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책을  봤다.

어디선 과학이라고 하고, 어디선 인문학이라고 하고,

각자 다른 용어로 이야기 하고 있지만 같은 얘기라는걸,

결국엔 그게 그거인 얘기를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을뿐이란 걸 깨닫게 된 이후론,

어떤 주역 책을 읽어도 몰입하지 못하고 시큰둥이었다.

 

그래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은,

과학 위의 학문이고 인문학의 최고봉이어서 공자마저 朝聞道夕死可矣라고 했던,

그런 주역의 의미를 헤아릴 수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해석조차 떠듬떠듬이었기 때문이었다.

 

 

 

 

 

 

 

 

 

 

 새벽에 혼자 읽는 주역인문학
 김승호 지음 / 다산북스 /

 2015년 10월

 

근데 빈수레가 요란하고 나처럼 어설플수록 오지랖은 넓다고, 이 책도 처음 시작했을땐 엄청 툴툴거렸는데,

주역은 인문학이고 과학이고, 의 가부를 나누기 전의 근원적인 것이라 생각하는지라...그 가부 때문이 아니라,

제목은 '새벽에 혼자 읽는 주역인문학'이라고 해서 '인문학'을 표방하고 있는데,

책 내용은 주역은 과학적인 학문이고 그래서 해외의 '내로라'하는 과학자들마저 주역을 연구하는데 이바지했다, 는 얘기를 처음 60여쪽에 걸쳐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양손 엄지 척'으로도 부족하여,

엄지 발가락까지 가세하고 싶을 정도로 좋다고 설레발을 칠 수 있지만,

제목에 '인문학'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은건 아무래도 요즘 대세라는 인문학의 인기에 편승해보려는 꼼수처럼 보여서 별로였다.

하지만, 이 부분을 꾸욱 참고 넘기면,

주역이라는 학문을 향한 신세계가 열리고 문리가 트이는 것을 경험으로 느낄 수 있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주역 책 가운데 단연코 최고이다.

 

한분야를 꾸준히 연구한 사람에겐 뭔가 범접할 수 없는 그만의 아우라 같은 것이 있나 보다.

이 책을 쓴 저자는 1949년 생으로 우리나이로 67세인데,

지난 50년간 과학으로서의 주역을 연구하였다고 한다.

50년이면, 반백년이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한 학문을 강산이 다섯번이 변하도록 연구하였다는걸 보면,

주역이라는 학문도 보통이 아니지만, 저자 김승호 님도 보통은 아니지 싶다.

 

이쯤 되면, 업적은 차치하고라도 숙연해질법도 한데,

이런 책을 만날때마다 만나는 이런 사소한 오류 때문에 저자에 대한 신뢰가 같이 반감되곤 한다.

90쪽의 내용인데,

관우와 산, 방패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말에 신용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바람으로 넘어가는데,

괘상은 여전히 산이다, 오류이다.

 

 184쪽인데, 뇌화풍을 뇌하풍으로 오기하였다.

 

그는,

점이란 대개 미래를 알고자 하는 행위지만 때로는 하늘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점을 치기도 한다. ㆍㆍㆍㆍㆍㆍ이때의 점은 아주 공정하다. 하늘의 운행은 공정한 것이다. 우연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우연 속에는 하늘이 담겨 있는 것이다. 점은 인간의 생각을 초월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으로 알 수 없는 걸 점에 맡기는 것이다.

주역을 공부하는 사람이 가끔 점을 치면 괘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미신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지칭할 때 흔히 미신이라고 말하는데 점은 절대 그렇지 않다. 점은 하늘을 공경하는 행위다. (203쪽)

라고 하며,

호킹박사는 무의 요동에 의해 우주가 생겼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노자의 "유는 무에서 생겼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ㆍㆍㆍㆍㆍㆍ더 정확하게 말하면 에너지 - 시간 불확정성 때문에 우주가 생겼다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는 주역을 공부하여 이것을 깨달았다. 무는 정지되어 있기도 하고 움직이기도 하는 존재다. 보통 사람은 무란 텅 빈,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은 그게 아니다. 무는 요동치는 존재로서 양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물론 무는 음의 성질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태극이라고 말하는 것인데, 이는 태극은 음도 양도 아니라는 의미도 된다.(221~222쪽)

이런 식으로 과학자들을 인용한다.

노자, 도(道) 따위도 같은 방식으로 아우른다.

 

 

 

 주역계사 강의
 남회근 지음, 신원봉 옮김 /

 부키 / 2011년 2월

 

물론 다른 주역 관계 서적에서 이런 언급이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확인한 것은 '남회근'의 '주역계사 강의'뿐인데,

 남회근과 신원봉의 조합이 우리나라 주역史엔 아주 큰 의미이지만,)

어려운 말로 쓰여 있어서, 무슨 말인지 알아 먹지 못했었던 반면,

이 책은 쉽게 쓰여서 관심만 있다면 쉽게 이해가능하다.

 

암튼 저자가 여러 과학자를 나열한 속 뜻은,

주역은 '시공'을 '초월'하고 있는데,

그 시공의 초월성이 과학적이라는 것을 합리화시키는 방법인듯 하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거기 가기 전에 이미 그 자리에 있는 것이고,

과거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과거로부터 떠나왔지만,

그 과거는 여전히 살아서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된다.

