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 어느, 중년 남자의 두려움 


  

며칠 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와서 읽고 있다.
한겨레신문 논설 주간을 지낸 김선주의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이다.
그동안 논설위원으로 있으면서 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모아서 엮은 책이다.  
나는 이이의 세상을 염려하는 따뜻한 시선이 마음에 든다.
그 시선의 아랫자락에는 모성이라는 여성성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이이의 글이 이런저런 사회의 부조리나 문제점, 구조적인 모순, 제도적인 장치의 미비, 인간성의 상실, 인간에 대한 배려나 예의의 부재 등 많은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래도 따뜻하게 읽히는 것은 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열심히 읽고 있는데, 남편은 내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면 무심한 척 하면서 마누라가 무슨 책을 읽고 있나 알고 싶어서 슬쩍슬쩍 엿보곤 한다.
내 책상 위의 책들을 안보는 것처럼 하면서 제목들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런 책을 왜 봐?”
남편은 자기의 관심 분야가 아니면 무식하기 그지없다. 아니 무식하다기 보다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이다.
보통 때는 그냥 넘어가는 데 아무래도 이 책이 마음에 걸렸나보다.
그러면 책장을 들춰서 무슨 내용인가 슬쩍 보아도 될 터이지만 그런 수고는 절대 안하는 사람이다.  나는 남편이 말하는 뜻을 알고 있다. 그러나 짐짓 시치미를 뗐다.
“그 책이 왜?”
중년 남자는 중년의 여자가 느끼지 못하는 두려움이 있다.
그 두려움의 근원은 아마 ‘젖은 낙엽 증후군’인 것 같다.
바다 건너서 온 용어이다. 일본에서 한때 유행하였고 지금도 이런 기사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일본은 20년 이상 동거한 부부의 이혼 이른바 '황혼이혼'의 원산지이다. 전후 세대가 은퇴를 하기 시작한 2000년대에 들어서 퇴직 이후의 인생에 대한 별다른 준비 없이 은퇴한 50∼60대 남편들을 ‘누레오찌바’ 즉 ‘젖은 낙엽’이라고 부른다.
구두나 몸에 붙으면 쉽게 떼어지지 않는 젖은 낙엽처럼 퇴직 후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는 남편을 빗댄 말로 제대로 떨어지지도 않으면서도 쓸모는 없는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노부오 쿠로카와박사는 노년기 일본 주부의 60% 이상이 ‘은퇴 남편 증후군’(RHS: Retired Husband Syndrome)에 걸려 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황혼이혼’이란 단어는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0년 2363건에 불과했던 황혼이혼은 10년 후인 2000년 1만6978건으로 7배 넘게 늘어난 데 이어, 지난해에는 2만8261건으로 10년 전보다 2배 가량 늘어난 것으로 집계되었다.
전체 이혼건수에서 황혼이혼이 차지하는 비중도 점점 높아져 1990년에는 전체 이혼 건수 가운데 5.2%에 불과했으나 10년 후인 2000년에는 14.2%로 급증한 뒤 2009년에는 22.8%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이혼부부 열 쌍 가운데 20년 이상을 같이 산 부부가 두 쌍을 넘은 셈이다.
남편들의 편에서 보면 무시무시한 이야기이다.

얼마 전 부부동반으로 여고 동창들 모임을 가진 적이 있었다.
남자들은 고등학교, 대학교를 인문계열, 이공계열 별로 공부를 하게 되고 따라서 졸업을 하고나서 하는 일들도 몇 가지에 국한 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여자들은 물론 자신의 일을 따로 갖고 있긴 하지만 남편들의 직업에 따라 살아가는 환경이 다양할 수 밖에 없다.
내 여고친구들의 남편들도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물론 남편들끼리도 서로 알고 지내고 있다.
한 번 남편들을 대동하고 만났더니 웃기는 건, 이 남편들이 우리 모임을 너무 재미있어 한다는 거였다.
비용을 남자들 쪽에서 댈 테니 다음 번 모임에도 초대를 해달라는 거였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소리를 높였다.
“아, 됐거든.”

어느 강연에서 좀 슬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남편은 비행기 조종사였다. 삼십 년을 넘게 하늘에 떠서 일을 하다가 마침내 정년퇴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처음 얼마간은 그렇게 홀가분하고 좋았다고 했다.
경제적으로 어렵지가 않으니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지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가족들과 도무지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어느 날, 아내의 친구 모임에 가게 되었다.
옆에서 가만히 들으니 아내의 친구는 자신의 집안일이나 아이들 일을 모르는 것이 없어 보였다.
자신은 생전 처음 듣는 일인데 아내의 친구는 그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아내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남편은 절망감을 느꼈다고 했다.

우스개 소리로 요즘 남편은 이사할 때 절대 애완견을 품에서 내려놓지 않는다고 한다.
애완견에 묻어서 기어이 이사 가는 집에 입성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중년 남자들의 현주소이라면 너무 과장된 것일까.

우리 남편도 이런 대열에서 예외가 아닐 터이다.
그래서 아내의 책상 위에 있는 책의 제목을 보고 잔뜩 긴장했을 것이다.
‘이 마누라가 나 몰래 이별을 꿈 꾸고 있나’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날, 두 사람이 먹기에는 좀 많은 양의 미역국을 끓인 적이 있었다.
남편이 그것을 보더니 큰 눈이 더 커지며
“미역국을 왜 그렇게 많이 끓여?” 하는 것이었다.
그 때만 해도 남편의 염려를 눈치채지 못하고 심상하게 대답했었다.
“먹을려고.”

