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무슨 시집살이야?"

방학이라 아들이 집에 내려와 있어요.
고등학교를 집에서 멀리 떨어진 기숙학교에 다녔고, 대학도 서울에서 다니다 보니 방학이라 집에 내려와도 늘 집안에만 있어요.
우리 내외는 별 생각 없이 ‘밖에 좀 나가서 운동도 하고 바람도 좀 쐬지 그러니?’ 했었는데
사실은 친구도 없고 하니 그러기가 쉽지 않겠지요?
그런데도 방학하기를 목 빼고 기다리는 부모를 생각해서 집에 내려와서 과외도 하면서 군말없이 지냅니다.
저는 저대로 친구들이 있는 서울에서 지내는 것이 더 좋지 않겠어요. 내 아들이지만 착한 아이지요.

그런데 이 아들로 인해 요즘 제가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남편은 시골에서 자랐고, 식성이 좋습니다.
별로 가리는 음식이 없고 몇 번을 같은 것을 식탁에 올려도 개의치 않습니다.
좋아하는 것은 주로 한국적인 음식들이지요.
된장찌개, 각종 나물, 김치, 일주일에 두어 번 돼지고기 정도면 되고, 국은 있어야 하지만 아무 국이나 괜찮아요.
반면에 저는 도시에서 나서 도시에서만 자라서 남편하고는 좋아하는 음식이 많이 다릅니다.
지금에야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이 건강에도 좋고, 여자들은 또 그렇잖아요. 나 먹자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기가 쉽지 않지요.
그래서 우리 부부 둘만 있을 때는 별로 음식 때문에 문제가 생기진 않아요.

그런데 아들 녀석은 다르지요. 저 닮아서 편식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공동생활을 하는 기숙사에 있었고,
방학 때마다 한 달씩 ROTC 훈련을 받느라 식성이 조금 좋아진 것 같긴 하지만
제 아버지 눈에는 차지 않아요.
같이 밥먹을 때마다 아들이 반찬을 뭐 먹나 보고 있다가 김치도 먹어야지, 나물도 먹어라, 고기만 먹으면 건강에 안좋다, 끊임없이 참견을 하면서 저에게 눈치를 줍니다. 제가 왜 암말 않고있냐는 거지요.
방학이라 내려오면 ‘뭐가 먹고 싶으냐?’ 고 제가 묻잖아요.
그러면 이 녀석이 생각해 내는 게 뭔 줄 아세요?
노른자를 터트리지 않은 계란 프라이에 진간장을 넣고 밥을 비벼달라는 겁니다.
아주 어렸을 적에 반찬도 마땅치 않을 때 가끔 해 먹인 적이 있어요.
저는 집에 왔으니 웬만하면 아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려고 하고, 편식을 하긴 하지만 그것보다 마음 편안하게 밥 먹는게 더 낫다는 쪽이고, 남편은 그런 나를 보고 못 참아라 합니다.
대학생 아이가 그렇게 먹어서 돼냐구요?
제가 해달라는 대로 자꾸 해주니까 아이의 편식이 고쳐지지 않는다고 언성을 높입니다.  한술 더 떠서 왜 아이를 나무라는 그런 악역을 자기가 하게 하느냐구 불만을 터트립니다.
그러면 저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아이가 매 끼를 그렇게 먹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까다롭게 구냐고, 그리고 누가 악역을 하라고 했냐고, 좀 모른 척 하고 넘어가면 안 되냐고, 밥 해 먹이는 건 내 소관이 아니냐고 소릴 지릅니다.

오늘도 역시 같은 상황이 벌어졌어요.
선물로 들어온 햄이 있어서 이웃에 좀 나눠주고, 아들이 좋아하는 거라 오면 주려고 두어 개 남겨 두었어요.
남편 눈치를 보느라 차일피일 하다가 개학날이 다가와서 다시 집을 떠나야 할 때가 다 되었어요.
그래서 그걸 구워 먹이려고 남편의 아침상을 먼저 보았어요.
혼자 먼저 먹으라는 걸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면서도 아들이 갈 때가 다 되다 보니 까다롭게 굴지 않고 혼자 먼저 아침 식사를 마쳤어요.
출근을 하고 나면 햄을 구워 아들 아침상을 보려고 하는데
이날따라 남편은 와이셔츠 입은 것도, 넥타이를 매는 것도 일부러 시간을 끌면서 계속 식탁을 힐끔거리는 거 있죠?
참다못해 그만 폭발하고 말았어요.
“아, 그만 빨리 출근 못해? 왜 그렇게 꾸물거리는 거얏?”

