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윤식당 2]를 1회부터 무려 1,500원씩 결제하며 보고 있고, 그렇게 4편까지 봤다. 보면서 나는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영화 비포 시리즈 생각이 자꾸 난다.
비포 선라이즈 에서 여자와 남자는 각자의 목적 있는 여행을 마치고 기차 안에 있다가, 다른 사람들 틈 사이에서 서로를 발견해낸다. 그리고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조심조심 서로에게 말을 걸고.
비포 선셋 에서 여자와 남자는 9년 후에 재회한다. 이제 둘에게 다른 사람 다른 공간은 중요치 않아서, 영화 한 편이 오롯이 두 사람의 대화만으로 진행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비포 미드나잇 에서 여자와 남자는 다시 또 9년후, 함께 살고 있어서 때로는 지쳐있기 까지 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제 그들에겐 서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다함께 존재하고 또 섞여든다. 어느 게 제일 좋으냐 하면 나는 비포 선셋이라 말하겠지만, 그러나 선라이즈가 없었다면 선셋이 존재할 수 없었다. 그리고 현재는 미드나잇. 분명히 선셋이 존재했는데 우리는 미드나잇을 함꼐 살아가는 거다.
나는 텔레비젼을 잘 보지 않아서 사실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지도 잘 모르고 성격이 어떤지도 잘 모른다. 윤식당 재미있다고 주변에서 아무리 말을 해도 거들떠도 보질 않았었다. 그러다가 얼마전에 지나가면서 잠깐 윤식당2를 보았는데, 스페인이 너무 아름다운 거다. 나는 집에서 혼자 술 마실 때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다시 틀어두고 보곤 하는데, 이게 계속 결방중이라 볼 게 없어, 뭘 볼까, 하다가, 아 맞다!! 윤식당의 스페인을 볼까? 하고는 처음으로 1회를 결제했다. 그러니까, 순전히 여행프로그램을 좋아하는 내 취향 때문에 그 프로를 선택한 것이었다. 스페인을 보자, 그 아름다움을 보자! 하고 선택한 것이었는데, 내가 그것을 보기로 한 이유가 이국의 아름다운 풍경 때문이었다면, 좋아진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니 1회부터 보기 시작하니까, 서준이가 스페인어 공부하는 게 나오는 거다. 서준이가 맡은 건 서빙이었는데, 비행기 안에서도 스페인어 공부하고 출발하기 전에도 스페인어를 공부해서, 손님을 응대하는 게 잘 되는 거다. 영어도 되고 스페인어도 되고, 이게 보다보면 일본 사람에게는 일본어로 인사도 건네준다. 그래서 일본 손님도 '저 사람 외국어를 잘하네'라고 놀라기도 한다. 나는 늘상 공부하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껴왔으므로, 이런 서준에게 반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데, 아니, 너는 누구냐, 어디서 튀어나온 녀석이지... 이렇게 됐다가, 아니 글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먼 스페인의 어느 섬에 가서 피곤한 그 날, 다른 사람들은 다 쉬는데, 서준이는 밤에 클럽을 갔다왔다고 하는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 젊다 젊어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같으면 기절했을텐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튼 그래서 서준에게 반해가지고 있었는데, 아니 글쎄, 클럽도 갔다왔다면서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는거야!!! >.< 아 졸 멋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녀석은, 뭐지? (내가 이거 보기 시작했다고 하자 나를 잘아는 내 친구는 '너 서준이 운동하는 거 보고 반했지?' 라고 물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외국어와 운동하는 서준에게 반해 있었는데, 아니, 윤여정은 어쩜 그렇게 영어를 잘하지?! 나는 완전 놀라버린 것이다. 이 사람들 ... 대체 뭐야??
