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에 친구에게 나폴리 시리즈를 선물로 보냈다. 마침 내게는 돈이 조금 있었고, '돈이 있을 때 선물하자, 없을 때는 하고 싶어도 못할테니' 라고 생각했던 거다. 금태섭 의원에게 후원금을 보냈고, 어제는 탁수정 씨에게 연대하며 송금을 했다. 어제 송금하면서도 '지금은 돈이 있으니까 써야 할 곳에 쓰자' 라고 생각했다. 없으면,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하니까.


통장에 잔고가 있는 일은 흔치 않다. 지금 잔고가 '조금' 있는 이유는 연말정산 환급을 받았기 때문인데, 이런 일이 흔치도 않으니, 있을 때 써야 했다. 그런데, 책을 읽다 이런 구절을 만났다.



"능력이 있을 때는 다른 사람을, 없을 때는 스스로를 도와라." (p.208)

















월급이 인상되었을 때 제일 먼저 한 일은 유니세프에 기부금을 조금 올린 일이었다. 이걸 미리 올려놓지 않고 다음으로 미루면, 다음에는 돈이 없어서 올리지 못할것이었다. 내가 잔고 있는 날이 흔치 않으니, 있을 때 다 처리해야 해. 그리고 위의 책에 저 구절을 읽으면서, 이런 삶의 패턴을 유지하자고 생각했다. 능력이 있을 때는 다른 사람을, 없을 때는 스스로를 돕자!



스스로를 돕는 것도 무척 중요하고 다른 사람을 돕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능력이 있어야하고, 그러려면 계속 일을 해야 해...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구나.



여행기에는 사진이 실려야 제맛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여행기는 대체적으로 감상적이다. 그리고 나는 그 특유의 감상적인 여행글이 싫어. 게다가 여행기라면 여행이 얼마나 좋은지 계속 얘기하는데, 그렇게 자기가 좋아하는 걸 미친듯이 좋다 좋다 얘기하는 건 때로는 자기합리화처럼 느껴지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져 읽기 편하지가 않다. 오히려 '난 아닌데?' 라고 반박하게 되지.



그런데 지금 이 책, 《돌아온 여행자에게》는, 우리가 뭔가 새로이 시작하기 위해서, 내 인생의 방향을 찾기 위해서 꼭 여행을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스스로가 여행을 즐기고 또 많이 다녔던 사람으로서, 가장 중요한 건 일과 여행의 균형을 맞추는 거라고 얘기하는 거다. 남들이 다 가기 때문에, 좋다고 하니까, 그래서 여행을 갈 필요는 없다는 것. 자신이 그렇게 여행을 좋아했으면서도 '여행 가, 꼭 가' 라고 말하지 않는 건 참 좋은 시선이었다고 본다.


또한, 자신이 공부하기 싫었고 그래서 여행을 갔는데 막상 여행을 가보니, 내가 공부를 많이 해서 뭔가 더 많이 알고 있었다면 여행이 더 풍부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면서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공부를 한 것도 좋았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아무것도 모르는채로 가서 부딪혀 알게 되는 것들도 있지만, 분명 알기 때문에 더 깊게 보고 멀리 보는 것들이 있을 테니까. 나 역시 저자처럼, 내가 외국어륻 잘할줄 알았다면 더 좋은 여행이 될 수 있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도, 뭐 먹고 마시는 데 지장 없으니까....하고는 현실에 안주해버리곤 하지...흐음.....



그래도 역시나 특유의 감성적인 부분들, 그러니까 삶에서 뭐뭐해야 할 몇가지...이런 것들은 손발이 오글거려 ㅋㅋ 난 그런 게 진짜 .. 성격에 안맞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오늘 아침에는 스팸을 구워 반찬으로 먹고 싶어서, 바쁜 출근시간에 언제 스팸을 따고 썰고 하나.. 하는 마음에 어제 자기 전에 미리 스팸을 따서 썰어서 접시에 두고는 그 위를 다른 그릇으로 덮어두었다. '내일 아침에 씻고 나와 화장할 때 프라이팬 데우면서 스팸 구워야지' 생각했던 것. 그런데 아침에 씻고 나오니, 아빠가 눈치 빠르게 내가 썰어둔 스팸을 프라이팬에 굽고 계셨다. "앗 아빠 어떻게 알고 그 스팸 굽고 있네?" 했더니 아빠가, '이 정도 센스는 있지~ 계란 프라이도 해줄게' 하신다. 덕분에 아침 반찬에는 스팸과 계란프라이가 있었는데, 아니, 엄마는 내가 아침에 밥을 어느 정도 먹는지 알고 그만큼 퍼주시고, 내가 내 그릇에 밥을 담을 때도 적당한 양이 있는데, 아빠가 밥을... 무슨...머슴밥을 퍼놓으셨어. 아침부터...


나는 아빠, 이거 너무 많아, 했더니 아빠가 아빠 그릇에 덜라 하시는 거다. 그래서 좀 아빠 그릇에 덜어놨는데,


아침에 스팸과 계란프라이와 깍두기랑 밥을 먹는데 세상 맛있는거야...아 너무 맛있어..멈출 수가 없다. 맛있다고 이천 번 말하면서, 다시 젓가락으로 아빠 밥그릇에 내가 덜었던 만큼의 밥을 다시 가져왔다.


- 아빠 다시 가져가야겠어.

- 아깝냐?

- 괜히 덜었네. 맛있는데.


그러자 아빠가 빵터지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밥 덜었다가 다시 가져가는 거 보고 완전 빵터지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는 임원1이 점심을 사준다 하셨는데 메뉴가 생태탕이었다. 나는 사실 생태탕 집에는 잘 안가는 편인데 임원1은 거기가 단골이다. 그래서 나와 다른 직원1과 임원1 셋이 생태탕 집을 갔는데, 생태탕 3인분을 주문하고 직원1이 좋아한다는 곤이를 추가했다. 나는 평소에 곤이도 잘 먹지 않는데, 직원1이 곤이 너무 맛있다고 하길래 먹었더니 어라? 맛있어? 그리고 뭣보다 생태탕이 너무 맛있는 거다! 국물도 짜지 않고, 무 건져 먹으니 세상 시원하고...아 너무 맛있어서..... 임원분께 잘 먹었다고, 정말 맛있게 먹었다고 인사드렸다. 그리고 그곳은 나의 인생 생태탕 집이 되었어...너무 맛있어서 어제 사무실에 돌아와 그 감동을 그대로 참지 못해 친구1과 친구2에게, 회사 근처에 인생 생태탕 집을 찾았으니 조만간 소주 마시러 가자, 고 말해두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아침에는 젊은 남자 생각이 났다. 당신도 여기 데려오면 좋을텐데, 여기 생태탕, 인생 생태탕.. 여기서 나 퇴근하고나면 같이 소주 한 잔에 생태탕 먹으면 정말 좋을텐데...하고 조금, 서러웠다. 서운했고. 그러니까 누나한테 계속 잘했으면 응? 생태탕도 누나가 막 사주고 응? 소주도 같이 한 잔 하고 응? 좀 좋아?


맛있는 거 보면서 생각나는 거, 그거 사랑인데... 그치?



점심엔 갈비탕을 먹기로 했다. 우하하하.



그리고 엊그제 출근길! 날이 따뜻해서 기모 스타킹은 벗어버리고! 슬쩍 드러나는 타투! 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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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8-03-16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워요 . 다락방님의 아침 , 스팸이 노릇하게 구워진 식탁 , 덜었다가 다시 가져오는 밥 , 아버지의 밥그릇 ~ 그리고
그 맛난 생태탕 ~ 어쩜 왜 , 이제 알았는데요 ? 그게 얼마나 맛있는데 !! ㅎㅎㅎㅎ 아, 점심 지났는데 갈비탕 뚝딱하셨을까요 ?

다락방 2018-03-16 14:56   좋아요 1 | URL
제가 생선류를 별로 안좋아하거든요. ㅎㅎ 근데 어제 완전 신세계였어요. 너무 맛있게 먹었어요. 이제 자주 먹으러 가야겠어요. 앞으로 좋은 술안주가 될 것 같아요. 앞에서 보글보글 끓여가며 먹는데, 아마 여름에 먹는다면 땀 좀 흘리면서 먹게 되겠죠. 그것도 좋습니다. 아하하하핫.

당연히 갈비탕 뚝딱했죠! 이게 13,000원이나 하는 갈비탕이라 ㅠㅠ 갈비가 많이 들었어요. 고기 다 발라먹고 밥도 먹고 그래서 제가 지금 무척이나 배가 부릅니다. 그래서 졸리기도 하고요... 아하하하하.