그렇게 볼때, 자기가 살았던 과거의 것들이 자신의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그리 놀라울 것이 없지만,

자신이 도달하기 전인 자신의 미래로부터 현재인 자기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동안 내가 읽었던 책들에서는 자신의 부모에게서 자신에게로, 자신에게서 자식에게로, 자신의 과업뿐만 아니라 죄도 대물림된다는 의미로 얘기하고 있었던 것과 관련하여...특별할 뿐더러 숙연해질 수 밖에 없게 된다.

 

저자는 이 책 의 아쉬운 점으로 하나 하나의 괘상을 좀 더 깊이 설명하지 못한 점을 들고 있는데,

다른 책에도 많이 설명되어 있으니, 이를 참조하라면서 서둘러 마무리한다.

주역의 괘상은 깊이도 중요하지만 많은 예를 이해함으로써 저절로 깊어질 수가 있다면서, 넓어야 깊어진다는 말은 주역 공부에서 가장 염두에 둬야 할 원칙이라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화살을 맞을지언정 역풍을 맞아서는 안된다'며 저 혼자 고집을 피우지 말고 남과 화합의 중요성도 강조하고 있다.(265쪽)

하지만, 인생이란 향하는 바가 저만의 세계에 빠져서는 안될 뿐더러 대자연의 큰 뜻과 합치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인간이 태어나서 자기 본능에 따라 일생을 살아가는건, 이는 사는게 아니라, 살아진다고 해야 한단다.

저만의 세계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렇게 무시무시한 말로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암튼 이런 책을 보고 나면, 세상에 읽을 책이 그리 많지 않다.

책이 많고 많지만, 아무 책이나 다 책은 아니고,

어떤 책은 책으로 만들어지느라 베어 넘겨진 나무가,

어떤 책은 그 책을 읽는데 들인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니 그런 책들이 점점 늘어만 간다.

 

그동안 나이는 먹고,

시간은 나이만큼의 속력을 내고 흘러가고,

책 욕심은 버릴 수 없어서 마냥 사 모으기만 했는데,

이젠 책을 좀 줄여갈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말해,

삶의 속도에 정답은 없다.

내 나름대로, 나만의 속도를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살아가는게,

정답은 아니어도 가장 바람직한 모범답안이지 싶다.

 

되게 오래간만에 아침 출근 길에 걸어서 산책하듯 출근을 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직업으로 가져도 그것도 행복이겠지만,

나처럼 그럴 수 없을 경우,

미래의 언젠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기꺼이 하기 위해서 직장을 다니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다.

그때까지 건강 관리는 덤이 아니라, 필수 옵션인 것은 당근이다.

 

미래의 언젠가 하고 싶은 그것이 뭔가하면 손으로 꼬물딱거리는 공방이다.

바느질도 좋고, 뜨개질도 좋고,

요즘은 피규어 아트라고 하는 그것도 잼나 보이고,

클레이 아트도 그렇더라.

 

누군가는 현실적인 타당성을 늘어놓으면서,

나의 꿈을 꺾으려 하겠지만,

아직까지 난 공방을 차리겠다는 꿈에 부풀어 날마다 또는 때때로 행복하다.

 

그런 의미에서,

넷 상에 '소잉 데이지' 라는 공방을 꾸리며 솜씨를 살려, 꿈을 키워가는 '서니데이' 님이 계신다.

계절이 바뀌었다고 이쁜 파우치를 만들어 보내주셨는데,

내가 요즘 먹고사는 관계루다가 바빠 이제야 감사 인사를 날린다.

(이 파우치의 이름은 트리볼 네이비'인데 색이 너무 곱다, 아흑~^^)

때~앵~큐,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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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11-17 08:35   좋아요 0 | URL
저도 저 책 괜찮았던 것 같아요. 일단 한문이나 한자어를 적게 쓰고, 과학이나 수학에서 설명법을 가져온 것 같아서, 그래도 이해하기에는 좋았습니다.
저희집 파우치를 좋게 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실제 색상의 느낌이 잘 나도록 사진에 담아주셨어요.
양철나무꾼님,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blanca 2015-11-17 09:16   좋아요 1 | URL
고개가 끄덕여지네요. 주역에 문외한이라 이런 삶의 철학이 있는지 몰랐어요. 클레이아트 공방 얘기하시니 제 딸 종일 클레이 아트 중이라^^ 말리느라 힘들어요.

하늘바람 2015-11-24 13:47   좋아요 0 | URL
궁금한 책이네요
저도 이제 다시 책 좀 보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당시 열아홉 살이었던 나는 그런 병동에 앉아 <씨네21>에 연재하던 코너에 제정신이 아닌 글을 볼펜으로 종이에 꾹꾹 눌러 써써서 면회 온 친구에게 건네면 그 친구가 컴퓨터로 쳐서편집부에 송고해주곤 했다. 하루에 한번 진찰을 오는 교수님은 혀를 차면서 말했다.

"기억력이 좋은 사람은 대체로 불행한데ㆍㆍㆍㆍㆍㆍ."(79쪽)

 

다른건 몰라도 내가  김현진이랑 비슷한 건 기억력이 좀 된다는 거다.

