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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의 부탁 - 제12회 권정생문학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49
진형민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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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말고, 학원 말고,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 말고, 도시 말고, 어른 말고, 어린이도 말고, 그냥 밝고 맑은 청소년 말고, 뻔히 보이는 비극과 쉬운 위로 말고, 핑크 핑크 연애 말고, 흔한 해피 엔딩 말고, 예측 가능한 싸구려 사고나 복수극 말고, 비행 청소년 선도 말고. 


열여섯 열일곱에도 삶이 있다. 경계에서 선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는 삶, 인생, 그리고 그 선을 넘어서는 경우에도 삶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내가 몰랐다고 없어지지는 않는다. 


진형민 작가의 단편집에는 동급생 남학생을 좋아하게 된 남학생, 의 친구 여학생'나'의 이야기, 배달 알바를 하는 아이와 피자집 딸 친구를 중심으로 하는 변하는 동네 상권과 사람 이야기, '콘돔'을 갖고 다니는 남학생 여학생의 사연들, 갑작스러운 폭력의 피해자가 된 언니와 여름을 보내는 아이와 탈출과 독립의 고민, 말레이에 사는 이란 출신 불법 체류자 여자 아이의 이야기, 인도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를 둔 '나'의 정체성 이야기와 '떨어진 끈'에 대한 슬픔, 어느 청소년에 대한 '인터뷰'와 작가의 말이 실려있다. 이 모든 이야기. 


말을 아끼고 조심스럽게 써내려간 이야기에 '사람'에 대한 예의가 보인다.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여기 사람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리다고, 몰랐다고 지워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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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0-10-31 2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내용의 소설이었군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예의도 갖추었다니 관심이 가네요

유부만두 2020-11-01 07:56   좋아요 1 | URL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쉬운 길을 접어두고
청소년 (소설)을 만나는 방식을 조심스레 보여주는 소설집이에요.
 

사방에 불그스름한 빛이 퍼지기 시작했다. 곧 해가 뜰 것 같았다. 나는 더 걷기가 싫어서 쭈그리고 앉아 파도 소리를 들었다. 

처업, 처업, 처업.

거대한 동물이 뭔가를 천천히 먹어 치우는 소리 같았다. 여기까지 달려온 사람들이 모래밭에 쏟아 놓은 얘기들이 바다의 배 속으로 끝도 없이 빨려 들어갔다. (곰의 부탁, 30)



나는 지금껏 운이 좋았지만 앞으로도 그럴 거라 자신할 수 없었다. 아니, 내 몫의 운을 모조리 써 버린 것 같아 더는 배짱부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심장이 혼자 숨죽인 채 뛰고 있었다. 날은 여전히 무덥고 콜은 아직 뜨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헬멧을 눌러썼다. (헬멧, 86)



좀 뜻밖이었다. 나는 내가 그 사건을 얼추 잊은 줄 알았다. 세상에는 다급하고 중요한 일들이 많았고, 기를 쓰고 외운 영어 단어도 이틀만 지나면 기억 속에서 흐물흐물 지워졌다. 그런데 그 얘기를 해야지 생각하자마자 그날의 색과 소리와 냄새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누군가 "서프라이즈!" 하면서 눈가리개를 열어 젖힌 것 같았다. (언니네 집, 126)



돈이 없으면 기분이 더러워요.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하나 사먹을 때도요. 돈 몇백 원이 뭐라고, 사실 그거 조금 아낀다고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저도 다 아는데, 모르지 않는데, 그래도 꼭 더 싼 걸 집게 되요. 내가 또 싼 음료수를 마시고 있구나, 알아차리는 순간 기분이 안 좋아지고 그러면 또 혼자 막 생각해요. 나는 처음부터 이 음료수를 마시고 싶었다고, 절대 돈 아끼려고 그런 게 아니라고. 그런 생각을 자꾸 하다 보면요, 제가 처음에 뭘 좋아했는지 점점 헷갈리게 돼요. 꼴랑 음료수 하나 마시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 하죠? 저는요, 돈이 없어서 뭘 못하는 것도 화가 나는데요, 이런 게 더 미치겠어요. 내가 나를 자꾸 쪼그라들게 하는 거요. (그 뒤에 인터뷰, 177)