윤여정은 굉장히 힘들어 보여서, 야, 저렇게 일시켜도 되냐, 싶었다. 그래서 프로필을 검색해 봤는데, 어휴, 나이 많으셔. 다른 일행들이 (서준이와 유미) 항상 먼저 식당에 도착해 준비를 하고 또 일하는 중에도 윤여정을 배려해주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힘들어 보인다. 굳이 저렇게 힘들게 할 필요가 있나..라고 수차례 생각하게 되는 건, 그 힘든 모습이 그대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힘들어 보여. 그러다가 잠깐 다른 식의 생각을 하게 된 건, 윤여정이 굉장히 능력있는 여성이라는 게 보여서다. 영어도 잘하고 또 프로그램의 특성이지만 요리를 한다. 그래서 윤여정은 요리를 하다가는 궁금해서 바깥에 나가 손님들을 상대하며 묻는다. 음식 어떠니, 괜찮아? 이거 먹어 봤니? 하면서 대화를 시도하는 데, 그 모습이 진짜 자지러지게 좋은 거다. 그러면서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미 가진 자원이 있어서, 그것이 나의 지식과 육체로부터 나오는 것이어서, 그것으로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이 들어서도 돈을 벌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거다. 손님들은 음식을 아주 맛있게 먹는데, 내가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는 손님들과 대화를 한다는 것, 내가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는 손님들을 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 되게 보람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지금 내가 맡은 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조만간 끝나버릴 것 같은데, 그러니까 나는 내가 이 일을 '언제까지나' 계속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더 오래 계속할 수 있는, 혼자 살면서도 나를 계속해서 단단히 버텨내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 그건 무얼까에 대한 진로 고민을 여전히 하고 있는데, 윤여정은 거기에 좋은 롤모델이 되는 것 같다. 외국어를 하는 게 이렇게나 좋은 거야. 알라딘에 m 님이 수차례 내게 영어 공부 하라고 조언해주셨는데, 네, 정말 꿀같은 조언입니다. 가진 자원이 많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더 많아지겠지. 그리고 이미 생활에 여유가 있다면, 더이상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내능력을 어떻게든 발휘하면서 살고 싶어.... 내 능력을 발휘하며 살고 싶다면, 일단 내 '능력'이란 게 있어야 하는 것이다..... 외국어 공부가 답이야!!
물론 프로그램에서 보여지는 거겠지만, 윤여정을 다른 일원들이 깍듯이 대한다. 그런데 윤여정이 거기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존중과 존경을 받으며 당당하게 일할 수 있는 건, 스스로가 겸손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 음식의 맛을 결정해야 했을 때 본인의 주장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서는, '자 고치자' 고 말하는 거다. 사람이 나이가 얼마가 됐든간에, 어느 지위에 있든 간에, 내가 한 말이 틀렸다는 걸 잘못됐다는 걸 인식하고 또 인정하기는 너무나 어려운데 윤여정이 그걸 하는 거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그런 성격들이 본인이 가진 자원과 맞물려 저렇게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나이 들어서도 일할 수 있다니, 나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나이 들어서도 일을 하는 여성을 보노라니, 자연스레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도 생각났다. 내가 이 영화 2편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지. 부자 남자가 나를 위해 뭐도 사주고 뭐도 사주고 돈도 주고 막 그러는 게 좋아보이겠지만, 만약 나에 대한 그 남자의 관심이 끝나면?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그러면 혼자 서기가 너무 어려워진다. 자기 능력이 있어야 되는거다!! 라는 생각의 끝에 닿았는데, 윤여정은 그걸 실천하는 사람이야..
아, 그러니까 이 윤식당을 보게 된 계기는 스페인이었고 매력을 느낀 건 서준과 윤여정의 외국어 실력이었는데, 그렇게 2회를 지나고나서 부터 이 프로그램은 완전히 다른 매력으로 내게 다가왔다. 나는 이제 그 식당을 찾는 손님들의 이야기가 너무 좋은 거다. 어떤 손님이 오나, 무얼 먹고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세상 기다려지는 거다.
손님들은 다양한 나라에서 찾아드는데, 하하하하, 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여행을 많이 한다는 게 너무 씐나는 거다. 가족 단위로 들어오기도 하고 연인들이 찾아들기도 하는데, 식당 앞에 멈춰 서서 메뉴판을 기웃거리며, 여기 갈까 여기 어때 물으며 들어오는 게 너무 좋고, 커플끼리 와서는 나는 맥주 나는 와인 이러면서 다른 메뉴 시키는 걸 보는 건 또 왜이렇게 좋은지. 그리고 서로 다른 음식을 시켜서는, 오 이 음식 맛있어 건강한 느낌이야, 하면서 서로에게 건네는 걸 보는 게 너무 좋은 거다. 그리고 꽃집 사장님 부부는 벌써 윤식당에 두 번째 찾아드는데, 서로 먹는 걸 보며 '사진 찍어줄게' 이러고 사진 찍는 거 보는 것도 너무 좋고.
