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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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을 소재로 한 책이 갖는 가장 큰 미덕은 뭘까. 아마도 다른 책들에 대한 이야기일것이다. 우리는 서점이나 책을 다룬 책에서 내가 읽은 책이 나오면 작가와 나의 감상을 비교하며 즐거워하거나 혹은 '내가 이미 읽은 책인데!' 하며 즐거워하기도 한다. 또한 모르는 책이 나오면 메모를 하며 다음 읽을 책으로 점찍어두기도 하고. 이 책은 앨리스라는 섬에 있는 유일한 서점의 이야기이다. 서점 주인 에이제이는 2년전에 아내를 잃고 혼자사는 39세의 남자인데, 싫어하는 책의 종류가 아주 많고 성격은 까탈스러우며 사람들한테도 잘 대하지 못하고 사실 아내를 잃은 슬픔 때문에 사는 게 말이 아니다. 책은 파는둥 마는둥 저녁마다 술에 취해 잠들고 아내의 환영을 보게 되는데, 이럴때 출판사 직원 어밀리아가 책을 영업하러 왔다가 좀 안좋은 기억을 갖고 돌아가게 된다. 


그런 퉁명스런 에이제이의 서점에 갓난 아이가 놓여진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서점에서 자랐으면 좋겠다며 부탁한다를 쪽지를 남겨놓고 가버린 후다. 꼬박 주말을 그 아기 '마야'와 보낸 에이제이는 위탁가정에 보내려던 마야를 자신이 키우기로 하고 입양한다. 갑자기 에이제이는 두 살난 마야의 아빠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에이제이는, 계절마다 한번씩 출판사 직원 어밀리아를 만나다가 그녀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데, '난 이런 책 싫어!' 하고 버럭거렸던 책, 그녀가 처음 만났을 때 꼭 읽어보라고 추천했던 책을 4년만에 읽고서는 엉엉 운다. 아 이 책이 좋은 책이었구나. 그 책을 소재로 어밀리아와 대화를 나누게 되고 같이 식사도 하게 되고 그렇게 조금 더 친해졌다고 생각하는데, 어밀리아는 그에게 애인이 있다고 말한다. 에이제이는 절망해서 소개팅을 몇차례 해보지만, 대부분의 소개팅이 그렇듯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은 지나치게 착하고 뻔하다. 그러니까 서점에서 일어나는 일, 그 서점 혹은 섬에서 일어나는 로맨스라고 해봐야 충분히 짐작가능한데, 그렇다고 그 착하고 뻔한게 싫다는 건 아니다. 인생이란 게 어차피 뻔한 거 아닌가. 가끔 착하기도 하면서. 또한 이 책을 읽기로 결정했을 때 우리가 혹은 내가 가장 기대하는 건 물론 다른 책들에 대한 이야기 혹은 책에 얽힌 이야기일텐데, 이 책은 그걸 충실히 채워준다. 다른 책들의 이야기, 다른 책속의 주인공이나 저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내가 각주를 보지 않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이 책 속의 등장인물들이 하는 이야기가 뭔지 내가 알 수 있다는 거 진짜 너무 신나지 않는가! -언젠가도 한 번 얘기했지만,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은 여러분 꼭 읽어보시라. 외국 소설에서 핍과 해비셤 부인은 정말 자주 등장한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알고 있다면 주석을 볼 필요가 없어!!- 게다가 《클로디아의 비밀》로 마야와 동네 경찰관이 나누는 대화는, 그 내용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웃을 수 있다. 내가 읽은 책들이 다른 책 속에서 소재로 사용된다는 건 너무 신나는 일인데, 이 책이 그걸 해준다. 이것만으로도 뻔하지만 즐거운데, 뻔하고 즐거운 게 이뿐만이 아니다. 그러니까 로맨스!



로맨스 역시도 뻔하고 즐겁다. 


연애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일까? 함께 사는 데 가장 중요한 건?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에서 여자가 함께 살 애인에게 자신의 책장 반을 비워주는데 거기에 각종 트로피만 진열한 걸 보고 그와 헤어지기로 결심하는 장면이 나온다. 침묵과 대화를 함께 나눌 수 없다는 건 비극임을 알고 있기에.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 어밀리아는 출판사의 책들을 서점에 소개하는데 에이제이가 그 책들을 부지런히 열심히 읽고, 읽을 때마다 어밀리아에게 메일로 혹은 문자로 감상을 얘기하며 그에 대한 대화(당연히 농담이 섞인!)를 나눈다. 에이제이는 그녀가 좋아하는 드라마도 보고 그에 대한 농담도 그녀랑 나누게 되는데, 한 계절을 보내고난 후 어밀리아는 그에게 애인과 헤어졌음을 얘기한다. 




저녁을 먹고 두번째 와인병을 딴 후에야 드디어 에이제이는 그녀와 브렛 브루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볼 용기를 냈다.

어밀리아는 슬몃 웃었다. "사실대로 말해도, 당신이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안 그럴게요. 약속합니다."

어밀리아는 남은 와인을 쭉 들이켰다. "지난 가을에, 우리가 내내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을 때…… 저기, 당신 때문에 내가 브렛과 깨졌다고 생각지는 말아줬으면 싶군요. 그런 게 아니니까. 내가 브렛과 헤어진 건, 당신과 얘기하면서 다른 사람과 감수성을 공유하고 열정을 나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기억해냈기 때문이에요. 바보 같죠." (p.159)



나는 저것, 감수성과 열정을 공유한다는 게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항상 함께할 사람, 가장 가까운 사람과 필요한 것도 바로 저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때로 돈이 더 중요하다, 외모가 더 중요하다 등등 다른 조건들을 더 중요하게 내세울 수 있지만, 그래서 그런 상대를 맞춤하게 찾았다 하더라도, 결국 감수성을 공유할 수 없다면 그 관계가 좋은 상태로 오래갈 수는 없다. 그러다보면 내 애인, 내 배우자는 아니지만 감수성을 공유하는 '다른 사람' 혹은 '다른 관계'가 생기게 되는데, 어밀리아가 만약 애인 브렛과 헤어지지 않고 애인 관계를 유지하게 됐다면 어밀리아는 에이제이와 정서적 유대관계를 찐하게 맺게 됐을거다. 브렛으로부터 충족할 수 없었으니까. 에이제이가 어밀리아를 좋아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관계는 그러니까, 부조리하지 않은가. 마음 한구석에 응어리 남는 관계가 될 수가 있어. 그런 점에서 어밀리아가 브렛과 헤어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어밀리아와 에이제이는 연애를 시작하게 되는데, 버스 타고 배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에 사는 에이제이와 도시에 사는 어밀리아의 거리는 멀고도 멀어서, 주변에서는 이들의 연애를 말린다. 그리고 그들도 그들 사이의 이 물리적으로 먼 거리가 그들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느 한 쪽도 자신의 일인 '출판사 영업직원'과 '서점 주인'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 



개인적인 얘기로 들어가보자면,

나 역시 먼 거리에 있는 남자와 연애를 한 적이 있다. 우리가 어떤 함께살 미래를 꿈꾸거나 한 게 아니었음에도 그 연애는 즐겁게 유지됐었는데,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친구로부터 '너네 그렇게 멀리 있어서 어떤 가능성도 없는데 그 여자를 놔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그 얘기를 듣고 내게 '우리가 이렇게 지내는 게 부질없는 거냐, 이게 의미없는 거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매우 화가 났었다. 왜 다른 사람의 연애에 이러쿵 저러쿵 하는걸까? 우리가 지금 이대로 잘하고 있는데 왜 다른 사람이 놔주라 마라 하는거지?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있을지 혹은 없을지는 제삼자가 판단할 몫이 아니지 않은가. 안그래도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 가끔 그런 고민에 놓이게 된다. 어차피 이 물리적 거리를 극복하지 못할거라면 우리가 지금 이러는 것은 다 부질없는 짓인가.... 하는 그런 고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고 이렇게 지내는 것에 기쁨과 행복함이 존재하기 때문에 지내고 있는데, 거기에 왜 끼어들어서 놔주라 마라 하는걸까. 어떻게든 결론은 우리 스스로, 당사자가 내려야 하는 게 아닌가 말이다. 만약 멀어서 헤어졌다면 그것도 내 몫이요, 먼 거리를 극복하고 누군가가 이동했다면 그 역시 우리 몫이란 말이다.



어밀리아는 페리에 올라서 에이제이에게 전화했다. "난 프로비던스에서 못 움직여. 당신은 앨리스에서 못 나오고. 해결방안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지."

