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의 과일은 사과나 배가 아니라 "구아바"입니다.

구아바를 과식하면 변비에 걸립니다.

 

짐바브웨의 어린 소녀가 친구들과 우루루 백인들의 동네로 몰려가 구아바를 훔쳐 먹는다. 배가 고파서. 이 아이들은 몇년 전만 해도 번듯한 집에서 잘 살았더랬는데 부패한 독재정부 때문에 '파라다이스' 빈민촌으로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엉터리 이름, 바스타드, 달링, 본프리, 등으로 불리는 짐바브웨 사람들은 이름과는 다르게 또 비슷하게 살아간다.

 

어린이 눈으로, 풍자 반 동화 반으로 전반부는 짐바브웨의 생활이 그려진다. 그리고 후반부는 (죄송합니다 스포입니다) 미국에서의 불법 체류자, 이민자의 생활이다. 저자의 경험담이 녹아있어서 절절하게, 다급하게, 이야기가 쏟아진다. 할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러니 전반부 처럼 여유를 부리지 못해서 뚝, 단절된 느낌이 든다. 이민자 서사, 랄까, 이전에 읽은 듯 본 듯한 울분 섞인 목소리. (아프리카에서 온 주인공이 미국 내의 인종문제는 건드리지 않는 건 - 너무 큰 주제라 그럴까 - 의아했다. 그 결과, 미국은 뭉뚱그려서 커다란 괴물이 되어버렸다. 스미스의 영국 이민자 주인공 소설 '하얀이빨'이 자꾸 생각났다.) 고생하는 이민자의 억울함이 담긴 목소리, 그리고 죄책감은 다른 문화권의 이민자, 이주자들을 향해서도 둥둥 울릴 수 있다. 소녀의 혼란스러운 미국 생활은 어쩐지 토니 모리슨의 소녀들을 불러오고....그러다 다시 밀려드는 추억과 급한 마무리. "빈라덴"

 

조너던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도 스트라우트의 <My Name is Lucy Barton>도 911으로 끝을 맺는다. 이제 911은 미국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경계선이 되었나. 이번 소설 역시 빈라덴의 사살로 끝을 맺는다. 흔한 이민자 소설로 퉁치기엔 아까운 면이 있지만 구아바 향 풍기는 전반부에 비해 미국생활 후반부가 생명력이 많이 떨어진다. 벌려놓은 좌판을 채 정리 못해 우왕좌왕하는 느낌..., 그래도 풋풋하다. 소설에선 아직 돌아오지 않은 TK가 있고 엘리엇의 딸 이야기도 있고 책장을 덮어도 계속 뻗어나가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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