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400. 이발사 (플래너리 오코너)

보이 블루라고 놀림을 당하는 민주당 지지자 레이버는 선동가 후보에게 휘둘리는 '생각없는' 이발사를 설득하기 위해 연설문까지 준비하며 애쓴다. 하지만 도리어 비웃음을 당하고, 자신이 내건 가치는 외면당한다. 흑인을 위한 구호마저 흑인에겐 공허하다. 끝까지 '생각을 하는' 인간인 자신은 무지몽매한 대중을 깨우쳐 주기 위해 애쓴다고 믿는 레이버. 그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그런데 오코너의 다른 단편에서 본 것 처럼, 역시 여기서도 레이버의 위선, 혹은 한계가 답답하다. 이발사나 그의 조수 조, 그리고 단순한 잡담을 하는 이들은 과연 레이버 보다 '낮은' 사람들일까. 변하는 시대를 이끌어 나가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이 소설이 쓰인 시간보다 몇 세대는 흐른 지금, 이 이발소의 다른 버전이 여기 저기에 보이는 듯하다. 나는 누구의 자리에 있는지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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