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마누라  

어쩌다 보니 우리 부부가 함께 한약을 먹게 되었어요.
청년 시절에 아파서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는 남편은 속담처럼
'자라보고 놀란 가슴'이 되어서인지'한약 마니아'에요.
건강에 별 이상이 없어도 일 년에 몇 차례는 한약을 먹어야 해요.
그런 모습을 평생 보아온 저는 한약이라면 고개를 젓습니다.
근데 나이는 못속이는가봐요.
여름을 시작하면서 영 맥을 못추었더니
남편이 한약을 먹으면 괜찮다는군요.
한참을 버티다가 약을 지었겠지요.
남편은 그런 저에게 은근슬쩍 묻어서 자기도 먹어야겠다는 거에요.
그래서 부부가 나란히 한약을 먹게 되었지요.
왼쪽이 남편 컵, 오른 쪽이 제 컵이에요.
그냥 별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거에요.
근데 남편이 이렇게 시비를 거는 거 있죠?
"왜 내 컵이 검정색이야?"
그 뒤에 따라 나올 남편 말은 뻔한 소리에요.
그래서 제가 선수를 쳐서 냉큼 소리쳤지요.
"속이 시커먼 놈이란 말이지?"
제게 말할 기회를 놓친  남편이 중얼거리는 말,

'오래 살았더니 마누라가 아니라 귀신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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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핸드폰 변천사

핸드폰 이야기

방에 있으니 거실에서 주고 받는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가 들립니다.
"아들, 내일 아빠 핸드폰 사는데 좀 따라 가자."
"아빠는 그 나이가 되도록 핸드폰도 하나 혼자 못 사나?"
아들의 핀잔에 아버지는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핸드폰은 나이가 들수록 잘 못사는 거다."
일 년 반쯤 전에 그동안 쓰던 핸드폰이 고장이 나서 다시 샀는데
새로산 핸드폰이 두어 달 지나서 액정이 깨지는 바람에 다시 바꿔야 했어요.
대리점에 알아보니 일년이 지나지 않아서 위약금을 물어야 된다고 했어요.
남편이 기계하고 별로 친하지 않아선지 같이 산 제 핸드폰은 멀쩡하거든요.
계획에도 없던 돈이 들어가게 생겨서  전화 걸고, 받고, 문자 보내고, 받는 것 되면  그냥 쓰라고 엄포를 놓았더니 하는 수 없이 그냥 쓰더라구요.
일 년이 지나자 이젠 위약금 물지 않으니까 폰을 바꾸겠다는 거에요.
액정이 깨진 상태라 갑자기 고장이 나면 번호 저장해 둔 것 다 날아간다면서요.
그게 6월 쯤이었어요.
핸드폰이란 게 "이거 얼마에요?" 가격을 묻고 돈을 지불하여 사는 게 아니잖아요.
