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빠는 49년생 이시다. 그리고 지금은 경비 일을 하시고. 간혹 친구들에게 나의 아빠에 대해 얘길하면 '니네 아빠 너무 좋으시다'라는 말을 엄청 듣는다. 엄마 역시 '와, 남편이 너무 좋네' 하는 얘기를 듣고. 여동생에게는 아빠가 '언제나 힘들 때 늘 곁에 있어준 사람'으로 존재한다. 나에겐 딱히 그렇진 않지만... 나 힘들 때 나는 내가 다 알아서 혼자 다 잘했던 것 같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빠가 날 도와준 느낌은 1도 없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어쨌든.


어릴 때부터 아빠랑 사이가 좋았다. 집은 대화가 끊일 날이 없었고, 아빠가 '대화를 하는 게 중요하다' 고 말하면, 남동생이 '우리 집은 대화좀 그만해야 해' 라고 말하는 지경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태 함께 살고 있으니 아빠와의 기억나는 일들이 셀 수 없이 많지만, 아무튼, 오늘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면서 아침을 먹으려고 했는데, 부엌에 이런 쪽지가 있었다.





ㅎㅎㅎㅎㅎㅎㅎ 아고 우리 아빠 귀여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끔 나 역시 아빠에게 쪽지를 써두고 자기도 한다. 이를테면 간식 챙겨가라는 말들 같은 거. 아빠, 식탁 위에 있는 빵 내일 간식 가져가세요, 라는 쪽지를 써두곤 하는데, 아빠 역시 이렇게 나한테 우산 챙기라고 쪽지로 말해준 것. ㅋㅋㅋㅋㅋ 물론, 쪽지보다는 문자 메세지로 더 많이 전달하긴 한다.






이렇게 보니까 나는 세상 건조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아빠는 우리한테 사랑한다는 말도 너무 많이 해줘서 ㅋㅋㅋㅋㅋㅋㅋ 내가 '그만좀 해, 그놈의 사랑'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한 번은 친구가 '너네 아빠가 감정 표현을 너무 잘하는 분이셔서 너도 감정표현을 잘하게 된 것 같아' 라고 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물론 아빠랑 싸울 때도 많다. 무엇보다 나는 대들기를 잘하고, 아닌 것 같은 상황에서는 버럭버럭 아빠한테 화도 낸다. 그래도 평소엔 이렇게나 다정하게 지내는 편인데, 그래서 친구들은 내게 의문을 표했었다.


"너네 아빠는 너무 좋고 너랑 친하고 다정한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꼴페미가 된거야?"



그러게? 하하하하. 그러네?

내가 나도 모르겠는데 하는데, 다른 친구가 나중에 그랬다. 자기 아빠도 누구보다 다정하고 자기랑 친하다고. 그런데 자기는 꼴페미가 되었다고. 이 친구는 나보다 더 훨씬 전에 꼴페미가 되었지. 우리의 아빠들이 다정해도, 우리랑 친해도, 우리는 가부장제가 어떤 문제를 가져오는지 알고, 이렇게 다정하고 친한 아빠여도 가정 내에서 무수한 문제점들을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자꾸 대들어야 할 일들은 생기기 마련이야... 그리고 사회에서 맞닥뜨리는 그 많은 남자들.......

꼴페미가 될 수밖에 없어...




나는 아빠에게 '아빠, 나는 아빠보다 타미를 사랑해, 이건 어쩔 수가 없어' 라고 말하곤 한다...




친구에게 방금전에 문자메세지가 왔는데, 여성의 날인데 차 한잔 하자며 스벅카드를 보내온 것이었다.

어떻게 내 주변엔 이렇게 센스있는 친구들이 가득하지?

나도 따라해야지!! 이거 너무 좋은 아이디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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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말 2018-03-08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다락방 2018-03-08 15:08   좋아요 0 | URL
흐흣

프레이야 2018-03-08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찡해요, 다락방님.
다정다감하신 아빠네요.

다락방 2018-03-08 15:08   좋아요 0 | URL
네 엄청 다정하시고 엄청 사랑이 넘치세요. 단, 가족에게만 그렇습니다. 하핫

단발머리 2018-03-08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아빠의 다정다감함과
친구의 따뜻한 센스가 더해져 다락방님은..
오늘날 이 다락방님이 되었네요~~
기뻐요~~~^^

다락방 2018-03-08 15:09   좋아요 0 | URL
네, 저는 아빠의 어떤 성격, 어떤 부분들을 무척 싫어하지만, 제가 그런 점을 닮았다는 생각을 해요..
왜 싫어하는 걸 닮는지, 원 ㅠㅠ

2018-03-08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03-09 09:09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제가 가족에 있어서라면 큰 복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

오후즈음 2018-03-08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버님 넘 스윗하신 분이신가봐요. 짧은 문자에도 다정함이!!!

다락방 2018-03-09 09:10   좋아요 0 | URL
네 다정함과 스윗함이 넘치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ㅋㅋㅋㅋㅋ

2018-03-08 2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9 0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13 1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14 0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요즘에 [윤식당 2]를 1회부터 무려 1,500원씩 결제하며 보고 있고, 그렇게 4편까지 봤다. 보면서 나는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영화 비포 시리즈 생각이 자꾸 난다.


비포 선라이즈 에서 여자와 남자는 각자의 목적 있는 여행을 마치고 기차 안에 있다가, 다른 사람들 틈 사이에서 서로를 발견해낸다. 그리고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조심조심 서로에게 말을 걸고.


비포 선셋 에서 여자와 남자는 9년 후에 재회한다. 이제 둘에게 다른 사람 다른 공간은 중요치 않아서, 영화 한 편이 오롯이 두 사람의 대화만으로 진행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비포 미드나잇 에서 여자와 남자는 다시 또 9년후, 함께 살고 있어서 때로는 지쳐있기 까지 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제 그들에겐 서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다함께 존재하고 또 섞여든다. 어느 게 제일 좋으냐 하면 나는 비포 선셋이라 말하겠지만, 그러나 선라이즈가 없었다면 선셋이 존재할 수 없었다. 그리고 현재는 미드나잇. 분명히 선셋이 존재했는데 우리는 미드나잇을 함꼐 살아가는 거다.



나는 텔레비젼을 잘 보지 않아서 사실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지도 잘 모르고 성격이 어떤지도 잘 모른다. 윤식당 재미있다고 주변에서 아무리 말을 해도 거들떠도 보질 않았었다. 그러다가 얼마전에 지나가면서 잠깐 윤식당2를 보았는데, 스페인이 너무 아름다운 거다. 나는 집에서 혼자 술 마실 때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다시 틀어두고 보곤 하는데, 이게 계속 결방중이라 볼 게 없어, 뭘 볼까, 하다가, 아 맞다!! 윤식당의 스페인을 볼까? 하고는 처음으로 1회를 결제했다. 그러니까, 순전히 여행프로그램을 좋아하는 내 취향 때문에 그 프로를 선택한 것이었다. 스페인을 보자, 그 아름다움을 보자! 하고 선택한 것이었는데, 내가 그것을 보기로 한 이유가 이국의 아름다운 풍경 때문이었다면, 좋아진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니 1회부터 보기 시작하니까, 서준이가 스페인어 공부하는 게 나오는 거다. 서준이가 맡은 건 서빙이었는데, 비행기 안에서도 스페인어 공부하고 출발하기 전에도 스페인어를 공부해서, 손님을 응대하는 게 잘 되는 거다. 영어도 되고 스페인어도 되고, 이게 보다보면 일본 사람에게는 일본어로 인사도 건네준다. 그래서 일본 손님도 '저 사람 외국어를 잘하네'라고 놀라기도 한다. 나는 늘상 공부하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껴왔으므로, 이런 서준에게 반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데, 아니, 너는 누구냐, 어디서 튀어나온 녀석이지... 이렇게 됐다가, 아니 글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먼 스페인의 어느 섬에 가서 피곤한 그 날, 다른 사람들은 다 쉬는데, 서준이는 밤에 클럽을 갔다왔다고 하는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 젊다 젊어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같으면 기절했을텐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튼 그래서 서준에게 반해가지고 있었는데, 아니 글쎄, 클럽도 갔다왔다면서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는거야!!! >.< 아 졸 멋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녀석은, 뭐지?  (내가 이거 보기 시작했다고 하자 나를 잘아는 내 친구는 '너 서준이 운동하는 거 보고 반했지?' 라고 물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외국어와 운동하는 서준에게 반해 있었는데, 아니, 윤여정은 어쩜 그렇게 영어를 잘하지?! 나는 완전 놀라버린 것이다. 이 사람들 ... 대체 뭐야??