아, 이건 또 무슨 시집살이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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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0-02-19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남편분도 해주시지 그랬어요~.ㅎㅎㅎ
저도 오늘 아침 아이들과 남편에게 스팸과 계란 해주었는데~.
전 따로 따로 구워줬어요~. 저희집 애들은 노른자 터트리는거 더 좋아해요~.ㅎㅎㅎㅎ
오늘은 아이들 학교 종강식이 있어서 일찍 나가봐야 해서
서재에 이른 시간에 들어와 봤어요~.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랄께요~.^^

gimssim 2010-02-19 21:29   좋아요 0 | URL
모르시는 말씀! 우리 남편은 햄, 소시지, 베이컨 같은 거 엄청 싫어해요. 제가 말씀 드렸지요. 통일을 좋아한다구요. 자기가 안먹으니까 다른 사람도 먹지 않는 걸로 통일을 하자는거죠.
금방한 따끈한 밥에 햄구이...맛있지 않나요?

무해한모리군 2010-02-19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아 먹는 걸로 차별하면 얼마나 섭섭한데요~ 암요!

gimssim 2010-02-19 21:3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음식 끝에 마음 상한다는 속담도 있잖아요.
근데 우리 남편은 안해줘서 섭섭한게 아니라 아내와 아들은 통일이 되는데 자기만 안되니까 열받는거죠.^^

순오기 2010-02-19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님은 다 늦게 시집살이 하는건데 보는 우리는 즐겁군요.^^
그댁 바깥양반도 참 대단하셔요.ㅋㅋ
우리도 요즘 아들녀석 한약 먹이느라 반찬을 가리고 있어요.
아침에 먹을게 없어서 아들만 달걀후라이~노른자 반숙으로 해줬어요.

gimssim 2010-02-19 21:32   좋아요 0 | URL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 찰리채플린^^

울보 2010-02-19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우리집은 딸아이도 옆지기도 정말 토속적이라,,
스팸이나 햄은 주로 부대찌깨할때만,,
그렇지 않고는 노상 김치. 된장찌개라서,,,ㅎㅎ너무 귀여우신님과 낭군님 아닌가요,,

gimssim 2010-02-19 21:34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우리 남편도 부대찌개할 땐 스팸이나 햄을 먹긴 하네요.
생각난 김에 내일 저녁 반찬은 부대찌개로 할까봐요. 감사^^

페크pek0501 2010-02-20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은 멀리서 보는 숲처럼 아름다운 것"- 쇼펜하우어의 <사랑은 없다>236쪽.

정말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입니다. 그 식탁퐁경을 저는 멀리서 보니까요. 그런데 숲 속에 있는 사람은 행복을 감지하지 못하지요. 왜냐하면 숲 속에 있는 사람은 숲 안에 있는 벌레들과 쓰레기가 먼저 눈에 띄거든요. 좋은 방법이 있지요. 그 식탁퐁경을 먼훗날 회상하는 거지요. 그러면 거리가 생겨서 먼 숲을 보는 사람이 되어 멀리 보는 숲처럼 그 식탁풍경도 아름답게 보이고 행복하게 생각될 것입니다. 아, 재밌는 글입니다.

gimssim 2010-02-20 16:59   좋아요 0 | URL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저는 스트레스가 좀 많은 환경에서 살고 있어요.
이런 글들을 쓰는 것은 저 나름의 안간힘이지요.
흘러가는 일상사에서 '작은 의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다행히 글을 쓰는 것이 재미있고 행복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아름다운 님들 만나는 재미도 솔~솔~합니다.

