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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등뼈가 마지막에 남는다
샤센도 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1월
평점 :
종이책이 모두 사라지고 인간이 책이 된 세계. 책으로 불리는 인간은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대부분 여자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하나의 몸에 열 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 있다. 열이라고 불리는 그녀는 열 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벌로 두 눈이 불로 지져졌다. 어느 날 중판이 열린다. 같은 이야기를 가진 두 책을 심사해서 오류가 있는 하나의 책을 불살라버리는 재판이다. 열과 빨간 머리 책이라 불리는 두 여자가 거대한 철창에 갇힌 채 서로 자신의 이야기가 정본임을 주장하며 상대 이야기의 모순점을 지적한다. 중판에 오른 작품은 '백행 공주'로 두 책의 차이점은 독사과로 살인을 저지른 이가 백행 공주냐, 여왕이냐 하는 것! 열은 백행 공주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지는 쪽은 그대로 철창에 갇힌 채 화형 당한다.
'낙원은 탐정의 부재'를 무척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어. 샤센도 유키의 이번 작품도 기대가 컸다. 표제작 '책의 등뼈가 마지막에 남는다'와 마지막 수록작 '책의 등뼈가 제일 먼저 생긴다'는 이어지는 소설로 처음과 대미를 장식한다. 아마도 작가의 의도인 듯. 그 중간에 담긴 다섯 이야기는 마치 열이 담고 있는 열 개의 이야기 중에서 뽑은 듯한 인상이 들었다. 이러한 의도도 그렇고, 책 속 수록작의 뭔가 이계에 떨어진 듯한 기괴한 설정들도 그렇게 작가 특유의 그로테스크함이 잘 묻어나는 희귀템 같은 작품이다.
고른 수준의 단편들이었지만,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역시 '통비 혼인담'이다. 거미줄이라 불리는 장치. 그것은 고통을 다른 이에게 전이시키는 장치다. 병, 수술, 통증 등등 살아가며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고통을 대신 감당해 주는 이들을 통비라 부른다. 통비는 최고의 미소녀 중에서 강제적으로 뽑힌다. 말 그대로 만 명의 고통을 한 명이 감당하는 것이고, 그 한 명은 만 명을 이기지 못하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 단편은 정말 미묘했다. 매우 충격적이고, 잔혹한 소설이다. 그런데도 무척 아름답다. 통비의 전통이 이어지는 나라는, 통비를 마치 사교계의 여왕처럼 대접한다. 그녀가 짊어질 처절한 고통을 대중에게 전혀 다른 식으로 포장하고 싶어서다. 그렇게 다수의 횡포와 잔인함 그들이 짊어져야 할 죄책감은 휘발되고, 매일 밤 통비와 함께하는 무도회만 축제처럼 남는다. 잔혹동화처럼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지만,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굉장히 무섭고, 불쾌하고, 사악하고, 끔찍하기 그지없다. 이런 이야기를 쓴 작가의 머릿속이 경이롭다.
결론은 강력 추천작이다. 상상 이상의 재미를 선사했다. 무엇보다 가슴 깊은 곳에 각인되는 이야기의 선혈이 긴 여운을 남긴다. 표제작이 상징하는 것처럼 작가는 책과 인간을 동일시했다.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책과 인간은 같다. 누구나 그들만의 이야기는 존재하고, 어떤 삶은 죽음 후에도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기억된다. 작가는 마치 스스로 '열'이 된 것처럼 여러 이계를 모험하며 직접 본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이야기로 담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