윤여정은 굉장히 힘들어 보여서, 야, 저렇게 일시켜도 되냐, 싶었다. 그래서 프로필을 검색해 봤는데, 어휴, 나이 많으셔. 다른 일행들이 (서준이와 유미) 항상 먼저 식당에 도착해 준비를 하고 또 일하는 중에도 윤여정을 배려해주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힘들어 보인다. 굳이 저렇게 힘들게 할 필요가 있나..라고 수차례 생각하게 되는 건, 그 힘든 모습이 그대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힘들어 보여. 그러다가 잠깐 다른 식의 생각을 하게 된 건, 윤여정이 굉장히 능력있는 여성이라는 게 보여서다. 영어도 잘하고 또 프로그램의 특성이지만 요리를 한다. 그래서 윤여정은 요리를 하다가는 궁금해서 바깥에 나가 손님들을 상대하며 묻는다. 음식 어떠니, 괜찮아? 이거 먹어 봤니? 하면서 대화를 시도하는 데, 그 모습이 진짜 자지러지게 좋은 거다. 그러면서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미 가진 자원이 있어서, 그것이 나의 지식과 육체로부터 나오는 것이어서, 그것으로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이 들어서도 돈을 벌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거다. 손님들은 음식을 아주 맛있게 먹는데, 내가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는 손님들과 대화를 한다는 것, 내가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는 손님들을 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 되게 보람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지금 내가 맡은 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조만간 끝나버릴 것 같은데, 그러니까 나는 내가 이 일을 '언제까지나' 계속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더 오래 계속할 수 있는, 혼자 살면서도 나를 계속해서 단단히 버텨내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그건 무얼까에 대한 진로 고민을 여전히 하고 있는데, 윤여정은 거기에 좋은 롤모델이 되는 것 같다. 외국어를 하는 게 이렇게나 좋은 거야. 알라딘에 m 님이 수차례 내게 영어 공부 하라고 조언해주셨는데, 네, 정말 꿀같은 조언입니다. 가진 자원이 많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더 많아지겠지. 그리고 이미 생활에 여유가 있다면, 더이상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내능력을 어떻게든 발휘하면서 살고 싶어.... 내 능력을 발휘하며 살고 싶다면, 일단 내 '능력'이란 게 있어야 하는 것이다..... 외국어 공부가 답이야!!



물론 프로그램에서 보여지는 거겠지만, 윤여정을 다른 일원들이 깍듯이 대한다. 그런데 윤여정이 거기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존중과 존경을 받으며 당당하게 일할 수 있는 건, 스스로가 겸손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 음식의 맛을 결정해야 했을 때 본인의 주장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서는, '자 고치자' 고 말하는 거다. 사람이 나이가 얼마가 됐든간에, 어느 지위에 있든 간에, 내가 한 말이 틀렸다는 걸 잘못됐다는 걸 인식하고 또 인정하기는 너무나 어려운데 윤여정이 그걸 하는 거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그런 성격들이 본인이 가진 자원과 맞물려 저렇게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나이 들어서도 일할 수 있다니, 나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나이 들어서도 일을 하는 여성을 보노라니, 자연스레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도 생각났다. 내가 이 영화 2편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지. 부자 남자가 나를 위해 뭐도 사주고 뭐도 사주고 돈도 주고 막 그러는 게 좋아보이겠지만, 만약 나에 대한 그 남자의 관심이 끝나면?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그러면 혼자 서기가 너무 어려워진다. 자기 능력이 있어야 되는거다!! 라는 생각의 끝에 닿았는데, 윤여정은 그걸 실천하는 사람이야..



아, 그러니까 이 윤식당을 보게 된 계기는 스페인이었고 매력을 느낀 건 서준과 윤여정의 외국어 실력이었는데, 그렇게 2회를 지나고나서 부터 이 프로그램은 완전히 다른 매력으로 내게 다가왔다. 나는 이제 그 식당을 찾는 손님들의 이야기가 너무 좋은 거다. 어떤 손님이 오나, 무얼 먹고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세상 기다려지는 거다.


손님들은 다양한 나라에서 찾아드는데, 하하하하, 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여행을 많이 한다는 게 너무 씐나는 거다. 가족 단위로 들어오기도 하고 연인들이 찾아들기도 하는데, 식당 앞에 멈춰 서서 메뉴판을 기웃거리며, 여기 갈까 여기 어때 물으며 들어오는 게 너무 좋고, 커플끼리 와서는 나는 맥주 나는 와인 이러면서 다른 메뉴 시키는 걸 보는 건 또 왜이렇게 좋은지. 그리고 서로 다른 음식을 시켜서는, 오 이 음식 맛있어 건강한 느낌이야, 하면서 서로에게 건네는 걸 보는 게 너무 좋은 거다. 그리고 꽃집 사장님 부부는 벌써 윤식당에 두 번째 찾아드는데, 서로 먹는 걸 보며 '사진 찍어줄게' 이러고 사진 찍는 거 보는 것도 너무 좋고.

세상엔 진짜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해서, 나였으면 그냥 식당에서 밥만 먹었을텐데, 누군가는 쉐프를 만나고 싶어하기도 한다. 그래서 굳이 쉐프랑 대화하고 싶어해. 아, 어떤 나라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음식 블로거인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가 음식들의 사진을 찍고 쉐프랑 대화하고 싶어하니까, 남자친구가 그걸 다 이해하는 거다. 그러니까, 내 여자친구는 음식 블로거, 식당에서 쉐프를 만나보고 싶어해, 라는 걸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다고 해야할까. 이거 되게 중요한 포인트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 식당에서 보면 음식 사진 찍는 사람들이 있고 되게 귀찮다는 듯이 '아 빨리 찍어' 이러면서 좀 음식 사진 찍는 거 한심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누군가는 찍고 싶어하고 누군가는 찍는 거 한심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응, 너는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지, 를 인정하고 함께 가는 건 너무 좋게 보이는 거다. 다양한 나라에서 오는 사람들은 또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섞여서 오기도 한다. 내가 한국사람이라고 해서 한국사람과 찾는 것 뿐만 아니라 한국사람이 스페인 사람하고 같이 오기도 하고, 일본 사람이 영어권 사람과 같이 오기도 하고, 또 필리핀 사람이 영국인가 아무튼 다른 나라 사람하고 같이 오기도 하고. 세상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로 모여 살면서 다양한 나라를 다니고 있어!!



이렇게 커플들이 외국에 식당에 들러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걸 가만히 보노라니, 비포 시리즈 생각이 나는 거다. 특히나 비포 미드나잇. 둘이 연인이 되기 전까지는 당연히 서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소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에서, 그들이 다른 얘기는 일절 없이 서로가 서로에 관련된 얘기로만 책 한 권을 꽉 채우는 걸 보지 않았는가. 비포 선셋에서 9년만에 재회한 그들은 다른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고 서로만을 보고 서로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둘이 함께하는 연인이 되었다면, 이제 '내'가 아닌 '연인'의 형태로도 세상 속에 들어가게 돼. 비포 미드나잇에서는 그리스로 놀러간 이 커플이, 그리스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식사를 하고 술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거다. 많은 사람들 속에 '나'이기도 하지만, 이렇듯 많은 사람들 속에 '우리'이기도 한 것. 그래서 윤식당을 찾는 손님들을 보노라니, 비포 미드나잇이 너무 생각나는 거다!!!



