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의 야무진 표정의 아이는 이 책의 주인공 Meave다. 동생 Danny의 서술을 따라가는 소설은 남매가 살던 커다란 저택 the Dutch House에 얽힌 어두운 전설 ... 은 아니고, 집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 그러니까 그 집을 좋아하고 싫어하고 탐내고 못 잊어하다가 들어가고 나가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문장은 깔끔하고 묘사도 세련됐다. 재미도 물론 있음. 남매의 이혼한 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친구'라며 새엄마를 데려와 인사 시키고 얼마 후 새 엄마 Andrea가 두 딸을 데리고 이사 들어온다. 그리고 야금 야금 남매의 자리가 (3층 짜리 대 저택이 원래 세 식구에게 딱 맞는 공간이었다고 기억하는 화자 녀석. 대니가 워낙 어릴 때 엄마가 집을 나가서 엄마는 기억에도 없음) 좁아지더니 ... 언급되는 '소공녀' 와 '부처' 그리고 '오뒷세우스' 만큼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후반부 안드레아의 묘사는 얼핏 '솔로몬의 노래'와 '위대한 유산'이 연상되기도 하고. 궁금하죠? 


남매가 나누는 대화에서 부모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날 때 (너무 어려서 몰랐던) 대니 만큼이나 독자도 '오호, 그래?' 하면서 인물들의 모습을 계속 마음 속에서 수정하며 읽게 된다. 갑자기 가난해지거나 갑자기 부자가 되거나 하면 가족들 간의 관계가 어떻게 흔들릴까. 남매가 돈독하게 서로를 끌어안고 있을 때 주위 사람들은 어떻게 그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을까.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건 뭘까, 커다란 결정은 하지만 얼마나 하찮게 내려지고. 이게 슬픈 뽀인트. 


... 그리고 말입니다 ... 재미는 있는데... 김수현 (배우 말고 드라마 작가) 주말 드라마 같은 재미였다. 주인공들은 절대 굶지 않취! 중년의 위기는 당사자만의 프라이버시! 공부 잘하기는 기본에 돈은 착착 붙어줘야 제맛! 몇년 후 해피엔딩, 다 같이 모여서 환갑잔치! 


제목 부터 대 저택 이야기니 만큼 남매가 어떻게 해서 그 저택에 집착하고 살아내고 돈을 불리고 하는 이야기가 많다. 의대와 부동산으로 귀결되는가 해서 씁쓸하지만, 아 그 사이사이 인생사의 큰 사건들, 만남, 사랑, 이별, 잘못된 선택, 살짝 빗겨나가는 관계와 .... 사랑이, 그 순간들이 세련되고 아름답게 모여있는 소설이다. 씁쓸하면서 달콤한 다크 초콜릿 같은. 저 그림 같은 느낌. 그러니까 제 말은요, 싫었는데 좋았습니다. 앤 패칫의 다른 소설 Bel Canto 읽으려고 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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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이야기를 여성의 목소리로 들려준다는 홍보문에 혹해서 읽기 시작했는데,살짝 모자라다. 자료가 많지도 않았겠지만 중간에 들어있는 '남성의 목소리' 챕터들이 많았다. 결국 아킬레우스의 이야기인가.


호메로스의 완벽남 아킬레우스와는 다르게 이 영웅은 7살에 엄마를 여의고, 물의 여신인 그녀를 그리워하며 밤에 홀로 바다에서 수영을 한다. 그래서 낮에는 더 사납게 구는 연산군?이 되는데... 그 여린 면을 알아본 브리세이스는 아킬레우스의 사랑이 되고, 전쟁의 여러 면을 겪으며 트로이의 몰락을 천천히 (꽤 냉정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하지만 작위적인 베드신은 어색했다. (야한 장면 재미는 없지는 않았....) 


