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책을  봤다.

어디선 과학이라고 하고, 어디선 인문학이라고 하고,

각자 다른 용어로 이야기 하고 있지만 같은 얘기라는걸,

결국엔 그게 그거인 얘기를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을뿐이란 걸 깨닫게 된 이후론,

어떤 주역 책을 읽어도 몰입하지 못하고 시큰둥이었다.

 

그래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은,

과학 위의 학문이고 인문학의 최고봉이어서 공자마저 朝聞道夕死可矣라고 했던,

그런 주역의 의미를 헤아릴 수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해석조차 떠듬떠듬이었기 때문이었다.

 

 

 

 

 

 

 

 

 

 

 새벽에 혼자 읽는 주역인문학
 김승호 지음 / 다산북스 /

 2015년 10월

 

근데 빈수레가 요란하고 나처럼 어설플수록 오지랖은 넓다고, 이 책도 처음 시작했을땐 엄청 툴툴거렸는데,

주역은 인문학이고 과학이고, 의 가부를 나누기 전의 근원적인 것이라 생각하는지라...그 가부 때문이 아니라,

제목은 '새벽에 혼자 읽는 주역인문학'이라고 해서 '인문학'을 표방하고 있는데,

책 내용은 주역은 과학적인 학문이고 그래서 해외의 '내로라'하는 과학자들마저 주역을 연구하는데 이바지했다, 는 얘기를 처음 60여쪽에 걸쳐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양손 엄지 척'으로도 부족하여,

엄지 발가락까지 가세하고 싶을 정도로 좋다고 설레발을 칠 수 있지만,

제목에 '인문학'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은건 아무래도 요즘 대세라는 인문학의 인기에 편승해보려는 꼼수처럼 보여서 별로였다.

하지만, 이 부분을 꾸욱 참고 넘기면,

주역이라는 학문을 향한 신세계가 열리고 문리가 트이는 것을 경험으로 느낄 수 있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주역 책 가운데 단연코 최고이다.

 

한분야를 꾸준히 연구한 사람에겐 뭔가 범접할 수 없는 그만의 아우라 같은 것이 있나 보다.

이 책을 쓴 저자는 1949년 생으로 우리나이로 67세인데,

지난 50년간 과학으로서의 주역을 연구하였다고 한다.

50년이면, 반백년이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한 학문을 강산이 다섯번이 변하도록 연구하였다는걸 보면,

주역이라는 학문도 보통이 아니지만, 저자 김승호 님도 보통은 아니지 싶다.

 

이쯤 되면, 업적은 차치하고라도 숙연해질법도 한데,

이런 책을 만날때마다 만나는 이런 사소한 오류 때문에 저자에 대한 신뢰가 같이 반감되곤 한다.

90쪽의 내용인데,

관우와 산, 방패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말에 신용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바람으로 넘어가는데,

괘상은 여전히 산이다, 오류이다.

 

 184쪽인데, 뇌화풍을 뇌하풍으로 오기하였다.

 

그는,

점이란 대개 미래를 알고자 하는 행위지만 때로는 하늘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점을 치기도 한다. ㆍㆍㆍㆍㆍㆍ이때의 점은 아주 공정하다. 하늘의 운행은 공정한 것이다. 우연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우연 속에는 하늘이 담겨 있는 것이다. 점은 인간의 생각을 초월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으로 알 수 없는 걸 점에 맡기는 것이다.

주역을 공부하는 사람이 가끔 점을 치면 괘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미신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지칭할 때 흔히 미신이라고 말하는데 점은 절대 그렇지 않다. 점은 하늘을 공경하는 행위다. (203쪽)

라고 하며,

호킹박사는 무의 요동에 의해 우주가 생겼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노자의 "유는 무에서 생겼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ㆍㆍㆍㆍㆍㆍ더 정확하게 말하면 에너지 - 시간 불확정성 때문에 우주가 생겼다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는 주역을 공부하여 이것을 깨달았다. 무는 정지되어 있기도 하고 움직이기도 하는 존재다. 보통 사람은 무란 텅 빈,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은 그게 아니다. 무는 요동치는 존재로서 양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물론 무는 음의 성질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태극이라고 말하는 것인데, 이는 태극은 음도 양도 아니라는 의미도 된다.(221~222쪽)

이런 식으로 과학자들을 인용한다.

노자, 도(道) 따위도 같은 방식으로 아우른다.

 

 

 

 주역계사 강의
 남회근 지음, 신원봉 옮김 /

 부키 / 2011년 2월

 

물론 다른 주역 관계 서적에서 이런 언급이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확인한 것은 '남회근'의 '주역계사 강의'뿐인데,

 남회근과 신원봉의 조합이 우리나라 주역史엔 아주 큰 의미이지만,)

어려운 말로 쓰여 있어서, 무슨 말인지 알아 먹지 못했었던 반면,

이 책은 쉽게 쓰여서 관심만 있다면 쉽게 이해가능하다.

