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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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허명은 없었다.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려고 했으나, 나에게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주문장을 날렸고, 책이 도착하기 전에 기다릴 수가 없어서 미리보기로 몸풀기를 끝냈다. 어제 집에 돌아가 보니 책이 도착해 있었다. 바로 다 읽어 버렸다.

 

아버지가 죽었다로 시작되는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기>에는 질곡진 한국 현대사의 그 무엇이 오롯하게 담겨져 있었다. 누가 봐도 그 엄혹한 시절을 체험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을 그런 이야기들을 작가는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소멸의 시간을 통해 독자들에게 자신이 맹근 시그널을 날린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왜 자꾸 오래 전에 만났던 영화 <학생부군신위>와 소설 <녹슬은 해방구>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혈육보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꾼 고아리 박사님의 아버지 고상욱 씨는 뼈속까지 투철한 유물론자이자 혁명가였다. 그를 원수로 생각하는 진영에서는 빨치산 혹은 빨갱이로 불렀다. 그런 고인이 노동절에 죽음을 맞으면서부터 소설의 서사가 굴러간다. 서울에서 보따리 장사(강사)를 하던 상주 고아리 박사는 고향 구례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의 장례식장에서 죽음이라는 삶의 엔딩이 선물한 시대의 화해 혹은 자신이 몰랐던 구빨치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만나게 된다.

 

소설에서는 고상하고 순화된 사회주의자라는 표현을 쓰지만, 아마 고인은 사회주의자라기 보다 공산주의자에 더 가깝지 않았나 싶다. 우익의 세상에서 전향한 공산주의자는 불가촉천민 같은 존재였으리라. 그리고 자신 말고도 다른 가족들까지 모두 연좌제로 몰아 정상적 사회생활을 하는데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기도 했다.

 

산사람으로 사선을 누비며 동지들이 숱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한 고상욱 할배는 산에서 내려와 새농민으로 평범한 삶을 살고자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산에서 죽고 살던 동지에게는 위장 자수한 인사에 불과했고, 세상은 그를 전향한 빨치산이자 요주의 인물이라는 낙인을 찍어 버렸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치매를 앓던 고인은 어느 날 갑자기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먼 길을 떠나 버렸다. 그리고 유물론자답게 자신의 시원이 먼지이니, 굳이 묘를 쓸 것도 없이 상주 아리에게 타고 남은 재를 뿌리고 싶은 곳에 뿌리라는 말을 남긴다. 진짜 뿌리 깊은 유물론자가 아닌가 말이다.

 

다음에 이어지는 진행은 클리셰이다. 망자와의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작은아버지와 갈등, 연좌제로 숱한 고초를 겪은 사촌형제들의 이야기 그리고 죽음 앞에 다시 뭉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 그리고 제각각 고인과의 소중한 인연을 지닌 이들이 문상에 나서게 되고, 상주와 마주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그동안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이야기들은 참 사무치기도 하고 또 하염없기도 했다.

 

굳이 저자는 늙은 혁명가의 소싯적 행적을 신원하고자 하지 않는다. 자본의 힘이 모든 걸 삼켜 버린 마당에 철지난 이데올로기 타령을 무엇이 중요하다는 말인가. 우리들의 할아버지 아버지들은 자신들이 소중하게 생각한 평등한 세상의 도래를 위해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걸고 투쟁에 나섰지만, 체제와 자본에 순치된 우리 후손들은 그저 자신들의 일상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어쩌다 이런 세상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타협과 화해의 시간이 장례라는 생로병사의 마지막 이벤트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이 아마도 나에게 영화 <학생부군신위>를 연상시킨 게 아니었을까. 그 위에 한국 현대사의 이데올로기 갈등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토핑으로 얹고, 다소 무거울 수 있는 분위기를 고인의 장례식 준비에 나선 사촌들의 몸을 내던지는 애도와 품앗이 그리고 다양한 인연을 지닌 이들의 등장으로 상쇄시키는 일련의 과정들은 일품이었다.

 

빨치산의 딸이 반동 신문이 주최한 신춘문예 당선으로 문단 활동에 나섰다는 점은 우리 현대사가 가진 구조적 모순을 대변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평생 유물론자였던 혁명가가 말했다시피, 우리 모두는 저만의 사정이 있는 법이 아니겠는가. 오죽하면 말이지. 작년에 발표된 소설집 <자본주의의 적>이라는 책도 있다고 하는데,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듯 작가의 전작들을 한 번 만나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의 문턱에 선 이번 가을, 간만에 수작을 만나 기분 좋은 독서의 시간이었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뱀다리] 노동자 농민이 평등한 세상의 도래를 위해 자신의 하나 뿐인 목숨을 걸고 투쟁에 나섰던 혁명가들이 정작 노동의 현장에서, 우리 보통 사람들이 하는 노동을 버거워 하는 장면은 정말 그들이 지닌 구조적 모순에 대한 신랄한 저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혁명이란, 노동의 현장이 아닌 오직 그들의 머리와 판타지 속에서만 가능했단 말인가?

