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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ㅣ 문학나무 수필선 10
김제숙 지음 / 문학나무 / 2014년 9월
평점 :



시간의 풍경을 찍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나의 생이 이미 반환점을 돌았다고 느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풍경들은 머뭇거리지도 않고 그냥 흘러가 버렸다. 나는 시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주 망연했다.
학자들은 우리의 뇌는 모든 기억을 평등하게 대우하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 겪는 일들은 강렬한 느낌, 신선한 기억으로 각인되어 오랫동안 지속되는 기억의 조각으로 남지만 나이가 들면서 겪는 반복적인 일상은 특별한 의미로 뇌에 저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의 속도를 빠르게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흘러가는 조각들을 건져 올리는 몸짓일지 모른다. 때로 건져 올려야 할 것은 놓치기도 하고, 애써서 건져 올린 것은 별 소용에 닿지도 않을 허망한 것일 때도 잦았다. 그렇지만 유한한 시간 속에 사는 한 멈출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혼자 위로를 하기도 했다.
시간의 장면들을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면서 내가 소망한 것은 좀 더 느리게 사는 것이었다. 고요한 밤, 내 앞에 놓인 조각들을 보면 과연 느리게 살았던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좀 더 느리고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 삼 년여 동안 불경기(? 갱년기)여서 몸과 마음이 서로 몹시 부대끼며 살았습니다.
열병을 앓으면서도 웬지 띄엄띄엄 삶의 모습을 남기는 일을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그것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다시 흘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