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쿠스 전쟁 - 야만과 문명이 맞선 인류 최초의 게릴라전
배리 스트라우스 지음, 최파일 옮김 / 글항아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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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조금씩 읽고 있던 배리 스트라우스 교수의 <스파르타쿠스 전쟁>을 다 읽었다. 이 작품으로 저자는 <트로이 전쟁>, <살라미스 해전>으로 이어지는 고전 3부작을 완성했다고 하는데, 다른 작품도 곧 읽을 계획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는 커크 더글러스와 32세의 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그리고 최근에는 동명의 미드로 잘 알려진 노예검투사 출신의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소재로 다룬 역사서다. 다만, 원체 오래전의 사건이다 보니 사료(史料)의 절대적 부족으로 저자는 추측과 짐작을 적절하게 섞은 스토리텔링 전략을 구사한다.

스트라우스 교수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플루타르코스와 아피아누스의 기록을 통해 그리스 트라키아 출신의 이 노예검투사를 재조명한다. 저자는 스파르타쿠스가 한 때 로마군단의 보조병으로 군역을 이행한 피정복민이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그래서 그는 로마에 반기를 들었으면서도, 로마군의 장단점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로마군이 장기로 삼는 평원에서의 회전 대신 기습과 매복 같은 게릴라전으로 정규 로마군을 괴롭혔을 거라고 썼다. 로마인의 관용(클레멘티아)은 세계 제국을 건설하는데 있어 큰 도움이 되었을 진 모르겠지만, 로마 세계를 잘 아는 이들의 내부 반란에는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우구스투스의 게르마니아 정복을 토이토부르크에서 좌절시킨 25세의 아르미니우스 역시 로마군 출신이었다.

빵과 서커스(bread & circus)로 대변되는 로마 공화정 말기, 아레나에서 피와 살이 튀는 검투사 간의 목숨을 건 결투에 로마인들은 열광했다. 일찍이 무장한 검투사의 위험을 간파한 로마인들은 검투사들을 로마 밖에서 양성했다. 로마 시민 렌툴루스 바티아는 캄파니아 지방의 카푸아에서 시합에 소용될 검투사를 길렀는데, 바로 여기서 반란의 싹이 텄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조롱거리가 되느니 차라리 영예로운 죽음을 택한 스파르타쿠스의 전설이 시작됐다. 배리 스트라우스는 바로 이 전설적 영웅을 관통하는 영혼의 위대함에 방점을 찍는다.

저자는 변변치 않은 무기로 봉기한 검투사들의 지도자 스파르타쿠스와 함께한 것으로 알려진 이름 모를 트라키아 여인의 존재에 주목한다. 주신(酒神)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던 이 여인은 예언이라는 형식을 통해 반란에 어떤 신성성을 부여했다. 켈트족과 게르만족 그리고 트라키아족으로 구성된 다국 반란 집단의 ‘족장’ 스파르타쿠스는 트라키아 여인의 예언대로 해방자로 전면에 나서게 된다. 한편, 기원전 73년 로마는 공화국의 동쪽과 서쪽에서 양면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로마 정예군은 모두 동쪽에서 벌어진 미트리다테스 전쟁과 에스파냐의 세르토리우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해 있었고, 본국은 치안 부재의 상태였다. 이런 시기에 로마는 남부를 휩쓴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진압할 여력이 없었다. 그 결과, 급조한 로마 군단은 반란군에게 연전연패한다. 이런 스파르타쿠스가 이룩한 초기의 성공이 바로 그의 파멸의 전주곡이었다는 참 역설적이다.

뛰어난 현실감각을 지닌 전략가였던 스파르타쿠스는 비록 초반의 승리로 반란군이 승기를 잡았지만, 로마 정규군을 상대로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알프스 산맥을 넘어 고향 트라키아로 탈출하려는 대담한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동과 서 양쪽 전선에 방대한 병력을 투입한 로마가 노예 반란에 대처할 새로운 대규모 병력을 모집할 수 없으리라는 판단도 하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스파르타쿠스의 이탈리아 탈출 작전은 매우 성공 확률이 높은 도박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나고 자란 많은 수의 반란군은 그들이 성공할 수 있는 도박 대신 손쉬운 약탈에 더 매력을 느꼈다. 역사에서 가정이란 정말 무의미하다고 하지만, 스파르타쿠스가 알프스 돌파작전에 성공했다면 기원전 216년 한니발의 칸나이 전투(Battle of Cannae)만큼이나 로마에게 치욕적인 사건이었으리라.