고리고릿적 옛날에 나랑 독서취향이 비슷해서 좋아했던 누군가가,

지금은 그사람 이름도 얼굴도 잊어버렸지만,

그가 내 글보다 김현진의 글이 좋다고 했던 것만은 용케 기억하고 있다가,

책이 나올때마다 족족 꿰어주셨고 두루 섭렵해 주셨었다.

 

그녀의 글들을 처음 접했던게 10여년 전이었는데,

그때는 감각적으로 쓰는 것과 잘 쓰는 것을 동의어로 생각했었는지 열심히 읽었던 것 같은데,

이젠 잘쓴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나의 가치관이 바뀌었는지라,

그녀의 글들이 치기 어린, 현란한 말장난 같이 느껴져서 읽다가 집어던지길 여러번 결국 완독에 실패하고 말았다.

 

김현진이랑 나랑은 기억력이 좀 된다는 것 말고도, 부모와의 애착 관계 결핍이라는 면에서 닮았다.

꼭꼭 숨기고 감추어야 할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상처 입은 옹이를 훈장처럼 내보이고 떠벌리고 광고해야 될 사안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린 나이에 삶의 질곡과 인생의 간난신고를 겪은 듯 하지만,

그녀만 겪은 일은 아닐진데,

코스프레나 광대 놀음마냥 상황을 극단으로 몰아붙여 가며 비극의 여주인공이양 행세한다.

  누가 잘해주면 일부러 술을 더 마시고 주사를 부렸다. 이래도 잘 해줄 거야? 빨리 나를 막 대하란 말이야. 사실은 서글프게 묻고 싶었던 것이다. 이래도 나를 사랑할 건가요. 물론 어리석은 짓었지만 당신이 나를 때릴 사람인지 나는 알지 못했으니까. 현명한 남자들은 재빨리 도망쳤고 고집이 있거나 미련한 남즈들은 달래보려고 참다 참다 화를 내거나 결국 폭발했다. 그러면 나는 잔해 속에 혼자 남아 안심했다. 그래, 이렇게 되는 거야. 그렇게 참화 후 혼자 남고서야 비로소 내 영혼은 몸으로 돌아왔다. 그러면 그때서야 통증이 온다. 그게 둔중해지도록 하기 위해 술을 마셨다.(81쪽)

 

'결핍'은 어떤 의미로는 '장애'이다.

극복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헤치고 나왔을때 비로소 내 삶의 진정한 여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힘들지만 치료하면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어 있다는 채워 가질 수 있다는 것이기에, 과잉이나 잉여보다는 희망적인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나에게,

그녀처럼 온몸으로 부딪쳐 삶의 의미를 찾는 이를 향하여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를 한다고 툴툴 거릴 수도 있겠다.

책 제목의 '육체탐구생활'이 '섹스'를 말하는게 아니라 '노동과 매질'을 얘기하는 거라는걸 알기나 하냐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뭔가를 쓰면서 살고자 하는 사람이어서,

뭔가 열심히 생각하고 행동하는 삶의 기록이어서,

그녀의 몸(=육체)를 드나들었던 삶의 기록이어서,

그런 제목을 취했다고 하면 뭐 할말은 없다.

 

그런데 꼭 '육체 탐구생활'이라는 자극적 상상을 불러오는 제목을 달고 나왔어야 했으며,

화보집도 아닌 것이 그녀의 얼굴을 표지에 내걸어야 했을까, 는 나만 궁금한 것인가 모르겠다.

 

 

육체탐구생활
김현진 지음 / 박하 /

2015년 9월

 

 

이래서 나이가 들면 고전을 찾아서 읽게 되나 보다.

경험에서 비롯되어 삶을 통과하여 나온것이라고 해도,

산만하기만 할뿐 되돌아오는 울림이 없다.

 

 

 

  주자평전 박스 세트 - 전2권
  수징난 지음, 김태완 옮김 / 역사비평사 /

  2015년 9월

 

깊이 있는 고전이 그리워 고른 책이 '주자평전'

깊이 뿐만 아니라 두께도 만만치 않다.

누군가는 책베개 대용으로 딱이라는데,

'주자평전'을 베고 누웠다가는 목디스크로 고생하기 딱이겠다, ㅋ~.

아침에 일어나면 밥 먹듯 한 두쪽씩 읽어봐야 겠다, 불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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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5-10-28 15:51   좋아요 0 | URL
제게는 김현진의 <뜨겁게 안녕>이 그녀의 첫 책이었어요.
너무너무 좋아서 포스트 잇으로 도배질을 하며 읽었던 기억이 나서
얼마전에 다시 꺼내 들어 보았는데, 못 읽겠더라구요. 이유는 양철나무꾼님과 거의 비슷합니다.....
그녀의 새 책들에서 성장한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는 그녀의 책을 읽게 되지는 않을듯 싶어요.

주자평전을 서점가서 실물로 `만져만` 보고 왔습니다.
엄두가..... ㅡ..ㅡ

2015-10-28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8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5-10-28 20:36   좋아요 0 | URL
전 김현진이 누군지 잘 모르겠지만, 양철나무꾼님의 현란한 말장난같은 글은 나이 드니 오글거려서, 피하게 되더라구요. 전 어려운 말 안 쓰는,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글을 선호하게 돼요.