물론 이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는 이별이야기가 맞다.
앞부분에서 연예인 부부의 이별, 미국 갑부 부부의 이별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철새정치인에 관해서였다. ‘이해관계가 다르고 꾀하는 바가 다른 정치 집단의 이합집산은 당연한 것이’지만 ‘직업과 학문, 예술에의 열정, 나라와 겨레, 어떤 이상, 사회적 이슈에 몸과 마음이 아플 정도로 헌신했던 터질 것 같은 순간’의 사랑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마는 정치권의 세태를 통탄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 남편은 유교적인 집안의 장손이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남존여비’ ‘부부유별’ ‘여필종부’ 따위의 풍속을 가문의 영광처럼 지키는 사람이다.
지금도 내가 무어라고 한 마디 할라치면 ‘한 집에 한 사람씩만 똑똑하자’고 입에 거품을 문다.
똑똑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세상이 이렇게 어지럽다는 것이다.
그런 간 큰 남자가 언제 이렇게 ‘새가슴’ 되었는지 모르겠다.

당신과 절대 찢어지지 않은 테니 안심하라는 각서라도 한 장 써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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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1-16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젖은 낙엽 증후군, 아, 그렇게 깊은 의미가.. ^^
우습지만 찡한 이야기예요.

저는, 우리 세대의 40-60 사이의 남자분들, 중장년층이 제일 불쌍한 세대가 아닌가 싶어요.
짐도 무겁고, 세상의 변화를 쫒아가기도 힘들고, 자기 것을 딱히 가진 것도 아니고..
회사에 짓눌리다가, 회사를 관두면 무엇을 해야할지 남은 것도 없고.

언니의 글을 읽으니, 신랑에게 좀더 잘해주어야겠어요. ^^

gimssim 2010-11-17 11:38   좋아요 0 | URL
맞아요.
'낀 세대'라고도 하지요.
신랑께 좀 더 잘해주려고 결심했다니 페이퍼를 쓴 보람이 있네요.
좋은 하루!

양철나무꾼 2010-11-16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이런 내용이군요~
그러고 보면 저희 남편은 아직 한참 멀었어요.
국이나 찌개를 넉넉하게 끓여놔도 절대 두번은 안 먹으니,넉넉하게 안 끓이게 돼요.

이 페이퍼 카피해서 남편 책상에 살포시 올려놔 볼까 봐여~^^

gimssim 2010-11-17 11:39   좋아요 0 | URL
네, '세태만평'에 해당하는 글들이에요.
부드럽게 읽힙니다.
요즈음은 너무 '용감한' 책을 좀 읽기가 거북스러워요.
이가 시원찮아서일까요?

양철나무꾼 2010-11-17 13:05   좋아요 0 | URL
아하하~이 악물고요?
용감한 책 읽으심 안 되겠는걸요.
임플란트를 마우스피스처럼 사용하게 되면 안 되잖아요~^^
(전 이가 튼튼하지는 않은데,충치는 하나도 없어요.
전 나중에 이 땜에 고생할까봐 임플란트 보장되는 보험 들었어용.)

꼼미 2010-12-17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을 최근에 참 좋게 읽었답니다. 작가의 이야기와 더불어, 이 시대의 소시민으로서, 나이 먹어가는 여자로서, 짧지도 길기도 않게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지요. 여기서 보니 책도 중전님도 새삼 반갑네요...^^

gimssim 2010-12-18 08:58   좋아요 0 | URL
좋은 책은 긴 여운을 남기지요.
꼼미님 반가와요.
벌써 12월도 중순을 지나고 있네요.
한해의 마무리 잘하시고
새해, 좋은 출발되시기를 바랄게요.
 


시(始) 커피이야기


내가 커피를 즐기고 좋아하는 데 반해 남편은 커피라곤 입에 대지 않는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절대 몸을 움직이지 않는 성격 탓에 살아가면서 민망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대대로 딸이 귀한 집안의 외동딸이다. 그러니 남편은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위가 아니겠는가.
신혼여행을 마치고 친정에 갔을 때, 엄마는 상을 잘 차려놓고 사위에게 “좀 더 드시게” 권했는데 이 사위는 밥 한 술 더 먹는 것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목에 칼이 들어와도 더 못 먹는다는 자세로 버텼다.
엄마는 서운한 기색이 역력했고 방으로 들어온 나는 한바탕 눈물바람을 했다.

나는 밥 한 끼 굶는 것은 쉬워도 마셔야 할 때 커피를 건너뛰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람들은 삼천 원짜리 라면을 먹고 육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것을 흉을 보곤 하지만 나는 그것은 취향의 문제이지 비난 받아야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편의 생각은 다르다. 그것은 ‘끼니’에 대한 모독이라는 거였다.

다른 부분은 말할 것도 없이 음식에 대한 우리 부부의 생각은 이렇듯 다르다.
나는 여름에도 더운 밥 먹기를 즐기는 데 남편은 한겨울에도 적당히 식은 밥이어야 한다. 금방 지어서 더운밥이면 주방 창틀에 얹어서 식히거나 그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으면 냉동실에 넣고 삼십까지 세곤 한다.
나는 편한 시간에 시장기가 느껴지면 먹어도 되는 반면 남편은 시장기와는 상관이 없이 식사 시간도 정확해야 한다.
또 음식은 무조건 그릇에 산처럼 올라오도록 수북이 담아야 된다. 어쩌다 손님이 와서 큰 접시에 보기 좋게 적당히 담아내면 손님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신경을 쓰면서 나를 째려보곤 한다.
나도 질세라 소신껏 밀고나가는 날엔 손님이 가고나면 한바탕 언쟁이 벌어진다. “왜 그렇게 음식을 인심 사납게 담았냐? 아까워서 억지로 주는 것 같지 않느냐?”
그러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조상 중에 굶어서 돌아가신 분이 있냐? 음식을 내면서 얼마든지 더 드시라고 하지 않았느냐?” 하며 언성을 높이곤 한다.

