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꿈' 대신 '리처드 3세'를 먼저 읽었다. 어젯밤 공연의 감동을 안고 희곡을 읽는 내내 배우 황정민의 강한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희곡의 리차드는 황 배우 보다는 더 주저하고 더 간교하며 더 겁을 먹고 있었다. 조카의 왕위를 빼앗고 죽인 영국판 수양대군, 리차드 3세. 그는 형 에드워드 4세를 왕위에 앉히기 위해 장미전쟁 중 열심히 싸웠지만 자신의 불편한 몸 (곱추에 뒤틀린 팔과 다리)에 세상에 적의를 품고 있다.

 

공연에서 그의 어머니는 등장하지 않고 앤 공주는 더 강렬한 의지로 자신의 인생을 붙잡으려 애쓰는데 엘리자베스 왕비와 앤 앞에서는 간교하게 말하다가 사람이 돌아서자 마자 입술을 비틀며 웃어대는 리차드는 세상에 둘도 없을, 둘이나 있다면 무서워서 큰일날 악인이다.

 

리차드의 광기 혹은 폭력은 신하 헤이즈팅스를 망치로 때려죽이는 장면에서 정점을 찍는다. 이렇게 희곡에 없는 끔찍한 행위를 넣어서 황 배우의 리차드는 세익스피어의 손을 떠나 그만의 것이 된다. 그에 질세라 일인이역 하신 정웅인 배우 (에드워드4세, 스탠리경)는 계백장군 처럼 스탠리 경의 아들 조지를 칼로 벤다. 희곡에선 스탠리는 족보에 발이 묶여서 (현부인의 전남편 소생 아들 리치먼드가 리차드 왕과 싸우게 됨) 이쪽 저쪽에 반씩 충성할 뿐이고 나중엔 편한 마음으로 살아있는 조지를 만나러 간다.

 

리차드가 등장하지 않는 장면은 과감히 생략해서 워낙 많은 출연과 대사 분량이 더더욱 황 배우에게 집중되었다. 공연 100분 중 황 배우의 대사가 70분을 넘었을테고 그의 굽은 등과 비틀린 손과 발에도 점점 그 존재감이 커져서 리차드, 아니 황 배우가 스러지고 뿌연 김이 무대를 덮어도 이게 끝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몰입해서 본 황정민의 리차드 3세, 유명 배우 공연이라 어느정도 가볍겠거니 했던 마음이 미안했다. 악인에게 이토록 눈과 귀, 마음과 정신을 집중하고 나니 지쳤고, 늦잠도 잤지만 희곡은 읽었다. 그리고 .... 검색해보니 컴버배치의 리차드 3세가 있다고....디비디로 나와있다고....가격은 ....


 

https://youtu.be/wt7xxO0geAM

 

 

https://youtu.be/BiPwhLLWYvM

연극 보러 가기전에 '장미전쟁'과 '리처드 3세' 를 급하게 공부하고 갔는데, 정말 영국인들이 좋아하는 퍼스트 네임들 에드워드, 헨리, 리차드 들이 자주 나와서 많이 헷갈렸다. 자상한 설명으론 디킨스의 이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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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2-19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멋진 유부만두 님표 페이퍼를 애정해요 ~~~~!!!
저는 오늘 게리 올드맨이 나온 영화를 보면서 우리나라 배우 황정민 생각을 했는데 여기서 똬악 만나네요!!! 흠칫

유부만두 2018-02-19 21:34   좋아요 0 | URL
칭찬 감사합니다!
전 황정민의 착한 사람 연기만 봤기에 이번 연극에서 그 악랄한 에너지에 놀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