 

해방정국에서 피 끓는 청년들을 사로잡았던 이데올로기 투쟁이 정작 당장 눈앞에 닥친 먹고사니즘 앞에서는 어떤 위력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그들은 정작 몰랐단 말인가. 어쩌면 모든 가치와 사회적 정의조차 집어삼키는 21세기 무시무시한 자본의 위력과 그에 따른 선전선동 앞에 무력해진 개인의 무력함에 대한 경종일 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담즙 같은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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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 2022-11-03 15: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학생부군신위> 추억 돋네요. 레샥메냐님, 리뷰 잘 읽었습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2-11-03 16:26   좋아요 0 | URL
그렇죠, 책 보는 내내
그 영화 생각이 났습니다.

감사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11-03 1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한민국처럼 세대 간의 화해가 필요한 나라도 드물 듯합니다. 작가가 이 과정을 아주 잘 그려낸 모양이네요.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싶은데 흠... 최신작이라 경쟁률이 치열한가봅니다ㅠㅠ

레삭매냐 2022-11-03 16:32   좋아요 1 | URL
공감하는 바입니다.

산업화 세대의 공로에 대해
현 세대들이 인정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 많이 섭섭해
하신다는 느낌입니다.

그 부분을 정치인들이 파고
들어 갈등을 확산시키고 있
기도 하구요.

항상 대출 중 그리고 예약
중이라 결국 사서 읽었네요.

독서괭 2022-11-03 1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최근에 북플에서 많이 보이던데요. ‘허명은 없다‘라며 별 5개 주시고 수작이라 칭하시는 걸 보니 읽어봐야지 싶습니다.

레삭매냐 2022-11-03 16:32   좋아요 1 | URL
아주 가독성이 뛰어나서
금방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달 독서 슬럼프였었
는데 이달에는 쫌 달려
보렵니다.

새파랑 2022-11-03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왠지 첫문장에서 <이방인>이 떠오르네요 ㅋ
이번달에 달리시는 레삭매냐님을 기대하겠습니다~!!

레삭매냐 2022-11-03 17:47   좋아요 1 | URL
월초 출발이 산뜻하네요.

오늘 도착 예정인 로베르토 아를트
의 <미친 장난감> 그리고 발자쿠
선생의 <사촌 퐁스> 마무리하고
읽던 책들 다시 돌아갈 계획입니다.

라로 2022-11-04 01:26   좋아요 1 | URL
저도 지난 달은 정말 미적거렸는데이번 달은 좀 다를 것 같아요!!! 매냐님 따라쟁이 라로..😅😅😅

라로 2022-11-04 0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 읽으셨군요!!! 이 책 정말 재밌었어요!!!

레삭매냐 2022-11-04 09:40   좋아요 0 | URL
그러니깐요...

예전에 32년 전 <빨치산의 딸> 시
절에는 책이 나오자마자 판금되고
저자는 국보법 위반으로 불구속기
소되었었다고 하네요.

이 책의 모태가 되는 <빨치산의 딸>
이 25살에 쓴 책이라니 놀라울 따름
입니다.
 
오늘을 잡아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9
솔 벨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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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읽다만 솔 벨로 작가들의 책들이 제법 된다. 분량이 상당해서 도전에 나섰다가 나가 떨어졌다지. 민음사에서 세계문학 시리즈로 나온 <오늘을 잡아라>도 수배해 두었는데 미처 읽지 않고 있다가 이번에 새단장을 하고 나와서 또 사들였다. 책쟁이의 숙명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깊어가는 10월에 <오늘을 잡아라>를 읽는데 성공했다.

 

200쪽이 되지 않은 단편 소설 분량의 <오늘을 잡아라>는 왠지 연극 대본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장인물들이 많이 등장하지 않고, 연극 무대에 올리면 딱이지 않을까.

 

1956년에 발표된 솔 벨로의 네 번째 작품인 <오늘을 잡아라>의 주인공은 인생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깡그리 실패한 44세의 남자 토미 윌헬름이다. 부유한 의사 아버지 애들러 씨를 둔 유펜에 다니던 전도유망한 청년이 망가지기 시작한 건, 할리우드에 데뷔시켜 주겠다던 협잡꾼 모리스 베니스를 만나면서부터였다. 배우로 성공하겠다며, 성까지 애들러에서 윌헬름으로 바꾸며 7년이나 할리우드 허송세월했지만 토미는 배우가 되는데 결국 실패했다.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도 없었던 그는 결국 별 볼 일 없는 그런 일자리를 전전해야 했던 모양이다. 두 번째 그가 만난 재앙은 아내 마거릿과의 결혼이었다. 캘리포니아에서 만난 멋쟁이 아가씨 마거릿에게 진심이었지만, 결혼은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아 참, 그전에 금발의 호남자 그리고 약간 곰처럼 생긴 토미 윌헬름의 결정적 약점에 대해 말해야지 싶다.

 

자신도 고백하듯이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유전자 때문인지 어쩐지 오랜 숙고 끝에 최악의 결정을 내린다는 점이었다. 이건 정말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 수 없다. 우선 배우 데뷔부터 그랬다. 숱한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토미는 포주에 가까운 사기꾼의 농간에 넘어거 할리우드행을 택했다. 아마 그 당시에는 몰랐겠지만, 토미의 할리우드행은 대학 학위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날려 버렸고 그건 배우에 올인해서 성공하지 않는 이상, 성공의 사다리에 올라갈 수 없다는 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의미했다. 배우로도 그리고 대학 학위를 가진 여동생 캐서린이나 부모님과 다른 그런 존재가 되어 버린 토미의 삶은 불운의 연속이었다.