내가 이거 돈 내고 보는 거 보고 엄마가 옆에서 '그게 그렇게 재밌냐' 하셨는데, 이제는 옆에 앉아서 계속 나랑 수다 떨면서 같이 보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야, 저거 비빔밥인데 안비비고 먹어 어떡해, 야, 고추장을 잘도 먹네, 쟤네는 그냥 일단 앉으면 맥주를 시키네? 이러면서 세상 즐겁게 보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이거 보고 있으면 남동생이 들어와서 싫어하면서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자고 한다........ 녀석은 숲으로 가길 원하고 나는 세계로 가길 원한다... 인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놓고 페미니즘 영화인 [더 포스트] 에서, 캐서린은 중요한 결정을 내리면서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한다. 당연히 '남자'인 벤은, 자신 역시 잃는 게 많다고 생각하고. 그러나 벤의 '아내'는 정확히 궤뚫어 봤다. 아니, 너는 다른 데 취직할 수도 있고 또 명예가 너에게 남겠지. 그러나 캐서린은 지금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잃게 돼, 그간 그녀가 거기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난의 말만 들어왔고 없는 존재로 취급받았는데, 그러면서도 버텨왔어. 사람은 자꾸 그렇게 없는 사람 취급받으면 자신 역시 그렇게 생각하게 돼, 그런 그녀가 그런 결정을 내린 거야. 아내는 이걸 다 알고 보고 있었던 거다. (정확한 워딩은 당연히 아니고 그냥 내 기억에 의한 뉘앙스로 옮겨온 문장이다) 또한 캐서린은 결정적 순간에 자신에게 조언이랍시고 내뱉는 남자에게 '지금 이 회사는 우리 아버지 회사도 아니고 내 남편의 회사도 아니고 내 회사이다' 고 말한다. 그녀는 누구보다 언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었고, 공부도 많이 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또 그것에 대한 법의 판결이 내려졌을 때, 모든 기자들은 뉴욕타임즈의 회장에게만 달려들어 인터뷰를 시도한다. 같은 결정, 같은 판결을 받은 캐서린에게는 아무도 인터뷰를 요청하지 않는다. 물론 뉴욕타임즈가 더 큰 언론사였지만, 캐서린은 조용한 퇴장을 한다. 그러나 그녀가 가는 길에 아주 많은 여자들이 줄을 서 있었고, 그녀가 한걸음씩 옮길 때마다 그녀들은 길을 열어준다. 조용히. 이 영화속 의미 있는 말과 행동은 모두다 여자들로부터 비롯된다. 물론, 없는 사람 취급당하고 고통을 받는 것도 다 여자들의 몫이었고. 나는 특히나 그 위기의 순간, 급박한 순간에 벤이 자신의 집으로 기자들을 불러모아 큰 뉴스를 터뜨리려고 자료를 조사하고 취합하는 과정에서, 여자 기자인 '멕'이 너무 불편해 보였다. 방 안에 촤르륵 보고서를 늘어놓고 이건 어딨어, 저건 어딨어 찾는 과정에서 당연히 엎드리고 쪼그리고 그런 자세를 취하게 되는데, 그녀는 스커트를 입고서 그 모든 과정을 다른 남자기자들과 함께 하는 거다. 스커트 입고 그러기 진짜 세상 힘들텐데.. 어휴... 우리 집이었다면 내가 트레이닝복 바지라도 줬을 거야.... 아니면 수면 바지라도.... 자, 이거 입고 하자, 하고...... 아직도 그녀가 너무 불편했던 것 같아 ㅠㅠ




영화가 끝나고 지하에 있는 마트에 갔다. 비빔국수를 해먹고 싶어서 소면을 사려고 한거였다. 마침 캔맥주 6개를 싸게 파네, 해서 맥주도 집어 들었는데, 얼라리여~ 온 김에 와인을 안사가면 서운하지... 무거우니까 딱 하나만 사자, 하고는 집어들었다. 마트가 이렇게 무서운 겁니다...




이번에 사온 게 끼안띠 와인이어서, 이제 내 방에는 멜롯, 까베르네 쇼비뇽, 끼안띠가 모두 있다. 마음이 여유로워졌어..




이야..너무 좋다..... 내가 나였어도 나랑 살고 싶었을 것 같아... 나는 나랑 살아서 너무 좋아..... 이렇게 술 쟁여놓는 거 세상 좋은 습관이야.....



어쨌든 그래서 나는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요리의 감을 믿고 비빔국수를 만들었다. 김치를 이케이케 썰고 소면 삶아 넣고 고추장 넣고 참기름 넣고 설탕 약간 뿌려가지고 이케이케 비벼주면...겁나 맛있는 비빔국수가 되겠지?




먹어보고 맛없어서 당황했다... 왜 머릿속에서 만드는 거랑 실제 결과물은 이렇게 다르지? 왜죠? 왜 때문이죠? 내 머릿속에서는 진짜 입에 침고이는 비빔국수가 만들어졌는데 왜 때문에 먹으면 누구에게도 만들어 줄 수 없는 맛이 되어버리는거지??



후루룩후루룩 비빔국수를 먹고 있는데 남동생이 마른안주를 사러 나갔다 오겠다고 한다. 마침 엄마가 사둔 황태포 생각이 난다. 국 끓인다고 사두셨던 거.. .야, 귀찮은데 나가지마, 황태 먹어, 내가 소스 요리해줄게, 하고는 안주를 차려냈다.





누나 이거 그냥 집에 있는 간장에다가 마요네즈 넣는 거 아니냐? 이게 무슨 소스 요리한다는 거냐??? 라고 남동생이 물어서, 고추 썰어서 넣었잖아.... 했다.....


비빔국수 맛을 보면 나랑 살지 않는 게 현명하겠지만, 또 이렇게 소스를 근사하게 만들어 내놓는 걸 보면 역시 나랑 사는 게 답인 것 같다. 무엇보다 술 쟁여놓는 나.... 넘나 만족스러운 것. 후후훗.





[더 포스트]에서 캐서린은 수차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다. 이사회 에서도 그녀는 많은 자료를 준비했지만 그녀가 작게 내뱉는 말은 무시되기 일쑤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나는 당신이 보여요' 라고 말을 해주고 싶었다. 제목은 그래서 나온 것. 이 대사는 영화 [아바타]에서 나온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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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윗듀 2018-03-05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침 공부 세션1 후에 다락방님 페이퍼로 잠시 휴식하는 거 넘나 좋다.....너무 좋아.... 청량고추는 꼭 넣어야해요.....

다락방 2018-03-05 09:55   좋아요 1 | URL
스윗듀님이 제 페이퍼를 좋아해주셔서 저는 넘나 좋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읽고 써야징 ㅋㅋㅋㅋㅋ
청량고추 만쉐이~~

유부만두 2018-03-05 0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빔국수 찌찌뽕!

다락방 2018-03-05 10:00   좋아요 1 | URL
저도 유부만두님 페이퍼 뫘어요. 그렇지만 우리가 같은 메뉴일지언정 맛은 다를 거예요.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없는 맛 ㅠㅠ

유부만두 2018-03-05 14:36   좋아요 1 | URL
ㅎㅎㅎ 사진에 있었는데요? 팔도비빔 양념!!!