"그렇지." 에이제이는 동의했다. (p.168)



"이건 너한테 불공평한 일이야. 넌 서른여섯이고, 앞으로 더 어려질 리는 없잖니. 네가 진심으로 애를 갖고 싶다면, 불가능한 관계에 시간을 낭비하면 안돼, 에이미." (p.168)



"제부가 그 어밀리아란 사람하고 정말 진지한 게 아니라면, 그 사람이 제부 인생에 그렇게 큰 부분을 차지하게 만드는 건 마야한테 불공평한 일이야."

그리고 대니얼이 에이제이에게 말했다. "여자 때문에 삶을 바꾸다니 안 될 일이지." (p.168)



에이제이는 이 먼 거리와, 포기할 수 없는 자신들의 직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청혼한다.



"결혼합시다." 그는 거의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난 섬에 처박혀 있고, 가난하고, 애도 딸렸고, 수익이 점점 줄어드는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거 잘 알아요. 당신 어머니가 나를 싫어하고, 작가 이벤트를 주최하는 일에는 영 젬병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특이한 청혼이네." 어밀리아가 말했다. "당신의 장점부터 시작해야지, 에이제이."

"내가 말할 수 있는 거라곤…… 내가 말할 수 있는 거라곤, 우린 함께 헤쳐나갈 수 있을 거예요, 맹세코. 나는 내가 읽는 책을 당신도 같이 읽기를 바랍니다. 나는 어밀리아가 그 책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내 아내가 되어주세요. 당신에게 책과 대화와 나의 온 심장을 약속할 수 있습니다." (p.193)



내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말하는 건, 네가 있는 곳으로 갈게 라는 말보다 더 힘든 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건 '내가 다른 걸 포기하고 너에게 갈게' 가 아니라, 상대에게 다른 걸 포기하고 내게로 오라는 걸 뜻하는 거니까. 상대에게 포기하게 만드는 건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결코 아니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걸 건네는 것 또한 사랑이고 용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도 쉽게 낼 수는 없는 용기. 내가 먼 거리에 있는 사람과 연애했을 때, 나는 그가 오라고 하면 언제든 가겠다는 마음가짐이었지만, 이런 마음을 가진 나라도, 아무리 나라도, 그에게 '당신이 내가 있는 곳으로 와' 라는 말을 할 순 없었다. 그건 해서는 안되는 말로 내게 여겨졌다.




어밀리아는 미간을 찡그렸고, 에이제이는 그녀가 거절하려나 보다 생각했다.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그녀가 마침내 말했다.

"오코너의 단편을 말하는 거야? 당신 책상 위에 있던. 이런 순간에 떠올리기엔 지독히 어두운 건데."

"아냐, 당신을 말하는 거야. 나는 끝없이 찾았는데. 겨우 기차 두 편과 배 한 척 거리였군."

"차로 다니면 기차는 좀 생략해도 돼." 에이제이가 말했다.

"당신이 운전에 관해 뭘 아는데?" 어밀리아가 물었다. (p.194)




버스 타고 배 타고 기차 타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차 두 번과 배 한 번 이었구나. 고현정과 조인성이 나왔던 드라마에서 고현정과 조인성도 아주 먼 거리에 있었더랬다. 조인성이 슬로베니아에 있었지 아마. 그래서 그들도 자주 만나지는 못하고 있었었는데, 어느날 충동적으로 고현정이 공항으로 달려가 비행기 티켓을 끊고서는, 그래봤자 열여섯시간(이 맞나 모르겠다)이면 갈 수 있는데, 그 시간이면 되는데!! 하는 거다. 에이제이와 어밀리아도 마찬가지. 기차 두 편과 배 한 척 거리라고 말해버리니, 뭐 괜찮아지는 것 같은 거다. 물론 실질적으로 이동하는 건 다른 문제지만 말이다.


게다가 저 장면에서도 우리 책 읽는 사람들은(책부심 독서부심 가득만땅), 으하하핫, 플래너리 오코너,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내가 알지, 읽었지, 할 수 있게 되어 몹시 즐겁다. 게다가 나 역시 '어? 이건 이럴 때 가져올 수 있는 책이 아닌데? 어두운데?' 하게 되는데, 역시나 그런 식의 대화가 이어지는 거다. 크- 책을 읽는 사람이 책에 대한 책을 읽는다는 건 이렇게나 짜릿한 기쁨을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즐겁지 아니한가. 




에이제이가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고, 어밀리아 역시 마흔을 곧 앞둔 나이라는 것, 그런데 짝을 만나 결혼했다는 게 나는 너무 좋다. 나이 들어 결혼하는 부부가 반드시 더 잘 산다는 보장은 없지만, 삼십대 중반에 만나 결혼한 내 친구 부부를 보면 되게 이상적인 것 같은 거다. 각자가 맡은 역할을 잘하다가 만나 각자가 맡은 역할을 역시 잘해내면서 둘이 조화롭게 지내는 것. 나이 든다고 반드시 성숙해지는 건 아니지만, 성숙한 관계란 건 바로 그런 관계를 말하는 게 아닐까 싶은 거다. 에이제이와 어밀리아의 결혼식에 섬의 경찰관 어머니가 참석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결혼식이라면 원래 다 좋아하긴 하지만, 성숙한 두 사람이 결혼하기로 결심하니까 유독 멋스럽지 않아?" (p.195)



그러자 그녀의 아들은 어머니에게 이렇게 대꾸한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아요, 엄마. 눈 감고 달려드는 걸로 보이지 않는다는 거죠." 램비에이스가 말했다. "남자는 여자가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죠. 여자는 남자가 전혀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고. 둘 다 세상에 완벽이란 건 없다는 걸 알고 있죠." (p.195)




보통의 책이었다면 에이제이와 어밀리아가 결혼하면서 끝났을 거다. 마치 결혼하는 순간 이야기는 끝, 행복 끝이라는 듯이. 그러나 결혼하면서 이책의 겨우 절반 조금 넘는 부분을 지났을 뿐이다. 결혼 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어밀리아는 여전히 출판사의 영업직으로 일하고 에이제이는 서점을 운영하고, 마야는 쑥쑥 자란다. 아이가 자라면서 집도 늘려가야 했고 서점은 섬에서 점점 더 중요한 장소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이야기는 흘러가고 서점은 여전히 섬에 존재한다.


착하고 뻔하네, 라고 읽으면서 좀 심드렁했는데, 응 그렇지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하고는 기쁜 마음으로 읽었다. 나는 정서적 교감, 감수성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나오는 이야기가 무척 좋다. 그거면 된 것 같고 그거면 충분하다. 우리는 결국 우리와 감수성을 공유할 사람을 찾아 시간을 보내면서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는 게 아닐까 싶은 거다. 어밀리아가 말했듯이 그렇게나 찾아 헤맸는데 기차 두 편과 배 한 척 거리에 그가 있었다. 이왕 찾을 거라면, 내 옆집에 살면 얼마나 쉬울까마는, 인생이란 게 또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아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비행기 타고 가야 만날 수 있는 곳에 떠억- 하니, 감수성을 나눌 사람을 숨겨 두기도 한다. 내 감수성이 열세시간 날아가야 만날 수 있는 곳에 있다면, 뭐 어쩌겠는가. 비행기 타고 날아가서 만나야지. 그러려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출근해 돈 벌고 있는 거 아닌가.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든데, 열시간이든 스무시간이든 걸려 어떻게든 만날 수 있는 곳에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인생에 있어서 큰 행운을 쥐게 된 셈이라 봐도 좋겠다.



이런 이야기를 만나는 것도 좋은데 후훗, 읽으면서 혼자 계속 으쓱하고 잘난척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나 그거 알아, 나 그 주인공 알아, 나 그 이야기 알아, 나 그 제목 말아, 하면서 연신 혼자 잘난척 하는 기분이 정말이지 좋단 말이야? 앞으로 읽는 책들에서도 계속 더 잘난척 하기 위해서 지금보다 더 열심히 읽어야겠다. 그나저나 플래너리 오코너의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도 내가 백자평을 써둔 것 같으니 뭐라고 썼나 찾아봐야겠다.



