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전 썸남과 있었던 일이다. 아직 연인이 되기 전 썸을 타고 있을 때, 퇴근길에 여느날처럼 통화를 하는데, 그가 어찌저찌 알게된 여자가 저녁을 함께 먹자고 했다는 말을 내게 전해왔다. 내 머릿속은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세상의 반은 남자고 반은 여자다, 학교를 다니든 직장을 다니든 우리는 숱하게 많은 남자와 여자들과 아는 사이가 되고, 그러다보면 이 사람과도 저 사람과도 밥을 먹게 되는데, 그 때마다 일일이 '그 사람이랑 어떤 관계가 될까'를 걱정할 순 없다. 나 역시 업무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남자사람들과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술도 마시는데, 그게 뭐 대수라고... 그냥 밥 한 끼 먹는거다... 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멀리 있고 그 여자는 그의 가까이에 있는데, 물리적 거리에서 내가 지고 들어가는데, 나에게도 어느 정도 그의 연인이 될 가능성이 열려있는 상황이라면 그 여자에게도 마찬가지로 열려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여자쪽에서 밥을 먹자고 한 건 여자쪽에서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그 가능성은 그여자에게 훨씬 더 크게 열려있지 않은가, 나는 그가 그여자랑 밥을 안먹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내가 그의 애인도 아닌데 다른 여자랑 밥먹지 말라는 말을 할 수 있는가, 그럴 순 없다, 그러면 그냥 먹게 둬야 하고, 그러다가 어떤 일이 벌어지면 다 내가 감당해야 하는가, 감당하자, 그런데 감당하기 싫다, 졸라 아프겠지...이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뒤죽박죽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 격렬한 질투가 끓어오르고 말았다. 이 감정은, 상대에게 감추려고 노력했지만, 나는 감정을 감출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이 되질 못했고, 그래서 그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는 '응, 세상의 반이 남자고 세상의 반이 여잔데, 뭐 밥을 먹을 수도 있지, 먹어요' 라고 했지만, 이미 내 목소리와 말투 억양에서 내 질투는 다 표출되고 있었고, 그래서 그에게도 전해져버리고 말았다. 그는 내 질투를 짐작하고 내게 물었는데도 나는 아니야 괜찮아, 라고 말했지만, 곧 울 것 같은 감정에 휩쓸리고 만 것이다. 아, 이 미친 질투여...




나는 집착과 질투를 타도해야 할 감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질투만큼 자발적인 고통도 없다. 질투가 어리석다는 것을 몰라서 질투를 멈추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질투에 대한 잠언이나 충고처럼 비현실적인 것도 없다. 나 역시 <질투는 나의 힘>의 원상(박해일 분)과 비슷한 상태로 오랫동안 고통을 찾아다녔다. 나중에는 지쳐서 질투가 나를 지배하지 않는 평온한 마음조차, 내 것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 뒤로는 부대끼고 바닥에 패대기쳐진 것 같은 비참한 감정이 나를 찾아오면, '그래, 너 왔구나' 하며 인사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질투에 시달리는 나를 포기하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또 다른 내가 더는 나의 목을 조르지 않도록 무릎 꿇고 빌수밖에 없다. 어차피 나는 '연적'만큼 매력적일 수 없었다. 매력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이므로, 내 매력을 찾기 전까지는 말이다. (p.144-145)



집착과 질투가 없는 사랑은 '수준 높은' 사랑이 아니라 절실하지 않은 사랑일 뿐이다. 사랑은 나의 감정이 타인의 가슴으로 옮겨 가는 것인데, 어찌 마음을 비울 수 있단 말인가. 마음을 비운다면 아마 마음이 없어지는 거겠지. (p.144)



질투는 자기 증오이며 자기 몰두이자 결국 자기 도취다. 질투와 성찰은 같은 장소에서 출발하지만 방향은 정반대다. 성찰은 한자[省察] 로도 영어[reflexible]로도 모두 재귀적(再歸的) 의미를 갖는다. 끊임없이 자기를 갱신하는 것, 자신에게로 돌아가 스스로 수정하는 사유 과정이다. (p.148)


















나는 나의 이 질투에 당혹스러웠다. 그간 '나는 질투 따위 하는 사람이 아니야', '나는 쿨해'를 입에 달고 살았는데, 내가 이토록 깊은 질투를 이토록 뜨겁게 타오르게 하다니, 나 자신에게 당황스러웠다.