다락방 2018-03-05 17:27   좋아요 1 | URL
저도 그 양념을 살까요? (몹시 흔들림) 그렇지만.... ㅠㅠ

[그장소] 2018-03-05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요일 활기차게 다락방 님이.차려주는 글의 식탁에서 아주 맛나게 즐겁게 글 맛을 느끼고 가요!
읽는 내내 웃음이 벙그러졌어요! 덕분에 행복해졌고요!! 다락방 님도 굿굿한 하루 되세요!^^

다락방 2018-03-05 17:27   좋아요 1 | URL
으하하하. 즐겁게 읽으셨다니 제가 더 기쁩니다. 사소한 것들로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 수 있다면 그건 참 괜찮은 인생인 것 같아요.
:)

[그장소] 2018-03-05 17:30   좋아요 0 | URL
네~ 다락방 님 글은 전혀 사소하지 않지만 즐거워요! 비타민 D같고요!^^

비로그인 2018-03-05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긴 글 너무 좋고요...
더 포스트 보고 싶어지네요-
그리고 와인을 사러 가야겠다고 결심.
언제나 실천의지를 주는 다락방님 포스트...^^

다락방 2018-03-05 18:44   좋아요 0 | URL
아이다호피쉬님 ㅠㅠ 안그래도 써놓고 또 너무 길었네 ㅠㅠ 중간에 못끊네...라고 생각했었는데... 긴 글 너무 좋다고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흙흙

와인 사오세요!! 사다 쟁여두세요!! 행복하게 삽시다 우리 ㅋㅋㅋㅋㅋ 아프지 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18-03-05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식당1편을 봤을때 저도 윤여정씨에게 반해버려~~2편을 꼬박은 아녀도 꼭 챙겨보곤 했죠^^
발리편에 비교해서 스페인편은 확실히 손님들이 음식을 먹으면서 나누는 대화가 귀에 쏙 들어 왔어요.너무나도 즐겁게 음식을 먹고 서로를 바라 보며 웃으며 대화 나누는 모습이 참 좋더군요!
그리고 와인이나 맥주 한 잔 정도씩 곁들여 식사를 하니 더 즐거운가 싶어 요즘 저도 한 번씩 그걸 따라하고 있어요.
술을 잘 못마셨는데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ㅋㅋ
윤식당을 보면서 ‘먹는 것‘에 대한 관점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또한 다락방님이 여행 하면서 올린 음식 후기문 또한 강한 식욕자극도 되구요.비빔면 또한 침샘 자극하는데요??^^
아~그것도 보셨는지 모르겠어요.윤식당에 단체 손님들 회식장면이 있었거든요.윤여정님 완전 힘들어 얼굴이 퉁퉁 부어 보여 안쓰러웠어요ㅜㅜ
에혀~~
그래도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모습에 더 반했어요.나이 들어도 저렇게 나이 먹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다락방 2018-03-06 10:38   좋아요 1 | URL
저도 윤식당 볼수록 윤여정 쌤께 반해버리게 되더라고요. 영어 실력도 실력이지만 늘상 다른 사람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려고 하고, 제가 보던 것중에 정유미가 늦잠을 자서 ‘선생님 저 늦잠 잤어요‘ 하니까, ‘응 잘했어‘ 하시는데, 그 장면은 또 왜그렇게 좋던지요. 뭔가 좋은 어른이란 어떤것인가 몸소 보여주시는 것 같아요 ㅠㅠ

저 비빔면은 너무 맛이 없었어요. 그냥 제가 만들어서 저 혼자 후루룩 삼켜버렸어요. 머릿속 요리는 아주 맛있는데 왜 현실의 요리는 저모양인지 ㅠㅠ 누구에게도 대접할 수 없는 요리가 되어버리고 말았어요. 전 이제 요리에 뭔가 솜씨 좀 생긴줄 알았는데..저만의 착각이었는가 봐요. 아하하하하.

제가 보던 회차에서 경쟁 레스토랑이 ‘다음주 금요일에 예약할게 여덟명‘ 이거 나왔는데, 잠깐 예고로 보니까 여덟명 훨씬 더 되는 것 같던데요? 그래서 엄마한테 ‘엄마 이제 어떡하지, 저 손님들 다 어떻게 상대하지‘ 했었는데 아아... 역시나 너무 힘들어 하셨군요. 그 날 밤은 푹 주무셨어야 됐을텐데 ㅠㅠ 역시 노동은 너무 고된 것이에요. 흙흙 ㅠㅠ 안하고 여유롭게 살 수 있다면 좋겠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저도 능력 있는 사람으로 늙어가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해요. 우리 잘 늙어갑시다, 책나무님!!

비연 2018-03-05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식당도, 더 포스트도 꼭 봐야겠어요 불끈

다락방 2018-03-06 10:39   좋아요 1 | URL
외국어 잘하는 사람들 진짜 너무 멋진 것 같아요! 제가 못해서 그런가봐요.
그리고 더 포스트는 비연님, 정말 좋아하실 거예요. 강추합니다!
제 친구 한 명은 최근에 본 영화중에서 가장 좋은 영화라고 말하더라고요. 추천!

2018-03-07 1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7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주 오랫동안 문구점에 들르게 되면 이 펜이며 저 펜을 써보고 사곤 했다. 그렇게 펜을 사도 또 문구점에 들르면 이 펜 써보고 저 펜 써보고... 아, 나는 펜욕심이 있는 사람이구먼...이라고 생각하며 아주 오래 지냈다. 그러다 3년전 생일에 몽블랑 만년필을 선물 받았는데, 만년필을 선물받고 나자 내가 그 뒤로 문구점에 가도 펜을 거들떠도 안보는 거다. 앗?! 펜욕심 있는 내가 왜 이제 펜을 거들떠도 안보지????????? 하고 생각했는데, 아아, 그거슨 몽블랑 만년필 때문이구나! 했다. 궁극의 펜이 있으니 다른 펜은 필요가 없어지는 거다!!


지갑도 그랬다. 지갑은 1-2년 쓰면 꼭 다른 지갑이 갖고 싶어지는 거다. 이건 이래서 불편하고 저건 저래서 불편하고 해서, 백화점에 가 이 지갑이 좋네 저 지갑이 좋네 하며 1,2년마다 바꿨었는데, 크리스마스 선물로 갖고 싶지만 차마 내돈 주고 사기는 손 떨렸던 지갑을 선물 받고 나자, 백화점 1층에서 이리저리 지갑을 둘러보는 일이 없어졌다. 게다가 그 뒤로 지갑을 바꿀 생각이 1도 안들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은 거다. 지금 지갑이 많이 낡았는데, 만약 이게 더 낡고 그래서 쓰기 곤란해지면 똑같은 지갑을 살 예정이다. 그만큼 마음에 드는 지갑인 것이다. 아, 역시 궁극의 지갑이 있으면 다른 지갑은 쳐다보지 않게 되는 거였어!!!



그리고 또 하나 궁극의 것을 찾았다. 그것을 어떻게 알았냐 하면, 알라딘 앱에 접속하고 알게된 것인데, 아니, 3월의 선물이 에코백이라는 게 아닌가! 그런데 나는 전혀, 1도 관심이 가지 않는 거다. 그전의 나는 에코백이라면 계속 받아서 번갈아 쓰고 또 친구들에게 선물도 하고 그랬었는데, 에코백이 알라딘 선물로 나오면 또 받고 싶을만큼 자꾸 에코백을 받았었는데, 이제는 그걸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작년에 나의 오빠로부터 궁극의 에코백을 선물 받았기 때문이었어!!!!!




안에 속주머니도 단단하고 손잡이도 단단하고 겉과 속이 그냥 다 단단해서 가지고 다니기도 좋지만 양질의 가방인 것이 화악- 느껴지는 것이다. 이걸 받고나서는 '아아 다른 에코백은 이제 필요가 없다!!' 하게 되어버리고 만것이다. 궁극의 에코백이 있는데 곁다리 에코백들이 대체 무슨 필요란 말인가. 나는 어차피 물욕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아닌가? 맞나? 모르겠네?), 그것이 무엇이든 '궁극의' 것만 있다면, 두 개 세 개가 필요치 않은 것이다. 궁극의 것만 있다면 한 눈을 파는 사람이 아니야!!! 궁극의 에코백이 있으니 나는 이제 더이상 알라딘에서 에코백을 준다고 아무리아무리 유혹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지금도 어떤 에코백이 있는지 들여다보지도 않았어. 왜냐하면 나는 궁극의 에코백이 있어서, 다른 에코백에 대해 관심이 안생겨. 역시 궁극의 것은 중요하다.