공짜폰이 널렸는데 돈을 주고 사면 바보 되는 것 같고,  그런 공짜폰을 가질려면 대리점에서 제시하는 이런저런 편법을 써야하는데  그게 저로서는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고. 직원들은 부지런히 소비자를 위하는 것 처럼 입이 닳도록 설명을 하지만 소비자들은 "다 저희들 배불리는 소리지, 소비자는 봉이 아닌가?" 하는 불신감이 있지요.
봉이 안될려면 정신을 바작 차려야 하는데 이런저런 골치 아픈 것이 싫어서, 방학을 해서 아들이 집이 오면 사라고 미뤄두었더니 어느 새 개학날이 다가와 아들이 다시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어요.
그래서 하는 얘기인 모양입니다.
이튿날, 남편의 폰 하나 사는데 식구가 다 출동을 했어요.
자동차로 이십 여 분 가야 하지요.
반을 훨씬 더 가서 갑자기 남편이 이러는 거에요.
"나, 지갑 안가지고 왔다."
아들과 제가 동시에 물었어요.
"그럼 신분증은?"
"폰 사는데 신분증도 있어야 하나? 난 몰랐는데 진작 가르쳐줬어야지?"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남의 신분증으로 대포폰을 개설하여  범죄에 이용하기도 한다는 소식들을 전하잖아요.
신문을 하루에 몇 시간씩 꼼꼼하게 보는 양반이 도대체 뭘 보는지 모르겠어요.
당연한 그걸 뭘 가르쳐 줘야 하나?, 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이왕 안가져 온 걸 어쩌겠어요?
다시 차를 돌려 집으로 갔겠지요.
대학과 대학원을 수석 입학, 수석 졸업을 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뭘 해요? 핸드폰 사서 메뉴얼 찾아 읽고 해결하지 못하는 걸요.
하나에서 열까지 다 아들에게 묻습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었어요.
근데 자는 저를 다시 깨웁니다.
"여보, 소리 안나게 하는 건 어디 있어?"
'진동모드'도 아니고, '메너모드'도 아니고 그냥 '소리 안나게 하는 거' 입니다.
"병원 갔는데 소리 나면 어떻게 해."
내일 아침 일찍 병문안 가보아야 하는 데가 있는데 그것 때문에 그런 모양입니다.
남편의 첫 핸드폰을 LG 것을 썼었어요. 그걸 몇 년 썼으니 거기에 익숙했겠지요.
그런걸 작년에 핸드폰을 바꾸면서 저랑 같은 삼성을 샀더니 일년 내내 다르고 불편하다면서  툴툴거리는 거 있죠?
새로 사서 두 달 만에 고장을 낸 거 봐요.
저는 기계도 사람말을 알아듣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 자동차를 타고 갈 때도 말을 겁니다.
'어디까지 갈거다. 우리 잘 가자' '고맙다. 잘 왔다.' 이런 식으로요.
그래서 이번에 사면서 다시 LG로 바꿨어요.
"자기 핸드폰 처음 써? 처음 것과 똑 같잖아."
겨우 잠들었던 터라 신경질을 내었어요.
"그래도 잘 모르겠다."
하는 수 없이 안경을 찾아 꼈어요.
"눈도 나보다 좋으면서 정말 왜그래? 입 대신 눈을 좀 써봐."
손가락으로 왼쪽 맨 하단에 있는 * 표 매너모드를 짚어주었지요.