착하고 뻔한 이야기다. 친구에게 말했더니 겨울에 읽기 좋겠다고 한다. 착하고 뻔한 이야기인데, 착하고 뻔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살아야 그나마 삶이 좀 부드럽게 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이 년전쯤 어쩌다 「로링 캠프의 행운」을 다시 들춰보게 됐는데 하도 펑펑 울어서 내 도버 염가 문고판이 수해를 이은 걸 볼 수 있을 거다. 생각건대, 중년이 되니 물러진 것 같구나. 그러나 또한 생각건대, 근자의 내 반응은, 인생의 시기마다 그에 딱 맞는 이야기를 접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말해주는 구나. 명심해라, 마야. 우리가 스무 살 때 감동했던 것들이 마흔 살이 되어도 똑같이 감동적인 건 아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야. 책에서나 인생에서나 이건 진리다. (p.57)

"난 항상 나니아 연대기에 나오는 터키시 딜라이트를 먹어보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 『사자와 마녀와 옷장』을 읽으면서 에드먼드가 터키시 딜라이트 때문에 가족을 배신할 정도라면 그건 진짜 어마어마하게 맛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에이제이가 말했다. "니콜한테 이 얘기를 했었나 봐요, 어느 해인가 아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한 박스를 줬거든요. 근데 가루를 잔뜩 묻힌 꾸덕꾸덕한 사탕이더라고. 내 평생 그때처럼 실망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바로 그 순간 공식적으로 당신의 유년기가 끝난 거군요."
"절대 전 같지 않았지요." 에이제이가 말했다.
"하얀 마녀의 터키시 딜라이트는 달랐을지도 몰라요. 마법의 터키시 딜라이트는 훨씬 맛있다거나."
"아니면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게 에드먼드가 가족을 배신하게 만드는 데는 그리 대단한 유혹이 필요치 않았다거나."
"엄청 시니컬하네." 어밀리아가 말했다.
"터키시 딜라이트 먹어본 적 있어요, 어밀리아?"
"아뇨." 그녀가 말했다.
"좀 구해줘야겠군요." 그가 말했다.
"내가 그 사탕에 환장하면 어쩌려구요?" 그녀가 물었다.
"당신을 얕보게 되겠지." (p.124-125)

"난 어밀리아를 사 년 전부터 알고 있었어." 에이제이가 반박했다. "근데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아직 타이밍이 나쁜 거지. 그 무렵에는 당신 아내가 세상을 떠났어. 그러고 나서 당신한텐 마야가 생겼고."
"별로 위로가 안되는데." 에이제이가 말했다.
"하지만 이봐, 심장이 여전히 뛴다는 걸 알게 된 건 좋은 일이 잖아, 안 그래? 내가 소개팅이라도 알아봐줄까?" (p.134)

"아, 갈게. 거대한 초록 코끼리를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요는,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종류의 여행을 간다고 할 때 실은 다른 종류의 여행일 때도 있거든,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내가 알고 싶은 건 단지 내가 어떤 여행을 가는 건지 하는 거야. 우리가 토피어리를 보러 가는 거야, 아니면 뭔가 다른 걸 보러 가는 거야? 가령 당신의 그 여자사람친구라든가?"
에이제이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잠깐 어밀리아를 보러 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 맞아." (p.154)

"당신은 섬에 정착하면 안 되겠지. 일 때문에 출장을 무척 자주 가야 하니까."
어밀리아는 두 팔을 앞으로 쭉 편 채 에이제이를 붙들고 피식 비웃었다. "그렇지. 근데 나한테 앨리스 섬으로 이사와달라는 부탁을 그런 식으로 하는 거야?"
"아니, 난…… 그게, 난 당신 생각해서." 에이제이가 말했다. "앨리스로 이사하는 건 당신한테 현실성이 없는 얘기잖아. 요는 그렇다는 거지."
"그치, 현실성이 없지." 어밀리아가 말했다.그녀는 형광 핑크색 손톱으로 에이제이의 가슴에 하트를 새겼다.
"그건 뭐라는 색조야?" 에이제이가 물었다.
"장밋빛 안경." 기적이 울렸고, 어밀리아는 배에 올랐다.
그해 봄,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기다리며 에이제이는 어밀리아에게 말했다. "일 년에 새 달만 앨리스에 있으면 안 되겠지."
"아프가니스탄으로 통근하는 게 더 쉽겠다." 그녀가 말했다.
"그나저나 그 얘기를 버스 정류장까지 갖고 와서 꺼내는 게 마음에 드는걸."
"마지막 순간까지 그 생각을 머리에서 떨쳐내려 애썼어."
"그것도 하나의 전략이긴 하군."
"좋은 전략은 아니었다는 뜻으로 알아들을게." (p.165-166)

딱히 글 쓰기에 관련된 사항은 아니지만…… 언젠가 너도 결혼에 대해 생각할 날이 오겠지. 주변에 딴 사람이 있어도 너밖에 안보인다는 사람을 골라라. (p.199)

"섹스는 진짜 오래간만인데." 이즈베이는 자기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말했다.
"괜찮습니다." 램비에이스가 말했다.
"섹스를 해야 한다고요." 이즈메이는 분명히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도 하고 싶다면."
"하고 싶어요." 램비에이스가 말했다. "그게 두번째 데이트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면요. 난 당신이 다른 남자를 얻을 때까지 준비운동 대상이 되고 싶진 않습니다." (p.252-253)

"씨발!" 평생 욕하는 법이 없는 어밀리아였으므로, 에이제이는 뭔가 심각하게 잘못된 게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이야?"
"흠, 문제는, 내가 당신 뇌를 좀 좋아했나봐."
그는 웃음을 터뜨리고, 그녀는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아, 눈물은 됐어. 당신의 동정은 원치 않아."
"당신 때문에 우는 게 아냐. 나 때문에 우는 거지. 당신을 발견하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알아? 끔찍한 데이트를 몇 번이나 했는지 알아? 다시-"이제 그녀는 숨이 찬다."-다시 데이트 사이트에 가입할 순 없어. 그럴 순 없다구." (p.294)

"있잖아, 서점은 올바른 종류의 사람들을 끌어당겨. 에이제이나 어밀리아 같은 좋은 사람들. 그리고 난, 책 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책 얘기를 하는 게 좋아. 종이도 좋아해. 종이의 감촉, 뒷주머니에 든 책의 느낌도 좋고. 새 책에서 나는 냄새도 좋아해."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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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17-11-15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왕 너무 좋은 이야기네요. 책도 리뷰도요. 저의 겨울 독서 리스트에 올리겠습니다. 코코아 마시며 읽겠어요. 책 다 읽고 이 리뷰도 다시 읽어야지! >.<

다락방 2017-11-15 09:37   좋아요 0 | URL
이 시점에 로맨스가 등장하는 거 너무 전형적이고 뻔하지만, 근데 저는 그 로맨스가 무척 마음에 들더라고요. 역시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차야 해요. 하하하. 코코아라니, 너무 좋아요, 네꼬님! 너무 잘어울려요! 저는 따뜻한 커피와 던킨 도넛츠 먹고 있어요. 후훗.

레와 2017-11-15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장바구니를 편집(?)하고 있어요. 이 책도 넣을까 우짤까 막 고민하고.. 어렵다요! ^^;;


다락방 2017-11-15 11:14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면 좋을 책 같아요. 히힛.
물론 막 착하기만 한 건 아니긴 한데 전반적으로 착한 책이고...우리는 가끔은 착한 책을 읽을 필요도 있지 않을까 싶고 말이지요. 후훗.

psyche 2017-11-15 14: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용은 뻔한 이야기인데 책 이야기다보니 밑줄긋고 싶은 부분은 많더라구요. 저도 저 터키쉬 딜라이트 항상 먹어보고 싶었거든요. 도대체 얼마나 맛있었길래 배신을! 하면서요. 먹어본 사람들이 실망이라고 했지만 그래도 먹어보고싶어요

다락방 2017-11-15 15:04   좋아요 2 | URL
저도 터키쉬 딜라이트 궁금하긴 했었는데요 막 그렇게까지 먹어보고 싶거나 그러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걸로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이 이 책에 존재하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그게 이 책의 묘미인 것 같아요. 책 읽고 대화하는 게 가능한 거요. 그걸 보는 게 너무 좋았어요.

psyche 2017-11-15 22:35   좋아요 2 | URL
예전에는 큰딸이랑 그런 대화들을 했었는데 얘가 사는게 바쁜지 어쩐지 요즘 책을 잘 안읽더라구요. 그래서 외로웠던차에 이렇게 북플에서 이런 대화를 할 분들을 만나니 참 좋아요!! 책 많이 읽고 글도 잘쓰고 생각도 깊은 분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다락방 2017-11-16 09:34   좋아요 2 | URL
어떤 관계든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건 진짜 큰 기쁨이죠! 책 읽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면에서 알라딘은 정말 최고의 장소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읽은 책에 대해 얘기하고 감상을 나눌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알라딘에 글을 쓰고 또 다른 분들의 글을 읽는 게 즐거운 것 같아요.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말이지요. 후훗.

