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400. 아북거, 아북거 (로알드 달)

아랫집 실버 부인을 향한 호피씨의 주도면밀한 구애작전에는 박수를 치겠지만, 애완 거북이 알피를 바꿔치기하는 설정은 영 찜찜하다. 알피를 좋은 새주인과 연결시킨 마지막 장은 그 비난을 피하려는 어설픈 뒷수습으로 보인다. 실버 부인은 결국 그토록 아끼던 거북이 알피가 바뀐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이렇게 둔하고, 엉터리 주문을 믿을 정도로 아둔한 여인과 결혼을 했으니 호피씨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벌을 받은 셈이다. (책을 읽은 막내 왈, 엄마 이 아줌마는 사기결혼한거네요. 자기 거북이도 잃어버리고.)

 

76/400. 문학의 맛, 소설 속 요리들 (다이나 프라이드)

얼마전 읽은 차유진의 하루키 관련 책을 열면서, 나는 하루키 소설 속 음식을 사진이나 레서피로 만날 기대를 했다. 상상만 하던 소설 속의 식탁을 구체적인 사진이나 설명으로 다시 한 번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소설 전체를 다시 불러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나의 무너진 기대는 이번에 다이나 프라이드의 책으로 실현되었다. 생생하게 재현된 음식은 먹고싶다, 라기 보다는 다시 그 책의 내용으로 돌아가서 즐기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레고리 잠자에게 차려진 식탁은 신문지 위였고 이틀 전에 그가 먹을 수 없다고 말했던 빵조가리와 이런 저런것들이었다.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것들. 이 식사 까지 생생하게 재현한 사진은 작가가 얼마나 독서라는 행위를 오감을 모두 활용하며 즐기는지 보여준다. 로빈슨 크루소의 모래 위에 펼쳐진 과일, 그리고 심지어 이상식습으로 흙을 먹는 소녀의 흙밥상, 걸리버 여행기의 미니어쳐 식탁까지. 이 책의 시리즈가 계속 나오길 기다리겠다. 다만 귀여운 발상과 사진 보다는 글 본문에 (번역이랄까, 인물명 표기 등) 덜 신경이 쓰인 것 같아서 조금 아쉬운 마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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