서니데이 2015-10-28 21:30   좋아요 0 | URL
주자평전은 가격도 조금 부담스러운 면이 없지 않고, 그리고 페이지 분량도 상당히 많은 편이어서 저도.^^;
양철나무꾼님, 잘 읽었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단발머리 2015-10-29 10:46   좋아요 0 | URL
김현진은 고등학교 때 친구 이름이고, 작가 김현진은 처음인데,
잘쓴 글이 좋은 글이 아니라는, 양철나무꾼님 말씀에 고개 끄덕입니다.

아침부터 님의 서재에서 놀고 있는데, 오른쪽에 태그, `강신주`가 마냥 반갑네요.
좋다 싫다 말이 많지만, 저는 강신주가 좋다는 사람이거든요. ㅎㅎㅎㅎ

해피북 2015-10-29 15:44   좋아요 0 | URL
저도 단발머리님 댓글에 공감하게되네요 ㅎㅎ 김현진님을 알지 못하지만, 구절구절 끄덕여지는 글이였고 특히나 `이래서 나이들면 고전을 찾아 읽게 되나 보다`에서 빵~터졌어요 ㅎㅎ 오늘 날씨가 무척 쌀쌀합니다. 감기조심하시구 즐거운 오후 보내세요 ^~^

2015-11-04 2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5-11-05 11:30   좋아요 1 | URL
예전에 잠시 알던 사람이라, 가끔 이렇게 책이 나오면 반갑더라구요.
제목이 무척 자극적이라 반감이 드는 건 사실이예요.
게다가 한결같이 표지에 얼굴을 드러내는 것도 그리 좋아보이지 않구요.
다른 인터넷서점 인터뷰를 보니,
제목은 미디어스란 인터넷 언론 연재꼭지 제목이었다고 해요.
(뭐 당연히 이렇게 답하겠지만)얼굴을 쓴 것도 본인은 원치 않았지만,
출판사의 끈질긴 설득 때문이라고 하네요.

한창 사회활동에 열심히 참여할 당시에는
글만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좋았었는데,
한동안 보이지 않더니, 개인적으로 제법 힘든 시기를 보낸 모양이더라구요.

책 나온건 알고 있었는데, 아직 읽어보진 못했어요.
조만간 구해서 읽어봐야겠어요.
다 읽고 양철님의 이 글을 한번 더 읽어볼게요.
또 다른 느낌이겠죠? ^^

2015-11-09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피부에 헛돈 쓰지 마라 - 합리적인 의사 함익병의 경제적인 피부 멘토링
함익병.옥지윤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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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러가지 면에서 나의 선입견을 깨뜨린 책이다.

그를 여러 방송매체에서 볼 수 있었던 고로 의사로서 환자를 대하는 실력만큼이나 언변도 뛰어나다는건 짐작할 수 있었지만,

이런 책까지 냈길래 글솜씨도 뛰어난 줄로만 알았는데,

말은 잘 하지만 글은 그렇지 못한걸 잘 파악하고 있는 까닭에 일종의 인터뷰집 형태를 띄게 된 것이었다.

 

사람은 각자 잘 할 수 있는 영역이 따로 있다는 데에 나도 적극 동의하는데,

예를 들어 인기만발하고 준비가 철저한 지승호 같은 사람이 인터뷰어였다면,

함익병에게서 이런 얘기가 아닌 정치관련 사안이나 사회나 환경 문제 따위에 비중을 두었을 것이고,

그의 피부에 대한 소신과 생각들을 끌어내기는 했겠지만,

불철주야 공부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에게 맞추려 했겠지,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는 언어를 구사하여,

누구든 알아들을 수 있고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쓰이긴 힘들었을 것이다.

 

피부에 대해서 얘기할때, 명심할 사항이 하나 있다.

'피부는 흡수기관이 아니라 방어기관이다.'라는 것이다.

아무리 몸에 좋다는 것을 몸에 발라도 피부는 전혀 흡수하지 못하며,

만약 피부가 이런 것들을 흡수한다면,

세균이나 바이러스들도 피부 속으로 들어가서 세균 감염으로 죽었을 테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함익병, 그가 말을 잘하는지까지는 모르겠고,

그의 평소 말하는 스타일대로 쓰인 구어체를 구사하고 있는데,

다소 과격하고 파격적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귀에 쏙쏙 들어와 박힌다는 것이다.

 

이걸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피부 건강은 정확한 정보, 합리적인 판단, 그리고 '제대로 된' 돈으로 얻을 수 있다는 거죠.(5쪽)'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말해 정확한 정보에 근거하여 합리적인 판단을 할때 좋은 치료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데,

이 좋은 치료효과는 '비용대비효과'라는 수식어의 제한을 받는다.

 

 

그런데, 다소 과격하고 파격적인 느낌까지 드는 이 책과 그를 향하여 툴툴거릴 수 없는 이유는,

합리적인 비용으로 건강하고 아름다운 피부를 오래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비용대비효과'라는 말과 ,

무엇보다 피부로 인해 스트레스 받지 않고, 내 피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매순간 삶 안에서 행복을 찾아가자는 말이,

획일적인 만인의 평등이 아니라,

제각기 개성에 따른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를 존중하는 상대적인 평등 같아서 좋아 보였고,

내가 나이 마흔을 넘어 깨달은 가치관이랄까 삶의 방식을 잘 반영하고 있는듯 여겨져서이다.