단발머리 2017-11-15 15: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아~~ 착하고 뻔하면서도 그리고도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네요.
나는 다락방님 페이퍼 읽으면서 아직 안 읽은 책이 많다는 걸 확인하면서 더 열심히 읽자~~~이런 착한 결심을 하고야 말았어요.
지금 이런 책이 필요해요. 착한 로맨스, 달콤한 사랑 이야기^^
그나저나 나는 뭘 먹으면서 이 책을 읽게될까요? ㅎㅎㅎㅎㅎ

다락방 2017-11-15 15:06   좋아요 2 | URL
맞아요! 착하고 뻔하고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우리는 읽어줄 필요가 있어요. 그러면서 즐거워하고 웃기도 하고 공감도 하고 같이 사랑에 빠지고 그러는 순간이 필요하죠. 후훗.

네꼬님은 코코아 저는 도넛.... 단발머리님은....음.....케익 어떨까요? 아니면 호두파이 같은 것! 후훗.
아, 단팥빵도 좋을 것 같아요. 사실, 뭐든 좋죠. 뭐든 먹으면서 읽어요! 히히.

비연 2017-11-16 14: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망설임없이 보관함에 넣으며... (사실은 장바구니..)
락방님. 너무 합니다. 생각하게 되네요 ㅜ 며칠 전에 올해 마지막 책을 구입했었었었더랬는데요.
근데 안 넣을 수가 없어서 이 책을 넣으니.. 다른 책들도 함께 들어갈테고.
아. 전 아무래도 책더미와 함께 집에서 쫓겨날 거 같습니다..ㅜㅜㅜ

다락방 2017-11-16 14:04   좋아요 3 | URL
그런 비연님께 기쁜 소식 하나 전하자면, 이번에 새로 올라운 굿즈-식판입니다!!-를 받을 수 있는 해당도서입니다. 그러니 지르시고 식판 받으세요!! ㅎㅎㅎㅎㅎ
저도 식판 받으러 갑니다. 슝-

식판 받아서 거기다 밥 먹으며 다이어트 하려고요...(응?)

책도 사고 다이어트도 하고 일석이조!! (응?응?)

즐건독서 2023-01-15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관한 책. 서점에 관한 책들은 책 구매에 있어서 탑픽 주제이나,
여기서 터질줄이야.

p219

˝우리 엄마는 삶을 포기했잖아요?˝
이유가 있었을 거야. 분명 네 어머니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거라고.˝ 어밀리아의 어머니는 이태 전에 세상을 떴다. 그들 모녀의 관계는 때론 위기도 있었지만, 어밀리아는 뜻밖에도 어머니가 맹렬히 그리웠다. 가령, 어머니는 죽을 때까지 격월로 딸에게 새속옷을 부쳤다. 어밀리아는 평생 단 한 번도 스스로 속옷을 살일이 없였다. 최근에서야 티제이맥스의 란제리 매장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고, 팬티를 고르면서 울음이 터졌다.

‘나를 그토록 사랑해주는 사람은 다시는 없을 거야.

잔병치레 한번 없으셨던 어머니.

손주, 자식들 온 가족들과 여행하고 돌아와 저녁 식사중에 갑작스럽게 어머니 돌아가신지 150일.

내가 좋아하던 마늘쫑 늘 챙겨주셨던 어머니.

시장 밑반찬 집에서 고르다가 뻥 터져버린 내 눈.

내 공허함을 여기서 공감 받는다.

잊었던 책을 읽어야 할 이유 또 한가지를 또 깨닫게 된다.

공감하고 위로 받고
 

나의 여덟살 조카가 아주 아기였을 때부터 책을 좋아하기를 내가 그렇게나 바랐지만, 조카는 내 바람과는 다르게 자랐다. 볼펜을 분해하고 레고를 맞추면서, 그림을 그리고 태권도를 하면서 즐거움을 찾는 아이로 자란 것이다. 줄넘기를 열심히 할 때는, 저 애는 대체 앞으로 어떤 아이가 될까? 그 무한한 가능성에 기대와 기쁨을 섞었었는데, 아아, 무릇 사람에겐 다 그런 때가 오는 것일까, 아니면 내 조카에게 그런 때가 오는 것일까. 이 여덟살 조카가 얼마전부터 책 읽기의 재미에 풍덩 빠진 것이다. 내가 책을 읽어줘도 집중을 못하고 금세 다른 장난을 치던 녀석이, 아니, 요즘엔 학교 도서관에서도 책을 엄청 빌려 읽는다는 거다. 아침에 밥 먹기 전에 조용해서 뭐하나 보면 책을 읽고 있다고 한다. 와!!


지난 주말 여동생으로부터 이 얘기를 듣고는 조카에게 책 읽는 거 재미있냐 물었더니 재미있다고 한다. 나는 너무 신기하고 기쁘고 막 좋고 그랬는데, 아아, 역시 내 조카야, 잘 자랐어!! 하고 뿌듯해했는데, 하하하하, 여동생은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데 책 읽고 문제 푸는 건 못풀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했더니, 그러니까 지문에 '나는 가족들과 가족 신문을 만들었다, 아빠는 뭘 하고 엄마는 뭘하고 동생은 뭘하고 나는 뭘했다' 라는 식으로 나왔고 문제는 '나의 식구는 모두 몇 명인가요?' 였는데 여기에는 '네 명!' 하고 답을 잘했다는 거다. '나의 식구는 누구누구인가요?'라는 질문에는 그런데 이 조카가 아빠 엄마와 함께 자기와 나의 둘째조카 이름을 썼다는 거다. 여동생은 빵터져서, 얘야, 이건 이 글 속의 '나'에 대한 거니까 이 아이의 입장에서 써야지, 했더니, 나의 여덟살 조카는 '아 그런거야? 난 왜 갑자기 내 동생 얘기는 묻나 했어' 했다는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조카가 어제 내가 퇴근할 무렵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반갑게 전화를 받았는데, 아니 글쎄 이 녀석이, 학교에서 주는 독서우수상을 받았다는 게 아닌가. 이걸 자랑하고 싶어 내게 전화한거다. 물론 제 할머니와 삼촌에게도 자랑했고. 내가 한껏 신나하는 조카에게 역시나 큰 목소리로 축하한다고 말하자, 녀석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역시 이모 조카지?"



아이고 이녀석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사랑한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지난 주말에는 조카네가 놀러왔었다. 나는 토요일에 조카에게 이 책 읽어보라고 주었는데, 조카는 토요일에는 이 책을 읽지 않고 나랑 컬러링북을 칠했고, 나를 타고 올라 짓이겼고(!?), 텔레비젼을 보았는데, 일요일 오전에는 술병으로 일어나지 못하는 나를 두고는 이 책을 가지고 거실 소파로 나가 읽었다. 그리고는 점심 무렵 비틀거리며 일어난 내게 '이모 이 책 재미있더라' 하는 거다. 후훗. 그래? '응, 똥푸 웃겨' 이러는 거다. 나는 조카에게 '이모도 다 읽었어. 이거 이모 친구가 이모랑 타미 읽으라고 준거야' 했다.


이 책에는 총 세 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첫번째 이야기가 <쿵푸 아니고 똥푸>이다. 내 조카는 이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했다. 나는 두번째 이야기 <오 미지의 택배>를 읽고 눈물이 그렁그렁 해졌더랬다. 내심 조카는 세번째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똥 얘기가 더 재미있었던 듯. <쿵푸 아니고 똥푸>에서 가장 좋았던 건, 스파이더맨도 번개맨도 출동하기 전에는 모두 똥을 싼다는 거였다!! 아니, 당연히 그렇겠지!! 출동한 후에 똥마려우면 ... 좀 그렇잖아? 하하하하하.




그러니까 토요일에 제부랑 남동생이랑 여동생이랑 술을 마시는데, 분위기가 좋고 즐거웠다. 게다가 제부는 안주며 술을 집에서 준비해온거다. 제부네 집에 가도 안주를 제부가 만들어주는데 우리 집에 와도 제부가 준비해오네 ㅋㅋㅋㅋㅋㅋㅋ 그러면서 며칠전에 내가 중국술에 관련된 영상을 보여줬었는데, 그거 보더니 연태고량주? 뭐 그런 34도 짜리 술을 사온 거다. 이야기도 잘 풀리고 술도 술술 들어가고, 우리는 연태주를 다 먹고 제부는 소주를 마시고 나는 집에 있던 선물 받은 위스키를 들고 나와 마시기 시작했다. 술자리가 파하고 남동생과 둘이 분리수거를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일어나보니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이렇게 되었고..... 그래서 계속 침대에 누워 있었고.....머리가 아파서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고......... 여동생이 편의점에 가 모닝케어를 사다줬고................ 그런 채로 조카들과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조카들아 잘가, 했고...........오후 한 시 무렵이 되어서야 몸을 일으킬 수 있었는데,



어느 틈에 기억은 절단났고..... 엄마가 '너 비틀거렸다'고 해서 아아, 그런 것 같다...하고 어렴풋이 기억났고..... 