 

결국 사랑하는 두 아들과 댕댕이 시저스마저 마거릿에게 빼앗긴 채, 글로리아나 호텔에 거주하는 신세가 된 토미 윌헬름. 그나마 다니던 로잭스 회사에서도 어쩔 수 없는 운명(사장 사위에게 밀려나 버렸다!)을 받아 들이지 못하고 때려 치우는 바람에 현재 실직 상태다. 무엇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꼴이 없는 게 바로 토미의 현재 상태였다.

 

그에게 닥친 마지막 재앙은 바로 탬킨 박사라는 수상쩍은 인물이었다. 아버지 애들러 박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토미는 가진 돈 700달러를 털어 넣어 탬킨 박사의 말을 듣고는 선물시장에서 라드에 투자한다. 현재 암담한 미래에 절망한 청춘들이 코인에 투자를 했다면, 66년 전에는 선물시장이 그 역할을 했던 모양이다. 손 쓸 수 없는 과거, 도무지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불안이 상존하는 미래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일확천금을 노리는 무대는 어느 세대에나 준비되어 있었던 걸까.

 

누가 봐도 개똥철학자 사기꾼 그 이상도 아닌 탬킨 박사는 현재 절망에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가는 토미에게 썩은 동앗줄을 던진다. 뱀의 혓바닥을 능가하는 탬킨의 요사스러운 언설에 우리 세상 물정 모르는 얼치기 주인공 토미는 그대로 넘어가 버렸다. 아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정말 몰랐단 말인가? 자신의 아버지조차 자신을 돕지 않겠다고 선언한 마당에, 누가 자신을 호의만으로 도와줄 거라고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토미가 할리우드행을 결심하던 이십대도 아니고, 산전수전 다 겪고 나서도 이런 잘못된 결정을 잇달아 내렸다는 점에서, 결국 삶에 대한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솔 벨로 작가는 확인사살한다.

 

토미가 문제아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지만,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애들러 박사가 애써 아들의 곤란한 상황을 외면하는 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토미가 자신의 탬킨에 대한 경고를 무시했다는 점도 그리고 화해의 손길을 내민 토미가 아버지의 불퉁스러운 태도에 질린 나머지 폭주하다가 결국 싸움으로 귀결되는 과정이 부자 간의 갈등이라는 조금은 진부한 주제의 변주라는 점이 좀 아쉬웠다. 유사 이래,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언제 평화가 존재한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잘 따르는 아들이 있었다는 말도 못 들어본 것 같다.

 

세상만사 모르는 게 없는 것 같아 보이던 탬킨이 왜 자신의 돈도 아닌 토미의 돈으로 라드 선물투자에 나서 물주에게 일확천금을 안겨 주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도 따져볼 만하다. 선물시장에서 라드 값이 떨어지고, 호밀 값이 오를 때 왜 손절하자는 토미의 의견을 탬킨은 따르지 않았을까? 바닥을 치는 주식이 언젠가 오를 거라는 말들은 그동안 너무 많이 듣지 않았던가? 손절의 기회가 오거나 밸런스를 맞출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놓치는 경우를 과연 탬킨은 몰랐을까? 아니면 좀 더 먹겠다고 욕심을 부리다 결국 망한 게 아닌지. 믿었던 탬킨이 메인으로 튀었다는 말에 토미는 그대로 무너져 내린다.


지푸라기라도 같은 심정으로 토미 윌헬름이 매달렸던 탬킨은 메피스토펠레스의 현현이다. 자고로 타인을 현혹시켜 사적 이익을 편취하는 인간 군상은 인생에 있어, 그리고 문학에 있어 빠질 수 없는 그런 디폴트 같은 존재였다. 하필이면 나락으로 추락하던 순간의 토미에게 현란한 언변과 기발한 아디이어를 구사하는 탬킨의 출현은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이제 트리거가 준비되었으니 당기기만 하면 되는 거였고, 토미는 이번에도 역시나 심사숙고 끝에 최악의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생전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에서 폭포수 같은 눈물을 터뜨린다. 인생의 막장에 선 남자의 깊은 성찰과 카타르시스 교차하는 지점이라고나 할까. 과연 토미 윌헬름의 남은 인생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지 않은가.

 

도시쥐 토미는 계속해서 각박하기 짝이 없고, 아내 마거릿을 포함한 모두가 자신을 벗겨 먹으려고만 하는 뉴욕에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시를 떠나 시골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데, 과연 중년의 도시쥐 토미에게 그럴 가능성이 있을까? 자식들을 볼모로 삼은 아내가 요구하는 돈을 시골에서 어떻게 마련한단 말인가? 예전에는 채무자들이 돈을 갚지 못하면 감옥에 넣고는 했다는데, 현대 사회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일을 해서 돈을 벌게 하는 시스템이라는 토미의 혜안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의 돈은 모두 늙은 기득권층이 가지고 있어서 자신들이 쓸 돈이 없다는 자각은 또 어떤가. 그중에는 자신의 아버지 애들러 박사도 포함되어 있다. 닥터 애들러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밑 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생각에 아들 토미에게 더 이상의 돈을 쓸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가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들이 자신의 말에 고분고분한 것도 아니고, 주관이 뚜렷한 아들 토미가 계속해서 잘못된 선택을 하는 그런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거라는 토미의 생각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책의 도입 부분에 나오는 지금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냐는 문장이 책을 읽는 내내 나를 사로잡았다. 그 명제를 나의 책사랑에 대입해 보면, 과연 나는 책을 사랑하여 어떻게 달라졌을까? 주관적인 입장에 선 내가 그것에 대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그저 오늘 읽는 책에, 그 책에 나오는 문장과 서사 그리고 구조에 담긴 것들에 집중할 따름이다. 과연 토미 윌헬름이 그때그때의 순간마다 사랑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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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10-27 17: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전 민음사 판으로 읽었는뎁쇼, 사랑하지만 재수없는 유대인 아버지 애들러 박사가, 아휴, 증말 넘 한 거 아녀요? ㅋㅋㅋㅋㅋ