‘먹고 산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먹는 문제는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인데도 우리 부부는 이렇게 걸리는 것도 많고 생각도 다르다.
그동안의 세월의 무게가 얼마인가. 이제는 몸에 잘 맞는 옷처럼 편안하게 생각되다가도 어떤 때는 물에 기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에 공감하지만 세월의 힘은 아무래도 그런 진리를 뛰어넘을 수 있나보다. 도무지 융화라고는 될 것 같지가 않던 남편에게 작은 변화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크고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수많은 강을 건너기도 하면서 오랜 시간 함께 걸어온 세월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학을 온 아이는 아무리 잘해도 주장의 자리에 앉을 수 없다는 무언의 룰 때문에 내 아들이 축구부 주장의 자리에서 번번이 밀린 것처럼, 뒤늦게 자신의 길을 찾은 남편은 뿌리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사회의 토양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견고하고 배타적이었다. 실력이나 열정, 성실성, 정직함은 제쳐두고 배경을 보자고 하고, 유력자를 내놓으라고 했다. 자신의 명함 외에 내세울만한 그럴듯한 그림이 없는 남편으로서는 한 뼘 뿌리내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흔들리지 않는 나무로 서려면 얼마나 더 외풍에 시달려야 할지는 모르겠다.
사람들은 누구나 직선 코스로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기를 원한다. 우리 부부의 삶도 다를 바 없었다. 목표를 정해두고, 십 년이나 늦게 출발한 것을 만회하려고 얼마나 애를 써왔던가. 조바심을 치며, 곁눈질 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온 삶이었다.
남편은 어느 한 순간 마음을 바닥까지 내려놓고 쉰 적이 없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고 차도 즐기지 않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앉아서 마셔야 하는 커피는 어쩌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데 시간낭비일 거라고 생각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신혼시절, 친정어머니를 서운하게 했던 그 소신 그대로 지금까지 살아온 남편에게 작은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단체로 여행을 가거나 식사를 할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도 절대 ‘커피로 통일’이 안 되는 것은 순전히 남편 때문이다. 남편은 장(長)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나머지 사람들도 서로 눈치를 보다가 없던 일로 하고 만다. 썰렁한 분위기를 만드는 당사자인 셈이다.
그런 남편이 커피를 마시기를 시작했다.
아직은 커피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옆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겠다는 배려로 보이기는 하지만 언젠가 ‘한 잔의 커피’가 주는 여유와 부드러움을 체득하게 될 것이다. 한 잔의 차를 마시며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들을 돌아보며 가끔은 숨고르기를 할 필요성을 남편도 느끼고 있을 터였다.

몽골초원을 여행하다 보면 강을 자주 만난다고 한다. 초원을 흐르는 강은 많은 굴곡을 만들며 굽이굽이 흐른다고 한다. 그만큼 더디 흐르고 멀리 돌아갈 수 밖에 없지만 그 영향으로 강 주변에는 더 많은 초원이 형성된다고 한다.
남편이나 나의 삶이 몽골의 강을 닮아 있는 것 같아서 어느 책에서 이 대목을 읽고 얼마나 위로를 받았는지 모른다. 진부한 소리지만 목적을 이루는 것보다 그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하루하루의 삶이 각각 다른 무늬의 날줄과 씨줄로 엮이면서 우리의 한 생애가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다. 인생은 고속도로 여행이 아니지 않는가. 고속도로에서는 단시간에 가는 것이 미덕이다. 그러나 인생은 초원에 흐르는 강이다. 굽이굽이 돌아서 느리게 흘러가는 것이다.
비로소 그동안의 우리 부부의 삶이 연민이나 고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깨달음이 있기 전까지는 이젠 더 이상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미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불안해하고 전전긍긍했었다.

그렇게 살아온 남편이 이제는 한 잔의 커피가 주는 여유를 즐길 줄 알았으면 좋겠다. 삶의 여백이나 내면의 평화는 미래의 것이 아니라 현재의 것이다. 더 이상 내일을 위해 오늘을 저당 잡히는 그런 삶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삼십 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걸어온 아내의 희망사항이다.  


  
 

 

 

 

 

 

 

 

                                                         내가 갖고 있는 여자 VS 남자

*** 며칠 전 페이퍼로 금(禁) 커피이야기를 올렸었다. 그 이야기는 사실 짝이 있다. 오늘 올린 글이 그것이다.

어제 저녁, 지난 여름에 문을 연 뷔페식당에 갔다. 일인당 삼만 원이었다. 아는 분이 먼저 다녀와서는 우리 내외도 한 번 가보라고 돈을 보내왔다. 남편과 나는 집에서 먹고 그 돈을 횡령하고 싶었다. 사실 밥을 먹고도 횡령할 수 있는 금액이긴 하다. 간단한 감사멘트라도 문자로 날리려면 아무래도 구경은 해야 할 것 같았다.
예약을 하지 않고 갔더니 입구에서부터 브레이크가 걸렸다. 2층 대기실에서 좀 기다리란다.
나는 그런 자투리 시간을 땜빵 하는 데는 선수다. 각기 다른 디자인의 대기실을 기웃거리며 사진을 찍었다. 그럴 때면 주로 거울이나 벽에 비친 내 모습을 찍는다. 나중에 이것들만 모아서 앨범을 만들려는 야심찬 계획도 있다. 십여 분 신이 나서 돌아다니다가 문득 그런 시간을 못견뎌하는 남편 생각이 났다. 어디 있나? 찾아다녔더니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자기 손으로 ‘커피’라는 것을 가지고 와서 마시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당연히 증거를 남겼다.
밥은 아주 맛이 있었다. 지금까지 다녀본 뷔페식당으로는 으뜸이었다.
남편은 정말 적당히 먹었고, 나는 다이어트 중임에도 조금 과식을 했다. 좀 소식인 편이므로 그래봐야 다른 사람이 보통으로 먹는 정도였다.