 

부자가 되려면 저축부터 하고 남는 걸로 쓰는거고요, 건강해지려면 아침에 일어나서 먼저 운동을 하고 학교나 직장에 가는 겁니다. 반드시 새벽에 운동부터 하세요.(53쪽)

부자가 되려면 저축부터 하고 남는 걸로 쓰는 거라는 말은,

남는게 없으면 쓰지 않는다는 말이지만,

부자들의 수중에 돈이 남는 일은 결코 없다.

돈이 남기 전에 새로운 저축 상품을 알아볼테니까 말이다.

 

음식을 먹는 것과 관련하여서도 나랑 사고방식이 비슷하다.

세끼 밥을 잘 챙겨 먹고 있는 상황에서 인스턴트식품을 굳이 찾아서 먹을 이유는 없지만, 어떻게 하나 보니 찌개를 끓여 밥을 챙겨 먹을 시간은 안 되고 햄버거를 사 먹을 시간 정도는 된다고 하면 그냥 굶는 게 나을까요, 먹는 게 나을까요?ㆍㆍㆍㆍㆍㆍ식사를 거르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건강에 훨씬 나빠요. 그러니 그때 햄버거를 먹으면서 불안에 떨지 마세요. 몸에 해롭지 않을까, 방부제가 많이 들어 있지는 않을까, 살이 찌거나 여드름이 생기지 않을까 고민하고 먹으면 스트레스가 쌓여서 정신 건강에 해롭습니다.오늘은 시간이 안 되니까 햄버거를 맛있게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기분좋게 드십시오. 행복하게 먹는 음식은 우리 몸에 좋은 음식입니다. 그렇지만 세 끼를 다 인스턴트 음식으로 때우지는 마세요. 챙길 수 있으면 밥을 잘 차려 먹는 게 좋지만 바쁠 때는 가끔 그렇게 먹어도 된다는 겁니다.

음식을 피부에 발라서 피부가 좋아질 거라고 기대하는 것도 과학적 근거가 없는, 단지 희망사항일 뿐이에요.(65쪽)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토피 피부염이 오염된 도시 환경이나 인공적인 식품첨가물이 들어 있는 먹거리 때문에 생긴다고들 생각하죠. 정말 그럴까요? 전 세계에서 인구 대비 아토피 발병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뉴질랜드와 스웨덴인데, 이들 나라가 정말 환경이 나쁘고 먹거리가 오염된 나라들인가요? 이두 나라는 공통적으로 과거에 이민자를 잘 받지 않고 고정된 인구 구성을 가진 나라예요. 다양한 인종들과 섞여서 아토피 유전인자가 희석이 돼야 하는데 고립된 채 아토피가 있는 사람들끼리 자꾸 아이를 낳으니까 유전자가 농축이 돼서 아토피가 많아진 거예요.ㆍㆍㆍㆍㆍㆍ물론 대기 오염이 아토피의 증상을 악화시킬 순 있지만, 우리의 생각처럼 큰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는 건 확실합니다. 일부 환경보호론자들이 아토피라는 흔한 병을 이용해서 자기들의 일방적인 논리를 만들어나가는 거고, 지금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그렇다고 오해를 하고 사는 거예요. 제가 기분이 나쁜 건, 정확하지도 않은 의학 정보를 퍼뜨려서 왜 대중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냐는 겁니다.

그래서 아토피 피부염이 있는 아이들의 부모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값비싼 유기농 음식을 먹이지 않아서 아이가 아토피에 걸렸다는 비과학적인 생각은 하지 말라는 거예요.ㆍㆍㆍㆍㆍㆍ그런 식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약자인 사람들에게 질병을 갖다 붙여서 마음 상하게 하는 악질적인 이데올로기 장사는 하지 말자는 겁니다. 아토피는 체질적인 요인으로 발생하는 질환이라서 재산의 정도에 관계없이 나타날 수 있고, 방부제가 없다고 하는 유기농 과자를 먹든, 방부제가 들어 있는 저렴한 과자를 사 먹든, 아이의 아토피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171쪽)

 

한가지를 손에 넣기 위해선 다른 하나는 양보하여야 한다.

양손에 쥐고 있다가 넘어지면 코가 깨지니까 말이다.

어떤 사람이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져서 오랫동안 자주, 그리고 많이 술을 먹었다고 쳐요. 그럼 그 사람은 적어도 자신이 알코올 중독이 되거나 혹은 알코올성 치매가 오거나, 술로 인해 간이 상해서 일찍 죽을 수도 있겠구나, 예상을 하고 각오도 하라는 거예요. 그리고 정말 그런 병이 찾아들면 몰랐던 바도 아니니까 그저 받아들이면 돼요. 대신 남들이 오래 살면서 즐길 만큼의 술은 이미 다 마셨으니까 됐잖아요. 그런데도 막상 병이 생기면 내가 왜 이렇게 됐나 싶고 억울한 심정마저 들어 그때부터 당황하거나 분주해지는 게 일반적인 모습입니다.(71쪽)

 

 