정말 우리 시댁 식구들 말처럼 제가 버릇을 잘못 들인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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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부부가 본 영화

   기다리면서 책 읽는 아줌마  

                                                                             옆에서 왔다갔다 하는 아저씨 

영화관 나들이 


지난 여름에 있었던 이야기. 

우리나라 사람들은 숫자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 숫자로 이야기 하기를 좋아하지요.
장마가 좀 오래 계속된다 싶으니 그런 통계가 나왔네요.   십삼 년 만의 긴 장마라구요. 45일간 계속되고 있다네요.
아무튼 제가 사는 곳은 너무 오랜 가뭄 끝이라 긴 장마도 견딜만 하고 남편은 비오는 것을 좋아하 니 분위기에 취하곤 합니다.
나중에 양철 지붕 집을 지을꺼나, 그러네요. 빗소리 듣고 싶어서요.
사실 남편 사무실 바로 옆집은 양철 지붕이라 비 오는 날 그곳에 있으면 또다른 분위기를 느끼곤 합니다.
게으른 사람, 게으름 피우기 좋을만하게 많이 내리지도 않는 비가 오락가락 합니다.
빗소리 들으며 낮잠을 한숨 잔 남편이 느닷없이 영화보러 가자네요.
제가 오전에 잠시 외출을 하고 온 사이, 나름대로 생각해둔 이벤트인 모양입니다.
그런데 전 아이들말로 '뚜껑'이 열릴라고 하네요.
나이가 들면서 외식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끼니는 집에서 하지요.
방학이라 집에 와 있는 아들녀석은 그렇다치더라도 영화보고 와서 저녁밥 해먹을 시간이 되지  않으니 미리 준비를 해두고 나가야 하는데, 남편은 나가자고 하면 자기만 옷 입으면 모든 준비가 끝나는 줄 압니다.
모처럼 영화 좋아하는 아내를 생각해서 계획한 스케줄인 모양인데 망칠 수가 없어서 저도 옷을  갈아입으면서 아들에게 이런저런 것을 일렀어요.
밥솥을 열어보니 밥이 반공기쯤 밖에 없었어요.
밥이 좀 적은데 곰국이랑 먹어라, 포도 씻어 먹어라, 점심때 먹고 남은 고구마도 먹던지, 하여튼  알아서 저녁 해결해라 등등.
십 분 만에 준비를 마치고 자동차를 타고 나갔겠지요.
저는 영화관 주차장에 주차를 했으면 싶었지만 남편은 복잡해서 싫다네요.
하는 수 없이 주택가에 차를 세워두고 십여 분 걸어갔지요.  매표소에 도착하니 네 시 십 분. 영화는 네 시 사십 분에 시작하는 게 있더군요.
저 같으면 내려와서 사람구경이나 하다가 영화를 보았으면 싶었지만 남편은 걸어서 십여 분 걸리는 다른 영화관에 가보자고 하네요. 암말 않고 갔지요.
도착하니 네 시 삼십 분. 영화는 다섯 시 오 분에 시작하구요.
남편은 십 분 남았으니 아까 그 영화관에 다시 가서 네 시 사십 분 영화를 보자네요.
누가 영화를 보여 달라고 하기를 했나,
빨리 영화를 보고 집에 가서 꼭 처리해야 할 일이 있나,
그전 같았으면 '그냥 집에 가자'고 소리지르며 폭발을 했을 겁니다.
근데 나이 먹는 게 좋은 점도 있더라구요.
그럴 만한 힘도 없어서 목소리를 한톤 낮추어서 이렇게 말했지요.
"그냥 여기서 좀 기다렸다가 보자"
영화를 보고 자동차를 타고 오면서 남편이 물었어요.
"저녁은 뭘 먹지?"
"밥 해서 먹어야지."
"집에 가면 8시가 넘을텐데"

저는 전업주부에요. 일년 365일 하는 밥이지만 제 나름의 소신과 계획이 있어요.
근데 이게 뭡니까?
또 속이 부글거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좀 일찍 알려줬으면 미리 쌀이라도 앉혀서 예약을 해 놓고, 찌개라도 하나 준비해 두었으면  좋지 않았겠어요.
그러면 집에 가서 다 되어있을 밥에 찌개에 불 한 번 올려 밥을 먹으면 되었을텐데.
근데 그 말을 하려다 그만 두었어요.
삽십 년 동안 고쳐지지 않은 걸 어쩌겠어요. 
집에 오니 아들이 간식만 먹고 밥을 먹지 않고 있더군요.
점심에 남편과 저는 라면을, 아들은 만두를 먹었어요.
남편은 시계를 보더니 라면을 끓여먹자고 하더군요.
식성은 까다롭지 않고 좋은 편이지요.
근데 하루에 두 끼를 라면이라니 지금이 무슨 비상체제인가요?
결국 남편은 밥 반 공기에 곰국, 저는 냉동실에 얼려 두었던 백설기 떡, 아들은 라면으로  교통정리가 되었어요.

 이런 남편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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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부자' 남편  


