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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3
스티븐 킹 지음, 정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8월
평점 :
스티븐 킹이 타고난 그리고 탁월한 이야기꾼인 건 사실이다. 각 인물들마다 각각의 사연과 사정을 이토록 상세하게 부여해 생생한 캐릭터를 만들어내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그는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는다. 따뜻한 시선도 가지고 있는 터라, 그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건 당연한듯 보인다. 이런 사람이 작가가 되어야지, 어떤 사람이 작가가 된단 말인가! 할 정도로 그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또 풀어내는 방식은 천재적이다.
그렇지만 그와 꼭같은 크기로 이 작품이 빻은 것도 역시 사실이다. 부인할 수가 없다. 아무리 변명하려해도 변명할 수가 없다. 이 작품은 빻았다. 미쳤나? 라는 생각도 든다. 만약 내가 스티븐 킹을 시작해볼까, 하고 이 작품을 제일 처음 읽었다면, 나는 그 이후에 스티븐 킹 읽기를 포기했을 정도로 이 작품은 빻았다. 그가 어떤 '의도로' 썼던 간에 빻았다.
내가 개충격 먹은 장면에 대해 지금 얘기를 할건데, 이건 이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되기도 하겠지만, 사실 이 작품 속에서 이 장면은 없어도 좋은 장면이니만큼 누구에게도 미안해하지 않고 하겠다. 또한, 이 장면 때문에 이 책을 피해가는 것 역시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산만하고 의욕만 앞선 것 같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는데, 한 권 분량으로 줄였어도 충분했을 거다. 그러니까, 여자 주인공 비벌리가 열두살 때 남자 아이 여섯명과 섹스하는 장면을 당연히 빼고 말이다.
어떤 정체인지 알 수 없는 '그것'을 앞에 두고 남자아이 여섯명과 여자 아이 한 명은 그것을 물리치고자 한다. 그것을 물리쳤다고 생각하고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것을 물리칠 수 있었던 힘, 그리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은 그들의 믿음과 우정과 사랑이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을 잃었다고 생각한 순간 이 모임의 유일한 여자아이 비벌리는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모두에게 자기와 섹스를 해 하나가 되자고 말한다. 그렇게 열두살 여자아이는 여섯명의 남자아이를 한 자리에서 차례대로 받아들이는데, 이 일곱 아이들 모두 이 관계가 인생 처음의 성관계였고, 어처구니 없게도 이 섹스를 마치고나자 잃었던 길을 찾게 된다는 거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열두살 남자아이 에게 열두살 여자아이는 '그것을 넣어' 라고 말하는데, 어쩌면 작가는 이 과정에서 그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그러니까 음지에서만 행해져야 한다 생각하는 것에 대한 인식을 바꾸자고 말하는 걸지도 모른다고 나름 좋게 생각하려 해봤지만, 설사 그렇다한들 이것에 대한 것이 용납되는 것도 아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이 되는 소리냐. 성인 여자도 한 자리에서 남자 여섯명과 계속해서 섹스하기 어려운 법인데 열두살 여자아이에게 이것을 사랑과 우정을 드러내는 방법이라 해버리다니. 이 장면에서는 정말이지, '결국 이 짓 시키려고 이 모임에 여자아이 굳이 껴넣었구먼'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거다. 여자 아이 왜 넣었냐, 스티븐 킹. 남자 아이 여섯명과 섹스 시키려고 넣었냐. 게다가 어떻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머릿속에 뭐가 들었길래, 한 자리에서 여섯명과 죄다 섹스하게 만드냐..... 여자아이가 너덜너덜해지지 않고 오히려 그 후에 길을 찾는다니....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짓 같다. 성인이 된 남자가 여자아이에게 그 일에 대해 말하면서 '네가 원했어' 라고 하는데, 아 씨양 진짜 ... 어휴....... 무슨.......너무 개똥같은 부분이라 이 작품 전체가 다 싫어진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만약 내가 이 책으로 '처음' 스티븐 킹을 만난 거였다면, 앞으로 다시 만날 일이 없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보다 먼저 읽었던 작품들에서 스티븐 킹은 확실히 이 책을 썼던 때보다 더 나은 여자 캐릭터들과 더 나은 여자 서사를 보여줬고, 나는 그래서 스티븐 킹 역시도 이 때 이 장면을 넣었던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이런 장면은 정말이 빻았고 빻았다. 아무리 괴물을 없애고 믿음과 우정과 사랑을 증명하려 한다지만...진짜......엿같지 않은가. 나는 생각만해도 치가 떨린다. 탁현민이 자신의 책에서 썼던 한 명의 여학생을 남학생들이 돌려가며 폭행하는 것과 대체 뭐가 다른가. 스티븐 킹의 그것 에서는 '선한 의도'임을 드러내려 했다는 거? 웃기지도 않는 얘기다. 이걸 '열두살' 아이가 '스스로 원했'다고, 또한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하는 게... 도대체 어떻게 변명이 될까. 안된다.
스티븐 킹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이 책으로 시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앞으로 스티븐 킹을 '파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이 작품은 건너 뛰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의 스티븐 킹이 이때보다 더 나아졌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이 작품을 읽다가 너무 한심하다 생각했는데, 이걸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아니 이런 사람이 어떻게?! 하게 될 것 같다. 실제로 이 책을 읽은 나의 지인은 이 책을 읽고나서 '스티븐 킹 이제 그만' 이라고 했는데, 그런 결정을 하는 게 무리도 아니다.
이 책은 건너 뛰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