조직과 규율로 유명한 로마군에게 비정규 게릴라전의 위력을 유감없이 과시한 스파르타쿠스 앞에 마침내 유력한 맞수가 등장한다. 우리에게는 공화정 말기 삼두정치의 일원으로 잘 알려진 크라수스가 바로 주인공이다.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특별 명령권을 부여받은 사령관 크라수스는 로마군에서 그동안 사문화되었던 ‘데키마티오’라는 혹독한 처벌 방식을 부활시켜 군의 기강을 다시 잡는다. 한편, 스파르타쿠스는 킬리키아의 해적과 제휴해서 시칠리아 원정을 계획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들의 배신으로 어쩔 수 없이 크라수스가 이끄는 진압군과 숙명의 대결을 펼치게 된다.

결국 스파르타쿠스는 실라루스 전투에서 결국 장렬한 최후를 마친다. 스트라우스 교수는 당대의 폼페이우스나 카이사르와는 비교할 수가 없지만, 단순하게 로마 최고의 재력가로만 알려진 크라수스의 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을 냉철하게 재평가한다. 로마군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던 스파르타쿠스가 크라수스가 지휘하는 로마군과의 정면 대결을 끝까지 피하면서 알프스 돌파작전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하고 로마로 귀환한 폼페이우스와 루쿨루스의 끈질긴 추격을 따돌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고대시대에 인간의 자유라는 고귀한 가치를 위해 끝까지 싸운 영웅 스파르타쿠스의 실패한 반란 이야기는 현대에도 여전히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의 전범이다. 그래서 샘 레이미는 섹스와 폭력으로 점철된 새로운 스타일의 드라마 <스파르타쿠스>로 시청자를 유혹하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가 스파르타쿠스 전설 속에 담긴 거친 폭력 코드라는 오락거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스트라우스 교수는 노련한 역사가답게 노예검투사들의 반란이 발생한 시대적 배경, 문명과 야만의 충돌이라는 시점에서 노예 반란 전쟁의 진행과정 그리고 비로소 스파르타쿠스 개인에 대한 심층적 분석이라는 요소를 균형감 있게 다룬다. 저자는 실존인물인 스파르타쿠스의 행적을 밝혀줄 역사 기록이 부족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이천년 전에 자유와 복수를 외치며 로마인들의 압제에 대항해서 분연히 일어선 트라키아 출신 노예검투사의 투쟁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사실을 뛰어넘어 이제는 신화가 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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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소도시 여행 - 올리브 빛 작은 마을을 걷다
백상현 글 사진 / 시공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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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참 좋아졌다. 이제는 세계 어디라도 가 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블로그나 구글맵 같은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해 맛보기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검색창에 보고 싶은 곳의 이름만 탁탁 처넣으면, 바로 새로운 별세계가 열린다. 어쩔 땐, 직접 가서 봐도 이 정도는 아니겠지 싶을 정도로 멋진 사진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아무리 그래도 발걸음으로 직접 한 여행에 비할 수가 있을까? 백상현 작가가 이탈리아 32개의 크고 작은 도시를 돌며 남긴 기록인 <이탈리아 소도시 여행>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32개 도시 중에서 가장 먼저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도시는 바로 포시타노였다. 미국 출신의 작가 존 스타인벡의 여행 에세이로 그 유명세를 탔다는 지중해 티레니아 바다가 바로 정면에 보이는 포시타노는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다. 바닷가의 기암괴석이 품은 어느 동화에나 나올 법하게 아기자기하고 원색적인 가옥의 행렬에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책에 소개된 것만으로는 부족해 블로그를 통해 더 많은 사진을 보고서, 소렌토와 아말피 어디쯤에 있다는 이 환상의 마을은 가히 죽기 전에 꼭 가봐야할 곳이라는 말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스타인벡이 1953년에 하퍼스 바자에 기고했다는 <포시타노> 에세이는 구해놨는데 영어라 언제 읽을지 모르겠다.

<소렌토와 아말피> 편에서는 제대로 구경하지는 못했지만 카프리 섬을 구경하고 나폴리로 돌아가는 길에 들른 아말피와 소렌토의 추억이 오롯하게 떠올랐다. 소렌토의 사진을 보는 순간 왜 생뚱맞게도 이탈리언 식당인 <소렌토>가 떠오른 걸까. 이제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탈리아식 스파게티, 아니 파스타 식당 때문인가 보다.