영웅들의 죽음과 업적은 많이 축소되고 여성들의 고난에 특히 헤케바와 폴릭세나 안드로마케의 심정이 얼마나 .... 죽음을 넘는 끔찍한 고통일지 하나 하나 묘사되고 있다. 브리세이스의 작은 반항, 액션들이 그려지고 파트로클로스와의 짧은 우정 (삼각관계가 아님)도 아름답다. 역병이 도는 그리스인 진영의 묘사가 단순하고 깔끔한 호메로스 버전과 차이를 보이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 와중에 아가멤논 더할 수 없이 개ㅅㄲ. 겉과 속이 같은 호메로스의 인물들이 이 책에서는 내면의 갈등을 품은 '사람'이 되어 등장한다. 여러 비극과 신화의 에피소드들이 디테일들을 이루며 꽤 생생한 인물을 그려내며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아킬레우스 이후의 (가능한) 이야기들도 풍부하게 상상의 가지를 뻗는다. 하지만..... Silence becomes a Woman. 이라는 큰 명제 헛소리에 반기를 들기에는 모자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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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동화를 비틀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싶었을 테고, 솔닛의 명료함이 돋보이기를 바랐다.

 

너무 무난하다 못해 진부한 이야기 흐름에 작가가 동화, 라는 장르를 얼마나 쉽게 보았는지 생각했다. 왕자의 역할이 작다는 것, 그 왕자도 자신의 꿈을 찾아본다는 것, 신데렐라가 본인의 꿈을 찾고 다른 사람, 다른 어린이들을 돕고 자신의 정체성을 부모나 남(편)을 통해서 부여받지 않는다는 점은 아주 쉬운 '다른' 길이다.

 

잃어버린 신발, 신데렐라를 위한 바로 그녀만의 신발. 활동적인 신데렐라와 마부와 시종의 다른 디테일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아, 이게 뭐라고 이런 뻔한 발상에 감히 '해방'을 붙였는가 싶다. 저자가 해설에 붙였듯 (이민자, 제3세계) 어린이 노동 현실에 대해서 쓰려 했다면 더 심각하고 진지하게 동화를 대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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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9-06-15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솔닛은 좀 사는! 배운! 백인!여성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듯 하다는 느낌이 들어. 한국에서는 무척 인기가 있던데 나는 미국에서 마이너리티다 보니 그런 게 자꾸 눈에 들어오더라고.

유부만두 2019-06-15 07:55   좋아요 1 | URL
네. 그 한계가 너무 드러났어요. 동화라는 장르, 노동하는 어린이, 그리고 제 3세계 사람들, 거기에 더해 자신의 독자들을 아래로 보는 시선.

재미라도 있게 썼다면 좀 나았을까, 이래저래 실망스러웠어요.

echoonoo 2021-07-10 0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최근 한글판으로 읽었는데 너무 공감합니다. 일단 스토리가 너무 지루하고 가르침을 받는 느낌이었어요.

유부만두 2021-07-10 15:39   좋아요 0 | URL
저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저자의 명성과 기대에 못미치는 독서였어요. ㅠ ㅠ
 

손목과 무릎이 드러나게 작아진 코트를 입은 소녀의 모습이 보인다. 옆에는 큰 짐가방이 있고 먼 길을 떠나는 듯 기차길 옆에 서 있다. 


작가 주디스 커는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에서 느낄 수 있듯이 '손님'을 두팔 벌리고 받아들인다. 낯설 수 있지, 두렵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들이 여기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면 도와줘야 하지 않아? 느긋하게 손님을 대하는 시선은 그의 경험에서 나왔다. 


호호 할머니 작가의 여유로운 모습에서는 잘 몰랐는데 그의 어린 시절은 분홍 토끼와 함께 히틀러가 훔쳐가 버렸다. 이 동화책은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고있다. 


1930년 초반 히틀러가 세력을 장악해 가자 유태인 안나는 가족과 함께 스위스로 망명한다. 이제 막 열 살이 되는 안나는 친구들과 제대로 된 이별도 못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국경을 건너 아주 다른 상황으로 들어선다. 그나마 다행으로 안나 곁엔 부모와 오빠 맥스, 그리고 낯선 방법으로 다가서는 친구들이 있다. 잠시 부모와 떨어져 있게 될 때 안나가 느끼는 불안과 공포는 생생하고 다시 새로운 장소, 프랑스에 와서 모르는 언어와 풍습 속에 당황하고 좌절하는 모습은 측은하다. 이제 또 한 번 낯선 도시 런던에 도착해 큰 가방 옆에서 작아진 코트를 입고 선 안나는 이 '어려운 아동기'를 견뎌내는 자신을 생각한다.