비연 2018-03-16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월급 오를 때마다 기부금 액수를 조금씩 올리는데... 요즘은 많이 못 올리고 있네요.. (좌절..)
번 만큼 사회에 뭔가 기여?한다는 느낌... 괜한 건진 몰라도 제게는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에...
(방금, 야근한다고 회사 식당에서 맛없는 볶음밥 먹고 왔는데... 락방님.. 철푸덕)

다락방 2018-03-16 18:13   좋아요 1 | URL
그러고보니 저도 최근에 못올리고 있네요 ㅠㅠ 제 기부금 액수는 정말 적어요 ㅠㅠ 너무 적다고 저도 생각해서 이렇게 기회 닿을 때마다 다른식으로 후원하고 기부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턱없이 적은 금액이긴 합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

저는 지금 볶음쌀국수와 삼겹살을 먹고 싶은 가운데, 걍 퀘스트바와 두유 먹고 있어요. 집에 가서는 샐러드를 먹을 예정입니다. 오늘은 초라하게 먹을 거예요. 마음이 바뀌지 않는다면 운동을 갈 생각입니다만....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내일 완전 파티해요. 연어회랑 명태전이랑 떡볶이랑 피자랑 막 시켜놓고 취할거예요. 꺅 >.<

비연님 야근 빨리 끝내고 들어가세요 ㅠㅠ 금요일인데 말입니다 ㅜㅜㅜㅜㅜ

블랙겟타 2018-03-17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역시 제가 좋은 사람을 알고 있는것 같아 제가 뿌듯하네요. ^^
생선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은 저도 생태탕은 맛있다고 워낙 소문으로만 들어서 한번 먹어보고 싶더라구요.
대신 제가 있는 곳엔 대구탕이 있어서 대체제로.. 즐겨먹어요 ㅎㅎㅎ

다락방 2018-03-19 09:25   좋아요 0 | URL
저도 생선류 별로 안좋아하는데 이번에 먹은 생태탕이 너무 맛있었어요. 인생 생태탕이라 감히 부를만큼 말이지요. 그곳의 생태탕이 특별히 더 맛있었던 걸수도 있고, 그 날이 비가 온 날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 어쩌면 제 입맛이 변한 걸 수도 있겠지요. 후훗.
혹시라도 서울 오시게 되면 뵙고 생태탕 한 그릇 대접하겠습니다. 후후훗 :)

세실 2018-03-17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부금도 내시고...참 행복하게 사시는 다락방님^^
아빠, 가족의 따뜻한 관계가 직장에서도 힘이 되죠.
타투! 아 부러워라^^

다락방 2018-03-19 09:28   좋아요 0 | URL
기부금은 너무 적은 금액이라 낸다고 말하기도 너무 민망해요...
아빠는 무척 다정하시고 또 저랑 친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또 빻은 발언을 하셔서... 제가 ‘아빠, 그것은 그것이 아니여... ‘하고 화를 참고 말했어요. 하하하하핫. 가족은 참 뭔지... 하하하하핫.

타투는 점점 더 마음에 들어요. 볼 때마다 저 자리에 저게 있구나, 하고 예뻐서 혼자 히죽히죽 웃어요. 흐흐흣
 
아주 친밀한 폭력 - 여성주의와 가정 폭력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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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조금은 나 자신에 대해 안다. 그래서 배우를 감히 단 한 번도 동경해본 적이 없다. 세상에는 절대로 안 되는 일이 있는 법이다. -혼자서 본 영화, 정희진, p.73



정희진은 자신의 다른 책, 《혼자서 본 영화》에서, 온 몸으로 예술을 표현하는 한 배우에 대해 얘기하며 자신은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음을 안다고 썼다. 나 역시 마찬가지. 나는 감히 정희진처럼 글을 쓸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아, 세상에 절대로 안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정희진처럼 글을 쓰는 일이겠구나' 싶었다. 이 논문에서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을 검열한다. 내가 혹시 '연구자'인 나의 입장으로 선악을 가르려고하진 않았나, 일방적으로 누군가의 편을 들지 않나, 증언자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는 건 아닌가, 반복해서 고통을 듣다 보니 고통에 무뎌지는 건 아닌가, 를 끝없이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논문'이며 '연구서'여도 일단 쓰는 사람이 '나'인 이상, 나의 생각과 주관 경험 느낌 사상등이 반영되지 않을 수 없을텐데, 그걸 미리 인지하고 그러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너무 인상적이었던 거다. 사람은 누구나 객관적일 수도 없고 객관성을 유지할 수도 없다. 그 '객관'이라는 것도, 내가 살아온 삶 위에 놓여진 것이므로, 다른 사람들에겐 주관적일 수밖에 없을 터. 이미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계속 한 걸음 뒤로 떨어져서 내가 뭔가 잘못하는 건 없는지, 놓치는 건 없는지를 세심하게 생각하는 게 너무 대단하게 느껴지는 거다. 내가 감히 '리틀 정희진' 이라든가 '또 하나의 정희진' 이라든가 하는 걸 꿈꿔본 적도 없지만, 정말이지, 감히 바란 적도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백 년을 책을 읽고 공부해도 정희진처럼 될 순 없겠구나' 싶었다. 나 역시, 정희진과 그나마 비슷한 점이 있다면, '아주 조금은 나 자신에 대해 알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정희진이 결론에서도 밝히듯이, '아내 폭력'이 가족안의 문제, 가족이라는 사적인 영역에서의 문제로 다루어져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연구서이자 입문서이다. '남편'과 '아내'가 아니라면, 그 역할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폭력이, 남편이기 때문에 그리고 아내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작년에 한창 '경찰이라니 가해자인줄' 해시태그 운동이 일었었는데, 정희진이 이 책에서 보여주는 숱한 사례에서도 여지없이 경찰은 가해자와 한 편이 된다. 남편과 아내사이에 일어나는 일은, 가족이라는 그 사적 영역 내에서 일어난 것이고, 그러므로 그들이 해결해야 할 일인 것이다. 경찰은 신고하는 아내에게 '알아서 잘 해결하라'고 말을 한다. 아니면 '더 맞고 피 터져서 오든지' 라고 말한다. 그래야만 그것을 폭력으로 인정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 아내라는 역할을 잘 수행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아내를 때려야 하므로, 그래서 가정을 아름답게 만들려고 하고, 아내는 그런 남편의 말을 잘 듣지 않기 때문에 자꾸 맞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편이 아내를 '때려서' 가정이 파괴된다면, 그건 원인제공을 한 '아내' 탓이라는 것.








이 책을 읽는 건 그래서 힘들다. 그렇게나 많은 여자들이 '아내'라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폭력에 노출되는데, 그런데 그 많은 아내들이 '내가 참으면..' 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다. 오히려 아내를 때린 남자들은 자신들이 폭력을 썼다고 생각하질 않는다. 자신들이 그러는 건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었으므로. 그것이 폭력일 리 없다는 것. 이 과정에서 어떤 아내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해서 도움을 못받거나 혹은 여기저기 도와달라 손을 내미는데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친정이든 시댁이든 니가 참으라, 하라는 대로 해라, 라고 하고 경찰이나 상담사도 아내 스스로 이겨내고 참고 극복하라고 얘기한다. '구타'로 이혼한다면 세상에 이혼 안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냐며 이혼을 말리는 거다.






그렇게 '참자'고 생각하고 '내가 더 잘해보자'고 결심하던 여자들이 끝내 여성단체를 찾게되는 데는, 그러니까 남편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는 데에는, 자식들의 영향이 컸다.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까봐, 가 아니라, 폭력 남편의 많은 수가 자식들을 성적으로도 학대했던 것. 차마 여기에 쓰고 싶지도 않지만, 갓난 아기를 상대로도 그런 짓들을 하는데, 그걸 보게된 아내가 '아, 더 있으면 안되겠구나, 지금도 이러는데 아이가 크면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하게 되어서 남편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것.



그나마 한국에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된 건, 이렇게 밖으로 드러내려는 증언자 여자들과 여성주의 진영의 노력, 여성 운동의 국제 연대의 성과였다. 이마저도 안됐으면 어떻게 됐을지...