페크pek0501 2010-02-23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스트레스가 많답니다. 애들을 키우고 부모의 역할을 하며 사는 것 자체에서도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은지... 이번에 큰애가 대학에 입학을 했어요. 입학만 하면 좀 편해질 줄 알았는데, 그게 또 그렇지가 않네요. 엄마 자리가 주는 부담이 버거워요. 저 역시 글쓰기로 위안을 받고 삽니다. 제가 오늘 올린 리뷰 <토니오 크뢰거>라는 소설은 글쟁이로서 가지는 희열과 함께 고뇌를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시간 나실 때 보러 오세요. 중전님의 아들이 대학생이란 것을, 글을 통해 알고서 저와 비슷한 연배인 것 같아 무척 반가웠어요. - 페크가 다녀갑니다.

gimssim 2010-02-23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수쟁이라 그에 관한 커퍼런스에 2박3일 다니니라 코피납니다. 이제 귀가했어요.
우리나라의 엄마의 역할은 대학입학 시켜놓으면 반시름은 던거지요. 축하드려요.
아직 리뷰 읽어보지 못했는데 읽어보고 소설도 시간내서 볼께요.
가끔 만나요. 좀 이런저런 수다떨 친구가 그리운 아줌마거든요.
감사드리고...좋은 밤 되세요^^
 

   
                                                                  

분홍색 '딸딸이'에 관한 단상

막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기숙학교로 고등학교를 진학하는 바람에 우리 부부는 좀 일찍 '빈 둥지'가 되었어요.
아이들의 교육이나 양육의 방식이 저와 남편은 많이 다릅니다.
저는 부모는 '울타리'이니 그저 거리를 두고 보자는 쪽이고,
남편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로 나와 혼자 자취를 하면서 학교에 다녀서인지 매사에 아이한테 '엎어지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생각이나 기분에 따라 그 원칙들이 바뀌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것들이 아이나 저에게 많은 상처가 되었어요.
남편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받지 못한 부모의 사랑을 아이에게 주고 싶었겠지요.

또 아이가 자라면서,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심도 느껴지곤 했어요.
밥을 좀 있다 먹겠다고 해놓고도 아이가 먹겠다면 자기도 따라 먹겠다고 합니다.
남편은 닭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데 아들 녀석은 닭요리를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모처럼 닭볶음탕이라도 하면 남편은 너무 열심히 잘 먹는 거예요.
주말이라 튀김통닭이라도 한 마리 시킨 날에도 예외가 아니지요.
한술 더 떠서 '왜 꼭 통닭은 아들이 있을 때에만 시키냐?'고 태클을 걸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들을 위해서, 우리 부부를 위해서도 아이를 좀 일찍 독립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사실 어미인 저는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 참 많이 마음이 아팠어요.
고등학교를 기숙학교에 가면 대학도 서울엘 갈 거고, 군대에 갔다가 결혼을 하면 어미 품에 둘 수 있는 시기는 다시없는 거잖아요.
그렇게 집을 떠난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다니다가 호주에 이 년 갔다가 복학하여 학교에 다니고 있지요.
딸도 그렇게 집을 떠났어요.

너무 일찍 빈 둥지가 된 것이 때로 마음을 쓸쓸하게 합니다.
아이들도 그 부분에 대해서 나름의 상처가 있겠지요.
착하고 제 할일을 잘 알아서 하지만 부모에게 살가운 것은 없습니다.
저는 그것도 못내 서운합니다.
좀 어리광도 부리고 힘들면 힘들다고 하면 좋을 텐데, 그런 내색 없이 다 괜찮다고 합니다.

아무튼 오늘 얘긴 '빈 둥지'에 관한 얘긴 아니에요.
빈 둥지가 된지 팔년 째이니까 그동안 남편이 집을 비우는 경우에도 혼자 씩씩하게 잘 지냈어요.
근데 이번엔 좀 다르더라구요.
나이가 들면 겁이 더 없어진다는데...밤을 지나고 새벽녘에 발자국 소리, 물 마시는 소리가 꿈결인 양 들리는 거 있죠? 아파트도 아니고 단독주택인데 말이지요.
겁이 더럭 났어요. 꼭 집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 같은 기척이 느껴졌어요.