레삭매냐 2022-10-27 21:21   좋아요 1 | URL
토니 윌헬름이가 참 그렇지만...

그래도 자식인데 너무 매몰차지
않나 싶었습니다. 공감합니다.

미미 2022-10-27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잘 읽었습니다. 이 소설 재미나게 읽었는데
덕분에 다시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ㅎㅎ

연극으로 올려도 정말 좋을 듯 해요!
솔 벨로의 어떤 책들 가지고 계신지 궁금해요.
다른것도 수배해 읽어야겠어요^^*

Falstaff 2022-10-27 18:26   좋아요 2 | URL
오기 마치의 모험은 어떻게 읽어야 좋을지, 번역문의 맥락을 잡기가 쉽지 않게 우리말로 옮긴 것.........같습니다. 원문으로도 쉽지 않다고 하더군요.
모험을 빼고 나머지 허조그, 비의 왕 앤더슨, 오늘을 잡아라, 다 괜찮습니다.

미미 2022-10-27 19:08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골드문트님! 허조그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잊고 있었네요. 알려주신 책들부터 수배하겠습니다^^*

레삭매냐 2022-10-27 21:30   좋아요 1 | URL
<허조그> <헨더슨> 그리고 <오기 마치>
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아마 절판되어
가던 시절에 급하게 구한 기억이...

읽다 말다해서 이번에 <오늘을 잡아라>
를 필두로 해서 다시 도전해 보려고 합
니다.

새파랑 2022-10-27 2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솔 벨로 책 시리즈 완전 멋지네요 ㅋ 예술입니다~!!

레삭매냐 2022-10-28 09:1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새파랑님.

소장만 하고 읽지 않고
뻐팅기던 솔 벨로의 책
들 모아서 함 찍어봤습
니다.

coolcat329 2022-10-30 1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문동에서 새로 나왔군요.
저도 이걸로 읽어봐야겠어요.
펭귄 솔 벨로우 책 멋져요!

레삭매냐 2022-10-30 21:49   좋아요 0 | URL
이 참에 펭귄에서 나온
<허조그>에 다시 도전 중이랍니다.

2년 전에 200쪽까지 읽다 말았더라
구요.
 
배반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0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음, 황가한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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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압둘라자크 구르나 작가의 네 번째 책 <배반>을 읽었다. 이전에 이미 세 권의 책으로 구르나 작가에 대한 워밍업을 마친 나는 충분히 그의 작품 세계에 몰입할 준비를 마쳤던 모양이다. <배반>은 참으로 아름다운 책이었다.

 

2005년에 발표된 <배반>은 구르나 작가의 7번째 장편소설이다. 이때까지 만난 작품들 중에 가장 자전적인 요소들로 가득하다는 생각이다. 189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늘날의 탄자니아/케냐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이 중심을 이룬다.

 

인도계 출신 장사꾼 하사날리가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른 음중구(유럽인) 한 명을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종교적 이유로 이방인을 환대하는 무슬림 문화에 대한 단면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방인은 신이 보낸 천사라고 했던가. 자신의 집을 방문한 천사를 매몰차게 내치지 말라는 말일까. 지금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폭력적인 이미지로 덧칠되었지만, 적어도 이방인들을 환대하는 문화만큼은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몸바사 근처의 작은 마을에 마틴 피어스라는 이름의 음중구 한 명이 등장하면서 이야기의 수레바퀴는 가열차게 돌아간다. 십대에 부모님을 잃은 하사날리와 그의 누나 레하나 남매. 부모가 없을 적에는 가장 가까운 남자 형제나 친척이 여자 형제를 보살피는 게 그 동네 문화라고 한다. 인도 출신 아버지가 현지인 여성과 결혼해서 낳은 자카리야 집안 역시 태생적으로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세 번의 청혼을 거절한 레하나는 동생 하사날리가 가문의 명예를 수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추진한 아자드와 결혼했지만, 그 결혼은 재앙으로 끝났다. 계절풍을 타고온 아자드는 다시 그 계절풍을 타고 그녀의 곁을 떠나가 버렸다. 그리고 그의 빈자리를 갑자기 등장한 음중구 마틴 피어스가 채워 버린 것이다. 양심적인 학자 행세를 하던 피어스는 자신을 구한 레하나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져 버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자 고향 영국으로 떠나 버린다. 좀 진부한 설정이 아닌가.