남편이 아내를 '가르치기 위해서' 폭력을 휘두른다는 인식이 너무 퍼져있고, 그래서 아내는 '내가 잘하면 된다'라고 생각하게 되어서 이 아내폭력이 계속해 반복되지만, '이혼하기 싫다'는 아내들의 생각도 폭력 남편으로부터 탈출하지 못하게 했다. 이건 생활능력이 없는 여자뿐만 아니라, 자기가 돈을 더 잘벌고 있어도 그러했는데, 이혼하는 여자가 되는 게 싫었던 것. 그것은 사회가 이혼한 여자에 대한 인식이 안좋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자라는 아이에게 '이혼한 가정의 아이'라는 걸 낙인처럼 찍어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니 아내 폭력을 없애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사회적 의식들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이혼이 흠도 아니지만(흠이어서도 안됐고), 내가 '맞으면서'까지 이 가정을 지켜야 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아이에게도 '맞고 참고 사는 엄마' 보다는, '혼자서도 행복한 엄마'쪽이 훨씬 안정적이니까. 때리고 맞고 소리지르고 울고 하는 공간이, 단순히 부모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안락한 가정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이 부모가 다 있으므로 괜찮은 것이 되는걸까. 우리는 아내를 단순히 '남편의 아내' 가족구성원에서 가족을 지켜야하는 사람으로 볼 게 아니라, 한 개인으로 봐야하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가 한 '개인으로서' '같이' 가족을 만들고 또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아내를 한 개인으로 볼 수 없다면, 아내의 주어진 역할을 잘 이끌어주기 위해 남편의 가르침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남자들이여, 부디, 결혼하지 마시라. 가족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한 사람 이상의 삶을 지옥으로 이끌지 말고, 사회를 쓰레기통으로도 만들지 말길 바란다.



이 같은 연구 결과로 볼 때 여성의 사회적 정체성과 역할을 가족 구성원으로만 한정하여, 여성을 사적인 존재로 규정하는 현재의 가족 제도에서는 '아내 폭력'이 근절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아내 폭력' 문제를 둘러싸고 여성의 권리가 가족의 유지와 갈등하는 상황 자체가 현재의 가족이 여성에게 억압적임을 보여준다. '아내 폭력'의 발생, 수용, 해석, 대응은 가족 제도를 중심으로 성별화되어 있다. 여성의 아내 역할 수행 여부가 남편에 의해 폭력의 이유가 된다는 사실은 여성의 가족 내 성 역할이 여성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한다. 따라서 '아내 폭력' 해결 방식에서 가족 구조의 성 차별성을 문제화하지 않는 가족 가치에 대한 강조는 오히려 문제의 원인을 강화하는 것으로 '아내 폭력'의 사회적 대책이 되기 어렵다. (p.248)



'아내 폭력'이 가족 유지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 개인의 인권 차원에서 접근되어야 하는 이유는, 가족을 기반으로 하는 성별 제도(gender system)가 여성이 보편적인 인간으로서 권리를 갖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인권은 정치적 투쟁의 결과라는 과정의 의미로 생각되기보다는 선언적 진실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즉 한국 사회에서 인권은 관념적으로 긍정적, 진보적 가치로 간주되지만, 여성 인권처럼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 한국 사ㅇ회의 주류 가치인 가족주의와 경합할 대는 사소하고 부차적인 것이 된다. 이러한 문화적 상황이 법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 이유이다. 이처럼 성 차별 사회에서는 '모든 인간은 폭력당하지 않을 권리를 포함하여 인간으로서 권리를 가진다'는 인권 개념이 모순적인 명제가 되어버린다. (p.248-249)






증언자를 구하기는 ‘너무‘ 쉬웠다. 연구자 주변에 ‘아내 폭력‘ 경험자나 그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피해 여성, 가해 남성들 모두 학력·직업·계층·종교·연령에 상관없이 거의 전 계층을 망라했으며 피해자, 가해자 중에는 전문직은 물론 ‘심지어‘ 여성 운동가, 사회 운동가도 있었다. (p.52)

하지만 폭력을 극복하는 과정이 폭력을 당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면, 사람들은 그냥 그 상태에 머물려 할 것이다. 나는 피해 여성들의 ‘말하는(말해야 하는) 고통‘을 지켜보면서, 사회를 현재 그대로 두려는 보수주의자의 생각에 어느 정도 동의하게 되었다. 인간 생활의 어두운 문제(惡)를 ‘들추어내어‘ 연구하고 개선하려는 노력 자체가 악은 아닐까, 악을 파급하는 것은 아닐까, 악이 되기 쉬운 것은 아닐까? 폭력 문제를 연구한다는 것은 불가피하게 연구자인 나도 폭력에 연루되고 접촉함으로써 부정의(injustice)한 상황에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증언자들의 고통은 청자(聽者)의 경험 밖에 있으므로 타인의 고통을 다루는 연주자, 여성 운동가는 그들의 고통을 타자화하기 쉽다. 이것이 바로 악이다. (p.57)

증언자들은 오랫동안 자신의 이야기가 부정되고 의심받았기 때문에 나의 사소한 태도에도 금세 상처받았다. 그들은 비난받는 데 너무나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그들의 입장에 충분히 동의하고 공감하는데도 그들은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열심히 설명하고 연구자를 설득했다. 나를 만나기 전까지 대부분의 증언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완전히 믿어주고 분노 표현을 격려하고 자신의 행동에 ‘혐의‘를 두지 않는 청자를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폭력당하는 아내에게는 제일 처음 자기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태도가 이후 그녀의 대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성이 폭력당한 경험이 수치심과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녀가 ‘맞을 짓‘을 했거나 늦은 밤거리를 혼자 걸어다녀서가 아니다. 그것은 남성 중심 사회가 강요하고, 희망하는 해석 체계의 산물일 뿐이다. (p.61)

사례의 폭력 남편들은 자신의 남자다움을 위해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돈을 벌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본 연구의 50사례 49명의 남편 중 약 40퍼센트인 19사례가 무직이었다. 직업이 있다 해도 부인과 함께 자영업을 하는 경우는 대부분 아내 혼자 일했다. 이 문제로 아내가 불만스러워하거나 항의하면 남편은 폭력으로 대응한다. 이는 현대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하는 근본 원리인 성별 ‘분업‘ 논리가 실제로는 분업이 아니라 협박과 강제 속에서 여성의 이중 노동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여성은 세계 공식 노동력의 3분의 1, 비공식 노동력의 5분의 4를 담당하면서, 전 세계 수입의 10퍼센트만을 받으며 세계 재산의 1퍼센트만을 소유한다.) (p.158)

남편과 아내의 폭력 행사는 그들이 각자 다르게 처해 있는 가족 내외의 권력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남편과 아내의 폭력은 서로 다른 이유와 의미를 지닌다. 남편은 ‘내가 하라는 대로 하라‘고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지만 아내는 ‘이제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며 ‘폭력‘을 행사한다. (p.230)

법정, 경찰서, 가족 앞에서 남편은 폭력 행위를 사과함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가족의 유지를 위해 노력했는가를 증명한다. 그러한 노력을 아내가 인정하지 않으면 남편의 잘못과는 상관없이 ‘가정 파탄‘의 책임은 여성에게 돌아온다. 남편의 폭력 행위가 가족 유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의 용서 여부가 가족 유지를 결정한다. 이는 ‘아내 폭력‘ 정도로는 가정이 해체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 즉 아내가 맞고 사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을 뜻한다. 가족의 유지를 위해 남편에게 요구되는 책임 수준은 ‘때리고 사과‘하는 것이지만, 아내에게 요구되는 책임 수준은 ‘맞고 남편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p.234)

결국 여기서 나는 ‘아내 폭력‘을 여성 인권 침해가 아니라 가족 해체의 문제로 인식하는 기존의 시각에 도전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여성의 정체성을 사회적 개인이 아니라 아내, 어머니 등 가족 구성원으로서만 규정하는 한국 사회 구조가 어떻게 ‘아내 폭력‘을 발생시키고, 해석, 대응, 재생산하는지를 가족 내 성 역할 규범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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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전 썸남과 있었던 일이다. 아직 연인이 되기 전 썸을 타고 있을 때, 퇴근길에 여느날처럼 통화를 하는데, 그가 어찌저찌 알게된 여자가 저녁을 함께 먹자고 했다는 말을 내게 전해왔다. 내 머릿속은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세상의 반은 남자고 반은 여자다, 학교를 다니든 직장을 다니든 우리는 숱하게 많은 남자와 여자들과 아는 사이가 되고, 그러다보면 이 사람과도 저 사람과도 밥을 먹게 되는데, 그 때마다 일일이 '그 사람이랑 어떤 관계가 될까'를 걱정할 순 없다. 나 역시 업무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남자사람들과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술도 마시는데, 그게 뭐 대수라고... 그냥 밥 한 끼 먹는거다... 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멀리 있고 그 여자는 그의 가까이에 있는데, 물리적 거리에서 내가 지고 들어가는데, 나에게도 어느 정도 그의 연인이 될 가능성이 열려있는 상황이라면 그 여자에게도 마찬가지로 열려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여자쪽에서 밥을 먹자고 한 건 여자쪽에서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그 가능성은 그여자에게 훨씬 더 크게 열려있지 않은가, 나는 그가 그여자랑 밥을 안먹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내가 그의 애인도 아닌데 다른 여자랑 밥먹지 말라는 말을 할 수 있는가, 그럴 순 없다, 그러면 그냥 먹게 둬야 하고, 그러다가 어떤 일이 벌어지면 다 내가 감당해야 하는가, 감당하자, 그런데 감당하기 싫다, 졸라 아프겠지...이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뒤죽박죽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 격렬한 질투가 끓어오르고 말았다. 이 감정은, 상대에게 감추려고 노력했지만, 나는 감정을 감출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이 되질 못했고, 그래서 그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는 '응, 세상의 반이 남자고 세상의 반이 여잔데, 뭐 밥을 먹을 수도 있지, 먹어요' 라고 했지만, 이미 내 목소리와 말투 억양에서 내 질투는 다 표출되고 있었고, 그래서 그에게도 전해져버리고 말았다. 그는 내 질투를 짐작하고 내게 물었는데도 나는 아니야 괜찮아, 라고 말했지만, 곧 울 것 같은 감정에 휩쓸리고 만 것이다. 아, 이 미친 질투여...