 우리 몸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견디게 해주는 호르몬을 자쳬적으로 분비하는데 그게 바로 스테로이드 호르몬입니다. 스테로이드라는 게 합성된 약 성분이 아니고 원래 사람의 몸에서 자연적으로 분비되는 호르몬이에요. 예를 들어 엄청나게 화가 나는 일이 생겨서 심장이 떨리고 혈관이 확장될때 우리 몸에서 스테로이드가 분비되면서 혈관이 늘어나지 않도록 조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ㆍㆍㆍㆍㆍㆍ몸의 정상적인 생리 상태를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호르몬이 바로 스테로이드라는 겁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수록 우리 몸에서도 스테로이드가 많이 만들어지는데,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테로이드도 끊임없이 분비되고, 결국 혈관은 계속 좁아지게 됩니다. 그러면 혈압이 올라가는 거예요. ㆍㆍㆍㆍㆍㆍ모든 건 양면성이 있어요.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나와서 우리가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점은 참 좋지만, 그게 지속되면 부작용이 따르는 거죠.우리 몸의 작용기전이 다 그렇습니다.(187쪽)

 

이 책을 읽다보면, 모든게 사람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 마음 먹기에 따라 지금 있는 곳이 천국이 되기도 하고, 지옥이 되기도 할 뿐더러,

삶에서 행복을 찾아가느냐, 그렇지 않느냐도 결정지어지는 것이니,

벌어지지도 않은 일을 미리 예측하여 걱정하거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좌절하거나 마음 아파하지 말고,

내 나름대로의 소신과 가치관을 가졌다면,

매순간순간 나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도 좋겠다.

 

나이드는게 아름답고 좋은건 그래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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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10-23 16:22   좋아요 0 | URL
소개해주시니 저도 이 책 읽어볼게요,
양철나무꾼님, 좋은하루되세요,

양철나무꾼 2015-10-28 14:59   좋아요 1 | URL
날이 갑자기 추워졌어요.
맘 가난한 사람 얼어죽기 딱이에요.
우리 옷이라도 따땃하게 입고 다니자구요~^^

2015-10-23 1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5-10-28 15:02   좋아요 0 | URL
전 게을러서 피부에 양보 몬하던 1人이예요, ㅋ~.
얼굴에 책임지는건, 마흔부터라던가 그렇던데...
님이 동안이어서가 아니라,
아직 마흔이 안 되어서, 가 아닐까요?

괜히 동안이라는 사람보면 딴지가 걸고 싶어지는 놀부심뽀의 아줌이~, ㅋㅋㅋ~.

알케 2015-10-23 22:25   좋아요 0 | URL
함익병 ..ㅎ 이 아저씨 재밌죠.
저 하고도 일 하나 같이 할 뻔했는데.

양철나무꾼 2015-10-28 15:09   좋아요 1 | URL
전 이렇게 얼굴 허여멀건하고 키는 멀대 같이 큰,
거기다가 흰밥 먹고 쉰소리까지하면 진짜 밥맛인데~(,.)
제 취향은 아니지만 책은 재밌습니다~^^
 
북유럽 스타일 실용 소품 - 재봉틀로 만드는
박정원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언젠가 어디선가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입니다'라는 광고를 보고 아이디어에 감탄을 한 적도 있지만,

그만큼 여러가지 복합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는게 집이고,

사람들의 스타일이나 가치관에 따라서 중점을 두는 기능도 다 다르게 마련이다.

 

이쁘고 아기자기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세련되고 모던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먹고 사는데 치여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 대로 꾸미고 사는건 사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같은 경우는 심플하고 젠틱한 스타일이 좋다고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특별한 스타일이 없어서 하는 대외적인 멘트일 뿐이다.

 

요즘 인테리어 책을 보거나 소품 따위를 구입하려 할때 자주 접하게 되는 말이 북유럽 스타일이다.

그냥 '북유럽 스타일'했을때는 어렵지 않은 것 같은데,

한마디로 정의해보라고 하면 머뭇거리게 되는 터라,

책제목 '북유럽 스타일'에 혹해서 구입하게 되었다.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아름답고 완벽한 집을 짓는 것이 목표라면 이탈리아인 건축가, 독일인 기술자, 영국인 정원사를 고용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집의 인테리어는 누가 뭐래도 북유럽의 전문가에게 맡겨야 할 것이다.
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 고로,

'인테리어'하면 '북유럽스타일'이 대세인건 알겠지만,

그 북유럽스타일을 한마디로 단정지어 말하기엔 추상적이어서 너무 방대하고 난해하다고 생각했었다.

 

이 책에선 몇가지 원칙으로 '북유럽스타일'을 정의하고 있는데,

원칙1 나무 ㆍ산 ㆍ꽃 등 자연을 모티프로 한 패턴

원칙2 동물무늬 원단

원칙3 기하학무늬 원단

원칙4 나무, 가죽 등 자연 친화적인 소재와 믹스&매치

이 그것이다.

 

'재봉틀로 만드는' 소제목으로 알 수 있듯이,

이 책에 나와있는 '북유럽스타일의 실용소품'들은 손으로 쉽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인데 하나 같이 예쁘다.

패턴이 만들기에 까다롭거나 한게 아니라,

원단의 색감이나 무늬에 따라 '북유럽스타일'로 거듭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브랜드의 특징을 알아뒀다가 원단에 적용하면,

손쉽게 '북유럽스타일'의 인테리어로 변신을 시도할 수 있겠다.