오후에 남동생이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셔. 누나 무섭더라' 하고 막 화를 내거나 잔소리를 한 게 아니라 다정하게 말해줘서... 내가 남동생에게 그랬다. '응 내가 정신 잃고 많이 마셨네. 앞으로 조심할게.' 라고 했다. 잠시후 엄마가 내게 '너 무슨 술을 그렇게 먹냐'고 또 그러셔서 '방금 얘한테 혼났어. 엄마 이제 조심히 마실게' 라고 했다. 그리고 어제. 아빠는 일요일이 아닌 어제 나를 보았는데, 하하하하, 속 괜찮냐고 물으시더니, 하하하하



너 티비 부술 뻔 한 거 기억나냐?



하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말을 들으니 또 어렴풋이 기억이......... 내가 비틀거리며 티비 쪽으로 쓰러질라 그러길래 아빠가 붙잡았는데 너도 놀랐는지 주저 앉아서 티비를 멀뚱멀뚱 보더라, 하셨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핳. 나는 '아빠도 나 취한 거 다 봤어?' 했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마는 옆에서 '야, 아빠 앞에서 딸이 잘하는 짓이다' 하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모든 식구가 다 봤구먼 나 비틀거리는 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술을 조심히 마시자!!



















어제 강화길의 《다른 사람》을 읽고 몹시 울적해져서 따뜻한 책을 읽고 싶었다. 마침 다른 알라디너의 글에서 이 책에 대한 걸 보았고, 오호라, 내가 이럴 줄 알고 다 사두었지... (책 사기 만세!!), 하고는 책장에서 이 책을 빼들었다. 서점 이야기이다 보니 책과 주인공 혹은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부터 나오는데, 거기에 죄다 각주가 달려있고, 그러나 나는 각주를 보지 않아도 다 아는 주인공들이어서-롤리타, 제인 에어, 호밀밭의 파수꾼, 오만과 편견- 넘나 씐난 것 ㅋㅋㅋㅋ 그리고 이런 부분!!



맙소사, 그는 니콜이 보고 싶다. 니콜의 목소리와 목, 심지어 겨드랑이마저 그립다. 니콜의 겨드랑이는 고양이 혀처럼 우둘투둘했고, 저녁 무렵이면 상하기 직전의 우유 같은 냄새가 났다. (p.33)



상하기 직전의 우유 같은 냄새가 나는 겨드랑이를 그리워하다니, 이것은 겨드랑이 패티쉬일까 아니면 지독한 사랑일까? 나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처음 보는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이 작가의 작품 중에 이 책, 《마가렛 타운》이 이미 내가 읽은 책이더라. 우왕- 나 좀 짱인듯!! 우하하하하. 내가 독서우수상 받는 조카의 이모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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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 - 제2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화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부터 시작된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겪었던 일, 겪었다기보다는 '당한'일, 내가 어찌할 수 없었던 일들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내가 얘기를 할 때 내가 당한 일이 나 혼자만 당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는데, 이렇게나 많은 피해자가 이렇게나 자기 자신을 원망하며 살고 있었다니, 이 삶들을 다 어찌하나 싶었다. 아주 많은 여자들이 그간 말하지 못했던 것을 이제야 말할 수 있게 된 데에는 '내 잘못이 아니다'라는 걸 인식하기까지 그만큼 오래 걸렸다는 뜻일테다. 그리고 물론 아직도 여전히, 그것이 자기 잘못인줄 안 채로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는 것도 안다.


이 경험을 남자들에게 얘기했을 때는 반응이 달랐다. 남자들은 그저 '안된(혹은 안타까운) 일'로 생각했고 분석하려 했다. 그걸 극복하라 했고 이겨내라 했다. 그들은 애시당초 이해가 불가한 사람들이었고 공감 자체가 안되는 사람들이었다. 누구에게나 상처는 있는 법이라고 생각하며 그것들 중 하나로 여기는 듯했다. 내 고통이 얼마만큼의 고통인지에 대해 이 끔찍함이 얼마만큼의 끔찍함인지에 대해 설명하는 일은 몹시 피곤했고, 그런 식으로 이해를 시킬 의욕도 의지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나는 남자들이 정말로 성폭행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범죄와 달리 유독 성범죄에만 피해자 탓을 하는 것은 바로 성폭행에 대해 그들이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칼을 들이대야만, 주먹으로 얼굴을 강타해야만 강간이 성립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성폭행에 대해 얘기할 때는 '그러니까, 니가 거길 왜 따라가? 왜 술을 마셔? 왜 그런 옷을 입어?' 가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 


너도 사실은 좋았던 거 아냐?



그리고 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영화나 소설에서 그토록 잔인하게 성폭행을 묘사하는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가해자가 얼마나 나쁜놈인지, 얼마나 잔인한 짓을 저질렀는 지에 대해서 그렇게 '자 봐, 이렇게 나쁜 놈이야' 하며 보여줄 수 있는 거라고. 그 장면이 실제로 많은 여자들을 숨막히게 하는 줄도 모르면서 예술이라고 한다. 예술 뭘까? 


이 책, 《다른 사람》에서 내가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문학 작품 속에서의 가해자와 범죄 장면에 대한 묘사에 대한 부분이었다.






소설 《다른 사람》에는 성폭행 피해자들이 나온다. 저마다 그것을 극복하려 하는 방법, 없었던 일처럼 살아가려고 하는 방법이 다른데, 그 중 한 명은 닥치는대로 강간 피해자가 나오는 책을 읽는다. 인물들에 공감하고 이입하면서 극복해 이겨나가려고 한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강간에 대해 쓴 작가들은 사실은 강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거다. 



그리고 책 속에서 "저 여자를 강간하고 싶다"라는 목소리를 읽었을 때 수진은 그날 선배의 목소리를 함께 떠올렸다. 이제 그녀는 그런 농담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 식의 농담. 어떻게 그게 농담이 된다고 생각했을까. "강간당한 것 같아." 어떻게 강간이 농담이 될 수 있는 거지? 소설들에 이렇게 표현되어 있지 않았는가. 온갖 (괄호)들을 이용해서, 지독하고 핍진하게 묘사하지 않았는가. 강간당한 것 같다고? 강간하고 싶다고? 이건 강간당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그렇다면 (괄호)들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 (괄호)들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가? 소주 뚜껑 끄트머리가 날아간 것 가지고는 절대 (괄호)를 당했다고 말할 수 없다. 강간은 그런 것이 아니다. (괄호)들이다. 왜 누군가는 강간을 쉽게 농담으로 사용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괄호)들로 무시무시하게 표현하는가. 쉽게 비유하는가. 그녀는 답을 찾기 위해 소설들을 계속 읽어나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들은 강간을 당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p.218-219)



이 부분을 읽다가 나는 얼마전에 읽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떠올렸다. 땅이 파헤쳐지는 장면을 강간당하는 거라고 묘사했던 그 장면을. 초반에 나오는 장면인데 그 장면에서도 나는 멈칫 했던 거다. 뭐지? 왜 이렇게 강간을 여기다 갖다 쓰지? 인간은 모두 불완전한 존재이고, 그러니 누구나 모든 걸 다 잘하거나 또 모두 옳은 선택을 할 수는 없을 거다. 그때는 누구나 다 그랬었을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이만큼 여자로 살아온 내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이성애자인 내가, 늘 좋은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가, 이해할 수도 없고 화가 났다.