 

그리고 한 명의 중요한 캐릭터가 남아 있다. 영국에서 식민지 혹은 보호령 탄자니아를 지배하기 위해 파견한 군수 프레더릭 터너다. 그는 빈사의 지경에서 발견된 음중구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를 하사날리로부터 인계받는다. 물론 현지인에 대한 반감으로 그가 혹시라도 피어스의 물건들을 강탈하지나 않았나 하는 의심은 디폴트다.

 

하긴 백인농장주 버턴에 비하면 프레더릭 터너는 양반이다. 버턴은 남아프리카의 보어인들처럼 아프리카 식민지에 사는 현지인들을 모두 쫓아내고, 백인들의 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일삼는다. 제국주의자들은 동아프리카를 제2의 아메리카로 만들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학살과 추방으로 점철된 미국의 역사를 아프리카에서도 되풀이하고 싶다는 걸까. 백인 식민주의자들에게 흑인들의 노동력은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그들과의 공존은 자신의 미래계획에 빠져 있다. 아마 19세기말에 전 세계를 호령하던 백인들이 자신들의 지배가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런 그들의 착각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무리수였다.

 

두 세대 정도인 6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독립을 앞둔 탄자니아로 시계는 돌아간다. 그리고 새로운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아민과 라시드 그리고 파리다. 그들의 부모님들은 모두 교사로 탄자니아의 엘리트 계급이다. 파리다는 삼남매로 맏이로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해 시험에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지금은 집에서 수다와 지인들의 옷을 만들어 주며 소일 중이다. 아민은 믿음직한 장남으로 그리고 꼬마 이탈리아인이라는 별명의 라시드는 몽상가다. 당연히 부모님들은 장남 아민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문제는 이 믿음직한 장남이 자신보다 나이 많은 이혼녀 자밀라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촉발됐다. 끓어오르는 청춘 아민이 자밀라와 비밀연애에 빠지게 되자, 진짜 물불 가리지 않는 저돌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그런 사랑이기에 아민과 자밀라는 서로에게 그토록 몰입했던 게 아니었을까.

 

지금도 그렇지만 초타라(튀기, 혼혈인)에 대한 반감은 전통적 무슬림 사회에서 여전했던 모양이다. 결국 아민과 자밀라의 비밀연애는 발각되고, 아민 부모님의 격렬한 반대에 비극적 사랑으로 마무리되었다.

 

자 이제 진짜 화자인 라시드가 등장할 차례다. 몽상가였던 소년 라시드는 식민 모국 영국으로 건너갈 기회를 잡게 된다. 형 아민과 어쩌면 미래의 형수가 될 수도 있었던 자밀라와의 연애가 파국으로 치닫던 시점 그리고 탄자니아 독립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결부된 그 시점에서 라시드는 조국을 떠나 영국으로 향한다.

 

처음에는 자발적이었을 지는 몰라도 독립 과정에서 극도의 혼란과 무질서, 폭력 그리고 이어진 학살과 추방 때문에 라시드의 영국 유학은 그대로 영구적인 무엇인가가 되어 버렸다.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진 몰라도 낯선 곳에 적응해야 했던 이방인 라시드의 감정이 아주 절절하게 와 닿았다. 확실히 압둘라자크 구르나 작가는 라시드라는 캐릭터에 작가 자신을 명징하게 투영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감정들은 누군가에게 들은 것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그런 감정들이었다.

 

라시드는 학업을 마치고 조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줄리어스 니에레레가 인도하는 사회주의 정권 아래 아무런 비전이 없다고 생각한 라시드의 가족들은 막내아들이 영국에 머물 것을 권유한다. 그렇게 라시드는 어쩔 수 없이 영원한 이방인이 되어 버렸다. 박사 학위를 받고 대도시 런던을 떠나, 작은 도시의 대학에 일자리를 얻은 라시드는 그렇게 과거로부터 분리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벌어졌던 사건들의 진상과 마주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긴다.

 

소설의 엔딩이 사뭇 급작스럽고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여전히 <배반>은 내가 꼽은 구르나 작가의 최고의 작품이다. 모든 게 완벽할 수 없으니까. 아니 어쩌면 힘차게 필력을 휘두르며 전진하던 구르나 작가의 너무 자신의 이야기에 몰입한 나머지, 더 이상 쓸 힘을 상실하고 급하게 마무리지은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소설 <배반>의 기본 베이스는 사랑타령이다. 레하나와 피어스의 사랑, 자밀라와 아민의 사랑(둘 다 파국적이었다) 그리고 아민-라시드 브러더스에 대한 가족들의 다소 폭력적인 사랑. 그들의 조상이 디아스포라 이방인이었던 것처럼, 그들의 후손 역시 타지에서 뿌리를 내려야 하는 그런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렇게 해서 현재 우리의 삶이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책을 읽으면서 무언가 더 쓰고 싶은 말들이 많았지만, 책에 몰입하다 보니 무척 강렬하게 다가왔던 느낌들이 어느 순간 우수수 바스러져 버렸다. 그 자잘한 느낌들을 되살리기에는 내 기억의 한계가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만큼 구르나 작가가 구사하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그리고 다양한 군상들이 시전하는 감정들의 광휘에 취했다고나 할까. 원제 desertion에는 배반, 도주, 유기 따위의 뜻이 있다고 하는데, 그런 중의적 해석 역시 소설에 등장하는 각각의 사건에 다양한 층위로 적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탁월한 제목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달에 <배반>을 만날 수 있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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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0-25 11: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구르나의 자전적 이야기가 가장 많이 담긴 소설이라 저는 이 소설부터 시작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 제가 해당 시기 베크 세계사를 읽고 있어서인지 인물들의 설정과 관계도에 이입이 많이 됩니다. 내년으로 미뤄뒀는데, 이거 읽어야 하나요?ㅎㅎㅎ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레삭매냐 2022-10-25 20:23   좋아요 1 | URL
구르나 선생의 전작들이 <배반>
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
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였습니다.