 

그런 원단을 구할 수 있는 곳을 보너스로 알려주고,

책의 뒤에는 또 다른 보너스로 도안이 딸려있다.

확대를 해야하는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재봉틀로 소품을 만들어본 사람들이라면,

이런 도안 하나하나가 다 돈이고,

이 도안들의 정확도에 따라서 완성품의 정교함과 마감처리의 깔끔함의 정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잘 모르지만 북유럽이면 좀 추운 곳일거 같은데,

원색을 다채롭게 배열해서 따뜻하면서 환한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이,

이래저래  책값 이상을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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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10-19 19:46   좋아요 0 | URL
원형본이 실제 크기라면 좋을텐데, 양철나무꾼님 말씀처럼 그건 좀 아쉽네요.^^; 그래도 좋은 점이 많은 책처럼 보입니다.
양철나무꾼님, 좋은하루되세요.^^

양철나무꾼 2015-10-23 16:20   좋아요 1 | URL
맞아요, 직접 바느질을 하는 사람들끼리라서 그런지 서니데이님과 찌찌뽕이네요.
암튼 너무 예쁜 원단들이 많이 나와서 완전 지름신이지 뭐예요~ㅠ.ㅠ

하늘바람 2015-11-24 13:48   좋아요 0 | URL
이쁩니다용
 
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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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금(불타는 금요일밤)의 뜻을 아냐고 물었더니, 불허하다와 같은 의미쯤으로 생각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언어를 문어체로 사용하기를 즐겼는데,

유독 '허한다'와 '금한다'는 그에게 잘어울려서 은근 그런 대답을 유도하는 질문을 하곤 했었다.

오늘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의 '광야를 달리는 말'이라는 꼭지를 읽다가 그가 생각났다.

"요사스럽다. 곡을 금한다." 내 아버지한테서 배운 말투였다. 여동생들은 질려서 울지 못했다.(33쪽)나,

"너희는 배산임수를 모르느냐"(40쪽) 따위의 말들에서 그가 빙의한듯 겹쳐졌다.

 

'광야를 달리는 말'처럼 호방함을 흉내내었지만,

그리하여 쿨한듯 행동했지만 속 마음은 누구보다도 다정다감하였을 듯 하다.

 

 

내게 김훈은, 김현과 더불어 깔끔하고 명징하여 군더더기 없는 문장을 구사하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그의 소설들을 읽고 있노라면 여우같다는 느낌이 들곤 했었다.

문장에 군더더기가 없고 감정이 넘치지 않고 똑 떨어지는 것이,

큐싸인 나기 바로 전까지 전화통 붙들고 깔깔거리다가 막이 오르면 눈물을 뚝뚝 떨구는 베테랑 연기자처럼,

독자를 자신의 의도대로 몰입하게 만들 수 있는 소설가라고 생각했었다.

너무 완벽하면 인간적인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그의 산문들 또한 소설과 마찬가지로 완벽한 것은 마찬가지인데,

따뜻한 온기를 가진 것이 숨통이 트이게 한다고 해야 할까?

내게만 그런지도 모르겠다. 

암튼, 난 그가 아직도 글을 쓸때면 사각사각 연필을 깎아서 원고지에 쓴다는 것이,

커피는 케냐AA를 즐긴다는 것이, 좋았었다.

내가 결정을 잘 못하는 병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천안 삼거리에 걸린 능수버들처럼 '이것도 흥~, 저것도 흥~' 만사 오케이하는 사람들을 보면 수더분해서 좋아보이는게 아니라, 줏대가 없어 희미하게 보이기까지 하는걸 보면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라면을 끓이며'의 표제글이라 할 수 있는 '라면을 끓이며'를 보면,

깔끔하고 명징하여 군더더기 없는 문장력은 그대로인데 따뜻함이 배어있다.

 

나는 센불로 3분 이내에 끓여낸다. 가정에서 쓰는 도시가스로는 어렵고, 야외용 휘발유 버너의 불꽃을 최대한으로 크게 해서 끓이면 면발이 붇지 않고 탱탱한 탄력을 유지한다.ㆍㆍㆍㆍㆍㆍ물이 넉넉해야 라면이 편안하게 끓는다. 수영장이 넓어야 헤엄치기 편한 것과 같다. 라면이 끓을 때, 면발이 서로 엉키지 않아야 하는데, 물이 넉넉하고 환산 터지듯 펄펄 끓어야 면발이 깊이, 또 삽시간에 익는다. 익으면서 망가지지 않는다.(29쪽)

 

이 책은 그렇게 '라면을 끓이며'로 가볍게 시동을 거는 듯 보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얘기들이 가득하다.

밥 얘기, 삶 얘기, 목숨 얘기가 나온다.

돈에 관한 얘기도 나온다.

