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덟살 조카가 아주 아기였을 때부터 책을 좋아하기를 내가 그렇게나 바랐지만, 조카는 내 바람과는 다르게 자랐다. 볼펜을 분해하고 레고를 맞추면서, 그림을 그리고 태권도를 하면서 즐거움을 찾는 아이로 자란 것이다. 줄넘기를 열심히 할 때는, 저 애는 대체 앞으로 어떤 아이가 될까? 그 무한한 가능성에 기대와 기쁨을 섞었었는데, 아아, 무릇 사람에겐 다 그런 때가 오는 것일까, 아니면 내 조카에게 그런 때가 오는 것일까. 이 여덟살 조카가 얼마전부터 책 읽기의 재미에 풍덩 빠진 것이다. 내가 책을 읽어줘도 집중을 못하고 금세 다른 장난을 치던 녀석이, 아니, 요즘엔 학교 도서관에서도 책을 엄청 빌려 읽는다는 거다. 아침에 밥 먹기 전에 조용해서 뭐하나 보면 책을 읽고 있다고 한다. 와!!
지난 주말 여동생으로부터 이 얘기를 듣고는 조카에게 책 읽는 거 재미있냐 물었더니 재미있다고 한다. 나는 너무 신기하고 기쁘고 막 좋고 그랬는데, 아아, 역시 내 조카야, 잘 자랐어!! 하고 뿌듯해했는데, 하하하하, 여동생은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데 책 읽고 문제 푸는 건 못풀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했더니, 그러니까 지문에 '나는 가족들과 가족 신문을 만들었다, 아빠는 뭘 하고 엄마는 뭘하고 동생은 뭘하고 나는 뭘했다' 라는 식으로 나왔고 문제는 '나의 식구는 모두 몇 명인가요?' 였는데 여기에는 '네 명!' 하고 답을 잘했다는 거다. '나의 식구는 누구누구인가요?'라는 질문에는 그런데 이 조카가 아빠 엄마와 함께 자기와 나의 둘째조카 이름을 썼다는 거다. 여동생은 빵터져서, 얘야, 이건 이 글 속의 '나'에 대한 거니까 이 아이의 입장에서 써야지, 했더니, 나의 여덟살 조카는 '아 그런거야? 난 왜 갑자기 내 동생 얘기는 묻나 했어' 했다는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조카가 어제 내가 퇴근할 무렵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반갑게 전화를 받았는데, 아니 글쎄 이 녀석이, 학교에서 주는 독서우수상을 받았다는 게 아닌가. 이걸 자랑하고 싶어 내게 전화한거다. 물론 제 할머니와 삼촌에게도 자랑했고. 내가 한껏 신나하는 조카에게 역시나 큰 목소리로 축하한다고 말하자, 녀석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역시 이모 조카지?"
아이고 이녀석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사랑한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지난 주말에는 조카네가 놀러왔었다. 나는 토요일에 조카에게 이 책 읽어보라고 주었는데, 조카는 토요일에는 이 책을 읽지 않고 나랑 컬러링북을 칠했고, 나를 타고 올라 짓이겼고(!?), 텔레비젼을 보았는데, 일요일 오전에는 술병으로 일어나지 못하는 나를 두고는 이 책을 가지고 거실 소파로 나가 읽었다. 그리고는 점심 무렵 비틀거리며 일어난 내게 '이모 이 책 재미있더라' 하는 거다. 후훗. 그래? '응, 똥푸 웃겨' 이러는 거다. 나는 조카에게 '이모도 다 읽었어. 이거 이모 친구가 이모랑 타미 읽으라고 준거야' 했다.
이 책에는 총 세 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첫번째 이야기가 <쿵푸 아니고 똥푸>이다. 내 조카는 이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했다. 나는 두번째 이야기 <오 미지의 택배>를 읽고 눈물이 그렁그렁 해졌더랬다. 내심 조카는 세번째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똥 얘기가 더 재미있었던 듯. <쿵푸 아니고 똥푸>에서 가장 좋았던 건, 스파이더맨도 번개맨도 출동하기 전에는 모두 똥을 싼다는 거였다!! 아니, 당연히 그렇겠지!! 출동한 후에 똥마려우면 ... 좀 그렇잖아? 하하하하하.