예수쟁이라 그 자리에서 잠시 기도를 했어요.
그런데 내 마음 속에 다가오는 느낌이 있었어요.
'남편이 이 시간에 내 생각을 하고 있구나! 집에 혼자 있을 아내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구나!'
저도 그런 적이 있거든요.
지난 해, 남편과 아들을 집에 두고 바이칼 호수에 갔을 때였어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몽골에서 러시아 국경으로 들어가기 위해 네 시간을 정차한 적이 있어요.
까다로운 입국 수속을 하면서 그 시간에 남편과 아들을 위해 기도했지요.
아들은 걱정이 덜 되도 남편은 좀 어리버리 하거든요.
기도를 하면서 내 몸은 여기 있지만, 내 영혼은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겁은 났어요.
그래서 밖에서 신으려고 분홍색 플라스틱 슬리퍼를 사둔 있어서 그것을 꺼내 신었어요.
일부러 사람이 많이 있는 것처럼 요란하게 “딸딸딸” 소리를 내며 걸어 다녔어요.
생각해 보니 좀 우스운 그림이더군요.
새벽에 웬 잠옷 바람의 아줌마가 분홍색 딸딸이를 신고 딸딸거리면서 거실을 왔다갔다하는 장면을 그려 보세요. 귀신도 옆에 있었다면 배를 잡고 웃을 일이지요.

그런 새벽이 가고, 오전에 창 문 너머로 들어오는 빛이 창틀 때문에 바닥에 이런 모습의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그 비스듬히 누운 사각의 빛 안에 두 의 슬리퍼를 두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곁에는 내가 평소에 신던 슬리퍼지요.

세미나를 마치고 돌아온 남편에게 물었더니 그 시간이 기도시간이었다네요.

오늘의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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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으른 밥상

요즘은 웰빙이다 하여 좀 거친 음식이 인기라고 해요.
말하자면 가난한 밥상이지요.
장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굽거나, 찌지거나, 튀기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음식을 먹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나마 소식을 하고 많이 움직인다고 해요.

현대인들은 그 반대의 식생활을 하고 있지요.
갖가지 양념을 많이 첨가하여 본연의 맛을 흐리는 것은 물론
이런저런 방법으로 요리는 해서 형태를 바꾸기도 하고
또 무엇보다 과식을 하잖아요.
그리고 열심히 자동차를 타고 가서는 늘 제자리 걸음만 하는 러닝머신 위를 부지런히 걷곤 하지요.

남편은 식사 시간은 정확해야 하고,  아무리 입맛이 없어도 끼니를 거르는 법이 없고,
아무리 배가 고파도 주어진 한 공기 이상은 절대 먹지 않지요.
결혼식을 하고 신혼여행을 마치고 친정엘 갔겠지요.
저는 대대로 딸이 귀한 집안의 외동딸이에요. 그러니 남편이 얼마나 귀한 사위였겠어요.
저녁 식사때, 밥 한 공기를 맛나게 먹는 남편이 얼마나 흡족했겠어요.
그래서 친정엄마가 말씀하셨어요. 
"밥 좀 더 드시게."
근데 남편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된다'는 자세로 버틴 거 있죠?
어른이 말씀하시는데 좀 더 받아두었다가 저를 주던지, 남기면 될텐데 그런 주변머리가 없는 사람이지요.
나중에 엄마가 말씀하셨어요. '그 때는 정말 딸 시집 잘못 보낸줄 알았다'
저는 저대로 그런 남편이 서운해서 친정에서의 첫밤을 눈물바람을 했어요.
가끔 그 얘기를 하면 남편은 지금도 큰 소리를 칩니다.
'그게 뭐가 잘못되었는데? 한 공기면 됐지 뭘 더 먹어?'

그 남편이 4박5일의 세미나를 갔어요.
정확한 식사시간을 지켜야 하고, 정확한 밥의 분량을 따지고, 밖에서 먹는 밥을 싫어하는 남편을 둔 반작용이라 생각됩니다.
하루에 한 끼만 먹고, 세수도 하지않고, 잠옷바람으로 온종일 뒹굴거리면서 책을 읽는 것이 소원인,
혼자 남겨진 50대 아줌마의 밥상입니다.

