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편의 이야기가 묶인 소설집에서 세 편을 읽었을 때 옛 책의 표지와 피규어를 사진 찍어 올리고 '귀엽다'라고 썼다. 나머지 일곱 편을 어제 오늘 읽었다. 지난 번 '귀엽다'라는 말을 지울까 말까 생각했다. 더불어 복수와 저주의 쾌감 이야기도.


작가의 말에서 확인했듯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쓸쓸하다. 그들은 기괴한 운명에 묶여 끌려가고 싸우고 싸우다 자기 안으로, 본질로, 아니면 더 깊은 허무로 돌아간다. 그 과정에 복수나 저주가 있었더라도 시작보다 결말이 슬픈 이야기들이다. 귀엽다고 표현한 건, 그러니까 읽으면서 공포스러운 이야기라도 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 안전하게 즐기면서, 결말을 예상하면서 여유를 부렸다는 의미다. 등장인물들은 귀엽기는 커녕 처절하게 피를 쏟고 목숨을 잃고, 앞을 보지 못하거나 엉뚱한 존재를 대면한다. 난 그들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옆에 놓인 회색 토끼 피규어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 감상을 조금은 반성한다.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든다. 


'저주토끼'나 '덫'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에는 어린이들에게까지 지독한 저주가 이어진다. 수위가 높아서 매우 위험하다. 이야기 안에서는 그럴 수 밖에, 라지만 그 속에서 피범벅에 폐륜이고 서로 물어뜯는다. '재회'나 '즐거운 나의 집'은 가장 먼 존재가 나의 목소리를 듣고 위안을 주는 아이러니가 떠올랐다. '안녕 내 사랑'은 AI 아니면 로봇에 마음을 주고 업그레이드 할 때의 모순 혹은 반전을 그린다. 이언 매큐언의 최근작이 (재미 없어서 던져두었;;;) 생각났다. '몸하다'나 '머리'는 가장 기괴하며 가장 물질적이다. (이제 화장실에서 일을 본 뒤에 빨간 휴지 파란 휴지 말고도 '머리'를 신경써야한다.) 이야기 안에선 시치미 떼고 모든이들이 '머리'와 '아이'를 상대해 준다는 것이 그 기기한 분위기를 이어준다. '차가운 손가락'은 가장 현실의 귀신 이야기 같아 재미있기도(? 아니라니까?)  하지만 아쉽기도 했고 '흉터'는 신화 스케일로 긴 만큼 그 여운이 오래 간다. 인칭 대명사가 이리저리 흔들려서 마지막에 '그'가 '남자'와 싸울 땐 누구의 팔이 부러지고 누가 누굴 내려다 보는지 어지러웠다. 


모든 이야기들에서 폭력적인 상대는 아름답기도, 또 순간적으로 가장 취약한 위치에 서기도 한다. 결말은 예측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맘대로 '귀엽다'라고 섣부르게 말하면 안되겠지만) 이야기의 끝까지 몇 쪽 남았나 헤아리면서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이야기는 독자도 불안하게 만든다. 지금 이걸 즐기면서 읽어도 될까? 날은 눅눅하고 이 비는 '날씨의 아이' 속 장마 처럼 누군가의 희생을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습기를 틀었다. 습도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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