프레이야 2022-10-25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배반, 땡스투유~ 메냐 님.

레삭매냐 2022-10-25 20:2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프레이야님~! 쌩유 -

새파랑 2022-10-25 1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게 구르나의 최고의 작품이군요 ^^ 구성이 약간 <바닷가에서>랑 비슷해보이기도 합니다~!!

레삭매냐 2022-10-25 20:25   좋아요 1 | URL
그동안 출간된 전작들의 총합
이라고나 할까요.

결국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법이라는 말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레이스 2022-10-26 1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배반으로 구르나 4부작 마무리하려고 들여놨습니다.^^

레삭매냐 2022-10-26 13:41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의 <배반> 완주를 응원합니다 !

구르나 작가의 다른 책들도 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서니데이 2022-11-09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거리의화가 2022-11-09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이달의상 축하드려요^^
덕분에 저도 이 작품 찜했습니다!ㅎㅎㅎ

독서괭 2022-11-09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압둘라자크 구르나 네권이나 쭉쭉 독파하셨군요!

강나루 2022-11-10 0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축하드려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thkang1001 2022-11-10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삭메냐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타이탄의 세이렌
커트 보니것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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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에게 좋아하는 작가를 물으면 항상 대답하곤 하는 이름이 둘 있었다. 칠레 출신의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와 미국 출신의 커트 보네거트였다. 두 작가 모두 우리 지구별을 떠나 영원한 별이 되었다. 나름 보네거트의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해 왔는데, 독서모임에서 한 동지가 <타이탄의 세이렌>이라는 작품을 읽었다는 말을 듣고는 , 그 책은 못 읽었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검색을 해보니 이제는 절판돼서 구할 수가 없는 책이란다. 복간되어 나오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작고하기 전까지 활발한 작품활동을 해온 보네거트의 <타이탄의 미녀>1959년에 발표된 그의 초기 작품에 해당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SF 과학소설 장르의 모든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의 장르로 분류되는 것을 한사코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인류가 지구별을 떠나 우주에 첫 발을 내딛기 십년 전에 이미 이런 상상을 했다는 점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이름조차 생소한 크로노-신클래스틱 인펀디뷸럼이라는 공간을 통해 지구별과 화성을 넘나드는 윈스턴 나일스 럼푸드와 그의 개 카작이 소설의 초반부를 장식한다. 인펀디뷸럼에 들어가게 되면 과거와 미래를 아는 능력이 생기는데, 자신이 가진 부를 우주선 제작에 투자해서 럼푸드 씨는 예의 능력을 100% 활용하기에 이른다. 그는 또다른 갑부 맬러카이 콘스턴트(소설의 진짜 주인공)을 자신이 지구별과 화성을 오가며 체화하는 의식에 초대해서 그의 미래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럼푸드는 콘스탄트에게 화성과 수성, 지구 그리고 타이탄으로 가게될 거라고 예언한다.

 

아니 아직 인류가 달나라에도 가지 못한 마당에 이런 방대한 스케일의 허구는 뭐지? 물론 지금이야 무인우주선이 부지런히 우주를 돌아다니고 있으니 그 정도야 상상할 수 있지만 지금으로부터 63년 전에도 그런 상상이 가능했을까? 하지만 지구별에서 무엇 하나 아쉬울 게 없는 콘스탄트에겐 씨도 먹히지 않는 수작일 뿐이다. 그래서 슬쩍 미끼를 던지는데 그게 바로 제목인 <타이탄의 세이렌>들이다. 물론 모든 소설의 주인공의 운명이 그렇듯,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움직이기 마련이다.

 

SF소설답게 전개와 공간이동 역시 신속하다. 다음 무대는 화성의 연병장이고, 주인공 역시 엉크라는 이름의 사나이가 등장한다. 화성에 사는 지구별의 이주민들은 모두 지구별과의 전쟁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왜 지구를 침공하려고 하는 걸까? 구체적인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머릿속에 안테나를 하나씩 박아두고 리모콘으로 조정하는 방식은 또다른 디스토피아의 재현으로 다가온다. 기억을 지우고, 사회에 순응하는 그런 기계적인 인간 군상이 대거 등장한다. 그 가운데, 과거를 필사적으로 기억해 내려고 애쓰는 남자가 하나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엉크. 그리고 필연적으로 독자는 그가 지구별에서 화성으로 납치된 맬러카이 콘스턴트일 거라는 추측에 도달한다.