다른 것들을 자꾸 기웃대는 건 궁극의 것을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궁극의 가방을 못찾았어. 그거슨 내가 비싼 돈을 들여 가방을 사긴 했지만, 그보다 조금 더 돈을 주고 더 비싼 걸 사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이 가방을 샀는데도 그 가방 생각이 자꾸 나...이게 진짜 중요한 게, 어차피 돈을 쓸거였다면, 벌벌 떨지말고 과감히 질러버려야 하는 것이다. 괜히 손 떨다가 돈은 돈대로 쓰고 만족감도 못갖게 돼. 내게 지금 가장 후회되는 게 다이어리다. 영국까지 가서 스미슨 다이어리를 샀는데, 이게 너무 비싼거라...야 왔으니 하나 사고싶긴 하고, 정말 오래전부터 사고 싶었으니까 사긴 살건데...아, 너무나 비싸네....하고 친구와 나는 매장에서 가장 저려미 다이어리를 산 거다. 그래도 우리돈으로 5만원이 넘었어 ㅠㅠ 야, 진짜 한 번이니까, 왔으니까 사는 거지, 다이어리가 우라지게 비싸네, 하고는 그래도 어쨌든 샀는데, 해가 바뀌고 다이어리를 쓰는데 진짜 씅에 안차는 거다. 너무 사이즈가 작아. 나는 폭발하듯 글을 쓰는 사람인데, 다이어리에도 폭발하듯 다다다다다다다다닥 일기를 쓰는 사람인데, 이 다이어리는 진짜 내 글을 다 담아낼 수가 없는 것이야. 지금은 막 며칠에 걸친 칸에 쓰고 그러는데, 어차피 매일 쓰는 게 아니니까 쓰고 있긴 하지만, 이게 사이즈가 작아서 다른 다이어리를 사서 쓰자니, 이것이 딱 2018년만 쓸 수 있는 것이고, 그렇다고 다른 것과 같이 쓰자니, 내가 대체 돈 주고 뭐한 건가 싶고.... 아...왜 손을 떨었어....조금 더 주고 그냥 더 사이즈 큰 걸 샀으면, 궁극의 다이어리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돈은 돈대로 쓰고 곁다리를 사버리고야 말았다..... 슬픔... 슬픔의 새드니스....... 궁극의 것을 찾는 것은 이렇게나 어렵다.



궁극의 사물이 이러할진데 궁극의 연인은 어떻겠는가.

어차피 이 사람 만나봤자 이게 별로고 저 사람 만나봤자 저게 부족하다면, 죄다 곁다리 밖에 안되는 것 같다. 만나고 헤어지고 만나고 헤어지고....역시 연인도 궁극의 연인을 찾는 게 답이다. 그래야 우리가 착- 하고 안착할 수 있는 것이야. 부드럽게 그리고 쏙 들어맞게 착- 

궁극의 연인과 함께해야 최상의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 때 늘 학교에 같이 가던 동네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네 집은 정원이 딸린 집이었는데, 항상 준비가 늦었던 터라 내가 "~야, 학교가자" 하고 가면 늘 그 친구네 집 거실에서 그 친구의 준비가 끝나기를 기다려야 했다. 친구의 엄마는 항상 친구에게 '너는 왜 그렇게 맨날 늦냐'고 퉁을 놓곤 했었는데, 내가 일찍 준비해 가는 게 그때 당시에 친구에게 민폐였겠구나, 하는 생각은 아주 나중에야 들었다. 결국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그냥 혼자 등교하곤 했다. 그게 세상 편한 것이야....아, 근데 얘기하려던 게 그건 아니고,


친구네 집에서 친구를 기다리면 항상 너무 좋은 냄새가 났다. 늘 그 냄새가 났는데 나는 그 때 당시에 그 냄새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매일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서는 나이지만, 우리 집에서는 맡아본 적 없는 냄새였던 거다. 그걸 친구에게 '니네 아침에 뭐 먹는거야?' 묻지는 못한 채로 항상 '아 좋은 냄새...' 했었는데, 오늘 늦은 아침을 먹고 간식으로 프렌치 토스트를 하면서 알았다. 아, 버터와 계란의 냄새였구나!! 하고. 냉장고에서 버터를 꺼내 달군 프라이팬에 올리고 그 위에 계란물 입힌 식빵을 올려두는데, 냄새가, 바로 그 때 그 냄새였던 거다. 친구네 집은 버터 바른 빵을 먹는 거였어!! 프렌치 토스트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버터와 빵과 계란이 그 아침에 있었던거야!! 그거였어!! 라고, 벌써 이십오년도 더 전의 그 냄새가 코끝으로 들어오며 기억을 소환해낸 거다.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우리 집에서 아침은 밥으로 먹는데, 계란과 버터와 빵이라니... 내가 알아챌 수 없었던 것이다...우리에게 버터는 낯선 것이었고, 버터를 집에 사두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니까. 그것도 내가 사서 냉장고에 들어 있는거지, 다른 가족은 버터를 안산다.... 


오늘, 프라이팬에 버터를 녹이면서, 

아아, 오래전에 알지 못했던 냄새를 뭔지 알게되었는데, 이제 나는 그 때 그 음식을 해먹는 사람이 되었네..... 했다.




이 글을 쓰면서 프렌치 토스트를 먹고 있는데, 남동생이 말을 건다.


- 누나, 다이어트 언제부터 할거야?

- 지금도 하고 있는데?

- 누나에게 다이어트는 소화를 말하는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계속 프렌치토스트를 먹는다. 가만있자, 더 포스트 시간이나 알아보고 보러 가야겠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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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8-03-04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 다이어트가 소화라니... 육성으로 빵 터졌어요! 아침에 토스트와 커피를 먹었는데 프렌치 토스트 보니 또 배가 고프고.. 이 배... 고픔의 배 ㅠㅠ

다락방 2018-03-05 07:41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진짜 이러면 안되는데 저거 먹고나서 짜파게티 먹고... 떡볶이 만들어 먹고... 비빔국수 만들어 먹었어요. 제가 만들었는데...맛이 없었어요. 언제나 그랬듯이... (시무룩)

스윗듀 2018-03-04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것들을 자꾸 기웃대는 건 궁극의 것을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거슨 진리다.....

다락방 2018-03-05 07:41   좋아요 0 | URL
궁극의 것을 찾는 것은 그러나 매우 어려운 일이에요. 쉽게 찾아지질 않아요. 흙 ㅜㅡ

공쟝쟝 2018-03-04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극의 토스트 ..❤️

다락방 2018-03-05 07:42   좋아요 0 | URL
맛있게 먹었어요. ㅋㅋ
저녁에 비빔국수 먹고 싶어서 만들어 먹었는데 엄청 맛없었어요... 아하하핫

비로그인 2018-03-04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프프프 다이어트가 소화ㅋㅋㅋㅋㅋ 아 정말 새어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가 없네요ㅋ
궁극의 지갑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살 건 아니지만 그냥... ㅎㅎ

다락방 2018-03-05 07:40   좋아요 0 | URL
https://www.mulberry.com/kr/shop/women/small-leather-goods/purses/8-card-zip-around-wallet-dark-frozen-small-classic-grain

제가 샀던 같은 디자인은 지금 없는 것 같고요, 이 제품과 가장 비슷해 보입니다. 링크건 제품은 좀 딱딱한 가죽 같아요. 저는 소프트한 가죽입니다. 하핫. 가죽의 부드러움 차이를 제외하면 다른 건 비슷한 것 같아요!

charalee 2018-03-04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극의 다이어트에 한표!

다락방 2018-03-05 08:02   좋아요 0 | URL
궁극의 다이어트는 궁극의 소화일까요? 하하하
 

나는 일본영화인 《리틀 포레스트》를 참 좋아라 하는데, 음식을 만들어 먹는 장면은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져서 가끔 아무 음식이나 만들어 먹는 장면을 재생시켜 보곤 했다. 내 손으로 음식을 만들어 잘 먹는 장면은 그 자체로 힘이 있는 것 같아. 해서 이번에 '김태리' 주연의 리틀 포레스트도 보러 갔는데, 수제비든 파스타든 만들어 먹는 장면이 다 너무 좋아서 그 자체로 '좋네' 하게 됐던 거다. 당연히 나도 막 뭐든 먹고싶어지고!




