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탄의 세이렌
커트 보니것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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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에게 좋아하는 작가를 물으면 항상 대답하곤 하는 이름이 둘 있었다. 칠레 출신의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와 미국 출신의 커트 보네거트였다. 두 작가 모두 우리 지구별을 떠나 영원한 별이 되었다. 나름 보네거트의 책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해 왔는데, 독서모임에서 한 동지가 <타이탄의 세이렌>이라는 작품을 읽었다는 말을 듣고는 , 그 책은 못 읽었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바로 검색을 해보니 이제는 절판돼서 구할 수가 없는 책이란다. 복간되어 나오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작고하기 전까지 활발한 작품활동을 해온 보네거트의 <타이탄의 미녀>1959년에 발표된 그의 초기 작품에 해당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SF 과학소설 장르의 모든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의 장르로 분류되는 것을 한사코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인류가 지구별을 떠나 우주에 첫 발을 내딛기 십년 전에 이미 이런 상상을 했다는 점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이름조차 생소한 크로노-신클래스틱 인펀디뷸럼이라는 공간을 통해 지구별과 화성을 넘나드는 윈스턴 나일스 럼푸드와 그의 개 카작이 소설의 초반부를 장식한다. 인펀디뷸럼에 들어가게 되면 과거와 미래를 아는 능력이 생기는데, 자신이 가진 부를 우주선 제작에 투자해서 럼푸드 씨는 예의 능력을 100% 활용하기에 이른다. 그는 또다른 갑부 맬러카이 콘스턴트(소설의 진짜 주인공)을 자신이 지구별과 화성을 오가며 체화하는 의식에 초대해서 그의 미래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럼푸드는 콘스탄트에게 화성과 수성, 지구 그리고 타이탄으로 가게될 거라고 예언한다.

 

아니 아직 인류가 달나라에도 가지 못한 마당에 이런 방대한 스케일의 허구는 뭐지? 물론 지금이야 무인우주선이 부지런히 우주를 돌아다니고 있으니 그 정도야 상상할 수 있지만 지금으로부터 63년 전에도 그런 상상이 가능했을까? 하지만 지구별에서 무엇 하나 아쉬울 게 없는 콘스탄트에겐 씨도 먹히지 않는 수작일 뿐이다. 그래서 슬쩍 미끼를 던지는데 그게 바로 제목인 <타이탄의 세이렌>들이다. 물론 모든 소설의 주인공의 운명이 그렇듯,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움직이기 마련이다.

 

SF소설답게 전개와 공간이동 역시 신속하다. 다음 무대는 화성의 연병장이고, 주인공 역시 엉크라는 이름의 사나이가 등장한다. 화성에 사는 지구별의 이주민들은 모두 지구별과의 전쟁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왜 지구를 침공하려고 하는 걸까? 구체적인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머릿속에 안테나를 하나씩 박아두고 리모콘으로 조정하는 방식은 또다른 디스토피아의 재현으로 다가온다. 기억을 지우고, 사회에 순응하는 그런 기계적인 인간 군상이 대거 등장한다. 그 가운데, 과거를 필사적으로 기억해 내려고 애쓰는 남자가 하나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엉크. 그리고 필연적으로 독자는 그가 지구별에서 화성으로 납치된 맬러카이 콘스턴트일 거라는 추측에 도달한다.

 

윈스턴 나일스 럼푸드의 사주를 받아 지구별 침공에 나선 화성인들은 공격다운 공격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떼죽음을 당한다. 럼푸드는 자신의 예언 성취를 위해 자신의 정체를 알게된 엉크와 보즈를 수성(머큐리)으로 보낸다. 음악을 사랑하는 하모니움이 사는 수성을 탈출해서 엉크/콘스탄트는 다시 지구별로 귀환해서 우주의 방랑자가 된다. 그리고 그보다 앞서 지구별에 와 있던 그의 아내 베아트리체와 아들 크로노와 함께 마지막 여행지인 타이탄으로 마지막 여행에 나서게 된다. 소설 <타이탄의 세이렌>의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우주여행, 공간이동, 반전 메시지 그리고 신흥 사이비 종교에 대한 신랄한 비판에 이르기까지 커트 보네거트 주니어가 이 소설에서 다루는 소재는 그야말로 차고 넘칠 지경이다. 소련이 미국에 앞서 발사한 유인 인공위성 스푸트니크의 충격(1957104) 때문에 세계 일류 미국이 악의 축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소설 곳곳에 덕지덕지 묻어난다. 어이없는 화성인들의 집단자살 작전은 온전하게 럼푸드 씨가 지구별을 좀 더 바람직하게 변화시키고, 대규모 유혈사태 이후 발생하게 될 사고의 진공상태와 양심을 가책을 덜 수 있는 신흥 종교의 발흥을 위한 것이었다는 고백하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종교에서 흔히 사용되는 예언을 차용하고 메시아를 기대하는 심리를 우주의 방랑자의 도래로 치환시키는 방법 역시 탁월해 보인다.

 

그 층위에 더해 인류가 체험한 이 모든 간난신고는 타이탄에 사는 럼푸드 씨의 친구이자 트랄파마도어인 우편배달부 살로의 도움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과 그에 따른 결말 역시 성에 차지 않는다. 도대체 커트 보네거트가 이 소설 <타이탄의 세이렌>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그저 어느 도피주의자의 우주적 농담으로 치부하기엔 너무 큰 담론인지, 그도 아니라면 얼치기 블랙유머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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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0-24 2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커트 보니것 소설이 다시 나왔군요. 앗싸하고 찾아보니까 타임퀘이크도 다시 재출간돼서 한번 더 앗싸하네요. 세풀베다는 한권밖에 안 읽어서 좋아하는 작가라고 하기는 좀 뭐하지만, 커트 보니것은 저도 제일 좋아하는 작가예요. 레삭매냐님 덕분에 새 책 소식 빨리 알았다고 좋아하는데 언제 읽으셨대요? 알라딘에 신간소식 오늘 떴던데 말이죠.

레삭매냐 2022-10-25 10:01   좋아요 0 | URL
오래 전, 한창 책 읽기 시작했을 적에
커트 보네거트/루이스 세풀베다 책들
을 사냥하러 다닌 기억이 풀풀 납니다.

근데 책들이 거의 절판돼서리...

<타이탄의 세이렌>은 8년 전에 읽은
책 감상문의 울궈먹기입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