물론,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저 때의 질투는 그가 아직 나의 연인이라는 포지션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 너무도 연인이 되고 싶은데, 그 연인이 될 가능성이 내게 열려있는 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열릴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찾아온 질투라는 것을 안다. 만약 내가 그와 연인이었다면, 그 뒤에 그가 어떤 여자와 식사를 한다고 해도, '응 다녀와'를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 때의 나, 아직 내가 그의 옆자리에 있다는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불확실한 위치에 있으면서 질투를 하지 않기란 불가능했다. 만약 저 때의 내가 질투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도 저 남자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일 테다. 질투는 분명 괴로운 감정이고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기 때문에 내가 느끼지 않는 것이 좋았겠지만, 그러나 어정쩡한 포지션에서라면 어떤 감정이든 휘몰아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썸남은 다음날 아침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회사에 출근했고 아직 업무를 시작하기 전, 이른 아침이었다. 나는 여보세요, 하고 전화를 받았고, 그는 내가 전화를 받자마자 다짜고짜 물었다.



"너 왜 오늘 출근한다고 연락안해?"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원래 출근한다고 매일 말했었나? 잠시 갸웃하고 있는데, 그가 연이어 내게 말했다.



"나 밥 안먹을거야. 그 여자랑 밥 안먹을 거니까 연락해!"



아 나는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빵터져서 어찌나 웃었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사실 그 날 아침의 내가 연락을 안했다는 거 잘 모르고 있었고, 내가 매일 했었는지도 모르겠고, '그 남자 다른 여자랑 밥먹는다니 빡치니까 연락하지 말자'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 남자는 내게 전화를 걸어 '다른 여자랑 밥 안먹을 테니까 연락해' 라고 한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너무 좋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질투는 할만한 것이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리고 질투라는 감정이 내게 찾아들었다면, 그것은 표현되어야 마땅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생각하니까 또 웃기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뒤로 그와 나는 연인이 되었다.


좋은 시절이었다...

But it's over now.





나는 <하얀 궁전>의 두 사람은 서로를 '필요로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영화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필요한 사람이 필요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실제로 나타난 적은 없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나의 영원한 판타지다. 인생의 어느 고비에서 많은 이들이 그럴 것이다. 누구나 특정 시기에 절실히 어떤 사람이 필요하다. "제발 도와주세요." 이토록 사람이 필요할 때가 있다. 문제는 필요한 관계를 얻으려면, 그 관계를 오래 이어 가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를 아는 것이다. 너무 절실하게 필요하면 분별력이 사라져서, '아무나'가 상대가 되고 그 상처로 다시 절실한 필요가 더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p.38-39)




위의 부분을 읽고 부랴부랴 하얀 궁전이란 영화를 옥수수에서 다운 받아 놓았다. 아직 보진 못했지만.

나 역시 위의 부분과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아주 많이 아프고 외로웠었을 때, 어떻게든 자존심을 꼿꼿이 다시 일으키고 싶었을 때, 마침 한 남자가 다가왔고, 나는 그에 대한 내 마음에 대해 어떤 것도 질문하지 않은 채로 그와 연인이 된 적이 있다. 어떻게든 이 시기를 벗어나야겠고, 그 때에 그는 내게 필요한 사람이었는데, 문제는 그가 내가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나의 상대가 되었지만, 사실, '아무나' 였다. 그 시기에 다가오는 사람은 그가 아니어도 되었다. 결국 그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고, 나에게 지독한 후회만을 남겼다. 내가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수차례 생각했고 여전히 생각한다.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아주 크고 또 죄책감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내 인생에서 내가 지워버리고 싶은 실수에 해당하는데, 그래서 나는 이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로 결심에 또 결심을 했다. 이 일을 또 만들어서 악순환을 반복시키고 싶지도 않고, 또 상대를 위해서도 그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혼자만의 삶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다시 또 흔들리게 되는 경우가 몇 번 더 찾아왔다. '나는 과거에 이런 일이 닥쳤을 때 상대를 생각하지 않고 내 감정만 중요하게 생각해 선택했다가 크게 후회한 적이 있다'는 것을 자꾸만 스스로에게 상기시켰다. 오래전에 써둔 일기도 도움이 되었다. 같은 고민을 똑같이 몇 해전에 해두었더라. 그래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도 조심, 또 조심해야지.