이름하여 '게으른 밥상'입니다. 



 이틀 전에 끓인 쇠고기국


이웃에서 갖다준 호박죽


 빵가게에서 사 온 고로케


단호박1/8쪽


비빔국수


정신의 양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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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2-08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식탐이 늘어서 걱정입니다.
밥을 먹어도 꼭 쓰레기 같은 간식들을 섭취하게 된다니까요.
헝그리플래닛인가에 보니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사람들과 유럽사람들의 먹는 량이 엄청나게 차이나는 것을 보고 괜스레 제가 막 부끄럽고 그랬는데 왜 책읽고 하는 반성은 실생활에는 잘 적응이 안되는지요 --

gimssim 2010-02-08 20:06   좋아요 0 | URL
식탐은 어쩌면 견강하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몸이 아프면 제일 먼저 입맛이 떨어지잖아요.
나이들면서 저 혼자 작은 결심 한가지...
'먹는 것에 품위 지키기'
근데 전 밖에서 먹을 일이 많아서 자주 과식하게 되요.

비로그인 2010-02-08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빔국수... 하하


gimssim 2010-02-08 21:54   좋아요 0 | URL
보긴 허멀건해도 맛은 있답니다. 전 국수 삶기 선수에요. ㅎㅎ

blanca 2010-02-08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중전님 저는 빨간 소고기국을 끓여 먹고 싶은데 아기가 아직 어려서 멀겋게 끓인 것만 계속 먹고 있어요. 이 밤 정말 저 얼큰한 국에 밥 한사발 말아 먹고 싶어집니다.

gimssim 2010-02-09 06:40   좋아요 0 | URL
저는 파를 싫어해서 소고기국이 저런 모양이지요. 블란카님을 위해서라면 파도 듬뿍 넣고 고추가루도 좀더 넣은 얼클한 소고기국이어야 할 것 같은데요.

순오기 2010-02-11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저도 게으른 밥상 좋아해요.
가족에게도 게으른 밥상을 들이민다는 게 문제지만...ㅠㅠ
백미밥을 드시네요. 호박과 비빔국수에 침 흘려요.
우린 남편이 당뇨라 현미잡곡밥을 먹어요.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하고 맛나지요.^^ 식구들이 국수를 좋아해 비빔국수보다는 잔치국수를 즐깁니다.
식탁보가 예전 우리 식탁보랑 같아서 혼자 실실 웃었어요.^^

gimssim 2010-02-11 10:23   좋아요 0 | URL
우리집도 잡곡밥이에요. 남편이 없는 날엔 그동안 못먹었던 흰 쌀밥을 먹은거죠. 남편이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금방해서 김이 펄펄나는 쌀밥이죠. 전 그걸 좋아하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금방한 밥을 창틀에 올려놓고 식혀서 드린다니까요.
 

 

'남편을 싸게 팝니다'

오래 전, 한 지방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대요.
'남편을 싸게 팝니다. 45세의 건장한 남자. 사업 잘함. 취미 골프. 성수기에는 장기외출도 함. 세일 또는 교환도 가능'
너무 좋아들 하지 마세요. 우리나라 얘긴 아니니까요.
캐나다 벤쿠버는 골프 천국이라더군요. 그래서 남편이 골프에 몰두한 어느 부인이 화가 나서 이런 기사를 실었대요.
사람 사는 모습은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다를 바 없는 모양이에요.
그러나 전 차라리 골프 과부나 낚시 과부가 부러운 사람이에요.
제 말을 들어보시면 이해하실 거예요. 오늘은 저의 답답한 심정을 좀 얘기해야겠어요.