나는 집착과 질투를 타도해야 할 감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질투만큼 자발적인 고통도 없다. 질투가 어리석다는 것을 몰라서 질투를 멈추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질투에 대한 잠언이나 충고처럼 비현실적인 것도 없다. 나 역시 <질투는 나의 힘>의 원상(박해일 분)과 비슷한 상태로 오랫동안 고통을 찾아다녔다. 나중에는 지쳐서 질투가 나를 지배하지 않는 평온한 마음조차, 내 것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 뒤로는 부대끼고 바닥에 패대기쳐진 것 같은 비참한 감정이 나를 찾아오면, '그래, 너 왔구나' 하며 인사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질투에 시달리는 나를 포기하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또 다른 내가 더는 나의 목을 조르지 않도록 무릎 꿇고 빌수밖에 없다. 어차피 나는 '연적'만큼 매력적일 수 없었다. 매력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이므로, 내 매력을 찾기 전까지는 말이다. (p.144-145)



집착과 질투가 없는 사랑은 '수준 높은' 사랑이 아니라 절실하지 않은 사랑일 뿐이다. 사랑은 나의 감정이 타인의 가슴으로 옮겨 가는 것인데, 어찌 마음을 비울 수 있단 말인가. 마음을 비운다면 아마 마음이 없어지는 거겠지. (p.144)



질투는 자기 증오이며 자기 몰두이자 결국 자기 도취다. 질투와 성찰은 같은 장소에서 출발하지만 방향은 정반대다. 성찰은 한자[省察] 로도 영어[reflexible]로도 모두 재귀적(再歸的) 의미를 갖는다. 끊임없이 자기를 갱신하는 것, 자신에게로 돌아가 스스로 수정하는 사유 과정이다. (p.148)


















나는 나의 이 질투에 당혹스러웠다. 그간 '나는 질투 따위 하는 사람이 아니야', '나는 쿨해'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내가 이토록 깊은 질투를 이토록 뜨겁게 타오르게 하다니, 나 자신에게 당황스러웠다.


물론,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저 때의 질투는 그가 아직 나의 연인이라는 포지션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 너무도 연인이 되고 싶은데, 그 연인이 될 가능성이 내게 열려있는 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열릴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찾아온 질투라는 것을 안다. 만약 내가 그와 연인이었다면, 그 뒤에 그가 어떤 여자와 식사를 한다고 해도, '응 다녀와'를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 때의 나, 아직 내가 그의 옆자리에 있다는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불확실한 위치에 있으면서 질투를 하지 않기란 불가능했다. 만약 저 때의 내가 질투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도 저 남자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일 테다. 질투는 분명 괴로운 감정이고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기 때문에 내가 느끼지 않는 것이 좋았겠지만, 그러나 어정쩡한 포지션에서라면 어떤 감정이든 휘몰아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썸남은 다음날 아침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회사에 출근했고 아직 업무를 시작하기 전, 이른 아침이었다. 나는 여보세요, 하고 전화를 받았고, 그는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다짜고짜 물었다.



"너 왜 오늘 출근한다고 연락안해?"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원래 출근한다고 매일 말했었나? 잠시 갸웃하고 있는데, 그가 연이어 내게 말했다.



"나 밥 안먹을거야. 그 여자랑 밥 안먹을 거니까 연락해!"



아 나는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빵터져서 어찌나 웃었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사실 그 날 아침의 내가 연락을 안했다는 거 잘 모르고 있었고, 내가 매일 했었는지도 모르겠고, '그 남자 다른 여자랑 밥먹는다니 빡치니까 연락하지 말자'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 남자는 내게 전화를 걸어 '다른 여자랑 밥 안먹을 테니까 연락해' 라고 한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너무 좋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질투는 할만한 것이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리고 질투라는 감정이 내게 찾아들었다면, 그것은 표현되어야 마땅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생각하니까 또 웃기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뒤로 그와 나는 연인이 되었다.


좋은 시절이었다...

But it's over now.





나는 <하얀 궁전>의 두 사람은 서로를 '필요로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영화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필요한 사람이 필요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실제로 나타난 적은 없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나의 영원한 판타지다. 인생의 어느 고비에서 많은 이들이 그럴 것이다. 누구나 특정 시기에 절실히 어떤 사람이 필요하다. "제발 도와주세요." 이토록 사람이 필요할 때가 있다. 문제는 필요한 관계를 얻으려면, 그 관계를 오래 이어 가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를 아는 것이다. 너무 절실하게 필요하면 분별력이 사라져서, '아무나'가 상대가 되고 그 상처로 다시 절실한 필요가 더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p.38-39)




위의 부분을 읽고 부랴부랴 하얀 궁전이란 영화를 옥수수에서 다운 받아 놓았다. 아직 보진 못했지만.

나 역시 위의 부분과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아주 많이 아프고 외로웠었을 때, 어떻게든 자존심을 꼿꼿이 다시 일으키고 싶었을 때, 마침 한 남자가 다가왔고, 나는 그에 대한 내 마음에 대해 어떤 것도 질문하지 않은 채로 그와 연인이 된 적이 있다. 어떻게든 이 시기를 벗어나야겠고, 그 때에 그는 내게 필요한 사람이었는데, 문제는 그가 내가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나의 상대가 되었지만, 사실, '아무나' 였다. 그 시기에 다가오는 사람은 그가 아니어도 되었다. 결국 그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고, 나에게 지독한 후회만을 남겼다. 내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수차례 생각했고 여전히 생각한다.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아주 크고 또 죄책감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내 인생에서 내가 지워버리고 싶은 실수에 해당하는데, 그래서 나는 이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로 결심에 또 결심을 했다. 이 일을 또 만들어서 악순환을 반복시키고 싶지도 않고, 또 상대를 위해서도 그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혼자만의 삶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다시 또 흔들리게 되는 경우가 몇 번 더 찾아왔다. '나는 과거에 이런 일이 닥쳤을 때 상대를 생각하지 않고 내 감정만 중요하게 생각해 선택했다가 크게 후회한 적이 있다'는 것을 자꾸만 스스로에게 상기시켰다. 오래전에 써둔 일기도 도움이 되었다. 같은 고민을 똑같이 몇 해전에 해두었더라. 그래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도 조심, 또 조심해야지.





아주 오래전 KBS 와 MBC 가 토요일에 영화를 보여주었다면 SBS 는 금요일에 영화를 보여주었는데, 나는 당시에 그 모든 영화를 거의 챙겨보려고 했던 사람이라, 그 때, '킴 베신저'와 '리처드 기어' 주연의 영화, 《노 머시》를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를 지금 다시 본다면 까댈 것 투성일 것 같은데, 중학교시절의 나는 아주 재미있게 봤더랬다.




아주 오래된 영화라 기억은 희미한데, 리처드 기어는 형사였고 킴 베신저는 어느 폭력배 조직 보스의 여자였다. 리처드 기어가 무슨 클럽인가에 가서 보스의 여자에 대한 얘기를 다른 누군가와 나누는데, 그 때 바로 대화상대가 '저 여자다' 라고 하고, 킴 베신저의 뒷모습이 비춰진다. 아직 얼굴을 보기 전, 등이 파진 원피스를 입었던 킴 베신저의 어깨에는 문신이 있었다. 내 기억엔 한 쪽 어깨에 새 문신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쩌면 목 뒤에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자연스레 리처드 기어와 나 둘다, '어깨에 문신 있는 여자 보스의 여자' 같은 걸 알게 되었는데, 그 뒤로 무슨 사정이 있어 보스의 여자와 형사는 조직에게 함께 쫓기게 된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남자와 여자는 사랑에 빠지고....