백상현 씨의 시칠리아 경험은 나도 로마에서 똑같이 경험했다. 신부님으로 이탈리아에서 유학하던 사촌형이 기거하던 수도원에 가서 점심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수도사님 중에 베네치아에서 오신 분에게 이탈리아 사람이냐고 묻자 대번에 자기는 베네토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던 기억이 난다. 고작 100여년 남짓한 통일 시대에 사는 이들에게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이야말로 자부심의 상징이 아니었을까 뭐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볼거리만큼 중요한 여행의 빠질 수 없는 즐거움은 바로 식도락이다. 그래서 움브리아와 토스카나 지방을 여행하면서 작가가 먹고 마신 음식의 향연을 들을 적에는 정말 마음만이라도 당장 이탈리아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티라미수가 페루자에서 후식으로 등장했을 때, 그리고 피렌체식 비프 스테이크인 피오렌티나를 조리하는 방법을 정말 자세하게 설명할 때는 군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솔직히 말해서 너무 부러웠다.

시에나에서는 캄포 광장(piazza)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망중한을 즐기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래, 바로 이게 삶이야’라는 생각도 들었다. 미국의 자유로움과는 또다른 양식이라고나 할까. 역시 디저트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어쨌는지 계속해서 디저트에 눈길이 간다. 그래서 시에나가 자랑하는 천상의 맛을 가진 판포르테 이야기를 읽을 적에는 마치 그 맛을 음미하기라도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볼로냐 특산 살라미를 맛볼 수 있는 셀프 리스토란테 <탐부리니>에도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들었다. 아니 어떻게 이 책의 저자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이런 멋진 환대를 받는 걸까? 자신을 한낱 배낭여행자로 소개한 실체와는 다른 무엇이 있는 게 아닐까?하는 의문이 끊이지 않는다. 백상현 씨는 이렇게 많은 이탈리아 도시들을 순전하게 대중 교통수단만을 이용해서 여행했을까? 쉽지 않은 일일텐데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린 걸까? 궁금하다 궁금해.

나의 이탈리아 여행과 비교해 보면, 백상현 씨의 이탈리아는 정말 하나같이 모든 곳이 아름답고, 흠잡을 데 없는 그런 낙원(paradiso)로 들린다. 그런데 실상이 과연 그럴까? 소매치기를 당하거나 혹은 관광지에서 바가지를 쓰거나 그런 체험은 하나도 없다. 너무 완벽해도 이상하다. 홀로 하는 여행이란 모름지기 교통편과 숙소를 모두 혼자서 정해야 하는 나그네의 고행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긴 다년 간의 여행 경험으로 그 모든 걸 셋팅하고 여행을 했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어쨌든 자신의 눈과 마주하는 모든 것을 허투루 놓치지 않고 예리하게 기록한 작가 덕분에 우리는 이렇게 이탈리아까지 직접 가는 대신 방안에서 편안하게 대리 이탈리아 여행을 했다. 이런 간접 체험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직접 문지방을 걷어차고 떠날지라. 항상 그렇지만 말은 쉽다. 이렇게 멋진 이탈리아 여행을 한 작가가 마냥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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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처럼 비웃는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5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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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년 만에 다시 미쓰다 신조의 소설과 재회했다. 전작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은 비채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로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 미쓰다 신조의 작품이었는데, 산속을 밀실로 한 트릭과 지벌, 연쇄살인 그리고 산마 같은 기담을 통해 간토 지방에 벌어진 미스터리였다. <산마처럼 비웃는 것>에서도 전작에서의 스타일이 투영된 듯한 기시감이 소설의 곳곳에서 느껴졌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작품을 우려먹는다는 악평을 들을 수도, 또 다른 편으로는 꾸준한 성과라는 호평을 들을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 아닌가 싶다.

전작에서 쿠비나시라는 산마를 등장시켰던 미쓰다 신조는 도쿄 인근의 울창한 산림으로 유명한 오쿠타마의 고도 고지로 독자를 안내한다. 초반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하도 출신으로 도쿄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고키 노부요시다. 고키 가의 넷째 아들로 형들과는 달리 병약했던 그는 가문 전래의 성인 참배를 드리기 위해 고향을 찾았다가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된다. 쉽게 진행될 줄 알았던 성인식 과정에서 길을 잃고, 부름산이라는 흉산에 들었다가 산마/산녀를 만난다. 게다가 간신히 찾은 외딴집에서는 정말 해괴하기 짝이 없는 일가족 증발 사건의 중심에 놓인다. 그리고 노부요시는 자신의 이런 기이한 체험을 원고에 기록한다. 아, 이 철저한 기록정신이란!