그러니까 토요일에 제부랑 남동생이랑 여동생이랑 술을 마시는데, 분위기가 좋고 즐거웠다. 게다가 제부는 안주며 술을 집에서 준비해온거다. 제부네 집에 가도 안주를 제부가 만들어주는데 우리 집에 와도 제부가 준비해오네 ㅋㅋㅋㅋㅋㅋㅋ 그러면서 며칠전에 내가 중국술에 관련된 영상을 보여줬었는데, 그거 보더니 연태고량주? 뭐 그런 34도 짜리 술을 사온 거다. 이야기도 잘 풀리고 술도 술술 들어가고, 우리는 연태주를 다 먹고 제부는 소주를 마시고 나는 집에 있던 선물 받은 위스키를 들고 나와 마시기 시작했다. 술자리가 파하고 남동생과 둘이 분리수거를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일어나보니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이렇게 되었고..... 그래서 계속 침대에 누워 있었고.....머리가 아파서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고......... 여동생이 편의점에 가 모닝케어를 사다줬고................ 그런 채로 조카들과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조카들아 잘가, 했고...........오후 한 시 무렵이 되어서야 몸을 일으킬 수 있었는데,
어느 틈에 기억은 절단났고..... 엄마가 '너 비틀거렸다'고 해서 아아, 그런 것 같다...하고 어렴풋이 기억났고.....
오후에 남동생이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셔. 누나 무섭더라' 하고 막 화를 내거나 잔소리를 한 게 아니라 다정하게 말해줘서... 내가 남동생에게 그랬다. '응 내가 정신 잃고 많이 마셨네. 앞으로 조심할게.' 라고 했다. 잠시후 엄마가 내게 '너 무슨 술을 그렇게 먹냐'고 또 그러셔서 '방금 얘한테 혼났어. 엄마 이제 조심히 마실게' 라고 했다. 그리고 어제. 아빠는 일요일이 아닌 어제 나를 보았는데, 하하하하, 속 괜찮냐고 물으시더니, 하하하하
너 티비 부술 뻔 한 거 기억나냐?
하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말을 들으니 또 어렴풋이 기억이......... 내가 비틀거리며 티비 쪽으로 쓰러질라 그러길래 아빠가 붙잡았는데 너도 놀랐는지 주저 앉아서 티비를 멀뚱멀뚱 보더라, 하셨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핳. 나는 '아빠도 나 취한 거 다 봤어?' 했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마는 옆에서 '야, 아빠 앞에서 딸이 잘하는 짓이다' 하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모든 식구가 다 봤구먼 나 비틀거리는 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술을 조심히 마시자!!
어제 강화길의 《다른 사람》을 읽고 몹시 울적해져서 따뜻한 책을 읽고 싶었다. 마침 다른 알라디너의 글에서 이 책에 대한 걸 보았고, 오호라, 내가 이럴 줄 알고 다 사두었지... (책 사기 만세!!), 하고는 책장에서 이 책을 빼들었다. 서점 이야기이다 보니 책과 주인공 혹은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부터 나오는데, 거기에 죄다 각주가 달려있고, 그러나 나는 각주를 보지 않아도 다 아는 주인공들이어서-롤리타, 제인 에어, 호밀밭의 파수꾼, 오만과 편견- 넘나 씐난 것 ㅋㅋㅋㅋ 그리고 이런 부분!!
맙소사, 그는 니콜이 보고 싶다. 니콜의 목소리와 목, 심지어 겨드랑이마저 그립다. 니콜의 겨드랑이는 고양이 혀처럼 우둘투둘했고, 저녁 무렵이면 상하기 직전의 우유 같은 냄새가 났다. (p.33)
상하기 직전의 우유 같은 냄새가 나는 겨드랑이를 그리워하다니, 이것은 겨드랑이 패티쉬일까 아니면 지독한 사랑일까? 나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처음 보는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이 작가의 작품 중에 이 책, 《마가렛 타운》이 이미 내가 읽은 책이더라. 우왕- 나 좀 짱인듯!! 우하하하하. 내가 독서우수상 받는 조카의 이모 되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