은행이 땅을 사랑하지 않듯, 그도 땅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가 트랙터에 찬사를 보낼 수는 있었다. 기계의 외양과 불뚝불뚝 솟아나는 힘과 폭발하는 실린더의 힘에 감탄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이 트랙터는 그의 것이 아니었다. 트랙터 뒤에서는 반짝이는 원반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땅을 잘라 내고 있었다. 그것은 쟁기질이 아니라 수술이었다. 그 원반들이 잘라 낸 흙더미를 오른쪽으로 밀어내면 또 다른 원반들이 흙더미를 잘라 왼쪽으로 밀어냈다. 땅을 잘라내는 원반의 칼날들은 흙에 씻겨서 반짝반짝 광택이 났다. 원반들 뒤에서는 씨레가 쇠이빨로 흙을 빗질해 작은 흙덩이를 부숴 땅을 평평하게 골랐다. 씨레 뒤에서는 파종기(주물 공장에서 발기한 음경처럼 다듬어진 열두 개의 쇠몽둥이)가 기어의 움직임에 따라 오르가슴을 느끼며 기계적으로 땅을 강간했다. 열정과 흥분이 없는 강간이었다.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1권, p.75




열정과 흥분이 없는 강간이라는 건 무슨 뜻일까. 강간에 열정과 흥분이 없었다는 걸까? 강간에 열정과 흥분이 있을 수 있나? 이건 강간이 뭔지 조차 모르는 거잖아? 아니면 강간에는 '원래' 열정과 흥분이 없다는 걸 설명한걸까? 뭐가 이래? 내가 왜 이 문장을 보면서, 도대체 존 스타인벡이 왜 이렇게 썼는지를 왜 이렇게 저렇게 문장을 해석하려 들면서 '아닐거야' 라고 해야 하는거지? 이걸 써놓고 잔인하게 땅을 파헤치는 걸 썼다고 스스로에게 감탄했을까? 읽는 사람들은 기가 막힌 표현이라고 생각했을까? 나 역시 다른 의미로 기가 막히다.



소설 《다른 사람》은 세련되게 돌려까기를 한다. 인간이 모두 불완전하다는 걸 계속해서 드러내면서,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완전하지 않다, 우리 모두 실수하고 산다, 우리 모두 결백하기만 한 인간은 아니다, 우리는 야망이 있기도 하고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나쁜 짓을 하기도 한다고,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또 괜찮은 연애 상대를 만나기도 한다고 그저 무심하게 여러 명의 일상에 대해 얘기해준다. 그러니까 잘못 받아들이게 된다면 나쁜 짓 하고 살아서 나쁜 짓 당했다고 보일 수도 있을만큼. 그렇게 어쩌면 친구를 왕따시키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가운데, 치열하게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에 대해서, 죄책감에 대해서 얘기한다. 아직. 자매애나 연대에 대해서는 모른다. 어떤 여자들은 욕먹어도 싸다고 생각하는 인물들이 나온다. 그러나 점점 깊이 들어가 그들 모두, 그들 모두가, 죽을듯한 괴로움과 고통을 품고 있었다는 걸 알고는, 그렇게 한 발 나아간다. 나는 나 자신을 원망했고, 나 자신을 미워했고, 나 자신을 욕했고, 나 자신이 잘못됐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저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고 여기에도 있었다. 스스로도 '순결한' 피해자가 아니라서 어떻게도 고통을 드러낼 수 없었던 인물들. 대체, 순결한 피해자란 무엇인가. 우리가 피해를 드러내기 위해서, 이 피해의 정당성을 보이기 위해서, 우리는 어릴 때부터 착하게 살아야 하고 술도 마시지 말아야 하고 밤 늦게 다니지도 말아야 하고 가슴이 파진 옷도 입으면 안되는 것인가. 내가 친구를 시기했다고 해서, 질투했다고 해서, 누군가의 뒷담화를 했다고 해서, 그래서 나는 완전히 강간은 아닌 것을 당한 사람이 되는 것인가. 



원하지 않았다는 건 분명한데, 원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비참했다. 증명할 수 없으면 누구의 동의도 끌어낼 수 없다는 사실이 비참했다. 그녀가 찾아본 결과 대부분의 강간은 여자가 강력하게 거부했을 때만 입증되었다. 그러니까 폭력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졌을 때만 강간이라고 인정받았다. 수진은 그 사실 때문에 무척 혼란스러웠다. 여자가 두들겨 맞고 소리를 지르고, 협박 당하고 그래서 목숨의 위협을 받은 후에 이루어진 성관계만 강간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수진이 겪은 건 절대 강간이 아니었다. 수진은 두들겨 맞지도 않았고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고 협박당하지도 않았고 목숨의 위협을 느끼지도 않았다. 하지만, 원하지 않았다.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왜 가해자가 가한 폭행의 정도로 판단되어야 하는건지 수진은 이해할 수 없었다. 수진이 생각하기에 강간은 단순했다. 정말 쉽게 분류할 수 있었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았을 때 성관계를 하는 것.

바로 수진처럼. 술에 취해 의식을 잃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당하는 것. 수진의 경우는 준강간에 해당했다. 준準. 세상에 이 단어 앞에 '준'을 붙있다고?

그나마도 수진은 입증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만일 그를 고발한다면 수진은 만신창이가 될 것이다. 할머니를 생각해야 했다. 수진의 미래를 생각해야 했다. 강간 피해자로 불리고 싶지 않았다. 강간 피해를 주장했던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하고, 오직 의혹에만 둘러싸여 살고 싶지 않았다. (p.213-214)



나는 정희진 엮음, 한국 여성의전화 연합 기획한 책, 《성폭력을 다시 쓴다》를 읽다 밑줄 그은 부분을 떠올렸다.





성폭력, 가정폭력 피해여성을 돕는 상담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 중 하나는, 피해자들을 특정한 전형성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폭력 피해여성들이 항상 불안해하고 무기력하고 의존적인 것은 아니다. 또한 이러한 모습은 폭력 피해를 당한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모습으로 폭력의 결과일 뿐이지, 그런 여성들이 폭력을 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피해여성들 중에는 가해남성보다 기질이 세거나 활동적인 사람도 있으며, 착하지도 않고, 일상 생활에 성실하지 않은 이도 있을 수 있다. 피해여성들은 가해남성은 물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 사람들은 이러한 피해여성을 만나면 혼란스러워한다. 특별한 사람만이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 아닌 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혼란을 갖게 되는 이면에는 ‘순수한 피해자‘,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라는 통념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통념은 여성 폭력에 대한 비판을 ‘피해 사실‘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돌리게 한다. (성폭력을 다시 쓴다, 김효선, p.176-177)



‘전형적인 피해자‘란 남성 사회의 신화이자 남성들이 투사하는 희망적 판타지이기 때문에, 현실에서 그런 여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여성 폭력을 문제화하는 데서 중요한 것은 피해 사실, 그 자체여야 한다. (성폭력을 다시 쓴다, 김효선, p.177)




십년 전의 진아에게 일어난 일, 수진에게 일어난 일, 유리에게 일어난 일이, 이제 이영에게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영은 목소리를 내려 한다. 공론화 시키려 하고, 뒤로 숨지 않으려한다. 어떻게든 이 일이 나쁜 짓임을 밝히려 하고, 도움을 받으려 하고, 가해자에게 벌을 내리려 한다. 이제서야 진아가 깨달았던 것, 자기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영은 지금 알고 있었다. 


나는 이진섭에게 맞으면서도 맞지 않을 방법만 생각했다. 그의 비위를 맞추고, 기분을 좋게 해서 손지검을 피할 방법을.

하지만 진짜 필요했던 건 내 목소리였다. 하지 마.


나를 때리지 마. (p.78)



내 목소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당신의 듣는 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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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3
스티븐 킹 지음, 정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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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이 타고난 그리고 탁월한 이야기꾼인 건 사실이다. 각 인물들마다 각각의 사연과 사정을 이토록 상세하게 부여해 생생한 캐릭터를 만들어내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그는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는다. 따뜻한 시선도 가지고 있는 터라, 그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건 당연한듯 보인다. 이런 사람이 작가가 되어야지, 어떤 사람이 작가가 된단 말인가! 할 정도로 그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또 풀어내는 방식은 천재적이다. 


그렇지만 그와 꼭같은 크기로 이 작품이 빻은 것도 역시 사실이다. 부인할 수가 없다. 아무리 변명하려해도 변명할 수가 없다. 이 작품은 빻았다. 미쳤나? 라는 생각도 든다. 만약 내가 스티븐 킹을 시작해볼까, 하고 이 작품을 제일 처음 읽었다면, 나는 그 이후에 스티븐 킹 읽기를 포기했을 정도로 이 작품은 빻았다. 그가 어떤  '의도로' 썼던 간에 빻았다.


내가 개충격 먹은 장면에 대해 지금 얘기를 할건데, 이건 이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되기도 하겠지만, 사실 이 작품 속에서 이 장면은 없어도 좋은 장면이니만큼 누구에게도 미안해하지 않고 하겠다. 또한, 이 장면 때문에 이 책을 피해가는 것 역시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산만하고 의욕만 앞선 것 같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는데, 한 권 분량으로 줄였어도 충분했을 거다. 그러니까, 여자 주인공 비벌리가 열두살 때 남자 아이 여섯명과 섹스하는 장면을 당연히 빼고 말이다.



