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400. 만년 (다자이 오사무)

김연수 작가와 서경식 선생 글에 인용된 부분만 읽었던 다자이 오사무. 이번에 비블리아 고서당에서 다시 한 번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단편집이라고 되어있지만 각각의 작품이 서로 엇비슷한 분위기라 소설과 수필의 중간쯤 되는 뭐랄까, 아련한 ... 글이다. 기대하고 읽었던 만큼 실망도 있었고, 중간중간 작가의 갈등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지만, 어렵고 쓸쓸하다. 스물일곱,  치기어린 나이의 젊은이가 쓴 작품이지만 그 깊이가 헤아릴 수 없는 여러 층에 걸쳐져 있달까.

 

정말이지 말은 짧을 수록 좋아. 그것만으로 믿음을 줄 수 있다면. (잎, 13)

 

태어나 처음으로 산수 교과서를 손에 쥐었다. 작고 새까만 표지. 아아, 그 속에 나열된 숫자들이 얼마나 아름답게 눈에 들어왔던가. 소년은 잠시 책을 만지작거리다가 마침내 맨 끝 페이지에 해답이 다 적혀 있음을 발견했다. 소년은 눈썹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무례한데." (잎, 21-22)

 

뒤에서 누군가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나는 언제나 뭔가 태도를 꾸미고 있었다. 나의 하나하나 세세한 동작에도, 그는 당혹해서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그는 귀 뒤를 긁으면서 중얼거렸다와 같이 옆에서 계속 설명구를 달고 있었으므로 내게 문득이라든가 나도 모르게라는 동작은 있을 수 없었다. 다리 위에서의 방심 상태에서 깨어난 뒤 나는 쓸쓸함에 몸을 떨었다. (추억,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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