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빚 대신 다섯 살에 부잣집에 팔려온 수아. 또래 아가씨 몸종으로 십년 이상을 작은 세상에서 살았다. 일제강점기에 주인댁이 군산에서 떵떵거리고 아가씨가 고운 양장을 입어도 그저 뭐 어쩌랴 싶은 마음이었다. 별 걱정 없이 바다에서 수영하고 살뜰하게 아가씨를 모시면 그만이었다. 글 모르고 나라 걱정 안하고 그냥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바닷가에 쓰러진 그, 의현을 만나면서 모든 것이 바뀐다. 


그림이 아주 아주 예쁘다. 네이버 연재 웹툰을 책으로 묶어냈고 커다란 그림은 살려서 편집했다. 인어공주 이야기를 우리나라 1920년대 말에 가져다 놓았다. 천천히 전개되는 이야기와 뻔한 감정선에 민망하지만 (반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얼마나 쉬운지. 선남선녀 나오면 일단 사랑의 작대기를 긋고 보는것이제! 제목 안봤소?! 경성의 인어공주 이야기! 이거슨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여! 나가 소녀 감성이지만, 원 인어공주가 왕자넘 심장을 조사노치 않은 건 화가 나는구먼. 여그 이 인어 수아가 어쩔랑가는 아즉 모르것지만.) 예쁘다. 이렇게 곱고 예쁜 그림으로 비극으로 치닫는다. 나라 잃은 사람들에겐 사랑도 사치이며 비극이고 독립 투쟁에 목숨을 걸고 매일매일이 불안하다. 하지만 예쁜 그림으로 하는 투쟁은 절절하고 낭만적이다. 그들 개개인들의 사연들이란... 


얼마전 봤던 그래픽노블판 <아가미>보다는 더 마음에 들었고 인어공주의 다른 해석 <인어소녀>도 떠오른다. 글배우기 모티브는 영화에도 있었지. 그런데, 자꾸만, 군산집의 아가씨와 수아가 예쁜 컷 안에 함께 있으면 영화 <아가씨> 같이 보여서 다른 게 생각나고 그랬다니까?;;;; 


비가 와서 더 오락가락하는 내 감성. 습도가 높으니 내 아가미도 열릴 것만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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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6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27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열 편의 이야기가 묶인 소설집에서 세 편을 읽었을 때 옛 책의 표지와 피규어를 사진 찍어 올리고 '귀엽다'라고 썼다. 나머지 일곱 편을 어제 오늘 읽었다. 지난 번 '귀엽다'라는 말을 지울까 말까 생각했다. 더불어 복수와 저주의 쾌감 이야기도.


작가의 말에서 확인했듯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쓸쓸하다. 그들은 기괴한 운명에 묶여 끌려가고 싸우고 싸우다 자기 안으로, 본질로, 아니면 더 깊은 허무로 돌아간다. 그 과정에 복수나 저주가 있었더라도 시작보다 결말이 슬픈 이야기들이다. 귀엽다고 표현한 건, 그러니까 읽으면서 공포스러운 이야기라도 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 안전하게 즐기면서, 결말을 예상하면서 여유를 부렸다는 의미다. 등장인물들은 귀엽기는 커녕 처절하게 피를 쏟고 목숨을 잃고, 앞을 보지 못하거나 엉뚱한 존재를 대면한다. 난 그들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옆에 놓인 회색 토끼 피규어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 감상을 조금은 반성한다.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든다. 