고키 노부요시의 이 원고가 기이한 이야기라면 사족을 쓰지 못하는 우리의 진짜 주인공이자 탐정소설가 도조 겐야의 손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는 굴러가기 시작한다. 그렇지 않아도 일전에 기이한 사건을 해결한 공로로 자신의 단편소설을 발표하는 괴상사를 통해 사건 의뢰가 끊이지 않는다고 했던가. 아마추어 민완 탐정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빼어난 솜씨를 자랑하는 도조 겐야는 아버지와 형제에게 인정받지 못한 자신의 페르소나 같은 노부요시의 원고와 산마라는 마물의 매력에 그만 이 엄청난 사건에 발을 들여 놓는다.

자, 드디어 구마도에 모습을 드러낸 도조 겐야는 면식이 있던 가지토리 가의 당주 리키히라의 호의로 그의 집에 베이스캠프를 차린다. 항간에 떠도는 지장보살의 동요를 냉철하게 분석한 도조 겐야는 구마도와 부름산에 거쳐 모종의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소설의 작가가 개입해서 독자를 전형적인 방법을 전개하는데, 바로 곧이어 살인사건이 일어날 거라는 예고를 날린다. 도대체 노부요시가 본 것은 무엇일까?

미쓰다 신조의 소설 <산마처럼 비웃는 것>은 불가사의한 사건에 대한 합리적 해석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불가사의한 사건의 재구성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 교고쿠 나쓰히코의 <항설백물어> 시리즈에서와 마찬가지로 미쓰다 신조는 자신의 대리인 도조 겐야를 통해 이 세상에 불가사의한 일은 없노라고 주장한다. 특히 그가 좋아하는 공간인 울창한 산속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에 대한 논리 정연한 설명에는 정말 당해낼 재간이 없다. 아니 어쩌면 ‘불가사의’가 충분히 침투할 수 있는 산속이라는 공간과 소설탐정가의 논리적 재구성이야말로 그가 창조한 산속 밀실 트릭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우리가 현재 사는 헤이세이 시대에 한참 전의 쇼와 시대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한국전쟁이 시작된 쇼와 시대에도 CCTV 같은 감시카메라와 휴대전화가 있었다면, 산림이 울창한 시골마을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의 단초를 충분히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어느 시대에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도 그래서 중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해결사 도조 겐야가 앞으로 맞닥뜨리게 될 진정한 기이와의 대치가 기대된다. 그의 놀라운 추리력으로 도대체 설명가능하지 않은 기이가 존재할까?

추리물을 리뷰할 때마다 느끼는 애로사항이지만, 스포일링을 피하면서 앞으로 이 책을 읽을 미래의 독자에게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나름 스포일러가 되지 않게 조심했지만 입이 간질간질해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끝까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복잡한 스토리의 얼개를 뒤쫓는 독자에게 마지막으로 이 말 하나만큼은 꼭 해주고 싶다. 책의 제목에 들어 있는 “비웃음”을 주목하라.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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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도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4
다나카 요시키 지음, 손진성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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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요시키. 솔직히 말해서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하지만 SF 소설계의 전설 같은 그의 대표작 <은하영웅전설> 제목은 들어봤다. 물론 구판으로 10권, 이번에 이타카 출판사에서 완판으로 나온다는 15권의 분량만으로도 정말 대단하다는 느낌이다. <은하영웅전설> 집필 막바지에 쓰기 시작했다는 <일곱 도시 이야기>에는 정말 주목할 만한 주제들이 차고 넘친다.

우선 다나카 요시키는 지구의 지축이 뒤틀린 대전도 이후 22세기 지구를 배경으로 설정한다. 마치 올림포스의 신처럼 군림하는 지구인보다 월등한 기술력의 월면도시인들은 지상 500m 이상 비행을 허용하지 않고 지상인들의 감시를 위해 소위 ‘올림포스 시스템’을 구축한다. 갑자기 조지 오웰의 ‘빅 브러더’가 연상된다. 아무리 지구인들이 뛰어난 기술을 개발해도, 신들에게 능력에는 미치지 못하는 법. 공중이라는 공간을 이용하지 못하는 인간의 수송 수단은 육상과 해상으로 제한된다.