그런데 맛을 못 본 것이 4분의 3은 되는 것 같아서 조금 억울했다.
그 억울한 감정위에 보태어지는 것이 있었는데 민망함이었다. 결코 싸다고 할 수 없는 비용임에도 불구하고 부산 자갈치 시장처럼 붐비고 있었다. 지방의 작은 중소도시 - 거대한 포항제철을 끼고 있으니 전국에서 현금이 제일 많은 도시라는 말은 있다 - 인데 우리는 정말 이렇게 잘사는 나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잘 먹고 살아도 되는 것인가 하는……. 나도 열심히 먹었지만 아무튼 마음은 그랬다.

오늘 아침, 끓인 지 사흘이 된 김치찌개를 식탁에 올렸다. 두 식구이고 모임이 잦아서 별로 진도를 못냈더니 작은 냄비에 끓인 것이 아직도 남아서 오늘 아침에는 기어이 끝을 낼 작정이었다.
남편이 말했다 “어제 그것보다 난 이것이 더 좋아.”
이런 ~~~~헐!
아내가 말했다. “이건 편한 거고 좋은 건 어제 그것이지. 얼마나 신선하고 다양했는데?”
남편은 지금 가을을 심하게 타는 중이다. 갱년기 우울증 증세도 약간은 있다.
아내가 덧붙였다. “당신에게 여자가 나 하나 밖에 없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야 - 이 무슨 황당한 시츄에이션 하시겠지만 우리 부부만의 암호이다 - 여자가 좋으면 여자가 좋다고 얘기해야지 여자가 붙을 것 아니야? 근데 나는 여자 싫어한다고 얘기하니 어느 여자가 다가오겠어?”
참고로 우리 집안은 콩가루집안은 아니다. 콩가루는 커녕 너무 모범적이어서 문제인 집안이다. 근데 왜 남편에게 여자가 붙으라고 부채질이냐고요?
나는 더 나이 먹기 전에 ‘가슴 아픈 사랑’을 하고 싶다고 나발(?) 불고 다닌다.
결론은 아닌 척 시침을 떼나, 나발을 부나 결과는 뻔하다는 거다.

저녁 무렵이면 어김없이 302호로 찾아든다.
그게 행복이다.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는 우리집 바른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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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0-27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전언니, 커피는 곧 둥글어짐 일까요?
하나의 커피 한잔인데, 참 많은 심상이예요.
저두 그렇게 둥글어지고 싶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모난 곳이 닳아지는 것 같기는 한데.. ^^

저 오늘 벌써 커피 세잔째예요!

gimssim 2010-10-27 21:28   좋아요 0 | URL
저는 커피 한 잔을 두고도 열 편의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인데요.
저도 오늘 진도 안나가는 글 하나 쓰느라 머리 쥐어박으며 커피 두 잔 마셨네요.
젊을 때는 좀 모가 나게 살아도 돼요.그게 젊다는 것이지요.

양철나무꾼 2010-10-27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요,좀 고리타분한 편이라서요.
바른생활 사나이들이 좋아요.

이리저리 통밥 굴리느라 고심하지 않아도 되고 말이죠.
걍 기면기다 아니면 아니다,이런 쿨함이 좋아요.

글구요,내가 해주는 집밥을 맛있게 먹어주는 남자라면 더 더욱이요~

근데요,중전님~
저도 나이 더 먹기 전에 '가슴 아픈 사랑'을 한번 해보고 싶은데 말예요~^^

gimssim 2010-10-27 21:32   좋아요 0 | URL
바른생활들이 좀 단순하기는 하지요.
단순무식이면 살기 편할텐데, 우리 집은 단순유식이어서 문제죠. ㅎㅎ

글쎄요...
사랑은 젊을 때 하는 거라더군요.

페크pek0501 2010-11-15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입니다.
저는 바른생활하는 사람을 좋아해요. 그런 사람, 재밌어서 좋아하게 되거든요.
'가슴 아픈 사랑'이라..., 전 그거 싫은데요. 밤잠 못자게 만드는 일, 질색입니다.
전 불면증이 무서워요. 잠을 아주 달게 자고 싶어요. ㅋ

gimssim 2010-11-15 22:11   좋아요 0 | URL
정말 깜짝 놀랐어요.
오늘 잠시 사진 찍고, 남편 등산로 입구에 떨어뜨려 주고, 친구만나고...
이러느라 운전...잠시 pek0501님이 떠올랐겠지요.
아직도 많이 바쁜가, 논문 준비 중이라 읽은 것 같은데...
그런데 이렇게 방문하셨군요.
돗자리 깔고 어디 나앉아야겠습니다. ㅎㅎ
 


귀여운 남편

두 주일 쯤 전에 남편의 동문회를 우리 주관으로 치렀다.
부부동반 모임이라 오십 명은 족히 되었다.
멍멍 두 마리에 삼계탕 열 다섯 마리를 먹어치웠다.
수은주가 최고로 올라간 날이었다. 

그저께는 시누이가 계원들을 이끌고 입성했다.
우리가 사는 곳은 물 좋고 산 좋은 곳이다.
그래서 휴가철이면 나도 덩달아 바쁘다.
남편이 한 번 오라고 했더니 작년에는 네 명이 와서 하루 밤을 묵어가더니
이번에는 여덟 명이 와서 이틀을 묵고 갔다.
물론 펜션을 얻어줬다. 저녁 밥도 한끼 해줬다.
아는 사람의 집이기는 하지만 이 휴가의 피크에 공짜일리는 만무할 터.
흉을 좀 보자면 일 년 가도 전화 한 통 없다.
묵고 가고 잘 지내고 간다던가, 집에 가서라도 잘 지내고 왔다라던가 전화 한 통 없다.
남편은 예의 없는 것은 질색인 사람인데 자기 피붙이니까 별말 없다
한다는 말이 “누나가 사회생활을 안해봐서 몰라서 그래. 심성은 착하지.”
그전 같으면 “착한 사람 다 더위 먹어서 죽었나?” 했을 텐데
날씨가 너무 더워서 대꾸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넘어갔다. 