겨울에 뽀드득뽀드득 눈을 밟으며 고향으로 돌아온 김태리가 김칫국을 끓여 밥을 먹는 장면, 거기에 수제비를 만들어 먹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이상하게 처음엔 오글거리는 거다. 오글거리는 대사나 행동이 나온건 아닌 것 같은데 뭔가 오글거려서 '으윽, 끝까지 볼 수 있을까' 했는데, 끝으로 갈수록 좋아졌어.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서 친구랑 좋다고 얘기했는데 '그런데 처음엔 좀 오글거리더라' 했더니, 친구도 그러는거다. 처음엔 좀 오글거렸다고. 이 오글거림은 어디에서 온걸까? 사실 이 영화는 뭐랄까 좀...판타지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시골에서 여자 혼자 살면서 농사를 짓고 밥을 해먹는데, 그 과정의 고단함이 전혀 없진 않을 터. 물론 이미 있던 집이었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생활해나갈까를 생각해보면 이것은 판타지가 아닌가 싶어지는 것이다. 그래도 곶감을 만들고 꽃을 넣어 파스타를 만들고, 예쁘게 떡을 만들고 디저트를 만드는 걸 보면 또 세상 좋아.








특히 좋았던 장면은 술을 만들어서 친구들과 함께 먹는 장면과, 다슬기를 잡다가 도시락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김태리도 류준열도 도시에서 생활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상황이고, 그 과정에서 각자의 연인과 헤어진 거다. 류준열은 왜 헤어졌나고 김태리에게 묻고, 김태리는 '안헤어졌는데?'라고 말한다. 김태리 역시 류준열에게 왜 여자친구랑 헤어졌냐고 말하는데, 류준열 역시 안헤어졌다고 하다가, 그러는 거다.


나는 여기있고 걔는 거기에 있는 거야.


그러자 김태리는 '와 너 쿨하다' 하는 거다. 이 때 류준열이 그런다.


"나 엄청 울었는데?" 라고. 그리고 덧붙인다. "나, 걔 엄청 좋아했거든."



나는 진짜 이 장면이 너무 좋았는데, 자신이 아팠음을 알고 솔직히 인정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어떤 남자들은, 그 특유의 허세로 '걔가 나를 더 많이 좋아했지' 라든가 '걔가 나를 좋아해서 만나줬지' 라는 식의 말을 하곤 하는데, '나 엄청 울었다'고 하는 건 그것과는 다른 태도이기 때문이다. 김태리의 남자친구도 '여자친구가 도시락 싸들고 와서 좋겠다' 는 친구들의 부러움 섞인 시선에, '아냐 부담스러워' 하면서 으스대는데, '나 헤어지고나서 아파서 엄청 울었어'를 말하는 솔직한 태도는 너무 신선하게 느껴지는 거다. 내 감정이 어떤지 알고 들여다보는 거, 그리고 그걸 인정하는 것은, 그 다음으로 가기 위해 필수적인 코스라고 생각한다. 저 장면에서의 류준열은 그걸 했다고 생각하고. 그게 너무 좋은 거다. 최근에 어딘가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 아마도 티븨였던것 같은데, 사랑을 잃고나면 성숙해지기 마련이라고. 이 말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모두에게 적용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을 잃고 한걸음 더 나아가고 성숙해지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전의 사랑과 이별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늘상 사랑이 끝나는 것이 상대방의 책임이라고만 생각한다. 아픈만큼 성숙한다고 했을 때, 물론 아프지 않는 게 더 좋지만, 아프다고 해서 반드시 성숙하는 것도 아닌 것이다.




이별의 고통은 우리의 일상을 뒤로 물러나게 하고 우리를 무의식적 충동이 담긴 어두운 지하 창고로 끌고 내려갑니다. 그리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어떻게 그것을 얻을 것인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사랑의 실패는 발걸음을 멈추고 내가 어떻게 나아가기를 원하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인생을 새로이 설계하게 만들죠. 인생 설계를 재조정하도록 촉구하는 것으로 실연만 한 것은 없습니다. 상실로 인한 번민은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일에 적극 참여하게 만들죠. (p.194)









나는 나의 지난 사랑과 이별들이 나를 이만큼 더 성숙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그 과정들에서 내가 더 나은 인간이 되었다고 확신한다. 그렇지만, 내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 이별을 또 겪고 싶지는 않다. 이별의 고통을 또 감당하고 싶진 않아. 이별의 고통은, 상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에 따라서, 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 어마어마어마어마어마어마어마어마하게 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이별은 아프지만, 어떤 이별은 특히 더 아프니까. 이별 후에 어떻게 쿨할 수가 있나. 그건 쿨한 척 하거나, 아니면 아프지 않을만큼만 사랑한거겠지.




'좀 판타지 같지 않아?'라고 친구에게 말해놓고서는, 그런 영화를 보면서도 좀 울었다. 나이들수록 눈물이 많아지는 것 같아. 이건 뭐 어떻게가 안되네. 대체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왜 울어... 봄이 얼마나 예쁜지, 여름의 땀이 얼마나 좋은지 고스란히 보여주는 영화인데.


영화 보고 나니까 봄과 여름이 더 기다려졌다. 일자산 나무들의 색이 초록으로 짙어지겠네, 아카시아 향도 나겠지, 모든 것들이 얼마나 생동감이 넘칠까, 싶어서 봄과 여름이 기다려졌다. 빨리 여름이 왔으면 좋겠다. 오늘 저녁으로는 쫄면과 오일파스타를 먹고 싶은데, 어느 걸 선택해야 할까....



그리고,

지혜로운 당신은,

당신 인생을 더 행복한 방향으로 재조정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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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3-02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틀 포레스트,가 그런 영화군요. 난 어제밤에 손사장님과 인터뷰하는 김태리를 보면서.... 토마토가 쑥쑥 자라더라~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흐흠. 김태리가 좋아요~~~^^

난 요리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요리하는 장면을 보는 건 좋아요. 뭐든 먹고 싶어지고!!

다락방 2018-03-02 09:30   좋아요 0 | URL
네, 그래서 제가 리틀 포레스트를 너무 좋아해요! 일본 영화에서도 농사짓는 것부터 다 나오거든요. 쨈 만드는 거랑, 만들어진 쨈을 빵에 발라먹는 것도 나오는데, 그런 거 너무 좋아요! 난로에 빵 만드는 장면은 어떻구요. 진짜 너무 아름다운 영화예요.

김태리 주연의 한국영화에서 토마토 먹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에요. 토마토가 익어가는 장면이 나오고, 또 엄마랑 나란히 앉아 토마토 먹는 장면 나오는데(위에 제가 사진 첨부했죠), 그 장면에서 얼마나 토마토 먹고 싶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풀과 나무들 사이, 눈과 햇빛 사이의 김태리는 정말 아름답더라고요! >.<

요리 못하는 저도 리틀 포레스트 너무 좋아해요. 단발머리님께도 일본판부터 추천합니다!!

