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들고 있었다. 초중반 까지는 흔한 이야기, 드라마 보는 기분으로 설렁설렁 읽었는데 그 여름, 그 바닷가에서 일이 터져버렸다. 아, 이것이 사랑이고 운명일 것이냐! 어쩌면. 그런데 릴라와 레누는 운명을 따르기 보다는 운명을 불러서 자기 맘대로, 멋대로 주물러버렸다. 많은이들에겐 '미친짓' 이고 나도 '에구...'라고 소리내면서 책장을 넘겼는데 어쩐지 감탄도 하게되는 결정들은, 자기 맘대로 한 행동이라서다.
진학해서 대학교 까지 다니는 레누, 표준어를 말하고 쓰는 레누, 이른 나이에 결혼해서 엄마가 되는 릴라. 어릴적엔 그리 총명하더니 인생을 말아먹는 것 처럼 보이는 릴라. 그런데 인생은 누가 더 잘 살아내는지 알아보는 게임이 아니다.
책을 읽는 릴라와 레누가 좋았다. 베케트를 읽고 토론하는 릴라와 니노, 아네이드를 논문 주제로 삼은 레누, 죠이스의 율리시즈를 읽으면서 아이를 산책시키는 릴라, 전쟁과 평화의 나타샤 처럼 춤추고 싶은 레누. 그리고 그들의 책 블루 페리와 새 책.
이 둘이 새 가게에 걸릴 릴라의 사진으로 새로운 예술품을, 그들 인생을 예고하는 부적을 만드는 장면이 좋았다. 거칠 것 없이 저질러 버리는 릴라와 그녀를 극복하려 애쓰는 레누. 이들은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 보고 자신의 몸과 시간을 지배하는 건 자신이라고 믿는다. 감히 다른이들이 침범하고 손을 대도 절대 울지 않는다. 남자들은 억세고 강하지만 도구로 쓰이는듯 보이고 엄마들은 레누와 릴라가 '아닌' 여성으로 보인다. 엄마와 음식 이야기 대신 릴라와 레누가 채운다. 그런데 슬슬 레누가 이야기를 장악하는 것 처럼 2권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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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우마 서먼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분노하다 레누와 릴라를 생각했다. 누가 주인인가, 누구의 이름인가, 누가 말하고 결정하는가. 자신의 몸과 시간, 인생이 자신의 것이라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 자신의 이름을 갖는 것. 남편이나 아버지의 이름이 아니라.
2권을 읽었으니 3권과 4권으로 가야겠는데 조금 숨고르기를 하려고 한다. 영하 11도의 입춘날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