카드를 가지고 가서 3개월 할부로 방값을 결재하고 오니
남편이 냉동실을 열어보라고 했다.
마트에서 이것 하나 사들고 걸어오다가 아는 사람을 열 명도 더 만났단다.

나름, 귀여운 남편이다.

그리고 이건
43만원짜리 아이스크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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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0-08-05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한편 속이 쓰리셨겠지만 더위사냥에 더위가 날아가셨겠어요. 귀여운 남편이란 제목에 걸맞네요.ㅎㅎ

gimssim 2010-08-05 22:21   좋아요 0 | URL
남편은 제 눈치 보느라 펜션에 방값 계산 했냐고 물어보지도 못합니다.
당분간 눈치 좀 보게 그냥 둘겁니다.ㅎㅎ

마녀고양이 2010-08-05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 분개해서 읽다가 마지막 43만원에서 빵 터져버렸네요.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성의가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누군가는 신경써서 챙겨주는건데, 나 몰라라 하는 분들 참 많아요. 딸아이가 윗집 아이랑 학습지 수업을 받는데, 매번 우리집에서 하려면 신경 많이 쓰이거든요, 과학 준비물도 다 제가 준비하고.. 그런데 그 엄마 고맙다는 말 한번 없습니다. 제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겠죠? ^^

gimssim 2010-08-05 22:23   좋아요 0 | URL
멀리 보면 내가 베풀면 나도 그만큼 또 받게 되는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러기가 쉽지가 않아요.
저흰 휴가비 100만원쯤 나올텐데, 벌써 반은 날아간거죠.
좋은 일에 쓴 거라 위로하고 넘어갑니다.

양철나무꾼 2010-08-05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에 남편에게 시누이 정신과 상담을 받아 보게 하라고 권했다가,
(제 직업 상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처지였는데...)
이혼할 뻔 했습니다.

부부보다는 피붙이가 조금 앞인가 봅니다~

그래도 아는 사람 열명도 넘게 만나면서 사수한 저'아이스크림'맛나겠는걸요~^^

gimssim 2010-08-05 22:24   좋아요 0 | URL
이틀이나 지났는데 뭔 심뽄지 아직 안먹고 있어요.
찬 것을 워낙 싫어해서이기도 하지만 남편이 알면 '반항'하는 거라 생각할 걸요. ㅎㅎ

pjy 2010-08-05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팔을 안으로 굽는거죠~ 흥! 췟~췟~ 근데 왜 귀엽다는거지? 이러다가,,,

아이구야~ 대단한 아이스크림에서 캬캬캬캬캬~ 그렇죠~ 귀여운 남편입니다요

gimssim 2010-08-06 07:15   좋아요 0 | URL
글을 쓰면서 눈믈 한 방울 흘렸어요.
작년 겨울 서울에서 친정 오빠가 내려왔는데
명색이 글쟁인데 분위기 좋은 펜션이라도 얻어줬어야 하는데
잠만 자고간단 구실로 5만원짜리 모텔을 잡아줬었거든요.
물론 바다가 보이는 곳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게 뭐야, 병~신" 머리 한 대 쥐어박았어요.

그 '귀여운' 남편은 제 눈치 보느라 고분고분 합니다. ㅎㅎ

양철나무꾼 2010-08-06 13:53   좋아요 0 | URL
중전님,이 댓글 보고 '동변상련'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도 또르르 눈물 한방울 흘렸습니다.

때로는 눈물 한방울 흘리면서 위로가 되는 마음도 있나봅니다.

중전님,쥐어 박으신 머리 제가 '호~'해 드릴게요,헤~^------^

pjy 2010-08-06 13:55   좋아요 0 | URL
여기서 '귀여운' 에 대한 안타까운 진실이 드러나네요~~
아주 멋지고, 좋은, 이쁜, 환상적인, 착한 등등을 제외한 나머지가 귀여운거죠^^;
눈치보고 있으니 다른? 뇌물이 들어올때까지 쫌 더 냅두시죠!

gimssim 2010-08-06 19:3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일반적으로 귀여운 것 하곤 거리가 멀죠,
'나름'이란 단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걸요.

blanca 2010-08-06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3만원 ㅋㅋㅋ 중전님 그 심정 십분 공감가면서 귀여우시다,는 느낌이 들어요. 저희 남편은 주로 비비빅으로 저를 달래려 해요^^;;

gimssim 2010-08-06 19:40   좋아요 0 | URL
대한민국 아줌마들은 다 공감할 걸요.
다음달부터 용돈에서 5만원씩 차감해 나갈까 고려중입니다.
하는 거 봐가면서 ㅎㅎㅎ

순오기 2010-08-07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3만원짜리 더위사냥~~~~~ 눈물겨워요.
아니 동생도 아니고 누나인데~~ 그걸 모를까요?
참 어이없는... 하긴 나도 누군가의 시누이니까 입 다물어야지.ㅜㅜ
남편분, 애교있으시네요. ㅋㅋ

gimssim 2010-08-08 08:03   좋아요 0 | URL
더운 여름에 속 좀 터집니다.
'가면서 간다고 전화 한통 못해' 한마디 했다고 삐쳐 있어요.
그렇다고 겁낼 대한민국 아줌마도 아니고! ㅋㅋ
 

모자람의 행복

어제 토요일, 사십여 명 남편의 고등학교 동문모임을 저희 주관으로 치르느라 거의 파김치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 눈도장 찍는 것을 거를 수는 없어서 새벽기도회에 갔다가 오늘은 좀 일찍 돌아와서 잠깐 눈을 붙였습니다.
두어 시간 잔 것 같습니다.
제가 종횡무진 쓰던 거실을 집에 온 아들녀석에게 뺏기고, 저는 서재방으로 밀렸습니다.
사실은 이 공간은 우리 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입니다.