아주 오래전 KBS 와 MBC 가 토요일에 영화를 보여주었다면 SBS 는 금요일에 영화를 보여주었는데, 나는 당시에 그 모든 영화를 거의 챙겨보려고 했던 사람이라, 그 때, '킴 베신저'와 '리처드 기어' 주연의 영화, 《노 머시》를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를 지금 다시 본다면 까댈 것 투성일 것 같은데, 중학교시절의 나는 아주 재미있게 봤더랬다.




아주 오래된 영화라 기억은 희미한데, 리처드 기어는 형사였고 킴 베신저는 어느 폭력배 조직 보스의 여자였다. 리처드 기어가 무슨 클럽인가에 가서 보스의 여자에 대한 얘기를 다른 누군가와 나누는데, 그 때 바로 대화상대가 '저 여자다' 라고 하고, 킴 베신저의 뒷모습이 비춰진다. 아직 얼굴을 보기 전, 등이 파진 원피스를 입었던 킴 베신저의 어깨에는 문신이 있었다. 내 기억엔 한 쪽 어깨에 새 문신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쩌면 목 뒤에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자연스레 리처드 기어와 나 둘다, '어깨에 문신 있는 여자 보스의 여자' 같은 걸 알게 되었는데, 그 뒤로 무슨 사정이 있어 보스의 여자와 형사는 조직에게 함께 쫓기게 된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남자와 여자는 사랑에 빠지고....



이 영화에서 킴 베신저가 글을 읽지 못했다는 것과 등의 문신이 계속 기억에 남는다.



지난 번 하노이에 갔을 때, 호텔 앞에 '타투'라고 쓰여진 가게가 있었다. 그간 타투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었던 나는, 갑자기, '저기 들어가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하게 됐고, 그러다 이내 포기했다. '뭘 하려고 해도 짧은 영어로 어떻게 설명하겠냐... ' 싶었던 것. 그전까지 타투를 할 생각도 아니었기에 절실한 것도 아니었고, 순전히 순간적이고 충동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그 뒤로 놀랍게도 머릿속에 타투만 생각나는 거다. 그리고 타투한 사람만 보여. 세상 모든 사람들이 타투를 한 것 같은 거다. 아아, 안되겠어, 이 생각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타투를 내가 직접 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하고는, 그래,



나는,

지난 토요일에 타투를 했다.




하하하하하. 하는 동안에 너무 아파서, 한 군데 더 하려다가 포기했다. 아, 나의 타투는 이것으로 끝내자, 하고. 그렇게 내가 타투를 했다는 이야기.

크, 페이퍼의 제목은 질투와 타투. 라임이 끝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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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eg 2018-03-13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락방 2018-03-13 06:2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제가 다시 읽어봐도 재미있긴 하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심술 2018-03-13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투족이 되셨군요.
근데 첫 타투 글 인터넷에 올리시는 분들은 흔히 타투 사진이랑 같이 올리시던데
락방님 타투는 뭘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언제 공개할 마음의 준비가 되시면 타투 사진도 올려주시길.

다락방 2018-03-13 21:33   좋아요 0 | URL
저도 공개하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 육신이 비루하여 예쁜 사진을 건질 수가 없더라고요 ㅋㅋㅋㅋㅋ 해서, 오프에서 만나는 친구들에게만 보여주기로 했답니다. 으하하하핫

2018-03-15 2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16 0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