그동안의 세월을 돌아보면 우리 부부의 결혼 생활은 도전과 응전의 역사였어요.
우리는 무슨 연유에선지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으르렁대기 시작했어요.
남편이 원숭이 띠, 제가 개 띠여서 그런가요? 견원지간(犬猿之間)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것이겠어요?
여자와 남자 중 누가 더 우세하냐?
지금 생각하면 분명하게 결론이 날 사안이 아닌데도 우리는 만날 때마다 말도 되지 않는 이론들을 가지고 나와서 상대를 몰아붙이곤 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짝을 찾을 나이가 되자 고민에 빠졌어요.
서로 다른 상대를 만나 임자가 있는 몸이 되면 어떻게 만나서 남자와 여자 중 누가 우세한가의 결론을 낼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의기투합하여 결혼을 했지요.

서로 싸우면서 정이 들었는지 결혼할 당시 우리는 참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친구처럼 늙어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어요.
둘 다 반듯한 사고를 가졌으니 불의한 일로 마음 쓸 일이 없을 터이고,
책읽기와 영화 보기를 좋아하니 다른 취미 때문에 생이별을 반복할 일도 없다 싶었지요.
눈에 콩깍지가 씌었는지 만날 때마다 다투곤 하던 일도 자기주장이 분명한 거라고 어물쩍 넘어가고 말았어요.
잠시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몇 시에 오느냐고 묻는 건 기본이고 빨리 오라는 소리를 서너 번은 하지요. 이런 일도 있었어요.
혼자 서울에 갈 일이 있어서 기차를 탔어요.
한 시간 남짓 가는 사이 남편에게서 세 번이나 전화가 온 거 있죠.
저는 휴대전화기를 가지고 다니기는 하지만 기차나, 버스, 지하철 안에서는 진동으로 조정해 놓고 잘 받지 않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듣거나 말거나 큰 소리로, 나 어디 가고 있어, 라면 먹지말고 밥 먹어, 따위의 소리를 거의 무방비 상태로 듣고 있어야 하는 건 차라리 고문이죠.
혹시 급한 일이 있나 싶어 전화를 해 보았더니 남편 말에 기가 찼어요. 어디쯤 가고 있나 궁금해서 전화했대요. 그게 어디 궁금할 일인가요?

학창시절, 수학은 젬병이라도 국어 성적은 괜찮았는데 어쩐 일인지 주제 파악을 잘 못하고 자신은 썩 괜찮은 남편이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거 아니겠어요.
남편은 별로 자상하지 않고 다소 이기적인 경상도 남자예요. 게다가 주부들의 가사노동을 아주 우습게 보지요.
신혼 초, 남편이 출근하면서 저에게 하는 말은 으레 ‘놀고 있어’ 였어요.
처음에는 심상하게 들었는데 살다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며칠 간 골몰하다가 드디어 맞불을 놓지 않았겠어요.
여느 날처럼 ‘놀고 있어’ 하며 계단을 내려가는 남편의 등에다 대고 이렇게 소리쳤지요.
"당신도 놀다 와."

저는 대대로 딸이 귀한 집안의 외동딸이에요. 제 말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 그런 집에서 자랐지요.
그런데 남편은 유교 전통을 가문의 영광처럼 자랑하는 집안의 장손이 아니겠어요.
시아버님과 시어머님이 함께 외출을 하실 때도 시어머님은 시아버님의 다섯 발자국쯤 뒤쳐져서 걸어가야 하는 그런 집이지요.
서로 다른 그런 환경에서 삼십 년 가까운 세월을 지내다가 한 지붕 아래 살게 되었으니 어느 하룬들 그냥 넘어가는 날이 있었겠어요.
하루가 멀다하고 눈물바람이었어요.
제가 무슨 말을 할라치면 한 집에 한 사람씩만 똑똑하자며 입에 거품을 물곤 하지요.
똑똑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시끄럽고 어지러운 세상이라면서요.
부모님이 등을 떠밀어서 한 결혼이 아니고 제가 우겨서 한 것이니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이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지요.
이런 식으로 어떻게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겠어요?