지난 봄, 이사를 와서 커튼을 달았는데, 새로 장만하지 않고 쓰던 것을 그대로 달았더니 두 번 접힌 단을 뜯어내어도 이렇게 깡중하니 20센티는 모자랍니다.
그전 같으면 새로 해서 달았을 터이지만 이것도 괜찮아 보입니다.
좀 모라라면 어떻습니까?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수필가 김소운의 ‘가난한 날의 행복’이 떠오릅니다.
실직한 남편과 직장에 다니는 아내. 그 아내를 위해 남편은 점심상을 준비합니다.
아내는 아침밥을 거르고 출근을 했습니다.
쌀은 어떻게 마련하여 흰쌀밥을 했지만 반찬까지는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따뜻한 쌀밥 한 그릇과 간장 한 종지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애틋한 메모 ‘왕후의 밥, 걸인의 찬’

잠자리에서 눈을 뜨니 그 깡충한 거튼 아래로 창틀 가득 파란 하늘이 걸려있었습니다.
책상 뒤로 겨우 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공간입니다.
아파트 3층이지만 마치 <소공녀>의 세라가 쓰는 그 다락방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제, 남편 동문 부인들과, 서빙 하는 중간중간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좁은 공간에서 좀 모자라는 듯이 살아야겠다고들 했습니다.
아이들이 집을 떠나고, 있다고 해도 고등학생이니 하루 종일 집에 없습니다.
방도 여러 개, 텔레비전도 두 대 이상이니 각기 다른 방에서, 각기 다른 프로그램을 본다는 겁니다.
퇴근시간들이 들쑥날쑥이니 부부지만 밥도 따로 먹을 때가 많다는 겁니다.
너무 풍족하게 잘 사는 것이 문제가 되는 시기에 우리는 살고 있었습니다.
평균수명이 엄청 늘었는데 그렇게 삼사십 년을 어떻게 더 살 거냐고, 그렇게 사는 것은 너무 슬픈 거 아니냐고, 제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모두들 다소 난감한 얼굴들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부부가 서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물리적으로도 타이트한 환경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우스개 소리 하나 하고 지나갑니다.
아무리 잘 살아도 절대 두 개를 사면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냉장고입니다.
우리 집 이야깁니다.
열한시 쯤 책을 읽고 있던 저는 우유라도 한 잔 마실까 싶어서 주방으로 갑니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우리 집의 늙어가는 ‘새나라의 어린이’는 그 무렵 이미 한숨자고 물을 마시러 역시 주방으로 옵니다.
주방에서 부부는 조우를 했습니다.
“어머, ㅇㅇ씨(남편의이름), 여기서 뵙네요. 반가와요.” 했더니
지구력은 있어도 순발력은 ‘꽝’인, 더구나 잠에 취한 남편은 ‘이 여자가 미쳤나?’ 하는 표정으로 잠시 저를 바라보더니 한다는 소리가 “지금이 몇 신데 아직까지 안자고 있어?”

가끔은 이 작은 다락방에 남편을 초대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둘이 나란히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가슴 뛰던 시절을 마음껏 그리워해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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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7-26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소공녀 세라의 다락방은 저리 가라겠어요.^^
요즘 하늘이 연출하는 예술이 최고로 멋져요!
넓은 집에서 각자 자기만의 공간에 갇혀 소통없는 가정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달랑 방이 하나일 때는 부부싸움 하고도 등을 웅크릴지언정 함께 잤는데, 요즘은 대개 침실도 따로 두고 산다더군요.

gimssim 2010-07-26 06:50   좋아요 0 | URL
부부 간에는 많은 정성과 기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요즘입니다.
남편과 많이 다른 저도 사실은 혼자일 때가 편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라, 그런 편함에 적당히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 때가 있지요.

프레이야 2010-07-26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리적 공간이 심리적 공간과 연관있는 거 같아요.
중전님 참 고우세요^^

gimssim 2010-07-26 06:51   좋아요 0 | URL
나이가 들수록 집은 좁고 마음은 넓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곳에서는 곱다는 말을 많이 듣네요.
감사합니다.칭찬에는 약합니다.

후애(厚愛) 2010-07-26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너무 멋집니다.^^
어릴적에 할머니랑 살 적에 다락방이 있었지만 저리 이쁘게 꾸미지는 않았는데..
다락방이 보고싶네요.ㅎㅎㅎ

gimssim 2010-07-26 21:37   좋아요 0 | URL
호호~ 진짜 다락방은 아니고 그냥 분위기만.
아파트 작은 방을 서재로 쓰는데 삼면에 책장을 놓고
책상 두개를 방 가운데다 배치하다 보니
책상 앞쪽과 뒤쪽에 꼭 다락방 만한 공간이 두개 생겼어요.
창문쪽에 누우면 바로 하늘이 보이니 다락방이려니 생각하고 지냅니다.

마녀고양이 2010-07-26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전언니,, 아침부터 맘이 푸근해집니다.
약간 모자람의 행복, 약간 타이트하게 살기....
가족이나 친구 간에는 약간 모자르게, 사회 상으로는 약간 여유있게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

gimssim 2010-07-26 21:38   좋아요 0 | URL
자신에겐 좀 타이트하게, 타인에겐 좀 여유있게~~
그게 좋겠지요?

stella.K 2010-07-26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림꾼이시군요. 중전님은.
커튼이 있는 방 정말 오랜만에 봐요. 예뻐요.^^

gimssim 2010-07-26 21:39   좋아요 0 | URL
살림꾼은 아니고 전 커튼을 좋아해요.
거실에도 십 년째 광목 커튼을 쓰고 있어요.
서재의 이 커튼은 정말 무늬가 예쁜데 길이가 좀 짧네요.

