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는지 새해가 되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이 침침했다.
몸의 말은 마음이 듣고, 마음의 말은 몸이 듣는다.
그런데 마음은 슬쩍 속일 수 있어도, 몸은 절대 안된다. 정직하다.
안과에 갔더니 더 나빠진건 아니란다. 몸의 기력이 떨어졌으니 일시적인 현상이란다.
그래도 칼을 삤으니 허공만 가르다가 칼집에 도로 넣을 수는 없는 일이다.
아줌마의 자존심이다.
아니, 부부 간의 기 싸움이다.
삼십 년간 '돈' 보기를 '돌'보는 것처럼 하던 남편이 작년에는 가계부 검사까지 했다.
털어도 먼지가 나오지 않아서 그냥 넘어갔지만 남자의 자존심인지 한마디 했다.
"좀 더 아껴써."
물론 남편의 마음을 안다.
웬만해서 감탄사를 잘 쓰지 않는 남편이지만 가끔하는 감탄문이 있다.
"오래 살았더니 마누라가 아니고 귀신이네!"
올해로 결혼 삼십주년을 맞는다.
그만큼 살다보면 남편의 속마음을 훤히 읽을 수 있다.
남편이 돈에 대해 갑자기 태도가 바뀐 것은 우리 세대가 기대하지 못했던 '평균수명' 탓이다.
'재수없으면' 백 살까지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은퇴 후, 살아야 할 시간이 너무 긴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전후 세대, 경제발전을 이루느라 앞만 보고 달려온 세대들이 아닌가.
우리가 사회에 나왔을 때는 노후준비란 말조차 없었다.
암보험 조차도 십 년 넣고 이십 년 보장을 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물론 연금도 있고, 국민연금도 있으니 살아가기는 하겠지만 남편은 가장으로서 기실 걱정이 되는 일일 터이다.
나도 물론 알뜰하게 살림을 하기는 한다.
그렇지만 '내일'을 위해 '오늘'을 저당잡히고 싶지는 않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지만 이제는 싫다고 버티는 중이다.
여기가 남편과 나의 충돌지점이다.
아무튼 칼을 그냥 집어넣을 수는 없어서 안경점에 갔다.
상식의 틀을 깨자는 책을 읽고 있는 중이어서 내 수준에서 소심하게 상식의 틀을 깨는 안경을 새로 맞췄다.
며칠을 새로 맞춘 안경을 쓰고 다녔지만 남편은 안경이 바뀐 것조차도 모른다.
그러면서 아껴쓰라는 말은 왜하는 지 모르겠다.
돈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도 모르면서...
페이퍼를 쓰기 위해 그동안 썼던 안경을 한 자리에 모아봤다.
맨 앞의 것이 새로 맞춘 안경이다.
빨간색 뿔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