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은 모디아노의 소설이다. 되풀이된다는 그의 기억/탐정/안개 등이 내게는 새로웠다. 노년이라는 주제가 다른 작가나 소설을 떠올리게 했지만 모디아노의 이 소설은 해결되거나 설명되지 않고 남겨놓은 부분들이 그리 어색하지 않았고, 적당한 긴장감도 소설 말미까지 이어졌다. 서둘지 않고 느긋하게 시간과 공간을 오가는 화자는 조급하게 보채는 그 젊은 커플과 대조적이다. 꼬맹이 쟝은 어른 작가가 되었지만 그의 조각난 기억들은 아직도 이어지지 않고 그리운 사람들도 지금 드러나지 않은 채 남아있다. 하지만 '십오 년의 차를 두고 방 한 켠에서 맞은 편으로 옮겨간 느낌'이라는 표현이 가슴에 남는다. 그는 과거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지 않고 여기 이 자리에서 저 편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쓴다.
아이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종이에 주소를 적어주는 (아직은 너무 젊은) 어른. 불어 접속법 te perdes 길을 잃는다는 표현은 단순히 길을 잃을 뿐 아니라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뜻이라 옛 거리를 걸으면서 자신을, 기억을, 어린 시절의 그 사람들을 더듬는 작가의 심정이 더 애잔하다. 어쩌면 '그 사건'이나 감옥살이, 장의 부모와 지인들의 관계를 밝혀내는 건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소설을 다 읽고, 해설을 읽고, 그 뒤에 나오는 작가연보를 읽고 책을 덮을 때 까지도 소설은 계속 이어지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