제목에도 나오듯이 모두 일곱 개의 도시국가로 재편된 지구의 균형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마치 오래전 제갈공명이 세발 달린 솥의 정세처럼 정교하게 짜인 틀로 삼국정립을 설파했다면, 다나카 요시키는 7개의 도시국가들이 서로 균형과 견제의 교묘한 틀을 제공한다. 지금이나 20년 전이나 여전히 각국의 관심인 지하자원에 대한 이권다툼과 정쟁 때문에 아퀼로니아와 뉴 카멜롯의 전쟁으로 시작된 이야기(もの-がたり:모노가타리)는 AAA(알마릭 아스발 오브 아퀼로니아), 케네스 길포드, 귄터 노르트 그리고 유리 크루건 같은 쟁쟁한 전략가들의 등장으로 그 재미가 배가된다.

인류의 역사 이래 끊이지 않고 계속된 전쟁에 대한 새로운 다나카 요시키 스타일의 해석도 그렇지만, 고사에도 빈번히 등장하는 토사구팽 같은 반복되는 역사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나라의 숙적 부차를 패퇴시킨 월왕 구천의 품성을 진작 알아차리고 고생과 환난은 같이 할 수 있어도 부귀영화는 함께 못할 거라는 사실을 예상한 명재상 범려처럼 뉴 카멜롯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아퀼로니아의 참모 류 웨이는 타 도시로 망명한다.

허황된 세계정복을 꿈꾸며 프린스 헤럴드를 침공하려는 부에노스 존데의 독재자 에곤 라우드푸드 편에서도 반대파는 그를 두고 혹한의 모스크바에서 참패한 나폴레옹 1세를 뒤따르려는 건지 아니면 보불전쟁에서 패하고 스당에서 포로가 된 황제의 조카 나폴레옹 3세의 전범을 뒤따르려는 거냐고 비아냥거린다. 명나라 시대의 상승장군 척계광까지 등장시키는 저자의 빼어난 식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런데 다나카 요시키가 정작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런 시시콜콜한 역사와 전략적인 측면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공화정 시스템의 본질이 아니었을까? 페루 해협 공방전에서 다른 여섯 개 도시의 원정군을 막아내고, 사랑하는 아내의 복수마저 끝낸 귄터 노르트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 독재자 에곤 대시 새로운 독재자를 원하는 부에노스 존데에 염증을 느끼고 류 웨이처럼 타 도시로 역시 망명한다. 세기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를 지도자로 선출하고, 지지한 것이 바로 우리네 같은 보통의 시민이었다는 사실을 다나카 요시키는 SF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냉정하게 되짚는다.

책을 읽기 전에 솔직히 일본 작가라는 점 때문에 일본적 색깔이나 일본을 옹호하는 점이 두드러지지 않을까 하고 우려가 됐다. 하지만, 그건 정말 독자의 부질없는 노파심이었다. 저자도 그런 점을 고려했는지 그런 점은 말끔하게 배제됐다. 역설적으로 전쟁을 통한 다나카 요시키의 반전 메시지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을 통해 멋지게 재현된다. 공격과 방어라는 전쟁의 전형적인 메커니즘을 통해 소위 선빵을 날린 도시의 완패가 이어지지만, 도시의 위정자들은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전혀 교훈을 얻지 못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다른 사람이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진실을 보는 것이 지도자가 갖추어야할 덕목이라고 했다지만, 이들은 모두가 보는 진실조차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 점이야말로 다나카 요시키 식의 현대정치 비평이 아닐까 싶다.

<일곱 도시 이야기>는 다나카 요시키 특유의 블랙유머도 빠지지 않는다. 엄청난 적군의 내습 앞에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도시 방어를 맡은 사령부 전체가 사령관 부인이 만든 젤리 샐러드 때문에 집단 식중독으로 지휘가 마비된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프린스 헤럴드 방어의 전권을 젊은 세대가 맡게 된다는 설정이다. 아퀼로니아나 뉴 카멜롯의 경우에도 뛰어난 명장들은 하나같이 젊은 세대다. 버블의 거품이 빠지고 난 다음 세대,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거는 작가의 기대와 희망의 단초를 보았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 매력적인 작품의 스토리라인과 등장인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후배 작가들이 15년이 지난 후에, 속편 <일곱 도시 이야기 Shared Worlds>를 썼다고 하는데 그 작품도 기개가 된다. 다나카 요시키와의 첫 만남은 정말 아스트랄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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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자연유산 - 유네스코가 선정한 5대 명소 가이드 여행인 시리즈 5
박지민 지음 / 시공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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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책을 보는 순간 금세 다 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 읽는데 일주일이나 걸렸다. 중국 여행의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는 박지민 작가의 꼼꼼하게 기록한 글과 사진 그리고 여행 루트와 에세이를 읽다 보니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 보통 여행을 다룬 서적은 반나절이면 다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착각이었다.