 

윈스턴 나일스 럼푸드의 사주를 받아 지구별 침공에 나선 화성인들은 공격다운 공격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떼죽음을 당한다. 럼푸드는 자신의 예언 성취를 위해 자신의 정체를 알게된 엉크와 보즈를 수성(머큐리)으로 보낸다. 음악을 사랑하는 하모니움이 사는 수성을 탈출해서 엉크/콘스탄트는 다시 지구별로 귀환해서 우주의 방랑자가 된다. 그리고 그보다 앞서 지구별에 와 있던 그의 아내 베아트리체와 아들 크로노와 함께 마지막 여행지인 타이탄으로 마지막 여행에 나서게 된다. 소설 <타이탄의 세이렌>의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우주여행, 공간이동, 반전 메시지 그리고 신흥 사이비 종교에 대한 신랄한 비판에 이르기까지 커트 보네거트 주니어가 이 소설에서 다루는 소재는 그야말로 차고 넘칠 지경이다. 소련이 미국에 앞서 발사한 유인 인공위성 스푸트니크의 충격(1957104) 때문에 세계 일류 미국이 악의 축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소설 곳곳에 덕지덕지 묻어난다. 어이없는 화성인들의 집단자살 작전은 온전하게 럼푸드 씨가 지구별을 좀 더 바람직하게 변화시키고, 대규모 유혈사태 이후 발생하게 될 사고의 진공상태와 양심을 가책을 덜 수 있는 신흥 종교의 발흥을 위한 것이었다는 고백하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종교에서 흔히 사용되는 예언을 차용하고 메시아를 기대하는 심리를 우주의 방랑자의 도래로 치환시키는 방법 역시 탁월해 보인다.

 

그 층위에 더해 인류가 체험한 이 모든 간난신고는 타이탄에 사는 럼푸드 씨의 친구이자 트랄파마도어인 우편배달부 살로의 도움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과 그에 따른 결말 역시 성에 차지 않는다. 도대체 커트 보네거트가 이 소설 <타이탄의 세이렌>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그저 어느 도피주의자의 우주적 농담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큰 담론인지, 그도 아니라면 얼치기 블랙유머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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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0-24 2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커트 보니것 소설이 다시 나왔군요. 앗싸하고 찾아보니까 타임퀘이크도 다시 재출간돼서 한번 더 앗싸하네요. 세풀베다는 한권밖에 안 읽어서 좋아하는 작가라고 하기는 좀 뭐하지만, 커트 보니것은 저도 제일 좋아하는 작가예요. 레삭매냐님 덕분에 새 책 소식 빨리 알았다고 좋아하는데 언제 읽으셨대요? 알라딘에 신간소식 오늘 떴던데 말이죠.

레삭매냐 2022-10-25 10:01   좋아요 0 | URL
오래 전, 한창 책 읽기 시작했을 적에
커트 보네거트/루이스 세풀베다 책들
을 사냥하러 다닌 기억이 풀풀 납니다.

근데 책들이 거의 절판돼서리...

<타이탄의 세이렌>은 8년 전에 읽은
책 감상문의 울궈먹기입니다 ㅋㅋㅋ
 
순교자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1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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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에서 세계문학전집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과연 어떤 책이 전집에 들어갈지 참 궁금했다. 여러 권의 책 중에서도 특히 발자크의 그동안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나귀 가죽>, <루이 랑베르>와 함께 가장 관심이 갔던 책이 바로 지금은 작고하신 김은국 교수의 <순교자>였다. 한국전쟁을 시대적 배경으로 해서, 종교와 이데올로기의 대립 그리고 진실을 추적하는 추리소설 양식까지 두루 갖춘 김은국 교수 최고의 걸작 <순교자>가 한국전쟁 발발 60주기를 즈음해서 재출간됐다.

 

1932년 함흥 출신으로, 한국전쟁을 직접 체험한 김은국 교수는 전쟁이 끝난 후 제대하고서 미국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학자의 길을 걸었다. 대학에서 정치외교와 역사를 전공하고, 존스 홉킨스와 하버드 같은 유수의 대학에서 문학을 추가로 더 연구했다. 미국 국적을 취득한 김은국 교수는 Richard E. Kim이라는 미국 이름으로 자신의 첫 소설인 <순교자>1964년에 발표한다.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순교자> 외에도 한국 삼부작이라고 할 수 있는 <심판자>(The Innocent, 1968)<잃어버린 이름>(Lost Names, 1970)이 있다. 그는 풀브라이트 교수로 서울대에서 1982년에서 이듬해인 1983년까지 영문학 강의를 맡기도 했다.

 

<순교자>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10월의 평양을 시간과 공간적 배경으로 한다. 전쟁 초반의 열세를 딛고, 국군과 UN군은 평양을 점령한다. 소설의 화자 이 대위는 육군 특무대 소속으로 정보국장인 장 대령으로부터 은밀한 지령을 받는다. 전쟁 발발 당시, 인민군에게 집단 처형당한 일단의 목사들을 조사하라는 명령이다. 종교탄압이라는 측면에서 훌륭한 선전전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 대위는 집단 처형에서 살아남았다는 신 목사와 한 목사의 행적을 좇기 시작한다. 신 목사의 증언을 통해, 화자인 나 이 대위는 전쟁발발 당일 모두 14명의 목사 중 12명이 처형을 당하고 신 목사와 한 목사만이 기적적으로 살아남게 되었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그것은 신의 개입이었노라는 신 목사의 말에, 이 대위는 그에게 묻는다. 그들의 창조주가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이 세상에서 겪는 이 참담한 고통을 알고 있느냐고.