어떤 정체인지 알 수 없는 '그것'을 앞에 두고 남자아이 여섯명과 여자 아이 한 명은 그것을 물리치고자 한다. 그것을 물리쳤다고 생각하고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것을 물리칠 수 있었던 힘, 그리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은 그들의 믿음과 우정과 사랑이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을 잃었다고 생각한 순간 이 모임의 유일한 여자아이 비벌리는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모두에게 자기와 섹스를 해 하나가 되자고 말한다. 그렇게 열두살 여자아이는 여섯명의 남자아이를 한 자리에서 차례대로 받아들이는데, 이 일곱 아이들 모두 이 관계가 인생 처음의 성관계였고, 어처구니 없게도 이 섹스를 마치고나자 잃었던 길을 찾게 된다는 거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열두살 남자아이 에게 열두살 여자아이는 '그것을 넣어' 라고 말하는데, 어쩌면 작가는 이 과정에서 그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그러니까 음지에서만 행해져야 한다 생각하는 것에 대한 인식을 바꾸자고 말하는 걸지도 모른다고 나름 좋게 생각하려 해봤지만, 설사 그렇다한들 이것에 대한 것이 용납되는 것도 아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이 되는 소리냐. 성인 여자도 한 자리에서 남자 여섯명과 계속해서 섹스하기 어려운 법인데 열두살 여자아이에게 이것을 사랑과 우정을 드러내는 방법이라 해버리다니. 이 장면에서는 정말이지, '결국 이 짓 시키려고 이 모임에 여자아이 굳이 껴넣었구먼'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거다. 여자 아이 왜 넣었냐, 스티븐 킹. 남자 아이 여섯명과 섹스 시키려고 넣었냐. 게다가 어떻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머릿속에 뭐가 들었길래, 한 자리에서 여섯명과 죄다 섹스하게 만드냐..... 여자아이가 너덜너덜해지지 않고 오히려 그 후에 길을 찾는다니....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짓 같다. 성인이 된 남자가 여자아이에게 그 일에 대해 말하면서 '네가 원했어' 라고 하는데, 아 씨양 진짜 ... 어휴....... 무슨.......너무 개똥같은 부분이라 이 작품 전체가 다 싫어진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만약 내가 이 책으로 '처음' 스티븐 킹을 만난 거였다면, 앞으로 다시 만날 일이 없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보다 먼저 읽었던 작품들에서 스티븐 킹은 확실히 이 책을 썼던 때보다 더 나은 여자 캐릭터들과 더 나은 여자 서사를 보여줬고, 나는 그래서 스티븐 킹 역시도 이 때 이 장면을 넣었던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이런 장면은 정말이 빻았고 빻았다. 아무리 괴물을 없애고 믿음과 우정과 사랑을 증명하려 한다지만...진짜......엿같지 않은가. 나는 생각만해도 치가 떨린다. 탁현민이 자신의 책에서 썼던 한 명의 여학생을 남학생들이 돌려가며 폭행하는 것과 대체 뭐가 다른가. 스티븐 킹의 그것 에서는 '선한 의도'임을 드러내려 했다는 거? 웃기지도 않는 얘기다. 이걸 '열두살' 아이가 '스스로 원했'다고, 또한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하는 게... 도대체 어떻게 변명이 될까. 안된다.




스티븐 킹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이 책으로 시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앞으로 스티븐 킹을 '파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이 작품은 건너 뛰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의 스티븐 킹이 이때보다 더 나아졌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이 작품을 읽다가 너무 한심하다 생각했는데, 이걸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아니 이런 사람이 어떻게?! 하게 될 것 같다. 실제로 이 책을 읽은 나의 지인은 이 책을 읽고나서 '스티븐 킹 이제 그만' 이라고 했는데, 그런 결정을 하는 게 무리도 아니다. 



이 책은 건너 뛰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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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7-11-13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끔찍한 내용이네요 ㅜㅜ

다락방 2017-11-13 09:30   좋아요 0 | URL
애한테 저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어요. -_-

잠자냥 2017-11-13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 읽으셨군요. 다락방 님께서 지적하신 부분이 제가 바로 전부터 이야기했던 그 부분입니다. 이 장면이 얼핏 2권인가요? 거기서 성인 빌과 비벌리 대화에서 슬쩍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어린 시절에 다 같이 섹스한 듯한 뉘앙스), 그 구절을 읽을 때도 설마 했습니다. 뭔가 둘 중 한 사람의 기억이 잘못 됐을 거야 이런 생각을 하면서 넘어갔는데... 3권에서 이 장면을 볼 때 정말 제 눈을 의심. 굉장히 불쾌했습니다. 3권까지 읽어온 모든 노력이 허무해지는 듯한, 이건 진짜 남자 작가니까 나올 수밖에 없는 생각이구나 싶고. 영화에서 정말 이 장면까지 재현할 것인가 궁금해지기도 하더군요. 암튼 이런 설정 때문에 <그것>은 매우 문제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다행인지(?) 스티븐 킹 빠는 아니고(앞으로 빠가 될 일도 없을 것 같습니다만. 하하하), 뭐 처음 읽은 작품도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스탠 바이 미>와 같은 단편집 위주였던 터라 이 작가를 이 작품 하나만으로 평가하지는 않을 텐데, 암튼 저랑 잘 안 맞는 작가임은 틀림없구나 하고 결론을.... <별도 없는 한밤에>까지는 읽어 볼 계획인데, 이 책도 사서 볼까 하다가 그냥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로 했습니다. <그것> 전3권 세트도 알라딘에 팔아버리려고 하고요; 에효... 빻았어. 빻았어.

다락방 2017-11-13 11:10   좋아요 1 | URL
3권 초입에서 그 대화가 나와요. 성인이 된 빌과 비벌리가 기억을 찾기 시작하면서 ‘너희들 모두와 사랑을 나눴다고?‘ 라고 말이지요. 그러면서 빌이 ‘응 네가 원했어‘ 라고 하는데, 이때부터 설마... 하는 마음이 들었고, 그러면서 내심, 거기에 대해 더이상 언급하지마, 묘사하지마, 더이상 그런 식의 이야기를 쓰지마..하는 마음이 되었더랬죠. 그런데 제 기대나 바람과는 달리 스티븐 킹은 열두살 여자아이에게 이 끔찍한 짓을 시킵니다. 여자 아이의 입장에서 사랑을 표현하는 건 그저 몸이나 주는 게 전부인, 그것밖에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아요. 그 장면을 읽는데, 이러려고 여자아이 하나 구색 맞추듯 끼워넣었구나 싶더라고요. 만약 여자아이들이 더 많았다면? 그랬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남자 작가들이 여자들을 성적으로만 대하는 것, 그런 식으로만 묘사하는 것에 정말이지 질려터져버리겠어요. 비벌리의 성격이 그간 함께 모험을 하면서 여자인 나를 약하게 대하지 말라, 나도 너희들과 똑같다, 나를 보호하려 하지 마라, 라고 얘기하던데, 아니 갑자기 너희들 모두와 사랑을 나누겠어..는 뭡니까! 전 정말... 너무 거지같은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어른 여자에게 해놨어도 거지같은 짓을-존 스타인벡도 젖도 없는게 젖 얘기 해서 빡쳤는데- 어린 여자아이에게 시키다니... 진짜...... 하아-


이제는 스티븐 킹도 후회하지 않을까요? 지금쯤은 그 장면을 넣은데에 부끄러워 할거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많이 흘렀고 스티븐킹도 또 달라졌을 테니까요. 저도 그것은 팔아버릴 겁니다...

2017-11-13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13 17: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부만두 2017-11-13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끔찍하네요....


전 이미 이 책을 주문했....

다락방 2017-11-13 17:06   좋아요 0 | URL
어떻게 어린 아이를 저렇게... 너무 싫은 장면이에요 진짜 ㅠㅠ

사랑은 야야야 2017-11-14 0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영화에는 청소년 성장기처럼 훈훈하게 끝나 이런 내용이 있으리라 생각도 못해는데 킹 아저씨 ㅠㅠ 할 말을 잃게 하네요.

다락방 2017-11-14 08:03   좋아요 0 | URL
아 영화를 보셨군요. 영화에서는 아마도 저 장면을 당연히 도려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저 장면이 영상화 되기까지 한다면 너무 끔찍할 것 같아요 ㅠㅠ

사랑은 야야야 2017-11-14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분량이 부담스러워서 먼저 영화를 봤어요. 저도 생각만으로 끔찍해요. 킹 아저씨가 대체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네요. 절레절레

다락방 2017-11-15 09:39   좋아요 0 | URL
이렇게 길게 쓸 필요가 없었는데 스티븐 킹이 의욕이 너무 앞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읽다보면 분량이 지나치게 많은데, 진짜 다 덜어내도 될 것 같거든요. 저 장면도 잘라내고 이야기도 좀 확 줄여서 한 권으로 내도 충분할 것 같아요. ㅜㅜ

살인교수 2021-08-20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보면 ‘그것‘ 쓸 당시 킹은 마약에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장면을 넣은 것은 당시 킹도 약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라도 작가 본인이 ‘그것‘을 깔끔하게 수정해서 다시 내놓길 기대합니다.