책읽는나무 2018-03-02 0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예고편을 잠깐 봤을때 김태리에게 잘 맞는 영화를 잘 선택했단 생각이 들면서 꼭 보고 싶었는데 금새 또 잊고 있었네요.
실은...일본에서 일본 요리를 해 먹는 모습이 너무 익숙하여 한국에서 한국 요리를 해 먹는 장면이 좀 낯설지 않을까?그런 걱정도 했었어요.
하지만....기우였었나 보군요^^
일본 요리는 동양 보다는 때론 서양음식 같단 생각이 많이 들어 이게 한국 전통? 음식으로 대체가 되면 좀 억지스러울꺼란 생각을 했었거든요.
암튼.....아름다운 풍경을 가득 담았을 영화일 것 같아 보고 싶네요^^
음식을 잘하진 못해도 음식을 정성스럽게 만드는 모습 지켜보는걸 좋아하고....또 그걸 맛있게,즐겁게 얘기하면ㅅ니 먹는 모습 보는 것도 좋더라구요.
요즘 윤식당이랑 효리민박 보면 그 부분이 너무 재미있고 좋더군요^^
그리고 실연의 아픔을 자기 성숙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는 님의 시선도 배워 갑니다^^

다락방 2018-03-02 10:05   좋아요 0 | URL
책나무님, 계절이 바뀔 때마다 숲의 모습이 바뀌어 가는 걸 보는 게 너무 즐거웠어요. 아름답더라고요. 계절마다 풍경이 달라진다는 건, 참 신비로운 일 같아요. 그 바뀌는 계절 속에서 곶감을 말리고 양파를 심고 사과를 따고 벼를 심고 하는 등의 일을 보는 게 참 좋더라고요. 파스타 같은 서양 음식에 꽃을 잔뜩 따 넣고 만들기도 하지만, 떡 만드는 것 보는 것도(손이 많이 가겠지만) 참 좋았어요. 막걸리 만드는 건 어떻고요! 좋더라고요. 수제비 후루룩 먹는 거 보는 것도 좋았어요. 아! 떡볶이가 정말 맛있어 보였답니다. 후훗. 보는 즐거움이 있는 영화였어요. 그거 먹는 거 보는 게 되게 좋더라고요. 손수 요리를 하고 잘 먹는 게 진짜 보기 좋았어요. 저는 자기 밥상 자기가 잘 차려 먹는 거 보는 게 참 좋아요. 후훗.

저도 최근에 윤식당 보기 시작했는데, 손님들이 와서 대화를 나누며 먹는 걸 보는 게 큰 즐거움이더라고요. 이거 먹어봐 맛있어, 이거 맛있는데? 이러면서 각국의 손님들이 먹는 걸 보는게 너무 좋았어요. 재미있어서 최근에 한 편당 1,500원 씩이나 주고 1,2,3편 봤고, 4편이 대기중입니다. 헤헷.

비로그인 2018-03-03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밥(안주?) 해먹는 이야기 좋아해요- 또 올려주세요 ㅎㅎ

다락방 2018-03-04 05:31   좋아요 0 | URL
아이참 ㅋㅋㅋㅋㅋ 알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좋아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각자의 상황에서 소중한 사람을 잃고 헤매이는, 아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 책은 구성된다. 문체는 시종일관 조용하고 착 가라앉아있는데, 나는 이런 식의 문체가 정말 좋다. 나폴리 시리즈 1권 읽고는 2권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가(나는 좀처럼 이 책에 열광이 안된다), 그러다 이렇게 차분한 문체를 만나니 세상 살 것 같은 거다.



정원에서 마커스가 눈을 뜬다. 누군가가 다가와 햇빛을 가린 느낌인데, 아무도 없다. 편지와 소식과 방문은 떠난 자들에게서 온다. 그러므로 가끔씩, 그리고 아주 잠깐씩, 죽은 자들에게서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그런 기대는 아주 짧은 순간 지속되다가, 곧 마음이 현실을 기억해 내고 어떤 부재는 다른 것보다 더 절대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p.24-25)



이거봐, 초반부터 이렇게나 좋아. 맞아. 소식은, 방문은, 늘 떠난 자들로부터 오는 것. 내가 책장에서 이 책을 골라내게 된 건, 제목 때문이었다. 제목이 너무 아파서. '헛된' 기다림인 게 싫어서. 그래서 얼른 읽고 이 책을 팔아버릴 셈이었다. 그러니까, 내 책장에서 기다림을 헛되다고 말하는 것들을 모조리 없애버리겠어! 하는 다짐을 하며 이 책을 펼쳐 들었던 것. 그렇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이 있는데 ... 내가 결국 이 책을 다 읽고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제발, 기다림이 헛되다고 말하지 말아줘. 내가 사랑하는 많은 책들은, 결국 기다림이 간절하면 원하는 것에 닿는다고 말해. 나는 그런 걸 원해.



그렇게 아름다운 마음으로 천천히 읽어가다가 발견한 이런 문장.



어떤 서정시에도 나오듯, 달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그녀는 유리창을 통해 석류나무들을, 아침 이슬을 똑똑 떨어뜨리는 석류꽃과 이파리들을 바라본다.

그토록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마침내 표트르 다닐로비치가 사는 곳을 알아낸 그녀는 지난해 12월 그를 찾아갈 때 석류 한 개를 선물로 가져갔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돌아온 그는 일상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전쟁터에서 귀환한 군인들이 흔히 그렇듯 점점 더 말수가 줄어들었다. (p.96)



보석처럼 반짝이는 달과 유리창을 통한 석류나무들이 눈에 선명히 보이는듯하고, 그 아름다움에 고요해진다. 그런데,



"남편이 죽었다니 유감이군요." 표트르 다닐로비치가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건물 앞에 쌓여 가는 눈을 바라보다가 다시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마른 체격에 눈동자 색이 짙어서 성화에서 걸어 나온 사람처럼 보였고, 실제 나이보다 훨씬 더 들어 보였다.

석류는 벽난로 옆에 있는 탁자에 놓여 있었다.

그녀가 석류를 쪼갰다. 난로 옆에 있었던 터라 진홍색 씨앗의 표면이 따뜻했다. 생리혈의 온도, 남자의 몸에서 금방 분출된 정액의 온도.

"아프가니스탄 과일 장수들 중에는 우리 소련군 병사들에게 파는 오렌지와 멜론과 석류에 독약을 주입해서 파는 놈들도 있었죠." (p.97-98)



벽난로 옆에 있는 탁자의 석류가 따뜻해졌을 것은 잘 알겠다. 그런데 그걸 쪼갰을 때의 온도를 왜 생리혈과 정액으로 표현했을까? 저 문맥 어디에서도 갑자기 생리혈과 정액이 필요하지 않은데. 너무 뜬금없잖아? 왜? 왜 생리혈과 정액이 튀어나와? 나는 아직 이 책을 다 읽지 못했지만, 저기, 생리혈의 온도, 정액의 온도, 저 문장은 이 책에서 들어내어버려도 진행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김훈도 최근 그의 책에서 갓난 여자아기의 성기 안의 온도가 따뜻할 것이라는 글을 썼었는데, 대체, 성기 안의 온도가 왜 책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거야? 성기 안의 온도를 말하는 상황은 그저 성인 남자와 성인 여자가 원하는 상태로 섹스를 할 때, 그럴 때 말해질 수 있는 거 아닌가? 성인 남자가 갓난 여자아기 성기 온도를 짐작해 말한다는 것-그것도 아버지가!!-, 나는 도무지 이 문장이 용납되어지질 않고, 갑자기 저기서 뜬금없이 생리혈의 온도와 정액의 온도를 말하는 것이 뜨악스럽다. 왜?


나는 여자작가가 이런 글을 썼다면, 그러니까 난로 옆에서 데워진 석류에 대한 글을 썼다면, 거기다 대고 생리혈의 온도를 운운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 젖도 없는 놈들은 젖얘기를 하고 생리를 안하는 놈들은 생리혈의 온도에 대해 입을 털까? 왜? 나는 아직 이 책을 다 읽지 않았고, 그리고 아주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읽고 있었고, 이것과 저것과 이 상황과 저 상황은 이렇게 저렇게 얽혀서 인간사를 이렇게 복잡하게 만드는구나, 차분한 마음으로 읽고 있는데, 대체 왜 석류를 따뜻하게 만들고서 생리혈과 정액 얘기를 꺼내는지 모르겠어... 왜 그러는거야? 그 다음 문장들도 아름답게 읽고 있지만, 자꾸 생리혈과 정액의 온도를 생각하게 된다. 그 얘긴 왜했어? 대체 왜? 아직 조금 밖에 안읽어서 읽다가 탁탁 걸리는 부분이 혹여 또 나올지 모르지만, 생리혈과 정액의 온도는 말하여질 필요가 없었다. 왜 썼을까? 이 문장이 거기서 왜나와요? 무슨 생각으로 넣은거예요?