 

장 대령은 공산군 비밀경찰에게 처형당한 12명의 목사에게 합동 추모 예배를 통해 순교자의 지위를 부여하고, 상호의 대적과 싸워나갈 것을 주문한다. 죽음마저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그의 모습에서 연민이 느껴졌다. 이 대위가 전쟁 중에 알게 된 해병대 출신의 박인도 대위가 알고 보니, 순교한 12명 중의 한 명인 박 목사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박 대위는 자신의 아버지를 광신도로 규정하면서, 그가 과연 죽음의 순간을 평소 자신의 언행대로 의연하게 맞았는지를 캐묻는다.

 

하지만, 이 대위가 조금씩 밝혀내는 처형에 대한 진실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대위의 상관인 장 대령은 서슴지 않고 양심마저도 가공해낼 것을 주문한다. 젊은 혈기에 불타는 이 대위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자신이라면 진리를 밝혀내야 한다고 강변하지만, 노회한 장 대령은 어떤 이들은 그 불편한 진실을 달가워하지 않을 거라는 묵시록 같이 들리는 예언을 날린다. 순교로 포장된 목사들의 죽음에 대한 추악한 진실이 한 꺼풀씩 벗겨지면서, 이야기는 중공군의 개입이라는 역사적 사실 앞에 부서진 수레바퀴 마냥 나뒹군다.

 

김은국 교수가 말했다시피 순국, 순직 같은 용어는 모두 살아남은 이들이 죽은 이들을 기리기 위한 말이다. <순교자>에서는 더 나아가, 전쟁이라는 제로섬 게임에서 생존한 이들이 어느 특정한 목적을 종교인들의 죽음을 이용하려는 의도에 일침을 가한다. 이 대위라는 지식인은 종교나 정치에 상관없이 양심에 따른 진실을 알려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군과 종교계를 대변하는 장 대령과 일단의 목사들은 인민군에게 죽은 12명의 목사에게 애써 순교자라는 명칭을 부여한다. 이런 프로파간다는 시간을 초월해서 재생산된다는 아주 간단한 역사의 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들의 순교의 이면에는 죽음 앞에서 벌어진 수치스러운 배교 행위의 비밀이 오롯하게 숨어 있다. 그래서 공산 치하에서 목숨을 구걸하고 살아남은 종교인들은, 도저히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위선의 탈을 쓰고 있을 수가 없어서 양심선언을 한 신 목사를 유다라고 부르면서, 서슴지 않고 돌을 던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결백한 이들보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죄를 지은 이들이 항상 심판의 순간에 앞장서지 않았던가.

 

하지만, 양심선언을 했던 신 목사는 돌아온 탕자 아들처럼 기성 교계와 화해를 하고 다시 그들에게 돌아가 목자로서의 삶에 투신한다. 광신자였던 아버지 박 목사에게 반발했던 박인도 대위 역시 온갖 고난을 온몸으로 체험했던 <욥기>의 주인공 욥이 당하는 불의를 하나님이 보지 않았다는 구절을 읊조린다. 이렇게 그들은 희망을 잃은 세대와 화해를 시도한다. 평생 신의 은총을 기대하며 구원을 간구했던 신 목사는 자신이 종국에 찾아낸 사실은 괴로움과 죽음에 무력한 인간 존재였노라고 고백한다.

 

김은국 교수는 <순교자>에서 교()에 대한 부분보다 순()의 의미에 더 치중할 것을 주문한다. 그는 모든 인간에게 공평한 죽음 앞에서, 인간이 욕망하는 오욕칠정의 무상성을 냉정하게 꼬집는다. 또 어떻게 보면, 살기 위해 평생의 신앙과 종교마저도 헌신짝처럼 내버린 배교자에 대한 질책으로도 들린다. 이제는 빛과 소금의 기능을 잃어버린 채, 약자와 마음이 가난한 자를 배척하는 작금의 세태에 대한 일갈에 악다구니하는 세상살이에 혼탁해진 자신을 추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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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0-11 13: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리뷰 감사합니다. 관심이 가서 일단 담아놓았어요~^^
그러고 보니 침묵도 읽어야 하는데 아직 못 읽고 있네요ㅠㅠ 교보다는 순에 치중했다고 하셔서 뭔가 안심(!)이 됩니다^^;

레삭매냐 2022-10-11 14:52   좋아요 2 | URL
최근 리뷰는 아니고, 요즘 책덜어내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예전에 분명히
읽고 리뷰를 쓴 것 같은데 보이지 않아
서 재업하게 되었답니다 :>

처음이 작가분이 직접 번역하신 버전
이랑 느낌이 좀 다르다랄까요.

mini74 2022-10-11 13: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새파랑님 리뷰 읽고 담아 놓고 잊고 있었어요 ~ 순교와 배교 정치와 사상 … 순에 대한 의미 부분 참 좋아요 매냐님 ~

레삭매냐 2022-10-11 14:57   좋아요 4 | URL
예전 리뷰 기록이 없어져서리...

기록을 위해 남기게 되었답니다 :>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2-10-12 1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침묵> 만큼 <순교자>도 좋았었습니다 ㅋ 일단 이야기가 참 흥미로웠다는~!!

레삭매냐님은 리뷰도 별도로 남기시나 보네요.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