양철나무꾼 2010-07-26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왕후의 밥,걸인의 찬...전 아직도 못잊고 있어요,김소운 님.
핑크 베게랑,꽃무늬 커튼 예쁜걸요~

저희 아들 어렸을때,
(그때부터 아이는 하나만 낳기로 해었기 때문에...)
아이 머리에 꽃핀도 꽂아주고,내의도 꽃 핑크로 사입히고 그랬어요.
이제는 제법 머리가 커 해줄 수 없는 일이지만~ㅠ.ㅠ

gimssim 2010-07-26 21:42   좋아요 0 | URL
자세히 보면 온통 꽃무늬 천지에요.
꽃무늬 방석, 꽃무늬 모시카페트, 꽃무늬 베개, 꽃무늬 쿠션,
사진엔 보이지 않지만 꽃무늬 모시이불...
옷도 꽃무늬가 들어간 게 많아요.ㅎㅎ
 

남편 속여먹기는 정말 일도 아니다

오늘 글은 ‘남편’ 분들에게 좀 죄송한 글이다.
먼저 용서를 구합니다.

지난 봄 이사를 하면서 삶의 군살을 좀 빼자고 결심을 했다.
짐을 좀 줄이자는 말이다.
이 땅에서의 삶은 천상병 시인의 말을 인용하면,
어머니 심부름 하러 잠깐 왔다가 그 심부름이 끝나면 어머니께로 다시 돌아가는 삶이다.
그러니 마구 쌓아놓고 사는 삶은 절대 아니다.
군더더기를 줄이자면 버리기에 앞서 사는 것을 줄여야 한다.

그래서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내 사전에는 사는 것은 없다고.
그랬더니 부창부수라 남편은 ‘구입’하자로 단어를 바꿨다.
하는 수 없이 가끔 ‘구입’은 하고 산다.
그래도 약발이 있는지 무얼 사려면 남편은 나의 눈치를 조금은 본다.
그저께 아침에 남편이 말했다. “여보, 책 한권 구입하면 안 될까?”
‘안되기는? 나도 구입해야 할 책 있는데.’
이 말은 속으로 하고 정작 밖으로 한 말은
“또 무슨 책을?” 목소리를 한톤 높였다.

오늘 알라딘에서 책이 왔다. 바로 이것이다.  



<위험한 호기심>은 남편이 원한 책이고 거기 묻어서 구입한 내 책이 세 권이다.
물론 남편은 모른다.
남편은 아직도 왕성한 호기심의 소년이다. 궁금한 건 못 참는다.
요즘 사진에 필이 꽂힌 나는 책의 편식이 심하다.
가끔 지적 영양 불균형을 우려해 자책해 보기도 하지만 너그럽게 봐주기로 했다.
물론 내가 이렇게 너그럽게 넘어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조만간 페이퍼로 써볼 참이다.

또 한 가지, 남편은 잡곡을 많이 섞은 밥을 좋아하고 나는 흰쌀밥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잡곡밥이 건강에도 좋고 둘이 살면서 두 가지 밥을 해먹을 수가 없어서 내가 남편에게 맞춘다.
보리쌀, 현미, 율무, 찹쌀, 검정콩을 섞어서 밥을 하는 데 이 잡곡은 미리 물에 불려 놓아야 한다.
어쩌다 깜빡 잊고 미리 불려놓지 못하면 낭패다.
남편은 어쩌다 한 번 -한 달에 두세 번 정도-도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
꼭 식탁에서 “밥이 왜 이래?” 라던지 “밥이 왜 흰색이야?”
한 번도 지적하지 않는 때가 없다.
정말 엄청 화난다.
처음에는 “응, 미리 불려놓는 걸 잊었네.”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나는 같은 사안을 되풀이해서 말하는 것을 싫어하고,
남편은 같은 사안을 되풀이해서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꾀를 냈다.
잡곡을 미리 불려놓는 것을 잊었을 때는 검정 쌀을 한 찻숟가락 정도 섞어서 밥을 한다.
그러면 적당한 검정색이 된다.
잡곡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거무스름한 밥을 보고 남편은 너무 행복해 한다.

난 왜 이리 머리가 좋은 거얏!

그런데 교회에 가서 예수쟁이는 정직하게 살아야 됩니다, 하는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오는 날은 마음이 좀 꿀꿀해진다.

*** 오늘은 토요일, ROTC 훈련을 마친 아들이 집으로 옵니다.
몇 달 만에 얼굴을 봅니다.
그리고 남편 고등학교 동문 모임이 있습니다.
어제 ‘멍멍’ 두 마리 잡고(아! 싫어라),
못 먹는 사람을 위해 삼계탕 열다섯 마리를 준비했습니다.
먹는 것에 별 취미 없는 저여서 좀 별로이지만
더운 여름 마누라 고생하는 것까진 생각하지 못하는 바른생활 사나이는
친구들 먹이는 것에 많이 행복해 합니다.
그 많은 것, 준비하느라 땀을 엄청 쏟았지만...
‘행복’을 선택하는 건 어차피 자신의 몫이라 사료되어서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님들도 행복한 주말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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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7-24 0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전님, 좋은 아침이에요.
ㅎㅎ 사는게 다 비슷하군요. 저도 남편에게 "사자"의 시옷도 얘기하지 말라고 하지요. 그러면서도 알라딘서 남편 커피 사준다는 핑계로 제 책을 살짝 끼워서 주문하지요.