열대밀림 속에서 무위자연이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 말은 허망해서 그야말로 무위하다.ㆍㆍㆍㆍㆍㆍ자연은 인간에게 적대적이거나 우호적이지 않지만 인간은 우호적이지 않은 자연을 적대적으로 느낀다. '무위'는 자연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손댈 수 없는 인간의 무력함을 말하는 것이라고 열대의 밀림은 가르쳐 주었다.(80쪽)

 

자연을 인간이나 삶의 연장선 상에서 생각했던 내게,

자연과 인간이 친화적인 것이 아니라 적대적이란 얘기는 무척 충격적이었지만,

때문에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고,

그런 의미에서 볼때 '인간을 위한'이나 '인간에게 이로운'이란 자연에 친화적이거나 공생하는 것이 아닌 다음에는 인간 중심의 편협한 사고일 수도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평상시 깨달았던, 글쓰기도 그렇고 독서도 그렇고 경험을 수반해야 의미가 있다고 했던 것과 관련,

나도 그렇지만 김훈 또한 몸을 움직여서 일하는-소위 노동이라고 하는 일들에 익숙하지 않은 타입인 것이 글 곳곳에서 드러나서 겉도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것이 그로 하여금 노동을 숭고하게 보이게 하고 숭배하는 것으로까지 비춰지는데,

노동이 그런 것이 아니라는게 아니라,

지나친 숭상은 자리매김이나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듯 여겨져서 아쉬웠다.

 

그 노동이라는 것이 과연 지휘자도 없는 오케스트라에 비견 될만한 것인지,

암벽등반가와 선원들의 그것과 소방관들의 소방호스를 연결시켜도 좋은 것인지, 말이다.

 

그외에도 세월호며 여자가 7까지 번호를 달고 이어지고 손과 발 온통 좋은 글 뿐이다.

일독을 권한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뉘우쳐도 돌이킬 수는 없으니 슬프고 누추하단다.

여기에 내가 한마디 첨언하자면,

내자신의 기준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면 그리 많이 돌이킬 일도 그리하여 뉘우칠 일도 없지 싶다.

그리고 산다는 것은 조금쯤은 슬프고 조금쯤은 누추한 것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거기다가 때론 케냐AA 커피처럼 씁쓸하고 알싸하기도 하고,

때론 퉁퉁 불은 라면 면발 같이 퍽퍽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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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10-15 18:49   좋아요 1 | URL

이제 막 유레카님 글보고 왔는데 또 라면을 끓이며가 떠서 내 눈이 잘못 됬나? 했어요 ㅎㅎ

저에게 김훈은 소설보다는 산문이에요~ 말씀하신대로 산문에서는 무뚝뚝하지만 숨겨진 온기가 느껴지는 느낌이라서요~~ ^^

caesar 2015-10-15 19:14   좋아요 1 | URL
소설보다 산문이라는 데 저도 공감합니다^^

양철나무꾼 2015-10-19 14:12   좋아요 1 | URL
누구나, 특히 이곳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비슷한 생각들을 하는 것 같아요, ㅋ~.

반갑습니다, caesar님~^^

yureka01 2015-10-15 19:07   좋아요 2 | URL
ㅎㅎㅎ 방금 리뷰 올렸는데.묘하게 교차되었네요.^^..

잘읽었어요 ^^..

정말 뉘우쳐야 할 사람은 안뉘우치는데,
작가들은 왜이렇게 뉘우침이 점점 늘어나는건지 말이죠..^^ㅎ

양철나무꾼 2015-10-19 14:14   좋아요 1 | URL
리뷰가 그렇게 멋지면 어쩌라는 거예요, 췟~(,.)
저도 님 완전 멋진 리뷰 잘 봤어요...ㅋ~.

[그장소] 2015-10-16 04:29   좋아요 0 | URL
전체보단 부분 부분 맘에들어 어머나...하다가..케냐 AA에 홀딱 넘어가 버리는 ...이 가벼움 ㅡ아 ..이 글의 부분이 그렇다함이 아니고 저는 워낙 산문을 안좋아 했다는 말 이랍니다 ㅡ^^

양철나무꾼 2015-10-19 14:16   좋아요 1 | URL
저는 김훈은 `자전거여행`이 시작인지라...ㅋ~.
그 자전거여행을 읽고 자전거가 타고 싶어 어쩌지 못해,
한때 머리를 프랑켄슈타인으로 만들었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죠~^^

[그장소] 2015-10-19 15:00   좋아요 0 | URL
아하핫 ~ 왜..에세이를 경원시했나 몰라요.
너무 빠져들까봐..그 사람의 생활관이 대게 보이곤 하잖아요. 그래서 안보면 싶은 것도 보이니 그랬는데. .저는 하루키 ㅡ달리기를 말할때.. 그 에세이에서 그냥 에세이 자체를 받아들이자..내 고집 내려놓고..그랬어요. 전설은 못되지만 양철나뭇꾼 님 덕에 제가 웃다 갑니다.

양철나무꾼 2015-10-23 16:22   좋아요 1 | URL
님께 소소한 웃음이라도 드릴 수 있었다니,
이 댓글의 덧글도 선방이었네요~^^

프레이야 2015-11-22 08:37   좋아요 1 | URL
유레카님과 동시 당선이군요. 축하 더블로 드려요.ㅎㅎ
꼬들한 면발 좋아하시는 거, 저랑 같아요.
퍼지면 어쩐지 서글프지요.

yureka01 2015-11-22 09:42   좋아요 1 | URL
외우.그러게요.축하축하...역시.ㅎㅎㅎ 적립금은 벌써 또 책에 투자되는 흡족함이 제일 좋더군요..어제 밤.또 라면 먹고 퉁퉁 불었어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