이 영화에서 킴 베신저가 글을 읽지 못했다는 것과 등의 문신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지난 번 하노이에 갔을 때, 호텔 앞에 '타투'라고 쓰여진 가게가 있었다. 그간 타투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었던 나는, 갑자기, '저기 들어가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하게 됐고, 그러다 이내 포기했다. '뭘 하려고 해도 짧은 영어로 어떻게 설명하겠냐... ' 싶었던 것. 그전까지 타투를 할 생각도 아니었기에 절실한 것도 아니었고, 순전히 순간적이고 충동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그 뒤로 놀랍게도 머릿속에 타투만 생각나는 거다. 그리고 타투한 사람만 보여. 세상 모든 사람들이 타투를 한 것 같은 거다. 아아, 안되겠어, 이 생각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타투를 내가 직접 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하고는, 그래,



나는,

지난 토요일에 타투를 했다.




하하하하하. 하는 동안에 너무 아파서, 한 군데 더 하려다가 포기했다. 아, 나의 타투는 이것으로 끝내자, 하고. 그렇게 내가 타투를 했다는 이야기.

크, 페이퍼의 제목은 질투와 타투. 라임이 끝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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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eg 2018-03-13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락방 2018-03-13 06:2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제가 다시 읽어봐도 재미있긴 하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심술 2018-03-13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투족이 되셨군요.
근데 첫 타투 글 인터넷에 올리시는 분들은 흔히 타투 사진이랑 같이 올리시던데
락방님 타투는 뭘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언제 공개할 마음의 준비가 되시면 타투 사진도 올려주시길.

다락방 2018-03-13 21:33   좋아요 0 | URL
저도 공개하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 육신이 비루하여 예쁜 사진을 건질 수가 없더라고요 ㅋㅋㅋㅋㅋ 해서, 오프에서 만나는 친구들에게만 보여주기로 했답니다. 으하하하핫

2018-03-15 2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16 0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가진 취미라고는 책읽기와 글쓰기가 전부인데, 이것들은 그렇게 큰 돈이 들지 않는다. 음...아닌가...책 사는 데 돈 너무 많이 드나... (곰곰) 큰 돈이 들지 않는게 이 취미의 큰 장점이긴 하지만, 사실 책읽기가 좋은 가장 큰 이유, 처음부터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계속 꾸준히 할 수 있는 건, 아주 재미있다는 데 있다. 책 속에 담긴 이야기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나는 주로 잘 쓰여진 글, 문장이 꽉꽉 찬 글, 그리고 사유가 엄청 담긴 글들을 보면 무척 흥분이 된다. 으앗, 이래서 책읽기를 하는 거야, 하고 온 몸이 짜릿짜릿해지는 것이다. 아아, 나는 어쩌자고 책 읽기를 좋아하게 되었는가? 이래서 좋아한다!! 하게 되는 것. 그래서 그런 책을 만나게 되면 몹시 흥분해서 주변에 막 얘기를 하고 싶어지는 거다. 이 책을 읽어봐 이렇게나 재미있어, 이렇게나 똑똑해! 사람을 흥분시킨다니까!! 하고 말이다. 일전에 '엘리자베스 워런'의 《싸울 기회》를 읽고서도 그랬었는데, 지난 주에 정희진의 신간, 《혼자서 본 영화》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서문부터 너무 똑똑해서  ㅠㅠ 흥분했어. 아, 책읽기 너무 좋다, 책읽기는 멈출 수가 없어, 책 읽기가 짱이닷!! 나는 몹시 흥분하여, 금요일 저녁에 친구와 밥을 먹으면서, 나 요즘 이 책 읽는데, 너무 좋아, 완전 흥분돼, 하면서 또 이야기하였던 것이다. 이야기가 주는 흥분, 그 이야기가 가져오는 재미로 느끼는 흥분도 좋지만, 나는 이렇게 똑똑하고 잘 쓰여진 글을 만나서 나를 자극시켜주는 글이 정말 좋은 것이다.

















외로움과 혼자인 상태는 다르다. 혼자라고 해서 꼭 외로운 것은 아니다. 혼자라고 '느낄 때'는 외롭지만, 자기만의 세계에서 스스로 충만한 시간은 외롭지 않다. 인간이 외로울 때는 상대방(사회)과 대화가 통하지 않거나 외부를 지향하는 경우이다. (p.9)


계속되는 미투운동의 폭로들을 접하면서, 최근에는 '아, 너무 외롭다' 하는 감정을 느꼈더랬다. 가장 처음 떠오른 단어가 '외롭다'였는데, 그런데 내가 피해자들의 그 두려움과 분노를 앞에 두고 '외롭다'고 느끼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이래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외로움'이 아닌 다른 어떤 감정 혹은 단어로 표현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갈등을 겪은 것이다. 그런데 정희진의 위의 문장을 읽고나니, 내가 느끼는 그 외로움이 바로 적확한 표현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래, 그래서 외로움을 느낀거였어. 나는 이 사회가, 견고한 가부장제 사회와 남성위주의 사회가, 남성들만이 권력을 쥔 이 사회가, 여자들과 대화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 내가 느끼는 외로움은 거기서부터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든거다. 그동안에도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고. 그러나 앞으로는 우리가 서로 대화가 통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여자들이 그동안 두려워하며 말하지 못했던 것을 이제와 말하는 것, 그것에는 바로 그런 의미 또한 담겨있는 게 아닌가. 남성중심의 사회가 여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서 여자들은 두렵고 아프고 화가 나면서, 그리고 외로웠던 게 아닌가 싶은 거다. 나 역시 어릴 때부터 숱하게 피해자였고, 또 피해자임을 얘기하는 많은 여자들 앞에서 함께 분노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 입밖으로 소리내어 말할 때의 두려움에 대해 알고있다.



몇 해전에, 나는 이 공간에 나의 어릴 적 성추행 피해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는 이제는 그것이 내 잘못이 아니란 걸 알고 있으므로 그걸 말하기 위해 썼고, 또 다른 사람들 역시 어딘가에서 자신을 자책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내 잘못이 아닌 걸 알고 있으니 그것을 세상에 말하는 것은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내 생각보다 강하지 못했던 걸까. 글을 올려놓고 전전긍긍하다가, 열두시간도 안돼 재빨리 감춰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하루를 꼬박 앓았다. 잠도 자지 못했고, 아, 나는 아직 그것을 말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 했던 거다.


그 글을 그렇게 감춰두고는 결국 두번째 책에 쓰게 됐는데, 그 사이에도 시간은 흘러 나는 그전보다 조금 더 강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나의 엄마는 아니었다. 책으로 그걸 읽고 엄마는 나를 끌어안고 울었다. 사람들이 니 책을 안읽었으면 좋겠어, 엄마가 인쇄된 거 다 살게, 라고도 했었다. 나는 준비됐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에겐 날벼락이었다. 너 어떡하려고 그걸 썼냐고, 너 이제 어떡하냐고 안타까워 하셨고, 또 그 어린날 나를 지켜주지 못했음에 스스로를 자책하셨다. 엄마 나는 괜찮아, 그건 내 잘못이 아니잖아, 라고 엄마한테 수차례 얘기했지만, 나보다 훨씬 이전세대를 살아온 엄마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일이었다. 그 일을 당한 것과, 당한 것을 밝히는 일은. 그 일은 아주 오래, 피해자인 내 잘못이었고, 또 피해를 당한 날 지켜주지 못한 엄마의 잘못이 되었다. 잘못은 가해자가 한 것인데도.



그런데 많은 피해자들이 이제 세상에 대고 얘기를 한다. 아마 텔레비젼에 나와 인터뷰를 하는 피해자들을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들 모두 목소리를 떨었다. 목소리를 떨면서도 얘기하고자 했던 것은, 가해자에게 죗값을 받게 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더이상은 자신처럼 피해받는 사람이 없기를 원해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나와 밝힘으로써, 이미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게 '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다'를 말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이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용기를 내고 발언해야 함에 있어서, 얼마나 큰 두려움과 분노가 그 안에 있었을지를 짐작할 수 있다. 연이어 폭로되는 그 아픈 경험들 앞에, 나는 하염없이 외로워졌던 거다. 외로움은 내가 혼자이기 때문에 느낀 게 아니라. 이 세상이 여자들을 혼자라고 느끼게 만들어서 느낀 것이었다.