세상엔 진짜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해서, 나였으면 그냥 식당에서 밥만 먹었을텐데, 누군가는 쉐프를 만나고 싶어하기도 한다. 그래서 굳이 쉐프랑 대화하고 싶어해. 아, 어떤 나라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음식 블로거인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가 음식들의 사진을 찍고 쉐프랑 대화하고 싶어하니까, 남자친구가 그걸 다 이해하는 거다. 그러니까, 내 여자친구는 음식 블로거, 식당에서 쉐프를 만나보고 싶어해, 라는 걸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다고 해야할까. 이거 되게 중요한 포인트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 식당에서 보면 음식 사진 찍는 사람들이 있고 되게 귀찮다는 듯이 '아 빨리 찍어' 이러면서 좀 음식 사진 찍는 거 한심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누군가는 찍고 싶어하고 누군가는 찍는 거 한심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응, 너는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지, 를 인정하고 함께 가는 건 너무 좋게 보이는 거다. 다양한 나라에서 오는 사람들은 또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과 섞여서 오기도 한다. 내가 한국사람이라고 해서 한국사람과 찾는 것 뿐만 아니라 한국사람이 스페인 사람하고 같이 오기도 하고, 일본 사람이 영어권 사람과 같이 오기도 하고, 또 필리핀 사람이 영국인가 아무튼 다른 나라 사람하고 같이 오기도 하고. 세상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로 모여 살면서 다양한 나라를 다니고 있어!!
이렇게 커플들이 외국에 식당에 들러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걸 가만히 보노라니, 비포 시리즈 생각이 나는 거다. 특히나 비포 미드나잇. 둘이 연인이 되기 전까지는 당연히 서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소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에서, 그들이 다른 얘기는 일절 없이 서로가 서로에 관련된 얘기로만 책 한 권을 꽉 채우는 걸 보지 않았는가. 비포 선셋에서 9년만에 재회한 그들은 다른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고 서로만을 보고 서로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둘이 함께하는 연인이 되었다면, 이제 '내'가 아닌 '연인'의 형태로도 세상 속에 들어가게 돼. 비포 미드나잇에서는 그리스로 놀러간 이 커플이, 그리스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식사를 하고 술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거다. 많은 사람들 속에 '나'이기도 하지만, 이렇듯 많은 사람들 속에 '우리'이기도 한 것. 그래서 윤식당을 찾는 손님들을 보노라니, 비포 미드나잇이 너무 생각나는 거다!!!
내가 이거 돈 내고 보는 거 보고 엄마가 옆에서 '그게 그렇게 재밌냐' 하셨는데, 이제는 옆에 앉아서 계속 나랑 수다 떨면서 같이 보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야, 저거 비빔밥인데 안비비고 먹어 어떡해, 야, 고추장을 잘도 먹네, 쟤네는 그냥 일단 앉으면 맥주를 시키네? 이러면서 세상 즐겁게 보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이거 보고 있으면 남동생이 들어와서 싫어하면서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자고 한다........ 녀석은 숲으로 가길 원하고 나는 세계로 가길 원한다... 인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놓고 페미니즘 영화인 [더 포스트] 에서, 캐서린은 중요한 결정을 내리면서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한다. 당연히 '남자'인 벤은, 자신 역시 잃는 게 많다고 생각하고. 그러나 벤의 '아내'는 정확히 궤뚫어 봤다. 아니, 너는 다른 데 취직할 수도 있고 또 명예가 너에게 남겠지. 