다락방 2021-08-20 15:47   좋아요 0 | URL
저도 오래전에 유혹하는 글쓰기 읽었는데 그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네요. 다시 읽으려고 사둔지도 오래되었으니 유혹하는 글쓰기 재독에 도전해야겠어요.
그렇죠 아무래도 저런 내용이라니.. 맙소사. 저 부분은 정말 어떻게 해야할 것 같아요. 진짜 미친 내용이에요 ㅠㅠ
 

오늘 아침에 곰곰발님의 페이퍼를 보니 나도 내가 너무 좋아하는 영화의 엔딩씬을 올리고 싶어졌다. 그런데 그 전에 곰발님이 올리신 영화에 대해서 내가 뭐라고 써놨더라, 나도 본 영화인데... 하고 찾아보려고 하는데, 《이발사의 아내》로도 검색이 안되고, 《미용사의 남편》으로도 검색이 안되는 거다. 아... 내가 진짜......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나지만, 포스터 기억나고, 빨간 드레스의 여자가 기억나고, 그래서 뭔가 백자평을 분명 쓴 것 같은데.... 근데 왜 검색이 안되지 싶어서 네이버로 가서 이렇게 저렇게 검색해봤더니, 그 영화의 국내 제목은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이었던 거다.



 














원제는 헤어드레서의 허즈번드... 인데 왜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같은 거 되어가지고 나로하여금 검색에 시간 걸리게 만들어...나는 검색에는 영 소질이 없는 사람인데 말이야... 떽!!



어쨌든 그래서 저 제목을 넣고 검색해봤다. 내가 뭐라고 써놨지? 하고.





뭘 저렇게 뜬구름 잡는 내용으로 써놨냐...지금 같았으면 쓰지 않았을 것 같은 문장이구먼...역시 과거에 내가 쓴 글을 읽는다는 것은 크나큰 부끄러움...Orz


그건그렇고, 2012년에 보고 썼구먼....그러면 얼마 안됐는데 왜 내용이 하나도 기억안나는 것이냐.... 그냥 여자가 떠난 거, 그거 하나 딸랑 기억에 남네. 이 영화는 그게 전부였던 거냐... 어째서, 왜때문에 기억이 안나는거야? 나는... 왜 영화를 보는거야?



각설하고,

어쨌든 나도 엔딩씬이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영화가 있는데, 그것은 '우마 써먼' 주연의 《프라임 러브》 이다. 우마 써먼이 연하의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 사랑에도 끝이 와서 둘은 이별이란 걸 하게 된다. 둘이 서로 이별하기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그 순간에도 그들은 서로를 싫어한 것도 아니고 미워한 것도 아니었는데, 어쨌든 그들은 마지막 섹스를 하고 이별을 하고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남자는 자신이 친구를 만났던 식당에 목도리를 두고 와서 찾으러 가게 되는데, 갔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자신과 헤어졌던 여자를 보게 되는거다. 똭- 맞닥뜨리고 놀라서는 얼른 목도리를 찾아가지고 식당을 벗어나는데, 그때까지 여자는 자신의 친구들과 얘기하느라 남자를 보지 못했다.


식당 문밖으로 나선 남자는 한참을 마음을 추스리다, 뭐라고 할까, 애틋하게, 아련하게, 그녀를 더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성에가 낀 유리창을 닦아서는 빼꼼, 그녀를 본다. 그런데 여자가 그 순간 우연히 창 밖을 보게 되고, 그렇게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나는 이 장면에서 정말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되었지. 그 때 극장에서 으으윽 하던 내가 생각나.... 둘은 서로를 바라보기만 하는데, 마지막에 우마 써먼이 남자에게 웃어주는 거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여주는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너무 좋은 장면이었다. 그 웃음과 고개 끄덕임에 그냥 할 말 다 들어가 있는 것 같았고. 응 그래 괜찮아, 응 좋아, 이런 거 다 전달되는 것 같아서. 남자도 결국 마주 미소짓는데, 아, 이 장면, 진짜 나는 너무 기억에 남는 장면인 것이다.























사실 프라임 러브 엔딩만 올리려고 하다가 불쑥, 타인의 삶이 생각나네. 크- 






엔딩씬만 다시 보는데도 눈물이 나네 ㅠㅠ 
좋은 영화다. 이 영화를 조만간 다시 봐야겠어...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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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7-11-10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인의 삶... 아 다시 보고 싶네요... 저도.
락방님 영화평 보면 막 영화를 매일 자주 봐줘야 할 것 같아요

다락방 2017-11-10 10:39   좋아요 0 | URL
영화를 봐도 시간이 지나면 다 까먹네요 ㅠㅠ
어떻게든 어떤식으로든 내 삶에 영향을 미칠거라고는 생각하지만 내용 생각도 안나는 거 보면 다 부질없다 싶고... 흑흑 ㅠㅠ

비연 2017-11-10 10:51   좋아요 0 | URL
저도... 영화고 책이고 요즘은 머릿속을 스치는 바람이라고나 할까.
가끔 흔적도 안 남는 거에요..ㅜ
<토르> 보려고 하는데.. 이런 영화는 특히. 딱 보는 동안만 기억 유지.

다락방 2017-11-10 11:27   좋아요 0 | URL
저는 지난 일요일에 혼자 가서 토르 보고 왔거든요. 아... 햄식이 너무 좋아요. 그리고 예전엔 안그랬는데 히들스턴 아저씨도 너무 귀여워요.....

라고 써놓고 혹시나 싶어 검색했더니 히들스턴 저보다 어리네요. 하하하ㅏㅎ하하해하하하하하하

마태우스 2017-11-10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보고픈 영화는 많은데 못보고 지나치며 마음아파하기만 합니다. ㅠㅠ 저도 엔딩은 좀 멋있게 해야 하는데, 이러다간....

다락방 2017-11-10 10:39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님 너무 바쁘시죠!!
어떤 엔딩을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지만, 마태우스님의 엔딩이라면 분명 멋질 것 같은데요! 저는 확신합니다!!

비공개 2017-11-10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영화보고 싶어요.. 타인의 삶도 다시 보고 싶고..

다락방 2017-11-10 10:40   좋아요 0 | URL
저도 타인의 삶 다시 보고 싶어요. 크-
주말에는 영화를 한 편 봐야겠어요. 지난 주말엔 토르 봤어요. ㅎㅎ

건조기후 2017-11-10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SF영화를 막 몰아보고 있어요. 나이들수록 감수성이 깊어진다는데 저는... ㅎㅎㅎ

다락방 2017-11-10 14:24   좋아요 0 | URL
저 진짜 감수성 쩔어가지고 그냥 막 울어요 영화보다가 ㅋㅋㅋㅋㅋㅋㅋㅋ 얼마전에 땐뽀걸즈 보면서 계속 울었어요.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거슨 노화의 증상인가요! ㅎㅎ

건조기후 2017-11-10 15:26   좋아요 0 | URL
눈물이 많아진 건 확실해요. 뭔가 눈물이 날 것 같은 걸 보고 싶은 마음이 안 생겨서 그렇지... 막상 맞닥뜨리면 펑펑 울고 우는 이유도 날이 갈수록 다양해져요. 정말 별 것도 아닌 거 가지고 운다니까요 ㅋㅋㅋ 그런 내가 또 슬프고 웃기고 그래요.

다락방 2017-11-12 20:03   좋아요 0 | URL
저도 눈물이 많아지고 마음이 많이 약해진 것 같아요. 뭐랄까, 성격은 거세졌지만 마음은 약해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시려나요. 그러니까 이제 때려부수는 액션 영화 보는 게 힘들어지더라고요. 온갖 걱정이 몰려와서.... 그러니까 이를테면 기물들이 파손된다든가 하는 장면도 못보겠고 ㅠㅠ 악당이라도 막 죽이는 거 보기 힘들고.. 폭력장면도 못보겠고 ㅠㅠ 이렇게 되어버리고 말았어요 ㅜㅜ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0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회에서의 저 장명 콩닥콩닥거리게 만드네요..

다락방 2017-11-12 20:04   좋아요 0 | URL
ㅎㅎ 이런 헤어짐이라면 나쁘지 않다, 좋다, 라고 생각하게 만든 장면이었어요. 후훗.
결국 둘다 나중엔 다른 사랑을 시작하겠지만 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