오승욱 감독의 <무뢰한>은 당연히 내가 푹 빠진 영화다. 이 영화에서 '수배자의 여자'로 나오는 전도연은 신분을 숨기고 접근한 경찰(김남길 분)과 도주 중인 연인(박성웅 분) 사이에서 모든 것을 잃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기남길은 전도연에게 강박적으로 말한다. "(너는 이용당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이용한 게 아냐, (나는 경찰로서) 내 일을 했을 뿐이야!" 두 사람은 한때 사랑했으므로, 이 대사는 변명이 아니라 죄의식의 표현이다. 내 질문은 이것이다. 사람들은 "내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 말은 아름답지 않을 뿐 아니라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생에서 "내 일을 했을 뿐"으로 정당화되는 일은 없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데, 이런 말은 인간을 혼자 살게 내버려둔다. 이 말에 '나의 전도연'은 깊게 상처받았을 것이다. 나도 상처받았다. 그녀의 외로움을 생각하며 나는 울었다. 나는 외로움을 원하지, 외로움을 '당하고 싶지 않다.' (p.22-23)



나는 속수무책으로 외로움을 당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여러차례 사주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이제는 숫제 내가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주는, 그 특성상 여전히 보수적인 성격을 띤 것 같다. 나만의 사주가 남자를 만나면 달라질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중심이 남자가 됨을 의미하고, 또 앞으로 진행될 삶에 있어서도 그 길을 막을 수 있는 대상이 여자는 남자가 중심이고 남자는 자식이 중심이 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그러니 명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 학문을 공부함과 동시에 세상의 변화도 빠르게 읽어내야 더 정확한 해석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일텐데, 일전에 사주를 보러 갔을 때 나는 남성적 성향이 있다는 말을 들었던 터다. 그것이 평소에 남자처럼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싸움에서 이기고자 하는 성질을 말한다고 했는데, 이 성질은 남성적으로 불리고 있었다. 평소에 이해심 있고 배려를 잘하고 포용하려는 성격이지만, 어떤 공격이 들어왔을 때 참지 못하고 상대를 이기려고 하는 타입이라는데, 내가 이 얘기를 듣고는 '딱 한국남자들이 싫어하는 타입이네요' 라고 되물었더니, 쌤은 내게 '싫어한다기 보다는..... 니가 한국남자를 우습게 봐' 라고 하는 거다. 아 그 말 듣고 진짜 빵터져서 웃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너는 한국남자랑 좋은 친구도 될 수 있고 대화상대도 될 수 있고 동료도 될 수 있고 잘 지낼 수 있는데, 니 연인이 된다고 하면 한국남자가 너무 우스워' 라고 하는 게 아닌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이 쌤은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어째서... 이렇게 말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면서 '그리고 너의 그 성질 때문에 주변에 여자들이 많다, 여자들이 많이 모인다'고 하는 거다. '요즘 말로는 걸크러쉬라고 하죠' 라고 하시면서.... 네, 제가 여자친구가 훨씬, 훨씬 많아요..... 아, 저기 아닌 다른 데에서도 그런 말을 들었었다. 너는 이야기 상대로서의 남자가 끊이지 않는데, 그러다가 그들 중에 하나가 니 애인 되겠다고 나서면 '안돼, 니 자리 거기 아니야' 라고 할 사람이라고 .. 그거슨 아마도 내가 재이슨 스태덤을 제일 좋아하기 때문인가봉가.....




섹스와 섹스의 쾌락을 배우는 최선의 방법은 마음이 열린 연인을 만나는 일이다. 이성애자 여성, 게다가 페미니스트라면 이 문제는 절박하다. 하긴, 그걸 누가 모르나? 여성들의 괴로움은 가부장제 사회, 특히 한국 사회에서 그런 남성을 찾기 힘들다는 데 있다. (p.46)



내가 바로 그 이성애자 여성이며 페미니스트이다. '그런 남성'? ... 없다 없어. 이 땅에 없어.... 한 친구는 내게 '너는 이성애자이면서 꼴페미라 너무 힘들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안그래도 숱하게 갈등을 겪고는 한다. 매일, 매순간의 갈등의 연속이고 또 외로움과 분노와 절망이 수시로 찾아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가는 길을 멈추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멈추지도 않을 것이고. 그리고 그 길에 내가 혼자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외로움을 느꼈지만, 그러나 소속감과 연대감도 느낀다. 나를 외롭게 하는 게 남성중심의 사회라면, 나에게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 건, 네 잘못이 아니라 말해주는 숱한 이 땅의 여자들이다. 내 친구들은 끊임없이 분노하고 소리치며 또 계속 공부한다. 외로움만 느낀다면 지내기 힘들었겠지만, 이렇게 소속감과 연대를 느낄 수 있어서 또 한걸음 앞으로 나갈 수도 있다.



책읽기의 즐거움에 대해 쓰려고 한건데 쓰다보니 구석구석 분노와 외로움이 묻어나네.


이 책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은데, 글이 너무 길어지는 것을 막고자, 또 전혀 다른 주제로 얘기를 할 것이므로, 페이퍼를 쪼개 쓰기로 한다.


이 책으로 자극받아 연달아 정희진의 다른 책을 출근길에 들고 왔다. 일전에도 한 번 만난 적이 있던 시인데,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 다시 읽고 여러가지로 복잡한 감정이 되었다. 같이 읽고싶어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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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18-03-12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 혼자서 본 영화, 읽다가 그냥읽기 아까워서 언급되는 영화 봐가면서 읽고 있어요. .... (영화를 잘 안봐서 힘드네요)
정희진은 진리입니다. 와락!!

다락방 2018-03-12 17:40   좋아요 1 | URL
저는 읽으면서 [하얀 궁전]과 [릴리슈슈의 모든 것]을 다운받아 놓았는데, 제가 이걸 언제볼지는 모르겠어요...
이거 다 읽고 나니까 뭔가 목마른 느낌이어서 저는 연이어 정희진을 읽기로 했습니다. 우하하하.
공장쟝님, 꼭꼭 씹어 읽으세요! >.<

꼬마요정 2018-03-12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읽기는 질리지 않아서 좋아요. 가끔 제대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란 강박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뭐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 이러고 읽고 있죠. 요즘은 잘 읽지도 못해요ㅠㅠㅠㅠ

세상이 유독 가해자의 편에 서서, 가해자에게 감정이입해서 피해자를 몰아가는 때가 있어요. 자기들이 가해자가 될 것도 아니고, 그게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죠.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제발 피해자들에게 힘이 되고 가해자들에게 수치와 벌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락방 2018-03-12 17:44   좋아요 2 | URL
저도 요즘에 책읽기가 뜸했어요. 이제 다시 재미를 붙여보자 하는 참이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책을 만나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도 정희진의 책이 좋다보니 그 다음 연달아 정희진을 또 읽자! 하고 집어 들었으니까요.

냉정하라, 객관적이 되어라, 중립을 지켜라, 라는 말이 왜 유독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서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저도 피해자로 살면서 아주 오래 제 탓을 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한마디 말, ‘니가 잘못한 거 아니야?‘라는 말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아요. 스스로도 검열을 숱하게 해야하고, 그런데도 늘 피해자를 향한 시선은 따갑죠. 저 역시도 가해자들이 죗값을 치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해요.

비연 2018-03-12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이 글... 마지막 가서 섬찟. 했어요...

제 사주에도, 남자를 우습게 여긴다고... 전 그냥 우습게 보일 만한 남자를 우습게 보는 거겠지 라고 넘겨 버렸지만,
사실.. 얘기하다보면 ... 말이 통하는 남자를 만나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이 한국 사회에서는 더더욱.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책이 있어서 살 수 있다. 수많은 좋은 책들. 나를 감동시키고 기분좋게 하는 책들.

다락방 2018-03-12 17:46   좋아요 1 | URL
저는 예전에 저 시를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읽었던가...처음에 꽃을 받았다고 해서 아름다운 시인줄 알았다가 너무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있어요. 어휴..

비연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말이 통하는 남자를 만나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예요. 전 그 점에 있어서라면 포기하고 살려고 해요. 특히나 이 나라에서는요. 남자들보다야 책이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저를 흥분시키고 달뜨게 하고 또 즐겁게 해주는 그 모든 건 다 책이 하는 일이에요. 우리 열심히 책을 읽고 또 글을 쓰도록 해요!!

단발머리 2018-03-12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이 책이 좋아 단숨에 읽었거든요. 배고파서 허겁지겁 먹듯이 그렇게 읽었어요.
줄도 안 긋고, 마구마구 읽었는데요.
오늘 다락방님 페이퍼 읽으면서 차분히 이 책을 느끼니까... 역시나 좋으네요.
역시 정희진쌤, 역시 다락방님^^
<싸울 기회> 두꺼워서 포기했었는데, 다시 도전해야될까봐요. 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8-03-12 17:53   좋아요 0 | URL
저도 씐나서 읽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좋아하지 않는 영화를 극찬했을 때에는, 아 이걸 이런 식으로 볼 수 있겠구나 싶기도 했고요. 보고 싶은 영화도 생겨서 다운도 받게 됐고요. 그런데 책 분량이 너무 적어요. 너무 얇아요 ㅠㅠ 뭔가 갈증 해소가 안되는 기분이에요. 그래서 연이어 정희진을 읽으려고 한거랍니다. 하핫.

단발머리님, 싸울기회는 진짜 강추예요. 엄청, 엄청 사람을 흥분시키는 책입니다. 진짜 좋아요!! >.<

비연 2018-03-12 18:46   좋아요 0 | URL
싸울 기회는 저도 강추!