2차 대전 중 숨어살다 수용소로 끌려가는 안네 프랑크에 비하면 (불행을 비교하다니, 이런 끔찍한 독자야) 동명의 주인공 안네/안나는 가족과 함께 살아 있고 학교도 다니니 얼마나 다행일까 싶지만 아이의 매일은 불안과 차별 앞에 놓여있다. 삶의 기본 이었던 안정은 낡은 분홍 토끼 인형과 함께 멀리 남겨졌고 이제 아이는 가족의 손을 잡고, 때론 살짝 놓으면서 걸어가야 한다. 진정 '난민'이라고 느끼고 좌절할 때도 있지만 친구들의 도움을 받는다. 잔잔하고 차분하게 쓰여진 이야기지만 계속 불안하고 측은한 심정으로 읽었다. 집을 잃고 떠도는 생활이니까. 


이 아이가 자라나서 멋진 그림책 작가가 되어서 정말 기뻤다. 

주디스 커 작가님, 편히 쉬세요. 이젠 그 분홍 토끼를 다시 만나셨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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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아버지들의 마지막 날들..... 이 제목이 곧 내용이다. 제 2차 대전 중 레지스탕스들과 연계해서 영국 정보원 산하에서 활동한 프랑스인들의 이야기. 그들이 견뎌낸 훈련과 전쟁, 그 비극들과 견뎌낸 힘, 전우애, 사랑, 그리고 무엇보다 조국에 두고 떠나온 가족, 아버지. 아버지.

 

진정한 '인간' 이 볼드체로 강조된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 분연히 일어선다, 그리고 인간 답지 못한 것들을 처단한다. 그 가치의 끝에는 아버지가 있고. 그 아버지들의 마지막은 아들과 연결되고 대를 잇는다. ... 잠깐만요, 딸들은요? 어머니는요? .... 왜 꼭 창녀 이야기는 속죄와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까? 21세기의 불란서 현대 젊은 작가의 소설이 어쩐지 육이오 전쟁 소설 같은 건, 그닥 새롭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기심과 증오, 잔인함이 참된 인간을 누를 때 전쟁이 난다, 그걸 잊지 않아야 하는데 인간의 희망인 '아들'이 있어서 가능하다. 아, 어머니는 아름답지요. 뭐 이런 흔하고 낡은 공식. 그리고 '영웅' 을 한 번 더 뒤집어 보면서 아,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아들이구나, 하지만 으으리이를 외치는 전우들은 정의의 기준점을 슬쩍 깔고 앉아버린다. 소설의 마지막은 어째 훗, 하고 웃음마져 나왔는데 작가의 넘치는 자의식이 설마 그 정도일 줄은 몰랐었기 때문인데요. 어째서 내가 부끄럽고 막.

 

그래, 그저 흥미진진하며 널리 알려지지 않은, 어쩌면 부끄럽고 그래서 더 인간적인 (인간이라는 단어가 정말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로 쓰이는 단어) 인물들의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다. 소설이니까. 하지만 소설이 책장이 넘어가게 만드는 힘이라도 최소한 있어야지. 문장이 멋지거나. 전개가 지루하고 반전이랄 것도 없는데 인물들 마저 평면적이라 다른 친구들에게 차마 권할 수가 없다. 아니, 말리겠어. 이 작가는 첫 소설이 끝인 거 같어. 인물들, 작가가 자기 페르소나와 현실을 범벅해서 녹아들어간 그들의 애국심도 막연하고 모든 레종데트르인 부자관계도 작위적이며 신선한 도구는 (엽서 마저 '새벽의 약속'의 재탕)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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