[인상과 풍경]이 있군요. 저도 블랑카님 서재서 보고 [여명]을 이번 주말에 읽을 예정이에요. 중전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2010-07-24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gimssim 2010-07-24 22:21   좋아요 0 | URL
저도 블랑카님의 서재에서 보고 주문했어요.
가을까지 좀 집중해야 할 일이 있는데 자꾸 이렇게 엉뚱한 데로 외도를 합니다.
네 Manci님도 좋은 주말 되세요.

비로그인 2010-07-24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은 질좋은 백미로 지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흰 밥이 최고입니다.
퓨어(pure)한 흰 밥에 뭔가 잡것을 넣으면 그 순간 흰 밥의 미묘하며 깊은 맛이 사라집니다. 진정 안타까운 일이지요.

저는 입맛이 까다로와서 흰 쌀밥에 콩을 넣으면 쓴 맛을 느낍니다.
찹쌀에도 역시 쓴 맛을 느낍니다.
보리는 거친 질감이 싫습니다.
조는 새가 먹는 것이란 선입견이 있고 거친 질감이 보리이상입니다.
수수는 진득거리고 깨물면 터지는 느낌이 정말 싫습니다.
현미는 푸르스름한 곰팡이 빛깔에 그 냄새가 정말 싫습니다.

잘 찧은 햅쌀로 지은 따스한 쌀밥에 바로 무친 생김치를 올려먹으면
최고지요!!


gimssim 2010-07-24 22:13   좋아요 0 | URL
남편은 흰쌀밥에는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한다고 해요.
저는 더운 김이 술술 올라오는 금방 지은 흰쌀밥을 좋아하는데.
그걸 어떻게 먹느냐고, 절대 뜨거우면 안되요, 적당히 식은밥이라야.

근데 한사님, 정말 까다로운 입맛 맞네요.
우리 집에선 그러면 밥그릇 뺏기는 수가 있는데...ㅎㅎㅎ

stella.K 2010-07-24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중전님도 참...지혜죠.
근데 부군과 좀 반대신 것 같네요.
잡곡밥 정말 맛있을 것 같아요.
물론 가끔 쌀밥만 먹는 것도 맛있긴 한데
저희는 항상 잡곡밥을 먹고 사는지라 미끈하고 밋밋해서 그다지...
습관인 것 같아요.
장성한 아드님이 계셨네요. 지금쯤 만나셨을라나...?
반가우시겠어요.^^

gimssim 2010-07-24 22:16   좋아요 0 | URL
우리 부부는 정말 반대인 것이 많아요.
책으로 써도 한 권은 될 터이지요.
아들은 만났고 키가 185센티미터인데 훈련 받느라 몸무게가 73킬로로 왔네요.
집에 있는 일주일 동안 하루 여섯끼씩 먹일 참이에요.

양철나무꾼 2010-07-24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보다 연배가 위신 것 같아,이런 말씀 드리기가 외람되지만~
여우는 데리고 살아도 곰은 몬 데리고 산다는 속담이 중전님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아요~
중전님과 함께 사시는 분이라면,그 분도 내공이 보통이 아닐 듯~^^

gimssim 2010-07-25 13:40   좋아요 0 | URL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서로 만만찮은 내공, 지조가 있다보니 때로 힘이 들 때도 많습니다.
서로가 좀 적당하면 좋을텐데 말이지요.

프레이야 2010-07-24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울 땐 주방에 있는 게 제일 고역이에요.
삼계탕 열다섯이요? 중전님, 삶의 내공을 언제 다 배울까요? 전.ㅎㅎ

gimssim 2010-07-24 22:22   좋아요 0 | URL
그전에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무서운 것 두 가지가 있다고 하셨어요.
사람의 입하고 손이래요.
그 말씀이 맞아요.
멍멍 두마리, 삼계탕 열다섯 마리를 다 먹고, 치웠으니.
입과 손...맞지요?
프레이야님.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어요. 안닥치는 게 좋은 일이지만...ㅎㅎ

순오기 2010-07-25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세요~ 그렇게 많은 손님을 치루다니욧!
저도 광주에 처음 와선 남편 손님들 다 집으로 오게 했는데
애가 셋 되니까, 절대 오라는 소리가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점차 만남도 뜸해졌고... 지금은 남자들끼리만 애경사에 만나는 듯합니다.
고생하셨어요~ '바른생활'님께서 어깨는 좀 주물러주셨나 몰라요.^^

gimssim 2010-07-26 07:25   좋아요 0 | URL
흐흐흐...우리집 바른생활은 손님보내고,
설거지 마치고(집앞 학교 소나무숲에서 모임을 했어요)
집에 오니 비가 와서 분위기 된다며 우산 쓰고 산책을 가자고 하네요.
기어이 '지금이 산책갈 상황이냐?' 소리를 질렀어요.
그랬더니 그럼 지금은 쉬고 내일 아침 일찍 등산을 가자네요.
품위있는 '중전'은 물건너 가고 결국은 '싸움닭'이 되고 맙니다. ㅎㅎㅎ

마녀고양이 2010-07-26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 잡곡 불리시느라 고생하시네요.
전 미리 몽땅 불려서 냉동실에 넣어놨어요. 누가 그리 하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밥 할 때마다 조금씩 꺼내쓰고 있어염.. ^^

언니, 동창회 하시느라 고생하셨어여. 저는 엄두도 못 낼 일이예여~

gimssim 2010-07-26 21:44   좋아요 0 | URL
그렇네요. 근데 냉동실이 만땅이어서.
동창회는 정말 사람이 많아서 걱정 많이 했어요.
주위에서 많이들 도와주셨지요.
등산모자 네 개 사서 하나씩 선물로 드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