그렇지만, 당신과 내가 보내는 밤.



라라는 러시아에서 왔고 데이비드는 미국에서 왔다. 그리고 이곳은 아프가니스탄, 마커스의 집이고, 이들 모두는 상실을 겪었고 침잠해 있는 상태이다. 라라와 데이비드가 마커스의 집에서 처음 만나고, 그리고 그 밤, 잠들지 못한 깊은 밤에 그들의 집 안에서 마주친다. 아니, 이들에게 어떤 성적인 긴장감은 전혀 없다. 이들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이성으로 생각하고 하는 것도 전혀, 전혀 없다. 그런 거 아니다. 그런데 나는 이 장면이 너무 좋았다.



데이비드는 밖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그 앞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아프간인들은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지난 사반세기 동안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넋이라고 믿는다. (p.94)



하늘을 올려다보고 그 위에는 별들이 떠있는데, 그 밤에 함께 있다는 것, 그 밤을 함께 보고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내게는 너무나, 너무나 다정하게 느껴지는 거다. 나는 이런 게 너무 벅차는데, 세상 아름다운 게 밤을 함께 보내고 밤의 소리를 함께 들으며 또 그 밤의 소리를 함께 장식해가는 거라 믿기 때문이다. 밤을 함께 보낸다는 것이 에로틱한 섹스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내가 정말 좋다고 느껴지는 밤이라는 건, 그 밤의 공기, 기운, 온도, 색깔, 별과 달, 밤으로부터 파생되는 그 모든 소리들, 그 소리들 속에 섞이는 당신과 나의 목소리. 그래서 새로이 만들어진, 그전과는 전혀 다른 밤. 나는 이런 게 진짜 너무 좋아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별들을 보고, 거기에 누군가 함께 있다는 게 너무나 특별하게 느껴지는 거다. 비록 그들은 아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지만.



"학교를 세우지 말아야 했어요." 그가 라디오를 끄고 나서 말한다. "테러리스트들을 도발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하다.

"아침 일찍 잘랄라바드로 갔다가 저녁에 돌아올 겁니다. 아버님께 전해 줄래요?"

"물론이죠."

"고마워요. 잘 자요."

그가 방으로 올라간 후, 그녀는 의자에 앉아 이따금씩 윤곽으로만 보이는 나무들을, 그리고 심리테스트의 잉크 얼룩처럼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 놀라게 하는 박쥐들을 보고 있다. (p.95)



내일 마커스에게 얘기좀 전해줘, 응, 잘자... 이게 전부인 대화인데, 나는 이 아무것도 아닌 대화를 나누는 이 장면에, 밤하늘이 있고 별이 있어서, 그래서 그곳의 공기가 전해지는 듯해서, 그런데 거기에 둘이 함께 깨어 있고 그 밤을 온전히 함께, 그 순간만큼은 함께 해서, 너무 좋은 거야. 나는 이런 게 진짜 너무 좋아. 그들은 아무 사이도 아니고, 저기엔 아무런 긴장감도 없는데, 나는 그냥 이런 게 너무 좋고, 그래서 책장을 덮고 하염없이 이 생각 저 생각 해보게 되는 것이야... 밤은 왜이렇게 특별할까? 밤을 같이 보내는 건 왜이렇게 특별할까? 나는 밤 열한시도 되기 전에 졸음이 쏟아지고 자야 되는 사람인데, 그런데 어째서 밤을 함께 보내는 게 이렇게나 특별하게 느껴지는걸까? 어쩌면 내가 열한시도 되기 전에 자야되는 사람이라서일까? 영화 [들어는 봤니, 모건 부부?] 생각도 난다. 시골에 함께 머무르게 됐던 그들의 시골의 밤소리를 들으면서 자신들이 함께 했던 도시의 밤소리를 그리워하는 장면. 그들은 이혼한 후였고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도, 함께 했던 곳의 소음에 대해 그리워한다. 그래서 한 쪽이 그 소리를 인터넷으로 찾아내어 들려주고, 그걸 함께 듣는 장면이 나오는 거다. 어떤 순간은 함께 하는 것 만으로도 너무나 특별해지는 것 같다. 그것이 그저 밤하늘이고, 별이고, 달이고, 풀벌레 우는 소리만 있다 하더라도.



아주 오래전의 걸그룹 노래 가사도 생각났다.

너와 함께 지내고 싶은 밤, 부모님의 허락이 필요하지만~ ♪








나는 이제 허락이 필요없다.


편지와 소식과 방문은 떠난 자들에게서 온다. 그러므로 가끔씩, 그리고 아주 잠깐씩, 죽은 자들에게서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그런 기대는 아주 짧은 순간 지속되다가, 곧 마음이 현실을 기억해 내고 어떤 부재는 다른 것보다 더 절대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p.24-25)

여기 도착하자마자 쓰러지지 않았더라도, 마커스에게 잠깐이라도 이곳을 피신처로 삼게 해 달라고 부탁했을 것이다. 삶의 무거운 짐을 잠깐이라도 내려놓고 싶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실패를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현명하거나 강하거나 용감하지 못해 길을 잃으면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마커스는 눈길이 머무는 모든 것에 존엄성을 부여하는 소수에 속하는 것 같았다. 꿈을 통해 우리 삶에 들어오는 성자처럼. 라라는 그에게라면 지난 세월이 그녀로 하여금 인생에서 길을 잃게 만들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p.46-47)

갑자기 그의 삶에 등장한 이 여자는 아주 내성적이어서 남에게 말을 걸거나 남의 눈을 보는 것도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일어서더니 그에게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잠을 못 자서 퀭한 눈과 검푸른 멈이 든 목이 보였다. 피곤과 커다른 멍은 육체적인 것이었지만 여자의 영혼도 그렇게 지키고 멍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p.50)

님로드(세계 최초의 왕이자 최고의 사냥꾼)가 알라의 예언자 이브라힘을 불에 태워 죽이기 위해 장작을 쌓고 불을 피웠을 때, 후투티 한 마리가 부리에 물을 담아 와 불길에 뿌렸다. 한 구경꾼이, 그 당시의 딕 체니(9.11 테러 당시 미국의 부통령)같은 놈이, 후투티에게 두 방울의 물로 거센 불길을 끌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새가 대답했다. "모르죠. 내가 아는 건 알라가 이 불을 피운 자들과 끄려고 노력했던 자들의 명단을 작성할 때, 나는 후자에 이름을 올리고 싶다는 것뿐이에요." (p.87)

"카트리나가 그랬어. 우샤에 해마다 아내를 임신시키는 남자가 살았어. 남자의 아내는 겨우 스물두 살이었는데, 6년 사이에 아이를 일곱이나 낳았지. 카트리나가 그렇게 경고하고 간청했는데도, 그는 아내의 몸이 회복될 틈을 주지 않았어. 그가 여덟 번째 출산을 앞둔 아내를 우리에게 데려왔을 때, 아내는 사경을 헤매고 있었어. 그때는 저 나무가 아직 어린 묘목이었지만 그래도 꽤 튼튼했는데, 내가 응급처치를 하는 동안 카트리나가 이곳으로 나왔어. 화풀이할 곳을 찾던 카트리나는 그 어린 살구나무를 도끼로 내리쳐 두 동강을 냈어. 어쩌면 그 남자를 흠씬 두들겨 패 줄 채찍을 만들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지." (p.99)

"약자들의 용서는 당신들 강자들이 들이마시는 공기 같은 거예요, 데이비드. 몰랐어요? 눈에 보이지는 앟지만, 조금 전에 분명히 느꼈을 거예요. 약자들의 용서가 있어야 당신들은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거예요." (p.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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