사실 어려서 역사를 공부하던 시절에는 꼭 중국에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아직까지도 중국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반면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일본에는 세 번이나 다녀왔다. 중국 여행하면 자연유산보다 문화유산에 더 호기심을 갖곤 했는데 <중국의 자연유산>을 읽으면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역시 대국답게 우리가 미처 모르고 있던 비경을 품은 절경이 책의 곳곳에서 소개된다.

초보도 알기 쉽게 박지민 작가는 중국의 자연유산 관광을 위한 첫걸음부터 자세하게 소개해준다.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 자연유산, 문화유산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게 될 중국의 자연 및 문화유산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1985년 이래 무려 40곳이 자연(8곳), 문화(28곳) 및 복합유산(4곳)으로 선정된 중국은 단연 관광대국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자연유산>에서는 중국의 대표적인 5곳의 자연유산을 다룬다.

일번타자는 쓰촨성의 주자이거우와 황룽이다. 아무래도 현재 중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중국식 발음보다 종래의 한자식 발음에 익숙해서인진 몰라도 구채구(九寨溝)의 중국식 발음인 주자이거우가 낯설기만 하다. 물론 책에 실린 사진과 실물이 다르겠지만, 아쉬운 대로 사진으로 만난 주자이거우의 물빛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같은 호수에서도 변화무쌍한 물빛의 변화를 자랑한다는 물빛은 주자이거우의 또 다른 자랑거리인 잔도와 어울려 가히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박지민 작가는 그런 풍광만큼이나 주자이거우에 지금도 살고 있는 장족에 대한 글도 빠뜨리지 않는다. 역시 공간의 아름다움은 그 안에 생동감이 있을 때 더욱 빛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자이거우의 곳곳에 대한 설명도 일품이다. 수정거우를 비롯해서 이름도 다 외울 수 없는 곳곳의 호수에 담긴 전설은 그 의미를 더하지 않나 싶다. 사진으로 르쩌거우에 비친 물그림자를 보는 순간 정말 당장에라도 주가이거우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세월 탄화칼슘 침전물이 쌓여 형성된 신선세계 황룽의 곳곳도 절경 그 자체였다. 볼거리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거론하기도 쉽지 않지만, 수백 개의 옥판이 줄지어 선 장관의 우차이츠는 최고였다. 우차이츠 같은 절경을 한 장의 사진으로 달래기에는 너무 아쉬운 느낌이었다.

세계 복합유산으로 유명한 황산은 남성적 아름다움이라는 부제로 당당하게 독자와 만난다.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 수직 절리가 빚어내는 절경은 정말 말로 형용할 수가 없을 정도다. 황산의 수많은 기암괴석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다는 멍비성화를 비롯해서, ‘원숭이가 바다를 본다’는 의미의 허우쯔관하이가 인상적이었다. 그 수많은 계단을 인간의 힘으로 완성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정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소개되는 장자제의 첸쿤주가 영화 <아바타> 할렐루야 봉의 모델이었다는 말이 바로 이해가 됐다.

박지민 작가는 중국의 자연유산의 소개뿐만 아니라 보존에도 관심을 보인다. 인간의 손이 타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따르게 되는 자연훼손과 오염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한다. 이런 귀중하고 아름다운 자연유산은 인류가 공동으로 누려야할 자원이라는 점에 공감한다. 하지만, 후세에게도 이런 소중한 자연유산을 전해 주기 위해 우리의 의무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해준다. 아울러 무조건적인 개발과 편리가 만능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렇게 멋진 곳을 눈으로만 여행하기에는 정말 아쉬웠다. 과연 중국에 언제 가게 될진 모르겠지만, <중국의 자연유산>을 통해 알게 된 여행지 중에서 한두 곳은 언제고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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