세상은 순식간에 나아지지 않아서 여전히 변방으로 밀려나는 아이들을 만나곤 합니다. 경계 위에 서 있는 아이들은 오늘도 불안을 견디며 걸음을 내딛습니다. [...] 어설픈 위로도, 섣부른 희망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어 나는 숨죽여 소설을 씁니다. 너는 괜찮아? 짧은 인사를 남기기로 합니다. 거기 있음을 아는 것이 나의 시작입니다. (작가의 말,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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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청소년>

고양이 해결사 깜냥 1, 홍민정, 김재희 그림, 창비, 2020 

욕 좀 하는 이유나, 류재향, 이덕화 그림, 위즈덤하우스, 2019

곰의 부탁, 진형민, 문학동네, 2020


<만화 그래픽노블>

어제 뭐 먹었어 10, 요시나가 후미, 삼양출판사, 2015

어제 뭐 먹었어 11, 요시나가 후미/노미영 역, 삼양출판사, 2016

어제 뭐 먹었어 12, 요시나가 후미/노미영 역, 삼양출판사, 2017 

오늘 조금 더 비건, 초식마녀, 채륜서, 2020 

나의 비거니즘 만화, 보선, 푸른숲, 2020

사기 1-11, 요코야마 미츠테루/서현아 역, 시공사, 2012

 

<비문학>

김언호의 세계 서점 기행, 김언호, 한길사, 2020 

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아르테, 2020 

책이나 읽을걸, 유즈키 아사코/박제이 역, 21세기북스, 2019 

나라 잃은 백성 처럼 마신 다음날에는, 미깡, 세미콜론, 2020


<문학>

홀, 편혜영, 문학과 지성, 2016 

어떤 물질의 사랑, 천선란, 아작, 2020 

'에디 혹은 애슐리', 김성중, 창비, 2020


<영화>

추억의 마니 

세인트 영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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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은 빵도 있고 죽도 있어서 여유를 부릴 수 있다. 커피 대신 녹차를 우려 마시고 있다. 마루에 널어둔 아이 교복은 다 말랐다. 식탁 위에는 밤새 큰아이가 간식을 먹은 흔적이 남아있다. 책을 읽기전에 블로그에 들어왔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스칼렛이 드디어 파티장에 들어섰다. 그리고 레트 버틀러를 만났다. 그에 대한 나쁜 소문을 들었지만 어쩐지 그의 검은 눈동자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그래도 스칼렛의 마음 속에선 애슐리에게 고백하고 야반도주 하려는 당찬 계획이 진행중이다. 인물들 묘사가 흥미롭다. 사람들은 자신의 관심사를 감추질 못한다. 그 관심사가 그 사람 자체가 되어 온몸에 드러나서 옷이나 표정처럼 감싸고 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읜 맏딸은 집안을 건사하느라 자신을 가꾸질 못하고 부끄럼장이 미남은 여자들의 장난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속마음을 감추지 않는 이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혈통'이다. 키우는 종마 처럼 그들은 '핏줄'에 집착한다. 친척끼리만 결혼하는 집안들에대해, 그들의 유럽 전통 가문에 대해 헐뜯으며 '좋은 혈통'을 받아서 대를 잇는 것에 대해 고민한다. 곧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델러웨이 부인>은 천천히 읽고 있는데 그렇게 읽어야 맞는 책 같다. 단어는 쉽지만 쉼표가 많고 문장은 계속 이어진다. 조금씩 끊어 읽으며 쉬엄쉬엄 이 부인의 회상, 기억, 관찰과 추측을 함께 짚어가고 있다. 옛날 남자 피터를 떠올리다 그 '멍청한' 인도 여자들에 까지 생각이 가 닿는다. 시혜하는 기분으로 걷는다. 우아하려고 애쓰는 부인. 꽃집 밖에 서 있던 그 차, 타고 있던 고관대작, 어쩌면 왕가 사람에 대한 생각과 길을 건너던 부부의 이력을 거쳐 어쩐지 고결한 기분에 꼿꼿하게 몸을 세우고 거리를 걸어내려간다. 이층버스 위에 아무렇게나 탄 '서민'들에 대해 까탈스런 시선을 던지고 먼 미래에 이 도시에 남을 것들에 대해서 상상하고 있다. 


시간이 금방 간다. 오늘은 점심 약속이 있는데 오랜만이라 외출에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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