'저주토끼'나 '덫'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에는 어린이들에게까지 지독한 저주가 이어진다. 수위가 높아서 매우 위험하다. 이야기 안에서는 그럴 수 밖에, 라지만 그 속에서 피범벅에 폐륜이고 서로 물어뜯는다. '재회'나 '즐거운 나의 집'은 가장 먼 존재가 나의 목소리를 듣고 위안을 주는 아이러니가 떠올랐다. '안녕 내 사랑'은 AI 아니면 로봇에 마음을 주고 업그레이드 할 때의 모순 혹은 반전을 그린다. 이언 매큐언의 최근작이 (재미 없어서 던져두었;;;) 생각났다. '몸하다'나 '머리'는 가장 기괴하며 가장 물질적이다. (이제 화장실에서 일을 본 뒤에 빨간 휴지 파란 휴지 말고도 '머리'를 신경써야한다.) 이야기 안에선 시치미 떼고 모든이들이 '머리'와 '아이'를 상대해 준다는 것이 그 기기한 분위기를 이어준다. '차가운 손가락'은 가장 현실의 귀신 이야기 같아 재미있기도(? 아니라니까?)  하지만 아쉽기도 했고 '흉터'는 신화 스케일로 긴 만큼 그 여운이 오래 간다. 인칭 대명사가 이리저리 흔들려서 마지막에 '그'가 '남자'와 싸울 땐 누구의 팔이 부러지고 누가 누굴 내려다 보는지 어지러웠다. 


모든 이야기들에서 폭력적인 상대는 아름답기도, 또 순간적으로 가장 취약한 위치에 서기도 한다. 결말은 예측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맘대로 '귀엽다'라고 섣부르게 말하면 안되겠지만) 이야기의 끝까지 몇 쪽 남았나 헤아리면서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이야기는 독자도 불안하게 만든다. 지금 이걸 즐기면서 읽어도 될까? 날은 눅눅하고 이 비는 '날씨의 아이' 속 장마 처럼 누군가의 희생을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습기를 틀었다. 습도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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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릿터는 그림책 특집이라고 합니다. 


표지가 미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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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20-08-09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마지막 남은 미피책 하나 처분하면서 마음 한켠이 허해요 ㅎㅎㅎ

유부만두 2020-08-09 16:50   좋아요 0 | URL
왜요...ㅜ ㅜ 한 권이라도 남겨두시지 그러셨어요. 아쉽네요.

2020-08-09 1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스 긴즈버그는 대학생 때 나보코프의 문학수업을 들었다. 그녀의 기록에는 강의실에 함께 앉아 있었던 나보코프의 부인, 베라에 대한 묘사가 짧게 있다. (난 그 강의록을 정리한 '나보코프의 문학 강의'를 천천히 읽는중이다) 




쇼맨십 강한 나보코프의 강의에 고개를 젓는 베라. 

부인이 교수 남편의 강의실에 앉는 것이 이상했지만 검색해보니 베라는 편집자로서 남편의 작업을 많이 도왔다고. 톨스토이 부인이 필사한 것 이상으로 그의 소설 작업에 참여했고 남편의 유언을 어기면서 '오리지널 오브 로라'의 원고를 지켜냈으며 말년엔 '창백한 불꽃'을 러시아어로 번역했다. 



















베라 나보코프에 대한 책은 두 권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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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20-08-09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몰랐어요...위대한 작가보다 더 위대한 아내들!

유부만두 2020-08-09 16:50   좋아요 1 | URL
베라의 이야기를 더 찾아 읽으려고요. 사진만 봐도 멋지죠?!
 

예전 표지로 나오자마자 샀지만 오늘에서야 읽기 시작. 그때도 사은품 토끼 피규어에 혹해서 샀지. 만약 피규어가 흰색에 검은 발이었다면 무서워서 울었을 거야 ㅠ ㅠ 갉작갉작

무서워도 귀엽게 무서운 호러단편집이다. 결말이 보여도 시원한 편. 나쁜 넘들은 벌을 받...지만 엄한 아이가 피해를 입기도 한다. 역시 입추엔 괴기소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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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0-08-08 0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토끼피규어는 너무 귀엽기만한데 어떻게 무서워지는지 궁금해지네요ㅎㅎ

유부만두 2020-08-08 08:30   좋아요 1 | URL
피규어와 달리 소설 속의 토끼는 ‘저주‘를 불러오거든요.
그 저주가 파괴하는 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