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400. 페스트 (알베르 카뮈)
어렵지도 않고, 사건도 계속 벌어지는데, 연대기라는 형식 때문인지, 의식적인 감정 배제 탓인지 매우 지루하고 무거운 소설이다. 메르스 때문에 읽기 시작했는데 (페스트 발생 역시 봄이고, 이어지는 건조한 날씨..) 오랑의 시민들은 서울 시민들과는 불안과 걱정을 다른 식으로 나타냈다. 몇백 명씩 일일 사망자가 나오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카페와 식당, 거리에 모여서 불안을 나눴다. 사망자가 제대로 된 장례절차 갖지 못하는 점, 특히 유족들의 간소화된, 혹은 생략된 이별은 안타까웠고, 늘어가는 희생자들을 그저 구덩이에 던져넣는 장면은 유태인 대학살이 연상될 만큼 끔찍했다. 마지막 두어 쪽의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 같은 결말을 떼어놓고 본다면,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게 인생이고, 투병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프랑스 본국이 아니라 식민지였던 알제리 도시가 배경인 것이, 물론 저자의 계산된 설정이겠지만 불편하고, 의사 리유의 부인이 그렇게 소리도 없이 사라진 것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