 

암튼 저자가 여러 과학자를 나열한 속 뜻은,

주역은 '시공'을 '초월'하고 있는데,

그 시공의 초월성이 과학적이라는 것을 합리화시키는 방법인듯 하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거기 가기 전에 이미 그 자리에 있는 것이고,

과거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과거로부터 떠나왔지만,

그 과거는 여전히 살아서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된다.

그렇게 볼때, 자기가 살았던 과거의 것들이 자신의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그리 놀라울 것이 없지만,

자신이 도달하기 전인 자신의 미래로부터 현재인 자기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동안 내가 읽었던 책들에서는 자신의 부모에게서 자신에게로, 자신에게서 자식에게로, 자신의 과업뿐만 아니라 죄도 대물림된다는 의미로 얘기하고 있었던 것과 관련하여...특별할 뿐더러 숙연해질 수 밖에 없게 된다.

 

저자는 이 책 의 아쉬운 점으로 하나 하나의 괘상을 좀 더 깊이 설명하지 못한 점을 들고 있는데,

다른 책에도 많이 설명되어 있으니, 이를 참조하라면서 서둘러 마무리한다.

주역의 괘상은 깊이도 중요하지만 많은 예를 이해함으로써 저절로 깊어질 수가 있다면서, 넓어야 깊어진다는 말은 주역 공부에서 가장 염두에 둬야 할 원칙이라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화살을 맞을지언정 역풍을 맞아서는 안된다'며 저 혼자 고집을 피우지 말고 남과 화합의 중요성도 강조하고 있다.(265쪽)

하지만, 인생이란 향하는 바가 저만의 세계에 빠져서는 안될 뿐더러 대자연의 큰 뜻과 합치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인간이 태어나서 자기 본능에 따라 일생을 살아가는건, 이는 사는게 아니라, 살아진다고 해야 한단다.

저만의 세계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렇게 무시무시한 말로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암튼 이런 책을 보고 나면, 세상에 읽을 책이 그리 많지 않다.

책이 많고 많지만, 아무 책이나 다 책은 아니고,

어떤 책은 책으로 만들어지느라 베어 넘겨진 나무가,

어떤 책은 그 책을 읽는데 들인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니 그런 책들이 점점 늘어만 간다.

 

그동안 나이는 먹고,

시간은 나이만큼의 속력을 내고 흘러가고,

책 욕심은 버릴 수 없어서 마냥 사 모으기만 했는데,

이젠 책을 좀 줄여갈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말해,

삶의 속도에 정답은 없다.

내 나름대로, 나만의 속도를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살아가는게,

정답은 아니어도 가장 바람직한 모범답안이지 싶다.

 

되게 오래간만에 아침 출근 길에 걸어서 산책하듯 출근을 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직업으로 가져도 그것도 행복이겠지만,

나처럼 그럴 수 없을 경우,

미래의 언젠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기꺼이 하기 위해서 직장을 다니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다.

그때까지 건강 관리는 덤이 아니라, 필수 옵션인 것은 당근이다.

 

미래의 언젠가 하고 싶은 그것이 뭔가하면 손으로 꼬물딱거리는 공방이다.

바느질도 좋고, 뜨개질도 좋고,

요즘은 피규어 아트라고 하는 그것도 잼나 보이고,

클레이 아트도 그렇더라.

 

누군가는 현실적인 타당성을 늘어놓으면서,

나의 꿈을 꺾으려 하겠지만,

아직까지 난 공방을 차리겠다는 꿈에 부풀어 날마다 또는 때때로 행복하다.

 

그런 의미에서,

넷 상에 '소잉 데이지' 라는 공방을 꾸리며 솜씨를 살려, 꿈을 키워가는 '서니데이' 님이 계신다.

계절이 바뀌었다고 이쁜 파우치를 만들어 보내주셨는데,

내가 요즘 먹고사는 관계루다가 바빠 이제야 감사 인사를 날린다.

(이 파우치의 이름은 트리볼 네이비'인데 색이 너무 곱다, 아흑~^^)

때~앵~큐,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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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11-17 08:35   좋아요 0 | URL
저도 저 책 괜찮았던 것 같아요. 일단 한문이나 한자어를 적게 쓰고, 과학이나 수학에서 설명법을 가져온 것 같아서, 그래도 이해하기에는 좋았습니다.
저희집 파우치를 좋게 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실제 색상의 느낌이 잘 나도록 사진에 담아주셨어요.
양철나무꾼님,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blanca 2015-11-17 09:16   좋아요 1 | URL
고개가 끄덕여지네요. 주역에 문외한이라 이런 삶의 철학이 있는지 몰랐어요. 클레이아트 공방 얘기하시니 제 딸 종일 클레이 아트 중이라^^ 말리느라 힘들어요.

하늘바람 2015-11-24 13:47   좋아요 0 | URL
궁금한 책이네요
저도 이제 다시 책 좀 보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