단발머리 2018-03-12 20:21   좋아요 1 | URL
책이 얇다는데 저도 동감이요.
얇고 작고요~~~
그나저나 나는 이렇게 두 분에게 설득되어 <싸울 기회>를 잡으러 가게 되는건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재정권을 타도하자는 운동에 앞장서는 언니들 얘기라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그러나 힘들게 돈을 벌어 아주 좋은 대학에 보내놨더니 데모를 해서 경찰에게 끌려가는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입장이 되면 너무 가슴이 아프고. 여러가지 갈등을 하게 되는데, 나는 나의 조카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조카가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길 바라고 부당한 일에는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러다가 혹여 다치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안할 수가 없다. 내가 좀 더 앞 선 시대를 살아 내 조카가 이 책의 등장인물들처럼 잘못된 정부에 맞서 싸우려고 한다면 나는 온전히 조카를 지지할 수 있을까. 나는 차라리 내가 나가서 싸울지언정 조카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하게 두고 너는 가만 있어' 라고 말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그것이 정말 조카를 위한 길일까. 아픈 조카를 보고싶지 않은 나를 위한 건 아닐까. 그렇다면 조카가 하고자 하는 걸 하게 둬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걸 바라보는 내 마음은 어떨까... 막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감옥에 있는 딸에게 쓴 엄마의 편지를 보면 눈물이 왈칵 고이는 거다. 어휴... 더러운 세상이었어.......



위에 사진 찍어 올린 부분들을 읽다가 티비 시리즈와 책이 생각났다. 152페이지, 악몽을 꾸다 깬 장면에서는 아주 오래전,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일요일마다 텔레비젼에서 보여주었던 《V》 생각이 났다. 지구인으로는 '도노반' 과 '줄리엣'이 주인공이고 물론 그들과 함께 하는 로빈도 있고 또 누구더라...아무튼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있고, 파충류로는 '다이아나'가 주인공인 시리즈였다. 당시에 아주 재미있게 본 시리즈여서 일요일에 가족들이 외출할 일 있어도 공부하겠다는 핑계로 집에 있으면서 나는 그 프로를 보았던 거다. 그리고 도노반과 얼마나 사랑에 빠졌던지! 나는 꿈에서 여러차례 지구를 구하곤 했다.


내용을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우주생명 파충류가 지구를 침략하기 위해 인간의 탈을 쓰고 나타난 것. 지구인에게 우호적인 듯 보였고 또 지구인과 같은 모습이라 생각했지만, 실상 쥐 같은 것들을 꿀꺽 삼키는 파충류였다는 거다. 그들의 속셈이 드러나자 그걸 막으려믄 지구 방위대(?) 같은 게 생기는데, 그 대표적 인물이 도노반과 줄리엣이었던 거다. 이야기가 흐르고 후반으로 갈수록 파충류의 힘은 더 거세지고 더 많이 지구를 장악하는 것 같은데, 그 과정에서 줄리엣이 파충류에게 끌려가 고문을 당하는 장면이 있다. 어떤 기계 안으로 들어가 몸에 밀착되는 옷을 입고 전기고문 같은 걸 당하게 되는데, 그 후로 줄리엣은 악몽을 꾸고 몸에 이상증상을 느끼게 되는 거다. 그러면서 도노반에게 '나는 오른손잡이인데 그후로 자꾸 왼손을 쓰게 된다'는 식의 얘기를 하는 거다. (왼손잡이인데 오른손을 쓰게 된 걸수도 있다. 이것에 대해서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에 고문당한 그 순간이 자꾸 떠오르게 되는 것.


어제 저 책의 152페이지를 읽는데, 그 고문의 후유증에 갑자기 줄리엣이 생각나는 거다. 어휴..



줄리엣은 그 시리즈 말고 보지 못했다가, 아마도 이름이 '페이예 그란트' 였을텐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영화 《오멘》에서 만난 기억이 있다. 도노반은 '마크 싱거' 였던가.. 그 사람도 어딘가에서 보긴 했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저 책의 153페이지에서는 '조지 오웰'의 책 《1984》가 생각났다. 연애조차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에, 남자는 여자와의 관계가 상부에 보고되어 고문을 당하게 되는데, '답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고 버티다가, 그만, 쥐를 풀어버리는 데서 다 불어버리고 마는 거다. 쥐를 너무 싫어했는데 쥐로 고문을 해서. 너무 끔찍해서 불어버리고 말았어. 영초 언니도 벌레를 아주 징그러워하고 싫어했는데, 아마도 그걸 알고 그런 식으로 고문을 했던 것 같다.


고문이라면, 답을 들어야 하니, 그러니 아마도 상대의 가장 약한 점을 노린거겠지만, 너무... 치사스럽지 않나. 치사스럽다는 말은 사실 적합하지 않을거다. 고문 자체가 잔인한 행위이니까. 내가 한 행동에 대해 끌려가고 고문을 당하고, 내가 너무 싫어하는 것들을 내 앞에 풀어놓는다는 것, 거기에서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 그 시간이 지나고난 뒤에도 그 시간에 대한 악몽을 꾸고 자꾸만 그 시간을 나도 모르게 생각하게 된다는 건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몇 개의 이미지라도 가져오려고 네이버에 V 검색했는데 포스터 하나만 딸랑 나오네. 이미지를 눌렀더니 사람들이 손으로 브이자 모양하고 사진 찍은 거만 주루룩 나온다 ㅎㅎㅎㅎㅎ 인생... 시간이여.... 시간은 정녕 이렇게 흐르는 것입니까... 넷플릭스 안하는데, 거기에 브이 있나? 뭔가 말하다 보니까 다시 보고싶네.



거기에 '엘리자베스'라는 등장인물이 극중 마지막에 등장하는데, 이 인물이 또 되게 신비로웠다. 기억에 의지해서 글을 쓰는 거라 이름들이 다 정확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지구의 전사 여자 '로빈'과 착한 파충류 '윌리엄'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이들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는 거다. 그게 엘리자베스.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서 다들 안도하는 데, 혓바닥을 내미는데 뱀혓바닥 이었던 거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들 놀라는데, 이 아이의 성장 속도가 보통의 인간보다 훨씬 빠른 거다. 아주 쑥쑥 자라서 금방 소녀에서 어른이 되는 거다. 지구인과 우주파충류의 혼혈이어서인지, 엘리자베스에겐 초능력이 생긴다. 아, 근데 그 초능력이 뭐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염력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이 엘리자베스는 나중에 '칼'이라는 지구인 남자랑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드라마의 막이 내리는데, 엘리자베스는 우주선을 타고 파충류와 함께 지구를 떠나는 것. 그래서 칼과 헤어지게 되는데, 칼은 우주선에 몰래 숨어들어 엘리자베스를 따라가는 거다. 음...이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네.....


아..사랑 뭐지.... 내가 살던 지구를 떠나기로 결심하게 되는, 그런 사랑...뭐지..... 졸 위대하네?



그러고보니 이 책, 《영초 언니》에도 사랑한다고 하고 사귀기로 하고서도 자주 만나지 못하는 연인이 등장한다. '명숙'과 '주웅'이 그들인데, 주웅이 데모를 주도하다 걸려서 감옥에 가게 되어서 그들은 자주 만날 수가 없게 되는 것. 그래서 그들은 주웅의 여동생을 통해 서로 편지로 사랑을 속삭이게 된다.



그때부터 나는 그의 누이가 되어서 교도소로 속칭 '비둘기'를 날렸고, 그는 누이 이름 앞으로 내게 '비둘기'를 날렸다. 우리는 교도관이 알아차릴 수 없도록 편지 속에서 오빠와 동생 코스프레를 하면서도, 우리끼리만 통하는 사랑의 밀어를 주고받았다. 평범한 안부 편지, 집안 소식 속에 슬쩍 숨겨놓은 비밀 메시지를 발견해낼 때의 그 기쁨이란! 잦은 만남과 소통 속에 오가는 달콤한 구애만 사랑이 아니었다. 얼굴조차 못 보는 절대빈곤도 사랑을 키워나가는 또다른 자양분이 될 수 있음을 나는 그때 알았다. (p.115)



보지 않아도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데에 동의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계속 소통하고 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소통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사랑을 키워갈 수 있을 것인가. 그들에게 편지란 수단이 있었기 때문에 상대를 기다리고, 믿고, 또 대화할 수 있었던 것. 내가 여기 있고 네가 거기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알고 전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확실히 보이지 않음에도 사랑을 키워나가는 데 필요하며 중요한 일인 것이다.