그러나 캐서린은 지금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잃게 돼, 그간 그녀가 거기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난의 말만 들어왔고 없는 존재로 취급받았는데, 그러면서도 버텨왔어. 사람은 자꾸 그렇게 없는 사람 취급받으면 자신 역시 그렇게 생각하게 돼, 그런 그녀가 그런 결정을 내린 거야. 아내는 이걸 다 알고 보고 있었던 거다. (정확한 워딩은 당연히 아니고 그냥 내 기억에 의한 뉘앙스로 옮겨온 문장이다) 또한 캐서린은 결정적 순간에 자신에게 조언이랍시고 내뱉는 남자에게 '지금 이 회사는 우리 아버지 회사도 아니고 내 남편의 회사도 아니고 내 회사이다' 고 말한다. 그녀는 누구보다 언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었고, 공부도 많이 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또 그것에 대한 법의 판결이 내려졌을 때, 모든 기자들은 뉴욕타임즈의 회장에게만 달려들어 인터뷰를 시도한다. 같은 결정, 같은 판결을 받은 캐서린에게는 아무도 인터뷰를 요청하지 않는다. 물론 뉴욕타임즈가 더 큰 언론사였지만, 캐서린은 조용한 퇴장을 한다. 그러나 그녀가 가는 길에 아주 많은 여자들이 줄을 서 있었고, 그녀가 한걸음씩 옮길 때마다 그녀들은 길을 열어준다. 조용히. 이 영화속 의미 있는 말과 행동은 모두다 여자들로부터 비롯된다. 물론, 없는 사람 취급당하고 고통을 받는 것도 다 여자들의 몫이었고. 나는 특히나 그 위기의 순간, 급박한 순간에 벤이 자신의 집으로 기자들을 불러모아 큰 뉴스를 터뜨리려고 자료를 조사하고 취합하는 과정에서, 여자 기자인 '멕'이 너무 불편해 보였다. 방 안에 촤르륵 보고서를 늘어놓고 이건 어딨어, 저건 어딨어 찾는 과정에서 당연히 엎드리고 쪼그리고 그런 자세를 취하게 되는데, 그녀는 스커트를 입고서 그 모든 과정을 다른 남자기자들과 함께 하는 거다. 스커트 입고 그러기 진짜 세상 힘들텐데.. 어휴... 우리 집이었다면 내가 트레이닝복 바지라도 줬을 거야.... 아니면 수면 바지라도.... 자, 이거 입고 하자, 하고...... 아직도 그녀가 너무 불편했던 것 같아 ㅠㅠ
영화가 끝나고 지하에 있는 마트에 갔다. 비빔국수를 해먹고 싶어서 소면을 사려고 한거였다. 마침 캔맥주 6개를 싸게 파네, 해서 맥주도 집어 들었는데, 얼라리여~ 온 김에 와인을 안사가면 서운하지... 무거우니까 딱 하나만 사자, 하고는 집어들었다. 마트가 이렇게 무서운 겁니다...
이번에 사온 게 끼안띠 와인이어서, 이제 내 방에는 멜롯, 까베르네 쇼비뇽, 끼안띠가 모두 있다. 마음이 여유로워졌어..
이야..너무 좋다..... 내가 나였어도 나랑 살고 싶었을 것 같아... 나는 나랑 살아서 너무 좋아..... 이렇게 술 쟁여놓는 거 세상 좋은 습관이야.....
어쨌든 그래서 나는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요리의 감을 믿고 비빔국수를 만들었다. 김치를 이케이케 썰고 소면 삶아 넣고 고추장 넣고 참기름 넣고 설탕 약간 뿌려가지고 이케이케 비벼주면...겁나 맛있는 비빔국수가 되겠지?
먹어보고 맛없어서 당황했다... 왜 머릿속에서 만드는 거랑 실제 결과물은 이렇게 다르지? 왜죠? 왜 때문이죠? 내 머릿속에서는 진짜 입에 침고이는 비빔국수가 만들어졌는데 왜 때문에 먹으면 누구에게도 만들어 줄 수 없는 맛이 되어버리는거지??
후루룩후루룩 비빔국수를 먹고 있는데 남동생이 마른안주를 사러 나갔다 오겠다고 한다. 마침 엄마가 사둔 황태포 생각이 난다. 국 끓인다고 사두셨던 거.. .야, 귀찮은데 나가지마, 황태 먹어, 내가 소스 요리해줄게, 하고는 안주를 차려냈다.
누나 이거 그냥 집에 있는 간장에다가 마요네즈 넣는 거 아니냐? 이게 무슨 소스 요리한다는 거냐??? 라고 남동생이 물어서, 고추 썰어서 넣었잖아.... 했다.....
비빔국수 맛을 보면 나랑 살지 않는 게 현명하겠지만, 또 이렇게 소스를 근사하게 만들어 내놓는 걸 보면 역시 나랑 사는 게 답인 것 같다. 무엇보다 술 쟁여놓는 나.... 넘나 만족스러운 것. 후후훗.
[더 포스트]에서 캐서린은 수차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다. 이사회 에서도 그녀는 많은 자료를 준비했지만 그녀가 작게 내뱉는 말은 무시되기 일쑤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나는 당신이 보여요' 라고 말을 해주고 싶었다. 제목은 그래서 나온 것. 이 대사는 영화 [아바타]에서 나온 걸로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