제 친정어머닌 늘 말씀하셨어요. 남자는 그저 아침 밥 먹고 나가서 저녁 때 들어와야 한다구요.
그러나 사무실이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때 있는 남편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잠시라도 제가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소리를 지르곤 하지요.
"여보, 어딨어?" 그것도 이삼십 분 간격으로 말이지요.
아무래도 의처증인 것 같다구요? 저도 처음에는 그런 게 아닌가 걱정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건 아니에요. 일 때문에 삼사일 씩 집을 비울 때는 집에 전화 한 통 없거든요.
저는 어릴 적부터 제 방을 따로 써서 그런지 지금도 혼자 있는 걸 좋아해요. 혼자 책 읽고, 글을 쓰고, 음악 듣고, 영화 보기를 즐기지요.
누가 옆에서 얼쩡거리면 답답하고 집중이 잘 되지 않아요.
그런데 저희 남편은 부부란 항상 옆에 붙어있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어요.
모임에 가서도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올 때가 많아요. 누가 이마에 손 얹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왜 이렇게 빨리 왔어? 벌써 모임이 끝났어?" 물으면,
"빨리 집에 오고 싶어서 밥 안 먹고 왔어. 밥, 줘!"
누가 우리 남편 좀 말려 주세요.

하루 종일 함께 있는 우리 부부를 보고 전생을 믿는 친구는 이렇게 결론을 내려 주었어요.
'아무래도 전생에 너는 별당아씨, 네 남편은 머슴이었나보다.
머슴인 주제에 언감생심 별당아씨 얼굴을 함부로 볼 수 있었겠냐?
그래서 이생에서 부부로 인연을 맺어 그 원을 풀고 있는 것이겠지.
전생에 머슴이랑 사고를 쳤으면 액땜을 했을 텐데 네가 요조숙녀 짓을 해서 일이 이렇게 된 걸. 그러니 어쩌겠냐? 네가 참고 살아야지.'
그 말을 제게서 전해들은 남편은 정말 가관이었어요.
여느 집의 남편들이었으면 화를 벌컥 내며 "뭐라, 내가 머슴이었다고?" 열을 낸 터인데
우리 남편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거리면서 "맞아, 그랬을 거야. 그러고 보니 옛날 문헌에서 내 이름과 똑같은 머슴의 이름을 본 것도 같아."
한 술 더 뜨더군요.
맨 처음 제가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소개한 캐나다의 그 남편도 신문에 난 그 광고를 보고는 집에 와서 자기 부인한테 이랬다는 거 아닙니까?
"여보, 아직 안 팔렸어?"

근데 정신과 의사인 제 친구 말이 우리 부부가 건강한 부부라는 겁니다.
전생에 머슴이었다고 하는 데 화를 내는 남편이나 신문에 광고를 낸 부인을 나무라는 남편과는 절대 끝까지 가지 못한다는 거예요.
정말 그런가요? 그렇다고 해도 사는 것이 이렇게 갑갑한 건 어쩌구요.
저희 친정 부모님은 몇 해 전에 모두 돌아가셨어요.
그런데도 저는 여전히 남편과 같이 살고 있어요. 아직 막내가 대학생이니 어쩌겠어요.
결혼이라도 시켜놓고 심각하게 생각해 보는 수 밖예요.
그렇게 마음을 먹고 지내고 있었어요.
소수의 편에 서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요.
다수의 쪽에 서서 익명성을 유지하고 살아가기로 작정을 한다면 얼마나 쉽고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인가요.
그러나 남편은 왜곡된 사회현실이나 구조적인 모순에 부딪힐 때마다 피하지 않고 ‘양심적인 소수’가 되고자 하지요.
어쩌면 그것이 나를 지탱해온 힘일지도 모르겠어요.
나이 탓일까요?
이제 잔가지를 모두 쳐내어 행동반경을 줄이고, 보고 싶은 사람들만 가끔 만나고, 정말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이쯤에서 남편과의 소모전도 막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비로소 들기 시작했어요.