칼은 지구인이었고 엘리자베스는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으로 가야하는 상황. 만약 칼과 엘리자베스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시간과 돈만 있으면 만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아마 칼은 그 우주선에 숨어탈 생각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편지라도 주고받는 게 가능했다면, 전화통화라도 할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그 우주선에 타지 않았어도 됐을 것이야. 그러나 지금 엘리자베스를 다른 행성으로 보내고 나면 그 뒤는 엘리자베스를 전혀 만날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만다. 전화도 편지도 안돼... 그러니 그 우주선에 타는 게 아니고서는 그녀에게 닿을 수가 없는 거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가 움직이고 행동한다는 것. 그것만큼 확실하게 사랑을 이루는 방법이 어디있을까. 칼은 제대로된 선택을 했다고 새삼 생각하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우주선에 숨어드는 것. 이것말고 삶에 있어서 대체 뭐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라는데, 나는 고문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칼은 이 페이퍼를 쓰기 시작할 때만해도 염두에 두지도 않았고 안중에도 없었는데, 왜 갑자기 칼이 이야기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지? 왜죠? 왜 때문이죠? 또 내가 아닌 누가 이 글을 쓴것이냐.... 다른 자아, 들어가.... 지금 나오는 거 아니야, 들어가....어디서 또 튀어나온거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왜 이렇게 된거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줄리엣 얘기 하려고 했는데 왜 칼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엊그제.

내가 지난 가을 런던에서 보낸 엽서를 받았다는 친구의 연락이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10월 초에 런던에서 보낸 엽서를 엊그제야 받았다는 것.

항상 잘 받았다고 말해주는 친구인데 그런 말을 안하길래, 아 못받았나보다, 중간에 분실됐나보다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보낸지 한달도 안되었을 때 받았다고 말해준 친구들이 많았는데, 말을 안한 친구들이 몇 있어서, 어쩌면 다른 우체통에서 보낸 친구들 것이 도착을 안했나보다, 통째로 다 분실된거야, 그 우체통은 진짜 우체통이 아닌 것인가.... 하고 혼자 생각하고 있다가 이제 시간이 오래 지나 잊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받았다는 거다. 거의 반년이 다 된 지금!!

한 친구가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오자 다른 친구들 둘도 받았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작년 10월초에 보낸 걸 올해 3월초에 받았다는 것. 이게 무슨 일이지? 그동안 대체 엽서들아, 어디 갔다온거야?


받은 친구들은 친구들대로 서프라이즈라 기뻐했고, 나는 나대로 기뻤다.

그것들이 돌고 돌아 결국은 목적지까지 닿았다는 생각에. 어쨌든 가 닿았어. 다른 엽서들보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그래서 그 사이에 대체 어디를 갔다가 또 어디에서 머무르다 이제야 오게 된건지는 모르지만, 닿았어, 닿았다고!!


나는 항상 시간이 우리를 있어야 할 곳으로 데려다 놓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닿아야 할 곳이 거기라면, 언제가 됐든 거기에 닿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지난 가을의 엽서는 내 말에 더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 엽서들이, 자신들이 닿아야 할 곳에, 어떻게든, 기어코, 닿고야 말았으니까.


좋았다. 좋은 일이야.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다.

결국 닿아야 할 곳에 닿는 이야기.

결국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내가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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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18-03-09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초언니> 읽었고 <V>를 봤죠.

시사IN 주진우 기자 책 <정의사제 악마기자>에 서명숙 편집장이 ‘찰진 욕설로 날 단련시켜주셨다‘고 나오죠.
뭐 지금도 갈 길 먼 대한민국이지만 그 때는 정말 더했다는 걸 실감했어요.

락방님 주소가 fallen77이라 락방님을 77년생으로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네요.
아니면 77년생 맞는데 <V> 1992년에 재방송됐을 때 보셨던 거겠네요.
첨엔 1985년인가 1986년에 방영했고 1992년에 대규모 방송사 노사분규 일었을 때 재방송했죠.
어릴 때 하도 재밌게 봐서 중학생 때인 92년에도 기대를 갖고 봤는데 막상 보니 그 새 낡아보이더라고요.
제 또래 사람들이랑 얘기하다보면 국딩 때 줄리엣 고문받는 장면 보고 뭔가 모를 야릇함을 느꼈는데
자라서 알고 보니 그게 싸도마조히즘 첫 맛보기였더라는 얘기가 많이 나와요.
도노반,줄리엣,다이아나,엘리자베쓰,카일 모두 기억납니다. 락방님이 칼로 기억한 사람 이름이 카일입니다.
햄 테일러도 기억나요. ‘지구방위대‘ 일원인데 거칠고 쌈 잘하는 마초 역할이죠.
이 드라마 배우들 가운데 다른 작품에서도 본 배우들이 드문데
햄 테일러를 맡았던 마이클 아이언싸이드만큼은 그 뒤로도 자주 만났죠.
대표적으로 오리지날 <토탈 리콜>에서 아놀드 괴롭히는 악당 역으로 나왔고
<엑쓰멘 퍼쓰트클라쓰>에서도 미군 전투선 함장으로 짧지만 강렬한 모습을 보였죠.

카일이 마지막에 외계인우주선에 밀항하는 장면은 저도 잘 기억해요. 어릴 때 보면서도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멋지다는 생각만 할 뿐 그렇게 멋진 모습을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찌질남이 돼 버렸지만..
부작용으로 ‘배에 무단승선을 언젠가 해 봐야지‘ 하는 헛꿈을 꾸기도 했죠. 행인지 불행인지 아직까진 무단승선 해 본 적이 없네요.

그러고보니 지금은 망해버린 지도 오랜 김우중 할배의 대우전자에서 ‘재믹스‘라는 게임기를 만들어 팔았는데
V가 인기를 얻자 재믹스 디자인을 외계인 우주선처럼 바꾼 ‘재믹스V‘도 나왔죠. 제 첫 게임기가 재믹스V였죠.

엽서 실종 사건은 정말 신기하네요. 왜 그리 오래 걸렸을까?
영화 <캐쓰트어웨이>처럼 엽서를 실은 화물선이 난파됐다가 나중에 구조된 걸까?
그러나저러나 엽서들이 늦었을 망정 주인 찾아왔으니 다행이군요.

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았네요. 요새 왜 이럴까?
혹독했던 겨울이 가고 따스한 봄이 왔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다락방 2018-03-09 16:02   좋아요 0 | URL
우와 심술님.
댓글읽고 막 웃었네요. ㅋㅋㅋㅋㅋ

일단, 칼이 아니라 카일이었군요! 아아.. 역시 오래되어서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가 얼굴만 기억하고 이름을 기억못한 사람이 햄 테일러 였는가봐요.
아, 그 사람도 있는데..하면서 얼굴은 떠올랐는데 이름이 생각이 안나더라고요.

그리고 저 국민학교때 처음 보고, 중학교때 재방송 본 거 맞습니다. 국민학교때 엄청 재미있게 봤고 중학교 때 그걸 재방송 한다 그래서 너무 흥분해가지고 빠지지 않고 다시 봤더랬죠. 저는 중학교때 봤을 때도 진짜 너무 재미있었어요. 맨날 도노반 도노반 이러면서 꿈에 도노반이랑 막 끌어안고 지구도 구하고... 뭐, 그랬습니다. 하하하하.

다이애나 역으로 나왔던 배우는 나중에 토요일마다 해줬던 드라마 [제5전선] 에도 나왔었어요. 제5전선도 제가 중학교때 방송했던 건데, 이건...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데, 아마도 스파이를 소재로 한 드라마였던 것 같아요. 아니야..무슨 요원이었던 것 같은데... 그 드라마 상에서도 유일한 여자요원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내용은 하나도 생각안나는데 다이애나가 나온다고 해서 봤던 기억이 나요. 크-

그런데 심술님, 굉장히 상세히 기억하시네요!! 저는 게임에 관심이 1도 없어서, 그런 게임기가 있는지도 몰라서 완전 생소하네요. ㅋㅋㅋㅋㅋ


얼른 봄이 오라고 빌었어요. 지금은 얼른 여름 오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저는 여름이 좋아요. 여름 엄청 기다리고 있어요. 여름 오겠죠.

2018-03-09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심술 2018-03-10 16:06   좋아요 0 | URL
정작 중요한 건 잘 잊고 쓸데없는 것만 잘 기억합니다.
다이아나 배우가 <제5전선>에도 나왔군요.
<제5전선>은 많이 안 봐서 다이아나 배우가 나왔는지도 몰랐어요.

저도 봄과 여름을 좋아합니다. 추위는 못 견디고 더위는 잘 견디기에.

다락방 2018-03-10 16:07   좋아요 0 | URL
저도 봄과 여름이 좋은데 특히 여름이 좋아요! 덥고 땀나는데 좋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별족 2018-05-09 06:40   좋아요 0 | URL
제5전선,이 미션 임파서블,의 전신이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