이주 가사노동자들을 직접 만나 그녀들의 삶을 재조명했다.

 

여성은 아내와 어머니, 딸, 며느리가 되면 ‘정상 가족’의 생계를 꾸리기 위해 보육, 요리, 청소 등의 가사노동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성별 분업 체계에서 ‘여성적’ 일의 본질은 가족 및 타인을 보살피는 ‘무급 가사노동’ 또는 ‘돌봄 노동’으로 규정된다. 과거 여성들이 무급으로 수행하던 가사노동 및 돌봄 노동은 세계노동력 시장에서 상품화되면서 특권계급 여성이 구매할 수 있는 ‘저임금 서비스’가 된다. 저자는 저임금 서비스 노동에 대한 요구가 급증함에 따라 가난한 이주 여성이 가사노동을 떠맡는 존재, 즉 ‘하인’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한다. 선진국의 특권계급 여성, 즉 여성 고용주는 ‘힘들고 더러운’ 집안일을 하기 싫다는 이유로 가사노동을 가난한 이주 여성에게 떠넘긴다. 이렇게 되면 ‘남성적’ 일과는 구분되는 ‘여성적’ 일이 ‘돌봄의 연쇄(care chain)라는 방식으로 강화된다. 외국인 여성이 이주하면 그녀가 해야 할 가사노동은 또 다른 가난한 여성이 떠맡게 된다.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성별 노동 분업이 가난한 국가로부터의 여성 이주를 통해 지속한다.

 

필리핀은 전체인구의 10%가 해외에 나가 일한다. 해외 취업자들은 대개 여성들이다. 필리핀 여성들은 영어를 할 줄 안다는 이점 때문에 미국과 유럽은 물론 중동, 아시아 등 곳곳에서 가사도우미, 보모 등으로 인기가 있다. 여성의 해외 취업이 늘면서 ‘재생산 노동(가사노동, 돌봄 노동)의 국제적 분업’은 필리핀뿐 아니라 아시아 각국에서 노동이민의 새로운 추세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추세가 지속하면 이주 여성은 불평등한 사회구조 속에서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저임금 노동만 해야 하는 빈곤하고도 불리한 상황에 직면해야 한다. 그리고 타국에서 외롭게 생활하는 이주 여성과 고향에 남겨진 아이들의 정서적 불안정도 생각하면 이주 여성 문제는 간단치 않다. 따라서 외국인 가사도우미 합법화 논의는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 책이 발간된 이후로 내가 터득하게 된 것은 모든 여성고용주들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다시 말해서 일부는 자신의 이중일과의 부담에 도움을 받기 위해 가사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집안일이라는 더러운 일을 회피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 중간계급과 상층계급의 과시적 소비의 징후로서 가사노동이라는 재화가 포함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14쪽, 한국어판 서문)

 

 

오랜 가부장제 문화에서 여성은 독립된 주체가 아닌 남성의 소유물이나 부차적 존재로 여겨져 왔다. 가부장제가 뿌리 깊던 당시 여성들에게 교육, 기술보다 아내, 엄마로서 해야 할 역할이 더 중시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성별화된 노동 분할 전략으로 여성의 빈곤화를 심화한다. 《세계화의 하인들》은 특권계급 여성이 이주 여성 노동자들을 어떻게 ‘차별’하며 불평등을 초래하는 위계적인 구조를 어떻게 만드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만 봐도 이명희가 얼마나 잘못한 일을 했는지 느낄 수 있다. 아마도 이명희는 ‘더러운 집안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 불법 가사도우미를 고용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는 법이 생기면 걸레 드는 것을 싫어하는 잘 사는 마나님들이 엄청나게 좋아하겠는 걸?

 

 

 

 

 

* Trivia

 

1. 목차의 1장 제목과 본문 1장 제목이 다르다. 목차에는 ‘로마와 로스엔젤리스의 필리핀 이주 가사노동자’라고 표기되어 있고, 본문에는 로마와 로스엔젤리스의 필리핀 여성 이주 가사노동자’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목차의 1장 제목에 ‘여성’이 빠졌다.

 

2. 284~285쪽에 ‘흐몽인’, ‘흐몽 난민’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베트남, 중국, 라오스 등지에 사는 묘족(苗族)의 베트남어 이름이다. ‘흐몽’이 아니라 ‘몽(Hmông)’이라고 불러야 한다. ‘H’는 비음(鼻音)이므로 소리가 날 듯 안 날 듯 발음해야 하기 때문이다. 묘족을 설명한 대부분 인터넷 백과사전 항목에서는 ‘몽족’이라고 언급하지 ‘흐몽족’이라고 하지 않는다.

 

 

 

 

 

[*] [이민 없는 한국]⑨이자스민 “맞벌이 늘어나는 韓…필리핀 가사도우미 허용 목소리↑』 이데일리, 2018년 6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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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2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22 15:59   좋아요 1 | URL
네. 페미니즘은 ‘정치적 올바름’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학문입니다. 페미니즘이 여성 문제에 접근하려면 젠더, 계급, 섹슈얼리티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