얼마 전이었어요. 제가 사는 곳보다 더 시골에 살고 있는 친구네를 방문했어요.
온통 문을 열어 놓은 채 친구는 뒷산에라도 갔는지 집에 없었어요.
친구가 언제쯤 오려나 기다리면서 근처를 산책하다가 좁은 신작로를 건너 나지막한 둑 위로 올라섰어요.
맑은 물이 흐르는 작은 시내가 거짓말처럼 눈앞에 떠올랐어요.
어릴 적 외갓집에서 멱감고 다슬기 줍던 유년의 시절로 돌아온 것 같았어요.
풀 섶에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몇 마리의 염소들조차도 반가웠어요.
그런 시내를 끼고 좁은 길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어요. 그 길을 보자 갑자기 가슴이 쿵 내려앉았어요.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자기만의 길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요.
겨우 야트막한 둑 하나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지만 길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지요.
아무리 부부라고 하지만 그건 인정해야 하지요.
'내 땅은 못 다친다. 네 땅 내놔라.' 하며 상대의 마음에만 내 마음대로 길을 내느라 포클레인으로 온통 파헤치고 불도저로 밀어붙이며 살아온 세월이 아니었나 싶더군요.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내 마음 속에 우울하게 자리 잡고 있던 안개가 조금은 걷히는 기분이었어요.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뭔가 달라지기야 하겠어요. 마음의 한 귀퉁이를 조금 비워두어야겠다는 생각 정도지요.
남편이나 저나 우월성의 문제가 아니라 차이성의 문제로 발상의 전환을 해야겠지요.
그게 쉽지는 않을 것임을 저는 압니다.
세상에서 제일 먼 거리가 머리와 가슴 사이라고 하잖아요.

*** 그 별당아씨는 지금은 안방마님이 되어 아직도 그 머슴이랑 살고 있답니다.
머리와 가슴 사이의 길은 여전히 아득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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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2-01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글이네요~ ^^
저는 한때 '전생의 웬수'였다보다고 이를 득득 갈며 살았는데,
큰언니가 몇 년만 참으면 '연민'으로 산단다~ 하더군요.
이제는 쉰이 넘어 연민으로 사는 게 뭔지 알게 됐어요.^^

gimssim 2010-02-05 01:48   좋아요 0 | URL
저도 천생연분인지 평생웬수인지 하여튼 그 인연과 며칠 쉬러 집을 나왔어요. 내일이면 다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나와서 보니 저는 '자는 것'에 목숨걸고 남편은 '먹는 것'에 목숨거는 거 있죠? 참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요. 1시30분에 육개장으로 점심, 5시에 사발면 하나를 먹고 6시에 배고프다고 밥먹으러 가자네요. 컨디션이 시원찮아 비몽사몽하고 있는 저를 두고 혼자 왕복 40킬로를 운전하고가서 소머리곰탕을 먹었다네요.우리 남편 만세! 이래야 할까요?

순오기 2010-02-05 23:57   좋아요 0 | URL
하하하~ 먹는 것과 자는 것에 목숨 걸었다.
우리부부는 뭐에 목숨 걸고 살았는가 돌아봐야겠어요.
남편 분 왕복 40킬로~ ^^ 만세를 불러 드려야죠.

gimssim 2010-02-06 00:12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반갑습니다. 저는 며칠간의 가출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어요. 남편과 함께 한 가출이라 밥 먹는 거 땜에 좀 귀찮긴 했지만 바람 좀 넣어왔으니 그것 빠질 때까지 또 열심히 살아야겠지요. 자주 들러주시니 고맙습니다. 꾸벅^^
 

 





남편이나 저나 좀 일중독입니다.

남편이 정도는 좀 더 심하기는 하지만...

노랫말처럼 세월이 약이더군요.

요즘은 손에서 일을 놓고

가끔 목적지도 없이 훌쩍 집을 나서곤 합니다.

물론 멀리 움직이지는 잘 못합니다.

이리저리 바람부는 겨울 거리를 배회하는 비행청소년 아니, 비행중년남녀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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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0-01-29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멋진 비행중년남녀십니다!!!!!!!!!!
근데,,,,남편분이 더 멋져 보인다능~~3=3=3=333=3333=3333ㅎㅎㅎ

gimssim 2010-01-29 22:26   좋아요 0 | URL
으흠~~ 남편이 더 멋져보인다는 건, 분명히 칭찬일텐데 왜 이렇게 배가 살살 아픈지 모르겠어요. ㅎㅎ
백조가 우아하게 물 위에 떠 있기 위해선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의 수없는 발짓이 있어야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