나이 탓인지, 현실에 좀 고전을 하고 있는 탓인지 남편은 은퇴하면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짓겠다는 소리를 자주 합니다.  아직 은퇴를 하려먼 십여 년은 남았는데 말이지요.
딸기 농사를 지었다가, 감자 농사를 지었다가, 쪽파 농사를 지었다가 하루에도 농사를 엄청 많이 짓습니다.
기 죽을까봐 받아주면 끝이 없습니다.
제가 좀 피곤하다거나, 할일이 밀려 있다거나, 외출할 일이 있으면 남편의 농사짓기를 끝내는 묘약이 있긴 있어요.
꿈을 확 깨게 하는 좀 잔인한 방법이긴 하지만 이렇게 얘기 합니다.
"자기 땅 있어?"
아직까지 자기 이름으로 된 땅 한 평이 없는 남편입니다.
지금까지 한 눈 팔지 않고 자신의 일을 성실히, 열심히 해 온 남편인데 농사를 짓겠다는 사람이  자신의 땅 한 평 없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요?
농사에 관심도 없는 사람들은 땅을 수천, 수만 평을 갖고 있는 데 말이지요.
'사면 되지?'
남의 일이라고 쉽게 하지 마십시오.
'비빌 언덕' 없이 출발한 사람들은 먹고 살면서 노후를 위해 땅을 살 수 있을 만큼 세상살이가 녹녹하지 않습니다.
성실히, 열심히 일하는 소시민이 순리대로 살아서 일가를 이루기는 너무 어려운 세상입니다.
제 친구는 대학을 졸업한 아들을 '백수' 만들지 않으려고 대학원엘 보냈는데 한 학기 등록금이  700만원이라며 죽은 소리를 하더군요.
이래저래 소시민들의 '희망'을 빼앗은 사회가 원망스럽습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제 속담 사전에만 존재하는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법학전문대학원이니, 의학전문대학원이니 하며 경제적인 능력이 없으면 시험을 쳐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지요.  '돈'이 없으면 공부할 수도, 공부를 못해 학벌이 없으면 번듯한 직장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현실입니다.
이런 아이러니나, 사회의 모순을 삿대질 할 데가 없어 애꿎은 남편만 기를 죽입니다.
때로 귀찮아서 꿈을 확 깨게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부부다 보니까 불쌍한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그래서 제 핸드폰에 남편의 이름을 이렇게 적었어요.

'땅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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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노란색 싫어한다” 


작년 이맘 때의 일이군요.
여름부터 아프던 오른쪽 옆구리가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버티고 버티다가 병원엘 갔겠지요.
이제 곧 해가 바뀌니 좋지 못한 것을 청산하고 새 마음으로 산듯하게 시작하고 싶었어요.
엑스레이를 찍고, 초음파도 찍고, 피검사 등등 여러 검사를 했어요.
제가 병원에 가기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에요.
별별 검사를 다 해야 한다는 것.
일주일 있다가 검사 결과를 보러 갔어요.
별다른 이상은 없고 전체적으로 깨끗하다는 진단이 나왔어요.
쓸개에 뭔가가 있는데-의사가 의학적인 용어로 얘기해 주었는데 잊어버렸어요- 10밀리면 수술을 권하겠는데 9밀리라서 저보고 알아서 하라네요.
그 말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는 뜻이겠지요.
근데 그 수술이란 게 그 9밀리짜리 뭔가를 떼어내는 게 아니고 쓸개를 떼어내는 거라네요.
아무리 그렇지만 앞으로의 삶을 ‘쓸개 없는 년’으로 살 순 없잖아요.
사실 속으로 겁을 많이 먹고 갔는데 그만해도 좋은 소식이지요.
“그래, 걱정하지 말고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고 즐겁게 살자.”
마음을 먹고 일층에 내려오니 로비 한쪽 귀퉁이의 꽃가게에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눈을 사로잡는 화사한 꽃들이 많았어요.
얼마나 마음이 밝아지던지요.
삼천 원을 주고 꽃 화분을 하나 샀어요.
오래 사용했건만 고장 나지 않은 제 몸에 대한 감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각양각색의 꽃들이 많았지만 제가 고른 것은 노란색 베고니아였어요.
작은 꽃망울들이 노란색 등불 같았다니까요.

건강에도 이상이 없겠다, 예쁜 꽃도 샀겠다, 의기양양하여 집에 돌아오니 남편이 물었어요.
병원의 검사결과가 아니고 화분에 대해서.  

“웬 화분?”
“병원의 꽃집에서 하나 샀지?”
근데 남편의 말이 정말 가관이었어요.
“난 노란색 싫어한다.”
누가 물어봤나? 그리고 이건 네 거 아니거든.
모든 것을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철딱서니라니.

 (근데 검사결과에 대해서는 이틀 뒤에 물어보는 거 있죠?
그래도 물어보니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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